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자유를 얻어라.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계절이 변할 때 뭘 느낍니까
오늘도 해가 동쪽에서 떴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립니다.
창 밖의 나무는 어제 그대로의 나무죠?
자연은 '진실무망' : 참되고 거짓이 없다.
천지도: 우주, 자연의 법칙, 하늘의 뜻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꽃은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그런 걸 통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
우주의 법칙은 곧 거짓 없는 자기의 실현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도 거짓 없는 것이다.
꽃나무는 꽃을 피워 자기 실현을 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관계에서 시작한다. 여섯 명만 건너뛰면 세계인은 하나가 된다.
자식으로서의 도리, 부모로서의 도리,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도리,
자기의 위치에서(관계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
질서와 조화를 꽃피우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
만약에 내가 관계를 차단하고 내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
도덕적인 본성의 실현 = 나 스스로가 우주의 창조자가 되는 것
우주는 공공 창조물이다.
꽃, 나무, 인간 하나하나가 전부 우주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봤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다하고 나서 쉬는 것.
(레포트를 다 쓰고 나서 느끼는 감정들, 만족감, 시원함)
임무를 끝내고 나서 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삶에서 죽음을 보는 것이 유가적인 관점
하지만 도가에서는
‘왜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에 의미를 두냐’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났으니까 살고 때가 되면 죽는 것 아니겠느냐.’
같은 자연을 두고서 유가와 도가의 관점이 다름.
유가 (공자-노자): 나는 우주 안에서 의미로 충만한 존재, 임무를 다했을 때 우주 전체로 확장되고 우주 창조의 주체가 되는 것. 기본적으로 도덕적 활동을 통한 창조와 실현이다.
도가 (맹자-장자): 도가는 자연에서 의미를 찾지 않는다.
공자 <논어>
사서삼경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경(‘예기’라는 책 안에 있음)
삼경: 시경, 삼경, 역경
시경: 삼백편의 문학
역경: 역사
삼경: 점 철학
三綱五倫
강: 그물을 모아주는 것, 그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삼강: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
임금은 신하의 법칙,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르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
이것은 공자의 사상이 아니라 한비자의 사상이다.
삼강은 종적 논리지만, 오륜은 횡적(수평적)논리다.
오륜은 기본적으로 쌍무적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이다.
관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부모 자식의 관계다.
‘너희 부모를 대하듯이 친구의 부모를 대하고, 너희 자식을 대하듯이 친구의 자식을 대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다 보니 바깥쪽으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안으로 갇히게 됨: 학연, 지연, 혈연
오륜: 부자유친, 부부유별, 군신유의, 붕우유신, 장유유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
君君臣臣父父子子 (군군신신부부자자 )
임금은 임금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
자기의 신분에 맞는 역할을 다하라.
노자 <도덕경>
노자는 반도덕주의자다.
도덕경은 상하로 나뉘어져 있는데
상편: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하편: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인무덕)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는 것이고, 하덕은 덕에 얽매이기 때문에 덕이 없다’
즉, ‘도’를 도라고 하는 순간 이미 참된 도가 아니다.
可道가도: 갈 수 있는 길,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 공자를 비판하는 것
유가: ‘다움’ = 걸맞는 행동, 임금은 임금다움
박산위기: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된다.
임금은 임금으로 규정된 것.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남자라고 한다면 남자다움이 나옴
그러면서 속박이 나옴
학생이라고 하는 순간 학생이라는 규정에 얽매이게 됨
노자: 어릴 때로 돌아가자.
남자 여자의 차별을 없애면 사람이 되고
사람과 동물의 차별을 없애면 생명이 된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의 차별을 없애는 순간 그것을 초월하게 됨
의사, 변호사, 검사가 되기 위해 왜 12년간 매몰되어야 하는가
왜 대학생과 비대학생을 구분하느냐, 같은 청년이 아니냐.
도가는 불교와 유사한 점이 있음.
‘나’ 주격이 나오면 반드시 소유격이 나옴.
나의 집, 나의 돈, 나의 생명, 소유격이 나오면 그 다음은 집착이 나옴.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인데, 안 죽을 순 없잖은가
그럼 나를 뺀다. 내가 없다면 죽는 것도 없다.
불교의 출발: 삶은 고통스러운 것
늙으면 고통의 연속이다.
현대 사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회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 해탈
우리는 왜 고통스러운가 – 무명 무지 무식
알면 해탈한다. 나를 알면 해탈한다.
날 빼버리면 윤회가 있을 수도 없다. 날 빼버리면 아무것도 없다.
나의 소유격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권태로워지면 또 다른 욕망을 찾게 되고 끊임없이 고통을 겪는다.
권태의 극복 과정. 욕망의 추구 과정
나를 없애라. 나라는 것은 원래 없다는 것을 알아라.
서양의 종교는 ‘절대자가 모두 알아서 해준다.’
기본적으로 동양의 종교는‘너가 알아서 해라‘: 내가 성인이 되고, 내가 부처가 되고, 우리 모두가 부처이다.
서양의 큰 바위 얼굴 이야기는 동양의 사상을 닮았음: 늘 쫓아다니다가 어느새 내가 그 사람이 되어있음.
客気객기: 세상을 손님으로서 살아가는 것
장자의 逍遙遊소요유: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다닌다.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자유로운 경지에서 에서 자유로이 노님)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얽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高尾山 다카오산
다카오산高尾山
일본은 오늘(1월3일)까지 정월휴일이다. 1월1일~ 3일동안 하루는 꼭 신사나 절에 가서 올 한해도 무사히 넘기길 바라며 참배를 드린다고 한다.(하츠모우데) 나는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까지 굳이 따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일본인이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일본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의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가장 큰 의의는 문화 체험에 있으므로, 정월휴일의 마지막인 오늘 다카오산으로 하츠모우데를 다녀왔다.
신주쿠역에서 게이오선을 타고서 게이오선의 종점인 다카오산구치高尾山口까지 달려 약 1시간만에 도착했다. 다카오산은 도쿄 도심의 근교에 있는 작은 산으로서 산이 거의 없는 도쿄에서는 매우 유명하다.(해발599미터) 다카오산은 연간 등산객수가 260만명을 넘어 후지산보다 훨씬 많고, 그 수치는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는 잘 모르겠다.)
올라갈 때는 6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고, 내려 올 때는 1호 등산로를 따라 내려왔다. 등산과 하산 모두 한시간씩 걸려서, 모두 2시간이 소요됐다. 마음 제대로 먹고 등산을 하는 산이라기 보다는 정말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 어울리는 코스였다. 작년 여름에 후지산을 다녀온 이후로 일본에서는 두번째의 등산이었다. 첫번째 등산이 워낙 큰 도전이었기 때문에 산을 올라갔다 오고 나서도 등산을 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두번째 등산이기는 했지만 시간적으로는 봐서 마지막 등산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 등산은 한국의 어느 산이 될 것 같다.
절에서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서 기도를 올렸다. 올 한해 무사히 보내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가족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불교를 믿으면 좀 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어울리는 종교
2009.4.29
나에겐 불교가 어울리는 것 같긴하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이 곧 불교의 가르침이다. 어느 종교를 꼭 가져야겠다는 강박관념은 없는데, 그래도 불교를 믿으면 좀 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종교를 믿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불교와 기독교는 성격이 너무 다르다. 두 종교를 같은 '종교'라는 테두리에 묶는 것 조차 어색할 정도다.
2009.4.30
요새 사무실 뒤에 밭을 일구고 있다. 소박한 재미다. 근데 무리를 한건지 어깨와 허리도 아프고.. 쉰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 어서빨리 수박이랑 옥수수랑 토마토랑 먹고 싶다. 몸이 피곤하다. 이 몸을 어찌해야 될꼬. 앉거나 누우면 잠이 쏟아지고, 힘이 빠지고.. 봄이라서 그런건가..차라리 봄 때문에 그런거라면 좋겠다. 휴가를 앞두고 몸이 최상이 아니라서 우울하다. 이번주는 시간이 참 늦게가는 구나... 으.. 오랜만인걸..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의 여왕으로 태어난게 아니라
2009.4.27
작년 이맘때는 한창 불교에 빠져 지냈는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사님이 바뀐 이후로는 그전과 같은 열의를 못가지고 있다. 내가 달을 보려하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려했기 때문일까. 형식보단 본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형식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본질... 대상의 본질, 관계의 본질. 형식에 얽매여 본질을 놓치고 있다. 종교도 결국은 형식 아닌가.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마음 속으로는 전혀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건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 안철수 라든가, 빌게이츠 라든가, 김연아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것은 그들이 가진 재능 때문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분야에 나갔더라도 큰 일을 해내고, 또한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단순히 우연찮게 그쪽의 길로 접어들게 되어 그 분야에서 최고로 올라선 것이다. 결국은 개인의 특성 때문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포기할 줄 몰랐던 열정. 그것이야말로 지구상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이다. 다행스럽게도 누구든지 원한다면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이 걸어 나간길. 모두 다른듯하지만 결국은 같은 길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노력을 한다면 큰 일을 이뤄낼 수 있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의 여왕으로 태어난게 아니라 수많은 여왕의 자리 중 피겨스케이팅을 선택한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는 수없이 많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오늘 일요일은 종교활동이 있는 날. 08년 3월 초 해군 훈련소에 입대한 이후로 지금까지 주말마다 법당에 나가고 있다. 처음에 왜 내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중에서 불교를 선택한 건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교회라면 국민학교 때 여름성경학교의 재미에 빠져서 나갔던 적 말고는 가본 적이 없고, 성당이라면 고풍스럽고 화려한 외관와 내부의 모습에 반해 사진을 찍으러 간 적 외엔 가본 적이 없고, 절은 한가한 주말에 가족 나들이 코스로 자주 찾은 기억 뿐.. 아무래도 난 절의 조용한 매력에 이끌린 것 같다. 3월 훈련소에서 법당에 나갔을 땐 법사님의 말을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꾸준히 법당에 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불교의 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교의 교리를 배워가면서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삶'이랑 많은 점에서 일치하는 걸 느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마음이 평안해지는 한편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되살펴 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처음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는 없고 나의 것도 없다' 라는 말도 조금씩 이해의 문턱까지 온 것 같다. 경전에 쓰여진 모든 말씀들을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정말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들이 담겨있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오늘 설법시간에 읽었던 법구경 중엔 이런 말이 있었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지혜롭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면, 지혜롭고 고요한 마음으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싸움터에서 백만명을 이기는 사람보다, 자기 하나를 이기는 이가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지혜들이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다. 불교의 매력에 어디까지 빠질지는 알 수 없지만, 군생활동안 혹은 사회에서도 지금 배운 지혜들이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 믿는다
원숭이 이야기
2008년 5월 18일
불교의 가르침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사상과 정말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오늘 들은 말씀도 그랬다. 결국은 모두 나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내마음대로 굴러가는 세상'과 너무도 비슷해서 놀랐다. 내가 여유가 없다고 걱정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이고 난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거지 라면서 고민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고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세상은 내 마음대로 굴러간다. <법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한 제자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큰 스님을 찾아갔단다. 큰 스님은 제자에게 "오늘 저녁에 샤워를 하면서 원숭이 생각을 절대 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내일 다시오면 가르침을 주겠다." 하지만 제자는 샤워하는 동안 내내 원숭이 생각만 하고 말았다. 떨쳐버리려고 할수록, 벗어나고 싶어 할수록 그것을 떨쳐낼수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의 시간을 빨리 보내버리고 벗어나려 할수록 벗어날 수 없다.
여러분이 3함대를 잠시 빌리는 것뿐입니다
하루 종일 교육 받음. 정훈교육, 보안교육, 인권교육, 군법교육, 고충상담안내 등등등 어떤 교육관이 이런말을 했다. 우리들의 몸은 2년간 '나의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이니 건강을 훼손해서도 안되고 도망가지도 말아야(탈영) 한단다. 오직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기분이 팍 상했다. 인간으로서 개인의 존엄성은 어디로 보내버린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교육만 계속 받다가 저녁엔 법당에 가게 됐다. 무여 법사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두 친구가 무인도에 가게 되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 무인도엔 아무도 없어. 우리밖에 없는데 어떻게 지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이 무인도를 잠시 빌리는 걸세”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무인도를 내가 빌린 다는 생각. 이어 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3함대라는 곳에 여러분이 끌려온 게 아니라 여러분이 3함대를 잠시 빌린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을 받아왔지만 불교에서는 내가 인간 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불교에 참가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