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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살고 싶어서 쓰는 글

천천히 살고 싶어서 쓰는 글

우린 늘 부족한 시간 속에서 시간에 쫓기며 빨리 빨리 움직이며 살아간다. 빨리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재밌기도 하며 중요하기도 하다. 남들보다 빨리 결승선에 들어오는 것은 재밌는 일이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빨리 움직여야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살아가는 것도 재밌고 중요하다. 우리는 인생이 짧은 것 같아서 빨리 움직이지만, 인생은 천천히 즐기며 살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길다. 빨리 살아가면 더 짧아지고, 천천히 살면 더 길어지는게 인생이다.

인생, 천천히 살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잡고 있고,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초조해 하지 말고, 하루가 곧 내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길게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금 어떤 선을 어떻게 그려내려가고 있으며, 다음은 어떤 선을 그릴지, 다음에 무슨 글자를 쓸지, 다음에 어떤 반찬을 집어먹을지,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내딛을지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결정한다. 무의식적 선택에 익숙해져서 중요한 일들 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하는 것들, 그것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야 한다. 선택이란건 인생의 전부이며, 매 순간 선택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선택을 하는 것이 곧 디자인이다. 인생의 설계이며 계획이다.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계속 해나간다는 것. 하루를 좋게 보낸다는 것은 좋은 선택들로 인생을 채우는 것. 그러한 의식적인 선택들을 이어나간다면 적어도 그건 내 인생이 된다. (남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도 내 선택이긴 하다)

천천히 글씨를 쓰고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글씨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넘어서면 함께 할 수 있었던 생각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생각이 천천히 가게 놔두자. 책도 천천히 읽자.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쓰고 천천히 씻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듣고, 천천히 생각하자. 빨리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즐기면서 하는게 중요하다. 뭐든지 빨리 끝내려고 하면서 살아온 내 인생, 이러다가 내 인생도 빨리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빨리 배우려하지도 말자. 천천히 느긋느긋하게 배우자. 어차피 배움은 평생 가지고 갈테니까 말이다. 빨리 무언가를 끝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이고, 의자에 앉는 것이고, 요리를 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것,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비디오샵에 가는 것,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재생하는 것, 친구와 만나기 위해 만날 약속을 잡는 것, 영화제에 가기 위해 영화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것,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 몸짱이 되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는 것,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실제로 행복을 움직여야 한다.

결과에 실망도 하지 말자. 어차피 인생은 계속 된다. 그러니 천천히 느긋하고 신중하게 순간순간 집중과 정성을 다하여 무엇이든 즐기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된다.

그대에게 꽃을

꽃을 주고 싶다. 엄마와 아빠에게. 친구에게. 꽃을 안겨주고 싶다. 친구가 말한대로 너무 고마운 사람들에게 꽃을 안겨주고 싶은 멋진 인생. 멋진 인생이 되었기 때문에 꽃을 안겨주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마운 사람들에게 꽃을 안겨주다보면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꽃은 그저 고마움이다. 나의 인생의 어느 페이지와, 그대 인생의 어느 페이지가 겹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과 , 그 놀라운 만남으로부터 느껴지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찬 인생. 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들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대들에게 달려가 꽃을 주고 싶다. 같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모든건 인식하기 나름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생각한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꽃처럼 말이다. 우리는 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도 똑같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자. 원래 인생이 아름다운지는 아름답지 않은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말할수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건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다.

나는 원래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이 밤에 다시 한번 찾아온다. 늘 주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시간과, 나의 열정과, 나의 사랑과, 나의 기쁨을 그대들에게 주고 싶다. 다시 한번 이 생각을 나의 중심으로 옮겨놓아야 겠다. 그러면 나는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주는 것이 행복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마음밖에 없을지라도 그 마음이 그대들에게 전해진다면 나는 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은 천천히 흐르기 마련이다. (인생처럼) 내가 당장 그대들에게 달려가서 꽃을 안겨주지는 못하더라도, 조금만 여유를 갖고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천천히 천천히 그대들에게 걸어가고 있으니 (가끔은 뛰어가고, 가끔은 쉬기도 하면서) 하지만 내 인생의 끝자락, 때로는 중간중간, 때로는 내일 그대와 마주하며 나의 마음을 줄 것이다.

마음을 준다는 것, 달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태양계가 은하계를 여행하는 것. 우리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우주가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를 당기고, 그대는 나를 당긴다. 겉으로 보기엔 밀어낼 때도 있지만 그 또한 결국은 더 큰 끌어당김을 위한 것이다.

그대와 나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리의 우주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리를 부르는 무언가로 끊임없이 향한다. 우리는 크나큰 우주를 여행한다. 그대와 내가 하는 여행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함께 하는 한.

너를 생각한다. 너를 당긴다. 너에게 준다.

우리의 마음이란.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사랑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사랑이 찾아오는 이야기. 그대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 그대를 생각한다. 그대의 눈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대와 키스를 나누고 싶다.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연결되는 일.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일. 그제와 어제를 연결하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일. 어제 마신 커피와 오늘 내가 흘린 땀을 연결하는 일. 내 손등위의 털 하나와 그대 손등 위의 털 하나를 연결하는 일. 제이와 나를. 그대와 나를. 그대의 땀과 나의 숨을. 그대와 또 다른 그대를. 나와 세상을. 나의 관심사와 또 다른 나의 관심사를. 잠실과 서울대입구를 연결하는 일.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연결 짓는 일.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우리는 연결되기 위해 태어났다. 모든 우주의 에너지도 그렇다 . 우리가 연결되는 일. 너와 내가 연결되는 일.

수많은 점이 존재함을 깨닫자. 모든 점을 연결하자.
어떻게 연결시키고 연결되느냐에 따라 뇌의 활동이 바뀌고 자신이 변한다.
뇌의 세상과, 내가 존재하는 세상.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마음일지 몰라요

오랜만에 쓰는 글은 얼마나 두려운가

많이 두렵죠. 오랜만에 쓰는 글에는 '내 글'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글을 써오던 방식. 글을 쓸 때면 했던 생각들, 그런 걸 기억해내기 쉽지 않을테니까요.

개인이 살아온 시간의 기록으로서의 글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지 않은 공백만큼 우리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마는게 아닐까요.

네, 물론 시간을 통째로 잃는 일은 없어요. 우리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살아왔던 게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은 희미해지고 말거에요. 시간이 희미해진다는 것. 그건 잊혀진다는 거죠.

우린 왜 잊혀짐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우린 왜 두려움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두려움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 인생에 그토록 따라다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인생은 두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이유라고 한다면, 저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곳에 두려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 그때마다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다른 것뿐이죠.
언제는 사랑을 하지 못할까 두렵고, 언제는 사랑을 잃을까 두렵고, 언제는 내 자신이 정체해 있는 것 같아 두렵고, 언제는 모든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까봐 두렵고 말이죠.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마음일지도 몰라요.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두려운 일이에요.
그 간의 공백을 채울만큼의 좋은 글을 쓰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일거에요.

전 또 두려움을 느끼고 있네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생각의 조각들 18. 아름다웠던 나의 '시간'들을 늘 가슴에 담아두고

학생 때는 하루 빨리 그 시간을 뛰어 넘어 숙제와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어른들은 항상 우리에게 학생일 때가 가장 좋다는 말을 하며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고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그런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린 충분한 경험을 통해서 아무리 힘든 시기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는 것을 배워왔고 계속해서 경험해 나가고 있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페이지를 멋있게 장식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아름다웠던 나의 '시간'들을 늘 가슴에 담아두고 '더' 아름다운 시간을 살아간다면 모든 시간을 아름답게 추억할 것이고 삶에 후회가 없을것이다. 나를 이곳까지 이끈 나의 선택을 사랑하며, 나에게 따라오는 운명을 사랑한다.

- 2014 가을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어떻게든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건 '시간'이 지나서도 지금의 시간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 우린 지금의 기록이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의 중요성은 중학교 때 메모라는 습관을 몸에 지니게 된 이후로 수없이 생각해 온 것이기 때문에 매회 리마인드할 필요는 없더라도) 과장되게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선조들이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던 토기들 조차도 지금은 모두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지금 시대 사람들의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올해 들어 여름과 밤이 만난 이래로, 여름밤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된 이후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 밤과 만나 여름밤이 되고, 여름밤이 산책을 만나 여름밤의 산책이 된다. 또 여름밤의 산책은 음악도 만나고, 사색을 만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 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홀로 서 있을 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같이 서 있으면 아름다움은 늘 더 빛나는 법이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시간에 아름다움을 보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은 늘 찾아오고, 그 안에는 낮과 밤이 있다. 여름의 낮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시원한 그늘과 수박을 찾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여름밤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밤 바람을 쐬며 조용히 산책을 한다. 그런것들은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이미지로서 회상하지 않는가. 그 여름밤 먹었던 달콤한 수박,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날 만났던 친구. 그러니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올 여름을 보내야 겠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해야할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1년, 5년, 10년이 흐른 뒤에도 2015년의 여름은 아름다웠노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 7월 여름밤

직업, 가족, 대형TV,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

왜 그랬냐구? 이유야 많겠지만 다 오답이다. 정답은 '난 나쁜놈이니까' 그렇지만 바뀔것이다. 난 새 인생을 살 것이다. 못된 짓은 이게 마지막이다. 손 씻고 이젠 깨끗하게 살련다. 똑바로 살면서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지금 즉시부터 말이다. 당신처럼 살 것이다. 직업, 가족, 대형TV,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 자동병따개, 건강, 낮은 콜레스테롤 수치, 치아보험, 임대, 새집마련, 운동복, 가방, 비싼 옷, DIY, 쇼프로, 인스턴트 음식, 자녀들. 공원을 산책하며 골프도 치고, 세차도 하고, 스웨터도 고르고, 가족적인 크리스마스도 맞고, 복지연금, 세금감면, 빈민구제. 근근히 살다, 비전을 갖다, 운명하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것' 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비슷하게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해서 쓰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걸까.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글과 정확히 같은 글이 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글을 다시 한 번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 내용에 대해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11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8478.html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5001.html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13년 4월 17일 봄날  http://seonil.blogspot.com/2013/10/blog-post_9417.html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헤쳐나가고 있는 인생의 상황이 모두 다름에도 '나'라는 사람은 나의 '글'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발견한다. 발견하는 모습 - 과거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생각에 성장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 - 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안도감과 비슷한데, 어떤 안도감이냐면, 내가 과거의 '나'의 모습을 가끔씩 되돌아 보고서, 때로는 '지금보다 과거의 가졌던 생각이 더 좋았구나' , '과거를 보고서 지금을 좀 더 반성해야지'라는 느낌들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과거에 순간순간 품었던 생각들은 어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족들, 친구들. 어떠한 삶을 살아내든 나를 믿고서 끝까지 응원하겠노라고 말해준다. 심지어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너는 옳은 선택을 할거니까'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위로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건 과거에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는 당연히 아닐뿐더러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말이다.
“우리의 현재 모습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과거에 서있던, 미래에 서있을, 그리고 지금 서있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건 과거의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모습이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駒込、渋谷、新宿、銀座、丸の内、新橋、上野、目黒 를 돌았던 이번 여행
5일간의 짦은 여행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간도 있었을 만큼 그렇게 짧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 5일은 5년전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축약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았던 코마고메. 아... 코마고메..일이 끝나고 나서 혼자서 밤늦게 까지 즐기던 노래방, 노래방을 나와 배가 고프면 찾아가서 먹던 마츠야의 규동. 내가 일했던 카페가 있던 긴자거리... 긴자에서 일이 끝나면 혼자서 산책했던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그리고 시부야. 그리고 시부야. 시부야의 가츠동, 시부야의 신호등, 시부야의 콜드스톤, 시부야의 하치코. 이 모든 걸 다시 한번 천천히 경험한 여행이었다.

5년 전 나의 일본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었다. 코마고메에 살며, 긴자와 마루노우치를 걷고, 시부야를 신나게 즐겼다. 그 때 나의 나이는 스물두살이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스물일곱. 5년이나 흘렀다.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의 모습에 잠깐 슬펐다. 

언제나 천천히 흘러가는 거리. 한국에서의 5년이라면 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길 몇번이나 반복했을 시간이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방문한 코마고메는 거의 모든게 그대로였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던 규동가게 요시노야가 없어지고 피자가게가 생긴 것과 그 맞은편으로는 KFC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얘기는 어쩌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만 더 와닿는 말인가 보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변해가는 모습보다 내 주위가 훨씬 빨리 변해가서 그 차이를 좁힐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좀 슬픈 얘기다. 어쩌면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코마고메라는 마을이 너무 고마웠을 뿐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도 고마웠지만, 눈물이 날만큼 가장 고마웠던 건 역시 친구들이었다. 유헤이상, 스기야마상, 쿠사야나기상, 야마구치상, 마스미, 히메, 레이카, 모요카, 료코, 마루코, 아짱, 오구치, 케이짱, 오도리, 치히로, 유유,,, 이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5년전 그대로,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밤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모두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것만으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5년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결심은, 그들에게서 받은 행복은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5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아마 평생 내가 주위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해도 내가 그들에게서 1년 동안 받은 행복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그 문제를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뭔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 됐다. 늘 의지를 가지고 시작되는 사유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리며, 몸은 눈을 뜨면 움직이고 눈을 감으면 단절된 세계로 다시 들어가버리는 그 이상의 그 이하도 아닌 패턴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건지,  멋진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싶은건지, 꿈? 꿈을 이루고 싶은건지, 아니면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조용히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건지. 명확한 구석이라곤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눈물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좋게 보자면 감성이 풍부해진거고, 안좋게 보자면 마음이 유약해진거다. 군대에 있을 때, 고민을 했던 것 한 가지가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질 않아서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재밌다.

예전에는 어떤 생각이 시작을 하게 되서 글을 쓰게 되면 최대한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야만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복잡한 상황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정리해낼만한 최소한의 마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마저도 잃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는 '버티는' 삶이란 걸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하게 공감되는 단어다. '버티다' 책을 좀 더 읽고서 어떻게하면 잘 버틸 수 있는지 배워야겠다. 책에서 그걸 알려줄지는 잘 모르겠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가 시끄럽다. 옆 테이블에는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들 여섯명이서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에 모여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 요새 계속 듣고 있는 노래 '희재(성시경)'를 듣기 시작했다.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

길고 긴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는 것. 그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이 어제나 그제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들도 있다.  오늘은 일어나서 집에서 일을 하다가 도저히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카페에 나와서 일을 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그 친구는 요새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일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가도, 설레다가도 하고 그런다. 그저 친구의 사랑이 아주 잘 풀리길 바랄뿐이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에는 재즈가 흘렀다. 

나는 요새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긴한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내가 살아왔던 날들 중에 단연 행복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친구와 나는 한 상에 만원하는 광어물회에 소주를 두 병 마셨다.오늘 친구와 술을 마신 것도 행복한 느낌때문에 마신 것이다. 술을 마셔서 조금 더 행복해지긴 했지만, 술자리를 접고나서 나는 다시 또다른 카페에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슬프다. 아까까진 엄청 행복했었는데 이상하다. 옆 테이블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 때문인가. 창밖으로 비에 젖어있는 거리 풍경 때문인가. 성시경의 노래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카페의 풍경이 뭔가 서글프다. 나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고 싶은거나 해야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

가장 많이 하는 다짐 중 하나가 글을 열심히 쓰자는 다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펜과 키보드를 잡는 건 어렵다. 또 모든 일에서 그런 것처럼 무언가를 한번 안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또 한 번 하지 않는 건 점점 쉬워진다. 헬스, 공부, 사람 만나기 등등등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발력'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쉽다.(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는 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50%의 준비완료 상태라면, 나머지는 50%는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로 그 행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일단 밥통에 밥이 있으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줄어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도 한결 간단해진다. 밥상에 올릴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반 20분이 되면 동네에 두부장수가 지나가면서 종을 울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분은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맞닿아 있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우린 마음속으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을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우린 인생을 살아내고 살아낸만큼 정리하길 반복한다

어느 시점에서인가, 나는(우리는) 지금까지의 정리안된 사진들이며 글들을 정리해야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고나면 실제로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잘 정돈되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내고, 살아낸만큼 정리하고, 또 살아내고, 또 정리하기를 반복한다. 

그건 마치 방을 어지럽히고, 청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청소를 하고 나면 방을 다시 어지럽혀도 되는 기분인 것처럼, 정리를 하고 나면 늘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요즘 그 정리하는 일이 적어진 것 같긴 하다. '새로 시작함'에 있어서 정리보다 좋은 것 없다는 줄을 알면서도 늘 '정리의 시작'은 어렵다. 확실한 것은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청소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리하자. 정리하자.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나 하나가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 것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위에 두었을 때, 인생은 한 번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게 힘들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 과정이 재밌는 여정이 된다. 그래서 내 작은 생명하나가, 인류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2013년의 끝,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답을 찾았던

2013년이 지나갔다. 2013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코트라에서 인턴을 했었고, 지금은 작은 IT벤처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배운 것이 많았던 한 해였고, 2012년과 비슷한 배움이었다는 점은 내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시기를 걸어가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013년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고, 나름 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꿈 많은 청년인 나는 최대한 많은 일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보면서 살아가고 싶다. 무엇을 더 이룰 수 있을지, 무엇을 더 발견할 지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기는 하지만, 그걸 기다리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즐거움 중 하나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며'

2014년 새해 첫 영화로 감상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는 그 점에서 나에게 무척 많은 영감을 안겨준다.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draw closer, to see and be amazed."
Life Magazine motto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이다

 Google 만들어준 나의 2013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재미

오늘 생각한 것 한가지.
어떤 대상(사람 혹은 사물)에 관심이 적거나 없으면, 그 대상은 모두 똑같이 (비슷해) 보인다는 점

나의 경우, 비교적 관심이 적은 아이돌 가수의 경우 다 똑같이 생겨 보이고,  발라드 음악은 다 그게 그 음악 같고, 자동차는 모두 같은 디자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모두 다 달라보인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과 우리 인생들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 때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인생에 흥미가 떨어지는 때가 아닐까 라는 생각.

사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모든 기계들과 기성품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다르고, 우리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고, 각자가 만들어가는 인생은 너무도 다르다. 
각자가 서로 다른 것들이 같게 보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원래는 그 모두가 다 다르므로 그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쪽이 더 재밌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사람도, 인생도

그 다름을 발견해나가는 재미

좋아하는 사람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

어제는 늦은 밤까지 카톡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열한시 반부터 거의 두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토록 인간관계(가족, 사랑, 우정 등등) 때문에 그토록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실 인간관계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더 개선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스무살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나 나름대로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지를 정한 것 같다. 어젯밤에는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다. 길고 긴 대화의 끝에서 우리가 내렸던 결론은 더욱 순수하게 살아가자라는 거였다. 더욱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이란게 번번이 내 의지를 조롱하고 희망을 비웃지만 아직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나인 : 아홉번의 시간 여행을 보고 느낀점 및 결말

결말에 대한 나의 생각

운명과 의지의 싸움
애초에 선우는 뇌종양을 가지고 죽을 운명이었다.선우는 죽으면서 "내가 곧 향이었다"며 말하고 향을 다 쓰는 순간 자신도 소멸된다.

결말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는 거 아닌가. 죽음만큼은 어떻게든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다. 마치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한 순간 죽음을 피하더라도 다시 찾아온다. 방화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살리려 과거로 되돌아가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우울증에 빠진 형을 살리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게 하지만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친구 영훈이가 오히려 향을 찾다가 죽는 편이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말이 참 가슴이 아팠다.)

운명은 정해져있다고 믿는 것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의지)이라고 믿는 것, 이게 참 재미있는 거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 결국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운명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고 말하는 불가항력적인 무언가의 일을 바꾸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지만, 그 조차 운명의 범위 내에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의지'를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차 운명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운명과 의지'에 관하여, 이 가장 멋진 대사가 드라마를 가장 크게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끝까지 해보겠어.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운명이란게 번번이 내 의지를 조롱하고 희망을 비웃지만 아직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자신을 포함한 우주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인냥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의지를 발현한다. 끝없이 운명과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과거에 갇혀 죽어버린 선우. 19화에서 모든게 해피엔딩으로 가는 것 같았지만, 선우가 죽으면서 그건 결국 불행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즉, 선우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고 그것을 바꾸려 하지만,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삶이 비극일지라도
선우가 죽으면서 영훈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몇 번의 생을 살아도 계속 친구로 있어줘서 고마웠다1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너무 뜨거웠다. 선우가 몇번이나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은 변하지 않고 모두 선우의 주위를 맴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어떻게든 만나는 것이다. 함께 운명의 수레바퀴에 타고 있다. 그 끝은 비극이었지만 비극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운명에 저항하며 살아온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었을 듯 싶다. (이런 생각으로 이끌어내지 않으면 결말의 팩트가 너무도 잔인한 비극이라서 그걸 받아들이기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삶에 대한 팩트와 판타지
우리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판타지다. 사회는 정의롭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판타지는 말그대로 허구이며, 세상은(운명은) 우리가 바라는 판타지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팩트다. 허나 또, 팩트만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 인간은 아니다.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으니 믿고 싶은 건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면 된다. 운명이 우리를 속이고 조롱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은 그걸 뛰어넘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선우를, 민영이와 형을 그리고 친구 영훈이를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전해주는 메시지도 진한 훌륭한 드라마였다.

 그 운명을 선택해준 사람들에게 매번 내 생애마다 한결같이 내 가장 진실한 친구가 되어준 너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