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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유지에 대한 고민

예전엔 블로그에 자주 들러 글을 쓰던 것이, 최근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게으름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엔 글 쓸 단서를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데, 그건 게으름으로 모두 설명된다.

그 밖의 다른 변명을 더 대보자면

1. 트위터를 다시 하면서 
   -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트위터에 잠깐씩 기록한다. 그러다보니 정말에 단순하며 생각의 확장에 이르지 못하는 문장들을 올리고 있다. 트위터에 별 내용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저 느낌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어딘가에 적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음은 아니다. 군대에 들어가 훈련병이 되었을 때도 노트와 펜을 받자마자 훈련병의 일상을 기록했다. (일상을 어느정도 깊이로 기록하느냐는 물론 차이가 있다.) 지금은 트위터며, 구글플러스며, 페이스북이며, 내 PC의 파일들, 또는 클라우드 상의 파일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만 블로그에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 것. 어쩌면 공개할만한 기록이 없는 것. 비밀글은 많이 작성하고 있다.

2.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
  - 내 블로그는 '나'를 그려왔다. 2005년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9년이 채워져 간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내 블로그만 잘 읽어보면 나라는 사람을 100%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지인들의 관계도 모두 알 수 있다. 그만큼 내 블로그는 나와 이미 동일시되어 있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기록하는 나의 페르소나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블로그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 이를테면 영화, 음악, 책, 사진 등을 모아놓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대학생활의 모든 경험과 생각들, 나의 역사들이 고스란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이곳에 쌓아가고 있는 것이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실 서로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도 좀 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

3. 네이버 블로그 유지해야 하나
  - 네이버의 서비스가 폐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스레 폐쇄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 그만큼 국내시장에서는 네이버가 검색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네이버가 자사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네이버 블로그에 나는 9년간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큰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나는 네이버에 계속 내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모든 데이터를 백업해 놓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검색해봤더니, 그 방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고 너무도 불편하며 파일 포맷도 PDF만으로  제공하더라. 순간, 위기 의식을 느꼈다. 발을 쉽게 못 빼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1)정말 오랜시간을 걸려 자체적인 백업방법으로 백업을 할 것이냐 2)네이버 블로그를 그냥 끝까지 이용할 것이냐 3)네이버 블로그를 폐쇄할 것이냐 등이다. 1번은 그 동안 올린 데이터(글과 사진과 영상)가 너무 방대해서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고, 2번은 솔직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이후로 모든 검색은 구글을 이용하고, SNS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기타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폐쇄적인 네이버는 그런 것들간의 동기화 혹은 호환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조금 더 네이버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광고액에 따라 우선적으로 광고를 노출시키는 네이버 검색이야 진작에 사용하기를 포기했고, 메인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신문 모양의 언론사 링크는 클릭할 동인이 없고, 그마저도 뉴스 기사를 읽으면 표현의 자유가 난무하는 댓글들에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잘 쓰고 있는 것도 있다. 네이버 사전과 지도! 특히 네이버사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네이버랜드에 내 역사를 쌓아가는 일을 재고하고 있는 중이다.

각각에 대한 결론
1. 트위터에 짧은 단상을 적더라도  그 생각을 확장하여 글을 쓰는 연습을 하자.
2. 세상에 의미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분야를 정하자.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글)
3. 당분간은 현상 유지를 하는 동시에 네이버를 탈출하여 둥지를 틀 수 있는 새로운 스페이스를 모색해보자.


종교 문맹 극복하기, 알리 아사니

종교 문맹 극복하기, 알리 아사니


종교 문맹의 공통 증상 하나는 종교라고 하면 흔히 제례, 의례, 종교 축제 같은 종교 행위만을 떠올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개인 공동체 국가의 행위를 전적으로 종교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무슬림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조리 종교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 보니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를 괴롭히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경제 후진성, 부당한 처우, 여성 비하 같은 다양한 해악의 주요 원인으로 이슬람을 꼽는 사람이 흔하다. 많은 무슬림이 보기에, 이런 해석은 기독교가 주요 종교인 미국의 범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기독교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 없다.

종교를 이해한 학생이라면 종교 해석은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 한 일임을 알게 된다. 신앙인이라면 특정한 종교 진리를 신성한 계시로 여길 수 있는데, 그들이 그 진리를 토대로 쌓아 올리는 의미들은 그들이 처한 세속의 환경과 현실에 크게 좌우되게 마련이다.

종교 문맹과 문화 문맹을 방치한 민족과 국가는 결국 그들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를, 다시 말해 그들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만다. 종교와 인종이 다른 집단 사이에서 상대 집단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아 충돌과 비극이 발생한 예는 역사에 무수히 많다. 특히 정치 충돌과 군사 충돌이 고조된 시기에는 국가 문화 종교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를 인식할 때 종교 문맹과 문화 문맹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충돌은 흔히 과장되고 상반된 이분법과 언어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테면 문명인과 야만인, 선과 악, '우리'와 '그들'등이다. 이 같은 이분법은 서양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의 차이를 논의하는 오늘날의 토론에서 특히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의 묘사는 많은 사람에게 먹힐지언정 여러 관저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서양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적대적이고 상반되는 용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옳지 않다. 종교 사상이나 개념에서 두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문화뿐 아니라 아브라함 전통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분법은 '타인'을 모욕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으로 그리는 탓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종교의 세 가지 접근법 : 신앙 접근법, 문서 접근법, 상황 접근법

종교의 표현과 해석을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비신학적 요소와 관련 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는 것은 상황 접근법의 핵심 원칙이다. 해석의 문맥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는 이 세 번째 접근법을 이용한다면, 같은 종교 전통도 그것을 묘사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상반도리 수 있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코란이나 성경 같은 종교 문서도 신자들이 그들만의 다양한 목적을 정당화할 요량으로 임의로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목적은 포용과 배제, 자유와 억압, 민주 정치와 신권 정치 등 서로 상반되기도 한다. 상황 접근법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비판적으로 고민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효과적인 틀이다. 이 연구법은 종교 연구란 일상에서 종교를 실천하고 해석하면서 종교의 영향을 받고 사는 인간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종교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비교종교학 교수를 지낸 고 Wilfred Cantwell Smith는 저서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서 우리는 흔히 종교를 각 종교 고유의 믿음과 실천 체계를 갖춘, 늘 동일하고 의미가 명확하고 조직화된 관념으로 인식한다며, 이런 인식은 유럽 계몽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종 민족 문화가 다른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무수한 해석을 내놓는 다양한 이야기다. 이슬람과 그것이 무슬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요한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어떤 이슬람인가? 누구의 이슬람인가? 어떤 상황에서의 이슬람인가? 무슬림 중에서도 특정 교파 (수니파, 시아파 등)에 한정된 이슬람만 아는 다수의 무슬림은 같은 무슬림이면서 자기와 다르게 신앙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볼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어떤 이는 이 다양성에 위협을 느껴, 진정한 이슬람은 하나뿐이라고, 자기가 믿는 이슬람 하나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다양성은 인정하되 모든 무슬림이 특정한 기본 믿음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의 다양성을 공동체의 힘과 신의 자비를 드러내는 표시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도 있다.

Cantwell Smith 교수는 이 변화를 구체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신앙, 경험, 종교 행위 같은 유동적 개념이 차음 '종교'로 추상화하고 일반화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가령 예수의 제자들이 이 점진적 과정으로 기독교인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를 유대인과 점점 차별화하기 시작했던 일을 떠올려보라. 이슬람도 이와 비슷해서,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자기들만의 차별화된 사회, 정치 공동체를 만들 필요성에서 구체화 과정을 이용했다. (Wensinck (1932), 2007) 이들의 정체성은 지도자 무함마드를 향한 충성심으로 결속한 초대형 부족에서, 자기들만의 종교 집단으로, 스스로를 '무슬림'이라 부르는 집단으로 바뀌어갔다.

무슬림 사회는 전 세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수많은 다른 요소와 연관 지어 해석하려고 고민 중이다. 민족주의, 현대성, 세계화, 산업화, 종교 간 그리고 내부 종교의 다원주의, 문화 간 그리고 문화 내부의 다원주의 등이 모두 고려 대상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런 고민을 할 때는 특정한 역사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여러 비무슬림 세력은 무슬림을 직간접적으로 거의 식민화했다. 그들은 식민화 계획의 일환으로, 무슬림 사회를 식민지로 재빨리 바꾸려 했다. 식민 시대가 지난 지금, 무슬림 사회는 다른 나라가 정한 이상과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진정한 이상과 기준에 따라 정체성을 발견하고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동 부류에서 진보 부류까지 다양한 신앙 해석과 해법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대중 매체가 보여주는 모습으로만 이슬람 전통을 해석하는 일반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슬람을 '과격하다'거나 '극단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인을 '이슬람'이라는 획일화된 상상의 모습에 돌리지 말고 그런 해석이 나온 상황과 환경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오늘날의 이슬람 해석 가운데 상당수는 세계화와 민족주의 같은 힘이 무슬림 사회를 지나치게 왜곡한 결과가 분명하다. 칼 언스트는 종교를 설명할 때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결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항상 특정 장소와 연관되는 다양한 문화, 역사와 얽히게 마련이다. 종교에 관한 과장된 수사를 이해할 때는 반드시 상황을 고려해야 말하는 사람의 목적과 그 반대자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심리학의 인지적 편견

귀인 편견(attributional bias)은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심리학의 인지적 편견 중 하나다. (귀인)

귀인 편견은 보통 행위자/관찰자 차이(actor/observer differences)의 형태를 띈다. 어떤 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행위자)는 그 것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과(관찰자)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종종 가용성(availability)의 비대칭성에 의해 생긴다. 예를 들어 행위자의 행동은 관찰자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이 후에 더 고려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인에 대한 판단은 이런 이유들로 왜곡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몇몇 실험에서 실험 대상자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쪽만 보거나, 한 사람의 얼굴만 보았다. 실험 대상자가 더 잘 볼 수 있었던 사람에 대해 실험 대상자는 그 대화에서 더 중요하거나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귀인 편향은 아마 근본적 귀인 오류일 것이다.

http://ko.wikipedia.org/wiki/귀인_편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우리의 뇌는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보급되는 초기만 하더라도 머릿속의 궁금증들은 쉽게 해결될 없었는데,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은 이상 우리가 생각을 지속할 없게 만든다. 우리는 항상 (카톡 메시지로부터, 페이스북 댓글로부터, 블로그 댓글로부터)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끈질기게 생각할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유용한 정보를 빨리 찾아내는 사람이 유능해 보이는 사회를 살아간다.

이하 책의 문장들


사회적 또는 지적 영양분이 담긴 작은 알갱이가 쏟아지도록 명령하는 손잡이를 끊임없이 누르는 실험실의 생쥐
 당신이 있는 것은 기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고
 동료들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우리에서 낙오되는 대한 극도의 불안감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인터넷이 주는 자극의 불협화음은 의식적 무의식적 사고 모두에 합선을 일으켜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우리 뇌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전시킬 때마다 물리적으로 기능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수정된다. 강도 높게 연습한 특별한 과정을 강화시키며 문화가 뇌가 관여하는 부분의 변화를 이끌 이는 다른 뇌를 만들어낸다깊이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형성되는 풍요로운 정신적 연계 능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은 장기기억에 저장되며 이는 우리 뇌속에 며칠 또는 평생 동안 남는다. 뇌과학자들은 장기기억이 실상을 이해가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발견했다. 장기기억은 사실 뿐만이 아니라 복잡한 개념 또는 스키마(계획이나 이론 등의 윤곽)들을 저장한다흩어진 정보의 조작을 지식의 패턴으로 조직함으로써 스키마는 우리 사고에 깊이와 풍부함을 제공한다. 스웰러 “지적인 기량의 대부분은 오랜 시간에 걸쳐 획득한 스키마로부터 나온다.” 방대한 능력을 지닌 장기기억과는 달리 작업 기억이 저장할 있는 정보의 양은 아주 적다. 문자에만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혹은 대부분의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달하고 스키마 형성에 필수적인 풍부한 연관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인지부하 Cognitive Load계속해서 집중할 있는 능력도 우리의 작업기억에 달려있음. “우리는 우리가 집중하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높은 인지적 부하는 우리가 경험하는 산만함을 확대시킨다. 정보에 대해 분별이 없는 소비자
 인터넷에서의 지적활동은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책을 읽는 환경과 같다. 하이퍼텍스트를 읽는 이들은 페이지를 주의 깊게 읽는 대신 산만하게 링크를 클릭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무엇을 읽고 읽지 않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함.”독자들은 링크를 평가하고 클릭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높은 집중력과 함께 뇌의 역량을 쏟아 부어야 했다. 빈번한 중단은 우리의 사고를 분산시키고 기억을 약화시키며긴장한 상태로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생각의 고리가 더욱 복잡할수록 산만함은 손상을 입는다.  시간에 개가 넘는 알림 메시지
 집중력이 분산된 따른 부정적 효과는 청각적 시각적 양식의 모드를 사용함으로써 개선될 것이다. 인터넷의 방해 체계집중력 분산을 위한 기계
 산만한 상태에서 사실과 개념을 배울 경우 나쁜 결과를 낳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방해받기를 원하는데이는 각각의 방해가 가치가 있는 정보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우리() 인지력의 전환비용 Switching Cost.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다시 방향을 잡아야하고 우리의 정신 세계에 많은 고통을 가한다. But, 알림 메시지를 제거하면 연락이 끊긴 느낌또는 심지어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마저 가져올 잇는 위험이 있다인터넷의 지속적인 새로운 정보의 흐름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집중과 몰입 그리고 관심의 문화와 생각의 분산이라는 손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독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을까읽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평균 19초에서 27 가량 페이지를 둘러본 다른 페이지로 이동한다. 멀티태스킹을 많이 할수록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사람들은 독자적인 사고로 도전하기 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모든 곳에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 사용되는 부분은 악화되거나 또는 사라지고 있음을 짐작할 있다. 지식에는 종류가 있지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네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우리의 사고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 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능력 말이다. 우리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똑똑할 뿐이다. 웹에서 디자인은 예술이라기보다는 한층 높은 차원의 과학이다. GOOGLE : 세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이를 광범위하게 접근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작업은 30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당신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당신이 원하는 바대로 그것을 돌려주는 무언가완벽한 검색엔진을 꿈꾼다.” 정보는 일종의 상품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수록 핵심을 빨리 파악할수록 사고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더욱 상식적이 된다. 구글의 수익은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상의 모든 클릭은 우리의 집중력을 깨트리고 주의력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회사가 가장 원치 않는 것은 여유롭게 우리는 행위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구글은 산만함을 업으로 삼는 것이다. 구글은 정보가 공짜이기를 바란다 이유는 정보의 비용이 하락할수록 사람들은 컴퓨터 스크린에 많은 시간 동앙ㄴ 시선을 고정하게 되고 그러면 회사의 수익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구글에 있어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보완재이다. 구글의 영역이 팽창할 때마다 테일러적 윤리는 엄격하게 우리의 지적 생활을 제어하게 된다. 구글의 창업자들이 불안한 이유는 그들이 창조주보다 한발 나아가 사고할 있는 놀랍도록 멋진 기계를 창조하려는 소년 같은 열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그것은 같은 열망을 가지도록 그들의 인간의 사고에 대한 이해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상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읽기란 단순한 저장 이상의 의미이다. 인간의 뇌는 이상 경험을 기억할 없는 지점에서 도달하는 법이 없으며 인간의 뇌는 없다.”장기기억에 사실상 저장될 있는 정보의 양은 사실상 무한하다.” 새로운 장기기억은 저장할 우리는 정신적인 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기억을 확장할 마다 지적능력은 향상된다우리는 풍부함으로 가득 우리의 마음을 텅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인터넷은 그야말로 망각의 기술이다. 기억강화의 핵심은 집중이다기억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 유입되는 정보는 철저하고 깊이 있게 처리되어야 한다예리하게 집중할수록 기억도 예리해진다. 집중: ‘머릿속의 유령처럼 지극히 가벼워 보이지만 이는 완전히 육체적 상태이며 전체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가한다.
 

2012년 북마크 - 즐겨찾은 사이트

2012년 북마크 - 즐겨찾은 사이트
이것은 내가 2012년 한 해동안 자주 찾았고, 현재도 즐겨찾고 있는 인터넷 세상
또는 기억하기 위해 즐겨찾기로 등록해놓은 웹페이지들.
브라우저 크롬을 사용해서 정리했다.
2013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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