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마지막 날
2012년 1월 20일 도쿄에서 둘째 날
시부야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11시였다. 바로 그 날 오후 2시에 JSP(Japanese summer program) 때 만난 친구 앙리와 리카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딱 2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바로 다시 이케부쿠로역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했더라면 JSP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텐데, 늦게서야 연락이 된 앙리와 리카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선샤인 시티를 돌아다니며, 이케부쿠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프리쿠라를 찍으며 재밌게 놀았다. 저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집, 와코에서 먹었다.
앙리와 리카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절친.
다음달엔 둘이서 3주 동안 유럽여행을 간다고 한다.
한국에 꼭 다시 놀러오세요, 앙리와 리카~!
스티커사진을 두번이나 찍었다.
맛있는 와코, 돈까스가 정말 맛있다. 양배추와 밥은 무한 제공도 좋다. ㅋㅋ
오후 시간을 셋이서 함께 보내고 저녁엔 다시 친구와 만나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한 4시까지 같이 있었는데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봐 아예 잠자는 걸 포기했다.
도쿄에서의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천천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도쿄에 머무른 삼일동안 모두 합쳐 10시간 정도 잤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잠만 잤다. 조금 여유롭게 약속을 잡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열흘 간의 홋카이도와 도쿄'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눈이 많이 내렸던 오타루, 야경이 아름다웠던 삿포로, 1년 만에 찾은 도쿄, 그리고 그 모든걸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부야에서 밤을 지새며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애 최고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 한 번의 깜짝파티 バスデーパーティ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오랜만에 만난 덕분에 한창을 떠들던 중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키친 쪽에서 마스미와 레이카가 불을 밝힌 케익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콜드스톤 손님들에게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다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I don't know but I've been told. Someone is getting old.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Justin~
Happy Birthday to you
아.. 난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두와 이렇게 1년 만에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이 준비한 케익은 콜드스톤 아이스크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Midnight Delight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익. 케익을 받아들고 불을 끄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케익을 한동안이나 들고 있었는데, 마스미가 준비한 10개도 넘은 폭죽을 계속 터뜨리는 것이다. 터뜨릴때마다 계속 깜짝 놀랐다. 정말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생각만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작년 딱 이맘때도 콜드스톤 근무날이었는데, 그때도 콜드스톤 친구들이 서프라이즈 축하 파티를 해줘서 정말 기뻤다. 그 때의 이야기도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2011년 1월 콜드스톤에서 생일 축하파티
그때의 일기를 되돌아보니 이런 말을 적었구나.
"축하해 준 모든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난 정말 그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었나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그랬을까. 혹시 안그랬다면 이제는 정말 그래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한 사람의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는 것의 의미는 사실 정말 큰 것 같다. 결국 그 존재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떤 존재를 위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을까. 간단하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보내는 것만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일 케익을 받아들고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각자의 잔을 들고 건배 제의를 하면서 한마디를 했다.
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じつは韓国に帰ってからは自分の生活や勉強などが忙しくなり皆さんからもらった幸せを忘れてしまう事もあったです。でも今回日本にまた来て皆さんをまたお会いできて本当によかったと思います。皆さんを見て、やっぱりこの世界を生きていく事はすばらしいことだなぁと。僕は韓国にいて、皆さんは日本にいるのだとしても、大事なことはこの世界を一緒に生きていくことです。僕も今がんばって生きている皆さんのように韓国に帰ってがんばって生き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乾杯!!!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작년 한국에 돌아가고나서 자신의 생활이나 공부 등이 바빠지다보니 여러분 모두로부터 받은 행복을 가끔씩 잊고살았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일본에 다시 와서 모두를 만나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모두를 보고서, 역시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고, 여러분은 일본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건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처럼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아 갈 생각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건배!
미사미사가 내 카메라를 들고 생일 축하파티했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던 덕분에 그 순간이 기록되었다. 작년 한 해도 그랬고, 앞으로도 숱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순간의 기록들을 꺼내보면서 '모두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모두에게 했던 약속을 되새기면서 언제나 힘을 내도록 해야겠다.
사람의 행복은 결코 그 무언가로 잴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도 행복하고, 일본에 있어도 행복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 다르며 관계가 다르듯이 그 행복감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세상을 함께 존재해 나가는 아주 작은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정말 모두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 날 또한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 이렇게 멋지고 희소가치가 있는 수식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난 까다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생애 최고의 날로 기억된다면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애 최고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큰 시험에서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는 순간들도 생애 최고의 행복을 맛 볼 수 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 널리 퍼지는 방법이다. 나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들을 생애 최고의 날들로 만들어주고 싶다. 할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내어주고서라도 말이다.
2012년 1월 19일 도쿄 시부야의 밤, 우린 그렇게 다시 모여 서로에 대한 우정을 나누고 느끼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오랜만에 만난 덕분에 한창을 떠들던 중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키친 쪽에서 마스미와 레이카가 불을 밝힌 케익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콜드스톤 손님들에게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다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I don't know but I've been told. Someone is getting old.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Justin~
Happy Birthday to you
아.. 난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두와 이렇게 1년 만에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이 준비한 케익은 콜드스톤 아이스크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Midnight Delight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익. 케익을 받아들고 불을 끄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케익을 한동안이나 들고 있었는데, 마스미가 준비한 10개도 넘은 폭죽을 계속 터뜨리는 것이다. 터뜨릴때마다 계속 깜짝 놀랐다. 정말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생각만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작년 딱 이맘때도 콜드스톤 근무날이었는데, 그때도 콜드스톤 친구들이 서프라이즈 축하 파티를 해줘서 정말 기뻤다. 그 때의 이야기도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2011년 1월 콜드스톤에서 생일 축하파티
그때의 일기를 되돌아보니 이런 말을 적었구나.
"축하해 준 모든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난 정말 그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었나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그랬을까. 혹시 안그랬다면 이제는 정말 그래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한 사람의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는 것의 의미는 사실 정말 큰 것 같다. 결국 그 존재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떤 존재를 위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을까. 간단하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보내는 것만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일 케익을 받아들고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각자의 잔을 들고 건배 제의를 하면서 한마디를 했다.
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じつは韓国に帰ってからは自分の生活や勉強などが忙しくなり皆さんからもらった幸せを忘れてしまう事もあったです。でも今回日本にまた来て皆さんをまたお会いできて本当によかったと思います。皆さんを見て、やっぱりこの世界を生きていく事はすばらしいことだなぁと。僕は韓国にいて、皆さんは日本にいるのだとしても、大事なことはこの世界を一緒に生きていくことです。僕も今がんばって生きている皆さんのように韓国に帰ってがんばって生き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乾杯!!!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작년 한국에 돌아가고나서 자신의 생활이나 공부 등이 바빠지다보니 여러분 모두로부터 받은 행복을 가끔씩 잊고살았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일본에 다시 와서 모두를 만나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모두를 보고서, 역시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고, 여러분은 일본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건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처럼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아 갈 생각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건배!
미사미사가 내 카메라를 들고 생일 축하파티했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던 덕분에 그 순간이 기록되었다. 작년 한 해도 그랬고, 앞으로도 숱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순간의 기록들을 꺼내보면서 '모두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모두에게 했던 약속을 되새기면서 언제나 힘을 내도록 해야겠다.
사람의 행복은 결코 그 무언가로 잴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도 행복하고, 일본에 있어도 행복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 다르며 관계가 다르듯이 그 행복감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세상을 함께 존재해 나가는 아주 작은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정말 모두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 날 또한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 이렇게 멋지고 희소가치가 있는 수식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난 까다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생애 최고의 날로 기억된다면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애 최고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큰 시험에서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는 순간들도 생애 최고의 행복을 맛 볼 수 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 널리 퍼지는 방법이다. 나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들을 생애 최고의 날들로 만들어주고 싶다. 할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내어주고서라도 말이다.
2012년 1월 19일 도쿄 시부야의 밤, 우린 그렇게 다시 모여 서로에 대한 우정을 나누고 느끼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재회 파티 再会パーティ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가게 EN-SOF TOKYO 들어갔더니 미리 와있던 친구들이 파티 장식을 해놓았다. 나와의 재회를 축하하는 파티라고 했다. 수공예 전문 마스미가 파티에 쓰이는 장식품들을 손수 모두 만들어왔다. 정말 예뻤다. 마스미는 내가 귀국할 때도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어와서 감동시켰다.
진짜 행복했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더 올 것이라고 했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대되었다.
일단 모인 사람들끼리 재회를 축하하며 가볍게 건배를 하였다. 나는 물론 맛있는 생맥주를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맥주 같았다.
간빠이!!! 이예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함께 쏟아내느라 무척 신났다. 나뿐만 아니라 서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나에겐 모두와 함께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ㅎㅎ
세키마이상せきまい
시부야점에서 정말 오래 일한 분이다. 내가 신입일 때 여러가지를 잘 알려주셨다. 그리고 세키마이상 덕분에 내가 시부야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시부야로 면접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은 분이 세키마이상이기 때문이다. 세키마이상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콜드스톤과 연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키마이상은 올 7월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콜드스톤을 그만 둘 것 같다고 하셨다. 결혼 축하드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미사미사みさみさ
정말 존경하는 친구 미사미사! 미사미사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의 블로그에도 몇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다. 이제 스무살이 되었을 뿐인데 생각하는 것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좀 더 넓게 생각한다. 미사미사의 꿈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난 이 친구의 삶을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작년에 6개월동안 아프리카 케냐에 봉사활동도 무사히 다녀왔다. 이번에 미사미사가 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아프리카의 청년들한테 몇번씩이나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한다. 하하하. 국경을 초월하는 인기다. 앞으로의 힘든 여정이 많아서 지치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힘내서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레이카 れーにゃん!
레이카와는 항상 진지한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밤 늦도록 아침이 될 때까지 술도 몇번 마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서로이 세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레이카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일본어 학습에 도움도 된다! 지금은 열심히 콜드스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레이카가 이날 내게 장문의 편지를 건네줬다. 그 편지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진솔한 레이카의 이야기들이 감동적이었다. 새로운 스태프가 들어오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게 오래걸려서 고민을 하곤 한다. 하하
마루코まるこ!
바쁜 유치원선생님 마루코! 마루코랑 치로는 작년 여름에 한국에 놀러왔었다. 그 때 좀 더 잘 대접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마루코는 정말 좋은 유치원 선생님일 것 같다. 마루코에게 나중에 내 자식을 낳게 되면 마루코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생일선물로 맛있는 생크림 케익까지 받았다. 진짜 맛있었다.
유우유우ゆうゆう
조금 느즈막하게 참석해 준 유유! 현재 콜드스톤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다. 원래 츠타야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얼마전에 신주쿠역의 루미네 에스트(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유는 늘 트위터에 화장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코스메틱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다. 항상 화장품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유유가 원하는대로 된 것이다.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료코 りょうちゃん
료코는 콜드스톤에서는 정말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특히 나에게 있어선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내가 잘못하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곤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콜드스톤의 분위기 특성상 다른사람에게 충고를 해주기 어려운데, 료코는 나에게 그 역할을 잘 해주었다. 료코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있다. 예전에도 료코가 했던 연극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분간 연극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현재는 콜드스톤을 그만 둔 상태는 아닌데 다른 회사에 사원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료코에게 배우가 되길 원했는데, 계속하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생겼다고 했다. 최고의 파티플래너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걸로 즐겁고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주었다. 나로서는 언젠가 료코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걸 간절히 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변하는 법이니 나 또한 어떤 분야에서 그 일을 즐기고 있는 료코를 본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키라 きらさん
키라상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얘기할 때는 늘 웃으면서 얘기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 가끔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따라가는데 힘들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정말 친한 형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다. 가끔 내게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메 ひめ
디즈니랜드의 댄서가 되는 걸 꿈꾸고 있는 세키아야카. 콜드스톤에서 일할 때 정말 절친이었다. 히메의 접객은 그야말로 최고다. 콜드스톤에서도 인정하여 몇번씩이나 서비스 관련한 상을 받은 적도 있고, 마크시티(콜드스톤이 있는 시부야의 쇼핑몰)의 접객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어떤 손님이든 히메의 서비스를 받는다면 정말 기분좋아질 것이다. 그런 히메에게는 디즈니랜드가 정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콜드스톤말고도 BAR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데 그쪽 아르바이트도 정말 재미있나 보다. 히메를 처음 만났을 때는 히메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는게 정말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만난 이 날도 히메의 말을 다 알아들은게 신기했다 ㅎㅎ
모두 돌아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받아서 정말이지 감사했다. 돌아와서 보니 아쉽게도 마스미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나 뿐만이 아니라 일본 친구들 서로간에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고 했다. 유유는 나처럼 아키라군의 가게에 처음와보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고, 누구는 시험기간이라 정말 바쁠텐데 이렇게 만나러 와 준게 정말 너무도 고마웠다.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행복하고 행복했다. 마치 1년 전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는 중간에 사람들에게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데. 다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있겠지? 하하 물론 나는 예외지만. 진짜 10년 뒤에도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이렇게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가게 EN-SOF TOKYO 들어갔더니 미리 와있던 친구들이 파티 장식을 해놓았다. 나와의 재회를 축하하는 파티라고 했다. 수공예 전문 마스미가 파티에 쓰이는 장식품들을 손수 모두 만들어왔다. 정말 예뻤다. 마스미는 내가 귀국할 때도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어와서 감동시켰다.
진짜 행복했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더 올 것이라고 했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대되었다.
일단 모인 사람들끼리 재회를 축하하며 가볍게 건배를 하였다. 나는 물론 맛있는 생맥주를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맥주 같았다.
간빠이!!! 이예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함께 쏟아내느라 무척 신났다. 나뿐만 아니라 서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나에겐 모두와 함께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ㅎㅎ
세키마이상せきまい
시부야점에서 정말 오래 일한 분이다. 내가 신입일 때 여러가지를 잘 알려주셨다. 그리고 세키마이상 덕분에 내가 시부야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시부야로 면접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은 분이 세키마이상이기 때문이다. 세키마이상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콜드스톤과 연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키마이상은 올 7월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콜드스톤을 그만 둘 것 같다고 하셨다. 결혼 축하드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미사미사みさみさ
정말 존경하는 친구 미사미사! 미사미사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의 블로그에도 몇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다. 이제 스무살이 되었을 뿐인데 생각하는 것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좀 더 넓게 생각한다. 미사미사의 꿈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난 이 친구의 삶을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작년에 6개월동안 아프리카 케냐에 봉사활동도 무사히 다녀왔다. 이번에 미사미사가 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아프리카의 청년들한테 몇번씩이나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한다. 하하하. 국경을 초월하는 인기다. 앞으로의 힘든 여정이 많아서 지치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힘내서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레이카 れーにゃん!
레이카와는 항상 진지한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밤 늦도록 아침이 될 때까지 술도 몇번 마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서로이 세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레이카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일본어 학습에 도움도 된다! 지금은 열심히 콜드스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레이카가 이날 내게 장문의 편지를 건네줬다. 그 편지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진솔한 레이카의 이야기들이 감동적이었다. 새로운 스태프가 들어오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게 오래걸려서 고민을 하곤 한다. 하하
마루코まるこ!
바쁜 유치원선생님 마루코! 마루코랑 치로는 작년 여름에 한국에 놀러왔었다. 그 때 좀 더 잘 대접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마루코는 정말 좋은 유치원 선생님일 것 같다. 마루코에게 나중에 내 자식을 낳게 되면 마루코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생일선물로 맛있는 생크림 케익까지 받았다. 진짜 맛있었다.
유우유우ゆうゆう
조금 느즈막하게 참석해 준 유유! 현재 콜드스톤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다. 원래 츠타야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얼마전에 신주쿠역의 루미네 에스트(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유는 늘 트위터에 화장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코스메틱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다. 항상 화장품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유유가 원하는대로 된 것이다.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료코 りょうちゃん
료코는 콜드스톤에서는 정말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특히 나에게 있어선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내가 잘못하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곤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콜드스톤의 분위기 특성상 다른사람에게 충고를 해주기 어려운데, 료코는 나에게 그 역할을 잘 해주었다. 료코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있다. 예전에도 료코가 했던 연극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분간 연극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현재는 콜드스톤을 그만 둔 상태는 아닌데 다른 회사에 사원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료코에게 배우가 되길 원했는데, 계속하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생겼다고 했다. 최고의 파티플래너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걸로 즐겁고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주었다. 나로서는 언젠가 료코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걸 간절히 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변하는 법이니 나 또한 어떤 분야에서 그 일을 즐기고 있는 료코를 본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키라 きらさん
키라상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얘기할 때는 늘 웃으면서 얘기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 가끔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따라가는데 힘들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정말 친한 형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다. 가끔 내게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메 ひめ
디즈니랜드의 댄서가 되는 걸 꿈꾸고 있는 세키아야카. 콜드스톤에서 일할 때 정말 절친이었다. 히메의 접객은 그야말로 최고다. 콜드스톤에서도 인정하여 몇번씩이나 서비스 관련한 상을 받은 적도 있고, 마크시티(콜드스톤이 있는 시부야의 쇼핑몰)의 접객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어떤 손님이든 히메의 서비스를 받는다면 정말 기분좋아질 것이다. 그런 히메에게는 디즈니랜드가 정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콜드스톤말고도 BAR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데 그쪽 아르바이트도 정말 재미있나 보다. 히메를 처음 만났을 때는 히메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는게 정말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만난 이 날도 히메의 말을 다 알아들은게 신기했다 ㅎㅎ
모두 돌아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받아서 정말이지 감사했다. 돌아와서 보니 아쉽게도 마스미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나 뿐만이 아니라 일본 친구들 서로간에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고 했다. 유유는 나처럼 아키라군의 가게에 처음와보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고, 누구는 시험기간이라 정말 바쁠텐데 이렇게 만나러 와 준게 정말 너무도 고마웠다.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행복하고 행복했다. 마치 1년 전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는 중간에 사람들에게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데. 다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있겠지? 하하 물론 나는 예외지만. 진짜 10년 뒤에도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이렇게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키라군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응원한다
아키라군의 가게 방문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어떻게 해서든 내가 도쿄에 와야했던 이유는 아키라군이 오픈한 자신의 BAR에 가기위해서였다. 이것은 기나긴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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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6일 http://ksi8084.blog.me/40109945178
하루하루를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부를 통해서라기 보단 여러가지 모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카페에서, 콜드스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 뿐이다.
하기와라 아키라萩原光라고 하는, 콜드스톤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동료가 있다. 나이는 스물다섯살이고 어제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저스틴은 하고 싶은게 있어?]
[하고 싶은거? 꿈?]
[응]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갈수록 멀어져가는것 같아. 아키라는 꿈이 뭐야?]
[나의 꿈은.. 나의 가게를 갖는거야. 뮤직바 같은.]
[정말? 언제쯤 계획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 여름 정도가 될 것 같아]
[내년 여름? 이런, 나는 내년 2월에 한국에 돌아가니까 못 가겠군. 좀 더 노력해서 빨리 오픈하면 안돼? 나도 꼭 가보고 싶어.]
[하하 알았어. 저스틴을 위해서라도 노력할게. 내년에 저스틴이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슬퍼지는걸.]
일본에 온 이후로 일본 사람들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나의 꿈'에 대해 꽤나 여러번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가끔씩 생각을 해 볼 기회를 많이 갖는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이 곳에 있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메일이 왔다. (2011/05/28의 일기)
ジャスティン、元気してるかな??
저스틴, 잘 지내?
じゅりぴょんだよ(*^◯^*)
쥬리야! (아키라군!)
日本は震災の傷もだんだん晴れてきて、東京はもう前と同じ生活が戻ってきたよ!
일본은 지진으로 타격도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서 도쿄는 벌써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왔어.
だからまた夢を見ることも出来るようになった!!
그래서 다시 꿈을 꾸는 것도 할 수 있게 됐어!
ジャスティン、ついにお店Openが決まったよ!!!
저스틴, 드디어 나의 가게의 오픈이 정해졌어!
場所はなんと渋谷!!
장소는 물론 시부야!
7/1からSTARTするんだぁ☆
7월 1일부터 스타트!
だからね、COLDSTONEはもうやめるんだ!
그래서 콜드스톤은 이제 그만두게 됐어.
30日月曜日が最後の勤務!
30일 월요일이 마지막 출근!
さみしいけど、渋谷にいるから、みんなすぐ会えるからそんなにさみしくないよ(^_-)-☆
서운하지만 가게가 시부야에 있어서 모두 금방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아쉽진않아.
ジャスティンも日本に来たら是非ウチのお店来てもらいたいなぁ☆
저스틴도 일본에 오면 꼭 우리가게에 와줘!
いよいよ じゅりーの冒険が始まるよ!!!
마침내, 쥬리의 모험이 시작된다고!!
お店成功させて、世界一周するんだ!!
성공시켜서 세계일주를 할거야!
ジャスティン、応援していてね♪
저스틴도 응원해줘
親愛なるジャスティンへ、친애하는 저스틴에게
じゅりー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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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기와라 아키라군이 만든 가게에 가는 것이다! 나보다 두살 많은 아키라군의 그러한 꿈을 들었을 때는 단순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아키라군은 힘차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듯 하다!
도겐자카에 위치한 아키라군의 가게에 가는 길에 가슴이 정말 설렜다. 나에게 이런 멋진 친구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6시 부터 11시까지는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그 이후부터는 클럽 분위기로 바뀐다.
세키마이는 오는 7월 결혼한다고 한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인테리어와 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도쿄Feel, 시부야Feel 이었다. 가게 안은 많이 어두워서 사진을 찍기 힘들었다. 가게에는 아키라군의 정성어린 손길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꿈 실현에 한 발 더 나아간 아키라 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더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키라군은 이 가게를 정말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부야 하면 바로 En-sof Tokyo 가 떠오르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키라군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응원한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어떻게 해서든 내가 도쿄에 와야했던 이유는 아키라군이 오픈한 자신의 BAR에 가기위해서였다. 이것은 기나긴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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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6일 http://ksi8084.blog.me/40109945178
하루하루를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부를 통해서라기 보단 여러가지 모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카페에서, 콜드스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 뿐이다.
하기와라 아키라萩原光라고 하는, 콜드스톤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동료가 있다. 나이는 스물다섯살이고 어제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저스틴은 하고 싶은게 있어?]
[하고 싶은거? 꿈?]
[응]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갈수록 멀어져가는것 같아. 아키라는 꿈이 뭐야?]
[나의 꿈은.. 나의 가게를 갖는거야. 뮤직바 같은.]
[정말? 언제쯤 계획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 여름 정도가 될 것 같아]
[내년 여름? 이런, 나는 내년 2월에 한국에 돌아가니까 못 가겠군. 좀 더 노력해서 빨리 오픈하면 안돼? 나도 꼭 가보고 싶어.]
[하하 알았어. 저스틴을 위해서라도 노력할게. 내년에 저스틴이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슬퍼지는걸.]
일본에 온 이후로 일본 사람들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나의 꿈'에 대해 꽤나 여러번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가끔씩 생각을 해 볼 기회를 많이 갖는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이 곳에 있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메일이 왔다. (2011/05/28의 일기)
ジャスティン、元気してるかな??
저스틴, 잘 지내?
じゅりぴょんだよ(*^◯^*)
쥬리야! (아키라군!)
日本は震災の傷もだんだん晴れてきて、東京はもう前と同じ生活が戻ってきたよ!
일본은 지진으로 타격도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서 도쿄는 벌써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왔어.
だからまた夢を見ることも出来るようになった!!
그래서 다시 꿈을 꾸는 것도 할 수 있게 됐어!
ジャスティン、ついにお店Openが決まったよ!!!
저스틴, 드디어 나의 가게의 오픈이 정해졌어!
場所はなんと渋谷!!
장소는 물론 시부야!
7/1からSTARTするんだぁ☆
7월 1일부터 스타트!
だからね、COLDSTONEはもうやめるんだ!
그래서 콜드스톤은 이제 그만두게 됐어.
30日月曜日が最後の勤務!
30일 월요일이 마지막 출근!
さみしいけど、渋谷にいるから、みんなすぐ会えるからそんなにさみしくないよ(^_-)-☆
서운하지만 가게가 시부야에 있어서 모두 금방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아쉽진않아.
ジャスティンも日本に来たら是非ウチのお店来てもらいたいなぁ☆
저스틴도 일본에 오면 꼭 우리가게에 와줘!
いよいよ じゅりーの冒険が始まるよ!!!
마침내, 쥬리의 모험이 시작된다고!!
お店成功させて、世界一周するんだ!!
성공시켜서 세계일주를 할거야!
ジャスティン、応援していてね♪
저스틴도 응원해줘
親愛なるジャスティンへ、친애하는 저스틴에게
じゅりー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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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기와라 아키라군이 만든 가게에 가는 것이다! 나보다 두살 많은 아키라군의 그러한 꿈을 들었을 때는 단순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아키라군은 힘차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듯 하다!
도겐자카에 위치한 아키라군의 가게에 가는 길에 가슴이 정말 설렜다. 나에게 이런 멋진 친구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6시 부터 11시까지는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그 이후부터는 클럽 분위기로 바뀐다.
세키마이는 오는 7월 결혼한다고 한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인테리어와 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도쿄Feel, 시부야Feel 이었다. 가게 안은 많이 어두워서 사진을 찍기 힘들었다. 가게에는 아키라군의 정성어린 손길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꿈 실현에 한 발 더 나아간 아키라 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더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키라군은 이 가게를 정말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부야 하면 바로 En-sof Tokyo 가 떠오르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키라군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응원한다!
바다를 넘어서는 우정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부야에서의 재회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이제부터 시부야에 갔던 일을 쓰려고 한다. 아,,, 가슴이 설렌다. 과연 형편없는 글솜씨로 '내 생애 최고의 멋진 날'을 옮겨적을 수 있을까. 시부야 콜드스톤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곳이다. 도쿄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콜드스톤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면, 전환점의 기둥이 된 것이 콜드스톤 시부야점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 날 오후 3시 마스미ますみ를 만나고부터 그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이어진 '재회再会'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시부야에서의 재회
마스미를 만나기로 한 것은 오후 3시였다. 긴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뒤 긴자센을 타고 종점인 시부야까지 가려고 했지만, 조금 더 걸어서 유라쿠쵸역까지 걸어갔다. 유라쿠초역은 내가 매일 출퇴근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유라쿠초역 앞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부야에 도착한 시각은 약 2시 40분. 이제 20분 뒤면 마스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처음엔 두근두근 거렸지만 3시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마스미는 콜드스톤에서 함께 즐겁게 일했던 친구로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말 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거의 90%가 사람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자신 주위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건 정말 흥미로운 주제다.
마스미를 만나면 뭘 하며 놀지에 대한 온갖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덧 3시가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 때 역의 출구 쪽에서 걸어나오는 마스미를 발견하고. 폴짝 폴짝 뛰며 마스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마스미에게 뛰어갔다. 아... 1년 만에 만났던 그 순간의 감동이란...재회의 기쁨이 이렇게 크고 감격스러운 것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元気?겡끼? 잘지냈어? 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잘 지내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 없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둘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바다를 넘어서는 우정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마스미하고만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마스미의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마스미가 곧 있으면 레이카도 온다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정말 기뻤다! 레이카가 온다니! 나, 마스미, 레이카 셋이는 셋이서 망년회를 했을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다들 바쁘게 지내는 친구들이라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급하게 레이카에게 자그만한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마스미에게 괜찮으면 같이 레이카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시부야의 로프트 였다.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며 1층에서 5층까지 쭉 둘러보았다.
마침 5층에 갔는데 입구의 스피커에서 Greeeen의 キシキ (기적)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 어! 이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キセキ
마스미: 그래? 맞어. 좋은 노래야 ♬
레이카에게 줄 선물로 귀여운 고양이가 달린 펜을 골랐다. 레이카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 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에서 우리 셋은 다시 만났다. 레이카와 마스미도 오랜만에 만난 듯 했다. 그렇게 2010년 망년회 멤버가 모두 모였다. (우리들만의 망년회) 사람의 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잇짱(이츠키)라고 하는 시부야점의 새로운 스태프인데 내가 나가고 나서 바로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내 얘기를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다. 잇짱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있는 멋진 친구였다.
시부야의 광장에 모인 4명이 갈 곳은 어디일까? 바로 콜드스톤 아니겠는가?
자 콜드스톤으로 출발!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이제부터 시부야에 갔던 일을 쓰려고 한다. 아,,, 가슴이 설렌다. 과연 형편없는 글솜씨로 '내 생애 최고의 멋진 날'을 옮겨적을 수 있을까. 시부야 콜드스톤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곳이다. 도쿄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콜드스톤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면, 전환점의 기둥이 된 것이 콜드스톤 시부야점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 날 오후 3시 마스미ますみ를 만나고부터 그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이어진 '재회再会'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시부야에서의 재회
마스미를 만나기로 한 것은 오후 3시였다. 긴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뒤 긴자센을 타고 종점인 시부야까지 가려고 했지만, 조금 더 걸어서 유라쿠쵸역까지 걸어갔다. 유라쿠초역은 내가 매일 출퇴근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유라쿠초역 앞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부야에 도착한 시각은 약 2시 40분. 이제 20분 뒤면 마스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처음엔 두근두근 거렸지만 3시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마스미는 콜드스톤에서 함께 즐겁게 일했던 친구로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말 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거의 90%가 사람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자신 주위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건 정말 흥미로운 주제다.
마스미를 만나면 뭘 하며 놀지에 대한 온갖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덧 3시가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 때 역의 출구 쪽에서 걸어나오는 마스미를 발견하고. 폴짝 폴짝 뛰며 마스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마스미에게 뛰어갔다. 아... 1년 만에 만났던 그 순간의 감동이란...재회의 기쁨이 이렇게 크고 감격스러운 것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元気?겡끼? 잘지냈어? 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잘 지내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 없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둘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바다를 넘어서는 우정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마스미하고만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마스미의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마스미가 곧 있으면 레이카도 온다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정말 기뻤다! 레이카가 온다니! 나, 마스미, 레이카 셋이는 셋이서 망년회를 했을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다들 바쁘게 지내는 친구들이라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급하게 레이카에게 자그만한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마스미에게 괜찮으면 같이 레이카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시부야의 로프트 였다.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며 1층에서 5층까지 쭉 둘러보았다.
마침 5층에 갔는데 입구의 스피커에서 Greeeen의 キシキ (기적)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 어! 이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キセキ
마스미: 그래? 맞어. 좋은 노래야 ♬
레이카에게 줄 선물로 귀여운 고양이가 달린 펜을 골랐다. 레이카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 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에서 우리 셋은 다시 만났다. 레이카와 마스미도 오랜만에 만난 듯 했다. 그렇게 2010년 망년회 멤버가 모두 모였다. (우리들만의 망년회) 사람의 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잇짱(이츠키)라고 하는 시부야점의 새로운 스태프인데 내가 나가고 나서 바로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내 얘기를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다. 잇짱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있는 멋진 친구였다.
시부야의 광장에 모인 4명이 갈 곳은 어디일까? 바로 콜드스톤 아니겠는가?
자 콜드스톤으로 출발!
우리는 광활환 우주에서 인간 삶의 가벼움과 하나의 우주로서의 무거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스카이트리 D-124
2012년 1월 18일 도쿄에서 둘째 날
도쿄에서 사흘 있으면서 숙소를 잡은 곳은 미나미센쥬南千十와 아사쿠사浅草의 중간지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하루 숙박이 1,500엔으로 매우 저렴한 곳을 찾아냈다. 사흘 중 이틀 밤은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짐만 보관해 놓을만한 저렴한 곳을 골랐다. 또한 위치는 스카이트리와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도쿄에 살 때 여러 곳을 모두 가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가보고 싶은 장소는 없지만 유일하게 스카이트리만은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운이 좋게도 내가 묵은 숙소에서도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 감이 왔기 때문에 전날 밤에 스카이트리를 들를 계획을 세웠다. 예상대로 스카이트리까지는 3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스카이트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다. 높은 건물에 대한 갈망이고 인간에 대한 경외심 정도이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좀 더 멀리까지 세상을 볼 수 있고, 그러한 건물들을 지은 인간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존경하게 된다.
현재 스카이트리는 높이 634미터로 최종 높이까지 모두 완공된 상태다. 다만 내부공사와 외관시설 공사가 남아있다. 오픈은 2012년 5월 22일로, 내가 갔던 날은 124일이 남아있었다. 하루 빨리 전망대에 올라가보고 싶다. 다만 입장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될수만 있다면 저 건물의 전망대에 오르게 될 날에는 내게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생겨서 부담없이 올라가고 싶은 소망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자. (나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스카이트리!)
스카이트리를 약 한시간 정도 맴돌면서 사진을 찍고 고개가 아파질때까지 오려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굉장히 인상 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上を向いて がんばろう 日本! (위를 향해서 힘내자 일본!)
분명 작년 대지진 참사가 있고 난 후에 만들어놓은 문구일 것이다. 저 짧은 문구 한마디로 분명히 힘들었던 순간에 힘을 얻게되는 일본인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아마 가슴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겠지.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친구 아키라군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번 대지진으로 인해서 일본인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 절대로 지진이 일어나서 좋았다라는 식의 말은 아니지만, 그 지진으로 인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본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 내 주위에도 가볍게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했어."
시련을 겪은 만큼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와 그 국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어떤 시련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은 비참해지고, 그 비참해지는 타인의 삶을 보고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고 한다면 다같이 미리 준비하고, 그것이 닥쳤을 때는 함께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군대에 있을 때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가, 삶을 가볍게 살아내야 하는건지, 무겁게 살아내야 하는 건지에 관한 것이었다. 가볍게 살아내자니 진지함이 부족해져버리는 인생에서는 그 삶의 참맛을 못느끼겠고, 무겁게 살아내자니 가볍게 세상을 날아다니듯이 즐기는 존재들이 너무도 부러워보였다. 생각해보면 삶은 가볍게 살아내고 무겁게 살아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어느 순간엔 가벼워질 때도 있고, 어느 순간엔 무거워질 때도 있다.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삶의 이치를 조절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뜻 밖의 시련이 존재하기도 하며, 오락실의 인형뽑기 기계에서 5초만에 500원이 날라가기도 하는 가벼움이 존재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람은 언제나 때와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점이다. 나의 변화는 곧 우주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곧 지역 사회의 삶이고, 그게 곧 나라의 삶이고, 전 세계의 삶이고 우주의 삶이다. 우리는 광활환 우주에서 인간 삶의 가벼움과 하나의 우주로서의 무거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2012년 1월 18일 도쿄에서 둘째 날
도쿄에서 사흘 있으면서 숙소를 잡은 곳은 미나미센쥬南千十와 아사쿠사浅草의 중간지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하루 숙박이 1,500엔으로 매우 저렴한 곳을 찾아냈다. 사흘 중 이틀 밤은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짐만 보관해 놓을만한 저렴한 곳을 골랐다. 또한 위치는 스카이트리와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도쿄에 살 때 여러 곳을 모두 가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가보고 싶은 장소는 없지만 유일하게 스카이트리만은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운이 좋게도 내가 묵은 숙소에서도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 감이 왔기 때문에 전날 밤에 스카이트리를 들를 계획을 세웠다. 예상대로 스카이트리까지는 3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스카이트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다. 높은 건물에 대한 갈망이고 인간에 대한 경외심 정도이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좀 더 멀리까지 세상을 볼 수 있고, 그러한 건물들을 지은 인간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존경하게 된다.
현재 스카이트리는 높이 634미터로 최종 높이까지 모두 완공된 상태다. 다만 내부공사와 외관시설 공사가 남아있다. 오픈은 2012년 5월 22일로, 내가 갔던 날은 124일이 남아있었다. 하루 빨리 전망대에 올라가보고 싶다. 다만 입장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될수만 있다면 저 건물의 전망대에 오르게 될 날에는 내게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생겨서 부담없이 올라가고 싶은 소망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자. (나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스카이트리!)
스카이트리를 약 한시간 정도 맴돌면서 사진을 찍고 고개가 아파질때까지 오려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굉장히 인상 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上を向いて がんばろう 日本! (위를 향해서 힘내자 일본!)
분명 작년 대지진 참사가 있고 난 후에 만들어놓은 문구일 것이다. 저 짧은 문구 한마디로 분명히 힘들었던 순간에 힘을 얻게되는 일본인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아마 가슴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겠지.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친구 아키라군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번 대지진으로 인해서 일본인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 절대로 지진이 일어나서 좋았다라는 식의 말은 아니지만, 그 지진으로 인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본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 내 주위에도 가볍게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했어."
시련을 겪은 만큼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와 그 국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어떤 시련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은 비참해지고, 그 비참해지는 타인의 삶을 보고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고 한다면 다같이 미리 준비하고, 그것이 닥쳤을 때는 함께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군대에 있을 때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가, 삶을 가볍게 살아내야 하는건지, 무겁게 살아내야 하는 건지에 관한 것이었다. 가볍게 살아내자니 진지함이 부족해져버리는 인생에서는 그 삶의 참맛을 못느끼겠고, 무겁게 살아내자니 가볍게 세상을 날아다니듯이 즐기는 존재들이 너무도 부러워보였다. 생각해보면 삶은 가볍게 살아내고 무겁게 살아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어느 순간엔 가벼워질 때도 있고, 어느 순간엔 무거워질 때도 있다.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삶의 이치를 조절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뜻 밖의 시련이 존재하기도 하며, 오락실의 인형뽑기 기계에서 5초만에 500원이 날라가기도 하는 가벼움이 존재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람은 언제나 때와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점이다. 나의 변화는 곧 우주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곧 지역 사회의 삶이고, 그게 곧 나라의 삶이고, 전 세계의 삶이고 우주의 삶이다. 우리는 광활환 우주에서 인간 삶의 가벼움과 하나의 우주로서의 무거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1년 만의 도쿄 - 혼자여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1년 만의 도쿄
2012년 1월 18일 홋카이도에서 마지막 날, 도쿄에서 첫째 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비행기가 12시로 남들보다 조금 빨랐기 때문에 모두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혼자서 전차를 타고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까지 갔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홋카이도의 눈을 감상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올 그 날까지 삿포로와 안녕~ 할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꼭 여름에 찾아오고 싶다. 홋카이도의 여름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참, 전날 밤에 깜짝 파티가 있었다. 전날 썰매를 타고 오후엔 온천을 즐긴 탓인지 합숙소에 오니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잠이 들었다. 그런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서 스무명이 넘는 애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무섭기도 했고 깜짝놀랬다. 내가 맞는건 아닌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때 갑자기 촛불이 밝혀진 케익을 들고 오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아.. 정말 감동이었다. 모두 0시가 되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피곤하다고 먼저 잠들어버렸으니. 밤 늦게까지 잠도 안자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일본에서 맞는 생일의 시작이 정말 멋졌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서 도쿄에 와서는 외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약 2시 반였는데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우 고민했다. 일단은 짐이 너무 무거우니 숙소에 짐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아니면 긴자의 카페에 들러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지, 아니면 시부야에 가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줄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벌써 저녁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향한 곳은 결국 도쿄타워였다! 20kg 가까이 나가는 짐을 들고 도쿄타워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이런걸 이끌림이라고 한다) 왜 도쿄타워에 가지 않았으면 안됐을까를 얘기하자면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쿄타워는 생일에 가면 입장료가 무료이고 케익도 공짜로 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도쿄타워를 향했다. 도쿄타워는 나에게 있어 도쿄를 낭만적인 곳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다.
그런 도쿄타워를 나는 작년(2011년) 생일에 올랐었다. 그러니 정말 딱 1년 만에 도쿄타워에 온 것이다. 아...이건 아무래도 생각해도 너무 멋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당분간 일본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우연히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를 얻어 오게 되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다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도쿄에 들러 도쿄타워에 왔는데 그게 정확히 내 생일이면서 1년째 되는 날이라니. 이렇게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주는 카미사마에게 감사해야한다.
무거운 짐을 도쿄타워까지 들고가는 것은 무척 고생스러웠다. 그럼에도 가슴을 두근두근 떨렸다. 하나의 장소를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건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나에게 도쿄타워 같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동경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건물말이다. 무겁게 끌고온 짐을 도쿄타워에 올라가기 전에 대형락커에 넣고 몸을 가볍게 했다. 생일이라고 말하니 입장권과 케익 교환권을 주었다. 그 때부터 직원들이 나를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작년에는 친구와 함께와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혼자여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2012년 1월 18일 홋카이도에서 마지막 날, 도쿄에서 첫째 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비행기가 12시로 남들보다 조금 빨랐기 때문에 모두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혼자서 전차를 타고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까지 갔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홋카이도의 눈을 감상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올 그 날까지 삿포로와 안녕~ 할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꼭 여름에 찾아오고 싶다. 홋카이도의 여름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참, 전날 밤에 깜짝 파티가 있었다. 전날 썰매를 타고 오후엔 온천을 즐긴 탓인지 합숙소에 오니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잠이 들었다. 그런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서 스무명이 넘는 애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무섭기도 했고 깜짝놀랬다. 내가 맞는건 아닌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때 갑자기 촛불이 밝혀진 케익을 들고 오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아.. 정말 감동이었다. 모두 0시가 되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피곤하다고 먼저 잠들어버렸으니. 밤 늦게까지 잠도 안자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일본에서 맞는 생일의 시작이 정말 멋졌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서 도쿄에 와서는 외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약 2시 반였는데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우 고민했다. 일단은 짐이 너무 무거우니 숙소에 짐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아니면 긴자의 카페에 들러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지, 아니면 시부야에 가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줄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벌써 저녁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향한 곳은 결국 도쿄타워였다! 20kg 가까이 나가는 짐을 들고 도쿄타워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이런걸 이끌림이라고 한다) 왜 도쿄타워에 가지 않았으면 안됐을까를 얘기하자면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쿄타워는 생일에 가면 입장료가 무료이고 케익도 공짜로 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도쿄타워를 향했다. 도쿄타워는 나에게 있어 도쿄를 낭만적인 곳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다.
그런 도쿄타워를 나는 작년(2011년) 생일에 올랐었다. 그러니 정말 딱 1년 만에 도쿄타워에 온 것이다. 아...이건 아무래도 생각해도 너무 멋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당분간 일본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우연히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를 얻어 오게 되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다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도쿄에 들러 도쿄타워에 왔는데 그게 정확히 내 생일이면서 1년째 되는 날이라니. 이렇게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주는 카미사마에게 감사해야한다.
무거운 짐을 도쿄타워까지 들고가는 것은 무척 고생스러웠다. 그럼에도 가슴을 두근두근 떨렸다. 하나의 장소를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건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나에게 도쿄타워 같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동경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건물말이다. 무겁게 끌고온 짐을 도쿄타워에 올라가기 전에 대형락커에 넣고 몸을 가볍게 했다. 생일이라고 말하니 입장권과 케익 교환권을 주었다. 그 때부터 직원들이 나를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작년에는 친구와 함께와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혼자여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일본 워킹홀리데이
2011년 1월 28일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시부야는 번화가이기는 하지만 신주쿠처럼 고층빌딩이 없다. 업무지구로서의 역할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빌딩 중에 높은 빌딩이 내가 일하고 있는 마크시티의 건물과 조금 떨어져있는 세루리안호텔(Cerulean Hotel セルリアンホテル)이다. 도쿄에 있으면서 많은 곳의 전망대를 올라가봤지만 아직까지 시부야의 전망대는 한번도 올라가 본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부야에는 고층빌딩이 없을 뿐더러 때문에 전망대도 없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의 약속이 8시 시부야에서 있어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시부야를 둘러보면서 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 세루리안호텔이었다. '저 호텔에 가면 시부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정문 앞에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니 다행히도 맨 윗층 40층에 바Bar가 있었다. http://www.ceruleantower-hotel.com 전망대가 아닌 호텔의 바에 가서 전망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떨렸다. 호텔은 역시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남달랐다. 황송할 정도로 극진한 서비스였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으로 도쿄의 야경이 보였다. '잘 찾아왔다'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 병 시켜서 조용하게 야경을 감상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무척 조용했다. 바에는 대부분 혼자 온 손님들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이 호텔에 좀 더 빨리 와보기로 마음 먹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만의 장소로 삼았을텐데. 앞쪽의 창문으로는 신주쿠 쪽의 야경 밖에 안보였기 때문에 종업원에게 말해 도쿄타워가 보이는 자리로 옮기고 싶다고 말해 자리를 옮겨 계속 감상했다. 옮긴 자리에서는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도 보였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느릿느릿 움직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그 순간 바에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혼잡하고 시끄러운 스크램블 교차로가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할테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의 조각이 되버린다.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살아가는 장소는 근거리에서 보이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멀리서 조용히 우리의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2011년 1월 28일
시부야의 호텔에서 본 도쿄의 야경
시부야는 번화가이기는 하지만 신주쿠처럼 고층빌딩이 없다. 업무지구로서의 역할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빌딩 중에 높은 빌딩이 내가 일하고 있는 마크시티의 건물과 조금 떨어져있는 세루리안호텔(Cerulean Hotel セルリアンホテル)이다. 도쿄에 있으면서 많은 곳의 전망대를 올라가봤지만 아직까지 시부야의 전망대는 한번도 올라가 본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부야에는 고층빌딩이 없을 뿐더러 때문에 전망대도 없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의 약속이 8시 시부야에서 있어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시부야를 둘러보면서 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가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 세루리안호텔이었다. '저 호텔에 가면 시부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정문 앞에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니 다행히도 맨 윗층 40층에 바Bar가 있었다. http://www.ceruleantower-hotel.com 전망대가 아닌 호텔의 바에 가서 전망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떨렸다. 호텔은 역시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남달랐다. 황송할 정도로 극진한 서비스였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으로 도쿄의 야경이 보였다. '잘 찾아왔다'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 병 시켜서 조용하게 야경을 감상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 무척 조용했다. 바에는 대부분 혼자 온 손님들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이 호텔에 좀 더 빨리 와보기로 마음 먹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만의 장소로 삼았을텐데. 앞쪽의 창문으로는 신주쿠 쪽의 야경 밖에 안보였기 때문에 종업원에게 말해 도쿄타워가 보이는 자리로 옮기고 싶다고 말해 자리를 옮겨 계속 감상했다. 옮긴 자리에서는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도 보였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느릿느릿 움직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그 순간 바에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혼잡하고 시끄러운 스크램블 교차로가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할테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의 조각이 되버린다.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살아가는 장소는 근거리에서 보이는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이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멀리서 조용히 우리의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순간을.
시부야는 젊음이다
2011년 1월 28일
시부야
시부야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런 번잡한 곳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시부야역의 이용객은 신주쿠과 이케부쿠로역 다음으로 많지만, 혼잡함의 정도에서는 신주쿠를 넘어설 것이다. 도쿄의 서쪽으로 이어져있는 이케부쿠로,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는 신기하게도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도 다르기도 하고, 거리를 지배하는 공기가 다르다. 하물며 동쪽의 우에노와 아키하바라와 비교했을 때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처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눈 앞에서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와.....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길을 건너가지.' 나는 지금 시부야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늘 이곳으로 출근을 하고,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정이 들었다. 시부야는 월드컵 때 보여준 일본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를 시작으로 일본에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의 시끌벅쩍 해지는 곳이다. 도쿄 이외의 다른 지방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도쿄에서는 가장 젊음이 넘치는 거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젊음은 나이의 젊음이 아니라 마음의 젊음이다
시부야
시부야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런 번잡한 곳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시부야역의 이용객은 신주쿠과 이케부쿠로역 다음으로 많지만, 혼잡함의 정도에서는 신주쿠를 넘어설 것이다. 도쿄의 서쪽으로 이어져있는 이케부쿠로,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는 신기하게도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도 다르기도 하고, 거리를 지배하는 공기가 다르다. 하물며 동쪽의 우에노와 아키하바라와 비교했을 때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처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눈 앞에서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와.....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길을 건너가지.' 나는 지금 시부야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늘 이곳으로 출근을 하고,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놀면서 정이 들었다. 시부야는 월드컵 때 보여준 일본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를 시작으로 일본에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의 시끌벅쩍 해지는 곳이다. 도쿄 이외의 다른 지방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도쿄에서는 가장 젊음이 넘치는 거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젊음은 나이의 젊음이 아니라 마음의 젊음이다
쇼난湘南을 달리다
2011년 1월 27일
쇼난湘南을 달리다
마키에게 감사해야겠다. 쇼난湘南의 바다가 보고 싶다면서 이시켄상에게 쇼난에 가자고 한건 마키였으니.
씨파라다이스를 하루 종일 모든 수족관을 다 구경하고, 모든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만큼 다 타고나서 마키가 쇼난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나도 물론 찬성했다. 아름다웠던 가마쿠라 해변의 이미지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으니.
핫케이지마에서 쇼난에 가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가마쿠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하굣길의 학생들이 보였다. 이시켄상과 마키에게 말했다.
저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학교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사실이. 수업 시간에 잠깐 졸다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원한 바다가 딱 펼쳐져 있을거아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앞에 있는 바다가 그 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건 다 보듬어주기도 할테고.
차 안에는 90년대의 일본노래가 흘러나왔다. 마키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곡이라면서 계속 기뻐했다. 그리고는 이시켄상의 음악 선곡 센스를 칭찬해줬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차창 밖의 쇼난해안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여름에 왔을 때와 달라진게 있다면 나의 상황일 것이다. 여름에 왔을 때는 아직 한참 남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즐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나의 상황이 변하면서 내가 바라보는 풍경도 변한다. 그래서 그 날의 쇼난해안은 쓸쓸했다.
아름다운 쇼난을 드라이브 시켜준 이시켄상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유원지를 함께 즐겨준 마키에게 감사를 드린다.
쇼난湘南을 달리다
마키에게 감사해야겠다. 쇼난湘南의 바다가 보고 싶다면서 이시켄상에게 쇼난에 가자고 한건 마키였으니.
씨파라다이스를 하루 종일 모든 수족관을 다 구경하고, 모든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만큼 다 타고나서 마키가 쇼난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나도 물론 찬성했다. 아름다웠던 가마쿠라 해변의 이미지를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으니.
핫케이지마에서 쇼난에 가기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가마쿠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하굣길의 학생들이 보였다. 이시켄상과 마키에게 말했다.
저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학교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사실이. 수업 시간에 잠깐 졸다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원한 바다가 딱 펼쳐져 있을거아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앞에 있는 바다가 그 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건 다 보듬어주기도 할테고.
차 안에는 90년대의 일본노래가 흘러나왔다. 마키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곡이라면서 계속 기뻐했다. 그리고는 이시켄상의 음악 선곡 센스를 칭찬해줬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차창 밖의 쇼난해안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여름에 왔을 때와 달라진게 있다면 나의 상황일 것이다. 여름에 왔을 때는 아직 한참 남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즐길지 고민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나의 상황이 변하면서 내가 바라보는 풍경도 변한다. 그래서 그 날의 쇼난해안은 쓸쓸했다.
아름다운 쇼난을 드라이브 시켜준 이시켄상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유원지를 함께 즐겨준 마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요코하마 핫케이지마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2011년 1월 27일
요코하마 핫케이지마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송별회가 있던 날, 점장님 이시켄상이 목요일에 어딘가 놀러가자고 제안하셨다. 난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놀러가기로 한 전날까지도 연락이 없어서 취소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날 밤 늦게 연락이 오더니 내일 아침 9시 요코하마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날 참가한 멤버는 나와 이시켄상 그리고 마키. 3명이었다.
요코하마 역에서 9시에 만난 우리들은 이시켄상의 밴에 올라탔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어디든 좋아요.
일단은 차를 타고서 요코하마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드라이브하면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계속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요코하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핫케이지마의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는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한 겨울 평일의 씨파라다이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들은 디즈니랜드 얘기를 꺼내면서 두 유원지를 비교했다. 오늘 디즈니랜드를 갔더라면 사람이 정말 많았을거라고. 우선은 티켓판매소에서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프리패스를 구입하면 유원지내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제일 처음 블루폴(http://ksi8084.blog.me/40122310236)이라는 놀이기구를 타고서, 수족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본은 워낙 유명한 수족관이 많아서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이 있는데, 씨파라이스의 수족관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수준을 자랑한다.
일본에 있으면서 수족관은 세번 다녀왔다. 가마쿠라 여행 갔을 때 다녀온 신에노시마 수족관이 첫번째였고, 카사이 임해공원의 수족관이 두번째였다. 이번에 갔던 곳이 가장 좋았다. 물론 요금이 가장 비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케일이 달랐고, 이전에 다녀왔던 수족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물고기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다생물쇼&돌핀판타지
핫케이지마 씨파라아디스에는 세 곳의 수족관이 있는데 가장 큰 곳이 아쿠아뮤지엄이다. 이 곳에서는 하루 3차례에 걸쳐 바다생물쇼가 열린다. 아쿠아뮤지엄을 느긋하게 둘러 본 뒤 잠시 놀이기구를 타고 와서 시간에 맞춰 바다생물쇼를 구경했다. 그런 쇼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중에 바다코끼리와 함께 게임을 할 지원자를 찾길래 내가 나갔다. 그리고는 팔 빨리 흔들기 게임에서 이겼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쇼를 보고나서 다시 나와서 놀이기구를 조금 탄 다음 돌핀판타지라는 수족관을 구경했다. 돌핀판타지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서 그런지 천장으로 돌고래와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한 동안이나 가만히 서서 헤엄쳐다니는 돌고래를 감상했다.
가장 스릴있는 놀이기구는 블루폴(blue fall)이었다. 바다 위를 달리는 해상제트코스터도 있었지만 이날은 운휴여서 매우 아쉬웠다. 씨파라다이스에는 스릴을 느끼는 놀이기구 보다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놀이기구가 많았다. 씨파라다이스 자체가 어트랙션 중심이 아니라 수족관을 중심으로한 테마파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폴의 스릴은 정말 최고다. 이런건 후지큐하이랜드에 있어야 어울린다. 아.. 후지큐하이랜드는 정말....최고다.....
요코하마 핫케이지마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송별회가 있던 날, 점장님 이시켄상이 목요일에 어딘가 놀러가자고 제안하셨다. 난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놀러가기로 한 전날까지도 연락이 없어서 취소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날 밤 늦게 연락이 오더니 내일 아침 9시 요코하마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날 참가한 멤버는 나와 이시켄상 그리고 마키. 3명이었다.
요코하마 역에서 9시에 만난 우리들은 이시켄상의 밴에 올라탔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어디든 좋아요.
일단은 차를 타고서 요코하마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드라이브하면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계속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요코하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핫케이지마의 씨파라다이스 八景島 Sea-Paradise 는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가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한 겨울 평일의 씨파라다이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들은 디즈니랜드 얘기를 꺼내면서 두 유원지를 비교했다. 오늘 디즈니랜드를 갔더라면 사람이 정말 많았을거라고. 우선은 티켓판매소에서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프리패스를 구입하면 유원지내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제일 처음 블루폴(http://ksi8084.blog.me/40122310236)이라는 놀이기구를 타고서, 수족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본은 워낙 유명한 수족관이 많아서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이 있는데, 씨파라이스의 수족관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수준을 자랑한다.
일본에 있으면서 수족관은 세번 다녀왔다. 가마쿠라 여행 갔을 때 다녀온 신에노시마 수족관이 첫번째였고, 카사이 임해공원의 수족관이 두번째였다. 이번에 갔던 곳이 가장 좋았다. 물론 요금이 가장 비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케일이 달랐고, 이전에 다녀왔던 수족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물고기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바다생물쇼&돌핀판타지
핫케이지마 씨파라아디스에는 세 곳의 수족관이 있는데 가장 큰 곳이 아쿠아뮤지엄이다. 이 곳에서는 하루 3차례에 걸쳐 바다생물쇼가 열린다. 아쿠아뮤지엄을 느긋하게 둘러 본 뒤 잠시 놀이기구를 타고 와서 시간에 맞춰 바다생물쇼를 구경했다. 그런 쇼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중에 바다코끼리와 함께 게임을 할 지원자를 찾길래 내가 나갔다. 그리고는 팔 빨리 흔들기 게임에서 이겼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쇼를 보고나서 다시 나와서 놀이기구를 조금 탄 다음 돌핀판타지라는 수족관을 구경했다. 돌핀판타지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서 그런지 천장으로 돌고래와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다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한 동안이나 가만히 서서 헤엄쳐다니는 돌고래를 감상했다.
가장 스릴있는 놀이기구는 블루폴(blue fall)이었다. 바다 위를 달리는 해상제트코스터도 있었지만 이날은 운휴여서 매우 아쉬웠다. 씨파라다이스에는 스릴을 느끼는 놀이기구 보다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놀이기구가 많았다. 씨파라다이스 자체가 어트랙션 중심이 아니라 수족관을 중심으로한 테마파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폴의 스릴은 정말 최고다. 이런건 후지큐하이랜드에 있어야 어울린다. 아.. 후지큐하이랜드는 정말....최고다.....
두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더욱 행복했다
2011년 1월 21일
아인소프의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하루 - 샤브샤브
아인소프의 친구 보람이와 이나다군, 셋이서 함께 하루를 보냈다. 보람이, 이나다군, 그리고 나까지 생일이 모두 1월,2월이다. 다들 똑같은 나이면서, 생일까지 비슷하다. 한국에서 빠른 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하야우마레早生まれ라고 부르는데, 다만 다른 점은 한국은 2월생까지이고, 일본은 3월생까지가 빠른 생일로서 학교를 일찍 입학한다. (아마 한국은 최근 없어졌지만 일본은 계속 있는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다.)
보람이의 생일이 1월 9일이었고, 나의 생일이 1월 18일, 이나다군의 생일은 2월 7일이다. 그래서 전에 셋이서 축하도 할 겸 같이 밥을 먹자고 했었다. 셋이서 모여서 밥을 먹은건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 모여서는 이케부쿠로의 스위츠 파라다이스를 갔다.
우리 셋을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카페 아인소프다. 모두 아인소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와 이나다군은 12월에 그만두고, 보람이는 아직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사는 곳은 바로 옆집이다. 이나다군과 나는 같은 집에서 같은 방 옆 침대를 쓰고 있고, 보람이는 옆 집 살고 있다. 생일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곳에서 살고, 같은 곳에 일한다는 것은 정말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면서 정말 즐거웠다. 헤어질 시기가 다가오지만 다시 기회만 온다면 언제까지나 함께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다.다른 나이대의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같은 나이대의 친구를 사귀다는것 (더군다나 생일이 비슷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10년 후를 생각하면서, 그 친구는 대체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지금 일본에서 만난 인연들을 평생 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바로 신경쓰지 않고 내 자신의 일에만 신경쓰며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인연의 끈은 실처럼 얇아져 두번 다신 평생 못 볼 사이가 되버리고 말 것이다. 일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의 고리를 평생도록 간직하고 싶다면 내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집에서 12시에 집합해서 자전거를 타고 이케부쿠로로 밥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샤브샤브였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서 맛있었다. 밥을 먹고서는 바로 앞 게임센터에서 프리쿠라(스티커사진)를 찍고, 그 다음은 자전거를 타고 도쿄를 누볐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자전거를 타면서 두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까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서 동네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기분이야. 정말 그랬다. 오늘 하루는 어린시절 동네를 자전거로 누비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스티커사진을 좋아하는 보람이가 셋이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이케부쿠로에 있는 게임센터로 들어갔다. 여러대의 프리쿠라 기계에서 아무 곳이나 골라들어가 재미있게 사진을 찍었다.
프리쿠라를 찍을 때마다 얼굴이 과도하게 변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찍는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찍으면 재미있긴 하다. 또한 매우 일본스러운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얼굴이 너무 다른 사람처럼 나오는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일본에서의 친구들과 일본스런 추억을 남기는 방법으로 프리쿠라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나다군, 보람짱, 나 셋이서 이케부쿠로에서 밥을 먹고 나서 셋 모두 시간이 남아서 어딘가로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작년 봄의 기억을 더듬어, 이 곳에서 멀지않은 도쿄대학을 가기로 했다. 자전거로 캠퍼스를 둘러보고 나서 캠퍼스 바로 뒤에 있는 우에노공원까지 들르는 코스였다.
자전거를 타기엔 조금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를 타서 기분이 좋았던 건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던 건지, 둘다였던건지 잘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내내 끝내줄 정도로 가슴 속이 상쾌했다.
앞장 서서 이곳 저곳을 안내했다. 오랜만에 도쿄대학에도 들르니 좋았다. 일본에서 머리가 가장 좋은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곳이다. 우에노공원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다. 언제와도 행복해지는 장소다. 특별히 두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더욱 행복했다. 혼자왔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가 있었다.
도쿄대학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인상 깊었다.
내가 두 친구들에게 도쿄대학의 도서관이라든지 성당이라든지 이곳저곳 안내 해주는 중이었는데,
"자, 이제 저쪽에 있는 나무로 가볼까?
앞에 있는 나무 보이지?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음...
'큰' 나무야."
라고 썰렁한 농담을 했는데,
옆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신 아주머니가 내가 한 말을 듣고는 박장대소를 하시는 것이다.
두 친구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옆에서 그렇게 크게 웃어주시니까 오히려 내 쪽이 민망해졌다.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나도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알고 싶어서 나무 이름을 찾던 중에 학생이 마침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길래, 무슨 설명일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하하하하하. 소우데스네~ 오오키나키데스네~ 하하하하 そうですね。大きな木ですね"
그 뒤로 이런 저런 얘기를 재미있게 나누었고 덕분에 셋이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던 차에 사진도 찍어주셨다.하하하 왠지 재미있었다.
기분좋고 상쾌한 자전거 나들이였다.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아사쿠사까지 가자고 했다. 꼭 가고 싶다. 뭔가 다시 한번 유쾌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いつまでも仲良くしようね
아인소프의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하루 - 샤브샤브
아인소프의 친구 보람이와 이나다군, 셋이서 함께 하루를 보냈다. 보람이, 이나다군, 그리고 나까지 생일이 모두 1월,2월이다. 다들 똑같은 나이면서, 생일까지 비슷하다. 한국에서 빠른 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하야우마레早生まれ라고 부르는데, 다만 다른 점은 한국은 2월생까지이고, 일본은 3월생까지가 빠른 생일로서 학교를 일찍 입학한다. (아마 한국은 최근 없어졌지만 일본은 계속 있는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다.)
보람이의 생일이 1월 9일이었고, 나의 생일이 1월 18일, 이나다군의 생일은 2월 7일이다. 그래서 전에 셋이서 축하도 할 겸 같이 밥을 먹자고 했었다. 셋이서 모여서 밥을 먹은건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 모여서는 이케부쿠로의 스위츠 파라다이스를 갔다.
우리 셋을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카페 아인소프다. 모두 아인소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와 이나다군은 12월에 그만두고, 보람이는 아직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사는 곳은 바로 옆집이다. 이나다군과 나는 같은 집에서 같은 방 옆 침대를 쓰고 있고, 보람이는 옆 집 살고 있다. 생일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곳에서 살고, 같은 곳에 일한다는 것은 정말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면서 정말 즐거웠다. 헤어질 시기가 다가오지만 다시 기회만 온다면 언제까지나 함께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다.다른 나이대의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같은 나이대의 친구를 사귀다는것 (더군다나 생일이 비슷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10년 후를 생각하면서, 그 친구는 대체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지금 일본에서 만난 인연들을 평생 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바로 신경쓰지 않고 내 자신의 일에만 신경쓰며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인연의 끈은 실처럼 얇아져 두번 다신 평생 못 볼 사이가 되버리고 말 것이다. 일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의 고리를 평생도록 간직하고 싶다면 내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집에서 12시에 집합해서 자전거를 타고 이케부쿠로로 밥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샤브샤브였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서 맛있었다. 밥을 먹고서는 바로 앞 게임센터에서 프리쿠라(스티커사진)를 찍고, 그 다음은 자전거를 타고 도쿄를 누볐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자전거를 타면서 두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까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서 동네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기분이야. 정말 그랬다. 오늘 하루는 어린시절 동네를 자전거로 누비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스티커사진을 좋아하는 보람이가 셋이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이케부쿠로에 있는 게임센터로 들어갔다. 여러대의 프리쿠라 기계에서 아무 곳이나 골라들어가 재미있게 사진을 찍었다.
프리쿠라를 찍을 때마다 얼굴이 과도하게 변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찍는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찍으면 재미있긴 하다. 또한 매우 일본스러운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얼굴이 너무 다른 사람처럼 나오는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일본에서의 친구들과 일본스런 추억을 남기는 방법으로 프리쿠라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나다군, 보람짱, 나 셋이서 이케부쿠로에서 밥을 먹고 나서 셋 모두 시간이 남아서 어딘가로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작년 봄의 기억을 더듬어, 이 곳에서 멀지않은 도쿄대학을 가기로 했다. 자전거로 캠퍼스를 둘러보고 나서 캠퍼스 바로 뒤에 있는 우에노공원까지 들르는 코스였다.
자전거를 타기엔 조금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를 타서 기분이 좋았던 건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던 건지, 둘다였던건지 잘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내내 끝내줄 정도로 가슴 속이 상쾌했다.
앞장 서서 이곳 저곳을 안내했다. 오랜만에 도쿄대학에도 들르니 좋았다. 일본에서 머리가 가장 좋은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곳이다. 우에노공원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다. 언제와도 행복해지는 장소다. 특별히 두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더욱 행복했다. 혼자왔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가 있었다.
도쿄대학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인상 깊었다.
내가 두 친구들에게 도쿄대학의 도서관이라든지 성당이라든지 이곳저곳 안내 해주는 중이었는데,
"자, 이제 저쪽에 있는 나무로 가볼까?
앞에 있는 나무 보이지?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음...
'큰' 나무야."
라고 썰렁한 농담을 했는데,
옆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신 아주머니가 내가 한 말을 듣고는 박장대소를 하시는 것이다.
두 친구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옆에서 그렇게 크게 웃어주시니까 오히려 내 쪽이 민망해졌다.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나도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알고 싶어서 나무 이름을 찾던 중에 학생이 마침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길래, 무슨 설명일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하하하하하. 소우데스네~ 오오키나키데스네~ 하하하하 そうですね。大きな木ですね"
그 뒤로 이런 저런 얘기를 재미있게 나누었고 덕분에 셋이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던 차에 사진도 찍어주셨다.하하하 왠지 재미있었다.
기분좋고 상쾌한 자전거 나들이였다.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아사쿠사까지 가자고 했다. 꼭 가고 싶다. 뭔가 다시 한번 유쾌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いつまでも仲良くしようね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왠지 따뜻할 것 같다
2011년 1월 19일
新宿御苑신주쿠교엔의 사람들
겨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햇살 따뜻한 봄 같은 겨울 날, 찾아간 신주쿠교엔
겨울의 맑은 하늘 아래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는 사람들.
이런 날씨 좋은 날을 놓치지 않고 공원에 찾아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왔건, 여유가 남아돌아 공원에 왔건,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왠지 따뜻할 것 같다.
新宿御苑신주쿠교엔의 사람들
겨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햇살 따뜻한 봄 같은 겨울 날, 찾아간 신주쿠교엔
겨울의 맑은 하늘 아래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는 사람들.
이런 날씨 좋은 날을 놓치지 않고 공원에 찾아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왔건, 여유가 남아돌아 공원에 왔건,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왠지 따뜻할 것 같다.
내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도쿄타워다
2011년 1월 18일
다시 찾은 도쿄타워
치바현 후나바시의 라라포트에서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서 친구에게 도쿄타워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친구는 좋다고 했다. 도쿄타워는 내가 제일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장소이다'라기 보다는 '장소가 되었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도쿄에 와서 사람들을 하나둘 알게되고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이런 대화가 한번씩 흘러가게 된다.
[도쿄에 온 이후로 여행은 많이 다녔어?]
[응. 처음에 왔을 때 자전거로 많이 돌아다녔지.]
[어디가 제일 좋았어?] 혹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야?]
[글쎄... 도쿄타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애.]
제일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 속에 스쳐지나가는 인상깊은 곳이 도쿄타워 밖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 깊게 생각해보고 대답했더라면 다른 장소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그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 이후 다시 그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 '도쿄타워'라고 대답을 한다. 이걸 습관이라고 해야되는 건지.
그런데 도쿄타워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말해오다 보니 신기하게 점점 더 도쿄타워에 애착이 가는 것이다. 애착이 가면서 아끼는 장소로 삼고 싶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한가지 더 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 올 경우 습관처럼 '포레스트 검프'라고 대답을 한다.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들 중 한편이었을 뿐인데, 처음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대답한 이후로 쭉 그 영화만 답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애착이 가게 되고 지금은 너무나도 아끼는 영화가 되었다.
연인에게 습관처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쿄타워를 좋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내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도쿄타워다. 도쿄타워를 바라 보는 것도 좋고,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보이는 도쿄의 풍경도 좋다. 간혹 일본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도쿄타워가 보이지 않으니까 안좋지 않냐고. 확실히 도쿄타워가 보이지 않는 도쿄의 풍경은 조금 뭔가 허전하지만, 그래도 도쿄타워에 올라와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생일날 도쿄타워에 찾아갔기 때문에 대전망대까지 무료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생일에 도쿄타워를 찾아가면 무료입장권과 케익교환권을 준다. 이건 도쿄가 주는 선물이다. 얼마나 좋은 생일 선물인가!
4시에 올라가니 해질 무렵의 도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멋지다. ‘멋지다’보다는 ‘아름답다’에 더 가까운 표현을 쓰고 싶은데 적절한 단어를 모르겠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도쿄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니나다를까 도쿄타워의 전망대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밑에서 선물로 받은 티켓으로 케익을 교환하고 커피를 사서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깜깜해졌다. 아름다운 도쿄의 야경이었다. 도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동안의 내가 열심히 움직였던 흔적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전차에 몸을 싣고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도쿄타워에 올라서서 도쿄를 감상하니까 도쿄타워가 더욱 좋아진다. 그래서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오자고. 그때는 아직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는 특별전망대까지 올라가자고! 생일에 도쿄타워를 찾아온 것은 무척 좋은 일이었다. 안에서 필요로 하는 감정을 느꼈다. 6시에 도쿄타워를 내려와 야마노테센을 타고 시부야로 출근을 했다.
다시 찾은 도쿄타워
치바현 후나바시의 라라포트에서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서 친구에게 도쿄타워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친구는 좋다고 했다. 도쿄타워는 내가 제일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장소이다'라기 보다는 '장소가 되었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도쿄에 와서 사람들을 하나둘 알게되고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이런 대화가 한번씩 흘러가게 된다.
[도쿄에 온 이후로 여행은 많이 다녔어?]
[응. 처음에 왔을 때 자전거로 많이 돌아다녔지.]
[어디가 제일 좋았어?] 혹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야?]
[글쎄... 도쿄타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애.]
제일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 속에 스쳐지나가는 인상깊은 곳이 도쿄타워 밖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 깊게 생각해보고 대답했더라면 다른 장소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그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 이후 다시 그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 '도쿄타워'라고 대답을 한다. 이걸 습관이라고 해야되는 건지.
그런데 도쿄타워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말해오다 보니 신기하게 점점 더 도쿄타워에 애착이 가는 것이다. 애착이 가면서 아끼는 장소로 삼고 싶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한가지 더 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어 올 경우 습관처럼 '포레스트 검프'라고 대답을 한다.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들 중 한편이었을 뿐인데, 처음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대답한 이후로 쭉 그 영화만 답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애착이 가게 되고 지금은 너무나도 아끼는 영화가 되었다.
연인에게 습관처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쿄타워를 좋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내가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도쿄타워다. 도쿄타워를 바라 보는 것도 좋고,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보이는 도쿄의 풍경도 좋다. 간혹 일본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도쿄타워에 올라가면 도쿄타워가 보이지 않으니까 안좋지 않냐고. 확실히 도쿄타워가 보이지 않는 도쿄의 풍경은 조금 뭔가 허전하지만, 그래도 도쿄타워에 올라와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생일날 도쿄타워에 찾아갔기 때문에 대전망대까지 무료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생일에 도쿄타워를 찾아가면 무료입장권과 케익교환권을 준다. 이건 도쿄가 주는 선물이다. 얼마나 좋은 생일 선물인가!
4시에 올라가니 해질 무렵의 도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멋지다. ‘멋지다’보다는 ‘아름답다’에 더 가까운 표현을 쓰고 싶은데 적절한 단어를 모르겠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도쿄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니나다를까 도쿄타워의 전망대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밑에서 선물로 받은 티켓으로 케익을 교환하고 커피를 사서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깜깜해졌다. 아름다운 도쿄의 야경이었다. 도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동안의 내가 열심히 움직였던 흔적들이 보이는 것만 같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전차에 몸을 싣고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도쿄타워에 올라서서 도쿄를 감상하니까 도쿄타워가 더욱 좋아진다. 그래서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오자고. 그때는 아직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는 특별전망대까지 올라가자고! 생일에 도쿄타워를 찾아온 것은 무척 좋은 일이었다. 안에서 필요로 하는 감정을 느꼈다. 6시에 도쿄타워를 내려와 야마노테센을 타고 시부야로 출근을 했다.
라라포트 도쿄베이 Lalaport Tokyo-Bay
2011년 1월 18일
라라포트 도쿄베이 Lalaport Tokyo-Bay
처음으로 찾아가 본 라라포트 도쿄베이. 라라포트는 TV의 맛집 프로그램 같은 곳에 자주 나와서 알게되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었다. 1981년에 지은 쇼핑센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엄청난 규모의 초대형 쇼핑몰이다. 약 540여개의 매장에 주차대수만 8,200대다. 연간 방문객은 2400만명(2006년)이며, 매장 면적이 전국 1위 였지만 2008년 사이타마 이온몰레이크타운이 오픈하면서 현재는 2위다. (위키피디아 참조) JR케이요센京葉線 미나미후나바시南船橋역에 위치해 있다. 카사이 린카이코엔 이후 치바현 방면으로는 가장 멀리 가보았다.
역시 1월이라 세일이 한창이었는데 세일 막바지 시즌이라 그런지 90%라고 내건 가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쇼핑을 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기 때문에 돌아보지는 않았다. 만약 돌아본다고 마음먹는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이다.
라라포트 도쿄베이 Lalaport Tokyo-Bay
처음으로 찾아가 본 라라포트 도쿄베이. 라라포트는 TV의 맛집 프로그램 같은 곳에 자주 나와서 알게되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었다. 1981년에 지은 쇼핑센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엄청난 규모의 초대형 쇼핑몰이다. 약 540여개의 매장에 주차대수만 8,200대다. 연간 방문객은 2400만명(2006년)이며, 매장 면적이 전국 1위 였지만 2008년 사이타마 이온몰레이크타운이 오픈하면서 현재는 2위다. (위키피디아 참조) JR케이요센京葉線 미나미후나바시南船橋역에 위치해 있다. 카사이 린카이코엔 이후 치바현 방면으로는 가장 멀리 가보았다.
역시 1월이라 세일이 한창이었는데 세일 막바지 시즌이라 그런지 90%라고 내건 가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쇼핑을 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기 때문에 돌아보지는 않았다. 만약 돌아본다고 마음먹는다면 하루 종일 걸릴 것이다.
시부야의 맛있는 라면집, 金伝丸 킨덴마루
2011년 1월 16일
시부야의 맛있는 라면집, 金伝丸 킨덴마루
마감 일이 늦으면 11시 20분 빠르면 10시 50분 정도에 끝나는데, 빨리 끝나는 날이면 늘 동료들끼리 같이 야식을 먹으러 간다. 오늘도 일을 빨리 끝내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시부야 센타가이로 라면을 먹으러 갔다.입맛이 까다로운 친구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라면집이다. 센타가이 입구에서 가까이에 있는 킨덴마루다金伝丸. 다들 자판기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각자 먹을 메뉴를 주문했다. 난 이번에도 가장 좋아하는 돈코츠 라면을 주문했다. 가격은 850엔~980엔. 밥은 공짜로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20일 정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서 지금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소중하게 생각되어 진다. 동료들과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가는 일조차도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라면을 먹으면서 친구들이 한국에 돌아간 뒤의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봐 주었다.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에 여행가면 가이드 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올 때 꼭 연락해.
시부야의 맛있는 라면집, 金伝丸 킨덴마루
마감 일이 늦으면 11시 20분 빠르면 10시 50분 정도에 끝나는데, 빨리 끝나는 날이면 늘 동료들끼리 같이 야식을 먹으러 간다. 오늘도 일을 빨리 끝내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시부야 센타가이로 라면을 먹으러 갔다.입맛이 까다로운 친구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라면집이다. 센타가이 입구에서 가까이에 있는 킨덴마루다金伝丸. 다들 자판기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각자 먹을 메뉴를 주문했다. 난 이번에도 가장 좋아하는 돈코츠 라면을 주문했다. 가격은 850엔~980엔. 밥은 공짜로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20일 정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서 지금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소중하게 생각되어 진다. 동료들과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가는 일조차도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라면을 먹으면서 친구들이 한국에 돌아간 뒤의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봐 주었다.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에 여행가면 가이드 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올 때 꼭 연락해.
하코네 여행 箱根
2011년 1월 13일
하코네 여행 箱根
하코네 온천 여행
집 6시 – 신주쿠 – 하코네유모토(8시반) – 하코네등산철도 – 고라역強羅 – 고라공원強羅公園 – 케이블카 – 소운잔祖運算 – 로프웨이 – 오와쿠다니大涌谷(12시 반) – 로프웨이 – 도겐다이桃源台 - 하코네 해적선 – 모토하코네元箱根(1시반) – 하코네등산버스 – 조각의숲미술관彫刻の森美術館(3시) – 하코네등산철도 – 하코네유모토 – 텐잔天山온천 – 하코네유모토(9시 반) – 신주쿠 (11시반) – 집 12시 도착
처음에는 온천 여행이 가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나다군과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이나다군에게 같이 온천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괜찮으면 같이 당일치기로 함께 온천이라도 다녀오지 않을래?]
[좋아. 어디로 갈까?]
[하코네는 어때? 요전에 와타나베상이 추천해 준 온천도 있고]
[하코네 좋지]
갑작스럽게 온천 일정을 잡고 바로 이틀 후인 1월 13일에 출발을 했다.
홋카이도를 다녀온 이후로 오랜만에 멀리까지 가는 여행이었다. 약 한 달 만이다. 이나다군과는 예전부터 꼭 같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 9개월 동안 같은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였는데도 지금까지 같이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은 게 신기하다. 이나다군과 나는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다. 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서로 닮았다는 걸 느낀다. 먼저 2010년 4월, 지금의 숙소에서 같이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날 방을 보러 가서 난 그날 입주를 하고 이나다군을 일주일 후에 입주했다. 거의 동시에 카페 아인소프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같이 일하다가 얼마 전 12월 달에 함께 그만두었다. 태어난 해는 둘 다 1988년으로 내가 1월 생이고, 이나다군이 2월 생이다. 나에게는 한 살 위의 형이 있고, 이나다군에게는 세 살 위의 형이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인생관이 닮았다는 걸 처음 대화할 때 느꼈다. 한국도 아닌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룸메이트,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공통점이 너무도 많다.
1월 13일,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난 평소 여행을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이나다군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면 둘 다 늦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각자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집을 나선 시각은 6시였다. JR야마노테센을 타고서 신주쿠까지 가서 오다큐小田急전철 오다와라小田原급행으로 갈아탔다. 오다와라에서 다시 한번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행으로 갈아타고 약 15분 후 목적지 하코네에 도착하였다. 그 때까지 여행의 코스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코네유모토역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여러가지 지도와 팜플렛, 할인 입장권 등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기로 했다. 관광안내소에서 한참 동안이나 앉아 고민을 했다. 하코네 가까이에 있는 (일본 최대규모라고 하는)고텐바 아울렛을 가볼까, 하코네 일주를 하는 것이 좋을까, 온천을 하러 왔으니 온천을 두세 군데 돌아다닐까. 결국 의견은 하코네 일주를 하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역에 들어가 하코네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프리패스를 구입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애초 신주쿠역에서 구입했으면 더 저렴했을 것이다
하코네 프리패스, 하코네유모토에서 구입해서 3,900엔이었다. 등산철도, 케이블카, 로프웨이, 해적선, 등산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코네를 일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코네유모토역에서 고라強羅역까지 가는 데에는 하코네등산철도를 이용하게 된다. 처음으로 등산철도라는 것을 타보았다. 빨간색 기차는 덜컹덜컹 거리면서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갔다. 달린다는 표현보다는 느릿느릿 기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차였다. 점점 높은 곳으로 갈수록 창 밖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보인다. 짧은 터널과 긴 터널을 몇번씩이고 통과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외국인이 많았는데 다들 경치를 구경하느라 창 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도 있었다. 등산철도의 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걸어서 산을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기차를 타고서 산을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하코네의 등산철도
정말 멋진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열차이다.
고라역에 도착해서 근처에 있는 고라코엔強羅公園을 구경했다. 겨울의 공원은 무척 쓸쓸했다. 공원을 찾은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프리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일부러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입장료가 500엔이라고 써있던데]
[정말? 설마!]
[아까 들어오면서 봤어]
[아마 500엔을 주고 들어왔더라면 눈물이 났을거야]
간단히 둘러보고만 나왔다. 나오면서도 500엔이라는 입장료는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무료로 개방하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찾아와서 그렇게까지 쓸쓸하지는 않을텐데. 비싼 입장료가 있어서 주위 사람들도 찾지 않는 공원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다. 물론 날이 추웠던 이유도 있다.
고라역으로 돌아와서 맛있는 단고를 사먹었다. 시식을 할 수 있어서 종류별로 전부 먹어보고 나는 사쿠라(벚꽃)를 사서 먹고 이나다군은 고마(깨)를 사서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단고는 처음 먹어봤다. 이나다군은 맛있어 보이는 것을 왠만하면 사먹는 편이었다. 여행에서 먹는 걸 중요하는 걸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그 지역에서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면 꼭 먹었다. 그 점이 나랑 다른 점이었다. 나는 먹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쪽이다.
맛있는 단고를 먹은 뒤에 하코네 케이블카箱根ケーブルーカ에 탑승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에는 케이블카와 로프웨이가 정말 많이 설치되어있다. 처음에는 자연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만도 않다. 자연에 부정적인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진실이지만 사람에게 편리한 시설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더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난개발이 되지 않는 선에서 편리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는 볼거리가 없었다. 소운잔에 도착해서 로프웨이로 갈아타고서야 아름다운 경치가 보였다. 로프웨이를 타고서 오와쿠다니까지 갔다. 오와쿠다니는 홋카이도에서 갔었던 지코쿠다니와 비슷한 곳이었다.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케 했다. 지옥을 보지도 가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온 수많은 매체에 학습되어 온 탓일 것이다.
오와쿠다니의 명물이라는 구로다마고黒玉子를 먹는 것에 기대가 컸다. 1개를 먹으면 수명이 7년이 늘어난다는 소문 때문이다. 검은 달걀이면 도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서 먹어보니 껍질만 검은색이고 안은 흰색으로 보통 달걀과 같았다.
[뭐야 이거, 안은 그냥 흰색이잖아. 속까지 검은 색인 줄 알았네.]
[응, 속았네.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맛은 어때? 맛있는 것 같아?]
[음.. 글쎄.. 보통 계란보다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설마. 기분 탓 아냐? 気のせいじゃない?]
그렇게 명물 검정달걀에 조금 실망을 한 뒤에 오와쿠다니를 좀 더 둘러보고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도겐다이桃源台까지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원래 후지산이 보인다고 하지만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후지산은 날씨가 맑은 날 도쿄에서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지산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잘 보였으면 한다.
도겐다이桃源台에 도착하니 다음 출발하는 해적선이 12시 40분 출발이었다. 30분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서 건물 안에 있는 기념품가게お土産에 들어가 시간을 때웠다.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종류의 오미야게를 시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마침 슬슬 배가 고파왔던 참이라 이것저것 많이 집어먹었다. 이나다군도 같은 말을 했지만 먹는 것마다 전부 맛있었다. 나는 참깨가 묻혀진 떡을 오미야게로 구입하고, 이나다군은 미역 센베이를 샀다.
닛코의 유람선에 이은 두번째 유람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적선이다. 이나다군과 계속 해적선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왜 도대체 컨셉을 해적선으로 한 것일까에 대해서. 하지만 둘 다 결국 아무 해답도 내리지 못했다. 단순한 일반 유람선보다는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해적선으로 한 걸까. 그러기엔 너무 단순하다. 나도 이나다군도 그렇게 하코네의 아시노코라는 호수에는 어울리는 컨셉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를 했다. 너무 뜬금없다. 하지만 해적선에 올라타서는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도 잊은 채 해적선에서 사진을 찍는 재미에 빠졌다. 후크선장의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역시나 배를 타는 건 즐겁다. 마음 깊은 곳까지 상쾌해진다. 배의 갑판 위에서 음악을 듣고 서있으면 눈물이 난다.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미소가 번진다. 이번에는 레이카가 추천해 준 the high-lows의 日曜日のよりの使者를 들었다. 그 곡을 듣고서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이나다군에게도 들어보라고 했더니 친구도 무척 좋아했다. 「これやばい」
해적선에서 내린 곳은 元箱根모토하코네라는 곳으로 매우 역사가 깊은 동네라고 한다. 보기에도 그런 동네처럼 보였다.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전부 우동과 소바가게 뿐이었다. 일본은 관광지마다 우동과 소바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해서 사먹기가 좀 그렇다. 소바 맛을 잘 모르는 나 같은 경우는 도쿄에 널려있는 소바가게에서 먹는 300엔짜리 소바도 맛있다. 그러고보니 작년 여름에 소바를 참 많이 먹었었지…오로시소바가 진짜 맛있었지…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오므라이스 가게를 발견했다. 980엔으로 적정한 가격에 나도 이나다군도 좋아하는 취향이었기 때문에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가게의 아주머니께서 정말 친절한 분이셨다. 도쿄의 친절함과는 또 달랐다. 그걸 이나다군에게 말하니 그게 일본 시골의 친절함이라고 말해주었다. 일본에 처음 온 날부터 돌아가기 얼마 안 남은 이 날까지 변함없이 느끼는 것은 일본 사람의 친절함이다. 친절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것이다.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나도 되고 싶다.
점심을 먹고 나서의 일정은 조금 흐릿했다. 하코네 일주를 거의 마쳐가는데 그 다음으로 어디를 갈지 정하는 게 어려웠다. 저녁에 온천에 들어갈 예정이 있으므로 그 전까지 갈 곳을 정해야 했다. 가장 유력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고텐바 아울렛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 곳에 가기위해 고라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고라에 도착해서 고텐바 아울렛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계획을 급변경했다. 아울렛은 도쿄에도 많이 있으니 다른 곳을 가자고. 이곳 고라에서 가까이에 있는 조각의 숲을 가는건 어떠냐고. 좋다고. 해서 계획을 바꿔 조각의 숲으로 갔다.
(4) 조각의 숲 미술관 彫刻の森美術館
멋진 조각들이 많이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각들도 많았고, 웃긴 조각들도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조각 공원을 찾아간 적이 있던가. 아마 없는 것 같다. 제주도에 갔을 때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왠지 그 때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조각이라는 것이 매우 매력적인 예술품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나다군도 그렇게 말했다. 둘 다 함께 조각을 구경하면서 스바라시이 素晴らしい(대단하다) 를 계속 말했다. 그 중에는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가고 싶은 조각품들도 있었고, 계속 보고 있으면 쓸쓸해지는 조각품들도 있었다. 회화 예술보다는 조금 더 알기 쉬웠던 것 같다.
(하코네 프리패스와 학생증을 제시하니 1000엔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 입장료는 1600엔. 한국의 학생증이어도 괜찮다.)
조각의 숲은 굉장히 넓었다. 3시 10분에 입장을 해서 서둘러 구경을 했는데도 폐관 시간인 5시에 겨우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구경 끝 무렵에는 아시유足湯 (족욕탕, 발만 담그는 온천)에 발을 담그고 발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각의 숲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멋진 조각품들이 아직도 머리에 그려질 정도로 정말 좋았다. 폐관을 알리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조각의 숲 미술관을 나갔다.
조각의 숲 미술관을 떠나는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 이건 뭔가, 이렇게 영화다울 수 있는 건가. 눈 내리는 풍경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눈이 내린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산마을에 눈이 내리고, 길 건너편 소바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우린 눈 내리는 조용한 역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마시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하행선 등산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풍경이 영화같지 않냐고 이나다군에게 말하니 그저 웃는다.
밤 중의 등산철도의 기차는 아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고요한 분위기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다들 하코네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알고 싶어진다. 하코네유모토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 텐잔 온천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텐잔天山온천이다. 이번주 월요일에 카페의 와타나베상이 텐잔온천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꼭 가보라고 권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근하는 그 날 월요일 아침,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날씨도 추운데 하코네로 온천이라도 다녀올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상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온천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온천에 다녀오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바로 이나다군에게 연락을 해 같이 온천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결국 이렇게 3일만에 텐잔 온천에 오게 되었다.
(5) 텐잔온천天山
텐잔온천은 정말 훌륭한 온천이었다. 모든 시설이 야외의 노천탕으로 되어있는데, 물의 온도도 다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탕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우나도 한 곳이 있다. 왜 그렇게 와타나베상이 추천을 해 줬는지 알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에 얼굴만 내밀고 몸을 뜨거운 탕 안에 집어 넣고 녹이고 있으니 그 날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린다. 온천이란 이런 것이구나. 올 겨울 일본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온천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나다군과 하루 종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둘이 온천에 들어가서는 더 많이 이야기했다. 가족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한국과 일본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 진작에 이나다군과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많이 나눴더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갈 즈음에서 그 즐거움을 깨닫고 만다. 이나다군과는 평생을 친구로 남고 싶다. 사는 나라는 비록 다를지라도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이나다군은 일본에서 서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응원을 해준다. 이나다군에게 반드시 한국에 놀러 오라고 했다. 해야 할 공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을 소개시켜 줄 테니. 좋은 친구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사실을 온천에 앉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온천욕으로 몸이 따뜻하게 데워져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환승을 해서 2시간 반에 걸쳐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참, 돌아오기 전에 라면가게에 들려 라면을 맛잇게 먹었다. 행복했다. 하코네 여행기 끝.
하코네 여행 箱根
하코네 온천 여행
집 6시 – 신주쿠 – 하코네유모토(8시반) – 하코네등산철도 – 고라역強羅 – 고라공원強羅公園 – 케이블카 – 소운잔祖運算 – 로프웨이 – 오와쿠다니大涌谷(12시 반) – 로프웨이 – 도겐다이桃源台 - 하코네 해적선 – 모토하코네元箱根(1시반) – 하코네등산버스 – 조각의숲미술관彫刻の森美術館(3시) – 하코네등산철도 – 하코네유모토 – 텐잔天山온천 – 하코네유모토(9시 반) – 신주쿠 (11시반) – 집 12시 도착
처음에는 온천 여행이 가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나다군과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이나다군에게 같이 온천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괜찮으면 같이 당일치기로 함께 온천이라도 다녀오지 않을래?]
[좋아. 어디로 갈까?]
[하코네는 어때? 요전에 와타나베상이 추천해 준 온천도 있고]
[하코네 좋지]
갑작스럽게 온천 일정을 잡고 바로 이틀 후인 1월 13일에 출발을 했다.
홋카이도를 다녀온 이후로 오랜만에 멀리까지 가는 여행이었다. 약 한 달 만이다. 이나다군과는 예전부터 꼭 같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 9개월 동안 같은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였는데도 지금까지 같이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은 게 신기하다. 이나다군과 나는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다. 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서로 닮았다는 걸 느낀다. 먼저 2010년 4월, 지금의 숙소에서 같이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날 방을 보러 가서 난 그날 입주를 하고 이나다군을 일주일 후에 입주했다. 거의 동시에 카페 아인소프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같이 일하다가 얼마 전 12월 달에 함께 그만두었다. 태어난 해는 둘 다 1988년으로 내가 1월 생이고, 이나다군이 2월 생이다. 나에게는 한 살 위의 형이 있고, 이나다군에게는 세 살 위의 형이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인생관이 닮았다는 걸 처음 대화할 때 느꼈다. 한국도 아닌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룸메이트,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공통점이 너무도 많다.
1월 13일,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난 평소 여행을 가는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이나다군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면 둘 다 늦게까지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각자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집을 나선 시각은 6시였다. JR야마노테센을 타고서 신주쿠까지 가서 오다큐小田急전철 오다와라小田原급행으로 갈아탔다. 오다와라에서 다시 한번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행으로 갈아타고 약 15분 후 목적지 하코네에 도착하였다. 그 때까지 여행의 코스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코네유모토역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여러가지 지도와 팜플렛, 할인 입장권 등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기로 했다. 관광안내소에서 한참 동안이나 앉아 고민을 했다. 하코네 가까이에 있는 (일본 최대규모라고 하는)고텐바 아울렛을 가볼까, 하코네 일주를 하는 것이 좋을까, 온천을 하러 왔으니 온천을 두세 군데 돌아다닐까. 결국 의견은 하코네 일주를 하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역에 들어가 하코네 프리패스를 구입했다. 프리패스를 구입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다. 애초 신주쿠역에서 구입했으면 더 저렴했을 것이다
하코네 프리패스, 하코네유모토에서 구입해서 3,900엔이었다. 등산철도, 케이블카, 로프웨이, 해적선, 등산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코네를 일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코네유모토역에서 고라強羅역까지 가는 데에는 하코네등산철도를 이용하게 된다. 처음으로 등산철도라는 것을 타보았다. 빨간색 기차는 덜컹덜컹 거리면서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갔다. 달린다는 표현보다는 느릿느릿 기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차였다. 점점 높은 곳으로 갈수록 창 밖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보인다. 짧은 터널과 긴 터널을 몇번씩이고 통과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외국인이 많았는데 다들 경치를 구경하느라 창 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도 있었다. 등산철도의 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걸어서 산을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기차를 타고서 산을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하코네의 등산철도
정말 멋진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열차이다.
고라역에 도착해서 근처에 있는 고라코엔強羅公園을 구경했다. 겨울의 공원은 무척 쓸쓸했다. 공원을 찾은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프리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일부러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입장료가 500엔이라고 써있던데]
[정말? 설마!]
[아까 들어오면서 봤어]
[아마 500엔을 주고 들어왔더라면 눈물이 났을거야]
간단히 둘러보고만 나왔다. 나오면서도 500엔이라는 입장료는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무료로 개방하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찾아와서 그렇게까지 쓸쓸하지는 않을텐데. 비싼 입장료가 있어서 주위 사람들도 찾지 않는 공원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다. 물론 날이 추웠던 이유도 있다.
고라역으로 돌아와서 맛있는 단고를 사먹었다. 시식을 할 수 있어서 종류별로 전부 먹어보고 나는 사쿠라(벚꽃)를 사서 먹고 이나다군은 고마(깨)를 사서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단고는 처음 먹어봤다. 이나다군은 맛있어 보이는 것을 왠만하면 사먹는 편이었다. 여행에서 먹는 걸 중요하는 걸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그 지역에서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면 꼭 먹었다. 그 점이 나랑 다른 점이었다. 나는 먹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쪽이다.
맛있는 단고를 먹은 뒤에 하코네 케이블카箱根ケーブルーカ에 탑승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에는 케이블카와 로프웨이가 정말 많이 설치되어있다. 처음에는 자연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만도 않다. 자연에 부정적인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진실이지만 사람에게 편리한 시설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되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더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난개발이 되지 않는 선에서 편리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는 볼거리가 없었다. 소운잔에 도착해서 로프웨이로 갈아타고서야 아름다운 경치가 보였다. 로프웨이를 타고서 오와쿠다니까지 갔다. 오와쿠다니는 홋카이도에서 갔었던 지코쿠다니와 비슷한 곳이었다.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케 했다. 지옥을 보지도 가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온 수많은 매체에 학습되어 온 탓일 것이다.
오와쿠다니의 명물이라는 구로다마고黒玉子를 먹는 것에 기대가 컸다. 1개를 먹으면 수명이 7년이 늘어난다는 소문 때문이다. 검은 달걀이면 도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서 먹어보니 껍질만 검은색이고 안은 흰색으로 보통 달걀과 같았다.
[뭐야 이거, 안은 그냥 흰색이잖아. 속까지 검은 색인 줄 알았네.]
[응, 속았네.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맛은 어때? 맛있는 것 같아?]
[음.. 글쎄.. 보통 계란보다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설마. 기분 탓 아냐? 気のせいじゃない?]
그렇게 명물 검정달걀에 조금 실망을 한 뒤에 오와쿠다니를 좀 더 둘러보고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도겐다이桃源台까지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원래 후지산이 보인다고 하지만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후지산은 날씨가 맑은 날 도쿄에서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지산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잘 보였으면 한다.
도겐다이桃源台에 도착하니 다음 출발하는 해적선이 12시 40분 출발이었다. 30분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서 건물 안에 있는 기념품가게お土産에 들어가 시간을 때웠다.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종류의 오미야게를 시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마침 슬슬 배가 고파왔던 참이라 이것저것 많이 집어먹었다. 이나다군도 같은 말을 했지만 먹는 것마다 전부 맛있었다. 나는 참깨가 묻혀진 떡을 오미야게로 구입하고, 이나다군은 미역 센베이를 샀다.
닛코의 유람선에 이은 두번째 유람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적선이다. 이나다군과 계속 해적선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왜 도대체 컨셉을 해적선으로 한 것일까에 대해서. 하지만 둘 다 결국 아무 해답도 내리지 못했다. 단순한 일반 유람선보다는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해적선으로 한 걸까. 그러기엔 너무 단순하다. 나도 이나다군도 그렇게 하코네의 아시노코라는 호수에는 어울리는 컨셉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를 했다. 너무 뜬금없다. 하지만 해적선에 올라타서는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도 잊은 채 해적선에서 사진을 찍는 재미에 빠졌다. 후크선장의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역시나 배를 타는 건 즐겁다. 마음 깊은 곳까지 상쾌해진다. 배의 갑판 위에서 음악을 듣고 서있으면 눈물이 난다.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미소가 번진다. 이번에는 레이카가 추천해 준 the high-lows의 日曜日のよりの使者를 들었다. 그 곡을 듣고서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이나다군에게도 들어보라고 했더니 친구도 무척 좋아했다. 「これやばい」
해적선에서 내린 곳은 元箱根모토하코네라는 곳으로 매우 역사가 깊은 동네라고 한다. 보기에도 그런 동네처럼 보였다.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전부 우동과 소바가게 뿐이었다. 일본은 관광지마다 우동과 소바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비싸기까지 해서 사먹기가 좀 그렇다. 소바 맛을 잘 모르는 나 같은 경우는 도쿄에 널려있는 소바가게에서 먹는 300엔짜리 소바도 맛있다. 그러고보니 작년 여름에 소바를 참 많이 먹었었지…오로시소바가 진짜 맛있었지…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오므라이스 가게를 발견했다. 980엔으로 적정한 가격에 나도 이나다군도 좋아하는 취향이었기 때문에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가게의 아주머니께서 정말 친절한 분이셨다. 도쿄의 친절함과는 또 달랐다. 그걸 이나다군에게 말하니 그게 일본 시골의 친절함이라고 말해주었다. 일본에 처음 온 날부터 돌아가기 얼마 안 남은 이 날까지 변함없이 느끼는 것은 일본 사람의 친절함이다. 친절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것이다.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나도 되고 싶다.
점심을 먹고 나서의 일정은 조금 흐릿했다. 하코네 일주를 거의 마쳐가는데 그 다음으로 어디를 갈지 정하는 게 어려웠다. 저녁에 온천에 들어갈 예정이 있으므로 그 전까지 갈 곳을 정해야 했다. 가장 유력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고텐바 아울렛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 곳에 가기위해 고라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고라에 도착해서 고텐바 아울렛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계획을 급변경했다. 아울렛은 도쿄에도 많이 있으니 다른 곳을 가자고. 이곳 고라에서 가까이에 있는 조각의 숲을 가는건 어떠냐고. 좋다고. 해서 계획을 바꿔 조각의 숲으로 갔다.
(4) 조각의 숲 미술관 彫刻の森美術館
멋진 조각들이 많이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조각들도 많았고, 웃긴 조각들도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조각 공원을 찾아간 적이 있던가. 아마 없는 것 같다. 제주도에 갔을 때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왠지 그 때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조각이라는 것이 매우 매력적인 예술품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나다군도 그렇게 말했다. 둘 다 함께 조각을 구경하면서 스바라시이 素晴らしい(대단하다) 를 계속 말했다. 그 중에는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가고 싶은 조각품들도 있었고, 계속 보고 있으면 쓸쓸해지는 조각품들도 있었다. 회화 예술보다는 조금 더 알기 쉬웠던 것 같다.
(하코네 프리패스와 학생증을 제시하니 1000엔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 입장료는 1600엔. 한국의 학생증이어도 괜찮다.)
조각의 숲은 굉장히 넓었다. 3시 10분에 입장을 해서 서둘러 구경을 했는데도 폐관 시간인 5시에 겨우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구경 끝 무렵에는 아시유足湯 (족욕탕, 발만 담그는 온천)에 발을 담그고 발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각의 숲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멋진 조각품들이 아직도 머리에 그려질 정도로 정말 좋았다. 폐관을 알리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조각의 숲 미술관을 나갔다.
조각의 숲 미술관을 떠나는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 이건 뭔가, 이렇게 영화다울 수 있는 건가. 눈 내리는 풍경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눈이 내린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산마을에 눈이 내리고, 길 건너편 소바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우린 눈 내리는 조용한 역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마시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하행선 등산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풍경이 영화같지 않냐고 이나다군에게 말하니 그저 웃는다.
밤 중의 등산철도의 기차는 아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고요한 분위기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다들 하코네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알고 싶어진다. 하코네유모토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 텐잔 온천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텐잔天山온천이다. 이번주 월요일에 카페의 와타나베상이 텐잔온천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꼭 가보라고 권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근하는 그 날 월요일 아침,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날씨도 추운데 하코네로 온천이라도 다녀올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상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온천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온천에 다녀오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바로 이나다군에게 연락을 해 같이 온천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결국 이렇게 3일만에 텐잔 온천에 오게 되었다.
(5) 텐잔온천天山
텐잔온천은 정말 훌륭한 온천이었다. 모든 시설이 야외의 노천탕으로 되어있는데, 물의 온도도 다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탕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우나도 한 곳이 있다. 왜 그렇게 와타나베상이 추천을 해 줬는지 알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에 얼굴만 내밀고 몸을 뜨거운 탕 안에 집어 넣고 녹이고 있으니 그 날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린다. 온천이란 이런 것이구나. 올 겨울 일본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온천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나다군과 하루 종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둘이 온천에 들어가서는 더 많이 이야기했다. 가족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한국과 일본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 진작에 이나다군과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많이 나눴더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갈 즈음에서 그 즐거움을 깨닫고 만다. 이나다군과는 평생을 친구로 남고 싶다. 사는 나라는 비록 다를지라도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이나다군은 일본에서 서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응원을 해준다. 이나다군에게 반드시 한국에 놀러 오라고 했다. 해야 할 공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을 소개시켜 줄 테니. 좋은 친구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사실을 온천에 앉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온천욕으로 몸이 따뜻하게 데워져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환승을 해서 2시간 반에 걸쳐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참, 돌아오기 전에 라면가게에 들려 라면을 맛잇게 먹었다. 행복했다. 하코네 여행기 끝.
葛西臨海公園 카사이 린카이 코우엔 (카사이 임해 공원)
2011년 1월 6일
葛西臨海公園 카사이 린카이 코우엔 (카사이 임해 공원)
에도가와구에 있는 카사이 린카이 공원을 다녀왔다. 얼마전부터 수족관에 가보고 싶어서 도쿄에 있는 수족관을 조사해 봤었다. 조사하던 중 저렴하면서도 좋은 수족관을 발견했는데 바로 카사이 린카이 공원 안에 있는 수족관이었다. 일본인 스쿠버다이버의 홈페이지에서 처음에 발견했을 때 필자의 추천하는 수족관이라고 했는데, 그 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을 때는 한국 사람들의 평은 그저 그랬다. 그래서 일단은 큰 기대는 접어두고 출발.
수족관 관람 목적의 외출이기도 했고, 오늘은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서 책을 읽을 생각으로 소설 책도 챙겨갔다.
언제나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하는 거라면, 조용히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전차를 타고 출발했다. 카사이린카이코엔 역에 도착하니 9시 15분 정도였는데 곧장 수족관으로 향했다. 수족관은 아직 개관하지 않았다. 9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문을 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입장을 했다. 역시 이른 아침에 오는 수족관은 정말 한산했다. 기분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카사이린카이코엔 역 바로 다음 역이 디즈니랜드인데 디즈니랜드에는 지금 이 시간쯤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수족관의 건물 쪽으로 연결되어있는 길을 따라가자 서서히 수족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족관의 입구는 거대한 조형물로 되어있다. 조형물이라기 보다는 반원 형태의 유리 건물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봤을 때와는 역시 다르다. 멋진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또 그 건물의 멋에 한동안 빠지고 말았다. 투명한 유리 건물이 아침 햇살을 받아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정작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주위의 인테리어였다. 처음 올라갔을 때 바다 한가운데로 와있는 느낌을 받았다. 수족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외관 디자인에 넋을 잃고 말았다. 키타구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도 가장 처음 반한 것은 외관 디자인이었다. 어떻게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있을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때와 똑같이 반하고 말았다. 바로 뒤로는 진짜 바다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도쿄의 시가지가 또 그 반대쪽으로는 디즈니랜드 건물들이 보인다. 입구를 들어오고 나서 30분이 지나도록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아직 수족관을 둘러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아졌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온 것에 대해 만족했다.
수족관의 뒤편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천막이 있었는데 마치 바람을 신나게 가로지르는 보트의 돛 같았다.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구조물들이 있는데, 분명 그것들 중 하나였다.
날씨는 겨울 답지 않게 햇볕이 따뜻하고, 바다 답지 않게 바람도 차지 않았다.
葛西臨海公園 카사이 린카이 코우엔 (카사이 임해 공원)
에도가와구에 있는 카사이 린카이 공원을 다녀왔다. 얼마전부터 수족관에 가보고 싶어서 도쿄에 있는 수족관을 조사해 봤었다. 조사하던 중 저렴하면서도 좋은 수족관을 발견했는데 바로 카사이 린카이 공원 안에 있는 수족관이었다. 일본인 스쿠버다이버의 홈페이지에서 처음에 발견했을 때 필자의 추천하는 수족관이라고 했는데, 그 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을 때는 한국 사람들의 평은 그저 그랬다. 그래서 일단은 큰 기대는 접어두고 출발.
수족관 관람 목적의 외출이기도 했고, 오늘은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서 책을 읽을 생각으로 소설 책도 챙겨갔다.
언제나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하는 거라면, 조용히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전차를 타고 출발했다. 카사이린카이코엔 역에 도착하니 9시 15분 정도였는데 곧장 수족관으로 향했다. 수족관은 아직 개관하지 않았다. 9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문을 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입장을 했다. 역시 이른 아침에 오는 수족관은 정말 한산했다. 기분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카사이린카이코엔 역 바로 다음 역이 디즈니랜드인데 디즈니랜드에는 지금 이 시간쯤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수족관의 건물 쪽으로 연결되어있는 길을 따라가자 서서히 수족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족관의 입구는 거대한 조형물로 되어있다. 조형물이라기 보다는 반원 형태의 유리 건물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봤을 때와는 역시 다르다. 멋진 건축물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또 그 건물의 멋에 한동안 빠지고 말았다. 투명한 유리 건물이 아침 햇살을 받아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정작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주위의 인테리어였다. 처음 올라갔을 때 바다 한가운데로 와있는 느낌을 받았다. 수족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외관 디자인에 넋을 잃고 말았다. 키타구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도 가장 처음 반한 것은 외관 디자인이었다. 어떻게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있을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때와 똑같이 반하고 말았다. 바로 뒤로는 진짜 바다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도쿄의 시가지가 또 그 반대쪽으로는 디즈니랜드 건물들이 보인다. 입구를 들어오고 나서 30분이 지나도록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아직 수족관을 둘러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아졌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온 것에 대해 만족했다.
수족관의 뒤편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천막이 있었는데 마치 바람을 신나게 가로지르는 보트의 돛 같았다.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구조물들이 있는데, 분명 그것들 중 하나였다.
날씨는 겨울 답지 않게 햇볕이 따뜻하고, 바다 답지 않게 바람도 차지 않았다.
수영시작 - 신주쿠 스포츠 센터
2011년 1월 5일
수영 시작
일본 올 때 가져온 수영복을 오늘에서야 입게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서야 수영복을 꺼내 입게 되어 유감스럽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남은 한 달은 수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보낼 생각이다. 처음에는 집 근처 가까운 스가모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해서 한달 열심히 다니려고 했는데, 오늘 직접 가서 알아보니 지금 입회 신청을 하면 수속 과정을 거쳐 한 달 뒤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일본은 까다롭다.(좋게 말하면 '철저하다')
그래서 결국은 도쿄에 수영장이 많이 있으니까 여러 수영장을 돌아다니면서 수영장 구경도 할 생각으로 하루하루 이용권을 끊어 이용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수영을 시작하기로 한 오늘, 처음으로 간 곳은 신주쿠 스포츠센터의 수영장이다. 다카다노바바역에서 가까워서 가게 되었다.
조사해 본 결과, 도쿄의 수영장의 일회입장권은 거의 400엔이고, 시설이 좋고 국제규격을 갖춘 수영장은 600엔 정도 한다. 거의 모든 수영장이 2시간 정도로 시간 제한이 있지만, 2시간이면 매우 충분한 시간이다.
오늘 갔던 신주쿠 스포츠센터는 시설이 많이 노후되어서 그런지,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25미터 코스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느긋하게 즐겼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그동안 너무 놀기만 해서 자극을 받지 못했던 근육들에게 자극을 좀 줘야겠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특별한 여행 계획은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의 일상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 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영 시작
일본 올 때 가져온 수영복을 오늘에서야 입게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서야 수영복을 꺼내 입게 되어 유감스럽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남은 한 달은 수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보낼 생각이다. 처음에는 집 근처 가까운 스가모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해서 한달 열심히 다니려고 했는데, 오늘 직접 가서 알아보니 지금 입회 신청을 하면 수속 과정을 거쳐 한 달 뒤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일본은 까다롭다.(좋게 말하면 '철저하다')
그래서 결국은 도쿄에 수영장이 많이 있으니까 여러 수영장을 돌아다니면서 수영장 구경도 할 생각으로 하루하루 이용권을 끊어 이용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수영을 시작하기로 한 오늘, 처음으로 간 곳은 신주쿠 스포츠센터의 수영장이다. 다카다노바바역에서 가까워서 가게 되었다.
조사해 본 결과, 도쿄의 수영장의 일회입장권은 거의 400엔이고, 시설이 좋고 국제규격을 갖춘 수영장은 600엔 정도 한다. 거의 모든 수영장이 2시간 정도로 시간 제한이 있지만, 2시간이면 매우 충분한 시간이다.
오늘 갔던 신주쿠 스포츠센터는 시설이 많이 노후되어서 그런지,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25미터 코스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 느긋하게 즐겼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그동안 너무 놀기만 해서 자극을 받지 못했던 근육들에게 자극을 좀 줘야겠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특별한 여행 계획은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의 일상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 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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