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고
고통 받아야 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 -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
좋아하는 사람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
어제는 늦은 밤까지 카톡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열한시 반부터 거의 두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토록 인간관계(가족, 사랑, 우정 등등) 때문에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실 인간관계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더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스무살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나 나름대로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정한 것 같다. 어젯밤에는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다. 길고 긴 대화의 끝에서 우리가 내렸던 결론은 더욱 순수하게 살아가자라는 거였다. 더욱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토록 인간관계(가족, 사랑, 우정 등등) 때문에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실 인간관계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더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스무살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나 나름대로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정한 것 같다. 어젯밤에는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다. 길고 긴 대화의 끝에서 우리가 내렸던 결론은 더욱 순수하게 살아가자라는 거였다. 더욱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살아서 그 사람을 한 번 더 기억하는 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가 시작됐다는 사실 자체가 왜 이렇게 가슴 벅찬지 모르겠다. 나에게 2012년은 정말 소중한 한 해였다. 많은 인생의 전환점에 놓여져 있었다고 생각되는 한 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힘들게나마 그 신념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나의 앞 날을 상상해보고, 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한 해였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2012년은 아마 평생 기억될 한 해 일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처음으로 종로의 보신각에 가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TV에서 보던 제야의 종이란게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그렇게 특별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끼리 더 환호성을 지르면서 모르는 사람끼리 껴안기도 하고 모두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즐길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은 아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많이들 그러던데 하하) 그냥 같이 온 사람들끼리 새해인사를 주고 받거나, 연인들끼리 껴안기만 하는 모습뿐이었다. 조금 더 함께 웃으면서 즐거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할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오늘 도서관을 나서면서 2012년의 마지막 도서관이구나,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 2012년의 마지막 저녁이구나.. 등등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한송이 꽃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때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도 2012년의 마지막 포스팅인 것처럼 (시간상으로는 이미 2013년이 되었지만)
참 감사할 사람이 많은 한 해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우리 가족, 국제도우미 친구들, HRD친구들, 뉴프론티어 친구들, 건금연 친구들
그리고 외국에 있는 많은 친구들, 좋은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들 등등
어떻게 일일이 열거하면서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마는 내가 더 열심히 살아서 그 사람을 한 번 더 기억하고, 더 연락하는게 감사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새해엔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이젠 정말 대학생도 끝이니. 앞으로의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자신감 하나만은 잃지말자. 내가 원하는 삶을 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새해엔 늘 더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자. 2013년엔 어떤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될까. 2012년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처음으로 종로의 보신각에 가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TV에서 보던 제야의 종이란게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그렇게 특별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끼리 더 환호성을 지르면서 모르는 사람끼리 껴안기도 하고 모두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즐길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은 아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많이들 그러던데 하하) 그냥 같이 온 사람들끼리 새해인사를 주고 받거나, 연인들끼리 껴안기만 하는 모습뿐이었다. 조금 더 함께 웃으면서 즐거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할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오늘 도서관을 나서면서 2012년의 마지막 도서관이구나,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 2012년의 마지막 저녁이구나.. 등등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한송이 꽃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때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도 2012년의 마지막 포스팅인 것처럼 (시간상으로는 이미 2013년이 되었지만)
참 감사할 사람이 많은 한 해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우리 가족, 국제도우미 친구들, HRD친구들, 뉴프론티어 친구들, 건금연 친구들
그리고 외국에 있는 많은 친구들, 좋은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들 등등
어떻게 일일이 열거하면서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마는 내가 더 열심히 살아서 그 사람을 한 번 더 기억하고, 더 연락하는게 감사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새해엔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이젠 정말 대학생도 끝이니. 앞으로의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자신감 하나만은 잃지말자. 내가 원하는 삶을 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새해엔 늘 더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자. 2013년엔 어떤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될까. 2012년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고, 그대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다
같은 길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문득 그 길에 대한 의문을 제기 받았는데 그것은 약간의 실망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처음부터 같은 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싶다고 나 혼자 믿고 싶은 것이었나 보다.
사람의 삶은 다양한 법이며 그 다양성이 존중되었을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믿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그의 길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의 길에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존중하고자 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이 흐르고나서 '내가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이었다'라는 식의 경쟁은 정말 의미없다.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고, 그대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다.
사람의 삶은 다양한 법이며 그 다양성이 존중되었을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믿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그의 길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의 길에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존중하고자 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이 흐르고나서 '내가 걸어온 길이 옳은 길이었다'라는 식의 경쟁은 정말 의미없다.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고, 그대가 걸어가고 싶은 길도 옳다.
상생의 길을 열다
<리더십과 동양고전 >에세이
경영학과에서는 팀프로젝트를 자주 수행한다. 예전엔 팀프로젝트를 하면 능력 있는 조원들 속에서 묻어가곤 했지만 어느덧 나도 고학년이 되고서 조장을 맡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리더십을 발휘해서 팀을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팀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조원들 모두가 좋은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고, 그 성과라는 것은 좋은 학점이다. 같은 팀이 되었으므로 팀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한 사람이 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나오도록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영학과에서 수많은 팀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언제나 100%의 시너지를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다. 팀원 개개인의 능력은 모두 제각각 이었고, 팀프로젝트에 대한 관여도 또한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는 반드시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반면, 누군가는 굳이 좋은 학점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팀원들간에는 보이지는 않는 벽이 만들어지고 결국 소수의 사람이 팀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구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대개 팀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팀원 모두가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같은 점수를 공유하게 된다. 만약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을 때, 과정에 있어서 불공평함은 있었지만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었으므로 이것은 상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오는 과정에서 편법과 반칙이 있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지상주의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작용해왔다.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편법과 반칙이 용인되다 보니 그로 인해 균등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정당한 몫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럼 과연 우린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까.
상생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상생의 길이란 함께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밟고 지나감에 따라 우리의 발자취가 그려지는 곳이며, 그것은 우리가 걸어 온 과거이자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미래이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것이다.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발걸음은 빠르고 누구의 발걸음은 느리기 때문이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은 뛰어난 반면, 다른 한 사람의 능력은 뒤쳐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을 가진 아이가 있는 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있는 것과 같다. 대기업은 좋은 물건을 개발해서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부족한 물적, 인적 자원으로 인해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조직은 다르기 때문에 함께 걸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정말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모두가 내일을 향해 걸어갈 때 항상 같은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한다기 보다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항상 잘 따라갔다. 초등학교 2학년, 구구단을 외울 때도 나는 반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잘 외웠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구구단을 쉽게 외우지 못해서 쩔쩔맸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구구단을 외웠던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구구단을 왜 외우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반의 담임선생님께서는 반에서 구구단을 잘 외우는 친구들과 외우지 못하는 친구들로 나눠 서로 짝을 만들어주셨다. 잘 외우는 친구들이 한 사람씩 맡아서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이 친구들을 알려줄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이 들었다. 나도 특별한 요령 없이 반복을 통해 외우기만 한 것뿐이었으므로 그걸 내 짝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정말 난감했다. 실제로 나는 가르치는 걸 무척 어려워했고 결국 내 짝이 내 생각대로 쉽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자 난 어린 나이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때 정말 내 짝에게 구구단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 내 짝은 힘을 합쳐 열심히 외웠다. 결국 내 짝은 구구단을 모두 외우게 되었고,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의 우리들은 그렇게 상생의 길을 걸었다.
상생의 길을 걷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위해서 보폭을 좁히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친구가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거나 등을 밀어주는 방법이다. 보폭을 좁혀서 걷는 것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고,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린 세상을 더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간다. 따뜻한 세상이란 사랑이 있는 세상이다. 서양에서는 예수가 사랑을 말했고, 동양에서는 공자가 ‘인仁’으로서 사랑을 말했다.
공자는 인仁이란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원칙이고 구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공손함, 관용, 신뢰, 영민, 은혜, 존경, 충성 등의 덕목을 실천하는 것으써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 인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인으로써 정치를 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라는 맹자의 인정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유학에서는 상생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으로서 수신을 강조한다.
인생은 무대와도 같다. 사람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많은 관계들을 형성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지 않으면 관계들이 삐거덕거릴 것이다. 특히 천인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자연의 관계, 혹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 심신의 관계라고 할 수 잇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 간의 관계 등을 잘 맺어야 한다. 수신을 통해 이 세가지 관계가 바르게 서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자왈 VS 예수가라사대)
유교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갈고 닦는 것(修身養性)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지도자와 기업가도 사회와 기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서로 더불어 잘살 수 있을 때에만 사회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점이다.
나아가 서로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공자는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을 말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러한 황금률은 유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중요한 교리로서 존재한다.
위의 교리들은 우리가 상생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로서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수시로 잊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곧잘 드러난다. 아직까지도 우리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너무 쉽게 던져버리지만 쓰레기를 줍는 것은 어려워한다. 자신이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을 경쟁에서 밀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존중 받기 원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너무도 쉽게 무시해버린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황금률 깨트리기 행동은 늘 미묘하게 작용한다. 어려운 역할은 조심이 피해가서 자신은 좀 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길 원한다. 그렇게 모두가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서 공동 결과물의 좋은 성과를 원하다 보니 기대보다 낮은 결과를 접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쉽게 깨어지고 있고, 결과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이야기 하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에서의 황금률이라는 것은 상호간에 지켜졌을 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상대방이 그러한 나의 모습을 알아주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모습이다. 팀프로젝트에서 남이 맡기 꺼려하는 것을 솔선수범으로 맡아서 하려 한다면, 모두가 자신이 그런 모습을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더 나은 미래와 화합을 위해서 즐겁게 일을 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상생의 길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은 남아있다. 길이라는 것은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남자와 여자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1%와 99%의 갈등, 사회 양극화, 등 소통 부재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이 시기야말로 상생의 길을 열어나갈 때다. 또 상생의 길을 앞장서서 열어나갈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우린 또한 우리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상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공정의 잣대를 먼저 갖다 대고, 주위의 약자를 위해 손을 내밀어 주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연을 소중히 하면서 우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진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가정, 학교, 국가, 전세계, 모든 자연과 우주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의 길을 걸어나갈 때 우린 더욱 따뜻해진다. 강과 바다가 둘이 아니고, 산과 들이 둘이 아니듯, 인간과 세계가 둘이 아니며 너와 나도 둘이 아니다. 우린 모두 하나로서 함께 살아간다.
상생의 길을 열다
우린 모두 하나로서 함께 살아간다
김선일
경영학과에서는 팀프로젝트를 자주 수행한다. 예전엔 팀프로젝트를 하면 능력 있는 조원들 속에서 묻어가곤 했지만 어느덧 나도 고학년이 되고서 조장을 맡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리더십을 발휘해서 팀을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팀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조원들 모두가 좋은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고, 그 성과라는 것은 좋은 학점이다. 같은 팀이 되었으므로 팀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한 사람이 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나오도록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영학과에서 수많은 팀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언제나 100%의 시너지를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다. 팀원 개개인의 능력은 모두 제각각 이었고, 팀프로젝트에 대한 관여도 또한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는 반드시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반면, 누군가는 굳이 좋은 학점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팀원들간에는 보이지는 않는 벽이 만들어지고 결국 소수의 사람이 팀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구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대개 팀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팀원 모두가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같은 점수를 공유하게 된다. 만약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을 때, 과정에 있어서 불공평함은 있었지만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었으므로 이것은 상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오는 과정에서 편법과 반칙이 있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지상주의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작용해왔다.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편법과 반칙이 용인되다 보니 그로 인해 균등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정당한 몫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럼 과연 우린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까.
상생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상생의 길이란 함께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밟고 지나감에 따라 우리의 발자취가 그려지는 곳이며, 그것은 우리가 걸어 온 과거이자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미래이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것이다.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발걸음은 빠르고 누구의 발걸음은 느리기 때문이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은 뛰어난 반면, 다른 한 사람의 능력은 뒤쳐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을 가진 아이가 있는 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있는 것과 같다. 대기업은 좋은 물건을 개발해서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부족한 물적, 인적 자원으로 인해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조직은 다르기 때문에 함께 걸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정말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모두가 내일을 향해 걸어갈 때 항상 같은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한다기 보다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항상 잘 따라갔다. 초등학교 2학년, 구구단을 외울 때도 나는 반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잘 외웠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구구단을 쉽게 외우지 못해서 쩔쩔맸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구구단을 외웠던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구구단을 왜 외우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반의 담임선생님께서는 반에서 구구단을 잘 외우는 친구들과 외우지 못하는 친구들로 나눠 서로 짝을 만들어주셨다. 잘 외우는 친구들이 한 사람씩 맡아서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이 친구들을 알려줄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이 들었다. 나도 특별한 요령 없이 반복을 통해 외우기만 한 것뿐이었으므로 그걸 내 짝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정말 난감했다. 실제로 나는 가르치는 걸 무척 어려워했고 결국 내 짝이 내 생각대로 쉽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자 난 어린 나이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때 정말 내 짝에게 구구단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 내 짝은 힘을 합쳐 열심히 외웠다. 결국 내 짝은 구구단을 모두 외우게 되었고,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의 우리들은 그렇게 상생의 길을 걸었다.
상생의 길을 걷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위해서 보폭을 좁히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친구가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거나 등을 밀어주는 방법이다. 보폭을 좁혀서 걷는 것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고,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린 세상을 더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간다. 따뜻한 세상이란 사랑이 있는 세상이다. 서양에서는 예수가 사랑을 말했고, 동양에서는 공자가 ‘인仁’으로서 사랑을 말했다.
공자는 인仁이란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원칙이고 구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공손함, 관용, 신뢰, 영민, 은혜, 존경, 충성 등의 덕목을 실천하는 것으써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 인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인으로써 정치를 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라는 맹자의 인정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유학에서는 상생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으로서 수신을 강조한다.
인생은 무대와도 같다. 사람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많은 관계들을 형성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지 않으면 관계들이 삐거덕거릴 것이다. 특히 천인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자연의 관계, 혹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 심신의 관계라고 할 수 잇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 간의 관계 등을 잘 맺어야 한다. 수신을 통해 이 세가지 관계가 바르게 서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자왈 VS 예수가라사대)
유교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갈고 닦는 것(修身養性)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지도자와 기업가도 사회와 기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서로 더불어 잘살 수 있을 때에만 사회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점이다.
나아가 서로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공자는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을 말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러한 황금률은 유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중요한 교리로서 존재한다.
스스로 즐겁고 기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불교)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당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마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독교)
위의 교리들은 우리가 상생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로서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수시로 잊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곧잘 드러난다. 아직까지도 우리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너무 쉽게 던져버리지만 쓰레기를 줍는 것은 어려워한다. 자신이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을 경쟁에서 밀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존중 받기 원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너무도 쉽게 무시해버린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황금률 깨트리기 행동은 늘 미묘하게 작용한다. 어려운 역할은 조심이 피해가서 자신은 좀 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길 원한다. 그렇게 모두가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서 공동 결과물의 좋은 성과를 원하다 보니 기대보다 낮은 결과를 접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쉽게 깨어지고 있고, 결과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이야기 하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에서의 황금률이라는 것은 상호간에 지켜졌을 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상대방이 그러한 나의 모습을 알아주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모습이다. 팀프로젝트에서 남이 맡기 꺼려하는 것을 솔선수범으로 맡아서 하려 한다면, 모두가 자신이 그런 모습을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더 나은 미래와 화합을 위해서 즐겁게 일을 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상생의 길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은 남아있다. 길이라는 것은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남자와 여자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1%와 99%의 갈등, 사회 양극화, 등 소통 부재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이 시기야말로 상생의 길을 열어나갈 때다. 또 상생의 길을 앞장서서 열어나갈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은 즐거워하면 백성들 또한 윗사람의 즐거워함을 함께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들 또한 그 윗사람의 근심을 함께 걱정한다. 천하가 다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가 다같이 근심하는 것을 함께 걱정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할 사람이란 없다. (맹자, 양혜왕하)
우린 또한 우리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상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공정의 잣대를 먼저 갖다 대고, 주위의 약자를 위해 손을 내밀어 주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연을 소중히 하면서 우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진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가정, 학교, 국가, 전세계, 모든 자연과 우주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의 길을 걸어나갈 때 우린 더욱 따뜻해진다. 강과 바다가 둘이 아니고, 산과 들이 둘이 아니듯, 인간과 세계가 둘이 아니며 너와 나도 둘이 아니다. 우린 모두 하나로서 함께 살아간다.
「공자왈 VS 예수 가라사대」 차이더구이 지음, 知와사랑
2012년 6월 4일
누군가가 우릴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는다면
제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저의 지금 모습이 만들어졌듯이 저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화를 많이 보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잘 산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영화라는 힘을 통해서 조금 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나중엔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린 친구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감명깊게 본 영화를 어린 친구들도 보고서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의 영화를 같이 보고서 그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깜깜한 영화관에 앉아있는 우리들이 스크린에 눈을 집중하고 스피커에 귀를 집중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같이 움직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 움직임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린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따뜻하지만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온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온기를 지닌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햇살의 따뜻함, 어머니 품안의 따뜻함, 아버지 손길의 따뜻함, 마주잡은 두 손의 따뜻함, 난로와 온돌의 따뜻함, 생일케익 위 촛불의 따뜻함 , 우리 몸의 따뜻함, 캔커피의 따뜻함. 차가움은 따뜻함이 식어버린 모습이지만 우린 늘 차가움 속에 들어있는 따뜻함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햇살의 따뜻함으로 인해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우린 상대방의 따뜻함으로 인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릴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는다면,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따뜻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겠죠.
'상생의 길을 열다'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네요, 이 새벽에.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들 역시 따뜻함입니다.
저도 감동을 주는 영화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 같이 잘 산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영화라는 힘을 통해서 조금 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나중엔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린 친구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감명깊게 본 영화를 어린 친구들도 보고서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의 영화를 같이 보고서 그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깜깜한 영화관에 앉아있는 우리들이 스크린에 눈을 집중하고 스피커에 귀를 집중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같이 움직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 움직임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린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따뜻하지만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온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온기를 지닌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햇살의 따뜻함, 어머니 품안의 따뜻함, 아버지 손길의 따뜻함, 마주잡은 두 손의 따뜻함, 난로와 온돌의 따뜻함, 생일케익 위 촛불의 따뜻함 , 우리 몸의 따뜻함, 캔커피의 따뜻함. 차가움은 따뜻함이 식어버린 모습이지만 우린 늘 차가움 속에 들어있는 따뜻함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햇살의 따뜻함으로 인해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우린 상대방의 따뜻함으로 인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릴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는다면,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따뜻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겠죠.
'상생의 길을 열다'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네요, 이 새벽에.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들 역시 따뜻함입니다.
저도 감동을 주는 영화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가끔은 그걸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부 자체만 바라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요새 과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한테 민감하게 굴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그래서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어제는 도서관에 있었는데 친한 형과 동생이 도서관까지 찾아와서 위로를 해주고 힘을 줬다.
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다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건데, 내 가족들을 위해, 내 친구들을 위해서, 하지만 가끔은 그걸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부 자체만 바라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을 위하는 공부를 한답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그런 모습이야 말로 위선이다.
조금 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한번 하나하나 밟아나가자.
2012년 6월 3일
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다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건데, 내 가족들을 위해, 내 친구들을 위해서, 하지만 가끔은 그걸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부 자체만 바라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을 위하는 공부를 한답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그런 모습이야 말로 위선이다.
조금 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한번 하나하나 밟아나가자.
2012년 6월 3일
누군가의 특별함이 빛 바랬을 때, 그 순간이 그 사람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때가 아닐까
모두들 그렇겠지만, 제 주위에도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한 친구가 묻더군요. 왜 그 사람이 특별한것 같냐고.
그 대답에 쉽게 대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답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그 사람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오늘도 특별한 사람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동안,
특별한 사람들이 부른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특별한 사람으로서 남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여전히 오래도록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특별함이 빛 바랬을 때,
어쩌면 그 순간이 그 사람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때가 아닐까요.
깊어가는 가을밤에 몇 자 적어봅니다.
모두들 내일 하루도 즐거운 가을 보내시길.
2013년 10월 2일
얼마전에 한 친구가 묻더군요. 왜 그 사람이 특별한것 같냐고.
그 대답에 쉽게 대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답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그 사람에게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오늘도 특별한 사람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동안,
특별한 사람들이 부른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특별한 사람으로서 남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여전히 오래도록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특별함이 빛 바랬을 때,
어쩌면 그 순간이 그 사람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때가 아닐까요.
깊어가는 가을밤에 몇 자 적어봅니다.
모두들 내일 하루도 즐거운 가을 보내시길.
2013년 10월 2일
잘 따라주는 팀원들이 있는게 눈물나게 고맙다
요새 나의 화두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이지만 근래 들어 나의 리더십이 테스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리더십이란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건 해군에서 복무했을 때 부터이다. 생활반을 다스렸던 생활반장, 그리고 사무실의 과장, 그리고 우리 부대의 대장과 함대의 사령관.
어떤 사람이 리더를 맡느냐에 따라서 그 아래 모든 사람의 생활이 달라지는 걸 크게 실감하였다. 내가 생활반장이 됐을 때는 내가 원하는 생활반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기도 했다. 작년 대학에 복학하고나서 나름 고학년의 위치에 있다보니 팀프로젝트를 하더라도 팀장의 역할을 맡는게 보통이 되어버렸다. 어쩔 땐 역량이 뛰어난 팀원들을 만나서 정말 즐겁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반면, 어쩔 때는 팀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적은 팀원들이 많아서 소수의 사람들이 희생하는 팀이 있다. 작년 부터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이번 학기에는 '리더십과 동양고전'이란 과목도 수강하고 있는 중이다.
리더가 되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아직까진 대학교 수업의 팀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것에 머물고 있지만 좀 더 큰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도전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위치다.“리더십은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당장 이번 주말에 또 나의 리더십을 테스트받는 일이 두 개나 주어졌다.
나는 어떻게 이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잘 따라주는 팀원들이 있는게 눈물나게 고맙다.
리더십이란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건 해군에서 복무했을 때 부터이다. 생활반을 다스렸던 생활반장, 그리고 사무실의 과장, 그리고 우리 부대의 대장과 함대의 사령관.
어떤 사람이 리더를 맡느냐에 따라서 그 아래 모든 사람의 생활이 달라지는 걸 크게 실감하였다. 내가 생활반장이 됐을 때는 내가 원하는 생활반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기도 했다. 작년 대학에 복학하고나서 나름 고학년의 위치에 있다보니 팀프로젝트를 하더라도 팀장의 역할을 맡는게 보통이 되어버렸다. 어쩔 땐 역량이 뛰어난 팀원들을 만나서 정말 즐겁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반면, 어쩔 때는 팀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적은 팀원들이 많아서 소수의 사람들이 희생하는 팀이 있다. 작년 부터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이번 학기에는 '리더십과 동양고전'이란 과목도 수강하고 있는 중이다.
리더가 되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아직까진 대학교 수업의 팀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것에 머물고 있지만 좀 더 큰 조직의 리더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도전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위치다.“리더십은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당장 이번 주말에 또 나의 리더십을 테스트받는 일이 두 개나 주어졌다.
나는 어떻게 이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잘 따라주는 팀원들이 있는게 눈물나게 고맙다.
주위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야겠다는 마음
주소록 정리
주소록 정리를 언젠가부터 꼭 한 번 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하게 되었다. 정리하고나니 정말 깔끔하고 좋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걸 보고 저장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더 자주하고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딱 한 번만 보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그뒤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사람들은 '스쳐간 인연'이란 그룹에 넣었고, 그동안 너무 연락을 안해서 연락하기가 어색해진 사람들도 그 그룹에 넣었다. '스쳐간 인연'도 소중한 인연이지만, 그 폴더의 번호가 더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주위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야겠다는 마음이다.
2012년 4월 10일
주소록 정리를 언젠가부터 꼭 한 번 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하게 되었다. 정리하고나니 정말 깔끔하고 좋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걸 보고 저장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더 자주하고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딱 한 번만 보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그뒤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사람들은 '스쳐간 인연'이란 그룹에 넣었고, 그동안 너무 연락을 안해서 연락하기가 어색해진 사람들도 그 그룹에 넣었다. '스쳐간 인연'도 소중한 인연이지만, 그 폴더의 번호가 더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주위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야겠다는 마음이다.
2012년 4월 10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
2012년 3월 18일(일)
인연에 대한 예찬
특별한 만남을 가진 일요일이었다.
모든 만남이 특별하지만 이번 일요일의 만남을 정말 특별했다.
18일(일)에는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이 있었다. 서울마라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다름아닌 일본 친구들이었다. 도쿄에 살고있는 친구 이토우상이 한 달 전에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유헤이상과 함께 서울마라톤에 나가게 되었는데 괜찮으면 서울 마라톤이 끝나고 나서 만날 수 있겠냐고.
한 달 전에 그 소리를 들었을 때도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자국에도 마라톤이 꽤 많이 열릴텐데 이웃나라의 마라톤에 참가하려고 하다니..게다가 이토우상은 한국에 오는 것은 처음인데 처음 오는 것이 마라톤을 달리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유헤이상이야 내가 일본에 살았을 때 워낙 많은 도움을 준 일본 친구고, 한국에서 만나는 것만 벌써 두번째다.
사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세계 4대 마라톤대회로 불리는 뉴욕, 런던, 보스턴, 로테르담(혹은 베를린) 에 모두 참가해보는 것이다. 물론 도쿄마라톤에도 나가고 싶다. 물론 그전에 국내 3대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대회에 참가하는게 우선일 듯 싶다. 늘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직접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있다.
유헤이상은 마라톤이 있던 저녁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은 모두 16명이다.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다. 도쿄 에도야소우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 날 마라톤에 참가했던 일본인들. 재밌는 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재밌는 인연의 끈으로 얽히고 얽힌 사람들이었다.
이토우상이 4년 전에 태국 여행 할 때 알게된 나오미상의 남자친구의 친구 겐상.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믹시로 알게된 와타나베상.
또 그친구들의 친구. 타베다상, 스기모토상.
유헤이상의 친구 아베상.
에도야 소우에 살았던 나, 보람이, 미순이, 주영이. 그리고 우리가 나간 다음에 살았던 스미레상, 나짱.
유헤이상과 이토우상을 중심으로 엮이고 엮여진 사람들의 모임이긴 했지만 둘 조차도 이날 처음 본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재밌게 이어나간다. 이 날 주영이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같이 즐거워하며 나중에 서로 연락하자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의 존재를 금방 잊어버리잖아. 하지만 4년 전 태국에서 만난 사람의 남자친구의 친구와 함께 마라톤을 나와서 우리에게까지 그 인연의 끈이 닿는 게 너무 신기해.소방관이라고 했던 타베다상, 의학부에 재학 중인 스기모토상 ,, 일본에서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을 한국에서 만나다니."
이렇게 신기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이날의 만남을 이어가는 건 나도 아니고 상대방도 아니고 바로 우리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만나 남은 시간동안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인생을 듣고, 서로의 인생에 감탄하고, 감탄스러운 인생을 인연의 끈으로 엮는다.
이 날 모임의 주최자와 다름없었던 유헤이상과 이토우상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다시 한번 소중하고 즐거운 게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인연에 대한 예찬
특별한 만남을 가진 일요일이었다.
모든 만남이 특별하지만 이번 일요일의 만남을 정말 특별했다.
18일(일)에는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이 있었다. 서울마라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다름아닌 일본 친구들이었다. 도쿄에 살고있는 친구 이토우상이 한 달 전에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유헤이상과 함께 서울마라톤에 나가게 되었는데 괜찮으면 서울 마라톤이 끝나고 나서 만날 수 있겠냐고.
한 달 전에 그 소리를 들었을 때도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자국에도 마라톤이 꽤 많이 열릴텐데 이웃나라의 마라톤에 참가하려고 하다니..게다가 이토우상은 한국에 오는 것은 처음인데 처음 오는 것이 마라톤을 달리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유헤이상이야 내가 일본에 살았을 때 워낙 많은 도움을 준 일본 친구고, 한국에서 만나는 것만 벌써 두번째다.
사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세계 4대 마라톤대회로 불리는 뉴욕, 런던, 보스턴, 로테르담(혹은 베를린) 에 모두 참가해보는 것이다. 물론 도쿄마라톤에도 나가고 싶다. 물론 그전에 국내 3대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대회에 참가하는게 우선일 듯 싶다. 늘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직접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있다.
유헤이상은 마라톤이 있던 저녁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은 모두 16명이다.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였다. 도쿄 에도야소우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 날 마라톤에 참가했던 일본인들. 재밌는 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재밌는 인연의 끈으로 얽히고 얽힌 사람들이었다.
이토우상이 4년 전에 태국 여행 할 때 알게된 나오미상의 남자친구의 친구 겐상.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믹시로 알게된 와타나베상.
또 그친구들의 친구. 타베다상, 스기모토상.
유헤이상의 친구 아베상.
에도야 소우에 살았던 나, 보람이, 미순이, 주영이. 그리고 우리가 나간 다음에 살았던 스미레상, 나짱.
유헤이상과 이토우상을 중심으로 엮이고 엮여진 사람들의 모임이긴 했지만 둘 조차도 이날 처음 본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재밌게 이어나간다. 이 날 주영이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같이 즐거워하며 나중에 서로 연락하자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의 존재를 금방 잊어버리잖아. 하지만 4년 전 태국에서 만난 사람의 남자친구의 친구와 함께 마라톤을 나와서 우리에게까지 그 인연의 끈이 닿는 게 너무 신기해.소방관이라고 했던 타베다상, 의학부에 재학 중인 스기모토상 ,, 일본에서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을 한국에서 만나다니."
이렇게 신기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이날의 만남을 이어가는 건 나도 아니고 상대방도 아니고 바로 우리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만나 남은 시간동안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인생을 듣고, 서로의 인생에 감탄하고, 감탄스러운 인생을 인연의 끈으로 엮는다.
이 날 모임의 주최자와 다름없었던 유헤이상과 이토우상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다시 한번 소중하고 즐거운 게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시작해야되는지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글을 이렇게 써내려가기 시작한 다음 이 글이 끝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 글이 끝맺음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글이 써내려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글쓰기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일단은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되는 '이어져 있음'에 관한 것이다. 어제 그러니까 2월 14일 저녁을 기숙사의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하나의 대화 주제를 가지게 된다. 수강신청 기간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라서 모두가 시간표를 만드느라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원래 2학점이었던 '글쓰기'과목이 이번 학기부터는 3학점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져나갔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관찰되어지는 자그만한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실에서 그 친구는 학교 행정 당국의 부족한 공지, 학생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처사, 학생회 역할의 필요성 등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나는 그에 대해서 친구에게 반론아닌 반론같은 성격의 질문을 해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초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3시간 반동안 이어졌고 그러면서 대화의 주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생은 누구인가, 즉 우리들은 누구인가로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현상)과 대상을 받아들일 때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과 사상에 입각하여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것은 곧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힘의 근원이 된다.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진보해 나간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더 건강한 사회다. 다양성을 해치려는 세력마저 또 다른 다양성으로 인정을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다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모두가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면 개개인의 존재 방식은 자꾸 억압받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을 표출하게 된다.
즉, 모든 객관적 현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받아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어제 대화의 핵심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소에 그러한 생각을 쉽게 망각하고 살아간다.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거지?' '어떻게 그 사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등등 우리들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주파수의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다양함' 또한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세력이 '다양한 다양성'보다 더 크다면 정말 '다양성'이 억압받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가 못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친구에게 '나'라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객관적 사실을 접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내가 살아온 날들에 이야기가 되었다. 친구에게 계속 말하면서 처음에 말할 의도가 없었던 나의 과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더라면 전혀 연관성을 가질 수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았을 개인적 역사가 같은 하나의 생각 아래 묶이고 있었다.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작년 대학생활까지 이어져와서 '환경분석론 수업의 교훈','불교철학 교수님의 가르침','인적자원개발론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즐거움'으로 계속되었다.
길고 긴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방에 올라갔고 나는 다시 한번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 시간대에서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뿌리를 두고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 뿌리라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고 그건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동일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애기를 적어보자.
개인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와 고민들은 사실 애초에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내가 요새 가장 문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마지막 대학생활을 앞두고 다가오는 취업 준비를 비롯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민을 안고있다. 난관을 잘 헤쳐나가는 내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1년 동안 나의 모든 미래가 결정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나는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최신 뉴스기사들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 때 우연하게도 나의 병영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모든 병영일기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는 일이 많다.) 나의 군생활 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은 상병과 병장 때의 부분이었는데, 어제는 희한하게도 좀 더 오래 전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삶은 늘 언제나 이런식으로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재생된다.)
그리고 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 당시에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사실들에 대해 지금에서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09년 4월 27일 http://seonil.egloos.com/9967345
"책 한자를 더 읽고,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면의소리는 곧 나의 글로써 표현이 된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도록 하자. 글은 어떻게든 써지는 건가보다. 인생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로 내 인생을 꽉 꽉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게 만든다. 그저 그런 사이의 사람이 부탁했으면 정중히 거절했을 일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탁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더라도 모두 들어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계속해서 사랑하고 볼일이다. 참 골치아픈 인류애다. 사람을 사랑한다니.. 그래서 다들 보고싶다. 당신들과 함께 숨쉬는게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타인의 인정과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걸 잊지말자.
09년 4월 26일 http://seonil.egloos.com/9967342
"깨어있다는 생각. 눈이 깨어있고, 귀가 깨어있고, 그리고 내 정신이 깨어있고. 늘 깨어있자. 세상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자. 살아있음을 느끼자."
09년 4월 23일 http://seonil.egloos.com/9967340
가장 최악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나. 한겨레 신문과 씨네21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는 느낌이다. 그저 나하나만 잘 살자고 살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 내 깊숙이 진보라는게 자리잡았던걸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은 진보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러는 걸까.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이건 인간애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에서 출발하는 그런...
나란 사람 철저히 중간에 서려는 것 같다. 무섭고 잔인한 지성인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모든걸 희생하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야. 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내 마음가는 대로 날 완성해가며, 세상의 모든 존재형태(방식)을 한없이 존중한다. 기형도로서의 삶도 멋지고, 할리데이비슨족들의 삶도 멋있고, 운동선수의 삶도 멋있고,. 그래 된장녀와 된장남의 존재 방식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다름의 인정이다. 완전한 인정이다. 세상에 절대기준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인정은 어디까지나 신념이 존재하는 인간에 한해서다. 자신의 행동과 말과 존재방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만한 신념. 굳이 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고 있어야 된다.
사랑한다. 내 삶과 내 존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살면 살아갈수록 명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멋지게 만들어 갈 것이다.
09년 4월 11일 http://seonil.egloos.com/9936322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글쓰기의 위력을 실감한다. 내가 쓴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당분간은 일기를 온라인에 옮기는데 좀 더 치중하자. 그걸 통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있다. 너무도 재미있다. 내가 썼던 글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나란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은 매우 기쁘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감이 충전된다. 부드럽게 나가자.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
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09년 1월 19일 휴가를 나가서 (3년 전의 내가 쓴 글)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꿈을 꾸는 듯한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일어났다. 전날 밤 인터넷으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종로의 서울극장에 예매를 해놓았다. 형 집에서 9시정도에 빠져나왔다. 날씨가 꽤 따뜻했다. 종로까지는 지하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생각했다.일단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노량진에 거의 도착해서 며칠전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대비강의를 듣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가장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나의 베스트프렌드! 너무 기뻤다. 거의 2년만에 처음 본것이니. 그 동안엔 그 친구의 연락처가 바뀌어서 연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밝았고 의욕도 넘쳐보였다. 우린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핫초코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초스피드로 나누었다. 그친구나 나나 말이 엄청빠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된 이후로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 정신이 없을정도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약 한시간 동안 온갖 주제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시간이 1분 처럼 느껴졌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 모두는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더 성장한 모습에 서로 감탄을 했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등학교 그 때의 모습, 여전히 변하지 않고 너로 남아줘서 고마워!' 대화 속에 오갔던 친구와 나의 고민들이 모두 잘 해결되길 바랄뿐이다.
영화 시작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급히 극장으로 갔다. 역시 오랜만에 가보는 종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고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어제 책을 사기 위해 학교 앞 서점을 갔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 어떤 책을 사야 가장 돈이 아깝지 않고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의 완벽주의나 시간적 효율에 대한 강박증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는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 주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영화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정확히 그것은 아니지만 내가 포착한 것은 그것이다. DVD의 날카로운 화질과 고감도의 음질을 비디오테이프는 절대 따라갈 수 없지만 그런 DVD조차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채워지지 못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든 옛것에 대한 따뜻함이든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든. 세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헛 될수도 있다. 그 영화를 보고서 종로거리로 빠져나왔는데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겨울인데도. 바로 가방안에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가 보고 있는 영상에 배경음악이 흘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완벽한 해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해답에서 좀 비껴나와 인생을 즐기는 태도. 수많은 영화에서 보고 깨달았던 내용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That's why I love movie.
그래서 난 서점으로 갔다. (그래서 난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어제처럼 완벽한 책(완벽한 비디오)만을 찾으려 하지 않을거란 다짐을 했다. 쭉 훑어봤다. 마음이 이끌리는 분야(장르)쪽으로 갔다. 읽고 싶은 책(보고 싶은 비디오)을 집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카운터에가서 책 값을 (비디오 대여료) 계산했다. 서점(비디오 대여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어젠 1시간 넘게 서점에 있었는데도 책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고를 수 있었다. 신중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랐고 그 책에서 인생의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가지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어찌되었든 한 권의 책은 세상을 담고 있고 말이다. 나중에 내가 직업의 선택에서도 이런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완벽한 직장, 연봉도 높고 복리후생도 좋고 일은 어렵지 않고 명예도 가져다주는 직장. 그런 직장을 찾아헤매다가 난 서점에서 처럼 방황만 하다가 서점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눈높이를 낮추라고들 말하지만 눈높이를 낮추어선 안된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꿈을 낮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높이를 낮추다기 보다는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깨야한다는 것이 더 맞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고해서 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고해서 신이내린직장이라 불리는 몇몇 직장들이라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좋은작품을 읽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을 많이주는 기업이라고 해서 나와 맞지않으면 그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선택에 관한 문제)의 답은 나 자신으로 통한다. '완벽'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는대로 즐겁게 가야한다. 영화 한편이 나의 생각을 이렇게 확장시켜줬다.
오랜만에 도심을 걸었다. 종로-청계천- 을지로-시청-남대문시장-서울역까지. 예전에도 한가로운 날이면 자주걸었던 코스다. 길을 걷다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이 보인다.종로와 을지로의 높이 솟은 회사의 빌딩들과 세련된 회사원과 청계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과 들과 남대문시장의 언 손을 녹이는 상인들과 서울역의 노숙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아우르는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편견없이 모든 세상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2009년 1월 19일 군생활 일기, 휴가를 나와서
http://seonil.egloos.com/9901021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시작해야되는지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글을 이렇게 써내려가기 시작한 다음 이 글이 끝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 글이 끝맺음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글이 써내려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글쓰기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일단은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되는 '이어져 있음'에 관한 것이다. 어제 그러니까 2월 14일 저녁을 기숙사의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하나의 대화 주제를 가지게 된다. 수강신청 기간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라서 모두가 시간표를 만드느라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원래 2학점이었던 '글쓰기'과목이 이번 학기부터는 3학점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져나갔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관찰되어지는 자그만한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실에서 그 친구는 학교 행정 당국의 부족한 공지, 학생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처사, 학생회 역할의 필요성 등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나는 그에 대해서 친구에게 반론아닌 반론같은 성격의 질문을 해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초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3시간 반동안 이어졌고 그러면서 대화의 주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생은 누구인가, 즉 우리들은 누구인가로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현상)과 대상을 받아들일 때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과 사상에 입각하여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것은 곧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힘의 근원이 된다.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진보해 나간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더 건강한 사회다. 다양성을 해치려는 세력마저 또 다른 다양성으로 인정을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다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모두가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면 개개인의 존재 방식은 자꾸 억압받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을 표출하게 된다.
즉, 모든 객관적 현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받아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어제 대화의 핵심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소에 그러한 생각을 쉽게 망각하고 살아간다.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거지?' '어떻게 그 사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등등 우리들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주파수의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다양함' 또한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세력이 '다양한 다양성'보다 더 크다면 정말 '다양성'이 억압받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가 못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친구에게 '나'라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객관적 사실을 접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내가 살아온 날들에 이야기가 되었다. 친구에게 계속 말하면서 처음에 말할 의도가 없었던 나의 과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더라면 전혀 연관성을 가질 수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았을 개인적 역사가 같은 하나의 생각 아래 묶이고 있었다.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작년 대학생활까지 이어져와서 '환경분석론 수업의 교훈','불교철학 교수님의 가르침','인적자원개발론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즐거움'으로 계속되었다.
길고 긴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방에 올라갔고 나는 다시 한번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 시간대에서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뿌리를 두고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 뿌리라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고 그건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동일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애기를 적어보자.
개인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와 고민들은 사실 애초에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내가 요새 가장 문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마지막 대학생활을 앞두고 다가오는 취업 준비를 비롯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민을 안고있다. 난관을 잘 헤쳐나가는 내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1년 동안 나의 모든 미래가 결정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나는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최신 뉴스기사들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 때 우연하게도 나의 병영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모든 병영일기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는 일이 많다.) 나의 군생활 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은 상병과 병장 때의 부분이었는데, 어제는 희한하게도 좀 더 오래 전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삶은 늘 언제나 이런식으로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재생된다.)
그리고 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 당시에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사실들에 대해 지금에서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09년 4월 27일 http://seonil.egloos.com/9967345
"책 한자를 더 읽고,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면의소리는 곧 나의 글로써 표현이 된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도록 하자. 글은 어떻게든 써지는 건가보다. 인생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로 내 인생을 꽉 꽉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게 만든다. 그저 그런 사이의 사람이 부탁했으면 정중히 거절했을 일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탁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더라도 모두 들어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계속해서 사랑하고 볼일이다. 참 골치아픈 인류애다. 사람을 사랑한다니.. 그래서 다들 보고싶다. 당신들과 함께 숨쉬는게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타인의 인정과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걸 잊지말자.
09년 4월 26일 http://seonil.egloos.com/9967342
"깨어있다는 생각. 눈이 깨어있고, 귀가 깨어있고, 그리고 내 정신이 깨어있고. 늘 깨어있자. 세상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자. 살아있음을 느끼자."
09년 4월 23일 http://seonil.egloos.com/9967340
가장 최악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나. 한겨레 신문과 씨네21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는 느낌이다. 그저 나하나만 잘 살자고 살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 내 깊숙이 진보라는게 자리잡았던걸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은 진보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러는 걸까.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이건 인간애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에서 출발하는 그런...
나란 사람 철저히 중간에 서려는 것 같다. 무섭고 잔인한 지성인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모든걸 희생하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야. 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내 마음가는 대로 날 완성해가며, 세상의 모든 존재형태(방식)을 한없이 존중한다. 기형도로서의 삶도 멋지고, 할리데이비슨족들의 삶도 멋있고, 운동선수의 삶도 멋있고,. 그래 된장녀와 된장남의 존재 방식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다름의 인정이다. 완전한 인정이다. 세상에 절대기준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인정은 어디까지나 신념이 존재하는 인간에 한해서다. 자신의 행동과 말과 존재방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만한 신념. 굳이 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고 있어야 된다.
사랑한다. 내 삶과 내 존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살면 살아갈수록 명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멋지게 만들어 갈 것이다.
09년 4월 11일 http://seonil.egloos.com/9936322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글쓰기의 위력을 실감한다. 내가 쓴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당분간은 일기를 온라인에 옮기는데 좀 더 치중하자. 그걸 통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있다. 너무도 재미있다. 내가 썼던 글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나란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은 매우 기쁘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감이 충전된다. 부드럽게 나가자.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
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09년 1월 19일 휴가를 나가서 (3년 전의 내가 쓴 글)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꿈을 꾸는 듯한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일어났다. 전날 밤 인터넷으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종로의 서울극장에 예매를 해놓았다. 형 집에서 9시정도에 빠져나왔다. 날씨가 꽤 따뜻했다. 종로까지는 지하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생각했다.일단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노량진에 거의 도착해서 며칠전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대비강의를 듣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가장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나의 베스트프렌드! 너무 기뻤다. 거의 2년만에 처음 본것이니. 그 동안엔 그 친구의 연락처가 바뀌어서 연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밝았고 의욕도 넘쳐보였다. 우린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핫초코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초스피드로 나누었다. 그친구나 나나 말이 엄청빠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된 이후로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 정신이 없을정도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약 한시간 동안 온갖 주제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시간이 1분 처럼 느껴졌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 모두는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더 성장한 모습에 서로 감탄을 했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등학교 그 때의 모습, 여전히 변하지 않고 너로 남아줘서 고마워!' 대화 속에 오갔던 친구와 나의 고민들이 모두 잘 해결되길 바랄뿐이다.
영화 시작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급히 극장으로 갔다. 역시 오랜만에 가보는 종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고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어제 책을 사기 위해 학교 앞 서점을 갔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 어떤 책을 사야 가장 돈이 아깝지 않고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의 완벽주의나 시간적 효율에 대한 강박증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는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 주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영화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정확히 그것은 아니지만 내가 포착한 것은 그것이다. DVD의 날카로운 화질과 고감도의 음질을 비디오테이프는 절대 따라갈 수 없지만 그런 DVD조차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채워지지 못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든 옛것에 대한 따뜻함이든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든. 세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헛 될수도 있다. 그 영화를 보고서 종로거리로 빠져나왔는데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겨울인데도. 바로 가방안에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가 보고 있는 영상에 배경음악이 흘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완벽한 해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해답에서 좀 비껴나와 인생을 즐기는 태도. 수많은 영화에서 보고 깨달았던 내용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That's why I love movie.
그래서 난 서점으로 갔다. (그래서 난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어제처럼 완벽한 책(완벽한 비디오)만을 찾으려 하지 않을거란 다짐을 했다. 쭉 훑어봤다. 마음이 이끌리는 분야(장르)쪽으로 갔다. 읽고 싶은 책(보고 싶은 비디오)을 집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카운터에가서 책 값을 (비디오 대여료) 계산했다. 서점(비디오 대여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어젠 1시간 넘게 서점에 있었는데도 책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고를 수 있었다. 신중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랐고 그 책에서 인생의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가지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어찌되었든 한 권의 책은 세상을 담고 있고 말이다. 나중에 내가 직업의 선택에서도 이런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완벽한 직장, 연봉도 높고 복리후생도 좋고 일은 어렵지 않고 명예도 가져다주는 직장. 그런 직장을 찾아헤매다가 난 서점에서 처럼 방황만 하다가 서점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눈높이를 낮추라고들 말하지만 눈높이를 낮추어선 안된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꿈을 낮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높이를 낮추다기 보다는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깨야한다는 것이 더 맞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고해서 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고해서 신이내린직장이라 불리는 몇몇 직장들이라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좋은작품을 읽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을 많이주는 기업이라고 해서 나와 맞지않으면 그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선택에 관한 문제)의 답은 나 자신으로 통한다. '완벽'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는대로 즐겁게 가야한다. 영화 한편이 나의 생각을 이렇게 확장시켜줬다.
오랜만에 도심을 걸었다. 종로-청계천- 을지로-시청-남대문시장-서울역까지. 예전에도 한가로운 날이면 자주걸었던 코스다. 길을 걷다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이 보인다.종로와 을지로의 높이 솟은 회사의 빌딩들과 세련된 회사원과 청계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과 들과 남대문시장의 언 손을 녹이는 상인들과 서울역의 노숙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아우르는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편견없이 모든 세상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2009년 1월 19일 군생활 일기, 휴가를 나와서
http://seonil.egloos.com/9901021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고, 노동자도 기업에서 일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2011년 가을학기 수강 후기
노사관계론(Labor Relationship) – 권기욱 교수님
(벌써 지난 학기가 마무리 된지도 1개월도 훌쩍 넘었는데 조금 늦게라도 지난 학기에
수강했던 강의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강후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수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권기욱 교수님 때문이었다. 그 교수님께 2011년 봄학기에 '조직설계론'이란 과목을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관련 과목에 대한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4학년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사관계론'이라는 과목명만을 들었을 때는 매우 지루한 수업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나로 하여금 저번 학기에 가장 많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수업이기도 했다. 매 시간 마다 토론 주제가 주어졌고 학생들은 회사와 노조의 입장에 서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수업시간 마다 꼭 노사이슈에 대해 다뤘으니 우리가 토론했던 기업만 해도 20여개 가까이 될 것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은행 파업사태, MBC, 한진중공업, KT, 금호고속 등 작년 한 해 많은 노사이슈가 있었다.)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측의 입장에서 서서 의견을 말하려 했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이 의견을 들으면 쉽게 수긍이 가기도 했다. 우리 조가 '한진중공업'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시간의 매번 토론은 확실하게 옳은 답과 결론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끝났다. 그저 계속 무엇이 더 옳은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해야만 했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물으셨다. 나중에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가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거냐고. 교수님께서는 무엇이 더 자기에게 이로울지 혹은 무엇이 옳을지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이 강의의 좋았던 점은 교수님께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지지 않고 최대한 균형된 시각을 유지하게끔 해주셨던 부분이다. 수업 시간엔 두 번의 특강이 있었는데 한 번은 삼성인재개발원의 전무님이 오셔서 노사관계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고, 다른 한 번은 민주노총의 대표 한 분께서 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셨다.
(조직설계론 때와 똑같이) 이 강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팀 활동은 매우 유익했다. 한 기업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었고, 노사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우리 조가 준비했던 팀 이슈 발표 주제는 <한진중공업>이었고,
한 학기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주제는 <한국 노사단체교섭의 문제점과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제출한 프로젝트 결과물은 20점 만점에서 19.8점을 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힘들었던 프로젝트였는데 함께 고생해 준 우리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들은 덕분에 사회의 노사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 보면서, 노사문제가 어떻게 잘 해결되고, 나아가서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서 좋았다.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고, 노동자도 기업에서 일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앞으로도 사회의 노사문제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꺼두지 말고 함께 고민해보는 청년이 되도록 하자.
한 학기 동안 훌륭한 강의를 해주신 권기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노사관계론(Labor Relationship) – 권기욱 교수님
(벌써 지난 학기가 마무리 된지도 1개월도 훌쩍 넘었는데 조금 늦게라도 지난 학기에
수강했던 강의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강후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수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권기욱 교수님 때문이었다. 그 교수님께 2011년 봄학기에 '조직설계론'이란 과목을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관련 과목에 대한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4학년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사관계론'이라는 과목명만을 들었을 때는 매우 지루한 수업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나로 하여금 저번 학기에 가장 많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수업이기도 했다. 매 시간 마다 토론 주제가 주어졌고 학생들은 회사와 노조의 입장에 서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수업시간 마다 꼭 노사이슈에 대해 다뤘으니 우리가 토론했던 기업만 해도 20여개 가까이 될 것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은행 파업사태, MBC, 한진중공업, KT, 금호고속 등 작년 한 해 많은 노사이슈가 있었다.)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측의 입장에서 서서 의견을 말하려 했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이 의견을 들으면 쉽게 수긍이 가기도 했다. 우리 조가 '한진중공업'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시간의 매번 토론은 확실하게 옳은 답과 결론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끝났다. 그저 계속 무엇이 더 옳은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해야만 했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물으셨다. 나중에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가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거냐고. 교수님께서는 무엇이 더 자기에게 이로울지 혹은 무엇이 옳을지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이 강의의 좋았던 점은 교수님께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지지 않고 최대한 균형된 시각을 유지하게끔 해주셨던 부분이다. 수업 시간엔 두 번의 특강이 있었는데 한 번은 삼성인재개발원의 전무님이 오셔서 노사관계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고, 다른 한 번은 민주노총의 대표 한 분께서 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셨다.
(조직설계론 때와 똑같이) 이 강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팀 활동은 매우 유익했다. 한 기업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었고, 노사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우리 조가 준비했던 팀 이슈 발표 주제는 <한진중공업>이었고,
한 학기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주제는 <한국 노사단체교섭의 문제점과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제출한 프로젝트 결과물은 20점 만점에서 19.8점을 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힘들었던 프로젝트였는데 함께 고생해 준 우리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들은 덕분에 사회의 노사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 보면서, 노사문제가 어떻게 잘 해결되고, 나아가서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서 좋았다.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고, 노동자도 기업에서 일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앞으로도 사회의 노사문제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꺼두지 말고 함께 고민해보는 청년이 되도록 하자.
한 학기 동안 훌륭한 강의를 해주신 권기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일 년 만에 다시 모인 Ainsoph아인소프 멤버들과 서울 나들이
2012년 2월 4일 (토)
바쁘게 진행했던 공모전을 끝내고 난 뒤, 조금 게으르게 지내다 싶었던 요즘이다. 어제 일본의 친구가 서울을 찾아왔다. 내가 긴자 카페 아인소프에서 일을 했을 적에 매니저로 계셨던 쿠사야나기상草柳さん이다. 업무 관계로 한국에 온 건데 하루 시간이 나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한국인 멤버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날 함께 한 멤버는 쿠사야나기상, 보라무, 유진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네 명
오전 10시에 보람이와 먼저 만나서 명동에서 쿠사야나기상에게 줄 선물로 예쁜 모자를 샀다. 타이가군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여름모자였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난 건 12시 롯데호텔에서였다. 1년 만에 만나는 거라서 정말 반갑고 기뻤다. 사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어떻게 하면 쿠사야나기상을 기쁘게 해드릴지 계속 고민했었다. 어디를 모시고 가면 좋을지, 무슨 구경을 시켜드리면 좋을지. 하지만 결국은 쿠사야나기상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쿠사야나기상이 가보고 싶은 곳을 들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이 날 우리의 이동경로는 이러했다.
명동 롯데호텔 - 시청 광장 - 덕수궁 - 광화문 광장 - 인사동 - 인사동에서 점식식사로 찜닭
- 명동에서 쇼핑(Forever21, Zara, Mango, H&M 등등) - 신사동 가로수길 -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 이태원 - 저녁으로 고기먹고 - 바 Bungalow에서 칵테일 마시고 - 호텔로 이동해서 다시 맥주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
같이 아인소프에서 일했을 때 이야기, 일본 대지진 이야기, 연애 이야기, 직업 이야기까지 아침 10시에 만나서 다음날 아침 7시에 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원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것들이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함께 한 네 명은 지금까지 계속 같이 지내온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맛이없는 식당을 들어갔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면 더 맛있는 것이고, 시시한 구경거리도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이태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이태원에서 2달 정도 일해본 적도 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그곳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번에 갔을 때처럼 이태원이 그토록 즐겁게 느껴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 넷은 이 곳은 뉴욕의 중심가라면서 분위기를 냈다. 같은 이태원에 머물더라도 그냥 외국인이 좀 많은 평범한 서울의 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수많은 만남이 이뤄지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하루의 만남이라 아쉽긴 했지만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멋진 하루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람의 만남에 대해 생각한다.
쿠사야나기상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그냥 카페에서 일하는 사이로만 남았더라면 이렇게 양국을 오가며 만나는 일도 없을거야. 사실 선일군하고도 내가 가까워진 계기는 선일군이 카페 일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 그때서야 좀 더 선일군이 진지한 사람이란 걸 알게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가까워진거지. 아마 그때 선일군이 나에게 그런 고민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자리에서 다시 선일군을 만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말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서 다가가려고 한다면 관계의 진전은 급속도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넷이 만나는 것은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장소는 도쿄로 정하였다. 우리들이 도쿄를 찾아가서 쿠사야나기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인연은 바다를 넘어서 길고 길게 이어져간다.
2012년 2월 4일 (토)
바쁘게 진행했던 공모전을 끝내고 난 뒤, 조금 게으르게 지내다 싶었던 요즘이다. 어제 일본의 친구가 서울을 찾아왔다. 내가 긴자 카페 아인소프에서 일을 했을 적에 매니저로 계셨던 쿠사야나기상草柳さん이다. 업무 관계로 한국에 온 건데 하루 시간이 나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한국인 멤버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날 함께 한 멤버는 쿠사야나기상, 보라무, 유진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네 명
오전 10시에 보람이와 먼저 만나서 명동에서 쿠사야나기상에게 줄 선물로 예쁜 모자를 샀다. 타이가군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여름모자였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난 건 12시 롯데호텔에서였다. 1년 만에 만나는 거라서 정말 반갑고 기뻤다. 사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어떻게 하면 쿠사야나기상을 기쁘게 해드릴지 계속 고민했었다. 어디를 모시고 가면 좋을지, 무슨 구경을 시켜드리면 좋을지. 하지만 결국은 쿠사야나기상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쿠사야나기상이 가보고 싶은 곳을 들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이 날 우리의 이동경로는 이러했다.
명동 롯데호텔 - 시청 광장 - 덕수궁 - 광화문 광장 - 인사동 - 인사동에서 점식식사로 찜닭
- 명동에서 쇼핑(Forever21, Zara, Mango, H&M 등등) - 신사동 가로수길 -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 이태원 - 저녁으로 고기먹고 - 바 Bungalow에서 칵테일 마시고 - 호텔로 이동해서 다시 맥주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
같이 아인소프에서 일했을 때 이야기, 일본 대지진 이야기, 연애 이야기, 직업 이야기까지 아침 10시에 만나서 다음날 아침 7시에 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원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것들이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함께 한 네 명은 지금까지 계속 같이 지내온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맛이없는 식당을 들어갔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면 더 맛있는 것이고, 시시한 구경거리도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이태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이태원에서 2달 정도 일해본 적도 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그곳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번에 갔을 때처럼 이태원이 그토록 즐겁게 느껴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 넷은 이 곳은 뉴욕의 중심가라면서 분위기를 냈다. 같은 이태원에 머물더라도 그냥 외국인이 좀 많은 평범한 서울의 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수많은 만남이 이뤄지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하루의 만남이라 아쉽긴 했지만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멋진 하루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람의 만남에 대해 생각한다.
쿠사야나기상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그냥 카페에서 일하는 사이로만 남았더라면 이렇게 양국을 오가며 만나는 일도 없을거야. 사실 선일군하고도 내가 가까워진 계기는 선일군이 카페 일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 그때서야 좀 더 선일군이 진지한 사람이란 걸 알게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가까워진거지. 아마 그때 선일군이 나에게 그런 고민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자리에서 다시 선일군을 만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말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서 다가가려고 한다면 관계의 진전은 급속도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넷이 만나는 것은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장소는 도쿄로 정하였다. 우리들이 도쿄를 찾아가서 쿠사야나기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인연은 바다를 넘어서 길고 길게 이어져간다.
누가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기를 마치며
2012년 1월 12일 ~ 21일
여행은 열흘로 매우 짧았지만 여행기를 쓰다 보니 40개가 넘는 긴 글이 되었다.
그만큼 남기고 싶은 사진도, 적어두고 싶은 생각들이 많았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1월 21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행에 대한 소감을 글로 남겼다.
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난 지금 여행에 대한 소감을 쓰는 것보다는 그 때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 내 생각을 더 잘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 많은 기회비용을 들어간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작은 결심을 했었다.
2012년 1월 11일의 일기
막상 출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일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일본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전해 받고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잠시나마 잊고 살았던 '소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이번 일본여행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싶다.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면서까지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을 제대로 재충전해서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올 해는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일본에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쾅쿵쾅 설렌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살아온 길이 있다. 그 길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의미한다.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본 여행에서, 사실 '일본'이라는 것은 그 또한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1년 동안 살았던 나라의 이름이 '일본'일 뿐이다. 내가 관계를 맺은 건, 나라는 개인과 바다 건너 어떤 개인들과 관계였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사실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 이냐가 아니었다. 그 상대방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서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온전한 진심으로 대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내가 일본에서 일년을 살면서 느낀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그러니 이번 여행도 일본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이번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는 동기를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내가 목표로 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것들을 모두 이루고 왔다고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4학년으로서 1년을 잘 버텨낼 용기와 동기도 얻었고, 그럼에도 내가 잊고 살아가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페이스북에 올린 생각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여행기를 마친다.
昨日韓国に着きました。2012年の一月を日本で過ごすことができて本当に嬉しかったです。やっぱり日本はいい国だなーとまた思いました。たまに自分が向かっていく道を失うこともあるんですけど、今回皆と久しぶりに会って私も皆さんのようにがんばって生きて行かなきゃとおもいました。忙しいところ会ってくれた皆さんに本当にありがたいです。
この世界って広いからしばらく会えないかも知らないけど、私たちの心は海を越えてつながってるから、だれがどこにいても同じ世界を生きていることを感じられ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次会う日まで皆元気にいてください。
저는 어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2012년의 1월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답니다. 역시 일본은 좋은 나라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가끔 제 스스로가 향해 가고 있는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만, 이번에 모두와 오랜만에 만나서 저도 여러분처럼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바쁜 와중에 만나주신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넓기 때문에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은 바다를 넘어서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누가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만나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2012년 1월 12일 ~ 21일
여행은 열흘로 매우 짧았지만 여행기를 쓰다 보니 40개가 넘는 긴 글이 되었다.
그만큼 남기고 싶은 사진도, 적어두고 싶은 생각들이 많았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1월 21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행에 대한 소감을 글로 남겼다.
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난 지금 여행에 대한 소감을 쓰는 것보다는 그 때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 내 생각을 더 잘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 많은 기회비용을 들어간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작은 결심을 했었다.
2012년 1월 11일의 일기
막상 출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일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일본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전해 받고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잠시나마 잊고 살았던 '소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이번 일본여행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싶다.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면서까지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을 제대로 재충전해서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올 해는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일본에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쾅쿵쾅 설렌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살아온 길이 있다. 그 길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의미한다.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본 여행에서, 사실 '일본'이라는 것은 그 또한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1년 동안 살았던 나라의 이름이 '일본'일 뿐이다. 내가 관계를 맺은 건, 나라는 개인과 바다 건너 어떤 개인들과 관계였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사실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 이냐가 아니었다. 그 상대방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서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온전한 진심으로 대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내가 일본에서 일년을 살면서 느낀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그러니 이번 여행도 일본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이번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는 동기를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내가 목표로 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것들을 모두 이루고 왔다고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4학년으로서 1년을 잘 버텨낼 용기와 동기도 얻었고, 그럼에도 내가 잊고 살아가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페이스북에 올린 생각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여행기를 마친다.
昨日韓国に着きました。2012年の一月を日本で過ごすことができて本当に嬉しかったです。やっぱり日本はいい国だなーとまた思いました。たまに自分が向かっていく道を失うこともあるんですけど、今回皆と久しぶりに会って私も皆さんのようにがんばって生きて行かなきゃとおもいました。忙しいところ会ってくれた皆さんに本当にありがたいです。
この世界って広いからしばらく会えないかも知らないけど、私たちの心は海を越えてつながってるから、だれがどこにいても同じ世界を生きていることを感じられ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次会う日まで皆元気にいてください。
저는 어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2012년의 1월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답니다. 역시 일본은 좋은 나라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가끔 제 스스로가 향해 가고 있는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만, 이번에 모두와 오랜만에 만나서 저도 여러분처럼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바쁜 와중에 만나주신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넓기 때문에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은 바다를 넘어서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누가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만나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부야에서 밤을 지새며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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