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아침을 깨우는 책 - 김정빈
안목 :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라
동쪽 언덕에 오르면 노나라가 작아보이고,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아보인다.
세 종류의 사람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는 사람
이미 있는 길을 가는 사람
없는 길을 만드는 사람
강물로 뛰어든 개
뛰어드는 동시에 두려움 또한 사라졌다.
두려움은 미지의 아들, 어둠의 딸이다.
두려움은 모르는 데서 생기고, 어둠 뒤에 숨어 있다는 의미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은 뒤에 천당이 있거나 다음 생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듯이 확실히 안다면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그 경우 이 더럽고 치사한 삶을 당장에 끝내버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죽음 뒤를 설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사후의 세계가 실존한다는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만일 죽은 다음에천국에 간다는 것을 정말로 확신한다면 그 종교인은 교통사고를 모면한 다음 후유!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지 말아야 한다. 그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아까운 기회를 놓쳤군!" 하며 안타까워해야 마땅한 것이다.
귀신이 두려운 것 역시 이치는 같다. 귀신이 두려운 것은 귀신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귀신은 어둠 속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무섭다. 이로써도 알 수 있듯이 어둠은 미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움은 나약한 자아의 소산이다. 사나이가 결심하고 전진하면 운명의 신도 길을 열고 비켜서는 법. 사정은 귀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알고 보면 운명의 신과 귀신의 체급은 헤비급이 아니라 아무리 잘 쳐준다고 해도 미들급이나 웰터급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내가 헤비급의 강한 자아를 가진다면 운명과 귀신은 비켜서게 되어 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나를 향해 짖어대는 개를 만났을 때 그 개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공격한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지만 두려움에 대해서도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공격은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이 선택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거꾸로 두려움을 가진 사람도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법이다.
청년은 어떤 문제든 그 문제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그것을 상대할 각오와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길 가능성이 높으냐 질 가능성이 높으냐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공격, 그것은 언제나 옳다.
두려움은 언제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일지 모른다. 삶은, 그리고 경영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문제라는 강물에 대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문제를 풀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물론 지금 내 앞에 닥친 문제는 크고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전혀 풀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를 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문제는 이마를 찌푸리게 하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도전 의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문제가 없다면 나는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문제가 없다면 나의 승부욕은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백은 자기에게 어떤 책이 들어오면 서문과 목차를 꼼꼼하게 읽었다고 한다. 그것이 자기의 전공이 아닌 책일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이 철학책이든 역사책이든 과학책이든 예술책이든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는 그 책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관점에서 주제를 다루었는지, 그 요점은 무엇인지,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파악해두었다.
목차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책의 대강을 훑어본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대한민국의 전역을 한 번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공자 ,동쪽 언덕에 오르면 노나라가 작아보이고,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아보인다.
갈매기의 꿈 -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를 1차원의 베짱이와 3차원의 베짱이로 나눠야 한다. (개미: 샐러리맨, 베짱이:연예인)
그렇다면 3차원의 베짱이는 무슨 능력으로 2차원의 개미를 이긴 것일까. 거꾸로 말해 왜 2차원의 개미는 3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ㅇ리까.
놀랍게도 그것은 개미가 1차원에서 2차원으로 향상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성공은 그의 두 번째 성공을 가로맞는 벽이었다. 역설! 그렇다. 그는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3차원)하지 못하는 역설에 빠져있었다.
생각해보면 1차원 베짱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일해야 할 때 놀았기 때문이고, 2차원 개미가 성공한 것은 놀고 싶을 때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과 노는 것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일해야 한다. 일해야 한다. 개미는 마음속으로 열 번, 백 번 다짐했다. 그리하여 그의 머릿 속에는 성공=일 이라는 등식이 확고부동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3차원의 문은 그 등식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세 번째 단계가 요구하는 것은, 성공은 일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일만이 성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근면성보다는 창의성 (놀기, 여유, 휴식, 거리유지) 이다. 그리고 창의성은 첫 번째 차원의 베짱이, 즉 일할 때 노는 것과 통한다. 그러니 첫 번째 차원을 비웃고 경멸해 온 개미에게 어떻게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될 여지가 있겠는가.
나부터 시작하라.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부터 시작하라.
연출된 마음, 남에게 보이는 쇼로는 오래 갈 수 없다. 변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변화가 아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차원을 높일 수 없다. 진짜로 변해야 한다. 죽었다가 깨어날 정도로 변해야 한다.
더 높은 데 올라 바라보라. 더 넓게 보는 시야를 길러라. 그때 지금껏 보이지 않던 위험이 보이고, 다시 그 위험을 대적할 만한 용기가, 그리고 그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지략이 샘솟을 것이다.
경쟁: 라이벌의 성공을 축하하라
반전무인의 경지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은 경쟁을 하되 경쟁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가 넘어선 경쟁 너머에 승리가 있다. 그 승리는 남을 이긴 승리인 한편으로 남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이긴 승리, 질투를 이긴 승리다.
이때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일어선다. 떳떳한 인간, 당당한 인간, 아름다운 인간은 우주적인 룰 앞에 홀로 선 사람, 대장부로서 인생을 승부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대가 대장부라면 나 또한 대장부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보고,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기를 좋아한다." -피천득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그는 자주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 남이 성공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것은 그가 기뻐할 일이 매우 많다는 것, 그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투를 이기는 것은 행복을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을 늘린 사람에게 반드시 성공이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법이다.
행동 :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일을 행동하라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누구나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누구는 큰일을 해내고 누구는 평범한 일 밖에 하지 못하는 것, 이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행동이다. 먼저, 행동은 생각의 결과물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면 어느 순간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말할 수도 있다. 행동하고 행동하고 또 행동하다 보면 그 결과 생각이 정리된다는 이야기다.
좋은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것, 행동을 한 다음 생각을 정리하는 것. 이 둘의 반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당시 나는 현실적인 감각이 매우 뒤떨어지는,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나약한 사람이었다. 이 말은 내가 행동하기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단'의 경우에 한하여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를 바꿔놓았다. 그 무렵 나는 내적 윤리성을 매우 중시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마음의 선량함, 정신의 고결함 등 내적 가치 기준에 나 자신을 맞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같은 가치관은 여러 면에서 나를 규정했다. 여기에 사용한 규정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그 가치관이 나를 잘 지탱하여 서있도록 해주었음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어떤 범주 안에 가두었음을 의미한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4년간 쓴 글보다 세 배나 많은 양의 글을 그 짧은 기간에 쓸 수 있었는가.
비밀은 역시 행동이었다.
그 동안 철학자들은 세게를 분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모든 사람에게는 잠재 능력이 있다. 그것이 장재능력이라는 것은 내 안에 깊이 매장되어 있으면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금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한계짓지 말아야 한다. 나의 능력이 무한대라고 가정하고 나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나를 현실 앞에 내던지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압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 때 현실은 나를 시간적으로 제한한다. 한 달 만에, 또는 2주 만에, 3일 만에 하는 식으로,.짧은 기간은 나를 생각하기보다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은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완성도가 높은 글을 지향하다가 결국 글을 쓰지 못하는 쪽과 완성도가 좀 덜하더라도 어찌되었든 글을 쓰는 쪽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젊은 문학도 에커만이 불멸의 천재 괴테를 방문했을 때 평생에 걸쳐 100권 이상의 책을 쓴 노작가 괴테가 말했다
"완전한 글을 쓰겠다며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지금 가능한 일을 하시오. 그러면 불완전한 그 일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것이니, 그 배움을 바탕으로 다음 일을 하시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며, 어느새 완성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오."
괴테는 전인이었다.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소설가이자 철학자였다. 또한 정치가이자 법률가이자 행정가였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광물학과 광학을 연구했으며, 배우이자 무대 연출가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덯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상을 포기한 세속주의자였던 것도 아니다.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자였따.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상을 향하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가능한 현실에 충실하게. 이런 마음가짐은 오늘-오늘-오늘 로이어지는 삶을 언제나 오늘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그런 마음가짐이 오늘을 충실하게 채워주고, 그 충실함이 하나하나 쌓여감으로써 한 달이, 한 해가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날 오프라윈프리의 아버지 버논은 그녀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사람들은 일을 일으킨다. 두 번째 사람들은 남이 일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본다. 세 번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모른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니?
오프라. 너는 환경의 희생자가 되겠느냐, 아니면 네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겠느냐?
행동하라. 일을 일으키라.
이것은 내가 나를 책임지는 첫 번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