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시간을 소중히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올해 들어 여름과 밤이 만난 이래로, 여름밤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된 이후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 밤과 만나 여름밤이 되고, 여름밤이 산책을 만나 여름밤의 산책이 된다. 또 여름밤의 산책은 음악도 만나고, 사색을 만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 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홀로 서 있을 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같이 서 있으면 아름다움은 늘 더 빛나는 법이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시간에 아름다움을 보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은 늘 찾아오고, 그 안에는 낮과 밤이 있다. 여름의 낮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시원한 그늘과 수박을 찾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여름밤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밤 바람을 쐬며 조용히 산책을 한다. 그런것들은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이미지로서 회상하지 않는가. 그 여름밤 먹었던 달콤한 수박,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날 만났던 친구. 그러니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올 여름을 보내야 겠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해야할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1년, 5년, 10년이 흐른 뒤에도 2015년의 여름은 아름다웠노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 7월 여름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2009년 4월 11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8478.html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5001.html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13년 4월 17일 봄날 http://seonil.blogspot.com/2013/10/blog-post_9417.html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말이다.2010년 12월 17일에 서있는 내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글
“우리의 현재 모습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과거에 서있던, 미래에 서있을, 그리고 지금 서있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건 과거의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모습이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지라도 달이 아름다운 밤
왜 항상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밤이 되면 새로운 다짐들이 떠오르고, 잊고 있었던 옛 일들이 떠오르고, 가족들이 보고 싶고, 친구들이 보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영화를 보고 싶고, 옛 사진들을 들춰보게 되고, 글이 쓰고 싶어지고, 심지어 무언가를 먹고 싶어진다. 밤에 몰려오는 생각과 욕구들이 하루 중에 균등하게 찾아오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적절히 욕구를 분출해내어 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밤에는 잠을 자야만 또 내일 하루를 맑은 정신으로 보낼 수 있다. 그야말로 정말 맑은 정신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밤새 날뛰던 여러가지 생각들은 잠잠 해지고, 눈을 감으면 손에 잡힐 것 같은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도 희미해지고, 어떤 새로운 다짐들도 힘을 잃고 사그라든다. 그래서 아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하루를 우리 인생으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느즈막한 때를 황혼이라고 부르지 않나. 저녁 노을로 물들어 가는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때도 그 즈음이지 않을까 싶다.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공기의 고요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여유로이 즐기는 때. 그리고는 다시 우리의 정신활동이 활발해지지 않을까. 새로운 생각도 많이 들게 되고, 인생에서 만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워 하며, 반성과 새로운 다짐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평생을 산다는 것은 하루라는 일생을 평생 산다는 것이다. 새벽-아침-오전-정오-오후-저녁-밤-다시 새벽에 까지 이르는 시간들을 평생 살지만, 그 평생은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평생은 오늘 하루에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하루를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일들이 있다면,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도 후회하는 일이 있겠지
오늘은 누구를 만났으면 좋았을걸. 그 사람에게 그렇게 심하게 말하지 말걸. 가족들에게 전화를 할 걸.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영화를 볼 걸. 이런 생각들이 하루를 마감하면서 들게 된다. 오늘은 다행인 일이 한가지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대외기관과 협력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몇번이고 협력기관의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오늘은 아침에 출근하니 그 담당자로부터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메일을 와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심각할 일도 아니었는데, 그동안에 쌓이고 쌓인 게 많다 보니 난 기분이 상했고, 회신 메일에 나의 안좋은 감정을 모두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우고 다시쓰고 반복하기를 몇 십번. 그 담당자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일을 함께 해야하기 때문에 이번에 세게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기분 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메일을 공격적인 멘트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결국은 '발송'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그 메일을 인쇄해서 옆의 동료에게 보여줬다.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이런 메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이런 메일을 받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동료는 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나는 나의 이런 공격적인 메일을 써내려가면서 이런 메일을 쓰고 있는 나의 행동을 합리화 했고, 이런 정도의 메일을 쓰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 메일은 보내지 않았고, 전화를 걸어 좋은 목소리로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전화를 하고나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리고 그 메일을 보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싶었다. 옆에 그 동료가 없었더라면 메일은 발송됐을 것이고 그 사람과 나의 사이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게 오늘 정말 잘한 일이다. 나 스스로 감정을 잘 컨트롤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해군 병장 시절 생활반장을 맡고 있던 때였다. 생활반의 한 수병이 취침시간이 지난 뒤 생활관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 생활반 전체가 기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전체에게 피해를 끼친 그 수병 때문에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떻게 그 수병을 혼낼지 생각했다.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정말 그 수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고민했다. 나는 그 수병을 조용히 불렀다. 그 수병은 경직된 얼굴로 떨고 있었다. 자기가 크게 잘못을 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그 친구를 조용히 타이르면서 얘기했다. 오늘은 너의 잘못 때문에 다른 생활반 친구들이 밤 중에 고생을 했으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 없도록 해달라고. 그리고는 웃으면서 조용하게 넘어갔다. 사실 그 순간 나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그런지 나와 그 수병은 그 이후로 정말 친하게 지냈고, 전역을 하고나서도 가끔 연락하는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인생의 시간이 흐르고 난다면
인생의 시간이 흐르고 난다면 그런 일들이 많이 떠오르지 않을까. 내가 잘못했던 일보다는 (지우고 싶은 기억들 보다는) 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만한 일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런 것들 말이다. 정말 크게 잘못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엄청 크게 혼날 걸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으로 따뜻하게 타일러 주시던 그 때 그런 기억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부모님과 선생님들도 엄청나게 자신의 내면과 싸우고 계셨을 것이다.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화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나도 조금 더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감정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내면의)것을 분출해내며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 인간들에게 반드시 좋은 살이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성으로서 제어하며) 너무 억누르지 않으며, 너무 분출해내지 않으며 그렇게 어렵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쉬운것은 재미없다)
결국에 누가 옳았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육십억개의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없어져간 영혼들까지 포함하면 수백억) 결국에 누가 옳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옳은 것 같다는 느낌과 그른 것 같다는 느낌만 있어 그 느낌에 기대어 역사를 써내려가지만 그 판단 또한 중립이 아니고서는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우주에 깔려있는 수많은 별들의 존재를 두고 (혹은 그 별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를 두고) 그 존재가 (혹은 역사가)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태양은 지구에게는 따듯한 햇살과 지구 만물에게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화성에게는 너무 가까워서 모든 걸 타들어가게 만드는 별이고, 또 다른 행성들에겐 그 열과 빛이 너무 적게 전달되어서 있음에 못미치는 별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냥 있게 된 존재들끼리 (존재하게된 있음들끼리) 어울어져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이 누가 되었든 하나님이 창조했든 원숭이에서 진화를 했든, 우리들이 사랑의 결실이든 하룻밤의 실수든, 결과적으로는 존재하게 되었고, 존재들끼리 어울리며 존재하는 것이다. (즐겁게 혹은 괴롭게. 하지만 이왕이면 즐겁게)
오늘도 일을 마치고 학교에 들러 후배와 밥을 먹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후배가 얘기했다.
하늘에 달 좀 봐, 너무 이뻐. 뭐가 이쁘냐. 맨날 같은 달인데. 정말? 어떻게 저렇게 예쁜 달을 보고서 감흥이 없을 수 있지? 감성이 너무 메마른거 아냐? 봐봐 정말 이뻐. 요새 달이 참 좋은가봐.
단언컨대 달이 좋았다기 보다는 그 후배의 마음이 좋았던 거다. 왜냐하면 그 후배는 나와 밥을 먹는 내내 자기가 요새 어떤 학문에 빠져있는지, 그 학문이 얼마나 재밌는지, 요즘 엑셀 작업에서 이런이런 부분에서 막히고 있는데 내가 해결방법을 알고 있는지, 내일은 외국에서 오신 교수님이 특강을 하는데 교수님으로부터 일찍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아서 얼마나 기분 좋은지, 계속 떠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 후배에게는 달이 좋아보일 수 밖에 없는 날이었다. 분명 오늘 그 달은 누군가에겐 눈물을 머금은 것처럼 슬프게 보였을 수 있다.
아름다운 달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하자.
결과적으로는 오늘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모두 글로 풀어내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든 생각들, 집에 들어와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든 생각들, 샤워를 하고 컴퓨터 전원을 켜기 전까지 들었던 생각들이 3분의2 정도는 이 글에 담긴 것 같다.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는 생각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글의 끄트머리에서 후배의 달 이야기를 쓰다보니까 갑자기 달이 보고 싶어졌다. 오늘 정말 달이 그렇게 예뻤을까. (객관적으로) 아까는 내가 안경을 끼지 않고 봐서 별 감흥이 없었던 것 아닐까. 글을 닫는대로 밖에 나가 다시 한 번 잘 봐야겠다. 밖에 나가서 그 달을 봤을 때 달이 '내 눈에도' 아름답다면, 오늘 하루와 오늘 이 글의 제목은 '달이 아름다운 밤'이다. 끝.
실존으로서의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새학기가 시작한지는 어느덧 일주일, 3월은 어느덧 3분의 1이 지나갔다. 꽃샘 추위라는 건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풀리면서 그 동안 얼어있던 몸과 마음에 봄의 기운이 파릇파릇 새싹처럼 돋아나는 것 같더니 꽃샘 추위 때문에 돋아나던 새싹도 금새 다시 꼬리를 내리고 옴싹 달라붙어있다. 아니나 다를까 2주간 즐겁게 외국인 친구들과 쌩쌩 놀러다녔는데, 지금은 기숙사에서 외출하기가 힘이 들 정도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 이 놈의 감기 때문에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 반찬이 나와도 맛이 있는 줄 모르겠고 원래 먹으려고 펐던 밥의 반절밖에 못 먹고 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주말이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하늘이 좋은 날이었다. 오후엔 학교 앞으로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무려 7년 만의 재회다. 그동안 연락을 종종 하고 지냈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중학교 하물며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 친구의 느낌'은 언제나 여전히 그 사람에게 남아있다. 오늘 만난 그 친구도 고등학교 때 착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을 오랜만에 만날수록 그 사람이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기대를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약간은 서운한 느낌도 있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고마움도 있고 그렇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이과였고, 나는 문과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고등학교 시절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나 나나 기숙사에서 지냈고, 사실은 조금 공부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특별반에 있었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를 화제 삼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둘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것에 그렇게 재미를 느끼진 못했던 학생들이었다. 서로 재미를 느끼진 못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에 대해 만족을 느끼는 학생이진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올해 6월에 전역을 앞두고 있는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데 덕분에 즐거운 군대 얘기도 많이 들었다. 군대 얘기는 그냥 언제들어도 재미나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을 못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군대 얘기가 재미난 이유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군대 말고도 더 있을까.(물론 더 있을 수도 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은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잘도 빚어낸다.) 나도 내가 해군에서 복무한 2년 간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면 몇날며칠이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원에 있는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친구는 동서울터미널로 갔고 나는 오후에 남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하고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란 책에 심취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좀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우연하게도 지금은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같은 학번의 형을 만난다. 금융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인데 그 형에게서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들었다. 회사 생활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나의 진로와 미래에 관련된 얘기이기도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결정한다. 일요일에 학교 도서관의 같은 열람실에서 우연히 형을 만나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엄청난 우연과 필여의 힘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감기에 걸려 허약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도서관에 온 '우주적 행위의 결과물'은 수많은 반대 작용을 모두 극복해야만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를 기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는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오늘 도서관에서 마주한 그 형이 하는 얘기도 결국은 인생의 '본질'에 대한 얘기였다고 본다. 실존으로서의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한 문제말이다.
일단은 일주일을 마감하고 일주일을 시작하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심야영화 한 편을 예매해놓았다. 부디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아픈 몸이 다시 활기를 얻어 봄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A Father’s Prayer 아버지의 기도
by General Douglas MacArthur
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One who will be proud and unbending in honest defeat,And humble, and gentle in victory.
Build me a son whose wishes will not take the place of deeds;
A son who will know Thee – and that to know himself is the foundation stone of knowledge.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Lead him, I pray, not in the path of ease and comfort,
but under the stress and spur of difficulties and challenge.
Here, let him learn to stand up in the storm; here let him learn compassion for those that fail.
Build me a son whose heart will be clear, whose goal will be high, a son who will master himself before he seeks to master other men, one who will reach into the future, yet never forget the past.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그의 마음은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And after all these things are his, add, I pray, enough of a sense of humor,
so that he may always be serious, yet never take himself too seriously.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meekness of true strength.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그 위에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비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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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되자. 예전부터 많이 접해 온 글이지만,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기다.
도쿄가 너무 그립다
2011년 6월 19일
'논리와 사고' 라는 마지막 시험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주요 과목의 시험을 모두 끝내고 나니 몸과 마음의 긴장이 솨르르르 빠져나간 느낌에 도저히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없다. 물론 유종의 미를 거두는게 중요한 건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 이 때, 길을 걷고 있기만 하면 여름의 도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뜨거웠던 긴자의 오후와, 시원한 마루노우치의 저녁,,, 그 때는 길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했었다.. 그 때도 길을 걸으며 생각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게 그리워지겠지?' 라고.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도쿄가 너무 그립다.
나에게 여름의 도쿄는 정말 특별했다. 내 인생에서 다시 그렇게 즐겁고 뜨거웠던 여름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그제, 마스미로부터 메일이 왔다.
'오늘 밤에 일이 끝나고 나서 K짱(시마노 케이) 의 생일 파티를 할 건데, 괜찮으면 밤 11시 정도에 전화해 줄 수 있어? K짱이 저스틴한테서 생일 축하 전화를 받으면 무척 기뻐할 거 같아서.' 그리고 그 날 밤 전화를 해서 오랜만에 시부야의 동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다시 마스미로부터 메일이 왔는데,
"ジャスティンってわかった時のKちゃんの喜んだ姿が忘れられません!!!!
こうして国境も海も越えて、いつもどおり同じことを出来て幸せですねっ"
"저스틴이 전화했을 때 K짱의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이렇게 해서 국경도 바다도 넘어서 언제나처럼 똑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해."
도쿄를 떠나온 지 이제 약 5개월,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서, 도쿄가 더욱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모두를 만나러 꼭 도쿄에 갈 것이다. 내가 받았던 행복을 모두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가고 싶다. 정말이지 도쿄가 너무 그립다.
최선을 다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더 의미있기도 하다
요새 읽고 있는 책에 자극을 좀 받아서 사흘간 밤 1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4시 50분까지 학교 도서관에 와서 5시 정각부터 바로 할 일을 시작하는 걸 목표로 했다.
오늘도 5시에 와서 다음 주의 발표에 대비해 자료를 조사했다. 역시 정신이 맑은 아침에는 일 처리가 빨리 된다. 그런데 아침 9시 수업을 들어갈 때부터 눈 윗부분이 콕콕 쑤시는 느낌이 왔다.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계속 졸기만 했다. 9시에서 12시 수업을 마치고, 밥을 먹고, 다시 1시부터 3시까지 강연을 들었다. 그리고는 3시부터 5시까지 체육 육상 수업에서 30분정도를 달렸다. 아.. 정말 깨어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귀가를 하자마자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2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좀 정신이 맑아졌다. 깨어있는 시간에 하는 거라곤 레포트를 쓰는 일밖에 없는데 이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 레포트가 정말 언젠가는 나중에 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 평소엔 마시지도 않는 박카스를 한박스 사다가 방의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기까지 했다.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더 의미있기도 하다.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를 것 같은
다들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 또한 이웃 나라의 지진에 대한 뉴스를 수시로 지켜보는 한편, 이번 주 레포트를 쓰고 있다. 레포트 주제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이 문제고,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다. 나라는 사람은 아픔의 나눔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경쟁에 대한 문제를 논하고 있다니,,, 참,,,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만 있는게 아니다. 현실과 현실의 괴리도 있다.
내가 이 레포트를 쓰면 지구의 아픔이 조금은 덜하려나.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잘 써볼텐데.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걸로 밖에 안보여.. 이 시간까지 레포트를 쓰는 이유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우리 살아가는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건가. 지구는 그렇게도 넓은건가.
분명 며칠 전에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위의 모든 청춘을 응원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지금은 조금만 응원하고 싶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청춘들은 조금만 잘 살아도 좋으니 세상 사람 모두가 아프지 않고 다 잘 살았으면 한다.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를 것 같은
청춘, 공부, 인생, 사람, 자연, 지구, 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자정이 넘은 도서관에서
내가 가지 않았던 길 중에서 소중하지 않았던 길은 없다 / 감기앓이 後
http://ksi8084.blog.me/40119655563
감기앓이 後
2010년 10월 2일 감기를 앓고 나서 메모했던 글..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다시 한번 내가 도쿄에 있다는게 느껴진다.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지 않는 나에게 심하게 질책을 하려 했던 것일까. 감기를 앓고 나서 좀 더 겸손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든 날씨 앞에서든 시간의 흐름의 앞에서든 겸손해져야 한다.
자신감을 가지되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야만 내 앞에 놓인 대상들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애정을 품는 순간 난 대상에게 더 겸손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하나의 만남이라도 가벼운 만남이 절대 없는데도, 이제까지 난 너무도 만남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이나 군대의 선후임들이나.
내가 일본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고 잠깐이라고 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 순간의 만남이 길게 이어질 만남이든 짧게 끝날 만남이든 그 순간 만큼은 매우 소중한 만남이거늘.... 사람의 연이란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데 지금까지 너무 간단하게 생각을 해 왔던 것 같다. 어떤식으로든 내 쪽에서 만남을 끝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한번 찾아온 만남은 다시는 찾아오기 힘든 만남이다. 어쩌면 영영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도록 하자. 이번의 감기 앓이가 나에게 주는 교훈이 한두가지가 아닌것은 확실하다. 내 몸안에서도 변화를 원하는 거였고, 그에 맞게 나의 마음가짐과 생활 또한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살아가다 내 삶의 어느 부분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고서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의 생활을 바꾼 뒤, 만약 그게 바른 길이 아니라면 또 나중에 그걸 느끼고서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모든 길은 가는데 있어서 너무큰 부담을 가지고서 머뭇거리는 것은 좋지 않다. 부담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길이 지닌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가지 않았던 길 중에서 소중하지 않았던 길은 없다.
우린 상상으로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 점점 꿈에 가까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1초,1초를 매우 소중하게 보내고, 나를 둘러싼 모든 대상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자.그것은 엄청난 연으로 둘러싸인 이 세상을 더욱 즐겁게 살기위함이다
마지막 당직
2010년 1월 29일
D-52 # 현민이가 나에게 와서 이번 당직이 나의 마지막 당직이란다. 헛.. 세상에.. 마지막 당직이라니. 오랜만에 당직실에 앉아있으니까 한가롭고 편해서 좋다. 예전처럼 정신없지도 않고. 정말 갈때가 된건가 보다.
#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도 좋을 것 같다. 이러다 신경쇠약이 걸리겠다. 지금까지 깨달았던 순간들의 지혜를 되살려서 여유를 가지고 결과를 기다리도록 하자.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들은 의미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 활기가 넘치는 금요일 오후다. 주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좋다. 다 집어치우고 우리들은 토요일과 일요일 때문에 큰탈없이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쉴수 있는 날을 만들어 놓은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처음 사연 읽힌 날
2009.10.29
처음으로 <이주연의 영화음악>에서 내 사연이 읽혔다! 그렇게 많은 시도없이 쉽게 얻은 것이긴 하지만 그 간절한만큼은 정말 컸다. 방송에서 나의 사연과 신청곡이 흘러나온 순간 너무 기뻐서 미치도로 기뻤다. 얼굴을 파묻고 즐거움의 괴성을 질렀을 정도다. 나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서 전국으로 울려퍼지다니. 너무도 낭만적인 일이다. '소리'라서 더욱 낭만적이다. TV에 나오는 것보다도 기쁘다. (아직 TV출연은 안해봤지만) 인생의 행복이란 이런거다. 간절함 끝에 얻어지는 갈증해소의 쾌락. 감사합니다, 이주연님~! 당신 때문에 내 군생활이 행복합니다.
기형도를 읽고서
2009.4.13
기형도를 읽었다. 너무 어렵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문학의 세계이며 정신세계다. 순간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은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우리 시대 청춘의 문장들. 난 정말 그들과 같은 청춘일까? 고뇌하지 않는 청춘도 청춘일까? 내가 너무 기표에 목을 매고 있는건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를 접함으로써 난 세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걸까. 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와 관련된 것들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분명 이 세계를 정화시킬것인가. 도대체 무슨 무슨 고민을 안고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고민 따위 하지 않고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난 어떤 존재일까. 너무도 가볍게 작은 존재인것은 분명한데, 내가 이 땅위를 밟고서서 살아감으로써 지니는 의의는 무엇일까. 모두 덧없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나가야 하는가. 너는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한 순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인가.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인데, 이해할 수 없는 몇 개의 기형도가 날 이리도 복잡하게 만든다. 그에 대한 이해, 과연 기형도를 이해하는 것이 내 청춘을 이해하는 것일까. 난 왜 기형도를 읽었을까. 난 왜 기형도를 읽는가. 청춘이라고 다 같은 청춘일까. 누구는 또 다른 청춘일 수 있다. 나의 청춘은 무엇인가. 청춘은 고뇌하면서 살아야 되는걸까. 청춘의 고민은 내 삶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까. 너도 나중엔 똑같이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똑같이 돈 벌어오는 아빠가 되는거잖아. (돈 벌어오는 행위를 비하할 생각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은 숭고한 행위니까) 순전히 미디어에 의해서 재포장되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 아닌가. 세상은 원래 '없는 고통'을 창조해내고 있다. 고통이 아닐수도 있는 사실과 현상들을 고통으로 비추고 있다. 우린 너무 처절하게 학습당하면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게 정말 고통이 아닐수도 있는데 마치 고통인냥 받아들이게 되고 그게 정말 즐거움이 아닌데 마치 즐거움인냥 받아들인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은 너무도 중요하다. 모든 고통도 모든 즐거움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린 우린 우리 자신을 찾아내야만 한다. 타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삶 위에서 삶을 살아가면 안된다. 세상엔 나만의 세상만이 존재하는데 마치 우린 타인의 세상이 우리 자신의 세상인냥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프다'란 단어도 결국 만들어진 세상 아닌가. 고통을 즐길수 있는 것이라면 통각에 가해지는 자극들이 '즐겁다'란 단어로 만들어졌다면, 아픔이 즐거움이 될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 '귀신은 무섭다'라는 사실도 '공산주의는 나쁘다'라는 사실도 '돈을 훔치는 것은 나쁘다'라는 사실도 '돈은 좋다'는 것도... 결국 모두 쌓여지고 쌓여져서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우린 학습되었다. 세상에 학습되었는데 우린 학습할 사실들을 모두 인정하고서 맞춰 살아가야 되는 것일까. 우린 어떻게 학습 되었을까. 잘 학습된 것인가. 기형도가 원인이다. 도대체 당신은 왜 이렇게 복잡한 생을 살아갔소. 우리의 삶은 정녕 당신의 시처럼 복잡하단 말이오. 왜 단순히 남들처럼 생을 즐기다가지 못한 것이오. 그럼 당신 눈에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단 말이오. 난 고뇌하는 청춘을 고뇌했던 청춘들의 세계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을 알면 알수록 '깊이'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왜 남들처럼 단순하게 살지 못했던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정녕 그대들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소. 그대는 세상의 방정식을 수정하는게 더 중요했던 것이오. 그럼 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들처럼 깊은 생각도 없고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뭐가 되냔 말이다.
군생활의 성장통(2) - 어떤 식으로 살아내든 그게 나
군생활의 성장통(2) - 어떤 식으로 살아내든 그게 나
2009년 3월 5일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적절한 때가 있냐는 거다. 아니다.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제를 슬그머니 가져가서 그것으로부터 치유를 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를 맞딱뜨린 순간에 있어서 나의 노력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노력을 잊게 만드는 거다. 그러고는 시간이 모든 걸 치유할 걸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 이렇게 숨쉬고 있는데..난 이 우주이고, 난 이렇게 모든 걸 느끼고 있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했을가. 알수도 없는 이유 때문에 왜 난 그토록 힘들어 한 것인가? 친구 보람이와 통화를 하면서 내 문제를 말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넌 너의 이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고, 흘러가고 있어.무엇이 그토록 두려웠던 거지.바보야 왜 이렇게 약했던 거냐.사랑도, 사람도, 나의 미래도 가질 수 없다는 두려움이었을까.나다움을 잃어버린 시간이었어. 정말 1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어.
내가 이렇게 여기서 숨쉬는 한, 매순간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시간들이야. 어떤 식으로 살아내든 그게 나고... 외로움? 외로움이 날 힘들게 했을까? 넌 누구보다도 혼자 일때 강하고 함께하면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는 놈인걸. 네 스스로가 잘 알잖아. 외로움을 고독의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 또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어.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내가 원하는 방식이고, 날 빛나게 하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외로움 따위가 결코 널 꺾을 수 없어. 함께 하고 있지만 결국은 나 혼자서 가는 것.내 주위 사람들 모두를 잃는다해도,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하더라도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그 조차도 나야.매 호흡이 '나'고, 정말 그 모든게, 이 모든게 나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야 된다는 것은 결국 나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을 보고서 결정하는 거잖아. 어떻게 살아가느냐... 어제 그런 생각을 했잖아. 난 세상살이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대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늘 심각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이는데다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거지?’란 생각. 그 또한 나의 길이였어. 내가 살아야 하는 길은 지금까지의 나를 최대한 존중하며 늘 그보다 나은 길을 향해 가는거야. 넌 이미 '최선'을 알고 있어. 그리고 이 문제 또한 결국 '이 답'을 향해 멀리 돌아온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거지. 아마 그 답은 지금의 날 있게 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나와 나의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란 걸 넌 잘 알고 있어.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자. 열심히 살자"이건 정말 보상심리와는 다른거야. 결코 ‘내가 열심히 하면 누군가가 알아주겠지’. ‘신이 돕겠지’가 아냐. 이건 정말 순수 열정이야. 열심히 사는 것. 열심히 삶을 살아감으로써내 존재를 내가 스스로 인정한다면아.... 이건 정말 고차원적이 행복이다..그건 날 둘러볼 때 아무런 후회와 여한이 없게 하겠지. 어떻게 열심히 살아가야 되냐고.?너 다운 모습으로..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그 자세로 삶에 임하다 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지.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는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말 한마디면 돼. 뭐든지 열심히.. 날 만들고, 나의 우주를 만들어가는거야. 그래 이걸로 군생활 1년의 성장통을 마무리짓자. 지금 이 감정과 이 기분이면 앞으로의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어.나약해지지 말자. 다행이야, 오래걸리지 않아서..정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야...
우리 모두가 예술가다. 하나하나가 보석이다.
2009.2.28
국악공연은 매우 흥겨웠다.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예술가들의 조직에 진심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 그들에게의 끌림. 무대위에서 페르소나를 쓰고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노력이 마음 깊숙히 느껴졌다. 정말 그들은 멋졌다. 예술가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며, 그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쯤이 될까. 알면 알수록 이 땅위의 예술가들은 존경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삶을 살아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의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다. 요새 왜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멋져보이는 걸까. 자극이 되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하나하나가 보석이다.
내 존재의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Merry Christmas
2008.12.24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사람들에게 전화도 걸어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고 싶었지만, 너무 힘이 빠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엔 밤새 영화를 보고, 아르바이트도 했었지. 난 행복했었지. 지금 나는 행복할까. 하루에도 몇번이고 행복에 대한 감정이 바뀐다. 지금 난 행복하다. 지금 내 곁에는 없지만 나와 마음을 함께 먹고, 같이 춤추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서만 나의 행복을 찾으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내 어린시절 크리스마스를 함께 했던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너무 행복했었는데. 정말 친했었는데 끝까지 함께할 친구들일줄 알았는데. 왜 난 소중한 것들을 너무도 쉽게 잊었을까. 내가 거만해졌던 걸까. 그들 없이는 나도 없는거였는데.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어. 잊고 지내던 친구들을 찾아떠나는 여행의 영화. 어떤 모습을 하고 살든 자신있게 당당하게 살아가면 되는건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지.. 자기 혼자서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한심한 생각도 없을거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장하며, 느끼며, 인생의 참된 가치를 느끼는 것.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혼자가기 위해서 필요한 무소의 뿔을 단련시키는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일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권리, 그런 권리는 나에게 없다. 오로지 나에겐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며 원만하게 살아가야할 의무가 존재할 뿐이다.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을 향한다.
2008년 12월 24일, 내 군대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여러 생각이 많이 든다. 다행이다. 글을 쓰면서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일깨울 수 있다니. 모든 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진심은 와닿는 법이며, 진심은 통하는 법이며, 진심은 누구나 공감하는 법이다. 후임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그런 진심어린 행동에서 나의 행복은 시작되지 않을까. 언젠가 내 후임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지?" 한참을 생각하는 후임에게 내가 먼저 대답했다. "진심이 아닐까?" 크리스마스 이브다. 내 존재의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Merry Christmas..!
사람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12월의 한 때
2008.12.13
군대에 와서 이렇게 맘 편히 오랫동안 늦잠을 잔적은 오랜만이다. 그리고 내가 주말 아침에 식사를 안한 것도 또 처음이다. 아... 잠이 안와도 계속 누워있는 게으름... 역시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우니까 기분 좋다. 2008년이 이제 약 2주 남았다. 2008년이 흘러간다. 12월의 기분은 예측할 수가 없구나....괜히 따듯해지고 싶기도 하고.... 나의 2008년은 어땠을까.
2008.12.16
아... 사람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난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2008년 11월 8일
박완서 님의 '그남자네 집'을 모두 읽었다. 더 이상 책을 연체할 수 없어서 좀 급하게 읽긴 했지만, 많은 것을 느낀 소설이었다. 책과 영화와 음악이라는 것은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접하게 될 작품을 더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내게로 온다.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을 끌어안고 싶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끌어안으면 난 결국 사람으로 향하겠지.
잊지못할 신흥고의 하교길
2008년 4월 17일
여름이었다. 얼마남지 않은 수능 준비로 늦게까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자율학습의 분위기는 어느 고3 교실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면서 산만했다. 더운 날씨에서도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집중을 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하지만 결코 입시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따. 그저 하루 빨리 입시 공부를 마치고 수능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 모두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나의 가슴은 콱콱 막혀왔다. 그날 저녁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힙겹게 공부를 하고있던 우리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는 너무도 반가운 손님이었다. 비는 야간자습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그 날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오자 모두들 가방을 싸서 학교 건물을 벗어났다. 건물을 나서며 우산을 펼치고서 걸어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그 순간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책가방에서 CDP의 이어폰을 꺼내 귀에 끼웠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빗방울이 우산에 튕겼다. 내 귓속의 고막을 울린 음악은 척맨지오의 Feel so good 첫 멜로디를 딱 듣는데, 내 몸 안의 모든 신경이 귀에 집중되고 내 주위를 둘러싼 기운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자습을 하는 동안 피로해진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보기도 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하기 위해 메모장에 수많은 글을 적어봐도 풀리지 않던 스트레스와 피로가 그 짧은 멜로디에 모두 해결되었다.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어가면서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그때는 단순히 행복감만이 내 기분을 감싼게 아니라 고 3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모두 녹여주었던 것이다. 눈물이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할 위로를 음악 한 곡에게서 받아서였을까. 그 음악은 내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나의 모든 상황을 받아주는 듯 했다. 그냥 모두 포기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도 다 받아주었다. 황홀했다. 내가 음악 한 곡에 그렇게까지 감동을 받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입시공부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엔, 정말 그거면 충분했다. 입시전쟁에서 멋지게 살아남은 선배들의 성공담도 자신감을 가지라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도 나를 달래주기엔 부족했다.
비가 안내렸더라면 그 기분을 못느꼈겠지. 지구상에 떨어지는 빗방울 한방울 한방울이 음악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음악이 나의 인생의 장면을 영화에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음악이라는 배경음악을 삽입함으로써 삶의 장면들이 멋진 영화로 탄생한다. 음악은 그 때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켜 우리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더욱 크게 웃을 수 있게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인생은 매우 즐겁게 살아갈 맛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음악과 영화. 정말 아무리 힘든 일이 내 두다리를 꿇게하더라도 일어설 수 있다. 영화와 음악이 있다면. 고3때 야자를 마치고 우산을 쓰고서 빗속을 걸어갔던 그 하교길에서 흘렀던 음악처럼만 나를 감싸준다면 난 정말 미치도록 내 인생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