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간 오전 4시 32분
중앙도서관 제 2열람실에는 23명의 사람이 공부하고 있다.
1시까지만 해도 50명 넘게 있었는데 그 사이에 반으로 줄었다.
나는 공부가 아닌 학교 과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동아리 총회가 있던 날이라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과 마음 놓고 술도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주말 동안에 해야 할 과제 때문에 1차까지만 갔다가 도서관으로 다시 와서 과제를 하고 있다.
과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대학생을 대학생으로 있게 하는 것들엔 무엇이 있을까.
전공공부, 시험, 동아리,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자격증 그리고 과제.
1학년 때는 과제에 정성을 쏟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가지 동아리들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를 느끼고 방학동안에는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러가지 경험을 조금씩 맛본 시기였다. 2학년 때는 내 인생을 바꾼 기회 중 하나인 콜드스톤이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이란 걸 느꼈다. 2학년 때도 과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가장 공들여 작성한 과제를 뽑으라면 '나의 20년 자서전' 정도랄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과제를 하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대학생활에서 남겨지는 것이 여러가지의 경험에 의한 기억들이 있겠지만 가시적인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봤을 땐 졸업장과 학점증명서 그리고 과제들 아니겠는가. 새삼 3~4년전에 제출했던 1,2학년 때 과제물들을 꺼내봤다.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난잡하게 만들어진 과제물들이다. 정말 하기 싫은 과제들을 억지로 한 것 같은 느낌이 다가온다.
생각하는 것
과제가 많아서 힘든 건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충해서 제출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점수를 잘 받으면 물론 좋지만, 점수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내 힘으로 작성했느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
2007년도 2학년 때 '교육과 인간'이란 수업을 들으며 '나의 자서전 쓰기' 를 과제로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정말 진지하게 인생을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그 당시로서는 정말 길게) 20페이지가 넘게 글을 썼다. 그래서 가끔 그 때의 자서전을 꺼내본다. 자서전을 읽다보면 어색한 문장들이 보이지만, 그보다 더 많이 보이는 건 20살의 내가 가졌던 여러가지 생각들이다. 그 생각들은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다시 생각하는 것
엄마에게 감사할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게 하셨고, 수십권의 일기장(그림일기장도)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보관해주셨다. 일기를 쓰는 습관 덕분에 군대에서도 일본에서도 하루하루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기록은 기억이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살아온 과정과 나의 모습을 너무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제 또한 내가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의 일부이다. 훗날 어떤식으로 지금의 과제물들을 펼쳐볼진 모르지만 확신컨대 그 기록물에 정성이 들어갔는지 들어가지 않았는지는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과제물에 정성을 담고 싶다. 대충대충 살았던 청춘으로는 기억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