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맞이한 도쿄의 첫눈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맛있는 야키토리, 시원한 생맥주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시부야에서 밤을 지샌 우리들이 가게를 나선 건 아침 6시 정도였다. 그날 밤,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료코는 출근이 8시였고, 류타군은 10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먼저 가야했던 둘을 배웅해주기 위해 도겐자카도리를 내려와 센타가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 마침 프리쿠라(스티커사진) 샵을 지나가다가 내가 모두에게 프리쿠라를 찍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해서든 모두와 즐겁게 밤을 지샜던 그 날을 조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나보다.
참! 이날 밤 류타군과 모자를 교환했다. 내가 류타군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을 때 류타군도 나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며 자신이 쓰고있는 중절모를 주었고 나도 나의 헌팅캡을 류타군에게 주었다.
그리고 영화 같은 일은 지금부터!
한 10분동안 프리쿠라를 찍고 나오니, 아까까지만해도 비였던 것이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과 비와 섞여서 내리고 있었는데 비가 많아지기도 하고, 조금 기다리면 눈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도쿄에서 처음 맞이하는 눈이기도 했다! 일주일간 홋카이도에서 눈 속에서 파묻혀 지내다보니 눈은 이제 질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도쿄에서 맞이하는 눈은 또 달랐다. 10개월간 일본에 머물 때도 도쿄에서 눈을 본 적이 없었다. (2010년 2월 7일에 한국에 돌아왔었는데, 바로 다음날 도쿄에 폭설이 내렸다.)
게다가 이날 아침에 내린 눈은 올 겨울에 도쿄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이라고 했다. 나에겐 도쿄의 첫 눈이었고, 친구들에겐 올 겨울 첫 눈이었다. 마스미는 눈을 맞으며 계속 행복하다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건 기적キセキ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의 기적이다.
료코와 류타군은 출근을 위해서 빨리 전차를 타야했지만, 우리들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쳐다보았다. 아마 20분 넘게 쳐다본 것 같다. 한국에서 눈이 내릴 때도 그렇게 오랫동안 눈을 보기 위해 위를 쳐다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맞이하는 첫눈은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비기도 했고, 눈이기도 했고, 진눈깨비이기도 했다.
눈을 감상하는 일이 그렇게 신났던 적은 처음이다.
그 날 아침 첫눈을 즐겁게 감상하고, 류타군과 료코는 먼저 들어갔다. 둘 덕분에 정말 즐거운 밤이었다.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남은 우리 네명은 아쉬움을 달래기위해 가라오케에 갔다. 우리들이 자주갔던 歌広場(우타히로바)에 가서 두시간을 부르고 나오니 아침 해가 완전히 밝아 있었다. 어느새 눈은 완전히 그치고 비만 내리고 있었다.
시부야의 명물! 충견 하치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1년 전 그때처럼
시부야는 서울의 신촌 혹은 홍대 같은 곳이어서 늘 젊은이들로 붐비고 시끄러운 동네다. 시끄러운 동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시부야가 정말 좋다. 가장 많은 추억이 담겨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은 만남의 메카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라서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약속은 '하치코 동삼 앞'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동상이 되어서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 하치코처럼,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헤어진 장소는 시부야渋谷역이었다. 우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화이팅을 했다.
시부야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진행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혹은 연락이 뜸해지다가 서먹해지기도 하는 세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해야하는 이유는 어떤 관계라도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가 모이고 모여 멋진 영화가 된다. 길고 길었던 행복한 하루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