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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여행상품 : 선샤인투어 야간 산행 코스 5,700엔 (왕복버스비, 온천)
일시 : 2010년 8월 9일 오후 10시 ~ 8월 10일 오전 8시
꽤나 등산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도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모악산으로 자주 등산을 가곤 했다. 산의 정상을 밟는 쾌감을 꽤나 어릴 적부터 알았던 걸까. 굳이 일정을 만들면서까지 등산을 가는 정도는 아니었어도, 등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피하지 않고 즐겼던 것 같다. 지금까지 정상을 밟은 산은 열 손가락도 못 채우지만 말이다.
일본에 왔으니 당연히 후지산에 올라가 봐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후지산이 일반인에게 자유로운 산행이 허가되는 시기가 1년 중 7월과 8월 2개월 뿐이라는 소리를 듣고서는 꼭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겐 일본에서의 마지막 여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도 슬퍼지기도 하면서, 정말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작년 해군에 있을 때, 후임 둘과 함께 휴가를 나가서 제주도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한라산 등반을 했던게 가장 최근의 등산이다. '작년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처음으로 등반했으니, 올해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을 등반해보는 거야' 라는 생각도 했다.
2010년 8월 9일 오후 7시 30분, 후지산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후지산 등반 일행은 역시나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오카다상, 문, 준.(이 네명이서 언젠가부터 항상 뭘 같이 하고 있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하고, 같이 야구도 보러 가고 말이다.) 출발 전엔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선택한 코스가 후지산을 밤 10시에 도착해서 밤을 새워 등산을 한 뒤 새벽에 일출을 보고 다시 내려오는 무박코스였기 때문이다. 등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어려운 코스를 선택한게 아니었을까라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역시 그런 걱정도 있는 반면, 우리들은 기대감에 무척 들떴다. "후지산에 올라가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던 일이야"라고 오카다상이 말했다. "저 역시 그래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버스를 타고서 후지산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경이었다. 등산은 고고메(5合目)라고 불리어지는 곳에서 시작한다. 해발 2,300미터의 높이다.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버스를 타고서 태어나서 가장 높은 곳에 와버린 것이다. 한라산 정상은 1,950미터다. 해발이 높아서 그런지 굉장히 선선한 날씨였고 무엇보다 안개가 정말 자욱했다. 10미터 앞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개라기 보다는 구름이었을 것이다.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었다. 정상 부근의 기온이 4도 라고 들었기 때문에 챙겨온 두꺼운 옷을 입고, 비가 오는 날씨였기 때문에 겉에 우의를 걸쳤다. '드디어 등산을 시작하는구나!'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이 사람들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잔뜩 품고 있겠지' 라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연대감을 갖는다.
밤 10시 반 첫 발을 내딛으며 출발했다. 출발하자 안개가 너무도 짙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장착하고 있었지만 등산로가 전혀 보이지 않고, 다음 발을 내딛을 곳만 보이는게 전부였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출발했는데도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면서 헤드라이트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고 옷이 조금씩 젖을 정도였다. 기온도 그렇게 낮지 않았다. 비가 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계속 이 정도로만 내려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앞장 서서 걸었고, 문과 준이 그 뒤를, 그리고 오카다상이 맨 뒤에서 걸었다. 잘 따라오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뒤따라오는 일행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 곳은 6고메를 지난 곳이었다. 그 곳에 밝은 전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제서야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때 문이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산병이 온 것이다. (고산병 : 고지대에서 저산소 상태에 노출되었을 때에 발생하는 환경증후군, 위키백과) 숨을 쉬는게 매우 답답하고, 머리 가운데가 어지럽다고 했다. 문의 상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수록 더욱 안 좋아졌다. 5고메에서 정상까지는 6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우리는 1시간 정도를 올라온 상태였다. 다시 내려가기엔 아직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은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문이 걱정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저산소 상태에 적응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의 고산병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의 등산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조금 오르고 조금 쉬고, 조금 오르고 조금 쉬고를 반복했다. 더불어 걱정도 커져만 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하산하는 결정을 하는게 어려워지는 점도 있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처럼 후지산에 오기도 했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은 자신은 힘들지만 분명 같이 간 일행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 순간 만큼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일행들 간에 확실하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일단은 크게 긴박한 위험이 없기 때문에 조금씩 쉬어가면서 올라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결정을 하도록 하는 쪽이었다. 일행 중에 리더라고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들 이런 높은 산의 등상은 처음인 사람들이었을 뿐더러, 누군가가 고산병 같은 문제를 안게될 줄 이라고는 예상도 못했고, 그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알아놓은 지식이 없는 상태였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우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계속 조금씩 올라가기만 했다. 문에게 '네 몸은 네가 잘 아니까, 네가 생각해서 안 될 것 같으면 꼭 얘기해' 라고는 말했지만..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비가 내리는 한 밤 중의 후지산이었고, 내려가는게 올라가는 것보다 힘든 등산로에 서있었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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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7고메(약 2,700미터)를 지나고 있었다. 새벽 1시 정도였다. 여전히 문의 상태는 안 좋았지만, 중간 중간 쉬면서 가지고 온 산소를 마셔줄 때마다 잠깐 괜찮아지기는 했다.
등산을 시작할 때부터 내린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세졌다. 60도 가까이 경사진 화산재길과 돌길을 올라가다 보니 비가 얼굴에 맞부딪쳤다. 안경을 껴서 다행이었지 안경이 없었더라면 눈을 못 뜰 정도였다. 비 뿐만이 아니라 바람도 갈수록 세졌다. 거세진 바람 탓에 위에 걸치고 있던 우의도 찢어지고 말았다. 폭풍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조금만 올라가도 기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걸 체감할 수 있었다.
7고메에서 8고메까지 가는 길은 정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옷이 모두 젖은 상태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체온을 뺏기고 있었다. 운동화도 이미 처음부터 홀딱 젖었다. 한번은 돌길을 올라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나는 호흡이 곤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추위였다. 한 여름인데도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남들은 다 가져온 장갑을 혼자만 가지고 오지 않아서 손에 차츰 감각이 없어졌다. 긴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모두 젖은 소매 때문에 팔의 체온이 계속 내려가면서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올라갔다. 아니 계속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추위에 떨면서 야간 산행을 하다보니 여러가지 생각과 함께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조차도 이렇게 추위에 벌벌 떨면서 훈련했던 적은 없는데..왜 야간 산행을 하려고 했던걸까, 평범하게 낮에 올랐으면 좋았을걸.. 왜 하필 오늘 내가 후지산에 온 날 비가 억수록 쏟아지는걸까..아니 왜 후지산에 왔을까..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을 시간인데 지금, 이 시간에 무얼하고 있는걸까.' 나는 그렇다 치고 몸이 너무 안좋아서 고생하고 있는 문에게도 너무도 미안했다. 애초에 오카다상과 내가 후지산 산행을 결정한 다음 문과 준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8고메에 도달했다. 8고메의 첫 산장인 타이시칸(太子館)을 지나고 두번째 산장인 호라이칸(蓬莱館- 3,150미터)에서 조금 오랜시간 휴식을 취했다. 호라이칸에서 400엔짜리 옥수수스프를 사서 마셨더니 아주 조금 얼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문과 준은 코코아를 마셨다. 조금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난 더 이상 못 갈 것 같아. 온 몸에 오한이 들려서 더 이상 올라가면 정말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 문이 말했다. 문은 그 곳에서 조금 더 기다린 뒤 비가 조금 그치고 날씨가 괜찮아지면 올라가고, 날씨가 좋아지지 않으면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린 뒤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정상에 너무도 가고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있는 곳이 3,150미터니까 앞으로 정상까지는 600미터가 남았다. (600미터라고 해도 올라가는데는 2시간 반이 걸린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지금도 이미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는데 앞으로 세시간 가까이 더 올라가야 할 걸 생각하면 끔찍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히는 생각은 역시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돌아가는건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내가 한 선택은 올라가는 것이었다. 너무도 미안했지만 오카다상에게 문을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준도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둘이서 올라가기로 했다. "내일 집합 장소인 고고메에서 집합 시간에 만나기로 해요. 정말 미안해요.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문을 부탁할게요." 오카다상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준과 함께 호라이칸을 떠났다.
# 최대의 갈림길
준과 함께 호라이칸을 벗어나자마자 엄청난 비탈길이 이어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도 여전했다. 그리고 추위는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몸상태가 분명 아까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호라이칸에 도착하기 전까지 엄청 춥다고 느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온몸이 사정없이 떨리는 것이었다. 오한이 든 것이다. 준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체온을 갈수록 뺏기고 있는 것 같았다. 호라이칸에서 너무 오래쉬었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쉰 탓에 몸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추위에 적응해서 괜찮아질 거라고 자위를 했지만 너무도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준과 둘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앞쪽에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내려오는 걸 보였다. "준, 저 사람들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건가? 좀 내려오기엔 이른 시각이지 않나?" "글쎄.." 결국 무리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지금 내려오고 있는 분들은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건가요?"
"아니요. 정상까지 못가고 하산하는거에요. 위쪽의 비바람이 너무 거세서 올라갈 수 없어요. 너무 위험해요."
절망의 순간이었다. 최대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정상까지 너무도 가고 싶어서 같이 온 일행들 마저 뒤로 한채 계속 오르기고 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날씨 탓에 등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니...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고 내려가는 앞으로의 산행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험한 산은 첫 경험인 내가'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하산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마음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준과 나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말 없이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어쩔 수가 없겠지? 우리도 따라 내려갈까?" 라고 준에게 말을 건네는데 가슴이 너무 아픈 것이다.
내려갈 때는 준이 앞장 서서 걸었고, 내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올라갈 길을 뒤로 한채 내려가는데 눈물이 막 났다. 주위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주 깜깜한 후지산에서 울면서 하산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운 것이다. 그 눈물은 등산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이제 살았구나'라는 것에 대한 안도의 눈물이기도 했다고 인정한다. 나의 의지를 꺾지 않고 그대로 올라 갔더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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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포기'라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에 대한 차선책이 있을 뿐이지 포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에서는 올라가거나 아님 내려가거나 두가지의 길만 있었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가장 포기라고 말할 만한 포기였다.
호라이칸에서 다시 돌아와서 오카다상과 문을 다시 만났다.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온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 때 시각은 새벽 4시. 산행 5시간 반만에 우린 더 이상 오르는 것을 그만두고 호라이칸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뭘하면서 기다렸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우리 4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최대한 끌어안고서는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5시가 되고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밤에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시간동안 포기에 대한 엄청난 아쉬움과 분노의 감정은 조금씩 사그러졌다. 계속 가지고 있어봐야 자신에게 좋을게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해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번 산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떠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날이 거의 밝아지자 힘을 잃었던 우리 넷은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문도 하산할 때는 컨디션이 좋아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산하는 길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정상을 밟지 못하고 내려가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기분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해발 3,000미터 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날씨가 너무 안좋아서 사진을 못찍었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모두 사진기를 꺼내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아침 8시가 되어서 출발 지점인 5고메에 도착했다. 약 10시간 동안 후지산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우리들이었다. 물론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했으니 그 사투에서 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까 이겼다고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후지산을 올라본 사람으로서, 후지산은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온통 화산재와 자갈과 돌덩이로만 뒤덮여 있는 산이다. 엽서 속의 후지산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데 실제로 가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후지산에 갔다오고나서야 작년에 등산했던 한라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산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라산은 엽서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가보는게 훨씬 좋은 산이다.
아름다운 건 실제의 사물보다는 인간의 기억이다. 후지산에 다녀온지 이틀이 지난 지금 악몽 같았던 그 날 밤이 벌써 추억이 되었다. 오카다, 문, 준과 함께 만날 때마다 정말 꿈을 꾼 것만 같다고 말한다. 그 어둠과 추위 속에서 고생을 하고 왔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이미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움'의 의미가 조금 다를지라도)
자연 앞의 인간은 너무도 하찮은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살면서 그 사실을 이토록 뼈저리게 느낀 건 처음이다. 후지산은 원래 그 곳에 있었는데 내가 후지산에 오른 것 뿐이다. 그 날의 날씨에 대해 아무리 불평을 해대봤자 자연은 자연이다.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를 열번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메시지를 받는 것보다 후지산에 한 번 올라보는 것이 자연을 느끼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여름에 그토록 추위를 느꼈던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여름의 뜨거운 날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러니 남은 여름의 뜨거움을 더욱 더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하룻 밤을 보내면서 본인 스스로도 성장을 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 성장의 기억을 잊지 않고 소중히 하기 위해 이 곳에 글을 쓰고 있다. 높고 높았던 후지산을 기억하기 위해.
후지산에 있을 때 이런 산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카다상에게 말했다.
"오카다상, 언젠가 꼭 다시 올라가보고 싶네요. 다음엔 꼭 정상까지."
2010년 여름의 후지산 등반,
생전 처음 도전하는 높은 산에서
고산병으로 고생도 하고
폭풍우와 추위로 고생을 하면서
새삼 자연의 두려움을 알고
비록 정상을 밟지는 못했지만
함께 했던 10시간의 사투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고
귀중한 배움이 되었겠지.
그러니 모두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힘든 일을 만날 때면
그 날 밤을 기억하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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