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인간,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 받을만하고 고상한 일처럼 들리지만,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력이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 역시 똑같은 기능장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더 미묘하고 순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를 강화하는 형태이다. 그런 노력 역시도 자신이 관념 속에서 ‘나’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만들려는 욕망과 아무 차이가 없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고, 그 좋은 것이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써만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 p38인간의 삶과 의식은 지구의 삶(생명)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낡은 의식이 소멸하면 그것에 공명해 지구의 많은 곳에서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나 대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삶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자살의 고비까지 간 후의 일이었으며, 이번의 깨달음은 짧은 순간의 경험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강박적인 생각과,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의 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p61자기 본래 존재의 삶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면 인간은 물질로 삶을 채우려 하기가 쉽다. 하나의 영적 수행으로서 나는 자신이 물건들의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한 번 관찰해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특히 ‘나의 것’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물건들과의 관계를. 예를 들어 자아 존중감이 소유물에 좌우되지 않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민감해야 하고 솔직해야 한다. 자신을 중요한 인물이나 우월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특정한 물건들이 있는가?“당신은 결국, 그것도 아마 가까운 시일 안에, 그 반지를 내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것을 내려놓은 준비가 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가요? 그것을 내려놓으면 자신이 더 작아지나요? 그 손실로 인해서 당신의 존재가 줄어드나요?”만약 이토록 강렬하게 나의 ‘순수한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분명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죠.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평화로우면서도 매우 살아 있는 무엇인가를.“그것이 존재의 기쁨입니다. 머리에서 벗어날 때만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존재는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에고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단지 무의식일 뿐이다. 자신 안에 있는 에고를 관찰할 때 당신은 그 너머로 가기 시작한다. 에고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자신 안에서 에고의 행위를 감지하게 되면 미소 지으라. 때로는 소리 내어 웃어도 좋다. 인류는 어떻게 오랫동안 이런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먼저, 에고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에고는 당신이 아니다. 에고를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단지 더 에고일 뿐이다.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자신은 어떤 사람이며 누군인가를 비춰 주는 거울이 된다. 에고의 자아 존중감은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가치에 매여 있다. 당신은 자신에게 자아의식을 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로 거의 대부분 자아 존중감이 결정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면, 그 집단적 망상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한 자신의 가치와 자아의식의 완성을 찾아 헛된 희망을 품고 남은 평생 동안 물질만을 쫓아다니는 운명이 될 것이다.어떻게 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질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자신이 물질과 동일화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그 동일화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비극적인 상실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것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항복한다. 억울해 하거나 깊은 원한을 품는 사람도 있으며, 자비로워지고 지혜로워지고 사랑이 더 커지는 사람도 있다. 항복은 있는 그대로를 내적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삶을 향해 자신을 여는 것이다. p88내적으로 항복할 때, 저항하지 않을 때, 의식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그때 만약 행동이 가능하거나 필요하다면, 당신의 행동은 전체와 조화를 이룰 것이고, 내적으로 열린 상태일 때 당신과 하나가 되는 창조적인 지성과 조건 지어지지 않은 의식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것이다.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당신을 돕고 협조적이 된다. 불가사의한 우연들이 일어난다. 만약 어떤 행동도 가능하지 않다면, 당신은 저항의 포기와 함께 오는 평화와 내적 고요 속에서 휴식한다. 신 안에서 휴식하는 것이다.영적 깨달음은 내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지나가 버리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는 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환상의 나를 버렸을 때 남는 것은 그 안에서 지각과 경험과 생각과 감정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의식의 빛이다. 그것이 바로 더 깊은 곳에 있는 나, 진정한 나, ‘순수함 있음’이다. 나 자신이 그것임을 알 때,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고, 단지 상대적인 중요성만을 지니게 된다.에고의 숨은 동기는 언제나 같다. 눈에 띄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힘을 갖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더 많이’ 원하는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은 남들과 별개라는 느낌을 갖고 싶어한다. 즉, 대립하는 상대방, 적이 필요하다. 에고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원한다. 언제나 숨겨진 안건을 가지고 있다. p115‘현존’이 아니라 인정, 칭찬, 찬사 같은, 혹은 어떤 식으로든 주목받고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어떤 형상 속의 관심이다.두려움의 이유는 그 관심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형태를 띠지나 않을지, 다시 말해 자아의식을 강화시켜 주기는 커녕 위축시키지나 않을지 불안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심한 사람은 관심에 대한 두려움이 관심에 대한 욕구보다 더 크다. 소심함은 종종 눈에 띄게 부정적인 자아 의식, 즉 자신에게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다는 믿음과 함께 한다. 자기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보는 관념 속 자아의식은 ‘내가 최고야’라는 식의 두드러지게 긍정적이든, 아니면 ‘나는 형편없어’라는 식의 부정적이든, 어느 쪽이든 에고이다.모든 긍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모든 부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최고가 되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우월감을 느끼고 그 우월감을 지속하려는 자신만만한 에고의 욕구 뒤에는 열등해지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숨어있다.에고가 추구하는 관심의 형태는 ‘나’의 문제, ‘나와 나의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과 연민과 관심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보는 것은 불평하고 상처입고 몹시 화내는 것과 같은 에고의 많은 패턴 중 하나이다.에고는 자신의 ‘문제들’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에고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도 ‘나의 슬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는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하면서 자기를 불쌍하게 느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이나 다른 사람들, 운명이나 신에게 불공평하게 취급당하는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그 정체성은 나의 자아상을 명확히 규정해주고, 나를 누군가로 만들어 준다. 에고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연애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고,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에고가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나를 연기하고 있으니까 당신도 내가 원하는 당신을 연기해 줘” 이것이 암묵적인 무의식적 합의이다. 그러나 역할 연기는 힘든 일이며, 특히 일단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 끝없이 연기를 계속할 수 없다.흔히 말하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실은 에고의 욕구와 필요성을 강화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중독된다. 그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과는 관계가 멀다.불행의 주요 원인은 결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생각을 상황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상황은 언제나 중립적이며, 언제나 있는 그대로이다. 반대편에는 상황이나 사실이 있고, 이쪽에는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있다.이를테면 ‘나는 망했어’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당신을 한정 짓고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통장에 달랑 500원밖에 남아 있지 않아’는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과 대면하면 반드시 힘이 솟아난다. 대부분 당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생각과 감정 사이의 연결을 보아야 한다. 생각과 감정이 되는 대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알아차림이 되어야 한다.행복을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찾아다닌다면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찾아다닌다는 것은 행복의 안티테제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교묘히 달아나지만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는 지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와 마주함으로써 가능하다. 불행은 진정한 행복의 원천인 심신의 조화와 내적 평화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숨겨 버린다.당신이 부정적인 마음 상태가 될 때마다, 당신 안에는 그 상태를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부정적인 생각에 매달려 자신과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 몸에 병을 만들겠는가? 따라서 자기 안에 부정적인 마음 상태가 일어났을 때, 그 부정적인 상태에 쾌감을 느끼거나 그것이 쓸모 있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는 무엇인가가 당신 안에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당신은 곧바로 에고를 알아차리게 된다.부정적인 마음 상태의 한가운데서 “이 순간 나는 스스로 고통을 만들고 있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건 지어진 에고의 상태와 반응의 한계 너머로 올라갈 수 있다.자신의 불행이 지성적인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그 자리에서 그 불행을 내려놓고 자유로워 질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는 지성적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에고이다. 에고는 영리할지 모르지만 지성적이지는 않다. 영리함은 그 자신만의 작은 목적을 추구한다. 지성은 모든 것들이 연결된 더 큰 전체를 본다. 영리함은 자기 이익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며, 극단적으로 근시안적이다. 정치인과 경제인 대부분은 영리하다. 지성적인 사람은 매우 드물다.받아들임을 통해 당신은 넓고 광대한 본래의 자신이 된다. 전체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이 아니다. 에고는 스스로를 하나의 조각으로 인식한다. 당신은 전체가 될 필요가 없으며, 이미 전체인 자신이어야 한다. 고통체가 있든 없든.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에고를 경험한다. 상대방 안의 무엇인가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임을, 그리고 때로는 자신 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기 자신의 에고가 보인다. 이 단계에 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을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을 피해자로 보는 것을 중단하게 된다.당신은 에고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 안의 에고를 알아차렸다고 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누구가 아닌가를 알게 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누구가 아닌가를 아는 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된다.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신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사실 모든 믿음은 어느 것이든 장애물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심지어 깨달음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달음 없이는 ‘진정한 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지 않고 묻혀 있는 상태가 된다.자신이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돈이든 인정받는 일이든 사랑이든 ‘부족함’이라는 사고방식이 포함되면 언제나 결핍을 경험한다. 이미 있는 자기 삶의 좋은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결핍만 눈에 띈다. 이미 있는 자기 삶의 좋은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풍요의 기본이다. 세상이 인색하게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인색하게 세상에 주지 않는 것이다. 왜 인식한가 하면, 자신은 작고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마음 깊은 곳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 p246당신을 에워싼 삶의 충만함을 보라. 피부에 닿는 햇살의 따스함, 꽃가게 앞에 놓인 꽃들의 아름다움, 깨어 물면 과즙 풍부한 과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풍요 속에 젖는 즐거움 등 모든 걸음마다 삶의 충만함이 있다. 자기 주위 모든 곳에 있는 풍요를 알아보는 것이 자신 안에서 잠자고 있는 풍요를 깨어나게 한다. 그런 후에 그 풍요를 밖으로 흘러나가게 하라.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지을 때, 그곳에 이미 에너지의 미세한 흘러나감이 있다. 당신은 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현재의 순간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이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것을 향해 우호적으로 다가가,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친구답게 환영하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삶 쪽에서도 당신을 향해 우호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협조적이 되고 상황도 협력적이 된다. 한 가지 결정이 당신의 현실 전체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그 결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될 때까지.현재의 순간을 친구로 삼으려는 결정은 에고의 종말을 의미한다. 에고는 결코 현재의 순간과 사이좋게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에고의 본성 자체가 현재의 순간을 무시하고, 저항하고, 가치를 깎아내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고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에고가 강할수록 삶은 한층 더 시간에 지배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하는 거의 모든 생각이 과거 또는 미래와 관련된 것이 되어 버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과거에 의해 결정되며, 자기실현을 미래에 의존한다. 두려움 불안, 기대, 후회, 죄책감, 분노 등은 의식의 시간에 얽매여 기능 장애 상태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현재의 순간에 대해 에고는 세 가지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반응하는 것, 장애물로 반응하는 것, 적으로 반응하는 것 이 세 가지다.에고에게 현재의 순간은 기껏해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쓸모가 있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그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순간으로만 다가오며, 따라서 미래라는 것은 머릿속 하나의 생각 이상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이 방식이 작용하면 당신은 언제나 어딘가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바쁘며, 결코 ‘지금 이곳에’ 완전히 존재할 수없다.이 방식이 심해지면 현재의 순간이 마치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지고 다루어진다. 이때 초조함, 좌절, 스트레스가 일어나지만, 우리의 문화에서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상이자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오직 ‘지금’인 삶은 ‘문제’가 되고, 당신은 문제 많은 세상에 살아가게 되며,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행복하거나 만족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삶을 시작할 수 없다.현재의 순간을 장애물로 보는 한, 문제에 끝은 있을 수 없다. 삶은, 즉 ‘지금’은 말한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는 무엇이든 되어 줄 거야. 당신이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나는 당신을 대할 거야. 당신이 나를 문제라고 보면, 나는 당신에게 문제가 되어 줄 거야.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면 장애물이 되어 줄 거야.’모든 것이 시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은 ‘지금’ 속에서 일어난다. 시간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의 순간, 혹은 현재의 순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뿐이다. 직접적인 증거만을 놓고 말한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만이 존재하는 전부이다.당신이 꿈 속에서 깨어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가 그 꿈 안에서 깨어나면 에고가 만들어 낸 지구상의 드라마는 끝이 나고, 더 평온하고 경이로운 꿈이 일어난다. 이것이 새로운 지구이다.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을, 일어나면 안 되는데도 일어난 어떤 일, 혹은 일어나야 함에도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 때문에 삶 자체에 내재해 있는 깊은 완전성을 놓쳐 버린다. 언제나 이미 이곳에 있는 완전성,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나지 않는 것 너머, 즉 형상 너머에 존재하는 완전성을. 현재의 순간을 받아들여, 어떤 형상보다도 깊고 시간에 의해 손상되는 일 없는 완전성을 발견해야만 한다. 유일하게 진정한 행복인 ‘순수한 있음’의 기쁨은 형상, 소유, 성취, 사람 또는 사건을 통해 오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그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당신 내면의 형상 없는 차원으로부터, 의식 그 자체로부터 발산되는 것이며, 따라서 본래의 당신 자신과 하나이다.‘작아짐’으로써 당신은 역으로 더 넓어지며, ‘순수한 있음’이 앞으로 나올 여유 공간이 생긴다. 그 때 진정한 힘이, 형상을 초월한 진정한 당신이, 분명히 약해진 형상을 통해 빛을 발한다.자신이 특별히 아무 존재도 아님에 만족하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당신은 우주의 힘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에고에게 약함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유일하게 진정한 힘이다.당신은 세상의 것들에 의미와 중요성을 주지 않고도 그것들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다. 그것들은 원래 의미와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단순한 것들의 가치를 알고, 혼자 있는 것을 즐거워하고, 애정을 가지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능력 속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이 공통된 요소는 배후에서 이것들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충만감, 평화, 그리고 생동감이다.언어는 그것을 가리키는 표지판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직접 느낄 때 더욱 깊어진다. 그러므로 소리, 풍경, 감촉 같은 어떤 단순한 것의 가치를 알아볼 때, 아름다움을 볼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과 친절을 느낄 때, 그 경험의 원천이며 배경인 넓은 내적 공간을 감지해 보라.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당신의 삶에 의미를 준다면, 당신의 삶이 계속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스스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당신보다 상황이 나빠지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어떤 일에 뛰어나거나 승리하거나 성공하려는 욕망이 당신에게 의미를 준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하거나 어느 날 연속적인 성공이 막을 내린다면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분명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상상이나 기억에 의존해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당신의 삶에 무미건조한 의미만을 가져다주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장소 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수백 수천만 명이 실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실패’가 필요하게 됩니다. 타인을 돕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큰 것은 작은 것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서 나옵니다. 저마다의 삶은 실제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큰 것’은 머리의 추상적 개념이고, 에고가 가장 좋아하는 환상입니다. 그러나 큰 것의 기초는 큰 것을 추구하는 대신 현재 순간의 작은 것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에 대한 개념은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와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공은 힘든 노력과 행운, 굳은 의지와 재능, 또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장소에 있는 것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일 수는 있지만 성공의 본질은 아닙니다.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당신이 미래에 성공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르쳐 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지금 성공하는 것, 오직 그것뿐입니다. 성공은 현재 순간의 성공밖에 없습니다.현재 순간의 성공이란, 당신이 하는 일 속에, 그것이 아무리 단순한 행위일지라도, 하나의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깊이가 있다는 것은 조심성과 주의력, 즉 알아차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를 가지려면 ‘이 순에 존재함’이 필요합니다.보통 성공은 미래의 일이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과 수단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만약 수단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는 거기에 도달하는 행동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행동에 의해 이미 오염되었다면 미래의 더 많은 불행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것은 업을 쌓는 행위로, 불행을 무의식적으로 지속시킵니다.당신의 삶 전체의 여행이 궁극적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 내딛는 발걸음으로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나 이 한 걸음만이 존재하며, 따라서 당신은 그것에 완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이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하며, 목적지는 이차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만나는가는 이 한 걸음의 성질에 달려있습니다. 미래가 당신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당신의 지금의 의식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난 확신할 수 있어, 우리의 한계는 없어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월플라워
찰리의 마지막 나레이션
I don't know if I will have the time to write anymore letters because I might be too busy trying to participate. So if this does end up being the last letter I just want you to know that I was in a bad place before I started high school and you helped me. Even if you didn't know what I was talking about or know someone who has gone through it, you made me not feel alone. Because I know there are people who say all these things don't happen. And there are people who forget what it's like to be 16 when they turn 17. I know these will all be stories someday. And our pictures will become old photographs. We'll all become somebody's mom or dad. But right now these moments are not stories. This is happening, I am here and I am looking at her. And she is so beautiful. I can see it. This one moment when you know you're not a sad story. You are alive, and you stand up and see the lights on the buildings and everything that makes you wonder. And you're listening to that song and that drive with the people you love most in this world.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책에서의 이야기가 아니야.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고 난 여기에 있어. 그리고 난 그녀를 보고 있어. 그녀는 참 아름다워. 난 알 수 있어. 네 삶이 슬픈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될 순간이 올 거라는 걸. 넌 살아 있어. 넌 일어서서 건물들의 불빛들을 볼 수 있어. 널 궁금하게 하는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 또한 지금 달리면서 나오는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세상에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난 확신할 수 있어. 우리의 한계는 없어.
<월플라워 OST 앨범에 수록된 글>
Dear Friend,
There is an amazing thing that happens when you make a mix tape. I'm not telling you anything you don't know. Of course, you've made your own. But since this is mine to you, I wanted to tell you a few things about it. Over many years, I have collected songs. I've shared them with friends. And they have shared their favorites with me. Some of the songs are popular. Some of them are not known by a whole lot of people. But they are all great in their own way. And since these songs have meant a lot to me, I just wanted you to have them as a soundtrack for whatever you need them to be for your life.
Maybe you are going through a bad time. Maybe this is the best time you've ever had. Maybe you are driving with your best friends in the world.Whatever it is and wherever you are, this is what I want you to know about this music.
Every artist in here could have said no to being on this mix, and they said yes. Because they cared. Just like music supervisor Alexandra Patsavas cared when she tried a hundred tunnel songs to make sure that Heroes was right. Just like the music editor Jennifer Nash cared when she worked on Come on Eileen until it made the homecoming dance come alive. Just like Michael Brook cared when he composed the perfect music for Charlie and Sam's first kiss.
And as for me, like Charlie said many years ago ... " I had an amazing feeling when I finally held this mix in my hand. I just thought to myself that in the palm of my hand, there was this one mix that had all of these memories and feeling and great joy and sadness. I thought about how many people have loved these songs. And how many people got through a lot of bad times because of these songs. And how many people enjoyed good times with those songs. And how much those songs really mean. I think it would be great to have written one of those songs. I bet if I wrote one of those songs I would be very proud. I hope the people who wrote those songs are happy. I hope that they feel it's enough. I really do because they've made me happy. And I'm only one person."
So, this mix tape is my happiness. This mix is my thank you to the artists and the fans and my colleagues who shared their favorite songs with me. And now... if you ever decide to drive through the Fort Pitt Tunnel like Charlie, Sam and Patrick, all I ask is that you put this mix on as loud as your ears can bare. And please God stay in the car!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는 길
약 한달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나는 고향을 참으로 좋아한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그냥 마음이 편하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살이를 한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군대와 일본을 빼더라도 6년이다. 그런 긴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도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떠올리는 그런 것'처럼 되었다.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굳이 내가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많을 수도 있다. 어딜가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 부모님과 더불어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갈 것이고, 서울에 살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누구가 그렇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 때는 나도 나만의 포부가 있었다. 나는 아직 그 포부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고향을 떠나온 그 시점 이후로 줄곧 방황의 연속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 온 나날들이다. (계속 살아도 그 고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금의환향을 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갈 길을 찾았다는 것을 부모님꼐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있다. 길을 돌고 돌아, 또 돌고 돌을지언정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을 갖게 되는 때가 결국은 오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는 길이 좀처럼 마음이 편치않고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기 전까지는)그것을 꼭 보고 싶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며칠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서다. 내가 하고 싶은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매우 많다. 그런 느낌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은, 그런 느낌은 내 생애에 다시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일을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바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몇 살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정확히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는 묘사할 수는 없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만 말한다. 물론 꼭 그럴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차근차근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간다.
김광석의 노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김광석이 죽기 전까지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김광석이 죽던 해에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음악을 알게 되고, 대학교 때는 더 자주 듣다가, 군대에 가서는 그의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군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의 50%는 그의 음악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만약 그의 음악이 없었으면 나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지금까지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을 알았을까.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길
미디어가 넘쳐나고 어디서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힘을 받을 곳은 넘쳐난다. 영화와 음악, 책,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글, 누군가의 말 등처럼 자극제가 과잉된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은 좋기도 하면서 안좋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책과 음악이 끊이지 않고 생산될수록 어떤 특정 기억이 그 사람의 뇌리에서 잊혀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랜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힘을 가졌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걸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일까. 우리는 너무 많이 꾸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고 더욱 포장해서 더 잘보이려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서로를 더욱 멀리하는 건 아닐까.
순수하게 살아가야지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거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할 말은 없다. 순수해 보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는 것뿐이다. 아무리 (역사 이래로 줄곧) 세상이 안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다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지 싶다.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재미
오늘 생각한 것 한가지.
어떤 대상(사람 혹은 사물)에 관심이 적거나 없으면, 그 대상은 모두 똑같이 (비슷해) 보인다는 점
나의 경우, 비교적 관심이 적은 아이돌 가수의 경우 다 똑같이 생겨 보이고, 발라드 음악은 다 그게 그 음악 같고, 자동차는 모두 같은 디자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모두 다 달라보인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과 우리 인생들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 때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인생에 흥미가 떨어지는 때가 아닐까 라는 생각.
사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모든 기계들과 기성품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다르고, 우리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고, 각자가 만들어가는 인생은 너무도 다르다.
각자가 서로 다른 것들이 같게 보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원래는 그 모두가 다 다르므로 그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쪽이 더 재밌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사람도, 인생도
그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재미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회사의 동료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봄이 왔다는건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찬바람이 여간 멈추질 않아서 여유로이 산책을
하기보다는 빨리 따뜻한 사무실에 들어가고 싶은 날씨였다. 그런데 진짜 봄이 온거 같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도 더 이상 바람이 차지 않다.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인턴생활을 한지도 곧 세달이 채워져 간다. 많은 걸 배우며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아주 좋은 경험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좋은 날씨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 같다. 곧 짧은 봄이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테지만 이 짧은 봄은 우리들에게 많은 걸 의미한다.
나에게는/
하고 싶은게 부쩍이나 많아지는 봄이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배우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등 마음 속에 위시리스트가 빈틈없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 실현가능성을 따져본다면 제한된 시간과 비용과 혹은 마음의 용기 때문에 위시리스트를 얼마나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대단히 미지수지만 위시리스트가 있는 것 자체에 마음이 놓이는 요즘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오블리비언 Oblivion'에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 더해서 우리가 바라는 것 또한 곧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놓는 게 쿨하지 않고,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때론 부끄럽게 보여지는 요즘 세상이지만,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더
쿨하지 않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이건
또 내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쓴 '믿음'에 관한 글과도 연결된다. '믿는 사람에겐 존재한다'는 것.
내 블로그에서 내 글들은 끊임없이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언젠가 본 영화, 언젠가 읽은
책, 언젠가 만난 사람, 언젠가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들은
쉴새없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이 글이 맞닿아 있는 내 삶의 접점을 말해보자면,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봄을 산책한 일 - 우린
무슨 얘기들을 나눴지 - 이런 날씨 좋은 날 소풍 가고 싶다
- 그러게, 정말 봄이 왔네. 좋다 - 작년에는 일본, 독일,중국
친구들과 어린이대공원을 벚꽃놀이를 갔었지 - 중학교
때 재밌게 봤던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벚꽃이 생각나네 - 그 애니메이션의 음악도 좋았는데 - 벚꽃이 아름다웠던 애니메이션은 '초속 5cm'라는 애니도 있었지 - 애니라,, 친구 중엔 그림을 잘 그리는 애가 있는데 - 그 친구는 뭐하며
지내나'
글이 지니는 가치에 대하여
애초에 인간은 소리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 언어를 만든다. 단순한 글자에서 단어로, 문장으로 그리고 글로 발전하게 됨과 동시에 우리 인간은 과거로의 연결통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봄꽃 산책으로 가볍게 시작한 문장이, 또 이렇게 하나의 짧은 글이 되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내 머릿 속에 스친)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으로 연결지어 이 연결을 마무리해보자.
삶은 결과를 위한 끊임없는 추구가 아니라 조각을 이어 만든 퀼트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서로 한땀한땀 꿰매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사랑과 번영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엮어나가는 관계들이 아름답고 끝없는 패턴을 이루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과 지금 아는 것들은 , 당신이 직접 혹은 책과 음악, 이메일, 문화 등을 통하여 당신의 삶 속에서 상호작용한 사람과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산물이다. 풍요가 풍요를 불러들이고 있을 때 누가 많이 받고 누가 많이 주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다. 오늘부터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사람과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인간관계를 넓혀나가겠다고 결심하라. 어떻게 삶을 살고 싶은가? 당신의 퀼트에 어떠너 사람을 엮어나가고 싶은가? 아마도 일이나 회사나 멋진 신기술 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몫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Never eat alone> 키이스 페라지 , 탈 라즈 지음 |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옮겼을 때도 4월의 봄이었다. 2년 전의 봄. 이렇게 올해의 봄과 2년 전의 봄은 또 연결되는구나.
그리고 또 그로부터 2년 전의 봄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2009년 4월 11일 '병영일기' 중 http://seonil.egloos.com/9936322 |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2013년 4월 17일
봄날
우리 인생은 예상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재밌겠지
대화는 치유의 힘을 지닌다는 걸 깨닫는 하루 였다.많은 일들이 있어서 힘든 하루였지만 후배와 대화를 나눈 후 기분이 나아졌다.얼마나 피곤했으면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잠이 들어서 거의 신설동 근처 까지 갔다. 버스에서 자다가 훌쩍 40분이 지난 것이다.
후배와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지금은 시간이 늦었기에 대화의 자세한 내막까지는 쓰지는 못하겠고.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정리를 해봐야겠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이니까. (최근에 인간의 기억력이 기록 때문에 약해지고 있다는 책을 읽었다. 기술의
발달로 기록하는 게 갈수록 편리해짐에 따라 더 이상 기억력을 사용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 착각에 대한 이야기. 무언가를 (없다는 게 알지만) 있다고 믿는 것과, 정말 있다는 것(본인은 그게 착각인지 모르는 것)
# 무신론자 유신론자의 넘나들 수 없는 경계, 이 부분에 대해서 난 뇌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시 말하자면 믿고 안 믿고의 경계.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닌
이상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 체계
#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린
왜 살지?
살면 살수록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되고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는데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놀이동산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롤러코스터 2분, 바이킹 2분, 등등 놀이기구를 타는 시간이 길어야 모두 합쳐 30분도 안되겠지만 그걸 타기 위해 기다리는 10시간 (우리가 현재에 투자하는 길고 긴 시간들. 은퇴 후 세계여행을 위해 평생 돈을 모으기 위해.와 같은 목적처럼)
우리는 우리가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마음대로 탈 수 있다. (마음대로 진로를 정할
수 있다)
우리는 놀이동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퇴장할 수 있다.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사회(체제, 혹은 빅브라더스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놀이동산은 대개 코스가 정해져있다. 거기가면 '이건 꼭 타야돼, 저건 꼭 타야돼'
등등 필수코스가 있다. (우리 인생에서도 꼭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코스들이 있다. 대학진학, 취업, 결혼, 승진 등등)
정말 스릴넘치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릴지, 아니면 2시간동안 그보다는 조금 시시한 놀이기구 5개를 탈지, 그건 우리 모두가 선택해야만 하는 것. (긴 시간을 투자하여 값진 결과를 이뤄낼지, 아니면 소소한 작은
재미들을 즐기며 살지)
아니면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도 된다. 그냥 혼자 (혹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재밌게 논다. (사회가 정해놓은 필수코스(취업, 결혼 등등)을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된다)
# 주말의 친구와의 즐거운 약속을 기다리며 보내는 일주일.
고통스러운 일주일과 기분 좋은 일주일의 경계는?
# 인생에서의 로맨스. 영화같은
로맨스를 하기 위해서는 외모가 필수적인가.
# 누군가가 결혼한다는 것의 의미는
# 성공한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
# 누군가가 죽는다는 의미는. 어차피
평생 다시 보지 않을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죽어서 이제 영영 못 보지만, 어차피 살아있어도 안 볼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그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죽을 때 슬퍼하는 이유가 누군가를 다시는 영원히 못만나는 것이 그 이유라는 전제 하에서)
# 죽은 자에게 예의를 표한다는 것.
생에서 한번도 만난적도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는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가서 그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린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진정으로 슬픔을
느끼는가. 어디까지나 산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 뿐인가. 그것도
하나의 사회생활이라고 불리는 따분한 영역인지.
# 모든 죽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표해야 하는가. 어떤식으로든 우리는 연결되어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삶을 공유한
사람들간에 그런 예의가 필요할까
# 진심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나는
다시는 내 생에 못 볼수도 있는 ISP 외국친구들 중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나게
슬플 것이다.
# 희망을 가지고 사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과 없다고 현실을 직시하고 사는 것 뭐가 더 좋은가.
# 그리고 마지막 대화
A: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안봐도 뻔한 스토리라고 하면서
영화를 평가하잖아.
B: 당연히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거니까 뻔하지 않은
새로운 걸 기대하지. 스토리가 예상 가능하다면 재미가 떨어지잖아.
A: 그건 우리 인생도? 우리
인생은 다 예상가능 하잖아.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들처럼 대부분 그걸 바라고 있잖아.
B: 참 미묘하게 어쩔때는 그렇고 이렇고 하네.
A: 예상 가능하면 재미가 떨어지니까 우리 인생은 예상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재밌겠지. 온갖 불확실성을 모두 끌어안는 거야.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재밌다는 것이 더 가치서열에서
우위에 있어야함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가치서열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이 좋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또 좋은게 좋은 거라는 것도 전제를 둬야지
B: 복잡하고 모르겠다.일단은 살아보는 걸로 결정.
A: 나도
웜바디스 - 사랑이 답이다. 사랑해야 한다.
영화 <웜바디스> 리뷰
좀비 로맨스 영화라니. 흡혈귀의 로맨스까지는 봐줄만했고 심지어 너무 재밌게 봤었다. 트와일라잇 그래도 좀비 로맨스는 좀 그렇다. 사람을 죽여서 살을 뜯어먹고 뇌를 씹어먹는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화면에 비추는데 어떻게 로맨스가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좀비들의 잔인한 장면은 초반에만 나오고 로맨스는 영화 후반부에서 주로 나오는게 다행이긴 하다.
심장이 뛰지 않는 좀비와 심장이 뛰는 인간.
세상에 정말 좀비들이 있다면, 그 좀비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흡혈귀도 마찬가지) 심장이 뛴다는 말은 말그대로 살아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에 열의를 가질 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한다.
좀비가 급속도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에 의해 타의적으로 감염되어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지금 사회의 인간들은 박탈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는 사회구조에 의해 (이 또한 타의에 의해) 심장이 멈춰버리기도 한다. 안정적인 조직에 속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조직에 들어가니 위로부터의 압박과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서 산 듯 죽은 듯 살아가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인 좀비가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아가고 있지' 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모습이 나온다.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아닌가.
그래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사랑? 사랑이 답이다. 사랑해야 한다. 좀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니까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처럼, 주위에 심장박동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준다면 같이 심장이 뛸 것.
좀비 로맨스물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뭐, 주인공 R의 말 처럼 That's too much 이긴하다.
좀비 로맨스 영화라니. 흡혈귀의 로맨스까지는 봐줄만했고 심지어 너무 재밌게 봤었다. 트와일라잇 그래도 좀비 로맨스는 좀 그렇다. 사람을 죽여서 살을 뜯어먹고 뇌를 씹어먹는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화면에 비추는데 어떻게 로맨스가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좀비들의 잔인한 장면은 초반에만 나오고 로맨스는 영화 후반부에서 주로 나오는게 다행이긴 하다.
심장이 뛰지 않는 좀비와 심장이 뛰는 인간.
세상에 정말 좀비들이 있다면, 그 좀비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흡혈귀도 마찬가지) 심장이 뛴다는 말은 말그대로 살아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에 열의를 가질 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한다.
좀비가 급속도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에 의해 타의적으로 감염되어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지금 사회의 인간들은 박탈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는 사회구조에 의해 (이 또한 타의에 의해) 심장이 멈춰버리기도 한다. 안정적인 조직에 속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조직에 들어가니 위로부터의 압박과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속에서 산 듯 죽은 듯 살아가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인 좀비가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아가고 있지' 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모습이 나온다.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아닌가.
그래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사랑? 사랑이 답이다. 사랑해야 한다. 좀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니까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처럼, 주위에 심장박동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준다면 같이 심장이 뛸 것.
좀비 로맨스물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뭐, 주인공 R의 말 처럼 That's too much 이긴하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드는거지
학생과 직장인의 다른 점 이랄까. 생각하는 차이랄까 그런 것들.
근데 또 너무 다른게 없다는걸 느끼게되더라고
아주 조금 생각하는게 변하네
내가 맨날 했던 얘기들 기억하나ㅡ?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느니
근데 여기와서 사람들 만나면서 동료들이랑 얘기하면서 계속 그 사람들 생각에 영향을 받는거같네. 빨리 취직해서 안정되게 자리잡고 승진하고 결혼하고 등등 상사한테 잘 보이는 법 등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해주더라고. 그래서 지난 학기에 그런 친구들을 모두 피했거든. 나의 가치관들과 신념을 지키기 어려우니까. 근데 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지금은 어떻겠어..
힘들진 않어. 다만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앉아있는 내가 가끔씩 믿기지않는 걸 느끼고 있긴해. 앉아있다보면 어느새 순간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힘든 일이 뭐 있겠어 머리는 조금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다 책상위에서 해결될 일이고.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드는거지
어쩌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런거아냐ㅡ? 이런 생각....
근데 그런 생각이 드는게 어쩌면 나의 지난 일년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거니까
그렇게 나의 꿈을 주위 사람들에게 늘어놓았는데 이제 와서 안정된 삶이 나의 목표가 되어버리다니/ 라는 생각들과 자신에 대한 한심함. 그니까 너는 지금 모습 그대로 변치말길 바라. 탐구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과 너의 학문에 대한 열정들. 나도 노력해야지. 힘내자 !
친구와 카톡 대화에서 2013.2.6
근데 또 너무 다른게 없다는걸 느끼게되더라고
아주 조금 생각하는게 변하네
내가 맨날 했던 얘기들 기억하나ㅡ?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느니
근데 여기와서 사람들 만나면서 동료들이랑 얘기하면서 계속 그 사람들 생각에 영향을 받는거같네. 빨리 취직해서 안정되게 자리잡고 승진하고 결혼하고 등등 상사한테 잘 보이는 법 등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해주더라고. 그래서 지난 학기에 그런 친구들을 모두 피했거든. 나의 가치관들과 신념을 지키기 어려우니까. 근데 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지금은 어떻겠어..
힘들진 않어. 다만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앉아있는 내가 가끔씩 믿기지않는 걸 느끼고 있긴해. 앉아있다보면 어느새 순간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힘든 일이 뭐 있겠어 머리는 조금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다 책상위에서 해결될 일이고.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드는거지
어쩌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런거아냐ㅡ? 이런 생각....
근데 그런 생각이 드는게 어쩌면 나의 지난 일년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거니까
그렇게 나의 꿈을 주위 사람들에게 늘어놓았는데 이제 와서 안정된 삶이 나의 목표가 되어버리다니/ 라는 생각들과 자신에 대한 한심함. 그니까 너는 지금 모습 그대로 변치말길 바라. 탐구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과 너의 학문에 대한 열정들. 나도 노력해야지. 힘내자 !
친구와 카톡 대화에서 2013.2.6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라이프 오브 파이
2013년 1월 4일 / 건대 롯데시네마 / 현주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영화화 되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을 만나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화물선이 좌초되면서 구조정을 타고 227간 바다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면서, 인간과 동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파이)가 나랑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하고 싶다)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 3개의 종교를 믿고 있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종교를 3개나 가지고 있는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왜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만을 믿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품는다.
나 또한 종교에 대해서 사고가 유연하다.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무신론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교의 신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존중한다.
작품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화자(파이)가 말하듯이, 이야기 (또는 신)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일본 선박 회사의 관계자들 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요구하고,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와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물어보는 질문에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택한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이: So which story do you prefer?
작가: The one with the tiger. That's the better story.
파이: Thank you. And so it goes with God.
작가: [smiles] It's an amazing story.
그 이유는 참 간단하다. That's the better story. It's an amazing story. 더 좋은 스토리고, 놀라운 스토리다. 세상에는 기적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운명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랑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에겐 존재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은?
믿는다. 기적도 믿고, 운명도 믿고, 사랑도 믿고, 외계 생명체도 믿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사람의 위대함도 믿는다. 이유는 똑같다.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그걸 믿으면서 살아가는게 더 재밌고 놀라운 삶이 될테니까.
2013년 1월 4일 / 건대 롯데시네마 / 현주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영화화 되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을 만나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화물선이 좌초되면서 구조정을 타고 227간 바다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면서, 인간과 동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파이)가 나랑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하고 싶다)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 3개의 종교를 믿고 있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종교를 3개나 가지고 있는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왜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만을 믿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품는다.
나 또한 종교에 대해서 사고가 유연하다.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무신론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교의 신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존중한다.
작품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화자(파이)가 말하듯이, 이야기 (또는 신)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일본 선박 회사의 관계자들 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요구하고,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와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물어보는 질문에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택한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이: So which story do you prefer?
작가: The one with the tiger. That's the better story.
파이: Thank you. And so it goes with God.
작가: [smiles] It's an amazing story.
그 이유는 참 간단하다. That's the better story. It's an amazing story. 더 좋은 스토리고, 놀라운 스토리다. 세상에는 기적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운명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랑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에겐 존재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은?
믿는다. 기적도 믿고, 운명도 믿고, 사랑도 믿고, 외계 생명체도 믿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사람의 위대함도 믿는다. 이유는 똑같다.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그걸 믿으면서 살아가는게 더 재밌고 놀라운 삶이 될테니까.
그 진심이 전달되어 누군가의 삶이 더 따뜻해진다면
2012년 블로그 결산
한 해 동안 블로그를 방문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지난 한 해 약 6만여 명의 방문자, 9만여 건의 페이지뷰가 있던걸로 보입니다.
제 블로그는 정보 제공 위주의 블로그가 아닌 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단순한 기록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봅니다.그래서 간직하고 싶은 생활 속의 사건들과 그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 더불어 사진, 영화,책, 음악을 모아놓는 장소입니다.
그래도 의미를 찾아 본다면,이 블로그에 방문해서 저의 기록들을 봐주시는 것 자체가 서로가 삶의 아주 작은 페이지를 공유하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글을 많이 올리고 싶은 욕심도 생기네요.
모니터 상에 출력되어 보이는 웹페이지가 어찌 사람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것과 전화상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과 직접 쓴 편지를 읽는 것만큼 따뜻할 수 있겠나요. 하지만 웹페이지에 나열된 텍스트, 사진, 영상들이 공유되어 서로의 삶에 유용하게 쓰이거나 혹은 그 진심이 전달되어 누군가의 삶이 더 따뜻해진다면 다른 (보다)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똑같은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블로그 포스팅을 해서, 인터넷 공간 안에서 저의 지분을 늘려나가는 일에 힘쓰고 또한 그 못지 않게 좋은 이야기들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한 해 동안 블로그를 방문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지난 한 해 약 6만여 명의 방문자, 9만여 건의 페이지뷰가 있던걸로 보입니다.
제 블로그는 정보 제공 위주의 블로그가 아닌 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단순한 기록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봅니다.그래서 간직하고 싶은 생활 속의 사건들과 그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 더불어 사진, 영화,책, 음악을 모아놓는 장소입니다.
그래도 의미를 찾아 본다면,이 블로그에 방문해서 저의 기록들을 봐주시는 것 자체가 서로가 삶의 아주 작은 페이지를 공유하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글을 많이 올리고 싶은 욕심도 생기네요.
모니터 상에 출력되어 보이는 웹페이지가 어찌 사람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것과 전화상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과 직접 쓴 편지를 읽는 것만큼 따뜻할 수 있겠나요. 하지만 웹페이지에 나열된 텍스트, 사진, 영상들이 공유되어 서로의 삶에 유용하게 쓰이거나 혹은 그 진심이 전달되어 누군가의 삶이 더 따뜻해진다면 다른 (보다)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똑같은 힘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블로그 포스팅을 해서, 인터넷 공간 안에서 저의 지분을 늘려나가는 일에 힘쓰고 또한 그 못지 않게 좋은 이야기들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애초에 단순하다 복잡하다 따질 수 없는 인생인데도 말이지
후배와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2012.10.7
너 요새 왜 이렇게 외로워하냐
오빠만 하겠어?
요새 마음이 너무 만신창이야
시험기간이라 마음 놓고 힘들지 못하니 그런 것도 힘들고.
그래 오빠로 위로 삼아. 나만
하겠니.
그냥 다 힘들다. 오빠도 힘내.
힘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취업해!
취업이 정답이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러지.
취업준비를 안하고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정말 취업을 원하지 않아?
아…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지.
취업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꿈들이 있잖아. 그걸 실현하고 싶은데 취업을 하면 그 꿈을 다가갈 수 없어.
아… 이해해 무슨 말인지.
난 벌써 그런 생각이 들어.
기업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어려워.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잖아.
응
그래서 취업을 덜컥하기가 쉽지 않아.
그러니까 취업을 선택하는게 꿈을 접는 걸로 생각되는 거지.
일단 회사에 취업하면, 이래저래 회사 굴레에 들어가는 거니까
자기 꿈을 잃게 될 것 같거든
응, 그게 싫다는
건 아닌데
솔직히 누구보다 잘 일할 자신도 있고.
맞아. 취업을 못하진 않아 오빠가.
오빠는 어디를 가도 최고일걸.
그래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간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세상을 위해 뭔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며 살고 싶거든.
마케팅을 하고 물건을 몇 개 파는 게 아니라.
국제기구에 들어가야겠네.
나도 오빠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나라면 덜컥 겁부터 나서.
여기저기 대기업 넣어보고 바보같이 살 것 같아
그러기엔 내 자신감과 인격이 턱없이 부족하지, 국제기구 같은 건.
물론 회사에 들어가서도 지역사회를 위해서라든지 좋을 일을 할
수도 있어.
회사에서의 CSR은 뭐 사실 그렇진 않지.
국제기구 들어가기 힘들지. 그 분야 경력이 몇 년 있고 Ph.D.가 기본 소양이었던 듯
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더 좋아
그래
그래서 계속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오빠 마음은 이해되고 좋은데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봤어?
노력 안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계속 찾으려고 하고 있어.
스스로를 찾고 있다는 거네.
특별한 재능이나 지능을 타고 난 것도 아니니까.
요새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
국제도우미도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인정받았던 일들이 뭐였는지 회상하는 중이야.
인정받을 만큼 내가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열심히 했던 거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행복했으니까.
그 좋아하는 일이 뭘까?
흔한 문서작업부터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일이나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마음을 여는 일이나
사소한 것들까지 다 생각해보고 있어.
난 오빠가 일 적인 측면에서 유능하다고 느꼈어. 하지만 국제도우미
일을 놓고 봤을 때 국제도우미 하는 일 그 자체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서 즐거운 방학을 보내는 거였단 것도 전제해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어떻게 보면 누가해도 즐거웠을 수도 있는 거지. 물론 오빠는 그 누구보다
너무 잘했고
국제도우미를 하면서 계속 행복하다고 느꼈거든.
근데 내가 하는 걱정은 국도가 끝난 이후로 국도를 하던 때만큼
행복해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거야. '그 때는 그렇게 행복했는데..'
라며 계속 비교가 될 수 있겠지.
그게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더 심하게 다가올지도.
국제도우미 일은 대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국제도우미 일은 사회에서는 절대 못하지.
그건 대학생의 특권 같은 거지.
응 그렇지.
근데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똑 같은 일로 고민을 했거든.
한국에 돌아가면 일본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근데 그때 일본친구가 말해준 게 한국에 가서 일본에서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일본으로 돌아오라는 말이었어. 근데 국제도우미를 하다 보니까 결국 일본에서의 시간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런 국제도우미가 끝나버리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없는 거지.
그래서 드는 생각은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계속 찾아야
하는 것 같아.
일본의 시간과 국제도우미의 공통분모는 전세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였거든.
한국사람들과만 있을 때보다 외국인들과 있을 때 많은 걸 느끼기도
하고, 우리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그 쪽에서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생각해보려고.
지금 현재는 내 주위사람들 때문에 스스로가 초조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일찍 취업을 하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더 길게 보려고.
나는 직장을 잡는다는 걸 어쩌면 나의 행복 중 뭐가 되었든 포기해야 할게 있다고 생각하거든.
대학생 때 난 많은 혜택을 얻었지. 자유로움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근데 오빠 말대로 그 대학생활에서 느낀 행복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가면 좋겠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학시절과 사회는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해.
똑같이 경쟁도 있고, 여유도
있고.
행복이 목표는 아니지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인 듯해.
오빠가 지금 다른 사람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못 들어가도 후회만 없다면 힘들더라도 더 가치 있겠다. 하지만 말했듯이 평정심을 갖는게 제일 어렵겠지.
응. 친구들이 모두
같은 처지니까.
대기업에 못 들어가도 후회는 하면 안되지. 내가 노력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서 살면 진짜 후회할 것 같아.
그래도 다 들어가고 싶어하는 데고, 지금 노력하면 갈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안들리가 없잖아.
응 들지.
그냥 내 직관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 대기업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물론 핑계이거나 보상심리 일수도 있어.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경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또 경쟁이 너무 치열한 사회를 바꾸고 싶다고 늘 말해왔는데 내가
그런 경쟁에 앞장서면 내 신념과 가치관을 모두 위배하게 돼버리는 거니까 스스로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고.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내가 들은 교양수업에 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는데,
자기는 항상 젊었을 때 기성세대들을 보면서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늘 생각했대.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가 그렇게 비판했던 기성세대의 모습을
따라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자기를 되돌아 보신대.
그런 것 같아.
오빠 스스로 그렇게 되기 싫어할 거고.
나도 지금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 반납하며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모습이 되어져 있다면
그 실망이 엄청 클 것 같아.
남들이 걸어가지 않는 길이라서 더 많은 생각도 들고 백퍼센트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과 나를 위해서 조금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야.
내가 사회에 나가면서 포기해야겠다는 게 그런 야근이나 힘들고 많은 업무지.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힘들어도 좋을 것 같아.
그게 경쟁하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
물론 그렇지. 그게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밤을 새며 일을 해도 즐거울 수 있겠지.
현대 기업이나 다른 기업사회에서는 오빠에게 그런 매력을 주는 건 없는 것 같아?
물론 많은 매력이 있지.
높은 연봉과 주위 사람들인 인정.
그런데 그런 것들 보다는 나는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으니까.
순수한 목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더 좋아.
그건 이미 기업이 아니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일수도 있고 기업이 아닐 수도 있고.
왜?
요새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거든.
사는 이유라든지, 살아가야
할 이유라든지, 공부하는 이유라든지,
그 이유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난 타인에게로 많이 향해있거든.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결국 내 주위 사람이 행복해지거든
마찬가지로 내가 행복하면 주위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원리야.
그럼 복지 관련의 일을 하는 곳이 관심이 가지 않아?
복지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곳에서 기획하고 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 같아 좋아 보였는데.
응. 확실히 그런
사람들과 한 배를 타고 가고 싶긴 해.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경쟁적인 기업집단과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방 같은 걸 맡는다면 외국친구들과 교류해서 뭔가 시너지를 내고.
응. 길은 많겠지. 근데 그 길이 참 단순하고도 복잡해서.
남을 향하다니… 오빠 성인군자네.
무슨 성인군자냐. 나
정도면 타락했지.
난 나밖에 모르는데
난 내 측근이면 무조건 돕겠지만 그냥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남을 돕는 게 나를 돕는 거고, 나를 돕는 게 남을 돕는 거야.
너와 나의 경계는 없어. 세상은
모든 게 돌고 도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도 우리 가족이 먼저인 것처럼.
세상사람 모두가 오빠처럼 생각하면 대기업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기업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결국 균형이 맞는 거겠지.
절대로 그 사람들이 나보다 불쌍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야. 대기업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도 있는 거고.
인생은 자로 잴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잖아. ㅎㅎ
내 주변에도 오빠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오빠가 있어. 그 오빠하는
노래하고 시를 짓는 정치인이 되고 싶대.
멋지네 시 짓는 정치인.
여튼 그러게..
이 모든 게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지 뭐.
그냥 짐을 내려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걷는 거고.
복잡한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말들이 가끔 더 문제를 악화시켜서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애초에 단순하다 복잡하다 따질 수 없는 인생인데도 말이지.
그것도 그렇네.
너가 배우고 있는 언어 철학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언어의 테두리에
우리의 사고가 갇히는 우는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