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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일본과 일본인

 내가 느낀 일본과 일본인

비행기를 타고서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기억난다.  공항에서 전차를 타고 숙소까지 갈 때는 너무도 까마득했다. 모든 표지판들이 일본어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들도 전부 일본어였다. 그때는 정말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코마고메駒込'까지 가기 위해 정말 필사적이였다. 전차를 타고 가는 내내 별별 생각들이 들었다. 일본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처음 생활해 본다는 설렘이 컸다.

숙소에 정착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설렘은 많이 진정이 되고 점차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다. 일본은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닌 더 먼나라로 갔더라면 적응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은 한국과 가까운 나라여서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처음에는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들이 눈에 보이고, 그런 점을 발견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다. 사람들의 특성을 시작으로 해서 길거리의 풍경, 슈퍼마켓 진열대의 상품들, 전철 중심의 교통 시스템, 뭐든지 한국보다는 작은 물건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일본에 있다는 걸 느끼려고 했다. '이런 점은 일본보다 한국이 좋다. 저런 점은 한국보다 일본이 잘 되어있네.'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 정석으로 돌아가는 사회

 처음에는 많은 부분들이 불편으로 다가왔는데 초반에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일처리가 늦은 사회 시스템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절대 한국인에 비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생활하거나 행동이 느린 사람들은 아닌데도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매우 더디였다. 조금만 더 융통성을 발휘해서 일을 처리한다면 빨리 끝낼 수 있을텐데라며 마음속으로 답답해 하였다. 어느 경우에도 일본인들은 일을 대충 대충 처리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설령 상대방의 시간을 뺐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수속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밟는다. 나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만일의 사고에 대하여 철저한 대비를 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모두 고객에게 전달해줌으로써 '자신은 충분히 고객에게 전달사항을 모두 전했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핸드폰을 개통할 때에도 시간이 정말 오래걸렸다. 핸드폰 상자안의 부속품을 모두 꺼내어 일일히 설명해주고 계약에 대해 꼼꼼히 확인하였다.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도서관회원증을 만들 때도 도서관 직원은 나에게 도서관 이용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었다. 뚝딱하면 바로 나오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조금은 나와 같이 느꼈을 것이다. 참, 그런일도 있었다. 우연히 일본 기상청의 기후 박물관에 가게 된 일이 있어서, 쭉 한번 가볍게 둘러볼 생각하며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상청의 직원이 다가오면서 자신이 안내를 해주겠다며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하나하나 열의를 다해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너무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서 안내를 거절하기에도 난처했다. 아마 박물관이라는 곳에서 그렇게 유심히 설명을 들어가며 전시품들을 구경했던 적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회원 등록을 마쳤는데도 직원이 도서관 이용가이드와 몇몇 안내서를 4장이나 보여주면서 20분 넘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본인들은 이런 경우 대충 넘어가는 일이 절대 없는 것 같다. 핸드폰을 만들고, 통장을 만들 때도 거의 설명만 30분 넘게 들었다. -2010년 4월 16일 일기 中 - "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지 않고 꼼꼼하게 진행해나가는 일본의 사회시스템과 국민성, 융통성을 발휘하여 속전속결로 해결하는 한국의 사회시스템과 국민성이 잘 조화를 이룬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국민성과 사회시스템으로 발생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것이고 사회 구성원의 만족도도 올라 갈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워킹홀리데이 경험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서술을 하다보니 포괄적이지 못하고 글이 너무 길어지고 마는 것 같다.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져봤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만한 내용만을 쓰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글의 방향을 전환해서 워킹홀리데이 경험에서 느낀걸 위주로 써내려가야겠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을 위주로 정리해 보자면,

먼저 자립심과 자신감이다.
나에게 일본에 나간다는 것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한국과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다를 건너 가야만하는 외국이다. 그런 사실이 생활 초기에 나를 매우 긴장시켰다. 무엇보다 아프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도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고, 병원이나 약국에 찾아가 증상을 설명할 때 난감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런 환경이 사람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하루 빨리 인맥을 넓혀가는게 중요했기 때문에 가능한한 일본어를 말하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런걸 보면 어쩌면 처음에는 나의 필요에 의해서 인간관계를 넓혀갔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귀지 않으면 이대로는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 대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오티에 가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는 딱 하루밖에 만난 적없는 친구들이었는데도 괜히 혼자 수업을 들으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시간표를 같이 짜기도 했고, 이런 저런 동아리에도 많이 가입하면서 인맥을 적극적으로 넓혀가려고 했다. 일본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 관계의 끈을 견고히 하기 위해 자주 말을 붙이고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였다. 사람은 낯선 환경에 서있게 될수록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 같다. 아마 그런 특성은 내가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도 그랬듯이 모두와 깊게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 일본인들과의 관계가 깊어져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사람 사이의 진심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한국인, 당신은 일본인이라는 사실관계가 무척 중요했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이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라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부터 그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앞에 있는 사람을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라는 기본 토대 위에 세워놓고 그 사람을 그려나갔다. '한국인은 이렇고, 일본인들은 이런걸 좋아하고 저런 걸 싫어하지.' 등의 생각들이 따라다닌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에 있는 사람의 국적은 그 사람을 판단하기에 너무도 작은 힌트라는 걸 알았다. 그런 걸 알아갈 때 조금은 머리 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 '아니 왜 이 친구는 일본인인데도 이렇게 행동하지.' '한국인답지 않네.' 사람을 바라볼 때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편견들이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묶어주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던 것이었다.

(끝내지 못한 글)

일본 워킹홀리데에 인연이 닿기까지

2011년 2월 27일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온지 20일이 되었다. 대학 복학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예정보다 조금 일찍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 동안 계속 일본 앓이를 해서 뭐하나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개강 시기가 닥쳐서야 어서 정신차리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 개강을 맞이하기에 앞서 지금의 나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무언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워킹홀리데이로 보냈던 지난 10개월의 시간이다. 이번 글을 쓰는 걸 끝으로 지난 시간을 추억으로 고이 묻어둬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일본 워킹홀리데에 인연이 닿기까지

나의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정말 뜬금없이 계획된 것이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하였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일본어를 대학교 때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군대에 온 이후로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다가 병장 말년이 되어서는 일본어 시험을 보게 되었고 2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일본에 간다는 생각같은 것은 없었다. 일본에 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나의 애매한 전역 날짜였다. 나의 전역일은 3월 22일이었는데, 학교에 복학이 가능한 날짜가 3월 21일까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 행정실에까지 전화를 해서 겨우 하루 차이인데 어떻게 안되겠냐고 사정까지 했었다. 학교 행정실은 정부의 방침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나의 복학을 불허하였다. 결국 이번 학기는 휴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휴학을 한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기, 학원다니며 공부하기, 자격증따기 등등 여러가지 대안이 나왔다. 그리고 그 중 한가지 대안이 일본 워킹홀리데이였다. 그 때가 1월 중순이었는데 조사해보니 2월 초에 2010년 1분기 워킹홀리데이 비자 접수를 한다고 했다. 일단은 여러가지 대안 중 한가지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다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들이 많아서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점점 더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부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서류들을 가족과 친구들이 준비해주었다. 나는 수시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지시를 내리기에만 바빴다. 가족과 친구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모두의 덕택으로 일본 워킹홀리데이에 합격을 했다. 정말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고, 합격을 한 뒤로는 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혼자 공부한 일본어가 전부인데 생활이 가능할 지, 부모님에게 너무 불효를 하는게 아닌지, 만약에 간다면 잘 할 수 있을지 등. 나는 3월 22일 전역을 했고 이미 전역을 한 때에는 이미 마음을 확실히 굳힌 상태였다. 가서 열심히 한번 해보기로.  전역을 한 후 약 20일 동안 급하게 준비한 뒤 나는 바로 일본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기기까지의 과정들을 지켜보면 정말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 그많은 장애물을 거치고 그런 일이 생기니 말이다. 만약 내가 군대에서 남들과 같이 일본어 공부가 아닌 영어 공부를 했더라면, 일본어 시험을 보고서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면, 전역일이 3월 22일 아니라 3월 21일이어서 바로 학교에 복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해군이 아니라 육군이나 공군에 갔었다고 한다면, 가족과 친구들이 서류 접수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안됐더라면....이 중 어느 한가지만 틀어졌다면 일본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예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명 한국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을 쌓은 지금은 가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쉽게 비켜갈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다.

지갑을 잃어버렸던 날의 이야기

지갑을 잃어버렸던 날의 이야기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어. 집에서 외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항상 소지품을 모두 챙겼는지 확인을 하거든. 그런데 늘 지갑을 넣어두던 가방의 주머니에 지갑이 없던거야. 어? 왜 지갑이 없지?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고, 어딘가에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방 안 이곳저곳을 찾아봤어. 어제 입었던 바지의 주머니 안도 살펴보고, 다른 가방 안도 살펴보고. 그런데 지갑이 안보이더라고. 혹시 거실에 놔뒀나라는 생각으로 거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 그런데 거실에서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지. 집 안에서 내가 주로 물건을 놔둘만한 곳을 모두 찾아보았는데도 지갑이 보이지 않으니까 슬슬 식은땀이 나더라고.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렇게 걱정은 되지 않았어. '아냐, 어딘가에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그래서 어제 밤에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콜드스톤이었으니까 콜드스톤을 가보기로 했어. 가게에 가는 동안은 꽤나 마음이 놓이더라고. 자주 락커룸의 락커 안에 물건을 놓고 오는 일이 있었으니까. 분명히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고 전철안에서 천천히 음악을 들으면서 갔지. 가게에 도착해서 찾아보기로 생각했던 곳을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없었어. 잠시나마 평온했었던 마음이 다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지.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서 어제 가게에서 있었던 장소들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어. 분명히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혹시 어제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나서 화장실에 들렸었는데 화장실에 놓고 온게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화장실에도 가봤어. 만약 내가 어제 화장실에 두고 갔더라도 있을리가 없는걸 알면서도 화장실 안을 열심히 찾아보았지. 역시 보이지 않았어. 혹시 어제 화장실을 청소했던 착한 직원이 이 건물의 분실문센터에 물건을 맡겨두지는 않았을까? 꼭 착한 직원이어야만 했어. 혹심을 가진 직원이라면 분실문 센터에 맡기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건물의 분실문센터에 갔어. "혹시 어제 분실된 지갑 들어온 거 있나요?" "잠시만요. 찾아보겠습니다." 심장이 막 두근거렸어. 제발 있어야 할텐데. "아뇨 없습니다." "아...네.." 일단 이 곳엔 없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어. 너무 열심히 찾아다닌 나머지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더라고. '참, 어제 요시노야에서 저녁밥을 먹었지? 혹시 거기에 놔두고 온건가? 하지만 어제 저녁을 먹고나서 바지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동전으로 지불했었으니까 지갑을 안꺼냈었잖아.' 하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요시노야에 가보았어. '어제 분실물 중에 지갑이 있나요?" 직원은 물 한잔을 건네주면서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아주 정성스레 서류를 살펴보더라고.하지만 역시 지갑은 들어오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지. 이제서야 상황이 조금씩 심각해지는걸 느꼈어. 모든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나의 필수품들이 담긴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앞으로 얼마나 골치아프고 번거로운 일들이 많을지 생각하자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어. 그런데 그 마음을 내가 유지하고 싶지 않았던거지. 빨리 잃어버린 상황을 받아들이는게 마음이 편할거라고 생각했어. 나의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린거니까 빨리 잊어버리자. 빨리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하자. 그제서야 정말 조금씩 마음이 놓이더라. 휴.... 그게 아마 10분정도 사이에 내마음에서 폭풍같이 일었던 모든 생각들이야. 내가 이렇게 마인드컨트롤에 강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대견스럽기까지 하더라.

그런데 결국 지갑은 찾았어. 락커룸안에서 락커 위에 놓았던 거지. 하하. 그리고 그 때의 그 마음.이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듯

どんな雨だって絶対晴れるからぁ 내일은 오늘보다 좋은 날이고, 모레는 내일보다 좋은 날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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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주일은 정말 길었다. 일주일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랬을까, 정말 길게 느껴진 일주일 이었다. 덕분에 스스로도 내적 성장을 한 일주일 이었다. 먼저 지금까지 잘 나가고 있던 카페를 그만둔 일이 있었다. 카페의 점장과,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의 기대에 조금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평소와 똑같이 열심히 카페 일을 마치고 밤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페의 점장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장문의 메일이었고 오늘 일했던 사람들을 꾸짖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읽고나서 납득이 안되는 부분도 있었고, 정말 내가 부족한 부분인가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벌써 5개월 째 카페에서 일하다보니 내 스스로 매너리즘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점장님으로 부터 메일을 받은 날, 밤 늦게까지 잠을 못이루고 계속해서 메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내가 너무 카페에 대해 책임을 안가지고 일했던 건가.' 솔직히 나는 카페에 일하면서 카페의 매출 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을 웃는 얼굴로 맞으면서 손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곳에서 일하는 자기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직원들끼리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본인이 노력할 수 있는 바 노력하면서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점장님으로부터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는 메일을 받아서 허무함이 너무 컸다.

일본에 와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두 개 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늘 누군가가 피곤해보인다며 괜찮느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대답은 하지만 정말 괜찮았던 것일까. 너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탓에 나도 모르게 일을 즐겁게 하지 않았던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밤 카페의 점장님에게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정말이지 힘든 결정이었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일본어도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채용을 해 준 덕분에 일본어 실력이 늘은 것도 카페의 덕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는 메일을 보낼 당시에는 본인도 잘 몰랐지만, 당시 점장님의 메일에 실망을 한 기분 탓이 컸던 것 같다. 그 후 카페의 일 때문에 아이스크림 가게의 일을 할 때도 기운이 없었다. 역시 사람이 기운이 없을 때, 평소처럼 기운을 내서 일을 하려고 해보지만, 누구든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다 알아채는 것 같다. 콜드스톤의 친한 동료 마스미가 연유를 물어와서 카페의 점장님과 있었던 일을 조금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콜드스톤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마스미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飲んでますかぁ
元気ですかぁ
さっきは話を聞かせてくれてありがとう
楽しいことはもっと楽しく ちょっぴりつらいことも 出来るだけ楽しくなれたらいいね\(^ω^)/
友達だもの~
私はカフェの人のことを全く知らないけれど、少し話を聞いただけでジャスティンの気持ちが伝わったよ
だからきっと
カフェの店長にもぜーったい伝わると思うんだ
世界中の何億人もの人たちの中で出会えるって奇跡みたいなこと 私はジャスティンとずっとずっと仲間でいたいよ~~~
ジャスティンは素敵な存在なんだからぁ~
ぜひカフェの人たちとも仲直り出来ますように
辞めるにしても スッキリして辞めたら、お店にも遊びに行けるじゃない
 ジャスティンが『今まで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ってお別れしたいって言ってたの、
素晴らしいなぁと思いますみ 全ての人に感謝感謝~だねナイス心気
 なんだか上手に表現出来ないけど 明日は今日より良い日に、明後日は明日より良い日になりますように\(^ω^)/
元気だしてね . どんな雨だって絶対晴れるからぁ~~~~smile

한잔하고 있으려나? 괜찮아? 아까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즐거운 일은 더 즐겁게, 조금 괴로운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친구라는거.
나는 카페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전혀 알수 없지만, 저스틴에게 이야기를 조금 들은 정도로 그 기분이 전달됐어
그러니까 꼭 카페의 점장에게도 반드시 전달될 거라고 생각해
세상에 수억명의 사람들 중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야.
나는 저스틴과 계속 좋은 사이로 있고 싶어. 저스틴은 멋진 존재니까.
꼭 카페의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길 바랄게.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좋게 그만둔다면 나중에 다시 가게에 놀러갈수 있지 않을까.
저스틴이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던 거,
훌륭하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건 좋은 마음이야.
뭔가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좋은 날이고, 모레는 내일보다 좋은 날이 되길 바래. 힘내. 어떤 비라도 그 후는 반드시 맑음이니까. :)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친구들로부터의 작별 편지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친구들로부터의 작별 편지

좀 더 자주 꺼내보고, 좀 더 자주 추억하고, 평생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넘기 힘든 장애물을 만났을 때 힘을 얻기 위해서

justin is the best
저스틴의 high tension에 나는 언제나 Happy를 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언제나 고마워. 저스틴의 웃는 얼굴 つぼ입니다.(つぼ?)
저스틴이 오고나서 콜드스톤의 남자들이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Soul Friend 로 우리들에게 있어주세요. -료코

벌써 한국에 돌아가버리는군요.. 나는 별로 쉬프트에 들어가지 않아서, 함께 일하지 못해서 정말 유감이에요. 하지만 함께 같이 쉬프트 들어갔을 때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언제나 밝고 힘넘치는 저스틴은 주위의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게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도 활기차게 있으세요. 다음에 한국에 놀러가겠습니다. -난시

한국에 돌아가지마~ 쓸쓸해~ 저스틴이 함께하면 언제나 행복해져서 정말 즐거워. 노래도 춤도 너무 최고야. 알로하 에코모마이~ 또 일본에 놀러 와~ 기다릴게. 지금까지 고마웠어. -치로

저스틴과의 추억은 이렇게 작은 종이에 모두 적을 수 없어. 슬퍼. 저스틴이 시부야에 와줘서 정말 분위기가 변했어. 밝아졌지.솔직히 말하면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본에 있어줘! 그것이 안된다면 바로 일본에 돌아와줘. 사랑해요~ -히메

저스틴을 만난 것은 나나의 보물입니다. 언제나 활기차게 모두에게 힘을 전해주는 저스틴은 시부야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 졸업해버리는 건 슬픕니다. 돌아가지마-. 하지만 언젠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때는 나나도 섹시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웃음)많은 happy를 줘서 고마워. 다이스키~ -나나

저스틴, 한국에 돌아가 버리는 구나. 슬퍼요. 저스틴과 함께 일하면 언제나 즐거웠어. 여행 이야기도 많이 했었지. 나도 아직 가고 싶은 나라가 많이 있으니까, 한국의 안내는 저스틴에게 맡길게.(웃음) 꼭 갈테니까! 저스틴 일본어가 능숙하고 언제나 밝고 주위의 사람을 즐겁게 해줘. 한국에 돌아가도 힘내! 콜드스톤에서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워. -히짱


저스틴은 언제나 일하러 오면 "모요카~ 좋은 하루~!" 라고 활기차게 말해주는게 정~~말 좋았어. 마감일도 언제나 열심히 해주는 저스틴은 훌륭한 남자, 멋진 남자! 저스틴이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모습도 정말 좋아했어. 지금은 시부야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 저스틴은 언제나 시부야의 BIG BANG 이니까. 한국에 이끄무니다.(行くムニダ 가겠습니다). 아이러뷰. -모요카

저스틴 다시 일본에 올 때 우리집으로 묵으러 와!
-키라

안녕하세요, 저스틴 1년간 수고했어. 언제나 활기차고 붙임성있는 저스틴은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구나. 무척 배려심이 많고 언제나 일을 잘하는 저스틴을 보고 나도 많이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 뭔가, 저스틴이 "나이스 클린~"이라고 말해주면 신기하게도 힘이 났었지. 기운이 넘쳐 흐른다고 할까. 즉 저스틴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활기차게 해주는 힘이 있어. 한국에 돌아가도 그대로 힘차게 달려! 언제나 기운찬 저스틴도 일본어를 잘하는 저스틴도 일을 열심히 하는 저스틴도 전부 멋져. 앞으로도 힘내! 또 시부야에 놀러와. -나오

저스틴, 돌아가지마! 한국까지 쫓아갈거야. 저스틴을 만나서 좋았어. 콜드스톤 시부야를 잊지마. -사야카

안뇨하세요-! 저스틴! 결국 가게되는구나. 쓸쓸하네, 정말로. 저스틴은 나에게 많은 힘을 줬어. 저스틴은 나를 많이 웃게 해줬어. 한글로 도우조~ "언제라도 언제까지라도 넓디 넓은 세계의 어디에 있을지라도 둘도 없는 친구로 있어줘. 난 너의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할께. 지금까지 여러가지로 고마워.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 -Jury

저스틴, 기억하고 있나요? 마-양이에요. 한국에 돌아가버리는 군요. 셀수 있을 정도로 밖에 쉬프트에 안들어가서 저스틴과 겹친게 얼마 없어서 서운하네요. 귀국하면 다시 여러나라에 간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콜드스톤 시부야 마크시티점의 크루, 저스틴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인기있을거에요.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요. -마양

졸업 축하해. 저스틴이 결국 졸업을 해버리다니 서운해요. 여름에 롯폰기점으로 와줬지! 아자부주반 마츠리 즐거웠어. 유카타 어울렸어. 시부야 분위기 메이커로서 손님과 모두에게 웃는 얼굴을 끌어내줬어. 고마워. -세키마이

저스틴 한국에 돌아가버리는구나. 서운해. 처음에 저스틴이 왔을 때는 솔직히 너무 어색해서 별로 이야기를 못했지만. 지금은 놀랄정도로 정말 좋아해. 많이 웃어서 즐거웠어. 시부야에 와줘서 고마워. 다시 돌아와. 마시러가야지~! -레냥


저스틴과 함께 일을 시작한 때가 같았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어서 기뻤어. 디즈니랜드에 가기도 하고 밥도 먹으러 가서 너무 즐거웠어. 지금에서는 글리스토에 빠졌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어. 저스틴은 최고의 친구야.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어. 언젠가 K짱과 함께 한국에 가면 안내해 줘. 한국에도 저스틴다운 모습 잊지 말고 힘내!! -오도리

마음을 담아서 감사함을 보냅니다.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고싶도록 생각하게 해주는 저스틴은 정말 멋진 사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함께 많이 웃어서,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요, 저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기분이란 건, 시간으로는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밖에 함께 있을 수 없었지만 저스틴을 정~~~~~말 좋아합니다. 근 수개월동안 쌓였던 추억 전부가 보물입니다. 지금부터는 따로따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지만, 평생 친구인거지? '사요나라'(안녕さよなら:작별인사)는 싫어. '그럼 또보자'(またね마따네)라는 말이 좋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기분이 드니까. 절대, 계속, 잊지않을거야. 봄이 되면 벚꽃(桜사쿠라)을 보고서, 여름이 되면 불꽃놀이(花火하나비)보고서,가을이 되면 단풍(紅葉코요우)을 보고서, 겨울이 되면 눈(雪유키)을 보면서 계절과 자연을 좋아하는 저스틴을 떠올릴테니까. 1년 동안 계속 기억할게. 고마워. 생애의 우정을..(生涯の友情を쇼가이노 유죠오) -마스미

언제나 밝고 활기찬 저스틴. 항상 "유유 잘지내? ゆうゆう 元気?" 라고 물어봐줘서 고마워.
저스틴과 있으면 기운이 생겨. 그런 저스틴이 돌아가버리는 건 정말 너무도 서운합니다. 시부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좀더 여러곳을 함께 가고 싶었는데.. 한국에 꼭 놀러 갈게.! 다정하고 신사적인 저스틴, 정말 좋아해. - 유유

졸업 축하해! 일본은 어땠어? 돌아가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겠네. 저스틴은 언제나 밝아서 함께 쉬프트에 들어가면 즐거웠어. 분위기메이커였지. 하지만 공부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진지한 면도 있었지. 이야기해서 즐거웠어. 앞으로도 꼭 Good Luck -아이


저스틴, 수고했어. 저스틴에게 하는 말은 "일본에 와줘서 고마워" 라는 한마디로 보낼게. 무척 즐거웠어. 저스틴이 일하러 오면 모두가 즐거운 듯 했지. 모두의 기분을 업시켜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저스틴의 밝음, 진지함, 큰 목소리 모두가 시부야팀에게 좋은 것들을 가지게 해주었어. 저스틴 대단해. 저스틴도 좀 더 일하고 싶었어. 아이코토바(合言葉모토,슬로건)는 "왓쇼-이!! わっしょーい" -유카리

지금은 모두에게서 받은 메세지를 읽으면서 웃고 있으려나. 울고 있으려나. 다정한 눈으로 편지를 읽고 있을 저스틴이 상상이 돼. 저스틴은 정말 정말로 밝고 즐겁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줘.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위의 사람을 생각해주고, 마음이 고운사람이야. 저스틴 덕분에 나도 콜드스톤이 더욱 좋아졌어. 저스틴이 있는 시부야를 정말 좋아해. 저스틴이 "미사미사~ 좋은 아침~! 미사미사~ 오랜만이네~!" 라고 말해주는 거라든지 손님에게 웃음을 주는 거라든지, 그런 것들 전부로부터 힘을 얻었어. 저스틴이 있는 것만으로 나는 기운이 생겨. 저스틴을 평생 잊지 않을게. 잊을리가 없어. 한국에도 놀러 갈게, 기다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고마워. -미사미사

저스틴이 한국에 가버리다니 믿을 수 없어. 시부야에 와줘서 겡끼 입빠이니(元気いっぱいに 힘 가득(?)) 일해줘서 시부야의 크루 모두를 웃게 해줘서, 저스틴이 가지고 있는 파워, 정말 ハンパないです。(함빠나이 : 다차지않는다(?)) 언제나 최고의 행복을 줘서 고마워. 시부야에 와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활기차게! -인쵸

언제나 밝고 힘찬 저스틴. 친절하고 매우 신사적이고 너무 멋집니다. 저스틴의 접객은 손님을 즐겁게 해주고 확실히 Make people happy 라고 생각해. 마루코는 저스틴처럼 접객을 하고 싶어! 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 게다가 저스틴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손님에게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크루 전원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저스틴이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파워가 생기고 밝아지고, 뭐라고하든 모두가 즐겁게 되는 것! 그런 저스틴을 모두가 정말 좋아하고, 마루코도 정말 좋아해. 한국에 돌아가버리는 것은 정말 서운하고 유감이지만 한국은 바로 옆나라이니까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우리들은 좋은 친구이고, 떨어져있어도 한 팀이야! 저스틴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마루코

저스틴, 시부야에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또 언제든지 돌아도록 해. 시부야점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저스틴을 만나서 함께 일해서 정말 최고였습니다.고마워  - 시부야점 점장님 이시켄

저스틴가 없어져 버리는 건 정말 서운해. 처음부터 무척 행복한 사람으로서, 모두에게 힘을 주었어. 저스틴이 일할 때 "몬로~ 좋은 아침~!"이라고 말해주는 걸 정말 좋아했어. 한국에 돌아가도 그대로의 Happy Justin으로 있어야 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할게. -몬로

사실은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서운해. 저스틴과 함께 쉬프트가 있는 날이면, 저스틴이 오는걸 기다리는게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K짱~ 좋은하루~" 라고 말해줘서 무척 기운을 얻었어. 저스틴과 오도리와 갔던 디즈니랜드와 정말 즐거웠어. 다시 한번 가고 싶어! 언제나 힘을 주는 저스틴의 존재는 BIG 이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 놀러갈게. 좋아해. - K짱

한국은 가까우니까! 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그 사이에 저스틴을 만나러 갈지도! 그러니까 그때까지 얼굴 기억해야 되. 언제가 다시 시부야 콜드스톤에 놀러와. 건강해 - 아루노

아~ 결국 이때 왔구나. 서운하고 서운해서 어쩔 수가 없어.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저스틴의 Happy ~ 놀랐습니다. 저스틴과 함께 쉬프트 들어가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이 되고, 정말 즐겁고, 최고였어. 또 한국에 만나러 갈게. 이별이 아니야. 사랑해요. -아짱

사랑해. 만나서 정말 좋았어. 고마워. 저스틴은 언제나 활기차서 내가 기운이 없을 때에 언제나 저스틴의 밝음에 힘을 얻었어. 저스틴은 태양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한국에 놀러가면 같이 놀자! - 수잔

출근하면서 가볍게 건네는 "좋은 하루!" 라는 말 한마디가 모두에게 그렇게 힘이 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정말 너무나도 부족한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준 모두가 고맙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라는건 시간으로는 정할 수 없는 거라던 마스미의 말처럼, 짧은 9개월간의 만남이었지만, 정말 이 친구들 모두와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평생 가슴에 안고 가고 싶다.

모두가 나의 밝음과 활기에 도움받았다고들 말해주었지만, 나야말로 당신들에게서 도움을 받았고, 내가 받은 그것은 백배 천배 큰 가르침과 행복이었음을 알아주길.

게스트하우스 에도야소게스트하우스 에도야소우에서 만난 친구들우에서 만난 친구들

게스트하우스 에도야소우에서 만난 친구들
http://ksi8084.blog.me/40124237254


일본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시작은 내가 살았던 곳, 江戸や荘에도야소우였다. 무엇보다 에도야소우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감사해야하는 것이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일본 생활에 쉽게 적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하루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줬던 유헤이상, 성격이 비슷해서 말이 잘 통했던 동갑내기 친구 이나다군, 친형제처럼 지냈던 쿠리하라상, 일본생활의 멘토가 되어주었던 오카다상, 좋은 집과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준 시라이상,  항상 나의 일상을 물어봐줬던 스기야마상 그리고 일본에서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게 해 준 한국 친구들 미순이,주영이,수경누나, 상우형 등. 모두에게서 은혜를 입었다.

유헤이상이 처음에 나에게 럭키가이라고 말해줬던 걸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일본생활은 정말 럭키였다. 좋은 집을 구하고, 그 집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일자리를 얻고, 또 그 일자리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걸 보면 말이다. 정말 너무도 감사하다. 조금이나마 그 사람들을 자주 기억하고, 자주 꺼내보기 위해서 이 곳에 그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들을 모아본다.

유헤이상 林 雄平さん
에도야소우에는 나와 같은 날 입주를 했다. 그 후 일본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움을 주었다. 대화도 많이 걸어주고 일본어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함께 도쿄 드라이브도 하고, 불꽃놀이도 가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 !


"내가 한국에서 혼자 공부한 일본어랑 현지에 와서 접하게 된 일본어랑 너무 달라서 정말 어렵다고 말하자, 유헤이상이 오늘 나에게 이런말을 해줬다.
   難しいことは面白い. 易しいことはつまらない。
   어려운건 재미있는거야. 쉬운건 재미없어. "
-4월 15일 일기

[유헤이상, 일본에 와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하나 같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뿐이에요. 아무래도 일본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는게 사실인 것 같아요]
[에이, 그건 아냐. 아직 온지 한 달도 안되기도 했고... 일본에 계속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텐데 그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지는 않아. 모두 다 다르지. 너가 일본에 와서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니가 'ラッキガイ 락키(LUCKY )가이' 이기 때문이야. 내가 생각해도 넌 럭키야.]
-5월 6일 일기

[유헤이상, 정말 이따가 비행기 타고 태국 가는거 맞죠? 3주 동안요.]
[어 맞아]
[전혀 해외여행 가는거 같지 않아요, 유헤이상..]
[해외여행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해.그냥 집 앞의 콘비니(편의점)에 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가는거지 뭐.]
유헤이상 같은 수많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이 지구 위를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멋지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지만 그들에겐 털끝만치도 못 미치는 나 같은 영혼들에겐 너무도 멋져 보인다.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영혼. 아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하는 영혼은 결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없겠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자체가 자유롭지 못한거니까. 그냥저냥 그 정도의 영혼이 되어 살아가련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5월 8일 일기


이나다군 稲田 和彦くん
동갑내기 친구 이나다군. 같은 날 집을 보러갔고, 나보다는 일주일 뒤에 입주를 했다. 동갑이고 성격이 비슷해서 정말 많이 통했던 친구다.
마지막에 하코네 온천 여행을 함께 갔던 게 정말 좋았다. 나와 똑같이 평범하고 지루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멋진 일본의 젊은이다.

일본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할 때 일본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활동 계획서'를 작성하는게 있는데, 나는 그 계획서에 '일본의 대학생들의 생활은 어떻고, 한국의 대학생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한데 교류를 통해 알고 싶다.' 라는 내용을 적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에도 룸메이트로 나와 같은 학번의 대학생 친구를 만나 궁금한 점을 모두 해결할 길이 열렸다. 아직도 많이 알고 싶은게 많은데 계속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私たちは若いだから。우린 젊으니까
まあね、わかいかな 글쎄..젊은걸까 하하하
-2010년 4월 18일 일기

나 -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 멋지다, 이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이나다 -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쉽지 않지.
이나다 - 응, 세상은 워낙 넓으니까
나 - 하지만 결국 '세상'이란건 내가 속한 '세상'을 말하는 거니까. 그 세상을 바꾸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닐거야.
이나다 - 그런가. 잘 모르겠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생각들이 말 뿐 일수도 있는거고.
나 - 아냐, 이나다. 말뿐이라도 괜찮아. 말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는 흔하지도 않고 흔하지 않아서 더 멋지니까.
이나다 - 감동받았어. 이치가 '말뿐이라도 괜찮아' 라는 말을 해줘서.
나 - 너가 생각하는대로 세상이 바꿔지길 기대하고 있을께.
이나다 - 응 기다려

순간 유헤이상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려운건 재미있는거야. 쉬운건 재미없지.' 그러고 보니 이나다군도 그걸 알고 있는건가. 그 진리를.
나 - 이나다, 어려운 건 재미있는 거지. 그렇지?
이나다 - 그런가? 어려운 게 재미있는걸까?
나 - 응. 어려운게 재미있어. 재미있게 사는건 중요하지?
이나다 - 그렇지.
나 -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젊음이지만, 현재를 재미있게 살지 않으면 안돼.
이나다 - 나도 정말 동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 - 맞아. 지금이 재미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2010년 4월 24일 일기

조각의 숲 미술관을 떠나는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 이건 뭔가, 이렇게 영화다울 수 있는 건가. 눈 내리는 풍경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눈이 내린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산마을에 눈이 내리고, 길 건너편 소바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우린 눈 내리는 조용한 역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마시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하행선 등산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풍경이 영화같지 않냐고 이나다군에게 말하니 그저 웃는다.
-2011년 1월 13일 하코네여행기 중


쿠리하라상 栗原 周平さん
가장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 쿠리하라상. 매일 밤 같이 동네를 산책하고 조깅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그리고 쿠리하라상과 나 사이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라오케! 쿠리하라상 덕분에 일본 가라오케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도쿄로 돌아와 멋지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다른 나라에서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나 : 전 학력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에요. 학력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노는 시간에 자기도 놀고 싶은데 놀지 않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좋은 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쿠리하라상 : 물론 분명히 그런 점도 있어. 그렇게 '노력'만으로 학력을 가진 사람들만 있으면 문제가 되진 않아.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좋아서 별 노력없이 공부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잘 받아서 좋은 학력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있잖아. 의사 집안에서 계속해서 의사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
-2010년 5월 30일 와세다대학 구경 갔을 때

楽しくなきゃ意味がない(타노시쿠나캬 이미가나이) -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하루 하루를 재미있게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미래의 일은 나중에 가서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루를 걱정으로 소비해버리면 그건 하루를 재미있게 사는게 아니라고, 쿠리하라상은 말했다.
-2010년 6월 20일

나 : 쿠리하라상, 저도 벌써 일본에 온지 5개월이 되가네요. 5개월 동안 일본에서 생활해보니 정말 제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아요. 그래서 지금 너무도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보니 요새 들어 한국에 돌아가서의 일들이 걱정이 된답니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 대학에 다녀야 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길을 걸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경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고요. 어쩌면 그런 생활에 지쳐서 일본에서 있었던 시간들이 너무도 그리워지면 어떻게 하죠? 지금 현재는 너무도 재미있지만 지금의 시간보다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미래의 일들이 걱정하고 있다니.. 너무도 바보 같은 소리지만 지금의 제 심정이 그런걸요.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야마구치 상을 보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해요. 낮에는 일이긴 해도 자기가 좋아 하는 요리를 하고, 저녁에는 밴드연습을 하면서 한달에 한 두번 정도는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말이죠.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데 회사에 들어가 샐러리맨이 되면 그렇게 사는게 어렵게 되니까,,,
栗原 : 지금의 시간이 즐거우면 그걸로 된거야, 이치. 이치군이라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분명 지금처럼 즐겁게 살수 있을거라고 믿어. 한국에 돌아가서 일본이 그리워져서 일본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냐고? 그땐 다시 오면 되는거야. 그리고 이치군은 예전에 나에게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었잖아. 지금 이치군이 일본에 있으면서 지금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생활이 본인과 어울린다고 생각하겠지만, 혹시 또 모르지, 미국에 가면 지금보다도 더 즐거운 삶을 살지도.
나 : 일본에 다시 오고 싶다고 해서 다시 온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걸요. 대학교 졸업도 해야하고, 취직도 해야하고.. 그 모든걸 포기하고 제가 일본에 오고 싶어서 일본에 왔는데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요.
栗原 :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 하니까. 실제로 실패는 두려운게 맞기도 하고. 나도 실패를 두려워해서 마음에 들었던 여자애에게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한걸. 하지만 실패가 두렵기는 해도, 실패를 두려워해서 무언가를 하지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더 가슴 아프고 아쉬운 일인 걸. 혹시 그 여자애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말이라도 건네볼 걸 그랬나? 라는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지.
나 : 저도 일본에 오기 전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부족한 일본어 실력 때문에 사람들과 말도 안통하고, 일자리도 못구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이 정말 컸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요. 그런 이유들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일본에 가는 것을 반대했었거든요. 하지만 용기를 내서 일본에 왔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있는 걸 보면.. 역시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한가 봐요. 지금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즐거운 삶도 찾아오지 않겠죠?
栗原 : 정확히 맞는 말이야. 인생에서 용기를 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실패는 두려운 것이니까, 실패를 두려워해도 돼. 하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실제로 실패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실패에서 분명 배우는 것도 있고, 우리들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니까.
그러니까 이치군, 지금이 즐거운 만큼 지금의 시간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지금껏 용기를 내서 결정했던 순간들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간다면, 반드시 즐겁게 살 수 있을거야/
-2010년 9월 8일


오카다상  岡田 タカヒロさん
에도야소우에서 여름동안 같이 지냈던 친구. 나이는 많이 차이나지 않는 형이지만, 정말 웃어른처럼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오카다상으로부터는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이런 저런 조언을 많이 들으면서 도움을 얻었다. 일본에서 만난 인생의 멘토다! 지금은 하와이에 있고, 일본 도쿄의 회사에 취직을 해서 올해 5월에 도쿄로 돌아간다. 그 때 한국에도 들른다고 했다!

鮮一君
オカダです。
これからももし、何か悩みや、将来のことで迷ったことがあれば、
たまには話してくださいね。
人生いろんなことがあるけど、いろんなことに挑戦して、後悔しないようにね。
苦しいこと、悲しいこと、大変なことは幸せなことだからね。
ではまた会う日まで。
オカダ
선일군, 오카다입니다.
혹시 앞으로도 고민거리나 장래의 일에 고민되는게 있다면 가끔은 이야기 해줘.
인생 여러 일들이 있지만 여러가지 것들에 도전하도록 해,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지.
괴로운 일, 슬픈 일, 힘든 일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이니까.
그럼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오카다.
-오카다상이 보내온 메일

여보세요? 선일군? 오카다야.
오카다상?! 지금 하와이에서 전화하시는거에요?
응, 하와이야. 여긴 지금 새벽 4시야. 선일군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가지?
네, 3일 후면 한국에 돌아가네요
어땠나 일본은?
정말 좋았어요. 오길 정말 잘했다고 몇 번씩이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돌아가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 좀 할게 있어서 혼자서 나가노로 여행을 왔어요.
아, 그렇군.
제가 돌아갈 날이 얼마 안남은 걸 알고 일부러 전화 준거에요?
응.
고마워요.
선일군과 함께 했던 작년 여름의 에도야소우는 정말 즐거웠어. 라운드원 갔던 것도 재미있었고.
저야말로 오카다상과 함께 보내서 정말 즐거웠어요. 아... 정말 그립네요, 그때가.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이 한국에 돌아가면 좋은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일본에 와서 정말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되었답니다.
오카다상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해주었다.
-일본을 떠나기 전 걸려온 전화


시라이상 白井 ゆきさん
에도야소우의 오너(Owner) 카페 아인소프의 일까지 소개해주신 덕택에 일본생활을 수월히 해나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쥰짱, 미순이
유헤이상과 이나다군 다음으로 가장 오래 같이 있었던 한국 친구. 같이 후지산도 등반했었다.


욘짱, 주영이
나보다 한 달 먼저 에도야소우에 들어와서 살고 2010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갔던 친구.


문짱, 수경누나
같이 후지산을 등반했던 친구 !  그 때 고산병으로 고생을 했던게 아직도 미안하다.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생일 축하 메세지

2011년 1월 18일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생일 축하 메세지

'운명의 사람입니다' 저스틴과 이야기 하고 싶은 것 너무 많아서 여기엔 적을 수 없어. 일단 말하고 싶은 건 "생일 축하해" 같이 일하는거 말고도 놀러가자~ 사랑합니다~ 말하고 싶은건, "내일 또 만나~", 모레도 만나고, 그 이후도, 10년 후에도, 언제까지라도 함께하자~
 -마스미

저스틴에게
처음보다 일본어가 능숙해져서 대단해! 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언제나 밝고 힘차서 콜드스톤이 즐거웠어.다시 일본에 올 때 모두와 함께 마시러가자.
키라

생일 축하해! 저스틴은 정말 멋진 사람! 친절하고 밝고 힘차고 누구에게도 웃는 얼굴로, 그 사람 까지 웃는 얼굴이 되게 해. 저스틴은 세계 제일의 멋진 사람. 저스틴과 만나게 되서,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여러가지 것들을 배웠어. 정말 고마워. 놀러가자~ 한국에도 갈테니까 기다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미사미사

저스틴, 생일 축하해.  언제나 밝고 기운 넘치는 저스틴도 일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워. 나도 기운을 많이 얻었어. 고마워. 앞으로도 계속 친구로 지내. 일본에 또 놀러오도록 해!
-오도리


저스틴, 생일 축하해. 저스틴과 함께 쉬프트 들어가면 정말 기뻐. 기분이 들뜨게 돼.저스틴, 술마시러 가자~ 빨리~한국에도 놀러갈게!계속 친구로 !! 국경을 넘어서!!
-아짱

생일 축하해. 언제나 밝은 저스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도 행복해져.일본어 너무 잘해. 일본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알어. 사실은 일본인아냐?
-치로

저스틴 생일 축하해. 언제나 고마워. 저스틴은 정말 멋진 남자(?)야. 언제나 기운넘치고 긍정적이지! 최고야!
정말 고마워
-BOB

저스틴도 함께 일하는거 좋아. 슬플 때 향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저스틴의 개그센스 최고. 시부야점에 , 일본에 와줘서 고마워. 저스틴과 만나면 언제나 행복한 기분이 돼.
-오그

처음에 시부야점에 전화했을 때 전화 받은게 나야. '힘내세요!'라고 말했던 것을 실현 시켜서 행복해~ 시부야의 인기남~
-세키마이

사랑해요~. 뽀뽀해주세요~ 올해는 조금씩이라도 한국어를 마스터하고 싶어! 그리고 서울에 가고 싶어~! 저스틴은 명동의 콜드스톤에 있는 거야? 꼭 만나러 갈테니까! 연락처 가르쳐줘.
ps.최근 기억한 한국어 : 오빠 빼고파요. 맛있는거 사주세요.♡
-수잔

저스틴 생일 축하해. 22살은 행복한 1년 이었어? 레이카은 저스틴이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23살도 더더욱 행복하길. 그러니까 일본에도 와야해. 레이카도 한국에 상륙할거니까.! 저스틴의 웃는 얼굴에 많이 기운을 얻었어. 계속 힘차고 밝고 장난꾸러기같은 저스틴으로 있어~!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 레이카라고 불러줄때는 두근두근 했어. 아자아자 파이팅.
-레이카

정말 시부야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존재, 저스틴. 언제나 "잘 지내?" 라고 말해줘서 고마웠어. 친절하고 재밌고 젠틀맨 같은 저스틴. 정말 좋아! 다음엔 꼭 같이 놀자!
-유유

안녕하세요! 쵼겟빼스무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부야에 happy cremery 경험은 어떤 느낌이었어? 나는 저스틴도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만남은 소중한거야, 저스틴. 꼭 한국에 놀러갈게. 메일 주고 받자. Very 카무사하무니다 (감사합니다)
-모요카

저스틴, 언제나 힘차고 친절하고 젠틀맨인 저스틴은 시부야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 올해는 한국에 가고 싶기 때문에 꼭 안내해줘야 돼. 계속 계속 지금의 저스틴의 모습으로 있어줘.
-인쵸

처음 저스틴과 얘기했을 때는 '차분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리노리Boy 였어. 저스틴이 없어지면 나에게 '히메는 완벽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지겠네. 한국에 돌아가지마~  절대 한국에 갈게! 좋아해~! 사랑해요~
-히메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happy birthday ! 우리들은 저스틴을 정말 좋아해! 왜냐하면 친절하고, 밝고, 힘차고, 최고로 Nice Guy이니까! 한국에 있어도, 세계 어디에 있든, 우리는 시부야점의 크루라는 것을 잊지 말아줘! 저스틴에게서 여러가지 것들을 배웠어. 고마워.
건강해~ 또 보자! 그리고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할게!
-쥬리

저스틴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정말 대단해. 언제나 노래를 부를 때 るんるん(루응루응)해서 모두가 웃는 얼굴이 돼. 저스틴과 바이바이 하고 싶지 않아~. 한국에 놀러갈테니까 꼭 놀아줘.
-K짱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 추억을 담은 선물

2011년 1월 23일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모든 추억을 담은 선물

나의 송별회가 있던 날, 콜드스톤 친구들에게서 정말 특별한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하나같이 모두 소중한 선물들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끼는 선물을 꼽는다고 한다면 추억이 담긴 앨범일 것이다.

10개월간 함께 일하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모두 모아놓은 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맨 첫페이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소개를 시작으로 같이 일하고 놀러 갔을 때의 사진들로 가득찼다. 앨범을 만든 친구는 콜드스톤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나와 함께 했던 사진들을 메일로 받은 다음 그걸 인화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건네 받아주었다. 얼마나 오랜시간을 들여 힘들게 만들었지 잘 알것 같다.

10개월간 함께 했던 추억들을 한 앨범에 고스란히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만큼 그 때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직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지금도 앨범을 펼쳐 볼 때면 '내가 그 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만큼 즐거운 추억들로만 가득찬 앨범이다. 이 앨범의 사용방법은 잘 알고 있다.앞으로 살아가면서 힘이 들 때, 웃음을 잃어버렸을 때, 좌절했을 때, 기운이 얿을 때 등등  그런 순간 앨범을 펼쳐서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힘을 얻으면 된다.

일본에 있으면서 사진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었다. 일본 친구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잘 나오려고 하거나 예쁘게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즐거움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다들 웃긴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게 이해가 안갔었는데 지금은 잘 알 것 같다.무엇보다 꾸밈없는 사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의 즐거움을 기억하려 하는 것 같다.

이 앨범만 있으면 이 친구들과 언제까지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귀국, 돌아가는 날까지 나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주는 친구들

귀국, 돌아가는 날까지 나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주는 친구들

http://ksi8084.blog.me/40123001989

2011년 2월 8일 귀국

오후 3시반 하네다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귀국을 했다. 오늘 친구들이 하네다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줘서 정말 고마웠다. 마스미가 만들어 온 플래카드를 모두가 들고 나를 배웅해줬다.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올줄이야... 출국하는 사람들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다. 귀국하는 날까지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주다니... 미사미사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줬고, 케이짱은 직접 구운 쿠키를 건네줬다. 그리고 히메가 비행기 안에서 읽으라며 편지를 건네줬다. 참, 미도리스시의 류타군도 배웅을 와줬다. 3시 30분 비행기였는데 류타군이 3시 15분에 도착했다. 아.. 류타군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같이 일한 것도 아니고 다만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 사이였는데 배웅을 와주다니...ㅠㅠ

모두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게 정말 너무도 아쉬워서 출국장으로 빠져나가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건지,,,당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정말 감동의 배웅이었다....좀 더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3시 30분 비행기였는데도 헤어지는게 너무도 힘들어서 3시 20분에서야 출국장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비행기로 달려갔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타 본 것도 처음이었다. 승무원들이 팻말을 들고 날 찾아다니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구에 도착하자 승무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니, 아직 괜찮다고 말해줬다..영화같은 순간이었다..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게 아쉬워 비행기를 못 탈뻔 한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돌아가는 날까지 나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이 모든 순간들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ジャスティンと出会ってよかった!
心からのありがとうを!!
또 만납시다!
幸せを願ってるよ!
一生忘れない!
あなたを사랑해!
(저스틴과 만나서 좋았어! 마음 속으로부터 감사를! 또 만납시다! 행복하길 바라! 평생 잊지않을게! 너를 사랑해!)

언제나 '기분좋은 영화같은 삶'을 꿈꾸면서 영화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만 '영화같은 삶'을 누리는게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영화같은 삶을 만들어 줄 수도 있는일이다. 그걸 알게 해 준 친구들이다.....

귀국하는 날이라 정말 쓸쓸할 줄 알았지만, 모두의 배웅 속에서 기쁘게 귀국 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말로 표현 못한다. 러브액츄얼리의 스케치북 프로포즈 보다 멋진 장면이 있던 하루였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모두 건강하길!!

최고의 경험을 하게 해 준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

콜드스톤 시부야점 마지막 근무날

http://ksi8084.blog.me/40123384899

2011년 2월 7일


귀국을 하루 앞둔 2월 7일, 콜드스톤에서 마지막 근무를 했다. 2010년 5월부터 9개월 동안 일을 한 것이다. 대학생 때도 한국 콜드스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일본에서도 역시 그랬다. 한국 콜드스톤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일을 이렇게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거구나를 배웠고, 일본 콜드스톤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이렇게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디즈니랜드의 댄서가 되고 싶은 친구, 국제연합에 들어가고 싶은 친구,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 자기의 뮤직바를 가지고 싶어하는 친구, 베이커리가 되고 싶은 친구, 마사지사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 ... 자기의 꿈을 가지고서 노력하는 친구도 있었고, 자기의 꿈을 찾고 있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에게도 정말 많은 자극이 되었다.

7시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루코와 치로와 만나서 마크시티에 있는 와코에서 돈가츠를 먹었다. 돈가츠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일식(와쇼크和食) 중 하나이다. 마루코와 치로는 8월에 한국에 놀러온다고 했다. 마루코와 치로 둘다 유치원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인데, 마루코는 이미 취직을 했고, 치로는 내년에 졸업을 한다.

이시켄상으로부터 마지막 조례를 받고서 일을 시작하였다. 마지막이니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일본 콜드스톤의 노래도 부르지 못하니까 노래도 최대한 많이 부르기로 했다. 정말 즐거웠다. 즐거웠지만 마음 속으로부터 서운함을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들이 계속 찾아왔다.  나나, 오그, 케이짱, 치로, 마루코, 모요카, 유우코, 료코, 아키라. 모두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이라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모두 내가 만들어주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면서 주문을 했다. 도쿄지역 매니저 보브상으로부터도 전화가 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 받았다. 모두와 인사를 나눴다. 나는 친구들에게 한국에 꼭 놀러오라고 했고, 친구들은 나에게 일본에 또 놀러오라고 말했다. 마지막 근무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꼭 이런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마지막 손님까지 받고나서 매장 문을 닫는 순간 가슴이 짠했다.

마스미가 로비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밖으로 빼더니 나를 중간에 오게 해 놓고, 모두가 날 둘러싸고서 노래를 불러줬다. 노래가 끝나고 나에게 발렌타인데이 초콜렛을 건네줬다. 아... 송별회도 했었는데 또 이런 서프라이즈를 해주다니..그 동안 함께 일을 해서 즐거웠고, 고맙다고 해줬다.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는 다함께 맥주파티를 벌였다. 료코가 DVD에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어 온걸 다같이 봤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근무했을 때의 추억들이 모두 지나갔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본에 와서 콜드스톤 시부야점에서 근무한건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다. 그런 최고의 경험을 하게 해 준 콜드스톤 시부야점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2011년 2월 5일 ~ 6일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여행의 출발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여행의 출발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에도시대의 역참 쓰마고쥬쿠妻籠宿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마고메쥬쿠馬籠宿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츠타무라야つたむらや에서 저녁 식사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 마츠모토松本/ 긴 여행의 끝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던 신슈信州여행.
이 여행은 정말 뜻밖의 우연으로 가게 된 여행이었다. 여행의 계기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도야소우)에 살고 있는 이토우伊藤상과의 대화였다. 평소에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 대화를 별로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날 밤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적이 있다.
  
이토우상 : 얼마 전에 여기 거실에 있던 여행 책자 본 적 있어?
나 : 무슨 책 말하는 거에요?
이토우상 : 여행 수필 같은 책이었는데 그 책에 우리 집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
나 : 앗, 잠깐만요. 제 책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책은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사서 들고 온 ‘일본의 걷고 싶은 길 (김남희저, 미래인)’ 이라는 책이었다.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치우지 않았던 걸 이토우상이 본 모양이었다. 이토우상은 다름 아닌 책의 표지를 보고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이 나온 걸 보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그 마을은 나가노현 쓰마고라는 동네였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라서 정말이냐고, 이 책을 보면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라고 말했다.

이토우상 : 혹시 지금도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 우리집이 그 근처에서 민숙을 하고 있거든.
나 : 네?! 정말요?
이토우상 : 지금은 겨울이라 손님을 받고 있지는 않는데 내가 전화해서 친구와 함께 간다고 하면 머물 수 있을거야.
나 : 아…정말 가고는 싶은데 제가 한국에 돌아갈 날이 얼마 안남아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토우상 : 아무래도 그렇겠네. 혹시 갈 수 있게 된다면 나한테 말해줘. 나도 집에 한번 가봐야 할 있는 참이라서 갈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만약 간다면 내가 하루쯤은 차를 타고 드라이브 하면서 안내를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곳은 산골 마을이라 차가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곳이거든. 더군다나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말이지.

나는 더 이상 고민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만 같았다. 엄청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서 사온 책을 읽다가 거실에 잠깐 놔두었고 그것을 마침 이토우상이 발견했는데 마침 그 책의 표지가 자기네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을은 내가 책을 보면서 가장 가고 싶다고 생각한 마을이었다. 이건 ‘세상이 좁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그때의 놀라움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마치 날 그곳으로 이끄는 힘이 오래 전부터 작용이라도 했듯이. 내가 옛날에 사온 책이 그 책이 아니었다면, 그 책의 표지가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이토우상이 그 시간에 그 책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여행은 없는 일이었다.

#에도시대의 역참 쓰마고쥬쿠妻籠宿

우리는 신주쿠역 남쪽출구新宿駅 南口 버스정류장에서 밤 11시에 만났고 11시 20분 차를 타고 나가노현長野県 나카츠가와시中津川로 출발했다. 아침 5시 50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버스였다. 교토 여행 이후 두번째로 타는 심야버스라 조금 익숙해졌는지 쉽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니면 분명 버스에 오르기 전 친구와 함께 한잔 했던 술이 도움이 된 걸지도 모른다. 나카츠가와역에 도착하니 이토우상의 형님께서 차로 마중을 나오셔서 집까지 태워다 주셨다. 집에 도착해 버스에서 잠을 못 이루었던 이토우상이 한숨 자고 여행을 시작하자고 했다. 나도 졸린 상태였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10시 반에 일어나 외출 채비를 하고서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기 전에 이토우상이 자기 집에서 가꾸고 있는 논과 밭을 보여준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자라고 있는 농작물이 없었다. 정말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외갓집에 갔을 때 보던 풍경을 보는 듯 했다. 나의 외갓집도 산 속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밭 구경을 하고 나서 차를 타고 나갔다. 본격적인 쓰마고 여행이 시작되었다.

쓰마고妻籠는 에도시대江戸時代에 번성했던 역참마을인데 에도시대의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과거로 돌아온 느낌을 주는 듯한 곳이다. 이곳은 1976년 일본의 중요전통적건조물군보존지구로 가장 처음 지정된 곳이라고도 한다. 이토우상이 가이드를 해주면서 재미있는 설명 또한 곁들어주셨다. 원래는 많은 마을들이 산업화시기에 번성하면서 발전을 했는데 이 곳만은 특별한 자원이 나오지 않아 발전이 뒤쳐졌다고 한다. 결국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보존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토우상은 자기도 정말 오랜만에 와 본다고 했다. 이토우상은 쓰마고의 가게 사람들하고도 꽤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거리를 걷다가 초등학교 여자 동창을 만나 인사를 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식당의 할머니와 이토우상의 할머니와 동창이었던걸 알게 되어서는 음료수도 공짜로 대접받았다. 참 보기에 정겨운 모습이었다. 이토우상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 마을에서 지내다가 대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가 생활을 했다고 했다. 이토우상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예전에도 한 학년에 10명씩 정도 있었던 자그만한 학교였는데 지금은 학생이 거의 없어서 폐교되었다고 했다. 그 폐교된 학교도 둘러보았고, 그 학교 위에 있던 작은 진자神社에도 올라가 보았다.

쓰마고妻籠를 둘러보고서 모모스케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던 모모스케바시桃介橋를 가보았다. 이 다리는 목조로 만든 거대한 다리로서 건축물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만든 다리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사람만 지나다니는 다리였다. 모모스케바시 위에서 나기소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라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드는 시골마을 이었다.

그 뒤 남자폭포 여자폭포라는 곳을 구경했다. 깊은 산속이었기 때문에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웅장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지나다가다 만나면 반갑게 구경할 수 있는 정도의 폭포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마고메馬籠로 넘어갔다. 마고메는 예전에 나가노현이었지만, 현재는 기후현岐阜県이 되었다고 했다. 이로서 기후현에도 와보게 된 것이 되었다. 마고메에서부터 이토우상은 용건이 있어서 나 혼자 여행을 하였다. 마고메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쓰마고와는 또다른 분위기의 역참마을이었다. 쓰마고보다 좀 더 정비되어 있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마을이었다. 교토에 갔었을 때 의외로 일본의 전통 가옥들이 남아있지 않아 실망했었는데, 이곳에서 오히려 일본의 전통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상의 시간을 보낸 마고메쥬쿠馬籠宿

마고메에서 혼자 보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일본을 떠나기 사흘 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너무 추억에 젖어 눈물이 나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 눈물은 흐르지 않더라. 다 고맙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일본에 올 수 있었던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 부모님에 대한 감사, 나를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시간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극도의 서운함이 밀려왔다.

마고메에는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이 있어서 그곳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의 선물을 사기도 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이어진 길을 걸어 내려와 끝에 다다랐을 때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쓰마고도 그랬고 마고메도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는 마을이었다. 어쩌면 그 편안함은 겨울에 왔기 때문에 느끼는 편안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 때문에 여름이나 가을에 왔더라면 정말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조금 춥기는 해도 마음을 내려놓는 여행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무엇보다 겨울에는 사람이 겸손해지는 계절이라서 그 때문에 주위의 풍경이 더욱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시골의 풍경은 더욱 그렇다. 일본을 떠나기 전 어디론가 여행을 가지 않고 계속 도쿄에서 바쁜 도시의 일상만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더라면 느끼지 못할 것들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지를 이 곳 신슈로 선택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마고메를 둘러 본 뒤 다시 이토우상과 하게 되었다. 나카츠카와 쇼핑센터에 들러 책을 보고, 이토우상이 어린 시절 자주 먹었다는 나고야 라멘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서 나기소온천으로 갔다. 나기소 근처에는 유일하게 있는 온천으로서 노천탕의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 아쉽게도 저녁에 갔기 때문에 산으로 둘러싸인 그 풍경은 안보였지만 어둠이 내린 조용한 시골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했다. 일본의 온천문화는 외국인이라면 다들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일본에 와서 관동의 대표적인 온천인 기누가와온천과 하코네온천을 다녀왔고 이번이 세번째였다. 추운 겨울 노천탕에서 즐기는 온천욕의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탕안에서 몸을 따뜻하게 한 뒤, 공기가 차가운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몸이 정말 가벼워진다. 한국에도 온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처럼 대중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탕 안에서 얼굴만 빼고 앉아서 한국에 돌아가면 겨울이 가기 전에 한국의 온천에도 가보자고 생각했다.

#츠타무라야つたむらや에서 저녁 식사

온천욕을 하고 난 뒤 이토우상의 집으로 돌아왔다. 츠타무라야つたむらや라는 이토우가伊藤家에서 100년 넘게 하고 있는 민숙인데 지금은 겨울이라 잠시 쉬는 중이다. 집에 들어가 짐을 풀고 얼마 안 있어서 이토우상의 어머니께서 저녁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와서 식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저녁 밥상 앞에 앉고서 정말 놀랐다. 잘 차려진 일본식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토우상에게 이게 일본의 일본의 일반적인 가정에 먹는 요리냐고 물어보니, 그게 아니라 평소에는 식당에서 판매하는 식사라고 했다. 츠타무라야에서는 민숙 뿐만이 아니라 식당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우상의 아버지께서 수산업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민숙 집 주위에 큰 어장을 만들어 여러 물고기들을 양식하고 계시는데, 그 민물고기들을 요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냥 자격증도 가지고 있어서 산에서 멧돼지를 사냥해서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그 날 저녁의 밥상에 올려진 밥도 멧돼지 고기를 넣어서 만든 밥이었다.

식사를 하고서 이토우상과 맥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주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전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매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는데 사람이 점차 바뀌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줄어들고 서로의 생활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정말 그랬다. 게스트하우스 생활 초반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같이 밥도 먹으려고 하고 말도 안 통하는데도 어울리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게스트하우스 외에도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점점 소홀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음이 정말 잘 맞았던 오카다상과 쿠리하라상이 나간 것이 그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이토우상에게는 이토우상이 나서서 단합대회 같은 것을 하자고 하거나 하면 옛날처럼 화목한 분위기의 게스트하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우상도 그러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침실로 돌아오자 이토우상 어머니께서 밤에 먹으라면서 여러가지 간식을 한 가득 가져다 주셨다. 정말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민숙이 쉬고 있는 휴일 기간에 찾아와서 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는데 이런 대접까지 받아서 정말 송구스러웠다.

자기 전에 잠깐 밖에 나와서 바람을 쐬면서 밤하늘을 바라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있는 것이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토우상에게 “하늘의 별 좀 보세요! 별이 엄청 많아요! 태어나서 이렇게 수많은 별은 처음 봐요!” 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집이 시골이긴 하지만 전주시의 옆이라서 별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서울과 도쿄는 말도 할 것이 없다. 도쿄에서는 금성은 환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별이 제대로 보인 적은 없는 것 같다. ‘깜깐한 산골 마을에 들어오니 별이 이렇게 잘 보이는구나.’ 그 날 밤에 본 밤하늘의 별은 정말 무수히 많았다. 몇 백 광년 전에 출발한 빛을 바라보면서 시간여행에 빠졌다. 너무 아름다웠다. 다시 한번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했다. 도쿄와 서울의 밤하늘에도 별이 이렇게 잘 보인다면 사람들의 삶이 좀 더 낭만적이 될 수 있을 텐데….

다시 침실로 들어와 행복한 잠을 잤다.

2011년 2월 5일 ~ 6일
마지막 여행, 신슈信州- 마츠모토松本/ 긴 여행의 끝


  아침에 이토우상의 어머니께서 깨워주셨다. 이른 시각의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이토우상의 어머니께서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도시락과 간식을 담은 봉지를 건네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제 아들과 도쿄에서 알게 된 친구라고 하던데 겨울에 이렇게 춥고 먼 이곳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여행은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제 아들이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는데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저 저는 뭘 하든 그런 모습을 뒤에서 응원하는 거죠. 친구도 뭔가 하려는 일이 있을 테지요. 곧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던데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하세요. 춥기만 한 이곳에서 해 준 것 없어서 미안하지만, 다음에 혹시 일본에 오게 된다면 또 놀러 와 주세요. 다음에는 춥지 않을 때로요.”

  짐 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이토우상의 어머니로부터 들은 그 말에 정말 감동했다. 너무 폐만 끼치고 돌아가는 마음에 죄송했는데 그런 말을 해 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토우상의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나 기차역으로 갔다. 나기소 역에서 기차를 탄 뒤 나는 다음 여행지인 마츠모토로 향했고, 이토우상은 일이 있어서 도쿄 신주쿠로 향했다.

#마츠모토성

  두번째 날은 마츠모토에서 여행을 했지만 마츠모토성을 본 것에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이상하게 몸이 지친 것 같은 하루였다. 그래서 오전에는 마츠모토 거리를 둘러보다가, 정오 12시 부터는 버스정류장 근처의 찻집에 들어가 도쿄행 버스 시각인 저녁 6시까지 계속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너무 한 것 없이 보내버린 둘째 날이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첫째 날의 추억만으로도 너무 좋은 여행이었다.
운명 같았던 여행의 계기와 쓰마고와 마고메에서 느낀 편안함, 나기소 온천의 개운했던 온천욕¸ 그리고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친절함까지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여행의 끝

  출발과 끝 모두가 중요하지만, 무언가에 대해 추억을 남기는 데에는 끝의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 처음에는 사이가 안 좋았지만 마지막에는 사이가 좋아진 친구,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지만 끝에는 너무 감동적으로 끝나는 영화들이 오랜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일본이라고 해서 다 친절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가 모두 깨끗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이 많은 도쿄라면 다양한 사람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서 만난 마지막 풍경에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 덕분에 나의 머릿속엔 일본은 친절한 나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메이드 차림을 한 여자들이 홍보지를 나눠주는 아키하바라 같은 곳에서 마지막 시간들을 보냈다면 나에게 일본은 그런 이미지가 많이 남았을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나가노 여행은 10개월간의 일본 생활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해주는 정말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조금 더해서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이곳에서의 추억에 종점을 찍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성장했다.


롯폰기힐즈 모리타워 전망대

2011년 1월 31일
롯폰기힐즈 모리타워 전망대

도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전망대는 롯폰기힐즈 모리타워의 전망대였다. 원래는 가장 좋아했던 도쿄타워의 전망대를 갈 계획이었지만 도쿄타워가 가장 잘 보이는 롯폰기힐즈의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계획을 바꾼 계기는 롯폰기힐즈 전망대의 티켓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주쿠역新宿 신남쪽출구新南口의 근처의 티켓 가게에서 원래 1,500엔 하는 입장권을 700엔에 팔고 있는 걸 발견했었다.

날씨가 좋은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롯폰기힐즈 모리타워에 오는 건 두번째였다. 롯폰기에는 자주 왔지만 모리타워에는 올 일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롯본기힐즈의 전망대 – 도쿄 시티뷰에 올라갔다. 올라간 시각은 3시 반이었다. 전망대에 올라가자 확 트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다녀와봤던 전망대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부 디자인이 정말 세련되었다. 역시 롯본기힐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의 전망대의 내부는 다시 생각해봐도 아쉽다. 전망대에는 카페와 바가 있었고, 평일 낮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

전망대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도쿄타워가 보였다. 감탄을 했다. 역시 도쿄타워가 보이는 도쿄가 멋지다. 멀리 스카이트리도 보였고, 후지산도 보였다. 전망대를 한바퀴 돌면서 보고 싶은 건물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2010년 4월 도쿄타워 전망대에 처음 올라갔을 때는 어디가 어디고, 도대체 어떤 건물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10개월간 도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빌딩들을 보면 이름이 저절로 떠올랐다. 저건 이케부쿠로의 선샤인시티, 신주쿠와 마루노우치의 고층빌딩들도 거의 다 알 수 있었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이번엔 스카이데크에 올라가기로 했다. 스카이데크는 모리타워의 옥상으로 300엔의 추가요금을 내면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롯폰기힐즈의 스카이데크는 도쿄에서 가장 높은 곳의 야외 전망대라는 점에서 유명하다. 햇볓이 따뜻한 좋은 날씨이기는 했지만 역시 옥상이라서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내가 스카이데크에 올라간 시각은 4시 20분이었다. 아직은 환한 도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의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대로 내려가버리면 야경은 감상할 수 없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을 뿐더러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너무 빨리 올라왔나 싶었다. 물론 아랫층의 전망대에서도 야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유리벽의 반사 없이 깨끗한 야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결국 난 기다리고 마음을 먹었다. 해는 저물어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바람은 세졌다. 나는 해가 지기만을 계속 기다리며 옥상을 수도 없이 맴돌았다. 똑같은 구도의 사진도 몇 번이나 찍었다. 어둠이 내리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추웠다. 일본에 온 이후로 겨울이 늘 봄날처럼 따뜻했기 때문에 춥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롯폰기힐즈 옥상은 너무 추웠다. 다리도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하고, 귓볼과 코에서 감각이 조금씩 없어져 가는걸 느꼈다. 이렇게 춥다고 느끼는 것은 한여름 후지산에 올라갔던 날 옷이 모두 비에 젖었던 그 때 이후로 처음이다.

결국 야경을 마음껏 감상했다. 추위에 떨면서 감상했기 때문에 온전히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 본 도쿄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뜨는 것을 반복했다. 눈을 떴을 때 아름다운 도쿄가 눈 앞에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도쿄타워에 올라갔을 적 들었던 똑같은 생각이 되풀이되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쿄를 보며 지난 10개월간의 도쿄 생활을 떠올렸다. 내가 살았던 코마고메, 전차를 타고 출근했던 긴자와 시부야, 몬자야키를 먹으러 간 츠키시마, 레인보우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갔던 오다이바,,,내 모습이 그려졌다. 이제는 이 곳을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루마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서 추위를 견디며 조금만 더 감상하고 내려왔다. 내가 롯폰기힐즈 옥상에서 내려온 시각은 7시 10분이었다. 아.. 2시간 50분 동안이나 추운 옥상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 나는 호된 감기에 걸려 사흘간이나 고생했다. 무리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인 원인은 전망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꼭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었다.

다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전망대로 내려와 한번 더 야경을 감상한 뒤, 모리타워미술관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300엔의 추가요금을 지불하고 플라네타리움을 구경했다. 아름다운 우주 속의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곳도 매우 아름다웠다. 모든 구경을 마치고 모리타워를 나선 시각은 저녁 8시였다. 거의 5시간 동안 모리타워에 머물러 있었다. 도쿄에 짧은 여행을 왔더라면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길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긴 여행의 좋은 점을 느낄 수 있었던 10개월이었다.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10개월 간의 도쿄 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질리지 않고서 도쿄의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쿄는 곳곳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와 즐거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코마고메역은 JR야마노테센임에도 정말 조용하교 살기 좋은 마을이었고, 언제나 활기가 넘쳤던 우에노, 다른 세계를 온 것 같은 즐거움을 주는 아키하바라, 웅장한 빌딩들이 많지만 거리를 거리면 기분이 안정되는 마루노우치, 도쿄의 고급스러운 삶을 보여주던 긴자, 그리고 신주쿠와 시부야와 이케부쿠로 - 즐거운 도쿄 라이프였다.

이날 롯폰기힐즈 모리타워에서 본 도쿄의 야경이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진심'이라는 것은 나라에 앞선다 / 아인소프 송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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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있었던 일은 일본에서 모두 포스팅하고 싶었는데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작별인사를 하다보니 포스팅을 할 시간이 없었다. (고 핑계를 대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약 2주의 시간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일본을 떠난다는 생각 때문에 열심히 놀러다니고,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 온 지금에서야 글을 올리기 때문에 모두 과거형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 여운을 느껴보기 위해 천천히 글을 써봐야겠다.

2011년 1월 31일
아인소프 송별회
카페 아인소프에서는 신기하게도 한국인 스태프가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일했다. 나와 보람은 게스트하우스의 주인분의 소개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자기의 카페에서 일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을 받은 것도 나에겐 정말 행운이었다. 일본에 온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콜드스톤 아르바이트와 함께 같이 시작한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긴자의 카페 아인소프와 시부야의 콜드스톤 아이스크림 가게를 동시에 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오후엔 분위기가 차분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저녁엔 언제나 분위기가 들떠있는 신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꽤나 균형이 맞는 생활이었다. 하루 종일 콜드스톤에서 일하는 날이면 계속 들떠있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나서 매우 피곤해졌다.

1월 31일에는 매니저였던 쿠사야나기상과  유진형, 보람이, 나 넷이서 신바시新橋에서 모였다. 쿠사야나기상이 잘 아는 야키니크焼肉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쿠사야나기상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쿠사야나기상은 나와 보람이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맛있는 걸 사먹여 주고 싶다고 언젠가부터 계속 말했다. 이날 갔던 가게에 먹었던 야키니쿠는 일본에서 먹어본 고기 중 제일 맛있었다. 밤 10시에 만났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급하게 주문하고 급하게 먹고 우린 바로 술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신바시 역 근처에 있는 와타미라는 술집이었는데, 그 와타미는 츠키지시장이 가까워서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다고 쿠사야나기상이 말했다. 역시 일본 사람의 가이드는 이런 점이 다르다! 3시까지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마지막으로는 가라오게를 가는 것으로 그날 모임을 마무리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그냥 쭉 나열하기만 했지만 정말 즐거운 자리였다.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주로 연애에 대한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쿠사야나기상은 카페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렇게 인연이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여러지역에 친구가 있으면 그 지역에 놀러갔을 때 만날 친구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홋카이도에 여행가면 홋카이도의 친구를 만나고, 한국에 여행 가면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고. 나도 그 말이 멋지게 들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 또한 일본에 많은 친구가 생겨서 정말 기쁘다. 앞으로 일본에 놀러올 일이 있을 때 만날 친구가 있는 것이다. 단지 여행만 하기 위해 오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다.

일본 사람들은 정이 깊다. 그들은 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보다는 '연'이라는 표현을 곧 잘 한다.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만난 '연'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 누구나 들어 본 적이 있는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없었다. 그건 내가 알아차렸느냐 알아차리지 못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일본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따뜻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일본인의 극히 일부이긴 해도 우린 늘 그 일부로 판단을 한다. 내가 일본을 떠나오기 전 한 친구가 솔직한 편지를 보내왔다. 자신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별로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날 만나고 나서 자기는 한국이 정말 좋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꼭 한번 놀러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나 또한 일본이 정말 좋아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진심'이라는 것은 나라에 앞선다. 나라가 달라도 나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전달되기를 원하면 전달되는 법이다. 일본을 다녀와서 세상의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가 이토록 감동이라는 걸 알았다 / 쿠리하라상과 마지막

2011년 2월 3일
쿠리하라상과 작별 인사

늦은 밤 쿠리하라栗原상으로부터 갑자기 메일이 왔다. 혹시 내일 시간이 비어있으면 만나지 않을까냐는 메일이었다. 쿠리하라상으로부터 갑작스레 문자를 받아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만날 수 있다는 답장을 바로 보냈다. 우리는 12시에 시부야의 하치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작년 10월 에도야소우를 나간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12시가 조금 지나서 저 멀리서 쿠리하라상이 보였다. 쿠리하라상의 얼굴을 처음 보고 너무나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다. 쿠리하라상이 '이치!!!' 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우린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나눴다. 정말 너무도 반가웠다.

점심으로는 라면을 선택했다. 근처의 라면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 동안의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금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쿠리하라상은 내가 귀국하는 2월 8일 날 다시 도쿄로 이사를 온다고 했다. 똑같은 날에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역시 주된 이야기는 아인소프와 에도야소우의 이야기였다. 너무나 반가운 쿠리하라상.

쿠리하라상은 내가 일본에 와서 가장 진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대화 상대이고, 내가 힘이 들 때 여러가지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준 친구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친구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서로를 응원 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노래방의 추억을 끄집어 냈다. 쿠리하라상은 나를 처음 일본의 노래방에 데려가 준 친구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에 둘이서 노래방을 정말 자주 갔다. 우리들은 Mr.Children의 노래를 번갈아 가면서 계속 불러댔다. 물론 Spitz도 많이 불렀다.

점심을 먹고나서 메이지진구를 산책했는데, 그 때 메이지진구에 간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 와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쿠리하라상과 오게 되어서 기쁘다고도 했다. 산책을 어느 정도 한 뒤, 우리는 역시 노래방을 갔다.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옛날 느낌과는 달랐다.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동안은 쿠리하라상과 노래방을 가지도 못하고, 어쩌면 만나는 것도 어렵지도 못한다는 생각. 

쿠리하라상이 나를 위해 불러주는 곡이라고 말하고는 ゆず(유즈)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를 불렀다.  콜드스톤에서의 송별회때의 Best Friend도 그랬지만 정말 감동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가 이토록 감동이라는 걸 알았다...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http://ksi8084.blog.me/40122864781

2011년 2월 6일

이틀간 신슈 나가노현의 쓰마고,마고메,마츠모토로 마지막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지금은 버스를 타고 신주쿠를 거쳐 집에 막 돌아온 참이다. 아무런 글이라도 좋으니 블로그에 글을 좀 남기고 싶어서 들어왔다. 블로그 경험상으로 지금의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 나올 수 없다.

지난 10개월 간의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여행 첫 날 밤, 조용한 방안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여보세요? 선일군? 오카다야.
오카다상?! 지금 하와이에서 전화하시는거에요?
응, 하와이야. 여긴 지금 새벽 4시야. 선일군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가지?
네, 3일 후면 한국에 돌아가네요
어땠나 일본은?
정말 좋았어요. 오길 정말 잘했다고 몇 번씩이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돌아가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 좀 할게 있어서 혼자서 나가노로 여행을 왔어요.
아, 그렇군.
제가 돌아갈 날이 얼마 안남은 걸 알고 일부러 전화 준거에요?
응.
고마워요.
선일군과 함께 했던 작년 여름의 에도야소우는 정말 즐거웠어. 라운드원 갔던 것도 재미있었고.
저야말로 오카다상과 함께 보내서 정말 즐거웠어요. 아... 정말 그립네요, 그때가.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이 한국에 돌아가면 좋은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일본에 와서 정말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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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몇분이나 통화가 이어졌다. 오카다상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해주었다.너무나 고마웠다. 밤 늦은 시각에 뜻하지도 않는 전화를 받고 서로 작년 여름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한동안이나 추억에 잠겼다. 작년에 에도야소우의 식구들과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보낸 모든 시간으로 생각이 넓어져 갔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이것저것 보고 들은게 많은데, 오카다상의 그 전화 한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내가 이번 여행을 간 이유와 딱 떨어지는 전화 한통 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내일 하루를 일본에서 보내고 모레 한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이번 여행 이야기를 하는것과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아쉽다. 일본에서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야깃 거리는 한국에 조금 싣고 가는 수 밖에 없겠다.

짐 정리도 아직 덜 끝난채로 다녀온 계획 미숙의 여행이긴 했지만 어쨌든 여행을 다녀와서 좋았다.아주 조금은 미련을 남기지 않은채 도쿄를 떠날 수 있게됐다고 해야하나. 음. 뭐 그런 것.

자... 이제 마지막 여행도 다녀왔으니 슬슬 짐정리를 해야겠다. 짐을 풀고, 풀었던 짐을 다시 싸고서  다시 여행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일본 워킹홀리데이

2011년 1월 28일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시부야는 번화가이기는 하지만 신주쿠처럼 고층빌딩이 없다. 업무지구로서의 역할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빌딩 중에 높은 빌딩이 내가 일하고 있는 마크시티의 건물과 조금 떨어져있는 세루리안호텔(Cerulean Hotel セルリアンホテル)이다. 도쿄에 있으면서 많은 곳의 전망대를 올라가봤지만 아직까지 시부야의 전망대는 한번도 올라가 본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부야에는 고층빌딩이 없을 뿐더러 때문에 전망대도 없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의 약속이 8시 시부야에서 있어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시부야를 둘러보면서 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 세루리안호텔이었다. '저 호텔에 가면 시부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정문 앞에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니 다행히도 맨 윗층 40층에 바Bar가 있었다. http://www.ceruleantower-hotel.com 전망대가 아닌 호텔의 바에 가서 전망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떨렸다. 호텔은 역시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남달랐다. 황송할 정도로 극진한 서비스였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으로 도쿄의 야경이 보였다. '잘 찾아왔다'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 병 시켜서 조용하게 야경을 감상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무척 조용했다. 바에는 대부분 혼자 온 손님들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이 호텔에 좀 더 빨리 와보기로 마음 먹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만의 장소로 삼았을텐데. 앞쪽의 창문으로는 신주쿠 쪽의 야경 밖에 안보였기 때문에 종업원에게 말해 도쿄타워가 보이는 자리로 옮기고 싶다고 말해 자리를 옮겨 계속 감상했다. 옮긴 자리에서는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도 보였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느릿느릿 움직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그 순간 바에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혼잡하고 시끄러운 스크램블 교차로가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할테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의 조각이 되버린다.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살아가는 장소는 근거리에서 보이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멀리서 조용히 우리의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시부야는 젊음이다

2011년 1월 28일
시부야

시부야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런 번잡한 곳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시부야역의 이용객은 신주쿠과 이케부쿠로역 다음으로 많지만, 혼잡함의 정도에서는 신주쿠를 넘어설 것이다. 도쿄의 서쪽으로 이어져있는 이케부쿠로,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는 신기하게도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도 다르기도 하고, 거리를 지배하는 공기가 다르다. 하물며 동쪽의 우에노와 아키하바라와 비교했을 때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처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눈 앞에서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와.....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길을 건너가지.'  나는 지금 시부야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늘 이곳으로 출근을 하고,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정이 들었다. 시부야는 월드컵 때 보여준 일본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를 시작으로 일본에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의 시끌벅쩍 해지는 곳이다. 도쿄 이외의 다른 지방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도쿄에서는 가장 젊음이 넘치는 거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젊음은 나이의 젊음이 아니라 마음의 젊음이다

쇼난湘南을 달리다

2011년 1월 27일
쇼난湘南을 달리다

마키에게 감사해야겠다. 쇼난湘南의 바다가 보고 싶다면서 이시켄상에게 쇼난에 가자고 한건 마키였으니.
씨파라다이스를 하루 종일 모든 수족관을 다 구경하고, 모든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만큼 다 타고나서 마키가 쇼난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나도 물론 찬성했다. 아름다웠던 가마쿠라 해변의 이미지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으니.

핫케이지마에서 쇼난에 가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가마쿠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하굣길의 학생들이 보였다. 이시켄상과 마키에게 말했다.
저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학교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사실이. 수업 시간에 잠깐 졸다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원한 바다가 딱 펼쳐져 있을거아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앞에 있는 바다가 그 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건 다 보듬어주기도 할테고.

차 안에는 90년대의 일본노래가 흘러나왔다. 마키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곡이라면서 계속 기뻐했다. 그리고는 이시켄상의 음악 선곡 센스를 칭찬해줬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차창 밖의 쇼난해안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여름에 왔을 때와 달라진게 있다면 나의 상황일 것이다. 여름에 왔을 때는 아직 한참 남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즐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나의 상황이 변하면서 내가 바라보는 풍경도 변한다. 그래서 그 날의 쇼난해안은 쓸쓸했다.

아름다운 쇼난을 드라이브 시켜준 이시켄상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유원지를 함께 즐겨준 마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요코하마 핫케이지마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2011년 1월 27일
요코하마 핫케이지마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송별회가 있던 날, 점장님 이시켄상이 목요일에 어딘가 놀러가자고 제안하셨다. 난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놀러가기로 한 전날까지도 연락이 없어서 취소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날 밤 늦게 연락이 오더니 내일 아침 9시 요코하마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날 참가한 멤버는 나와 이시켄상 그리고 마키. 3명이었다.

요코하마 역에서 9시에 만난 우리들은 이시켄상의 밴에 올라탔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어디든 좋아요.

일단은 차를 타고서 요코하마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드라이브하면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계속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요코하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핫케이지마의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는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한 겨울 평일의 씨파라다이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들은 디즈니랜드 얘기를 꺼내면서 두 유원지를 비교했다. 오늘 디즈니랜드를 갔더라면 사람이 정말 많았을거라고. 우선은 티켓판매소에서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프리패스를 구입하면 유원지내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제일 처음 블루폴(http://ksi8084.blog.me/40122310236)이라는 놀이기구를 타고서, 수족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본은 워낙 유명한 수족관이 많아서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이 있는데, 씨파라이스의 수족관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수준을 자랑한다.

일본에 있으면서 수족관은 세번 다녀왔다. 가마쿠라 여행 갔을 때 다녀온 신에노시마 수족관이 첫번째였고, 카사이 임해공원의 수족관이 두번째였다. 이번에 갔던 곳이 가장 좋았다. 물론 요금이 가장 비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케일이 달랐고, 이전에 다녀왔던 수족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물고기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다생물쇼&돌핀판타지

핫케이지마 씨파라아디스에는 세 곳의 수족관이 있는데 가장 큰 곳이 아쿠아뮤지엄이다. 이 곳에서는 하루 3차례에 걸쳐 바다생물쇼가 열린다. 아쿠아뮤지엄을 느긋하게 둘러 본 뒤 잠시 놀이기구를 타고 와서 시간에 맞춰 바다생물쇼를 구경했다. 그런 쇼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중에 바다코끼리와 함께 게임을 할 지원자를 찾길래 내가 나갔다.  그리고는 팔 빨리 흔들기 게임에서 이겼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쇼를 보고나서 다시 나와서 놀이기구를 조금 탄 다음 돌핀판타지라는 수족관을 구경했다. 돌핀판타지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서 그런지 천장으로 돌고래와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한 동안이나 가만히 서서 헤엄쳐다니는 돌고래를 감상했다.

가장 스릴있는 놀이기구는 블루폴(blue fall)이었다. 바다 위를 달리는 해상제트코스터도 있었지만 이날은 운휴여서 매우 아쉬웠다. 씨파라다이스에는 스릴을 느끼는 놀이기구 보다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놀이기구가 많았다. 씨파라다이스 자체가 어트랙션 중심이 아니라 수족관을 중심으로한 테마파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폴의 스릴은 정말 최고다. 이런건 후지큐하이랜드에 있어야 어울린다. 아.. 후지큐하이랜드는 정말....최고다.....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http://ksi8084.blog.me/40122501848

2011년 1월 30일

이웃집 가게 미도리스시는 늘 붐비는 유명한 스시집이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해서 미도리스시에 가기 위해 시부야를 찾는 사람도 많다. 오늘 미도리스시에서 스시를 먹기 위해 콜드스톤의 친구들과 함께 방문했다.

미도리스시와 콜드스톤은 매장의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늘 직원들끼리 마주치게 된다. 항상 お疲れ様です 라고 인사를 하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중 한명이 류타군(류짱이라고 부른다)인데, 이 친구는 성격이 정말 밝아서 언제나 이 친구와 인사를 나누기만 해도 힘이 솟는 기분이다. 저번에 류타군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스시를 먹으러 가겠다고 말했더니, 류타군이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스시집이지만 한번도 스시를 먹으러 간적이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생각해보니 미도리스시 말고도 돈카츠가게, 함바그가게들도 안 가봤다. 내가 일하고 있는 쇼핑몰에는 정말 맛있기로 소문난 가게들만 있어서 늘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아마 바로 옆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까지 안 간 것일지도 모른다.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미도리스시의 하마군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석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들어와보는 미도리스시의 풍경은 무척 쾌활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계속 미소를 짓고 있는 직원들의 얼굴이 가게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내던 미도리스시의 점장님도 우리를 알아봐주셨고, 다른 직원들도 모두 인사를 해주었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초특선니기리超特選にぎり(2,100엔)를 주문했고, 히메는 토크죠우니기리特上にぎり(1,680엔), 레냥은 세트가 아니라 단품으로 각자 주문을 했다. 히메가 나흘전에 류타군에게 내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미도리스시에서 한번 스시를 먹어보고 싶어서 같이 갈거라고  말을 했다고 했다. 그 때 류타군이 기다리고 있겠다면서 기대하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히메는 아마 샐러드 같은 걸 서비스로 갖다 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괜시리 기대가 됐다.
 
일본에 와서 회전스시집에도 몇번 가보고, 슈퍼에서 파는 스시도 많이 먹어봤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스시집에 와서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일 먼저 레냥이 주문한 스시가 나왔다. 정말 맛있어 보였다. 레냥에게 먼저 먹으라고 했지만 다 나오면 같이 먹자면서 기다려주었다. 나와 히메가 주문한 메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류타군이 뭔가를 들고 테이블로 오더니 내 앞에 그것을 내려 놓았다. 우리 세명은 그걸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에~!!!!!!!!!!!!!!!!!!!!!!!!!!!!!!!!!!!!!! 何ですか!!!!!" (이게 뭐야?)
 
접시에는 산처럼 쌓아올린 회(さしみ사시미)가 가득 놓여져 있었다. 나는 주문하지도 않은 음식이 나와서 영문도 모른 채 접시를  보고 있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그러고는 접시에 담겨진 회에 대해 이름을 말해주고 먹는 방법까지 다 설명해줬다.
나를 포함해 같이 온 친구들 모두 깜짝 놀라고 정말 기뻐했다. 미도리스시의 메뉴판에는 나와있지도 않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특별한 메뉴였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도 없는 회가 대부분이었다. 류타군하고는 같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만날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게 전부인데, 이런 걸 선물로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이런걸 받아도 되나 싶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동 받아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바로 이어 나와 히메가 주문한 스시도 나왔다.  테이블 한 가득 맛있는 스시와 사시미가 가득 차려졌다. 오늘 먹은 스시는 일본에 와서 먹어 본 스시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히메와 레냥도 말을 못할 정도로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무엇보다 류짱이 손수 만들어 준 회는 그야말로 최고의 맛이었다. 다 맛있었지만 가장 맛있었던건 오오토로와 시라코였다. 히메가 오오토로와 시라코는 정말 비싼 거라고 했다.

2시 반 정도까지 미도리스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3시부터 일이 있어서 매장으로 출근을 했다. 맛있는 회를 많이 먹은 덕분에 여느 때보다 힘차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마감 업무를 하고서 밤 12시 정도에 퇴근 준비를 하러 가는 도중 류타군과 마주쳤다.
나 : 아까는 정말 맛있었어!! 진짜 최고였어!!
류타군 : 오히려 내 쪽이 저스틴이 기뻐해줘서 정말 기분 좋았어. 맛있게 먹었다니 고마워.
나 : 나도 이 곳에서 일이 끝나기 전까지 류타군에게 반드시 선물을 줄테니까 기다려.
류타군 : 아냐 아냐. 그 선물을 준 건 나의 기분(僕の気持ち)이야.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서 '아, 일본에 와서 좋았어 日本に来て良かった' 라고 생각을  해준다면 그걸로 됐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끔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었어.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 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일이 끝나고 나서 만난 류타군 !
내일부터 겨울 휴가를 얻고 고향인 후쿠시마에 다녀온다고 한다.

류타군, 즐거운 휴가 보내길!
오늘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