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삶에 대하여 2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고서

<삶과 죽음의 철학> 에세이
의미 있는 삶에 대하여 2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고서

김선일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정해놓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도, 좁디 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많은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돈을 많이 벌면 여행도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가족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이 없고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프랭클 빅토르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며 우리인생은 언제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삶에는 진정으로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며,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남아서 죽음 그 자체에도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지는 것이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 유일무이함을 깨닫고 자신의 삶의 유일무이한 의미를 찾아야 된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우리 인간이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부모님의 밑에서 태어나 길러지고, 언어를 습득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교육의 단계를 거쳐오면서 자연스레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을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좋은 머리 덕에 학습에도 소질이 있었고, 주위의 사물에 감탄을 하면서 감동을 받을 줄 알았고, 많은 친구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면서 잘 지내왔다. 물론 중3과 고3 입시공부를 하는 시기에는 남들처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존재의 이유에 의문을 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노력한 정도의 성취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건가’라는 좌절감을 경험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평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두 분 모두 몸이 편찮으시다. 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하다가 팔을 심하게 다치셨고,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심장이 심하게 안 좋아져서 큰 수술을 받기도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허리가 아프셔서 수술을 받으셨는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지금도 고생하고 계시다. 그리고 친가와 외가 쪽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많은 어려움들이 일어나 우리 가족에게까지 심적으로 부담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환경이 나로 하여금 삶이 지닌 의미에 궁금증을 품어 볼 여유를 주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루 빨리 내가 어른이 되어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것, 그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아닐까 싶다.

프랭클 빅토르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특정한 개인과 관계가 있고 그것은 매우 상대적이라고 말한다. 즉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르며 시간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삶의 의미는 언제나 변해왔고,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유일무이한 의미를 지니고서 인생을 살아가며 유일무이한 상황들이 연속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한다. 내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삶의 의미들 또한 내가 결혼을 하고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나는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할 것이다. 아직은 내가 어떠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중심에는 사랑이 놓여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나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그러한 점에서 무척 좋은 책이었다. 결국 우리 인생의 답은 사랑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우주는 너무 광대해서 낱낱의 인격과 맺는 관계를 초월해 있다.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 자신의 작은 자아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고 말한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니어링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자신들이 머무를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들과 함께 조용히 살아간다. 그리고 책과 편지를 통해 올바른 세계를 만들기 위한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삶이다. 세계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혁명으로서 그 길을 이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처럼 조용히 책을 통해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길만 있는 법은 아니다. 길가에 쓰레기를 줍고, 힘든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세계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나이를 먹고 죽게 되고 우리의 존재는 사라지게 되지만 우리가 살았던 그 시간은 영원히 남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이 세상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놀랍다. 누군가 쓴 책이 누군가의 삶에 방향을 설정해주고, 또 누군가가 만든 영화는 지구상의 누군가에게 꿈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 또한 지금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수업에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보면서 배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 헬렌 니어링은 책 속에서 말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연속성과 이어짐을 믿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는 더 많은 만남과 더 많은 기회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가 수업에서 그들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을 보면 그들의 바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의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죽음은 끝이 아니다.
책 속에서 스콧이 죽는 마지막 대목을 읽을 때 마음이 무척 편안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읽는 동안 무척 초조했지만, 스콧의 죽음은 물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느낌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스콧은 자신의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에는 식사를 끊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을 하나의 경험으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헬렌은 남편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안이 잘 정돈된 문가에 서서 그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하는 남자의 면모’ 이 얼마나 편안한 모습인가.
예전에 나의 죽는 순간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을까’를 고민해 본 것이다. 스콧의 죽음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화 몇 편이 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다. 숨이 멎는 순간 영화가 끊기게 될지, 아니면 죽음 뒤의 세상에서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죽는 순간까지 영화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 바라는 게 있다면 죽는 순간에도 영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맑은 정신만큼은 유지 했으면 좋겠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스콧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콧은 삶의 마지막 날을 지내면서 이러한 글을 썼다.

“인류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지구는 어마어마한 생명체를 안고 있는 먼지 알갱이이자, 전체로 하나인 의식체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인류의 역할은 많든 적든 완전히 그르쳐졌습니다. 우리는 공을 놓치고 있어요. 시간을 찔끔찔끔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뭔가 더 가치 있는 일을 다시 만들고 건설할 수 있을까요? 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창조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것이 삶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당신이 믿는 대로 행동하시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친절하도록 해요. 나는 사람들이 몸으로나 정신으로나 그렇게 살도록 돕고 싶은데, 그렇게만 되면 지구는 지난 날보다 더 살기에 좋은 곳이 될 거요”

  대학생 3학년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도 이렇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이러한 마음과 내가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마음과, 지구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세상을 좀더 좋게 만드는 것과 같은 방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전세계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