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말에 그 해 본 영화와 읽은 도서들을 정리해 온 것이 벌써 6년째다. 기록해놓지 않으면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해에 어떤 영화들을 봤었는지 쭉 훑어 내려가다 보면 영화의 장면들도 빠르게 지나간다. 한 번 보고 묻어두기엔 좋은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정리를 해서 가끔 기억을 꺼내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나에게 그 해에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책을 읽었는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숫자가 내가 접한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을 접한다는 것은 한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뜻하는데, 그러한 만남에서 다양성이란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접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늘 멀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은 편견에 사로 잡히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정치가 대표적이다.) 영화와 책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당연히 그 선택의 다양성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한 달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편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한 달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화를 선택할 때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모처럼만에 보는 영화이기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재미있어야 하고 자신의 취향과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꼼꼼하게 영화평들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에 반해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를 보는 사람에겐 전자의 경우보다 영화 선택의 기준이 까다롭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접하면서 뜻밖의 보물 같은 영화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듯이 영화와 책이란 것도 그렇다.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고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인연을 놓치듯이 소중한 영화를 놓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좋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나도 물론 취향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영화음악을 극히 좋아하고, 액션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나만의 취향에 빠져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모르는 가요가 어찌나 많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