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학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이러한 글이 올라와 있다.
"대학 평가에서 좋지 않은 성적은 거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학교의 이사장으로서 자기 학교가 평가를 좋게 못 받았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학교의 지역 내 순위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아온 우리들이다.

바로 며칠 전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대학 교수들 만큼 좋은 직업도 드물지 않을까? 초중등교사에 비해 연봉도 훨씬 높고 매번 방학도 있고 안식년도 있으니 말야" 라는 내용이었는데, 새삼 이렇게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니 교수님들도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업이 물건을 파는 것 처럼 교수님들은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한다. 때문에 정말 학습과 연구에 흥미를 두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직업을 가지면 안되겠다.

이 글을 보면서 파악할 수 있는 숨은 의도 중 하나는 바로 이 글을 모든 학생과 학교 관계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올렸다는 사실이다. 학교의 이사장이라면 충분히 모든 교수들에게 메일과 같은 수단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데도 굳이 공개적으로 올린 이유는 '모두 이 글을 읽어라' 라는 것이다. 즉, 편지 내용에서는 학생들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학생들도 이 글을 보고 좀 느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학생이라면 이 글을 보고 '이번에 학교 평가에서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으니 제발 좀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취업률도 높이고 고시도 많이 패스해서 학교의 이름을 떨쳐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충분할 것 같다. 학생은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종의 고객이기 때문에 학교의 이사장이 학생들을 질타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학교의 이사장은 '학문', '공부', '배움' , '교육' 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모든 걸 경쟁과 평가로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학생은 취업률 0.1%의 오르내림을 좌우하는 대상으로, 교수님들은 연구실적 건수를 올리는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나. 마치 어느 높으신 분이 국민들은 크게 신경쓰지도 않고 있는 국민소득에 그토록 연연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덧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 간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연속 자살 사건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기에 적절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사장의 교수님들에 대한 논문 건수를 올려달라는 부탁으로 대학의 평가가 올라갔을 때,  그것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될 수도 있다. 이 학교 졸업자라는 명패로 서류심사에서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고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다.(학력사회)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1인당 국민 소득이 상승함으로 인해 수혜를 받는 건 역시 국민들이다. 외국에 나가서도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이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는 모습들이 그걸 잘 보여준다. 중국의 국민소득이 점차 상승해지자 명동에서는 중국 관광객들을 잡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뉴스에도 보고 있고 말이다.

참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아이러니라고 쓰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 읽는다. 하지만 이것이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경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있다. 워낙 오래된 유머지만 아이슈타인이 2000년대의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영어와 내신성적의 걸림돌로 인해 대학의 문턱 조차 밟지 못했을 거라는 가슴 아픈 유머도 잘 말해주지 않는가.

자, 이제 비판을 했으면 대안을 내놓을 차례다. 노사관계론을 가르치시는 교수님께서 '대안 없는 비판'이 가장 쓸모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이사장이었다면 교수님들에게 어떤 편지를 썼을까?' '대한민국의 대학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