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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

가장 많이 하는 다짐 중 하나가 글을 열심히 쓰자는 다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펜과 키보드를 잡는 건 어렵다. 또 모든 일에서 그런 것처럼 무언가를 한번 안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또 한 번 하지 않는 건 점점 쉬워진다. 헬스, 공부, 사람 만나기 등등등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발력'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쉽다.(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는 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50%의 준비완료 상태라면, 나머지는 50%는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로 그 행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일단 밥통에 밥이 있으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줄어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도 한결 간단해진다. 밥상에 올릴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반 20분이 되면 동네에 두부장수가 지나가면서 종을 울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분은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맞닿아 있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우린 마음속으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을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6월 말, 내가 써 온 글들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뒤로부터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결정한 방법은 이 곳, 구글 블로거이다.  9월 18일부터 블로그 이사를 시작해서 3주 동안 1,000여개에 가까운 글을 모두 옮겼다. 이것은 정말 큰 작업이었다.

# 글 위주로 옮겼다. 영화, 책 리뷰 / 사진 / 음악 등에 대한 관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2005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의 시간여행을 했다. 나는 정말 수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  내가 작성한 글은 모두 2,000여개가 넘었다. 글들을 나름 분류하기 위해서 모든 글에 각각 태그를 달았다. 내가 가장 많이 이야기 했던 부분은 인생의 느낌 (239) 나에게 하는 말 (209) 관계 (118) 청년의 다짐 (116) 그대에게 하는 말 (107) 그대가 말했다 (102) 그대는 감동 (74) 일본인연 (72) 책이 말하길 (72)...  이다. 많은 걸 느끼며 살아왔고, 그리고 내 자신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항상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그런 인생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 앞으로도 열심히 쓰고 쓸 것이다

완전한 글을 쓰겠다며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지금 가능한 일을 하시오

"완전한 글을 쓰겠다며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지금 가능한 일을 하시오. 그러면 불완전한 그 일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것이니, 그 배움을 바탕으로 다음 일을 하시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며, 어느새 완성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오."

괴테

삶이 편안하면 방심하게 되고, 방심하면 안주하고 방탕해진다.

삶이 편안하면 방심하게 되고, 
방심하면 안주하고 방탕해진다.
편안한 삶에는 성장이 없다.
시련이나 위기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더욱 옹골찬 인간으로 빚어지게 한다.
도자기는 수천도 고온을 견디고 나서야 예쁜 그릇이 된다.
온실 속 화초보다 온갖 위험 속에 자란 야생초가
더 강인하고 생명력이 질기다.
-권근, ‘주옹설’에서

어느 것에도 모험을 걸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The person who risks nothing, does nothing, has nothing, is nothing, and becomes nothing. He may avoid suffering and sorrow, but he simply cannot learn and feel and change and grow and love and live.”
-Leo F. Buscaglia quotes

"어느 것에도 모험을 걸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는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겠지만 배우고, 느끼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삶을 살 수는 없다."

- 레오 버스카글리아

진정한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Mind Programming 발췌

나는 기쁨과 평화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하고 싶다. 하지만 자연의 성질을 매우 냉담하고 육식성이라 생각할 때는 그러한 상상을 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자연을 인격화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인간에게 눈을 돌린다. 인간의 끔찍한 행동과 비교하면 사자가 양을 죽이는 행위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평화와 균형, 조화를 찾는 진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적인 평온함을 얻고 이를 적절히 균형 잡힌 정신과 감성에 융합해 평화와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 자동차나 수영장, 집 등의 물질적인 부와 육감을 만족시키는 것들 또는 관능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 같은 것들이 구현의 대상이다. 그 반면 영적으로 진지한 사람에게는 평화와 균형, 조화가 우선적인 구현의 대상이며, 그 다음이 건강과 개인적인 행복이다. 이것은 명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므로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남겨두자. 개개인은 저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욕구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과 주위 세계를 꺠달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마음은 점화장치와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꿈을 인식하거나 새로운 하루 일과로 곧바로 주의를 집중한다. 마음은 사고와 믿음, 야망, 목표 등의 내면세계를 즉시 전달한다. 이러한 즉각적인 의식의 흐름, 곧 혼잣말은 자신의 기분이나 태도, 선호도, 그 밖의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내면에 있는 초대형 쓰레기통의 내용물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간성을 정의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인간성이란 자연에 근거를 두고 인격화하는 공통된 마음의 특성을 동반하는 역동적인 경험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목격한 후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짓고, 소름이 돋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며 인간성의 한 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예로 불이 난 집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부상을 입은 개를 보고 우리는 경탄과 경외심, 사랑을 느낀다. 인간성은 어떤 이야기 속에서 열거할 수 있는 감동 이상의 것이다. 인간성은 정서이며, 원시 욕구에서 비롯된 감정을 초월한다. 감동적인 이야기, 마음을 들뜨게 하는 창조력, 가슴 뛰는 모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솟구치는 열정, 내적 성찰로 이끄는 환희와 경외감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이다.
 
장대높이 뛰기 장면을 과학적 관점에서 수백번 유심히 보았다고 해서 내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대높이뛰기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보아야 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조종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조종을 막기 위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향상된 주거 환경과 그 밖에도 많은 것을 꿈꾸고,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거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쳐놓은 장벽에 부딪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절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최면이나 심리요법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서구 문화의 영향권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율성에 대해 좀 더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깨우고 자아를 실천하는 데 뇌의 우반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상상해보라. 이런 심상화는 뇌의 우반구를 활성화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내면의 잡음을 멈추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덧붙여서 우리 각자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믿을 때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세계의 평화를 약속하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다.
 
행복한 심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는 왜 이것을 원하는가? 내가 깨달은 거 이렇다. 우울한 심장이 면역계나 내분비계, 자율신경계를 최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믿겠는가? 이는 수명이 짧아지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인생은 어차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야. 인간은 누구나 결국 죽는다고!”라는 말은 자기충족 예언일 뿐이며, 우울한 심장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TV앞에 앉은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과민한 암시 감응성이라는 의식 상태로 들어간다. 흔히 최면 상태라고 말하는 상태다.

생각 역시 심장의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슬프고, 악하고, 비열하고, 폭력적인 기억을 지니면, 즉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으면 불규칙하고 일관성 없는 심장 패턴이 생긴다. 생각은 감정으로 표현된다. 그릇되고 원하지 않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부정적인 감정을 중화시키는 일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진짜 미소가 나올 때까지 가짜 미소를 띠어야 한다. 웃음은 뇌를 속여 천연 아편을 더 많이 생성하게 한다.
 
생각은 물질이다. TV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광고는 보지 마라. 특히 병을 알리는 광고를 경계하라. 머릿속에 들어가는 내용을 감시하고 내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협하는 생각은 무조건 없애라.

문제는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세계정세에 항상 귀 기울이고 합리적인 투표자로서 선거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또한 세계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양심의 명령에 따라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면 견해와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해 회피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은 전두엽(감정제어와 공격적 행동을 제어하는 기관)으로,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나 공격성을 조절할 때 이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나 폭력적인 게임을 오래하면 이 부위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폭력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은 폭력적인 장면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반면, 폭력게임을 한 사람은 폭력에 둔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소산물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믿음’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우리가 겪은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본 일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을 창조하게 된다.

증오, 분노, 불신, 부러움, 탐욕, 공포, 질투 등을 모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지원과 사랑만을 알고, 무시되고 방치되거나 불안전한 느낌을 모른 채 성장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인내와 끈기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학습 도구를 접하고, 탐구심과 독립심을 키우며, 끈기를 발휘해 성공했을 때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아이는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실제로 성공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삶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준비부터 해야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마음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향상시키는 일을 해오면서, 변화를 꿈꾸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변명만 수없이 늘어놓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여러 가지 도구와 기술을 찾으며 분주할 날들을 보내지만 어떤 방법에도 효과를 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을 발견할 때마다 그 체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유를 찾기 바쁘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변화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저항을 낳는다. 저항은 변화를 피하려는 과정이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진정한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견뎌내겠다는 의지, 내려놓기, 비난과 자기책임에 관한 관점의 전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진실한 열망, 자신을 보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수정이 요구된다.

행동을 바꿔라. 그러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행동이 바뀐다. 변화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라. 그러면 변화가 강화된다. 변화의 중심을 자신에서 세상에 대한 봉사로 전환하라. 그런 후에 개인과 사회로부터 최대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박장대소는 마음을 속여 인생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걸 아는가? 그렇다. 웃으면 뇌의 화학작용이 바뀔 것이다. 단순히 표정만 바꿔도 거의 즉시 슬픈 기분이 누그러진다.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 전체를 꿈으로 보는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난 후 꿈속의 일을 가지고 정말로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우습게 느껴진다. 용서는 우리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세계 또는 물질세계를 초월한다. 모든 일이 그저 일어나지 않았으니 용서할 것도 없다.
 
스승님,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인생은 기적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인간의 의식 또한 기적입니다. 저는 모든 창조물에서 신을 봅니다. 꽃향기에서, 아이의 웃음에서, 연인의 다정함에서, 별들의 반짝임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세상을 볼 때 저는 그 불가사의함에 놀랍니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끼고 숭배합니다. 저는 만물이 선하며 매 순간 적절한 방법으로 각자의 선함을 표현한다는 걸 압니다. 제 형제들이 말하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는 걸 압니다. 오직 영원의 세계만이 진실이니까요. 저는 결핍, 제약, 어려운 상황 등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저 제가 본 광경을 세상에 주고 싶을 뿐입니다. 살아 있다는 축복에 가슴이 뜁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각자의 일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자아상과 기대, 전반적인 행복에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기억은 모든 경험을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 즉 깊은 마음의 연결 덕분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속성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단편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 자신에 대한 기대, 세상을 보는 방식, 믿음, 거주지, 어제와 그저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기한다. 기억이 지워져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하루하루가 완전히 따로 놀 것이다. 기억은 연속성을 지시해서 우리 삶을 구성한다. 또한 기억은 실제 정보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마음은 모든 사건이 완벽하게 기록되는 빈 서판이 아니다. 실제로 기억할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억이 기대나 공포, 불안, 욕구 등에 의해 왜곡 된다는 증거다. 우리는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을 마음속에서 실제처럼 그리기도 하는데 이 마음 속 그리기는 사건 전에 일어나기도 하고, 사건 후에 일어나기도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대개 감정적으로 얽혀 있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우리는 잊기 위해서 기억한다. 마음은 어느 단계에서 기억을 억제함으로써 행복을 지킨다. 마음은 회상하지 못하게 꽁꽁 싸매놓은 걸 기억해서, 잊힌 기억을 지키는 전략 체계를 발전시킨다. 이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억제된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형태는 바뀔지라도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멋진 광경은 사라진다. 모든 달콤한 말도 색을 바랜다. 하지만 낙담하지 마라. 그 원천은 영원하며, 성정하고, 가지를 치며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다. 왜 눈물을 흘리는가? 당신 안에 원천이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원천에서 솟아난다” – 잘랄 아드딘 아르 루미 (이슬람 신비주의자) –

남은 날이 50일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온다. 매일 솟는 찬란한 태양, 따뜻한 미소, 즐거운 웃음,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사랑이 아닌 순수하게 격려하는 사랑 등등. 또한 자동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미뤄놓았던 일을 다시 손에 잡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매번 시간이 없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미뤄왔지만 남은 인생이 5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이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50일이 정말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남은 날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로 배웠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더 많은 걸 배우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인생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지고 내 감사함은 점점 더해간다. 죽음보다 삶을 믿어야 한다. 분명 흥미로운 인생이 펼쳐지며, 작은 일상에도 감사가 넘쳐날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이렇게 아침에 정신 상태를 살짝 바꿔놓으면 머릿 속에 있던 ‘제기랄, 침대에서 일어나야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기대감으로 바뀌어 그날 하루를 감사하게 된다. 간단히 이 방식을 충실하게 실천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역경이 찾아왔을 때 아름다움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And so what?”
 일어난 일은 알어난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기만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경외심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온세상이 경이로웠다. 모든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것은 공경심이다. 공경심이 없다면 경외심을 가질 만한게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냉정하고 그릇된 자존심만 남는다. 이는 만물의 이치와 그 기원과 이용방법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어떤 것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믿기 쉽다. 전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사용하므로 우리는 전기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빅뱅에 대해 알기 때문에 우주의 창조를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이해하는 걸까?전기가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됐지만, 과학은 여전히 전기를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뭘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항상 초조해요. 지금까지는 그래요.” 그러면 우리의 말과 생각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생겨난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진실이 될 것이며, 당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것이며, 당신이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이 자신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를 의식함으로써 지금까지 해오던 부정적 사고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다. 생기가 넘치고 내면이 충만하며, 선순환이 계속돼 연이어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행복과 충만감은 어디서 올까? 인생의 좌절을 맛본 사람이 충만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충족감이 행복을 주고, 자긍심을 높이며, 부와 명성, 평화, 균형감, 조화로 이끌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도모하고 시대에 맞는 성공 비결로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킬 기회를 잡는다면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의 관계가 향상될 수 있으까?

 1. 진짜 ‘나’ 되기
 지금까지의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놀랍고 멋진 당신을 보아라.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하면서 잘못된 자기 개념을 주입받는다. 어린 시절 우리는 수용되고 싶은 욕구로 종종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곤 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며,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 건설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영광스럽게 구현할 권리를 타고났다. 삶의 풍요로움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다. 우리 모두가 기적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생각은 기대감을 반영한다. 우리는 무의식에 뿌려진 씨를 열매로 거둔다. 의심은 실패를 낳고, 두려움은 분노를 낳는다.

2. 생각은 물질이다.
생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대하는 것을 얻게 된다. 생각이 곧 사람이다. 우리는 경험한 모든 일에 대한 잠재적인 믿음을 실행한다. 자신에게 행복, 충만감, 성공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가? 존재의 모든 단계에서 모든 선은 항상 자신을 위해 나타난다는 것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 삶의 구심점은 사건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삶의 구심점이다. 자신의 생각과 욕구가 일치했을 때 꿈꾸던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3. 용서하고 내려놓기
모든 행동은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수준에서 결정을 내린다. 삶은 모든 측면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이란 감정을 만난다. 앞의 반응 행동과 달리, 이 때는 힘을 얻어 모든 자극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할 능력이 생긴다. 의식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억제라고 했다. 사실 남 탓을 하는 한 성장하고, 통제하며, 평화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경험하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 없다. 성장의 힘은 용서에 있다. 내려놓으면 자유로워 진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4. 나 자신을 사랑하라.

5. 수용하는 힘
 대개 우리는 자신이 저항하는 것을 얻게 된다. 또한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자신 안에 있는 요소를 반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각자 무언가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인 양, 자신의 최고 모습인 양 대하라. 뿌린 대로 거둔다.

 6. 상호의존의 힘
 행복은 존재의 상태다. 행복은 영원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현재, 순간순간에 경험하는 것이다. 행복은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일의 책임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으로 빚은 불안 상태는 우리 내면 깊은 곳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이 두려움은 매우 창조적인 힘이 있어 사람들에게 종종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상상하게끔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예상하거나 이미 일어났던 일을 한탄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7. 지금 당장 실천하라.
 꾸물대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라. 무언가를 바꾸려면 직접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바꿀 수 있고, 그러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배운 것을 실천하라. 놀라운 변화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잦은 실패야말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You Are Not So Smart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당신이 여태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물이다. 당신의 행위가 점화 효과의 결과일 때, 그러니까 적응무의식에서 어떻게 행동하라고 보낸 암시의 결과인 경우, 당신은 자신의 기분과 결정과 사고를 해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머릿속 장막에 가려진 정신이 조언을 건넸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의식의 통제 아래 이뤄지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개인의 공간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아 혼란과 혼돈이 발을 들이게 놔둔다면 그것들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당신이 당신의 공간을 더더욱 방치하도록 만들지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긍정적인 작용이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지, 삶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점화 효과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바라는 정신 상태를 만들기 위해 주변 공간을 조성할 수는 있다.
 
이 머릿속에서 정보를 꺼내 저 머릿속으로 넣으려면 의사소통 같은 것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표정, 목소리, 몸짓, 지금 읽고 있는 단어들. 이런 투박한 도구들에 의존해야 한다. 감정이 아무리 강하고 생각이 아무리 강력해도 당신의 마음 밖 세상에게는 마음 속 세상만큼 극심하고 강렬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투명성에 대한 환상이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고, 그러한 생각과 감정이 구멍들을 통해 새어나가 세상에 드러나고 외부에 인식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과대평가하며 다른 사람 역시 그들만의 작은 비눗방울 안에 갇혀 자신들의 내부 세계에 대해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현상학은 너무나 강렬해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그 너머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가설은, 당신은 모두가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행동과 외모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당신은 대부분 배경의 일부로 사라진다는 스포트라이트 효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효과는 너무 강력해서 마치 상상 속 스포트라이트가 당신의 몸짓, 언어, 표정까지 모두 꿰뚫고 심지어 당신만의 은밀한 세상까지 낱낱이 까발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사람들 앞에 설 때,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 뇌 안에는 불안이 가득해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보다는 훨씬 침착해 보일 것이다. 그러니 긴장을 풀고 웃어라. 초대받은 집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개밥으로밖에 쓸 수 없을 것 같아도 제발 먹지 말라는 당신 뇌의 간절한 경고는 음식을 차려 내온 집주인에게 들리지 않는다.
설명하는 과정이 까다로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화는 내지마라. 그 사람이 당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만큼 영리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그러니 긴장을 풀고 차분하게 계속 가라.

지난 30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직장 동료보다 능력 있고, 친구보다 도덕적이며, 일반 대중보다 친절하고, 동년배보다 지적이며, 평균적인 사람보다 매력 있고, 지역 사회 사람들보다 편견이 덜하며, 또래보다 젊어 보이고,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운전을 더 잘하며,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낫고, 평균 수명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금 이 문장을 읽으면서 당신은 "아닌데, 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데"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더 정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렇게 영리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이 통계를 구성하는 인구의 일부로서 평균을 산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당신은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믿는다. 자기 위주 편향 self-serving bias 에서 비롯된 이러한 경향을 기만적 우월감 효과 illusory superiority effect 라고 부른다. 당신은 주변의 모든 이들만큼이나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다. 당신의 세상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과 행동의 대부분은 당신의 개인적 세상을 주관적으로 분석한 데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하루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은 저 멀리서, 혹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보다 항상 더 의미가 있다. 당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자기 본위가 당신을 하나의 숫자, 하나의 평균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기분 나쁘게 보고 스스로를 고유한 존재로 바라볼 방법을 찾는다.

실제 난이도와 관계없이 그저 사람들에게 과제가 얼마나 어려울지 미리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상상 속 평균과 비교해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 당신은 먼저 과제가 쉽고 간단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기만적 우월감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인관계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인식할 때, 자기 위주 편향과 기만적 우월감이라는 심리적 장치를 사용한다. 당신은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친구의 성공과 실패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당신은 버락 오바마나 조니 뎁이 성공한 사람들이란 걸 알지만 그보다는 직장 동료나 동창생,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아 온 친구들을 삶의 표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당신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은 당신이 그들보다 더 인기 있다고 생각한다.

 통제력 착각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삶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아무 결과도 보장받지 못하니까. 다만 어떤 노력을 하든 미래는 대부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혼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라. 혼돈을 계획에 끼워 넣어라,. 어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실패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사전에 실패는 없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 실패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예측 가능하고 대처 가능한 일도 있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가 미래일수록 당신이 사건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은 줄어든다. 당신의 몸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관여할수록 행사 할 수 있는 권력은 줄어든다. 1조 개의 주사위를 10억 번 굴리는 것처럼 게임에 작용하는 요인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무작위적이어서 진정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름의 모양을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과정 또한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작은 것들, 중요한 것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그것들이 쌓여 행복이 되게 하라. 그러나 어쨌든 더 큰 그림에서 보면 당신이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심리학에선느 진정한 객관성이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기억, 감정, 조건부여를 비롯한 기타 모든 종류의 정신적 표류가 새로운 경험을 얻는 족족 오염시킨다.

자성예언은 현실에 대한 사회적 정의에서 그 힘을 얻는다. 당신의 인생은 대부분 논리적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의된다. 다른 사람들의 인식이 행동으로, 정책으로, 믿음으로 전환되면 인식은 현실이 된다.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행동의 지배를 받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증을 얻기 위해 책을 구매하고 있었다. 크레브스는 수년간 아마존의 구매 성향과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에 모이는 경향을 조사했는데, 그의 조사는 확증 편향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예측하는 바를 잘 보여 준다. 당신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확증해 주는 정보를 찾고, 그와 반대되는 증거나 의견은 경시한다는 것이다.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연구로 확증 편향은 정신적 장애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것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기자는 그 이야기와 반대되는 증거를 무시하는 경향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설을 증명하려는 과학작는 가설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올 여지가 거의 없는 실험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야 한다. 확증 편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음모론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인류는 정말로 달에 인간을 보냈을까?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09년 오하이오 신문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과 일치하는 논문을 읽을 때 36%나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신은 잡지 구독을 늘리고,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몇 시간씩 보면서도 자신의 세계관과 반대되는 것은 절대로 찾아보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되고, 그 누구도 당신을 설득할 수 없게 된다. 기억하라. 저 바깥에는 확증 편향에 길든 사람들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광고주에게 시청자를 팔아넘기려는 누군가가 늘 활보하고 있다는 것을.

기업의 홍보대사를 자처하지 말자. 당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잘못 결정했다고 여기게 되는 결정 후 부조화를 물리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정당한 선택을 했다고 느낌으로써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과 불안감을 줄여야 한다. 거기에 유대감, 세부적인 자아상, 그리고 각종 편향. 이 모두가 첨가되어 비로소 거대한 신경 집합체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다음에 당신이 가진 휴대전화나 자동차나 TV가 다른 제품보다 나은 점을 100가지는 말할 태세가 갖춰지더라도 그만 두라. 당신은 지금 타인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려는 것뿐이니까.

체화된 인지 오류, 2008년, Lawrence williams와 John Bargh의 실험, 따뜻한 커피 혹은 아이스 커피르 들고 낯선 사람을 만나게 하는 실험. 당신은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으로, 즉 성격이 '밝은'사람으로 본다. 또 말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을 덜 똑똑한 사람으로, 즉 이해가 '느린'사람으로 본다. 당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어떤 비유를 사용하든, 일치하는 언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주변 세상에서 받는 느낌을 변화시키게 된다. 촉감 또한 이러한 현상의 강력한 형태로, 사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은 사물이 마음에 닿는 느낌으로 바뀔 수 있다. 이와 같은 형상을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 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그러니까 그 사람에 대해 알 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떤 인물로 탈바꿈시키는 경향이 있다. 턱없이 부족한 경험과 잔뜩 과장된 공상으로부터 추려 낸 원형과 전형에 기대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늘 사회적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한다. 그리고 상사와 함께 있을 대의 당신은 각기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당신은 친구와 가족, 심지어 상사도 당신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행동이 외부의 힘과 내부의 힘 사이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의 결과임을 안다.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이므로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직장에 있을 때의 당신과 집에 있을 때 드러나는 성격이 다르다. 글로 적어놓고 보면 뻔한 소리 같지만 다른 사람을 평가할 대는 주변 상황의 힘을 곧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잭은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걸 불편해 해서 공공장소에서 만날 때는 한적한 곳을 찾는 경향이 있어.” 라고 말하는 대신 “잭은 수줍음이 많아”라고 말한다. 사회라는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는 그게 지름길이다. 당신의 뇌는 지름길을 아주 좋아한다. 주변 상황의 힘을 무시하기란 쉽다. 상황이라는 렌즈를 통해 사람을 보는 것은 사회심리학의 기초 중 하나로,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이론 attribution theory 이라 부른다.

심리학자 해럴드 켈리에 따르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을 때 일관성을 고려한다. 친구 하나가 당신이 아는 사람과 싸움을 벌였다면 먼저 이들의 행동이 과거의 행동과 일관됐는지 따져 본다. 그들이 사소한 의견 차이로 곧잘 싸움을 벌이곤 했다면 성격을 탓하지만, 대체로 차분한 사람들이었다면 싸움의 원인을 상황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런 편법은 대체로 잘 들어맞는다. 세계가 지금과 같이 발전하기 전에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일관성을 파악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대사회에서는 종업원이나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일관성을 확인할 수 없다. 총기를 난사하는 사람이 과거에도 그런 행동을 했는지, 혹은 도로에서 끼어드는 사람이 항상 그렇게 욕먹을 짓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일관성을 확인할 수 없을 때 당신은 사람들의 행동을 성격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긍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말하자 남자들은 여배우가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안면서도 여배우가 자신들에게 정말로 호감을 가진 것처럼 느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그들이 실제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냐에서 비롯될 뿐 배경과는 상관이 없다고 믿음으로써 근본적 귀인 오류를 범한다. 한 남자가 스트립 쇼를 하는 여자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는 것이나 상사가 모든 부하 직원이 자신이 코스타리카에서 낚시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근본적 귀인 오류다.

잔혹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사랑하는 이의 냉담한 태도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극심한 심적 동요를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바에 무관심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당신은 근본적 귀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표를 던질 때 그 사람이 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면을 꾸며 냈는지는 무시한 채 그저 호감이 가고 친근해 보인다는 이유만을 내세운다면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표를 던질 때 그 사람이 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면을 꾸며 냈는지는 무시한 채 그저 호감이 가고 친근해 보인다는 이유만을 내세운다면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호의를 성적 관심으로 평가한다거나 가난을 게으름의 결과로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그 원인은 쉽게 찾아진다. 하지만 상황이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먼저 고려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신은 그 사람을 비난하면서, 그 사람의 환경이나 그의 동료들이 미친 영향은 비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행동이 철저히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허수아비 오류
논쟁에서 지고 있을 때 당신은 종종 이런저런 비겁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려고 한다. 치사하게 굴려는 건 아니었다 해도 화가 나서 말싸움을 하게 되면 사람 마음이란 것이, 대개 그런식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하게 되는 논리적 오류로 허수아비 오류가 있다. 이 오류를 저지를 확률은 꽤 높은데도 우리가 이 오류를 사용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이 오류를 범할 때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개인적인 문제든 추상적인 문제든, 어떤 논쟁을 시작할 때면 당신은 반박하고 논박하고 부인하기 쉬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다. 혹은 상대가 주장하거나 변호하지도 않은 입장을 혼자 만들어서는 공격한다. 이것이 허수아비 오류다. 당신의 다른 사람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찰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세계가 미쳐 돌아갈 거라는 공상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멋지게 허수아비를 세운 것이다. 주장의 부정적인 결과를 찾기는 쉽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는 어렵다. 한번 돌아보라. 애초에 상대방은 그런 주장은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자신의 제안 때문에 수많은 식당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모두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정 내에서 쉽게 닭을 키우는 조그만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는 대신, 당신이 만들어 낸, 깃털 날리는 최후의 날에 대해 반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을 때, 자신이나 상대방이 허수아비를 만들지는 않는지 주의하라. 누가 됐든 그 사람은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며, 설사 논쟁에서 그가 이기더라도 정말로 이긴 것은 아니다.

논쟁이 과열되면 상대방의 이름을 막 부르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땐 상대방이 대변하는 입장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저열하고 무지하다고 평가된 사람의 의견이라면 더 무시하기 쉽다. 그를 향해 편협한 인간이라고, 바보이거나 거지 같은 놈이라고 부르면 속이 시원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옳고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당신은 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말하는 이가 누구인가, 또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면 바로 인신공격의 오류 ad hominem fallacy를 저지르는 것이다.
흡연자가 식당 내 흡연이 합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이해가 관계된 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손을 내저으며 의견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다. 그의 말이 타당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가 흡연자라는 사실이 당신의 판단을 뒤흔들도록 놔둬선 안 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인물됨에 따라 파악하고 그들의 행동에서 일관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는 누구를 믿어도 좋은지 구분하는 데 대체로 유용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를 믿어도 좋은지 따지는 일과 그 사람이 말이 진실인지 따져 보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사람을 판단하는 당신의 눈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억해야 한다. 사실 판단 능력 또한 뛰어나지 않다면 당신의 생각은 망상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대부분 비정상적인 행동이 그렇듯이 심기증도 모두가 평범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다. 누구나 이따금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울증, 망상증, 강박증 같은 장애는 이처럼 정상적인 성향들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변형된 형태로 과장하고 확대한다. 당신에게도 이러한 심기증 환자처럼 사전에 무의식적으로 변명할 거리를 궁리하는 경향이 있다.
맡은 프로젝트가 너무 방대하고 까다로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때가 있다. 책을 쓰거나 영화를 감독하는 일처럼 전문성을 요하는 일일 수도 있고, 기말고사에서 낙제점을 면해야 한다거나 회사 상사에게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해야 하는 등 보다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다. 당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보일 때마다 마음속에는 의심들이 떠다니게 된다. 그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해지면 자기불구화self-hanicapping를 통해 감정상태의 진행 방향을 바꾸려 한다. 자기 불구화는 현실과의 타협이라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인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식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지 않은 척 짐짓 연기를 한다거나 뭔가 불쾌한 것이 사실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는 등의 행위를 선행적 합리화 anticipatory rationalization 라 부른다. 자기 불구화 행동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돌리는, 말하자면 미래 현실에 대한 투자다. 이 행동 역시 당신의 자존감을 확고하게 세우기 위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을 늘 내부의 힘이 아닌 외부의 힘 탓으로 돌린다면 과연 누가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겠는가?

인간에게는 미루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믿지 않거나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열심히 일하고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약점을 극복할 전략을 절대 세우지 못할 것이다. 미루는 습관은 일종의 충동이다. 또한 미루는 습관은 과도한 가치폄하로, 지금의 확실한 것을 저 멀리 언젠가 있을 분명치 않은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에 대한 사고에 능숙해야 한다. 소파에 앉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있는가 하면 언젠가 다른 생각과 열망의 영향을 받게 될 당신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의 뇌 속에 ‘현재’라는 색깔과 ‘미래’라는 색깔을 모두 가진 팔레트가 있다면 ‘현실’이라는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작동은 대부분 무의식의 잠긴 문 너머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무의식과 의식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의 일부다. 때때로 심리학자들은 의식을 두뇌와 진화에 맞춰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눈다. 이는 의식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지만 벌레와 물고기 수준의 단순한 뇌에서 지금의 뇌로 진화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바라보는 것은 꽤 유용한 방법이다. 두뇌를 고고학 발굴처럼 최근의 지층 밑에 고대의 유물들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면,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뇌의 오래된 부분은 주로 두뇌의 아래쪽에 자리한다. 이 부분은 생존과 관련된 부분을 다루거나 숨쉬기나 두 발로 서기처럼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을 조절하는 데 쓰인다. 중뇌는 원시인 시절에 형성되어 감정이나 사회적인 의식을 관장한다. 가장 최근에 진화한 뇌의 상층부는 이성과 계산을 다룬다. 전두엽과 신피질은 의식의 본부라고 해도 좋다. 두뇌의 다른 구조에서 온 제안들을 받아들이고 행동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성적, 수학적, 합리적 체계적 의식은 느리고 둔하다. 이 부분은 기록하고 도구를 사용한다.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의식은 빛처럼 빠르다. 사용하던 자동차 기름을 바꿀 대나 새로운 식기세척기를 구입할 때 당신은 작동 원리나 설명서, 용량 등을 결정하지 감정에 기대지 않는다. 반면,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어떤 영화를 빌려 볼지를 결정할 때는 순간적인 판단과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에 따른다. 최종 결정은 여전히 의식이 내리지만 의식에 느낌을 전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의식이다.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감정적 두뇌가 맡아 고려한다. 이는 사회적인 상황이나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당신의 사고와 행동이 대개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계기에 영향을 받으며, 접근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전해지는 의견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다. 우선 의식이 자동적인 부분, 감정적인 부분 그리고 생각을 하는 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고 봐도 좋다. 이를 둘로 줄여 ‘의식적인 당신’과 ‘무의식적인 당신’이 있다고 해보자.

앙투안 베카라와 한나 다마지오 Antoine Bechara and Hanna Damsio가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연구는 무의식적인 당신을 훌륭하게 드러낸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당신의 추론 능력은 “서술적 지식보다는 신경계를 이용하는 의식 없는 편향의 움직임을 따른다.”것이 그들의 가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 해결 과정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위험과 보상에 대한 판단은 무의식적인 당신이 시작한다. 무의식적인 당신은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 위험한지 안전한지, 의식적인 당신이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기 이전에 알아차린다. 좋은 것은 이득을 주고 나쁜 것을 해를 끼친다. 당신이 무언가 좋다고 판단한다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 된다.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휴가를 떠나겠는가? 펜과 텔러의 마술을 보고 사막에서 도박을 해 볼 수 있다면 비행기 사고로 죽을 가능성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만하기 때문에 당신은 티켓을 끊고 난기류와 부딪쳐 보기로 할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의식 속 칠판에다 적어 가며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물 위로 튀어나온 빙산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무의식에서 솟아나온, 감정의 순간적인 떨림과 직감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다. 당신네 종족은,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심사숙고보다는 직감으로 결정을 내린 역사가 훨씬 길다. 그러니 이러한 정신적 술수의 영향력이 그렇게나 큰 것이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 말고는 별 소득이 없다. 사실 그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마음을 흐리게 만들어 앞으로의 행동을 점화시킨다.
프로이트는 건강한 정신은 심리치료사라는 거름 종이를 통해 마음속 불순물을 걸러냄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억압된 두려움과 욕망, 결론 나지 않은 논쟁, 치료받지 못한 상처로 감염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신은 이러한 정신적 파편을 중심으로 병적 공포와 망상을 낳았다. 따라서 정신이라는 곳을 샅샅이 뒤져 창을 열고 신선한 공기와 밝은 빛이 들어가게 만들어야 했다.

화를 운동이나 다른 유사한 활동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화가 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흥분 수위를 높일 뿐이므로 화를 식히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훨씬 더 공격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다. 화를 식힌다는 것이 화를 전혀 다스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시먼은 반응을 잠시 미루어 두거나 편하게 쉬거나 공격성을 가지고는 전혀 할 수 없는 활동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한다.
카타르시스는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그것은 감정적 쳇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감정은 그 뒤에도 그 자리에 계속 남는다. 카타르시스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미래에 또다시 카타르시스를 찾게 된다.

당신이 속한 문화의 규범과 당신이 살고 있는 대륙의 법에 진심으로 동조하길 거부하려는 것은 벅찰 뿐만 아니라 실로 헛된 노력일 것이다. 당신은 시대정신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동조가 인생이라는 게임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그 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 그 사람이 하는 대로 행동한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조용히 앉아 필기를 한다. 운동을 하러 가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당신은 다리의 털을 밀고 얼굴의 수염을 깎는다. 냄새를 없애는 스프레이를 뿌린다. 이 모두가 동조하는 행동이다.
심리학자 Noam Shpancer가 자신이 블로그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는 언제 동조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홈베이스이자 우리의 기본 모드이기 때문이다.” 슈팬서는 당신이 동조하는 이유가 뇌 속에 사회적 수용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맹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이다. 당신은 다양한 출처에서 정보를 받을 수 있을 때 세상을 더 정확하게 그린다. 당신에게 친구가 필요한 이유는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값진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설치해야 할 멋진 앱이나 꼭 읽어야 할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신은 흔들린다. 동조는 생존매커니즘이다.
당신의 행동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될 때는 주저 말고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져라.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상황에서라도 말이다.

당신은 투표를 하는가?
만약 투표를 하지 않는 다면 그 이유가 어차피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은 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백만 표 중에서 나의 한 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다. 매 맞는 여성, 인질, 학대받는 아이, 장기 복역수가 탈출을 거부한다면 이는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이미 체념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마음인 것이다.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 해도 실패할지 모르는 일에 전념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상황이 절대 바뀌지 않으리라 믿는 경우에는 내일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경우보다 더 강하게 슬픔을 느낀다. 당신에게 닥친 문제가 삶의 특정 요소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면 이번에는 한층 더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하루하루를 지날 때마다 운명을 바꾸는 힘들 – 직장, 정부, 중독, 우울함, 돈 – 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당신은 소극적인 저항들로 여기에 맞선다. 전화벨 소리를 바꾸기도 하고 벽지를 새로 바르기도 하고 우표를 수집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당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선택이라는 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무기력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지 않게 당신을 잡아 준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지난 행동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잦은 실패야말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죽음이 아니고서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없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책에 소개된 여행지를 모두 가야지 - 서울근교 여행

책에 소개된 여행지를 모두 가야지

서울근교여행

차례
작가의 말 - 효과 좋은 비타민, 서울 근교 여행
이 책을 활용하는 법 - 서울 근교 여행 이 책으로 유쾌하게 즐기자 

Part1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섬으로 떠나다
승봉도 - 진분홍빛 해당화 곱게 핀 해변
덕적도 - 서포리해변에 마음을 뺏기다
대이작도 - 섬마을 선생님이 미소 짓던 그곳
영흥도 - 도시의 연인을 유혹하는 세 개의 해변
무의도 - 영화 · 드라마의 아름다운 흔적들
모도 · 시도 - 섬에 생명을 불어넣은 조각공원
석모도 - 갈매기 타고 부처님 만나러 갑니다
백령도 - 신이 남기고 간 마지막 조각작품 

Part2 길에서 사랑을 발견하다, 여행 속 데이트
인천 월미도 - 사랑의 유람선, 노을 속으로 사라지다
춘천 남이섬 - 낭만이 가득, 사계절 연가
여주 목아박물관 - 인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파주 헤이리마을 - 사랑을 위한 문화발전소
고양 원당종마목장 - 미래의 경주마들이 비상을 꿈꾸는 초원 

Part3 숲과 꽃을 그리워하다, 자연 만나러 가는 길
포천 국립수목원 - 지친 자를 위로하는 녹색 쉼터
가평 유명산휴양림 - 그 숲에선 내 마음의 나무가 자란다
이천 산수유마을- 노란 꽃에 취하고 선홍색 열매에 반하다
용인 한택식물원 - 풀은 생명의 근원, 꽃은 생명의 절정
양평 산음휴양림 - 낙엽송,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다
아산 세계꽃식물원- 사계절 내내 꽃잔치 이어지는 곳 

Part4 가족이 있어 즐거운 여행, 체험학습의 장
수원 화성 - 정조대왕의 효심이 낳은 세계문화유산
남양주 수종사 - 물 위로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람
광주 남한산성 - 솔향 맡으며 역사 속으로
안성 남사당전수관 - 신명나는 남사당놀이의 텃밭
구리 동구릉 -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군 

Part5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리는 드라이브 코스
안산 대부도 - 포도향기와 음악에 취하는 드라이브
김포 대명포구 - 삼숙이회, 밴댕이회의 본고장
연천 동막골 - 길 따라 들어선 계곡, 당일 피서지로 딱 좋아
당진 왜목마을 - 해 지는 바닷가에서 뜨는 해를 보다
철원 한탄강 - 분단의 상처 딛고 래프팅 명소로 변신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강상중 교수의 '살아야 하는 이유'(원어 제목 - 고민하는 힘)를 읽었다. 작년 한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하며 보낸 시기였다. 아주 작은 고민부터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큰 고민까지. 그런 고민들 때문에 마음이 약해졌던 한 해로 기억된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어떤 고민에 빠지게 되면 그 고민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른 것 같다. '이 고민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두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까' 하면서 말이다. 책의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든다. 며칠전에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했던 '복잡함과 단순함'에 대한 얘기들과도 일맥이 상통하는 부분도 있고, 후배와 나눴던 이야기들과도 연결이 되고 있다봐라. 우리 인생은 이렇게 신기할 정도로 치밀하고도 조밀하게 연결되고 연결되어 있다

책 속의 문장 몇 줄로 책이 전하는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느냐마는, 심히 공감을 느끼고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을 옮겨 적어보았다.그리고 책을 접한 나와 아래의 몇 문장을 접하는 누군가는 또 연결된다. 이건 마치 클라우드 아틀라스. 

 거품경제 무렵이나 아니면 고도성장기 같은 때에는 꿈이나 목표라고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거나 출세한다거나 하는 좀 더 단순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좀 더 소중한 것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진정한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가(자기다움)를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일이라는 말이지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답게 사는 것이 훨씬 멋지다는 것입니다. P90 우리에게는 무엇을 믿을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것을 찾아내야 자신의 의미도 찾을 수 있습니다. P143   

8. 살아갈 근거를 찾아낼 수 있을까. 운명은 받아들이고, 인위는 극복하자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만능이 아닙니다.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운명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겠지요. 이를테면 태어난 나라나 장소, 혈통이 그렇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는가, 아름다운 용모나 운동신경, 좋은 머리를 타고나는가, 남자로 태어나는가 여자로 태어나는가. 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도, 크고 작은 질병에 걸리는 것도, 수명이 얼마나 될지도 인간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중에는 운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운이 좋다'거나 '운이 나쁘다'라는 표현으로 말해지는 것들입니다. 자연재해를 당하는 것도 운명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개인의 미미한 힘으로는 대응할 수 없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점도 있습니다물론 그에 굴하지 않고 맞서나가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맞서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을 잘못 선택하면 비극을 부르게 될지도 모릅니다."흐르는 강물은 그치는 법이 없고 게다가 예전의 그 물이 아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 곳에 떠오르는 물거품도 한 순간에 사라졌다 다시 떠오르며 오래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호조키]"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마음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식의 착각을 하며 돌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예지로 자연을 모두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도를 넘어선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비해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도 사회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 이를테면 회사나 지역공동체, 국가 같은 것들입니다. 산업, 제도, 정치, 과학, 기술 등도 물론 그렇습니다. 이런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인간이니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서 우리는 때때로 이중의 잘못을 저지릅니다. '자연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회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만' '태만'의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사회라는 것은 인간의 필연적 욕구에 따라 상당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꾸는 것이 어렵다고 해도 멍하니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P154 

'인간', '자연', '화폐', 이 세가 지를 교환, 생산, 소비함으로써 돌아가는 시스템이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원래 상품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인간'은 다른 말로 하면 노동력입니다. 하지만 살아 잇는 것이므로 애초에 물건으로 취급하는 데는 무리가 따릅니다. 능력에 차이가 있고 휴식도 필요하며 병에도 걸립니다. 하지만 일단 자본가와 계약을 맺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을 노동력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예전에는 개인의 능력을 개발한다는 사상이 있었고, 그런 생각은 적어도 1970년대쯤까지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점차 무너지고 결국에는 완전히 화폐로 계산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노동력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창고에도 늘어서 있고 국경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조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P156 

현재 일본에서도 실업률 증가가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3장에서도 말한 것처럼 지표상으로는 5퍼센트 전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것을 넘어섰을 겁니다. 이는 이상하게 높은 것인데, 정말 문제인 것은 이 상태가 이미 '비상사태'가 아니라 '상시', 즉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업자가 상당한 비율로 존재하는 것이 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전제로 시장과 사회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인스가 지향한 최종적인 목표는 '완전고용'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달성된 시대는 한 번도 없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이상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런대로 인본주의적인 사상이 있었습니다. 시장경제의 제일 중요한 목표가 완전고용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설사 실업을 낳더라도 경제적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된 게 아닐까요. 비정규직 고용으로 극한까지 인건비를 줄이고, 시급을 턱없이 깎는 상황을 보면 싫든 좋든 간에 그런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의 시장경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만성적으로 실업을 만들어 냄으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시장경제는 사회가 붕괴하지 않을 정도까지 실업률을 높이는 쪽이 부를 극대화 한다고 까지 말할 수 잇는 메커니즘이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그 정도로까지 노골적으로 변용하고 일탈해 버린 것입니다.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의 원인을 사회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능력 문제라는 족으로 돌려버리는 사고가 유력합니다. 예컨대 실직한 사람이 "내 일이 없어진 것은 사회가 나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어리광부리지 마" 라든가 "남 탓 하지 마"라고 말하며 일축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고용 상황을 뒤덮고 있는 이런 가치관이 수많은 실업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P166 

인간은 누구라도 '일회성' '유일성'안에서 살고 있다고 프랑클은 말합니다. '일회성'이란 그 사람의 인생이 한 번 밖에 없다는 것을, '유일성'이란 그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생의 탄생과 죽음에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따라서 사람은 둘도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그 당연함이 상당히 오랫동안 망각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 살려고 한다면, 인간다움의 근본인 이 '일회성' '유일성'을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소중히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사람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다만 제가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을 소중히 하며 살아서 좋은 과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고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소극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쪽으로만 시선을 향하고 마는 것인데, 인간에게 정말 귀중한 것은 사실 미래가 아니라 과거가 아닐까요. 과거의 축적만이 그 사람의 인생이고, 이에 비해 미래라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로 상태입니다. 미래는 어디까지나 아직 없는 것이고, 무 일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는 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확실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 인생'이란 '내 과거'이니, '나는 과거로소이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중요시하는 것일 수 밖에 없고, 역으로 '가능성'이라든가 ''이라는 말만 연발하며 미래만 보려고 하는 것은 인생에 무책임한, 또는 그저 불안을 뒤로 미루기만 할 뿐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유일성'입니다. 인간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누구라도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장경제 안에서는 그런 일이 당연하게 이루어집니다.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사람이 상품화된 경제 시스템이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어, 사람의 존엄함을 현저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그런 면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입니다. 둘도 없는 생명을 갖고 있고, 주장을 가진 개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도 없는, 대체할 수 없는 바로 당신인 것입니다. 누구라도 좋은 것이 아니라 대체할 수 없는 당신, 그것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의 '본래적인'(진짜의/자기다운) 존재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고, 받아들이거나 극복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물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요. P171 

 9장 인생이 던진 물음에 답한다. 

프랑클은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가 그 하나, 창조//예술적인 창조,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발명, 기업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기술 개발, 상품이나 서비스의 창조, 뭔가 업적은 쌓는 것인간의 진가 그 둘, 경험//뭔가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낯선 나라를 여행해보고, 뭔가를 배우는 모임에 가입해보고,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는 것. '창조'보다는 못하다고 해도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경험만으로도 인생에 무게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진가 그 셋, 태도 //프랑클은 어느 말기 악성종양 환자를 예로 들었습니다.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회진 때 의사가 죽기 몇 시간 전에 통증을 완화해 주는 모르핀을 주사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알고 그날 밤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 환자는 프랑클에게 "지금 그 주사를 놓아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은 저 때문에 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프랑클은 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할 데 없이 인간다운 업적"이라며 칭송했습니다. P176 병 때문에 일할 수 없는 사람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타자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만이 인간의 존엄이 잇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 안에서 일을 함으로써 뭔가 생산물을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것만이 인간이 가진 인격의 모든 원천은 아닙니다. 직업 이외의 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답게 살 수 있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열심히 바라면 존엄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P180 
우리는 일회성과 유일성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순간 한 순간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P180 
인간의 존엄과 인생과 맞서는 태도라는 의미에서는, 프랑클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그럼에도 삶에 대해 ''라고 말하려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말에는 긍정적이고 느긋한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흔히 '이 인생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든가 '이 인생에서 나에게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절망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끝내려 하기도 합니다.프랑클은 인생이란 "인생 쪽에서 던져오는 다양한 물음"에 대해 "내가 하나하나 답해가는"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이 물어오는 것에 대해 계속 대답해 간 사람만이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던 것입니다.자신이 이 세계에 대해 요구해 가는 것이 '창조'이고 자신을 넘어선 세계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책임을 갖고 답해 가는 것이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도'를 단순히 수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계를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초의미'의 존재로 인식하면서, 게다가 그 안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대해 하나하나 책임을 갖고 결단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태도'라는 것이고, 운명을 그저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p187 
우리의 인생은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목적으로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하지만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노력해도 안 된다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 등등.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요. P193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낙관적 인생론이나 행복론을 체로 쳐서 비관론을 받아들이고 죽음이나 불행, 슬픔이나 고통, 비참한 사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생을 마음껏 살아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인간의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P195 


더 열심히 살아서 그 사람을 한 번 더 기억하는 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가 시작됐다는 사실 자체가 왜 이렇게 가슴 벅찬지 모르겠다.  나에게 2012년은 정말 소중한 한 해였다. 많은 인생의 전환점에 놓여져 있었다고 생각되는 한 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힘들게나마 그 신념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나의 앞 날을 상상해보고, 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한 해였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2012년은 아마 평생 기억될 한 해 일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처음으로 종로의 보신각에 가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TV에서 보던 제야의 종이란게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그렇게 특별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끼리 더 환호성을 지르면서 모르는 사람끼리 껴안기도 하고 모두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즐길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은 아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많이들 그러던데 하하) 그냥 같이 온 사람들끼리 새해인사를 주고 받거나, 연인들끼리 껴안기만 하는 모습뿐이었다. 조금 더 함께 웃으면서 즐거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할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오늘 도서관을 나서면서 2012년의 마지막 도서관이구나,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 2012년의 마지막 저녁이구나.. 등등 이름을 불러 줄 때 비로소 한송이 꽃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때 특별한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도 2012년의 마지막 포스팅인 것처럼 (시간상으로는 이미 2013년이 되었지만)

참 감사할 사람이 많은 한 해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우리 가족, 국제도우미 친구들, HRD친구들, 뉴프론티어 친구들, 건금연 친구들
그리고 외국에 있는 많은 친구들, 좋은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들 등등
어떻게 일일이 열거하면서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마는 내가 더 열심히 살아서 그 사람을 한 번 더 기억하고, 더 연락하는게 감사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새해엔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이젠 정말 대학생도 끝이니. 앞으로의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자신감 하나만은 잃지말자. 내가 원하는 삶을 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새해엔 늘 더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자.  2013년엔 어떤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될까. 2012년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공자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자

리더십과 동양고전 강의록 

스티븐 코비 '전인적 패러다임 whole-person paradigm'
대부분의 조직이 구성원들의 재능과 독창성 그리고 창의성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실패하여 강하고 지속적인 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의 이면에 명확하고 핵심적인 이유가 존재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 즉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근원적인 시각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진실은 인간이 통제되고 자극받아야 할 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 그리고 지성을 가진 다면적 존재이다. 역사 이래로 동서양의 모든 철학과 종교를 연구해보면, 기본적으로 육체적, 지성적, 정서적, 정신적 차원의 네 가지 부문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용어들이 사용될 수는 있지만 뜻하는 바는 모두 같은 네 가지 삶의 차원을 다루고 있다. 이는 또한 모든 사람들의 네 가지 기본적 필요와 동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살고(생존), 사랑하고(관계), 배우며(성장과 자기 계발), 유산을 남기는 것(의미와 기여)이다. 이 네 가지가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동기부여가 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재능을 살리고(지성), 열정을 불태우며(마음), 양심의 부름을 따라(정신), 세상에 꼭 필요한 일(육체)을 할 때, 자기만의 목소로이와 일생의 소명 그리고 영혼의 코드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지식 노동자 시대의 리더십은 직위에 관계없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각자의 목소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와 잠재력을 명확하게 일깨워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그것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리더십이다.

공자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하며 육예에 노닐어라"라고 하였다. 도는 개인 혹은 공동체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상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나이 많은 사람이 편안히 살도록 하고 동료들에게 믿음을 주며 젊은이를 감싸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송대 성리학자 장횡거는 개개인은 거대한 우주 안에서 미미하기만 한 존재이지만, 하늘과 땅의 아들로서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주체적 존재임을 강조하였따. 따라서 우주 내 모든 사람들이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형제들이며, 생태계 내 다른 존재들도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류가 된다. 유학자들은 공자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좇아 이렇게 삶의 역정 전체를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자각하고 실현하는 자아의 성장에 있어서 여섯가지 소양교육인 육예를 제시하였다. 당시 여섯가지 소양교육은 예의범절, 음악, 활쏘기, 말 타기, 글쓰기, 산술과 천문 지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지성과 정서가 조화를 이루고, 문부를 겸비한 전인적 교양인이 교육의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공자는 리더의 핵심요건으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자는 올곧음을 추구하고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절대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리더의 덕목
첫째,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야 사람들이 모여들고 진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둘째, 어질고 정직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셋째,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식을 공유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게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공경하는 자세이다.
넷째, 검소한 생활을 해야한다. 리더는 삶에서 절제된 모습과 동시에 언어의 절제도 필요하다.
다섯째, 남을 배려하는 겸양의 자세가 요구된다.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은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겸손에서 나온다. 또한 상대방을 세워주는 열린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자신이 양보하고 베푸는 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반드시 돌아오는 것을 무왕불복 無往不復 이라고 한다. 준 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 뿐만 아니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행복하다는 점을 인식할 때 겸손한 자세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인이란
첫째,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되면 비록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반드시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셋째, 일상 생활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타인에 대해서는 어디까진 진심으로 성의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면서 남의 의견과 충돌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남도 보호해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부하지 않으면서 모나지 않고, 주장을 관철시키면서, 또 적극적이면서도 실수가 없어야 한다.

원문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QiNv&articleno=27&_bloghome_menu=recenttext

공자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자.

필생즉사 필사즉생


필생즉사 필사즉생


필생즉사 필사즉생 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살고자하면 죽을것이요, 반드시 죽고자하면 살것이다.

해군 기초교에서 반드시 외워야 했던 '해군의 다짐'이라는 것이 있다.

해군의 다짐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하나. 명령에 죽고사는 해군이 되자.
둘. 책임을 완수하는 해군이 되자.
셋. 전기를 갈고닦는 해군이 되자.
넷. 전우애로 뭉쳐진 해군이 되자.
다섯. 싸우면 이기는 해군이 되자. 이상

해군 복무를 마친지도 2년이 넘었다.
기초교에서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목청이 찢어져라 해군의 다짐을 외우면서
밖에 나가서도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더 이상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도 아니고,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새벽 하늘을 향해 울려 퍼졌던 해군의 다짐 속에 담겨져 있던 뜨거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기초군사학교에서 나의 '개인 수양록'에 적었던 글들을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2009년 3월 12일 입소 10일째
만약 내가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서도 5시에 일어나고 11시에 취침하는 생활을 유지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걸 이뤄내는 삶을 가지겠지.
2006년에 신림고시촌에서의 생활이 떠오른다.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가기 위해서 새벽 3시반, 4시에 일어나서 집을 나서곤 했는데.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부지런했다. 2007년엔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조금 많이 게을러졌지만.
꼭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걸 모두 이루고 말테다.

2009년 3월 13일 입소 11일째
내가 정말 해군에 오고 싶어서 온것일까. 나는 해군에 왜 온것인가.
바다가 좋아서 왔고, 배를 타고 싶어서 왔다.
해군에 지원해서 온 이상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이 또한 나의 신념이다.
어느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항상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믿음. 좋은 결과가 따르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는 믿음. 나에게 반드시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2008년 3월 19일 입소17일째
#옛날에 나를 무인도에 혼자 내려놓으면 나는 자신있게 나 혼자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절대 그럴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맛 보아온 음식들, 지금까지 만나온 나의 사람들, 절대 그들과 떨어질 수 없다. 너무 보고 싶다. 그들과 함께 숨쉴 수 있는게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내 주위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 까지 모두 소중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좀 더 잘하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선배들에게도. 정말 다 사랑한다.

2008년 3월 27일
통합평가를 실시했다. 그 동안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잘해보자라는 생가으로 최선을 다해서 평가에 임했다. 대대장님이 오셔서 인원점검을 했다. 순간 4주전 입교식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이 연병장에서 전투복을 입고 서있었는데... 시간이 모두 흐르고 평가를 받고 있구나..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 대대장님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4주간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듯 정말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병! 김! 선! 일!" 그렇게 난 해군이 되었다.

2008년 3월 28일. 기초교 수료
이윽고, 한달이 모두 지났다. 3월 3일 추운 날씨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군인이 되기 위해 들어왔고,
한달이 지나서 이병 계급장을 가슴에 달고 말았다. 정말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20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 한적도 없고, 이렇게 육체적 고통을 겪은 적도 없다.
군대가 편해졌다고들 하지만 군대는 군대다.
하루하루를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밝게 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기쁘다. 큰 일을 해낸 것 같기도 해서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정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만큼 늘 긴장을 하고 
본연의 임무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서 나의 지위 신분에 맞게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모두 추억이 되리라.

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자

목적이 있는 공부를 하자

내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잊어버리곤 하는 게 늘 문제다.
이 블로그를 잠깐만 둘러봐도 그 목적을 잘 떠올릴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들이 비록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곳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지 몰라도  돌고 돌아가서 결국은 그 곳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물론 지금의 과정 또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의 한 부분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데서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뇌는 새로운 자극을 좋아한다고 한다. 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지식, 새로움을 갈망하자.

모습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접점을 향하여

2012년 4월 24일

친구 마스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가슴이 움직인다.

일단 지금 열심히 해서
언젠간 내가 원하는 그 접점을 꼭 찾아내고 말겠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들과
내가 원하는 세상살이의 모습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접점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세상
잘 살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의 조화

나라는 인간과 나를 둘러싼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시간들을 살아가야 한다

2012년 3월 18일
두근거리는 시작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란 책을 모두 읽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 도서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박경철씨의 인생관이 모두 녹아들어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전해주는 편지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자기 계발 서적 관련 책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무한경쟁 시대 속에 청년들을 줄 세우는 스펙 경쟁보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과연 나는 스펙 경쟁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졌느냐다.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사실 내가 가진 스펙은 너무 초라하기 때문에 경쟁에 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자체도 의문이다.

적어도 이제부턴 내가 할 행동들에 대해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싶다. 인상깊었던 구절 중 하나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

늘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라는 말을 주문처럼 입에 외우면서 살아온 것 같지만, 내가 정말 어느 한 순간이라도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내가 나의 노력에 스스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랬던 적이 한 번 떠오른다. 작년 ISP와 JSP 때 우리 학교를 찾아온 외국 친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사흘 밤낮 잠도 안자가면서 CD앨범을 만들었는데 그 때는 내 스스로 노력에 감동을 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의식하며 나라는 인간과 나를 둘러싼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시간들을 살아가야 한다. 늘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자. 멋지게 날아올라야 한다. 크로니클의 세 주인공들처럼 날아서 하와이를 가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날아가야 한다.

내일은 새로운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달라진 모습을 보여보자!

마지막으로 책의 에필로그 부분이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밤안개는 지날수록 짙어진다. 빨리 지나가야 한다. 안개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을 맞는다. 인생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것이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도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전부다. 지금 이 순간 그 이상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필자도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시작은 늘 두근거린다. 그것은 이 책을 읽는 후배들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의 두근거리는 시작을 진심으로 성원하고 싶다. 진짜 파이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서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시작해야되는지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글을 이렇게 써내려가기 시작한 다음 이 글이 끝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 글이 끝맺음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글이 써내려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글쓰기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일단은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되는 '이어져 있음'에 관한 것이다. 어제 그러니까 2월 14일 저녁을 기숙사의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하나의 대화 주제를 가지게 된다. 수강신청 기간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라서 모두가 시간표를 만드느라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원래 2학점이었던 '글쓰기'과목이 이번 학기부터는 3학점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져나갔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관찰되어지는 자그만한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실에서 그 친구는 학교 행정 당국의 부족한 공지, 학생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처사, 학생회 역할의 필요성 등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나는 그에 대해서 친구에게 반론아닌 반론같은 성격의 질문을 해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초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3시간 반동안 이어졌고 그러면서 대화의 주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생은 누구인가, 즉 우리들은 누구인가로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현상)과 대상을 받아들일 때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과 사상에 입각하여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것은 곧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힘의 근원이 된다.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진보해 나간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더 건강한 사회다. 다양성을 해치려는 세력마저 또 다른 다양성으로 인정을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다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모두가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면 개개인의 존재 방식은 자꾸 억압받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을 표출하게 된다.

즉, 모든 객관적 현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받아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어제 대화의 핵심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소에 그러한 생각을 쉽게 망각하고 살아간다.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거지?' '어떻게 그 사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등등 우리들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주파수의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다양함' 또한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세력이 '다양한 다양성'보다 더 크다면 정말 '다양성'이 억압받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가 못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친구에게 '나'라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객관적 사실을 접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내가 살아온 날들에 이야기가 되었다. 친구에게 계속 말하면서 처음에 말할 의도가 없었던 나의 과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더라면 전혀 연관성을 가질 수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았을  개인적 역사가  같은 하나의 생각 아래 묶이고 있었다.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작년 대학생활까지 이어져와서 '환경분석론 수업의 교훈','불교철학 교수님의 가르침','인적자원개발론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즐거움'으로 계속되었다.

길고 긴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방에 올라갔고 나는 다시 한번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 시간대에서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뿌리를 두고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 뿌리라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고 그건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동일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애기를 적어보자.

개인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와 고민들은 사실 애초에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내가 요새 가장 문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마지막 대학생활을 앞두고 다가오는 취업 준비를 비롯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민을 안고있다. 난관을 잘 헤쳐나가는 내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1년 동안 나의 모든 미래가 결정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나는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최신 뉴스기사들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 때 우연하게도 나의 병영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모든 병영일기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는 일이 많다.) 나의 군생활 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은 상병과 병장 때의 부분이었는데, 어제는 희한하게도 좀 더 오래 전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삶은 늘 언제나 이런식으로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재생된다.)

그리고 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 당시에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사실들에 대해 지금에서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09년 4월 27일 http://seonil.egloos.com/9967345
  "책 한자를 더 읽고,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면의소리는 곧 나의 글로써 표현이 된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도록 하자. 글은 어떻게든 써지는 건가보다. 인생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로 내 인생을 꽉 꽉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게 만든다. 그저 그런 사이의 사람이 부탁했으면 정중히 거절했을 일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탁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더라도 모두 들어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계속해서 사랑하고 볼일이다. 참 골치아픈 인류애다. 사람을 사랑한다니.. 그래서 다들 보고싶다. 당신들과 함께 숨쉬는게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타인의 인정과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걸 잊지말자. 

09년 4월 26일 http://seonil.egloos.com/9967342
"깨어있다는 생각. 눈이 깨어있고, 귀가 깨어있고, 그리고 내 정신이 깨어있고. 늘 깨어있자. 세상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자. 살아있음을 느끼자."

09년 4월 23일 http://seonil.egloos.com/9967340
가장 최악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나. 한겨레 신문과 씨네21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는 느낌이다. 그저 나하나만 잘 살자고 살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 내 깊숙이 진보라는게 자리잡았던걸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은 진보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러는 걸까.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이건 인간애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에서 출발하는 그런... 
나란 사람 철저히 중간에 서려는 것 같다. 무섭고 잔인한 지성인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모든걸 희생하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야. 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내 마음가는 대로 날 완성해가며, 세상의 모든 존재형태(방식)을 한없이 존중한다. 기형도로서의 삶도 멋지고, 할리데이비슨족들의 삶도 멋있고, 운동선수의 삶도 멋있고,. 그래 된장녀와 된장남의 존재 방식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다름의 인정이다. 완전한 인정이다. 세상에 절대기준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인정은 어디까지나 신념이 존재하는 인간에 한해서다. 자신의 행동과 말과 존재방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만한 신념. 굳이 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고 있어야 된다. 
사랑한다. 내 삶과 내 존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살면 살아갈수록 명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멋지게 만들어 갈 것이다.

09년 4월 11일 http://seonil.egloos.com/9936322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글쓰기의 위력을 실감한다. 내가 쓴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당분간은 일기를 온라인에 옮기는데 좀 더 치중하자. 그걸 통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있다. 너무도 재미있다. 내가 썼던 글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나란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은 매우 기쁘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감이 충전된다. 부드럽게 나가자.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
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09년 1월 19일 휴가를 나가서 (3년 전의 내가 쓴 글)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꿈을 꾸는 듯한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일어났다. 전날 밤 인터넷으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종로의 서울극장에 예매를 해놓았다. 형 집에서 9시정도에 빠져나왔다. 날씨가 꽤 따뜻했다. 종로까지는 지하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생각했다.일단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노량진에 거의 도착해서 며칠전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대비강의를 듣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가장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나의 베스트프렌드! 너무 기뻤다. 거의 2년만에 처음 본것이니. 그 동안엔 그 친구의 연락처가 바뀌어서 연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밝았고 의욕도 넘쳐보였다. 우린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핫초코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초스피드로 나누었다. 그친구나 나나 말이 엄청빠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된 이후로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 정신이 없을정도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약 한시간 동안 온갖 주제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시간이 1분 처럼 느껴졌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 모두는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더 성장한 모습에 서로 감탄을 했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등학교 그 때의 모습, 여전히 변하지 않고 너로 남아줘서 고마워!' 대화 속에 오갔던 친구와 나의 고민들이 모두 잘 해결되길 바랄뿐이다.

영화 시작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급히 극장으로 갔다. 역시 오랜만에 가보는 종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고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어제 책을 사기 위해 학교 앞 서점을 갔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 어떤 책을 사야 가장 돈이 아깝지 않고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의 완벽주의나 시간적 효율에 대한 강박증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는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 주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영화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정확히 그것은 아니지만 내가 포착한 것은 그것이다. DVD의 날카로운 화질과 고감도의 음질을 비디오테이프는 절대 따라갈 수 없지만 그런 DVD조차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채워지지 못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든 옛것에 대한 따뜻함이든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든. 세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헛 될수도 있다. 그 영화를 보고서 종로거리로 빠져나왔는데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겨울인데도. 바로 가방안에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가 보고 있는 영상에 배경음악이 흘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완벽한 해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해답에서 좀 비껴나와 인생을 즐기는 태도. 수많은 영화에서 보고 깨달았던 내용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That's why I love movie.

 그래서 난 서점으로 갔다. (그래서 난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어제처럼 완벽한 책(완벽한 비디오)만을 찾으려 하지 않을거란 다짐을 했다. 쭉 훑어봤다. 마음이 이끌리는 분야(장르)쪽으로 갔다. 읽고 싶은 책(보고 싶은 비디오)을 집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카운터에가서 책 값을 (비디오 대여료) 계산했다. 서점(비디오 대여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어젠 1시간 넘게 서점에 있었는데도 책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고를 수 있었다. 신중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랐고 그 책에서 인생의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가지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어찌되었든 한 권의 책은 세상을 담고 있고 말이다. 나중에 내가 직업의 선택에서도 이런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완벽한 직장, 연봉도 높고 복리후생도 좋고 일은 어렵지 않고 명예도 가져다주는 직장. 그런 직장을 찾아헤매다가 난 서점에서 처럼 방황만 하다가 서점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눈높이를 낮추라고들 말하지만 눈높이를 낮추어선 안된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꿈을 낮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높이를 낮추다기 보다는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깨야한다는 것이 더 맞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고해서 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고해서 신이내린직장이라 불리는 몇몇 직장들이라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좋은작품을 읽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을 많이주는 기업이라고 해서 나와 맞지않으면 그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선택에 관한 문제)의 답은 나 자신으로 통한다. '완벽'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는대로 즐겁게 가야한다. 영화 한편이 나의 생각을 이렇게 확장시켜줬다.
오랜만에 도심을 걸었다. 종로-청계천- 을지로-시청-남대문시장-서울역까지. 예전에도 한가로운 날이면 자주걸었던 코스다. 길을 걷다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이 보인다.종로와 을지로의 높이 솟은 회사의 빌딩들과 세련된 회사원과 청계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과 들과 남대문시장의 언 손을 녹이는 상인들과 서울역의 노숙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아우르는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편견없이 모든 세상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2009년 1월 19일 군생활 일기, 휴가를 나와서
 http://seonil.egloos.com/9901021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내 인생이 지구에 더해짐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인생

중학교 때 휘트니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이란 노래를 처음 듣게 된 이후로 그녀의 노래에 빠져 지냈던 날들이 있었다. 그녀가 죽고나서야 그녀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가 멋지게 재기해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녀는 떠나갔기 때문에 그녀와는 더 이상 지구의 공기를 함께 나눠마시진 못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우리 귓가에 영원토록 맴돌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 가치가 손상되거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있다면 나의 인생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처럼 내 인생이 지구에 더해짐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2012년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 눈을 감다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I've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in side of m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easy to achieve 
Learning to love yourself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나는 오래전에 다른 사람의 그늘 안에서 머무르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내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믿는 그대로 살아갈 겁니다
그들이 내게서 모든 걸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내 존엄성은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난 내 안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을 이루기는 쉽습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The Greatest Love Of All 중에서

어느 누구도 남을 대신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남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다

2012년 2월 9일

시크릿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해가 2007년인데 출간되고 나서 약 5년이 지난 후에 읽은 것이다. 그동안 시크릿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많았는데도 신기하게 읽어 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번 친구로부터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시크릿을 읽어보라고 권해 준 친구가 몇 명 있었다. 2007년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대학교 선배, 2009년 군대의 선임, 2010년 워킹홀리데이에서 만난 친구, 2012년 삿포로 여행을 함께 간 친구.

그러고보니 모두 내가 특별한 것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이 시크릿을 읽어보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시크릿을 모두 읽게 되었다. 어떠한 내용인지는 너무도 익히 들어와서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대로 되는 세상과, 우리 모두가 우주이며 내가 곧 우주라는 생각,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생각. 기쁨, 사랑, 자유, 행복, 웃음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도 그렇고. 모든 우주가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도 언제나 생각하는 것들이다.

저번 달 일본여행에 갔을 때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걸 보기도 했고. 내가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계속 겪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시크릿이란 책을 읽은 것도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필요했던 책이며 이 또한 우주가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이해하고서, 나는 앞으로의 삶을 창조해간다.

경험한 모든 일, 지나간 모든 순간은 바로 '지금'을 위한 준비였다. 지금 당신이 아는 지식으로 오늘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이제 당신은 자신이 운명을 만드는 창조자임을 알았다. 그러면 이제 얼마나 더 많이 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을까?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현재에 몰입할 것인가? 어느 누구도 남을 대신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남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다.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리사 니콜스

A Father’s Prayer 아버지의 기도

A Father’s Prayer 아버지의 기도
by General Douglas MacArthur

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One who will be proud and unbending in honest defeat,And humble, and gentle in victory.
Build me a son whose wishes will not take the place of deeds;
A son who will know Thee – and that to know himself is the foundation stone of knowledge.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Lead him, I pray, not in the path of ease and comfort,
but under the stress and spur of difficulties and challenge.
Here, let him learn to stand up in the storm; here let him learn compassion for those that fail.
Build me a son whose heart will be clear, whose goal will be high, a son who will master himself before he seeks to master other men, one who will reach into the future, yet never forget the past.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그의 마음은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And after all these things are his, add, I pray, enough of a sense of humor,
so that he may always be serious, yet never take himself too seriously.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meekness of true strength.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그 위에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비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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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되자. 예전부터 많이 접해 온 글이지만,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