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1일 2011년 마지막날
크게 쓸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짜에 글을 남기고 싶어서 남겨본다.
2011년 365일이 모두 다 지나갔다. 작년 이 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도쿄 시부야의 콜드스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서 주위의 가게들로부터 많은 음식을 받아서 맥주를 마시며 축하파티를 했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시부야 한복판으로 나가서 길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해피 뉴이어"를 외치면서 새해를 기분좋게 맞이 했었다.
나의 2010년 마무리와 2011년의 시작은 시부야에서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깨닫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본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이 그리웠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2011년의 초반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확인하면서,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서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만큼'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이 다시 내게 찾아올까를 고민하며 우울한 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물론 그러한 걱정은 수많은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보니 어느새 조금씩 잊혀져갔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년에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욱 생각나는 저녁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운 2010년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땠을까. 올해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해였을까.
아까 이번 학기에 알게 된 형과 식사를 마치고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남은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특별한 약속이 없었기에 난 그저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형에겐 오늘이 20대의 마지막 날이었다.원래 연말에 자기가 20대를 어떻게 보내왔었는지 쭈욱 연대기 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대 마지막 날이라..나도 나중에 내가 마지막 20대를 보내는 날에 나의 20대를 정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20대의 마지막날에 올 한해 2011년을 어떻게 회상을 하게 될까.
2006년 대학교 1학년, 서울 생활의 시작과 설렘, 서울의 정말 많은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영화동호회 활동, 건금연 등등
2007년 대학교 2학년, 콜드스톤 아르바이트, 1년 가까이 했던 아르바이트
2008년과 2009년 해군 복무
2010년 일본 워킹홀리데이
2011년, 3년 휴학 후 다시 복학하는 첫 해, 그리고 3학년
2011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이켜보기 위해 지난 날의 기록들을 꺼내어보자.
1월과 2월은 정말 힘겨운 시간이면서도 나에겐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너무 귀중한 시간들이었다.일본에서 사귀었던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들로부터 송별회에 초대되고,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일들이 무척 힘겨웠다.
いちなら何をやっても、大丈夫だと思うし、心配はしてないけど今回日本で得た経験が必ず力になると思う. ☆なんでもやってやろう!次に会える時が本当に楽しみだ (쿠리하라상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이치라면 뭘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얻은 경험이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뭐든지 해버려! 다음 만날 때가 정말 기대된다.
그렇게 힘겹게 이별을 하고 돌아와서 난 대학 복학을 준비하고, 복학하고나서는 다시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2011년 봄학기엔 처음으로 고시원에서 생활을 해보았다. 고시원이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생활해보니 의외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고시원 생활도 나름대로 재밌게 해나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고시원은 많이 청결하지 못해 안 좋은 냄새가 많이 났었다. 고시원에서 살기는 했지만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새벽 3시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8시에 수업시작에 맞춰 나오거나, 아침 4시에 도서관에 오기도 했었다. 딱히 할 일은 없더라도 도서관에서 있는게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도 고시원과 도서관이 걸어서 5분거리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 고시원보다 더 좋은 면학 환경이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마음이 좀 더 복잡해진 것 같다.1,2학년 때는 오히려 진로를 확실히 정해놓고 그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었는데,3년의 휴학기간 동안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져 버린 느낌이다.2년의 군생활이 1년의 일본 생활이 나를 많이 변화시켜 놓은 것 같다.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건 다들 좋은거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좋은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학생식당을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는 1시간 동안 계속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살지'에 대한 얘기만 나누었다.'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긴긴 꿈을 꾸다가 이제서야 잠에서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아무 근심 걱정없이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일본에서 1년을 보내다보니 현실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던 걸까.
복학 첫 날의 마음 2011년 3월 2일
나의 2011년 1학기 3,4,5,6월은 정말 많은 도전과 실패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본격적으로 덮쳐오기 시작하면서 남들처럼 뭔가를 하나 더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대외활동에 도전하였지만 1차, 혹은 최종 면접에서 주르륵 미끌어져 내려갔다. 그때는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역시 세상에 나보다 뛰어나고 유능한 대학생들은 정말 많구나라는 걸 실감하였다. 많이 지치는 시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1학기 때 들었던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교양과목 때문이었다.
<僞學日益 僞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나날이 보태는 것이고,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나날이 덜어내는 것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것이 유가이고, 후자를 강조하는 것이 도가의 사상이다.
뭔가를 배운 다는 것, 즉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매듭을 묶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계속 묶어가기만 한다면 공간이 좁아지고 나중에는 풀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묶였던 매듭을 한 번 푸는 순간 매우 넓은 공간이 생긴다.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묶으면서 풀 줄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이란 묶고 풂, 들고 내려놓음의 연속이다.
여자와 남자의 경계를 허물면 ‘사람’이 되고,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면 ‘생물’이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순간,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아름다워 질 것”
이 수업으로 인해 나의 가치관의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고, 그와 같은 맥락인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의미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노력도 해보는 시간들이었다. 1학기는 3년만에 복학한 생활이었던 만큼 대학생활에 더욱 적응하려고 애를 썼고 덕분에 대학 생활 중에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학기가 되었다. 특히 조직설계론과 환경분석론 강의는 다시 한번 대학생활의 배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업이었다.
모든 시도가 떨어지고 나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것은 우리학교의 국제도우미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국제도우미에 합격하였고, 국제도우미는 그 이후의 나의 학생 생활을 아주 크게 바꿔놓았다. 국제도우미는 학교의 국제교류처에서 일하며 국제 학생들과의 교류를 돕는 일을 하는 일이다. 전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약 60여명의 학생들과 그리고 일본에서 온 40여명의 학생들과 나는 잊지못할 여름방학을 보냈다.
60명 모두에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를 친절하고 좋은 나라로 기억하고 그들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젊은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러 와준다면 좋겠다고,,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름방학이 되었으면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즐거움과 한국 사람이 주는 감동을 받았으면 했다.
-국제도우미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목표, 2011년 7월 26일
우리는 한 달 동안에 정말 놀라운 일을 이뤄냈다. 우리는 봉사활동과 같은 특별한 목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음에도엄청 친해지고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저 우리는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그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에 무척이나 흥미를 가졌다. 정말 We Are The World 그 자체였다.
한국의 대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학생들과 소통을 하는게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를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Summer Program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많은 친구들이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꼭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고들 말하였다. 내가 한 일은 정말 적지만 나의 목표를 조금이나마 달성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그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렇게 2학기가 되었고 2학기는 나에게 또다른 의미에서 도전의 한학기였다. 내가 비록 경영학과이기는 하지만 경영학 말고도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들이 많이 있으니, 다른 전공 수업도 들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불교, 심리학, 정치학 등의 수업에 참여하였다. 내가 정말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대학생이란 시간이 최고이니, 이 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학점이 기대보다 낮게 나와서 실망도 조금 하였지만 내가 그 수업을 참여해서 얻은 것은 경영학 전공 수업에서 얻은 것들 그 이상의 것들이었다. 그것에 만족하였고, 다음 학기에도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들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2학기의 하이라이트는 인적자원개발(HRD) 강의였을 것이다. 3년간의 대학 수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 매시간 토론을 하면서 토론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수업 방식이었다.기말 프로젝트로 '등록금 활용하기'를 주제로 하여 학생들을 동기부여 시키는 과제가 부여됐는데 우리 조는 강의시간 플래시몹 뮤지컬을 하여 교수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들과 정말 소중한 인연을 쌓은 것이었다. 나의 3학년 후반을 즐겁게 마무리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의 2011년 한해는 어땠을까.
1학년, 2학년 때보다 대학생으로서 온전하게 대학생활의 묘미를 즐긴 한 해였다. 시험기간엔 밤새서 공부를 하고, 프로젝트의 리더를 도맡아서 하고, 대학생활에 영원히 남을 멋진 추억도 만들고,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줄 교양강의를 만나고, 멋지 대학 동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다해보기되 하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영화를 많이 보러다니지도 않고,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의 1,2학년 때와는 달리 특별한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 없는 한 해로 기억될 수 있지만 이번 해에는 대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맞게 온전히 '대학생으로서' 지낸 1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이젠 나도 4학년생이 되는구나. 걱정도 있고 희망도 있지만 일단은 그런 건 접어두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201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은, 일본에 있을 적 쿠리하라상이 나에게 불러주었던 'ゆず 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 적당할 것 같다.
"오늘은 어제의 슬픔도 미래의 불안도 전부 그만두고
꿈을 꾸며 아침까지 웃자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처럼
눈물이 날 정도로 아침까지 웃자.....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처받은 마음도 하늘에 날려버리고
잠시 발밑을 봐보자.
깨닫지 못했지만 분명 그곳에는
잊어서는 안 될 마음들이 분명 있으니까.
변해가는 삶 속에 잃는 것도 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살아있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알것 같으면
아침까지 웃도록 해요" ゆず(유즈)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사 중
크게 쓸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짜에 글을 남기고 싶어서 남겨본다.
2011년 365일이 모두 다 지나갔다. 작년 이 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도쿄 시부야의 콜드스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서 주위의 가게들로부터 많은 음식을 받아서 맥주를 마시며 축하파티를 했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시부야 한복판으로 나가서 길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해피 뉴이어"를 외치면서 새해를 기분좋게 맞이 했었다.
나의 2010년 마무리와 2011년의 시작은 시부야에서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깨닫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본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이 그리웠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2011년의 초반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확인하면서,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서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만큼'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이 다시 내게 찾아올까를 고민하며 우울한 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물론 그러한 걱정은 수많은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보니 어느새 조금씩 잊혀져갔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년에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욱 생각나는 저녁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운 2010년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땠을까. 올해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해였을까.
아까 이번 학기에 알게 된 형과 식사를 마치고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남은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특별한 약속이 없었기에 난 그저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형에겐 오늘이 20대의 마지막 날이었다.원래 연말에 자기가 20대를 어떻게 보내왔었는지 쭈욱 연대기 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대 마지막 날이라..나도 나중에 내가 마지막 20대를 보내는 날에 나의 20대를 정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20대의 마지막날에 올 한해 2011년을 어떻게 회상을 하게 될까.
2006년 대학교 1학년, 서울 생활의 시작과 설렘, 서울의 정말 많은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영화동호회 활동, 건금연 등등
2007년 대학교 2학년, 콜드스톤 아르바이트, 1년 가까이 했던 아르바이트
2008년과 2009년 해군 복무
2010년 일본 워킹홀리데이
2011년, 3년 휴학 후 다시 복학하는 첫 해, 그리고 3학년
2011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이켜보기 위해 지난 날의 기록들을 꺼내어보자.
1월과 2월은 정말 힘겨운 시간이면서도 나에겐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너무 귀중한 시간들이었다.일본에서 사귀었던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들로부터 송별회에 초대되고,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일들이 무척 힘겨웠다.
いちなら何をやっても、大丈夫だと思うし、心配はしてないけど今回日本で得た経験が必ず力になると思う. ☆なんでもやってやろう!次に会える時が本当に楽しみだ (쿠리하라상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이치라면 뭘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얻은 경험이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뭐든지 해버려! 다음 만날 때가 정말 기대된다.
그렇게 힘겹게 이별을 하고 돌아와서 난 대학 복학을 준비하고, 복학하고나서는 다시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2011년 봄학기엔 처음으로 고시원에서 생활을 해보았다. 고시원이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생활해보니 의외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고시원 생활도 나름대로 재밌게 해나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고시원은 많이 청결하지 못해 안 좋은 냄새가 많이 났었다. 고시원에서 살기는 했지만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새벽 3시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8시에 수업시작에 맞춰 나오거나, 아침 4시에 도서관에 오기도 했었다. 딱히 할 일은 없더라도 도서관에서 있는게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도 고시원과 도서관이 걸어서 5분거리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 고시원보다 더 좋은 면학 환경이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마음이 좀 더 복잡해진 것 같다.1,2학년 때는 오히려 진로를 확실히 정해놓고 그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었는데,3년의 휴학기간 동안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져 버린 느낌이다.2년의 군생활이 1년의 일본 생활이 나를 많이 변화시켜 놓은 것 같다.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건 다들 좋은거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좋은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학생식당을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는 1시간 동안 계속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살지'에 대한 얘기만 나누었다.'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긴긴 꿈을 꾸다가 이제서야 잠에서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아무 근심 걱정없이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일본에서 1년을 보내다보니 현실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던 걸까.
복학 첫 날의 마음 2011년 3월 2일
나의 2011년 1학기 3,4,5,6월은 정말 많은 도전과 실패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본격적으로 덮쳐오기 시작하면서 남들처럼 뭔가를 하나 더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대외활동에 도전하였지만 1차, 혹은 최종 면접에서 주르륵 미끌어져 내려갔다. 그때는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역시 세상에 나보다 뛰어나고 유능한 대학생들은 정말 많구나라는 걸 실감하였다. 많이 지치는 시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1학기 때 들었던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교양과목 때문이었다.
<僞學日益 僞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나날이 보태는 것이고,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나날이 덜어내는 것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것이 유가이고, 후자를 강조하는 것이 도가의 사상이다.
뭔가를 배운 다는 것, 즉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매듭을 묶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계속 묶어가기만 한다면 공간이 좁아지고 나중에는 풀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묶였던 매듭을 한 번 푸는 순간 매우 넓은 공간이 생긴다.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묶으면서 풀 줄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이란 묶고 풂, 들고 내려놓음의 연속이다.
여자와 남자의 경계를 허물면 ‘사람’이 되고,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면 ‘생물’이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순간,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아름다워 질 것”
이 수업으로 인해 나의 가치관의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고, 그와 같은 맥락인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의미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노력도 해보는 시간들이었다. 1학기는 3년만에 복학한 생활이었던 만큼 대학생활에 더욱 적응하려고 애를 썼고 덕분에 대학 생활 중에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학기가 되었다. 특히 조직설계론과 환경분석론 강의는 다시 한번 대학생활의 배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업이었다.
모든 시도가 떨어지고 나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것은 우리학교의 국제도우미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국제도우미에 합격하였고, 국제도우미는 그 이후의 나의 학생 생활을 아주 크게 바꿔놓았다. 국제도우미는 학교의 국제교류처에서 일하며 국제 학생들과의 교류를 돕는 일을 하는 일이다. 전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약 60여명의 학생들과 그리고 일본에서 온 40여명의 학생들과 나는 잊지못할 여름방학을 보냈다.
60명 모두에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를 친절하고 좋은 나라로 기억하고 그들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젊은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러 와준다면 좋겠다고,,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름방학이 되었으면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즐거움과 한국 사람이 주는 감동을 받았으면 했다.
-국제도우미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목표, 2011년 7월 26일
우리는 한 달 동안에 정말 놀라운 일을 이뤄냈다. 우리는 봉사활동과 같은 특별한 목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음에도엄청 친해지고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저 우리는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그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에 무척이나 흥미를 가졌다. 정말 We Are The World 그 자체였다.
한국의 대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학생들과 소통을 하는게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를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Summer Program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많은 친구들이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꼭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고들 말하였다. 내가 한 일은 정말 적지만 나의 목표를 조금이나마 달성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그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렇게 2학기가 되었고 2학기는 나에게 또다른 의미에서 도전의 한학기였다. 내가 비록 경영학과이기는 하지만 경영학 말고도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들이 많이 있으니, 다른 전공 수업도 들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불교, 심리학, 정치학 등의 수업에 참여하였다. 내가 정말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대학생이란 시간이 최고이니, 이 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학점이 기대보다 낮게 나와서 실망도 조금 하였지만 내가 그 수업을 참여해서 얻은 것은 경영학 전공 수업에서 얻은 것들 그 이상의 것들이었다. 그것에 만족하였고, 다음 학기에도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들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2학기의 하이라이트는 인적자원개발(HRD) 강의였을 것이다. 3년간의 대학 수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 매시간 토론을 하면서 토론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수업 방식이었다.기말 프로젝트로 '등록금 활용하기'를 주제로 하여 학생들을 동기부여 시키는 과제가 부여됐는데 우리 조는 강의시간 플래시몹 뮤지컬을 하여 교수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들과 정말 소중한 인연을 쌓은 것이었다. 나의 3학년 후반을 즐겁게 마무리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의 2011년 한해는 어땠을까.
1학년, 2학년 때보다 대학생으로서 온전하게 대학생활의 묘미를 즐긴 한 해였다. 시험기간엔 밤새서 공부를 하고, 프로젝트의 리더를 도맡아서 하고, 대학생활에 영원히 남을 멋진 추억도 만들고,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줄 교양강의를 만나고, 멋지 대학 동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다해보기되 하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영화를 많이 보러다니지도 않고,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의 1,2학년 때와는 달리 특별한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 없는 한 해로 기억될 수 있지만 이번 해에는 대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맞게 온전히 '대학생으로서' 지낸 1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이젠 나도 4학년생이 되는구나. 걱정도 있고 희망도 있지만 일단은 그런 건 접어두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201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은, 일본에 있을 적 쿠리하라상이 나에게 불러주었던 'ゆず 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 적당할 것 같다.
"오늘은 어제의 슬픔도 미래의 불안도 전부 그만두고
꿈을 꾸며 아침까지 웃자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처럼
눈물이 날 정도로 아침까지 웃자.....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처받은 마음도 하늘에 날려버리고
잠시 발밑을 봐보자.
깨닫지 못했지만 분명 그곳에는
잊어서는 안 될 마음들이 분명 있으니까.
변해가는 삶 속에 잃는 것도 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살아있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알것 같으면
아침까지 웃도록 해요" ゆず(유즈)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