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모두 즐거운 일요일 보냈나?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아서 얼굴에 미소가 가시질 않더라. 오늘은 생각을 쉬었으니 내일부터는 위의 공지 순서대로 질문을 하면 돼.
난 오늘 레이디의 생일파티에 다녀왔는데 참 즐겁더라. 여기있는 친구들도 모두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아쉬움도 컸어.
사람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단순히 ‘친구'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참 부족할때가 많다는 걸 느껴. 여기있는 사람들도 나에겐 그 이상의 사람들이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딱 좋은 것 같아. 오늘 혜인이가 생일 파티에 자기가 대학생활에서 만났던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했거든.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서 축하를 받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나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늘 그런 삶을 꾸거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생의 장면들 하나하나를 채워나가는 거지. 가족, 친구, 상사, 선배, 후배 등등의 타이틀을 모두 지워버리고서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그 장면에 존재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내 인생을 채워나간다면 내 자신의 인생을 더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와 맞는 사람들만 만나는 일은 정말 어렵겠지. 그래도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 방의 사람들도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이 방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거든 ㅋㅋ 나만 좋으면 됐어. 그래스 가능하다면 더 많은 인생의 페이지를 공유하고 싶어.
천천히 살고 싶어서 쓰는 글
천천히 살고 싶어서 쓰는 글
우린 늘 부족한 시간 속에서 시간에 쫓기며 빨리 빨리 움직이며 살아간다. 빨리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재밌기도 하며 중요하기도 하다. 남들보다 빨리 결승선에 들어오는 것은 재밌는 일이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빨리 움직여야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살아가는 것도 재밌고 중요하다. 우리는 인생이 짧은 것 같아서 빨리 움직이지만, 인생은 천천히 즐기며 살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길다. 빨리 살아가면 더 짧아지고, 천천히 살면 더 길어지는게 인생이다.
인생, 천천히 살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잡고 있고,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초조해 하지 말고, 하루가 곧 내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길게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금 어떤 선을 어떻게 그려내려가고 있으며, 다음은 어떤 선을 그릴지, 다음에 무슨 글자를 쓸지, 다음에 어떤 반찬을 집어먹을지,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내딛을지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결정한다. 무의식적 선택에 익숙해져서 중요한 일들 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하는 것들, 그것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야 한다. 선택이란건 인생의 전부이며, 매 순간 선택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선택을 하는 것이 곧 디자인이다. 인생의 설계이며 계획이다.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계속 해나간다는 것. 하루를 좋게 보낸다는 것은 좋은 선택들로 인생을 채우는 것. 그러한 의식적인 선택들을 이어나간다면 적어도 그건 내 인생이 된다. (남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도 내 선택이긴 하다)
천천히 글씨를 쓰고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글씨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넘어서면 함께 할 수 있었던 생각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생각이 천천히 가게 놔두자. 책도 천천히 읽자.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쓰고 천천히 씻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듣고, 천천히 생각하자. 빨리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즐기면서 하는게 중요하다. 뭐든지 빨리 끝내려고 하면서 살아온 내 인생, 이러다가 내 인생도 빨리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빨리 배우려하지도 말자. 천천히 느긋느긋하게 배우자. 어차피 배움은 평생 가지고 갈테니까 말이다. 빨리 무언가를 끝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이고, 의자에 앉는 것이고, 요리를 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것,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비디오샵에 가는 것,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재생하는 것, 친구와 만나기 위해 만날 약속을 잡는 것, 영화제에 가기 위해 영화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것,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 몸짱이 되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는 것,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실제로 행복을 움직여야 한다.
결과에 실망도 하지 말자. 어차피 인생은 계속 된다. 그러니 천천히 느긋하고 신중하게 순간순간 집중과 정성을 다하여 무엇이든 즐기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된다.
우린 늘 부족한 시간 속에서 시간에 쫓기며 빨리 빨리 움직이며 살아간다. 빨리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재밌기도 하며 중요하기도 하다. 남들보다 빨리 결승선에 들어오는 것은 재밌는 일이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빨리 움직여야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살아가는 것도 재밌고 중요하다. 우리는 인생이 짧은 것 같아서 빨리 움직이지만, 인생은 천천히 즐기며 살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길다. 빨리 살아가면 더 짧아지고, 천천히 살면 더 길어지는게 인생이다.
인생, 천천히 살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생각이 흘러가게 놔두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잡고 있고,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초조해 하지 말고, 하루가 곧 내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길게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금 어떤 선을 어떻게 그려내려가고 있으며, 다음은 어떤 선을 그릴지, 다음에 무슨 글자를 쓸지, 다음에 어떤 반찬을 집어먹을지,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내딛을지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결정한다. 무의식적 선택에 익숙해져서 중요한 일들 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하는 것들, 그것들은 최대한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야 한다. 선택이란건 인생의 전부이며, 매 순간 선택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선택을 하는 것이 곧 디자인이다. 인생의 설계이며 계획이다.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계속 해나간다는 것. 하루를 좋게 보낸다는 것은 좋은 선택들로 인생을 채우는 것. 그러한 의식적인 선택들을 이어나간다면 적어도 그건 내 인생이 된다. (남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도 내 선택이긴 하다)
천천히 글씨를 쓰고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글씨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넘어서면 함께 할 수 있었던 생각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생각이 천천히 가게 놔두자. 책도 천천히 읽자.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쓰고 천천히 씻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듣고, 천천히 생각하자. 빨리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즐기면서 하는게 중요하다. 뭐든지 빨리 끝내려고 하면서 살아온 내 인생, 이러다가 내 인생도 빨리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빨리 배우려하지도 말자. 천천히 느긋느긋하게 배우자. 어차피 배움은 평생 가지고 갈테니까 말이다. 빨리 무언가를 끝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이고, 의자에 앉는 것이고, 요리를 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것,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비디오샵에 가는 것,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재생하는 것, 친구와 만나기 위해 만날 약속을 잡는 것, 영화제에 가기 위해 영화를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것,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 몸짱이 되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는 것,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실제로 행복을 움직여야 한다.
결과에 실망도 하지 말자. 어차피 인생은 계속 된다. 그러니 천천히 느긋하고 신중하게 순간순간 집중과 정성을 다하여 무엇이든 즐기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된다.
그대에게 꽃을
꽃을 주고 싶다. 엄마와 아빠에게. 친구에게. 꽃을 안겨주고 싶다. 친구가 말한대로 너무 고마운 사람들에게 꽃을 안겨주고 싶은 멋진 인생. 멋진 인생이 되었기 때문에 꽃을 안겨주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마운 사람들에게 꽃을 안겨주다보면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꽃은 그저 고마움이다. 나의 인생의 어느 페이지와, 그대 인생의 어느 페이지가 겹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과 , 그 놀라운 만남으로부터 느껴지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찬 인생. 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들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대들에게 달려가 꽃을 주고 싶다. 같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모든건 인식하기 나름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생각한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꽃처럼 말이다. 우리는 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도 똑같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자. 원래 인생이 아름다운지는 아름답지 않은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말할수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건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다.
나는 원래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이 밤에 다시 한번 찾아온다. 늘 주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시간과, 나의 열정과, 나의 사랑과, 나의 기쁨을 그대들에게 주고 싶다. 다시 한번 이 생각을 나의 중심으로 옮겨놓아야 겠다. 그러면 나는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주는 것이 행복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마음밖에 없을지라도 그 마음이 그대들에게 전해진다면 나는 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은 천천히 흐르기 마련이다. (인생처럼) 내가 당장 그대들에게 달려가서 꽃을 안겨주지는 못하더라도, 조금만 여유를 갖고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천천히 천천히 그대들에게 걸어가고 있으니 (가끔은 뛰어가고, 가끔은 쉬기도 하면서) 하지만 내 인생의 끝자락, 때로는 중간중간, 때로는 내일 그대와 마주하며 나의 마음을 줄 것이다.
마음을 준다는 것, 달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태양계가 은하계를 여행하는 것. 우리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우주가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를 당기고, 그대는 나를 당긴다. 겉으로 보기엔 밀어낼 때도 있지만 그 또한 결국은 더 큰 끌어당김을 위한 것이다.
그대와 나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리의 우주는 어디로 향하는가. 우리를 부르는 무언가로 끊임없이 향한다. 우리는 크나큰 우주를 여행한다. 그대와 내가 하는 여행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함께 하는 한.
너를 생각한다. 너를 당긴다. 너에게 준다.
우리의 마음이란.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선택하는 일
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주인공이다.
나는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다.
모든 선택은 내가한다.
난 행복해지기로 선택한다.
난 멋져지기로 선택한다.
난 잘살기로 선택한다.
난 그대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나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다.
모든 선택은 내가한다.
난 행복해지기로 선택한다.
난 멋져지기로 선택한다.
난 잘살기로 선택한다.
난 그대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나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사랑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사랑이 찾아오는 이야기. 그대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 그대를 생각한다. 그대의 눈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대와 키스를 나누고 싶다.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연결되는 일.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일. 그제와 어제를 연결하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일. 어제 마신 커피와 오늘 내가 흘린 땀을 연결하는 일. 내 손등위의 털 하나와 그대 손등 위의 털 하나를 연결하는 일. 제이와 나를. 그대와 나를. 그대의 땀과 나의 숨을. 그대와 또 다른 그대를. 나와 세상을. 나의 관심사와 또 다른 나의 관심사를. 잠실과 서울대입구를 연결하는 일.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연결 짓는 일.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우리는 연결되기 위해 태어났다. 모든 우주의 에너지도 그렇다 . 우리가 연결되는 일. 너와 내가 연결되는 일.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연결되는 일.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일. 그제와 어제를 연결하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일. 어제 마신 커피와 오늘 내가 흘린 땀을 연결하는 일. 내 손등위의 털 하나와 그대 손등 위의 털 하나를 연결하는 일. 제이와 나를. 그대와 나를. 그대의 땀과 나의 숨을. 그대와 또 다른 그대를. 나와 세상을. 나의 관심사와 또 다른 나의 관심사를. 잠실과 서울대입구를 연결하는 일.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연결 짓는 일.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우리는 연결되기 위해 태어났다. 모든 우주의 에너지도 그렇다 . 우리가 연결되는 일. 너와 내가 연결되는 일.
수많은 점이 존재함을 깨닫자. 모든 점을 연결하자.
어떻게 연결시키고 연결되느냐에 따라 뇌의 활동이 바뀌고 자신이 변한다.
뇌의 세상과, 내가 존재하는 세상.
뇌의 세상과, 내가 존재하는 세상.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마음일지 몰라요
오랜만에 쓰는 글은 얼마나 두려운가
많이 두렵죠. 오랜만에 쓰는 글에는 '내 글'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글을 써오던 방식. 글을 쓸 때면 했던 생각들, 그런 걸 기억해내기 쉽지 않을테니까요.
개인이 살아온 시간의 기록으로서의 글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지 않은 공백만큼 우리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마는게 아닐까요.
네, 물론 시간을 통째로 잃는 일은 없어요. 우리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살아왔던 게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은 희미해지고 말거에요. 시간이 희미해진다는 것. 그건 잊혀진다는 거죠.
우린 왜 잊혀짐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우린 왜 두려움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두려움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 인생에 그토록 따라다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인생은 두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이유라고 한다면, 저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곳에 두려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 그때마다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다른 것뿐이죠.
언제는 사랑을 하지 못할까 두렵고, 언제는 사랑을 잃을까 두렵고, 언제는 내 자신이 정체해 있는 것 같아 두렵고, 언제는 모든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까봐 두렵고 말이죠.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마음일지도 몰라요.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두려운 일이에요.
그 간의 공백을 채울만큼의 좋은 글을 쓰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일거에요.
전 또 두려움을 느끼고 있네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많이 두렵죠. 오랜만에 쓰는 글에는 '내 글'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내가 글을 써오던 방식. 글을 쓸 때면 했던 생각들, 그런 걸 기억해내기 쉽지 않을테니까요.
개인이 살아온 시간의 기록으로서의 글이라고 한다면, 글을 쓰지 않은 공백만큼 우리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마는게 아닐까요.
네, 물론 시간을 통째로 잃는 일은 없어요. 우리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살아왔던 게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은 희미해지고 말거에요. 시간이 희미해진다는 것. 그건 잊혀진다는 거죠.
우린 왜 잊혀짐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우린 왜 두려움을 두려워할까요. 글쎄요.
두려움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 인생에 그토록 따라다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인생은 두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이유라고 한다면, 저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곳에 두려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 그때마다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이 다른 것뿐이죠.
언제는 사랑을 하지 못할까 두렵고, 언제는 사랑을 잃을까 두렵고, 언제는 내 자신이 정체해 있는 것 같아 두렵고, 언제는 모든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까봐 두렵고 말이죠.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마음일지도 몰라요.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두려운 일이에요.
그 간의 공백을 채울만큼의 좋은 글을 쓰지 못할까에 대한 두려움일거에요.
전 또 두려움을 느끼고 있네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어떻게든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건 '시간'이 지나서도 지금의 시간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 우린 지금의 기록이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의 중요성은 중학교 때 메모라는 습관을 몸에 지니게 된 이후로 수없이 생각해 온 것이기 때문에 매회 리마인드할 필요는 없더라도) 과장되게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선조들이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던 토기들 조차도 지금은 모두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지금 시대 사람들의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올해 들어 여름과 밤이 만난 이래로, 여름밤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된 이후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 밤과 만나 여름밤이 되고, 여름밤이 산책을 만나 여름밤의 산책이 된다. 또 여름밤의 산책은 음악도 만나고, 사색을 만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 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홀로 서 있을 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같이 서 있으면 아름다움은 늘 더 빛나는 법이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시간에 아름다움을 보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은 늘 찾아오고, 그 안에는 낮과 밤이 있다. 여름의 낮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시원한 그늘과 수박을 찾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여름밤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밤 바람을 쐬며 조용히 산책을 한다. 그런것들은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이미지로서 회상하지 않는가. 그 여름밤 먹었던 달콤한 수박,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날 만났던 친구. 그러니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올 여름을 보내야 겠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해야할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1년, 5년, 10년이 흐른 뒤에도 2015년의 여름은 아름다웠노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 7월 여름밤
시간을 소중히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올해 들어 여름과 밤이 만난 이래로, 여름밤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게 된 이후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여름이 밤과 만나 여름밤이 되고, 여름밤이 산책을 만나 여름밤의 산책이 된다. 또 여름밤의 산책은 음악도 만나고, 사색을 만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씩 이어 붙이면 늘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린다. 홀로 서 있을 때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같이 서 있으면 아름다움은 늘 더 빛나는 법이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시간에 아름다움을 보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은 늘 찾아오고, 그 안에는 낮과 밤이 있다. 여름의 낮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시원한 그늘과 수박을 찾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여름밤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밤 바람을 쐬며 조용히 산책을 한다. 그런것들은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들을 이미지로서 회상하지 않는가. 그 여름밤 먹었던 달콤한 수박,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날 만났던 친구. 그러니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올 여름을 보내야 겠다.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누구와 대화를 해야할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1년, 5년, 10년이 흐른 뒤에도 2015년의 여름은 아름다웠노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2015년 7월 여름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것' 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비슷하게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해서 쓰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걸까.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글과 정확히 같은 글이 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글을 다시 한 번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 내용에 대해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2009년 4월 11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8478.html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5001.html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13년 4월 17일 봄날 http://seonil.blogspot.com/2013/10/blog-post_9417.html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헤쳐나가고 있는 인생의 상황이 모두 다름에도 '나'라는 사람은 나의 '글'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발견한다. 발견하는 모습 - 과거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생각에 성장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 - 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안도감과 비슷한데, 어떤 안도감이냐면, 내가 과거의 '나'의 모습을 가끔씩 되돌아 보고서, 때로는 '지금보다 과거의 가졌던 생각이 더 좋았구나' , '과거를 보고서 지금을 좀 더 반성해야지'라는 느낌들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과거에 순간순간 품었던 생각들은 어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족들, 친구들. 어떠한 삶을 살아내든 나를 믿고서 끝까지 응원하겠노라고 말해준다. 심지어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너는 옳은 선택을 할거니까'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위로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건 과거에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는 당연히 아닐뿐더러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말이다.2010년 12월 17일에 서있는 내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글
“우리의 현재 모습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과거에 서있던, 미래에 서있을, 그리고 지금 서있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건 과거의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모습이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駒込、渋谷、新宿、銀座、丸の内、新橋、上野、目黒 를 돌았던 이번 여행
5일간의 짦은 여행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간도 있었을 만큼 그렇게 짧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 5일은 5년전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축약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았던 코마고메. 아... 코마고메..일이 끝나고 나서 혼자서 밤늦게 까지 즐기던 노래방, 노래방을 나와 배가 고프면 찾아가서 먹던 마츠야의 규동. 내가 일했던 카페가 있던 긴자거리... 긴자에서 일이 끝나면 혼자서 산책했던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그리고 시부야. 그리고 시부야. 시부야의 가츠동, 시부야의 신호등, 시부야의 콜드스톤, 시부야의 하치코. 이 모든 걸 다시 한번 천천히 경험한 여행이었다.
5년 전 나의 일본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었다. 코마고메에 살며, 긴자와 마루노우치를 걷고, 시부야를 신나게 즐겼다. 그 때 나의 나이는 스물두살이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스물일곱. 5년이나 흘렀다.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의 모습에 잠깐 슬펐다.
언제나 천천히 흘러가는 거리. 한국에서의 5년이라면 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길 몇번이나 반복했을 시간이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방문한 코마고메는 거의 모든게 그대로였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던 규동가게 요시노야가 없어지고 피자가게가 생긴 것과 그 맞은편으로는 KFC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얘기는 어쩌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만 더 와닿는 말인가 보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변해가는 모습보다 내 주위가 훨씬 빨리 변해가서 그 차이를 좁힐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좀 슬픈 얘기다. 어쩌면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코마고메라는 마을이 너무 고마웠을 뿐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도 고마웠지만, 눈물이 날만큼 가장 고마웠던 건 역시 친구들이었다. 유헤이상, 스기야마상, 쿠사야나기상, 야마구치상, 마스미, 히메, 레이카, 모요카, 료코, 마루코, 아짱, 오구치, 케이짱, 오도리, 치히로, 유유,,, 이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5년전 그대로,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밤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모두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것만으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5년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결심은, 그들에게서 받은 행복은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5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아마 평생 내가 주위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해도 내가 그들에게서 1년 동안 받은 행복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그 문제를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 따위의 생각을 저버린지는 오래다. 그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두의 인생에는 함께 살아갈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외로움에 말라 죽을 수 있다.
방금 전 글에서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을 잠깐 했다. 춤을 추는 건 참 특별한 행위다. 인간은 즐거워서 춤을 추기도 하고, 슬퍼서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춤으로서 표현해낸다.
옆에 있는 인간이 함께 감정을 배출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걸 알면서도 난 왜 그러지 못했나 싶다)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일. 결국 그런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인생의 동반자들 아닌가. 가족이며, 친구며, 애인.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신나게 리듬에 맞춰서. 그래 신나고 즐겁게.
방금 전 글에서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을 잠깐 했다. 춤을 추는 건 참 특별한 행위다. 인간은 즐거워서 춤을 추기도 하고, 슬퍼서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춤으로서 표현해낸다.
옆에 있는 인간이 함께 감정을 배출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걸 알면서도 난 왜 그러지 못했나 싶다)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일. 결국 그런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인생의 동반자들 아닌가. 가족이며, 친구며, 애인.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신나게 리듬에 맞춰서. 그래 신나고 즐겁게.
삶을 살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는 저녁
어쩌면 내 게임은 이걸로 끝인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취했을 때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게임의 결말을 이건가 보다.
2013년 9월부터 살아왔던 나의 한가지 길이 마무리된다. 수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마무리다.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난 그 많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얻은 것도 분명히 있을테지만 지금으로선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보인다.
수많은 생각들. 아. 수많은 생각들.
길을 잃어버린건가.
삶을 살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는 저녁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 연민에만은 빠지면 안된다. 자기 연민에 빠질 시간에 조금이라도 이 인생을 더 재밌게 만들 궁리를 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반드시 재미있게 가야 한다. 그럴려면 내 운을 믿어야 하지.
적절한 타이밍이며, 적절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은 어쨌거나 우리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으며, 우리가 죽어야만 절망은 떠오른다. (죽음에 조차 절망은 뒤따르지 않을지도 모르고) 블로그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것도 인생의 일화가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지금 시점에서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 한가지는 매력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난 어떻게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조금 두렵다.
글은 일단 마무리 해야겠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는 길
약 한달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나는 고향을 참으로 좋아한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그냥 마음이 편하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살이를 한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군대와 일본을 빼더라도 6년이다. 그런 긴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도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떠올리는 그런 것'처럼 되었다.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굳이 내가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많을 수도 있다. 어딜가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 부모님과 더불어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갈 것이고, 서울에 살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누구가 그렇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 때는 나도 나만의 포부가 있었다. 나는 아직 그 포부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고향을 떠나온 그 시점 이후로 줄곧 방황의 연속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 온 나날들이다. (계속 살아도 그 고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금의환향을 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갈 길을 찾았다는 것을 부모님꼐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있다. 길을 돌고 돌아, 또 돌고 돌을지언정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을 갖게 되는 때가 결국은 오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는 길이 좀처럼 마음이 편치않고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기 전까지는)그것을 꼭 보고 싶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며칠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서다. 내가 하고 싶은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매우 많다. 그런 느낌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은, 그런 느낌은 내 생애에 다시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일을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바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몇 살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정확히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는 묘사할 수는 없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만 말한다. 물론 꼭 그럴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차근차근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간다.
김광석의 노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김광석이 죽기 전까지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김광석이 죽던 해에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음악을 알게 되고, 대학교 때는 더 자주 듣다가, 군대에 가서는 그의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군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의 50%는 그의 음악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만약 그의 음악이 없었으면 나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지금까지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을 알았을까.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길
미디어가 넘쳐나고 어디서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힘을 받을 곳은 넘쳐난다. 영화와 음악, 책,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글, 누군가의 말 등처럼 자극제가 과잉된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은 좋기도 하면서 안좋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책과 음악이 끊이지 않고 생산될수록 어떤 특정 기억이 그 사람의 뇌리에서 잊혀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랜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힘을 가졌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걸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일까. 우리는 너무 많이 꾸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고 더욱 포장해서 더 잘보이려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서로를 더욱 멀리하는 건 아닐까.
순수하게 살아가야지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거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할 말은 없다. 순수해 보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는 것뿐이다. 아무리 (역사 이래로 줄곧) 세상이 안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다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지 싶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나 하나가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 것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위에 두었을 때, 인생은 한 번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게 힘들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 과정이 재밌는 여정이 된다. 그래서 내 작은 생명하나가, 인류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위에 두었을 때, 인생은 한 번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게 힘들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 과정이 재밌는 여정이 된다. 그래서 내 작은 생명하나가, 인류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당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
37일 동안, 패티다이 지음
앞으로 살아갈 날이 37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소중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더욱 절실하게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 스티브 잡스
자신의 삶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여섯 가지 실천방안
집중 Intensity, 관용 inclusion, 성실 integrity, 친밀 intimacy, 직관 intuition, 의도 intention
제 1부 충만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신성한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선명하게 인식한다. –조이스캐롤오츠
1. 기억을 위해 기록하라
위대한 변화는 절대로 공식적인 승인 절차를 걸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2부 의식하는 삶을 살기 위한 6가지 실천 과제
3. 집중 intensity: 긍정하라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추자
음악이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춤추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안젤라모네
어른들이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를 헐뜯고, 비웃고, 따돌리고, 회피하고, 익명의 메모를 보내 경고하고, 심지어 마약 중독으로 의심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는 걸까? 엉덩이를 가리려고 웃옷을 잡아당기고, 일상에서 춤이 사라지는 순간 과연 언제인가? 이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본 나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행동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제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고, 동시에 타인이 하는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면 나도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마음껏 춤출 수 있다! 졸업 무도회에 다녀온 지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진실을 깨우쳤다.
다른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 등 비하하는 말이 나오려고 하면 즉시 멈춘다. 상대를 혹평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면 3초 동안 숨을 멈춘다. 그런 다음 그런 혹평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서 평가 받기 싫다면 나부터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
작은 포도 알을 가지고 다니자.
나의 부적, 행운의 물건은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늘 지니고, 친구처럼 대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들어보자. 감동을 주는 대상을 발견하는 심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런 심성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자.
슈퍼의 소량계산대 앞에서 22개나 되는 물건을 가지고 계산 중인 남자 뒤에 서 있을 때, 지갑에서 포도를 꺼내 내게 감동을 주는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혹시 특별한 날에만 쓰려고 할머니가 주신 멋진 식기를 찬장에 진열만 해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장 꺼내서 식사할 때마다 사용하자.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다.)
빨간색 오픈카를 렌트하자.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미있게 살 권리가 있다. 신중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이 대단한 미덕으로 착각하는, 우리보다 상상력이 모자란 이들의 조소 따위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 조심하며 사는 안전주의자나 대담하게 사는 모험주의자나 죽을 확률은 똑같이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과연 어떤 차를 빌릴까? 빨간색 오픈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과처럼 밝은 연두색 폭스바겐 비틀 정도는 빌릴 참이다. 그저 생각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한 가지 이상의 일에 예술적 감수성을 발휘해보자. 예를 들어 카드를 보낼 일이 있으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으로 예쁘게 꾸미고 멋진 격언을 써서 보내자. 가족의 캐리커처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좋다. 접시에 음식이나 과일을 담을 때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미적 감각을 살려보자. 음식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생이 바로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렌지 깃발을 기념하자
잘못했을 때 나무라기보다는 잘했을 때 칭찬하는 편이 열 배 이상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칭찬보다 꾸중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유리 한 장에 돌을 얌전히 올려놓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앨런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사방을 환하게 밝혀줄 초는 1년 365일 늘 챙겨두자. 촛불을 밝힐 일은 정말로 많다. 평범한 일상을 축하와 긍정적 태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고, 최소한 자신이 가진 것의 30퍼센트를 격려하고 축하하자. 슈퍼에 가서 생일 초 다섯 통을 산 다음, 신나게 사용해보자.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밝히자.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일은 기대치가 낮기에 축하하면 더 신난다. 늘 초를 가지고 다니자. 나는 여행할 때도 초를 가지고 다닌다. 언제 축하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이스카우트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았던가. 매사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핑크색 안경을 쓰자
패트리샤 매드스은 그녀의 저서 <힘내라, 내 인생!>에서 날을 정해 온종일 모든 일에 ‘네!’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이런 제안에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네’라고 대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대답을 권한다. “네, 주세요. 우리 아들이 체리를 좋아하니 집에 가지고 가겠어요.”
핑크색 안경을 써보자. 아니면 감히 핑크색 안경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친구에게 핑크색 안경을 선물하자. 어쩌면 그 안경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버스를 보면 ‘와’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우리는 스스로 위장하는 법을 배우고, 놀라움과 즐거움, 자신감과 자괴감 등을 감추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림 그리겠다고 나서지 마라. 너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사람들은 네 그림을 비판할 것이다. 노래 부르겠다고 나서지 마라. 노래 잘하는 사람 수두룩하고 너는 가수도 아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정도가 아니면 글 쓴다는 소리는 아예 하지 마라.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감탄하지 마라. 유치하고 철없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 뻔하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감탄마저도 자체할 때가 많다. 감탄하기를 꺼리거나 감탄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감탄하는 행위를 경솔한 태도나 철부지 행동으로 치부한다. 놀라서 감탄하면, 나약한 사람이 된다. 준비성이 없는 사람이 된다. 철없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놀라서도, 감탄해서도 안 된다. 절대로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진짜, 진짜, 진짜 커다란 버스’를 보았을 때 기분이 마구 들떠도, 절대로 그 상태를 남에게 노출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마구 흔들어도 안 되고,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하고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상태를 내비쳐도 안 된다.
테스의 그네를 밀어주면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이 네 살짜리 꼬마는 “더 세게! 더 세게!를 계속 외쳐댄다.) 만약 어른들이 테스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대한다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와!! 회의다!! 내용도 없이 길고, 완전 지루한 회의다!! 와우!! 주차딱지 한번 세다! 야호! 200페이지짜리 마케팅계획서 대단하다! 우후!! 보고서 마감일이 내일이다! 이히!! 벌써 집세 낼 때가 됐다!! 와와!! 무능한 상사는 진짜, 진짜, 커다란 소방차에서 실어서 내다 버리자!!”
나의 내면에 잠재한 감탄, 놀라움, 즐거움 등의 감정을 아이들처럼 소리 내어 밖으로 분출해보자. 버스나 소방차, 거리의 가로수나 해변의 조개껍데기, 그리고 내 인생 자체에 대해 늘 감탄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자.
깊이 생각하지 말고, 주걱, 거울, 양탄자, 컴퓨터 등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다섯 가지 사물을 고른다. 앞으로 그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 “와! 주걱이다” “와! 양탄자다!” 아주 신나게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4.관용 Inclusion: 관대하라
남을 끌어안는 행동은 관대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많은 경우 관용은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당위성, 나의 신념, 나의 우월성을 꽉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나, 타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나, 상식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나의 정의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우리가 상식적이라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일반적인 것일 수 있다. 나 자신을 인간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상식적’이라는 범주에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식 밖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내 범주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몰상식적,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야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관대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제부터는 그 관대함을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거리를 두지 말고 온전히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내 의견은 배제하고, 오로지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며 곁에 있자. 일상의 번거로운 일들,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잠시 뒤로 미루자. 오로지 상대만을 위해 존재할 때 그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자.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자. 강하고 따뜻한 내 팔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자. 그들이 나의 팔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해주라.
도움을 주고 베푸는 행위에 집중해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도움의 손길을 거절당하면 그때의 심정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자. 그리고 그 기간에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혼자 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도 그 도움을 받자. 도와주려는 타인의 마음을 거스르지 말자. 그렇게 도움을 받았을 대의 느낌도 기록하자.
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인사하자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 사람들을 모두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 한마디로 너무 편리하게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자신을 상대의 처지에 놓고 보면 조금 더 관심을 보이게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만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특권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내 속에서는 두려움과 안도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렁인다. 허리케인과 쓰나미의 피해를 본 당사자는 다행히도 내가 아니다. 그러니 사건의 중대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서 TV에서 늘 보도하는 별 것 아닌 사건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나는 내 마음을 통제한다. 콩고 사태에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굶주린 전 세계 어린이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시내에서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자는?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성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인사 받을 권리, 그리고 테스 자신만큼 소중한 그의 자아를, 긴 설명이나 장황한 이론이 필요 없이 한 눈에 알아봤던 것이다.
어린이든, 대학교수든, 노숙자든, 회사 경비원이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경험과 추억이 잇는 사람임을 마음에 새겨두자. 우리 인간은 아주 복잡미묘한 존재이며, 다양한 짜임새를 지닌 다층 구조의 존재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진리임을 잊지 말자.
상식이란 18세까지 체득한 편견의 총체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5. 성실 Integrity 당당하게 말하라
정직한 선택은 자신이 믿는 진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이며, 남과 내가 이해의 광장에서 기꺼이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직한 선택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되 ‘내가 옳다’는 아집에 빠지지 않으며, 주관을 유지하되 상대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며, ‘남들이 왜 나를 이해하려고 조금 더 노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남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침묵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자
체면은 중요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에는 상대로 하여금 상처를 받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곤란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기지를 발휘하거나, 감정적 반응을 자제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창의성, 이해, 인내가 요구되고 때로는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버는 방법도 포함된다.”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타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겸손하고 섬세하게 처신하라고 가르친다.
매일 만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그의 수호천사가 되어보자. 한 사람을 고르기 어렵다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천사가 되어도 좋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차이가 쌓여서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큰 차이를 만든다. 마리안 라이트 에델만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칭찬을 받으려 할 때 우리는 정체하고 물에 빠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강물에 몸을 맡기자. 강과 함께 흘러가자. 강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강과 함께 움직이되 사람들에게서 ‘착해요, 똑똑해요, 예뻐요, 그래도 돼요.’ 따위의 말을 들으려고 배를 멈추지 말자.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찾지 말고, 쉬지 말고 움직이며, 보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배우기에 힘쓰며, 진실로 믿는 바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착하고, 아름답고, 똑똑하다. 남의 허락이 필요없다. 스스로 자신에게 허락하자.
마거릿 위틀리 <서로를 향하다>
“나는 스스로 존경하는 누군가가 되어 가는가?”
장보기 목록을 모아두자
우리는 기계 문자의 세상에서 이 고유한 징표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반역을 꿈꾸자. 삐딱하게 베레모를 쓰고 ‘와이파이 사용불가’라고 당당하게 써 붙인 카페에 앉아서 재생지에 콩 잉크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장보기 품목들을 적어보자.
언어에는 의미 이상의 것, 예를 들어 글씨의 형태가 있다. 글씨는 감성과 리듬, 그리고 그것을 쓴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형성된 필체는 평생 같은 틀로 계속 유지된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점 대신에 동그라미나 하트, 꽃잎을 그리는 등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몽당연필로 썼던 첫 글씨의 큰 뼈대는 계속 남아있다.
지난 시절의 필체에는 혹시 우리세대에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문자 통신은 필체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시들게 했고, 실용적인 사고 방식은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장식적인 서체를 사라지게 했다. 과거에 그토록 중요시 했던 필체에서 이제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인간에게서 필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사람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 열 통을 보내자.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자신과 무관한 부분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는다. –헤르만 헤세
배탈이나 몸살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애, 때로 깊은 잠과 무의식에 빠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침대 밖으로 나와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놀라움도 기쁨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매일 한 군데씩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가보자. 운동이 두려운 사람은 체육과도 좋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수영장도 좋다.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죽어가는 친구가 누워있는 병실에 찾아가자. 삶 속으로 뛰어들자. 쇼는 늘 계속되지 않는다. 지금 가지 않으면 놓친다.
나는 두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적이든, 비이성적이든,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 앞에서 주저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배에 타고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학습의 과정은 왕도보다 훨씬 덜 정확하다. 휘고 굽은 등산로야말로 진정한 배움을 얻는 곳이다. 출발이 잘못되었으면, 돌아와서 새로 시작하자. 어떨 때는 길을 벗어나 12마일을 헤맨다. 길을 잃는 것이 배움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을 얻으려면, 먼저 배에서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매일, 자신을 새로운 주제와 결합해보자. 길을 잃고, 길을 잘못 들고, 항상 가는 길에서 벗어나고, 개와 함께 다른 길을 걸어보고, 평소에 읽지 않는 잡지를 읽어보고, 다른 부류의 사람과 교류하고, 이전 같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식당에서 식사도 해보자. 형식을 타파하자. 출퇴근할 때 오가는 길, 함께 점심 먹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보는 영화 등 모든 것을 바꿔보자. 지름길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을 택해보자. 배에서 내리자. 자 어떤 기분인가?
한 시간 동안,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보자. 커피를 마실 때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다. 이웃과 대화하면서 세탁물을 정리할 수 없다. 우편물을 가지러 가면서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없다. 식사 중에 책을 읽을 수 없다. 이처럼, 한번에 한 가지만 해보자.
메모장을 꺼내서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했던 경험을 3분 동안 기록해보자. 기분이 어땠는가? 어려웠는가? 쉬웠는가? 짜증스러웠는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잃는 것, 혹은 빠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 이미 기한이 지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은 5분 동안 작성해보자.
그 중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죽을 일은 무엇인지, 5분 동안 써보자.
천천히 먹고 요리사에게 감사하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삶에 집중하는 훈련으로 매일 한 끼 음식에 대한 진솔한 평가를 글로 써보자.
식생활을 새롭게 시작하자.
일상적이고 간단한 음식, 자기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더라도 요리사, 음식 예술가가 되어보자.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알고 있었고, 상대 역시 내가 그의 생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만약 내가 가의 생일을 마음으로만 축하할 뿐, 축하파티에 참석하기는커녕 카드 한 장 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보다 더 중요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여파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서 보이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루에 적어도 10분을 할애하여 자신의 비전을 창조해보자. 건강이건, 일이건, 결혼이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자신만의 비전을 만들자. 그리고 깜빡이등을 켜자.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도록 자신의 비전을 말해주자.
나는 삶에서 무엇이 낯선가?
나는 이런 것들이 낯설다.
외줄타기와 접시닦기
파충류 손으로 잡기와 소리 내어 시 읽기
바위 타기와 요들송 부르기
옷 돌려 입기와 개구리를 해부하기
롤러코스터와 번지점프,
정치 연설과 머리 삭발하기
컨트리 곡 연주와 학위 받으려고 공부하기
히치하이크와 스쿠버다이빙
소설 쓰기와 아이 낳기
온 몸 제모하기와 골수 먹기
길 없는 곳 운전하기와 사업 벌이기
무기 휘두르기와 콘택트렌즈 끼기
노벨상 타기와 아프라카 여행하기
졸업무도회 가기와 파이 굽기
그리고 영화 찍기.
삶이 나에게 낯설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가 삶에 대해 이방인으로 남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방인>, 매릴린 메시엘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나’가 아니라 꼿꼿이 서서 바람과 고요, 동요와 부동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어떤 바람이 내게 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람이 너무 희미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불어오기에 혹시 나 자신이 휘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날이 지나고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사자약전(死者略傳)을 쓸 것이다. 우리 모두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사자약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떠나고 나서 남들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사자약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자약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번호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나는 번호보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사자약전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요약문이자, 생전에 그가 보여준 인간성에 대한 전문 같은 정의.
어떤 말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관심을 보였던 것 중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일까? 내가 했던 어떤 모험이 내가 추구했던 정신을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맺은 어떤 관계가 나를 핵심적으로 규정하게 될까? 생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보여주었던 재능이 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 젊은 엄마가 죽고 나서 윈프리는 그녀의 가족을 쇼에 초대했다. 윈프리는 아이들이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여행 이야기를 하리라고 기대하면서 엄마에 대한 가장 좋은 추억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윈프리의 질문에 어린 여동생이 조용히 대답했다. “엄마가 시리얼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함께 했던 먹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출세나 성공 등 거창한 것들로만으로 우리 삶을 요약할 수는 없다. 아침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먹는 시리얼 한 그릇, 아버지가 얼굴에 발라준 면도 거품, 하느님이 주신 중장비 다루는 재능, 일상의 작은 모험과 사소한 사건들이 우리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는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며 뒤에 남겨둔 사람들이 우리의 부재를 안타까워할 만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분 동안 자신의 사자약전을 써보자.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 친구, 동료가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기를 바라는가?
나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일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까?
그것은 출세나 성공과 같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그들 곁에 있었는지, 그들을 어떻게 배려하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매일 매일 자신이 자신이 작성한 최상의 사자약전처럼 살아보자.
하루하루가 첫날이다.
직업을 바꾸려고 할 때 판단 기준
1. 재미를 찾는다.
2. 돈을 번다.
3. 미래에 대비한다.
4. 그 분야에 이바지한다.
5.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6. 여행한다.
7. 배운다.
8. 배운 것을 남에게 전달한다.
“어떤 직업이나 일이 이 아홉 가지 기준 가운데 넷이나 다섯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셋 이하라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돈을 벌면서 여행도 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전부라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왜 그 일을 했지?’ 하는 후회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고, 무엇엔가 이바지한 것도 없으니 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느낌이 드는거죠.”
1. 기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할 때 기분이 가벼운가? 무거운가?
2. 재미: 내가 삶을 의식하고, 즐기고, 만끽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3. 배우고 배운 것을 전달하기: 내가 지적, 감정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4. 관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기존 관계들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잇는가?
5. 가족에 대한 헌신: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가족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가?
6. 분야에 대한 기여: 내 재능과 선택한 분야의 일반적인 지식에 도움이 되는가?
7. 의미: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8. 금전적 수입과 미래를 위한 준비: 내 노력, 시간, 에너지와 비교할 때 합당한 가치가 있으며 내가 경제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가?
9. 현실성: 필요한 것,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할 수 있는가?
10. 타인에 대하 배려: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나는 어던 일이 기준 가운데 적어도 다섯 가지, 될 수 있으면 여섯 가지 이상을 충족할 때만 그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나, 직업 또는 기회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에너지와 비전, 열정을 아껴서 다른 창조적인 일을 찾는 편이 낫다.
계속한다면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떨림과 생생한 기쁨, 좋은 인연과 창의적인 방향과 깊이, 그리고 넓이를 만들어 낼 일은 무엇일까? 우리를 더욱 온전한 존재로 만들고, 진실한 삶으로 인도하는 일은 무엇일까? 37일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할 수 없을까? 미국의 작가 애니 딜러드가 말했듯이 “우리가 하루하루를 사는 방식이 바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계속 중요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래리 제임스
어쩌면 그것은 37일 동안 매일 서랍을 정리하는 일일 수도 있다. 37일 동안 매일 시를 한 수씩 짓는 것이 타성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매일 다섯 가지 채소를 먹거나 10분씩 글쓰기를 하거나 10분씩 걷거나 일주일에 한 번 친구에게 우편엽서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행에 옮겨보자. 37일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할 것을 정해서 마음을 다잡고 실행에 옮기자.
어쩌면 그것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될 수도 있다. 회피, 낭비, 흡연, 변명, 편견, 과식 같은 것들.
한 가지 아주 작은 일에 집중하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자. 오늘부터 시작하자. 다음 주 화요일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시작하자. 앞으로 나의 삶을 충분히 변화시키고, 의식화하고, 의미 잇는 것으로 바꾸어놓고 났을 때의 그 삶을 지금부터 살기로 하자. 그리고 매일 다시 시작하자.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쉬운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늘 스스로 실망하게 되는 걸까? 맥스 브리스톨이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1마일 달리기를 하면서 나를 앞질렀을 때 그의 체육복 등에 쓰여 있었던 글귀처럼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이든 참아낼 수 있다.”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삶은 동사다.
긍정하라.
관대하라.
당당하게 말하라.
더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느리게 살아라.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야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피터 스트럽
앞으로 살아갈 날이 37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소중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더욱 절실하게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 스티브 잡스
자신의 삶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여섯 가지 실천방안
집중 Intensity, 관용 inclusion, 성실 integrity, 친밀 intimacy, 직관 intuition, 의도 intention
제 1부 충만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신성한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선명하게 인식한다. –조이스캐롤오츠
1. 기억을 위해 기록하라
각자의 추억은 모두 소중한 문학작품이다. – 올더스 헉슬리
자기 삶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작가이며 주인이 된다. –샘킨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인간이라 할 수 있다. – 이삭 디네센
위대한 변화는 절대로 공식적인 승인 절차를 걸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2부 의식하는 삶을 살기 위한 6가지 실천 과제
인간은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주도하면서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선택한다. –윌리엄 제임스
3. 집중 intensity: 긍정하라
삶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나탈리골드버그
아무리 작은 풀 한포기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그 안에서 신비스럽고, 경이롭고,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인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헨리밀러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추자
음악이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춤추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안젤라모네
어른들이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를 헐뜯고, 비웃고, 따돌리고, 회피하고, 익명의 메모를 보내 경고하고, 심지어 마약 중독으로 의심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는 걸까? 엉덩이를 가리려고 웃옷을 잡아당기고, 일상에서 춤이 사라지는 순간 과연 언제인가? 이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본 나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행동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제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고, 동시에 타인이 하는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면 나도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마음껏 춤출 수 있다! 졸업 무도회에 다녀온 지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진실을 깨우쳤다.
다른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 등 비하하는 말이 나오려고 하면 즉시 멈춘다. 상대를 혹평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면 3초 동안 숨을 멈춘다. 그런 다음 그런 혹평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서 평가 받기 싫다면 나부터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
작은 포도 알을 가지고 다니자.
존재는 하나의 경이로움에서 열린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노자
나의 부적, 행운의 물건은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늘 지니고, 친구처럼 대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들어보자. 감동을 주는 대상을 발견하는 심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런 심성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자.
슈퍼의 소량계산대 앞에서 22개나 되는 물건을 가지고 계산 중인 남자 뒤에 서 있을 때, 지갑에서 포도를 꺼내 내게 감동을 주는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혹시 특별한 날에만 쓰려고 할머니가 주신 멋진 식기를 찬장에 진열만 해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장 꺼내서 식사할 때마다 사용하자.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다.)
빨간색 오픈카를 렌트하자.
독창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대범하게 행동하라. 현실에 안주하면서 진부함과 평범함을 지향하는 이들에 대항하여 목적과 창의적 비전을 제시하는 자가 되라. 세실비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미있게 살 권리가 있다. 신중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이 대단한 미덕으로 착각하는, 우리보다 상상력이 모자란 이들의 조소 따위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 조심하며 사는 안전주의자나 대담하게 사는 모험주의자나 죽을 확률은 똑같이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과연 어떤 차를 빌릴까? 빨간색 오픈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과처럼 밝은 연두색 폭스바겐 비틀 정도는 빌릴 참이다. 그저 생각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한 가지 이상의 일에 예술적 감수성을 발휘해보자. 예를 들어 카드를 보낼 일이 있으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으로 예쁘게 꾸미고 멋진 격언을 써서 보내자. 가족의 캐리커처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좋다. 접시에 음식이나 과일을 담을 때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미적 감각을 살려보자. 음식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생이 바로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렌지 깃발을 기념하자
잘못했을 때 나무라기보다는 잘했을 때 칭찬하는 편이 열 배 이상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칭찬보다 꾸중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유리 한 장에 돌을 얌전히 올려놓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앨런
칭찬하라. 그 말을 믿지 않을 테니비판하라. 그대를 싫어할 테니.무시하라. 그대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격려하라. 그대를 잊지 않을 테니.사랑하라. 그대를 사랑할 테니. 윌리엄 아더 워드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사방을 환하게 밝혀줄 초는 1년 365일 늘 챙겨두자. 촛불을 밝힐 일은 정말로 많다. 평범한 일상을 축하와 긍정적 태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고, 최소한 자신이 가진 것의 30퍼센트를 격려하고 축하하자. 슈퍼에 가서 생일 초 다섯 통을 산 다음, 신나게 사용해보자.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밝히자.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일은 기대치가 낮기에 축하하면 더 신난다. 늘 초를 가지고 다니자. 나는 여행할 때도 초를 가지고 다닌다. 언제 축하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이스카우트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았던가. 매사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핑크색 안경을 쓰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빛은 언젠가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나이스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허락 받을 필요가 없다. 허락은 받는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거부권을 남에게 내주는 것과 같다. –앨버트 죠프리
패트리샤 매드스은 그녀의 저서 <힘내라, 내 인생!>에서 날을 정해 온종일 모든 일에 ‘네!’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이런 제안에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네’라고 대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대답을 권한다. “네, 주세요. 우리 아들이 체리를 좋아하니 집에 가지고 가겠어요.”
핑크색 안경을 써보자. 아니면 감히 핑크색 안경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친구에게 핑크색 안경을 선물하자. 어쩌면 그 안경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버스를 보면 ‘와’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나이를 먹을수록 장난기를 발휘하기 어렵다. 장난기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리처드 파인만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풀 섶에 붙어있는 무당벌레를 보려고 몸을 숙인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어른 들과 다른 관심의 대상과 시간의 흐름이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세상을 더 많이 발견하는 아이일수록 어른의 강요에는 무조건 순종하지 않는다. 캐시 넛 브라운
우리는 스스로 위장하는 법을 배우고, 놀라움과 즐거움, 자신감과 자괴감 등을 감추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림 그리겠다고 나서지 마라. 너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사람들은 네 그림을 비판할 것이다. 노래 부르겠다고 나서지 마라. 노래 잘하는 사람 수두룩하고 너는 가수도 아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정도가 아니면 글 쓴다는 소리는 아예 하지 마라.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감탄하지 마라. 유치하고 철없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 뻔하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감탄마저도 자체할 때가 많다. 감탄하기를 꺼리거나 감탄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감탄하는 행위를 경솔한 태도나 철부지 행동으로 치부한다. 놀라서 감탄하면, 나약한 사람이 된다. 준비성이 없는 사람이 된다. 철없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놀라서도, 감탄해서도 안 된다. 절대로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진짜, 진짜, 진짜 커다란 버스’를 보았을 때 기분이 마구 들떠도, 절대로 그 상태를 남에게 노출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마구 흔들어도 안 되고,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하고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상태를 내비쳐도 안 된다.
테스의 그네를 밀어주면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이 네 살짜리 꼬마는 “더 세게! 더 세게!를 계속 외쳐댄다.) 만약 어른들이 테스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대한다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와!! 회의다!! 내용도 없이 길고, 완전 지루한 회의다!! 와우!! 주차딱지 한번 세다! 야호! 200페이지짜리 마케팅계획서 대단하다! 우후!! 보고서 마감일이 내일이다! 이히!! 벌써 집세 낼 때가 됐다!! 와와!! 무능한 상사는 진짜, 진짜, 커다란 소방차에서 실어서 내다 버리자!!”
나의 내면에 잠재한 감탄, 놀라움, 즐거움 등의 감정을 아이들처럼 소리 내어 밖으로 분출해보자. 버스나 소방차, 거리의 가로수나 해변의 조개껍데기, 그리고 내 인생 자체에 대해 늘 감탄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자.
깊이 생각하지 말고, 주걱, 거울, 양탄자, 컴퓨터 등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다섯 가지 사물을 고른다. 앞으로 그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 “와! 주걱이다” “와! 양탄자다!” 아주 신나게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4.관용 Inclusion: 관대하라
살아 있는 동안 관대함을 베푸는 것과 죽음의 문턱에서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넓은 마음과 아량에서 나오는 선행이지만 후자는 오만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에 불과하다. –호라스만
남을 끌어안는 행동은 관대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많은 경우 관용은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당위성, 나의 신념, 나의 우월성을 꽉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나, 타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나, 상식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나의 정의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우리가 상식적이라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일반적인 것일 수 있다. 나 자신을 인간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상식적’이라는 범주에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식 밖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내 범주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몰상식적,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야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관대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제부터는 그 관대함을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을 맞대고 앉아보자
살다 보면 내 안에서 불타오르던 열정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사라진 열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다시 불타오른다. 우리는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주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오늘 밤부터 새로운 인생 모토를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지기’로 바꾸자. 제임스M배리경
거리를 두지 말고 온전히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내 의견은 배제하고, 오로지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며 곁에 있자. 일상의 번거로운 일들,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잠시 뒤로 미루자. 오로지 상대만을 위해 존재할 때 그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자.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자. 강하고 따뜻한 내 팔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자. 그들이 나의 팔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해주라.
도움을 주고 베푸는 행위에 집중해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도움의 손길을 거절당하면 그때의 심정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자. 그리고 그 기간에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혼자 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도 그 도움을 받자. 도와주려는 타인의 마음을 거스르지 말자. 그렇게 도움을 받았을 대의 느낌도 기록하자.
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인사하자
집 없고, 헐벗고, 굶주리는 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진정한 가난이다. 이런 가난은 가정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테레사수녀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 사람들을 모두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 한마디로 너무 편리하게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자신을 상대의 처지에 놓고 보면 조금 더 관심을 보이게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만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특권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내 속에서는 두려움과 안도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렁인다. 허리케인과 쓰나미의 피해를 본 당사자는 다행히도 내가 아니다. 그러니 사건의 중대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서 TV에서 늘 보도하는 별 것 아닌 사건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나는 내 마음을 통제한다. 콩고 사태에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굶주린 전 세계 어린이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시내에서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자는?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성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인사 받을 권리, 그리고 테스 자신만큼 소중한 그의 자아를, 긴 설명이나 장황한 이론이 필요 없이 한 눈에 알아봤던 것이다.
노숙자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다. 단지, 집이 없을 뿐이다. 쉴라 맥케츠니
어린이든, 대학교수든, 노숙자든, 회사 경비원이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경험과 추억이 잇는 사람임을 마음에 새겨두자. 우리 인간은 아주 복잡미묘한 존재이며, 다양한 짜임새를 지닌 다층 구조의 존재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진리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관심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전 인류를 향한 것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그 누구도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왜냐면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토머스 브라운 경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새해가 왔으니 우리 모두 기쁘게 맞이하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상식이란 18세까지 체득한 편견의 총체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해가 필요할 뿐이다. 퀴리 부인
5. 성실 Integrity 당당하게 말하라
자신에게 진정으로 정직해질 때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한다. 세자르 차베스
지금 하는 일이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하라.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윌리엄 제임스
정직한 선택은 자신이 믿는 진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이며, 남과 내가 이해의 광장에서 기꺼이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직한 선택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되 ‘내가 옳다’는 아집에 빠지지 않으며, 주관을 유지하되 상대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며, ‘남들이 왜 나를 이해하려고 조금 더 노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남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침묵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자
자존심은 행동이 아니라, 관용이 지켜준다. – 조지 산타아나
체면은 중요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에는 상대로 하여금 상처를 받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곤란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기지를 발휘하거나, 감정적 반응을 자제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창의성, 이해, 인내가 요구되고 때로는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버는 방법도 포함된다.”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타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겸손하고 섬세하게 처신하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워커퍼시
매일 만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그의 수호천사가 되어보자. 한 사람을 고르기 어렵다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천사가 되어도 좋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차이가 쌓여서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큰 차이를 만든다. 마리안 라이트 에델만
진리는 없다. 단지 견해가 있을 뿐이다. –에디스 스트웰 부인
어떤 규칙들이 나를 얽매어도 나는 자유롭다. 참을 만하면 참을 것이고, 지나치다 싶으면 그 규칙을 깰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오로지 나 자신만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자유롭다. 로버트 A 하이라인
만약 모든 규칙을 지킨다면, 모든 재미를 잃는다. – 캐서린 햅번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칭찬을 받으려 할 때 우리는 정체하고 물에 빠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강물에 몸을 맡기자. 강과 함께 흘러가자. 강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강과 함께 움직이되 사람들에게서 ‘착해요, 똑똑해요, 예뻐요, 그래도 돼요.’ 따위의 말을 들으려고 배를 멈추지 말자.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찾지 말고, 쉬지 말고 움직이며, 보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배우기에 힘쓰며, 진실로 믿는 바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착하고, 아름답고, 똑똑하다. 남의 허락이 필요없다. 스스로 자신에게 허락하자.
마거릿 위틀리 <서로를 향하다>
“나는 스스로 존경하는 누군가가 되어 가는가?”
장보기 목록을 모아두자
가장 희미한 먹물 자국도 가장 선명한 기억보다 낫다. 중국속담
과거는 결코 죽은 것도, 지나간 것도 아니다. 윌리엄 포크너
어렸을 적 기억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영구히 각인되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 신시아 오직
우리는 기계 문자의 세상에서 이 고유한 징표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반역을 꿈꾸자. 삐딱하게 베레모를 쓰고 ‘와이파이 사용불가’라고 당당하게 써 붙인 카페에 앉아서 재생지에 콩 잉크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장보기 품목들을 적어보자.
언어에는 의미 이상의 것, 예를 들어 글씨의 형태가 있다. 글씨는 감성과 리듬, 그리고 그것을 쓴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형성된 필체는 평생 같은 틀로 계속 유지된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점 대신에 동그라미나 하트, 꽃잎을 그리는 등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몽당연필로 썼던 첫 글씨의 큰 뼈대는 계속 남아있다.
지난 시절의 필체에는 혹시 우리세대에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문자 통신은 필체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시들게 했고, 실용적인 사고 방식은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장식적인 서체를 사라지게 했다. 과거에 그토록 중요시 했던 필체에서 이제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인간에게서 필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사람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 열 통을 보내자.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자신과 무관한 부분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는다. –헤르만 헤세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부터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도로시 톰슨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슬픔으로 고통받고, 처절하고, 참담하고, 쓰라리게 불행한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멋진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실패라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솔 벨로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오직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이 세상에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배탈이나 몸살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애, 때로 깊은 잠과 무의식에 빠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침대 밖으로 나와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놀라움도 기쁨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나는 인생을 방관하는 자세를 언제나 증오했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인가? 내가 무언가가 되려면 참여해야 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자신의 운명을 창조한다. 헨리밀러
매일 한 군데씩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가보자. 운동이 두려운 사람은 체육과도 좋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수영장도 좋다.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죽어가는 친구가 누워있는 병실에 찾아가자. 삶 속으로 뛰어들자. 쇼는 늘 계속되지 않는다. 지금 가지 않으면 놓친다.
나는 두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적이든, 비이성적이든,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 앞에서 주저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배에 타고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학습의 과정은 왕도보다 훨씬 덜 정확하다. 휘고 굽은 등산로야말로 진정한 배움을 얻는 곳이다. 출발이 잘못되었으면, 돌아와서 새로 시작하자. 어떨 때는 길을 벗어나 12마일을 헤맨다. 길을 잃는 것이 배움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을 얻으려면, 먼저 배에서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곳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먼 곳은 그저 먼 곳일 뿐이다. 포보
오십 대에도 이십 대 시절과 똑같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인생에서 30년을 허비한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배를 만든 목적은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레이스 호퍼
매일, 자신을 새로운 주제와 결합해보자. 길을 잃고, 길을 잘못 들고, 항상 가는 길에서 벗어나고, 개와 함께 다른 길을 걸어보고, 평소에 읽지 않는 잡지를 읽어보고, 다른 부류의 사람과 교류하고, 이전 같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식당에서 식사도 해보자. 형식을 타파하자. 출퇴근할 때 오가는 길, 함께 점심 먹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보는 영화 등 모든 것을 바꿔보자. 지름길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을 택해보자. 배에서 내리자. 자 어떤 기분인가?
조급한 감정은 삶을 온전히 살면서 시간에 쫓겨 생긴 결과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의 결과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에릭 호퍼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둘 다 하지 않는 것이다. 푸블리우스 시루스
한 시간 동안,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보자. 커피를 마실 때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다. 이웃과 대화하면서 세탁물을 정리할 수 없다. 우편물을 가지러 가면서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없다. 식사 중에 책을 읽을 수 없다. 이처럼, 한번에 한 가지만 해보자.
메모장을 꺼내서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했던 경험을 3분 동안 기록해보자. 기분이 어땠는가? 어려웠는가? 쉬웠는가? 짜증스러웠는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잃는 것, 혹은 빠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 이미 기한이 지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은 5분 동안 작성해보자.
그 중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죽을 일은 무엇인지, 5분 동안 써보자.
천천히 먹고 요리사에게 감사하자.
무엇이든 사랑으로 만든 것은 훌륭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에메릴 라가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삶에 집중하는 훈련으로 매일 한 끼 음식에 대한 진솔한 평가를 글로 써보자.
식생활을 새롭게 시작하자.
일상적이고 간단한 음식, 자기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더라도 요리사, 음식 예술가가 되어보자.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알고 있었고, 상대 역시 내가 그의 생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만약 내가 가의 생일을 마음으로만 축하할 뿐, 축하파티에 참석하기는커녕 카드 한 장 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보다 더 중요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여파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서 보이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상호 연관관계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르게 하는 척도이다. –토머스 제인
시간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변화를 가져올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앤디 워홀
하루에 적어도 10분을 할애하여 자신의 비전을 창조해보자. 건강이건, 일이건, 결혼이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자신만의 비전을 만들자. 그리고 깜빡이등을 켜자.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도록 자신의 비전을 말해주자.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원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나는 삶에서 무엇이 낯선가?
나는 이런 것들이 낯설다.
외줄타기와 접시닦기
파충류 손으로 잡기와 소리 내어 시 읽기
바위 타기와 요들송 부르기
옷 돌려 입기와 개구리를 해부하기
롤러코스터와 번지점프,
정치 연설과 머리 삭발하기
컨트리 곡 연주와 학위 받으려고 공부하기
히치하이크와 스쿠버다이빙
소설 쓰기와 아이 낳기
온 몸 제모하기와 골수 먹기
길 없는 곳 운전하기와 사업 벌이기
무기 휘두르기와 콘택트렌즈 끼기
노벨상 타기와 아프라카 여행하기
졸업무도회 가기와 파이 굽기
그리고 영화 찍기.
삶이 나에게 낯설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가 삶에 대해 이방인으로 남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방인>, 매릴린 메시엘
우리가 남들과 다를 권리를 잃는 것은 자유로울 특권을 잃는 것이다. 찰스 에반스 휴스
우리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위장하게 된다. 로슈푸코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나’가 아니라 꼿꼿이 서서 바람과 고요, 동요와 부동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어떤 바람이 내게 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람이 너무 희미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불어오기에 혹시 나 자신이 휘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날이 지나고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사자약전(死者略傳)을 쓸 것이다. 우리 모두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사자약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떠나고 나서 남들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사자약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자약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번호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나는 번호보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사자약전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요약문이자, 생전에 그가 보여준 인간성에 대한 전문 같은 정의.
어떤 말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관심을 보였던 것 중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일까? 내가 했던 어떤 모험이 내가 추구했던 정신을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맺은 어떤 관계가 나를 핵심적으로 규정하게 될까? 생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보여주었던 재능이 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쓰려다가 다른 이야기를 쓰는 일기와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쓰기로 작정했던 이야기와 실제로 쓰고 있는 이야기를 비교하는 순간에 가장 겸손해진다. 제임스 M배리
우리가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토머스 캠벨
그 젊은 엄마가 죽고 나서 윈프리는 그녀의 가족을 쇼에 초대했다. 윈프리는 아이들이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여행 이야기를 하리라고 기대하면서 엄마에 대한 가장 좋은 추억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윈프리의 질문에 어린 여동생이 조용히 대답했다. “엄마가 시리얼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함께 했던 먹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우리의 죽음을 장의사조차 슬퍼할 만한 삶을 살자. 마크트웨인
바로 지금이 당신이 상상한 삶을 살기 시작한 순간이다. 헨리 제임스
출세나 성공 등 거창한 것들로만으로 우리 삶을 요약할 수는 없다. 아침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먹는 시리얼 한 그릇, 아버지가 얼굴에 발라준 면도 거품, 하느님이 주신 중장비 다루는 재능, 일상의 작은 모험과 사소한 사건들이 우리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는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며 뒤에 남겨둔 사람들이 우리의 부재를 안타까워할 만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분 동안 자신의 사자약전을 써보자.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 친구, 동료가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기를 바라는가?
나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일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까?
그것은 출세나 성공과 같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그들 곁에 있었는지, 그들을 어떻게 배려하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매일 매일 자신이 자신이 작성한 최상의 사자약전처럼 살아보자.
나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지 않겠다. 삶의 시간에 온전히 머무르며 내 삶이 나를 꽃피우게 하겠다. 내 존재의 의미에 걸고 모험하는 편을 택하겠다. 도나 마르코바
하루하루가 첫날이다.
직업을 바꾸려고 할 때 판단 기준
1. 재미를 찾는다.
2. 돈을 번다.
3. 미래에 대비한다.
4. 그 분야에 이바지한다.
5.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6. 여행한다.
7. 배운다.
8. 배운 것을 남에게 전달한다.
“어떤 직업이나 일이 이 아홉 가지 기준 가운데 넷이나 다섯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셋 이하라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돈을 벌면서 여행도 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전부라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왜 그 일을 했지?’ 하는 후회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고, 무엇엔가 이바지한 것도 없으니 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느낌이 드는거죠.”
1. 기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할 때 기분이 가벼운가? 무거운가?
2. 재미: 내가 삶을 의식하고, 즐기고, 만끽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3. 배우고 배운 것을 전달하기: 내가 지적, 감정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4. 관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기존 관계들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잇는가?
5. 가족에 대한 헌신: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가족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가?
6. 분야에 대한 기여: 내 재능과 선택한 분야의 일반적인 지식에 도움이 되는가?
7. 의미: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8. 금전적 수입과 미래를 위한 준비: 내 노력, 시간, 에너지와 비교할 때 합당한 가치가 있으며 내가 경제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가?
9. 현실성: 필요한 것,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할 수 있는가?
10. 타인에 대하 배려: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나는 어던 일이 기준 가운데 적어도 다섯 가지, 될 수 있으면 여섯 가지 이상을 충족할 때만 그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나, 직업 또는 기회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에너지와 비전, 열정을 아껴서 다른 창조적인 일을 찾는 편이 낫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행동뿐이다. 삶은 말이 아니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행동을 믿어라. 앨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계속한다면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떨림과 생생한 기쁨, 좋은 인연과 창의적인 방향과 깊이, 그리고 넓이를 만들어 낼 일은 무엇일까? 우리를 더욱 온전한 존재로 만들고, 진실한 삶으로 인도하는 일은 무엇일까? 37일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할 수 없을까? 미국의 작가 애니 딜러드가 말했듯이 “우리가 하루하루를 사는 방식이 바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계속 중요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래리 제임스
어쩌면 그것은 37일 동안 매일 서랍을 정리하는 일일 수도 있다. 37일 동안 매일 시를 한 수씩 짓는 것이 타성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매일 다섯 가지 채소를 먹거나 10분씩 글쓰기를 하거나 10분씩 걷거나 일주일에 한 번 친구에게 우편엽서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행에 옮겨보자. 37일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할 것을 정해서 마음을 다잡고 실행에 옮기자.
어쩌면 그것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될 수도 있다. 회피, 낭비, 흡연, 변명, 편견, 과식 같은 것들.
한 가지 아주 작은 일에 집중하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자. 오늘부터 시작하자. 다음 주 화요일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시작하자. 앞으로 나의 삶을 충분히 변화시키고, 의식화하고, 의미 잇는 것으로 바꾸어놓고 났을 때의 그 삶을 지금부터 살기로 하자. 그리고 매일 다시 시작하자.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쉬운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늘 스스로 실망하게 되는 걸까? 맥스 브리스톨이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1마일 달리기를 하면서 나를 앞질렀을 때 그의 체육복 등에 쓰여 있었던 글귀처럼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이든 참아낼 수 있다.”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삶은 동사다.
긍정하라.
관대하라.
당당하게 말하라.
더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느리게 살아라.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단 한번뿐인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인생을 걸고 모험에 나서자.당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조지 엘리엇
하루를 그럭저럭 살다보니 고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또 한 주가 흘렀고, 비가 내리고 있는 일요일 저녁이다. 이번 주에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만난 형님과 함께 소주 한 잔을 하고 들어왔다.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의에서 약 1년간 생활을 하면서 구의에서 한 번쯤은 술을 마셨을 법도 한데, 우리의 무대는 늘 건대였다. 그래, 건대에서는 참 많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좋아, 비가 내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곳에 적어보자. 모든 것은 그렇다. 어떤 것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게 어렵다. 시를 쓰기로 마음을 먹는게 어렵고,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게 어렵고,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는게 어려운 법이다.
2013년은 약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나의 2013년은 어땠는가. 이 이야기는 조금 더 2013년의 말미에 하고 싶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다. 그 때가 되면 할 애기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무도 적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걸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말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런거라면 너무도 싫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만큼 변했는지, 얼만큼 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주위는 많이 변했다. 다들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를 보자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느낌이지만, 큰 그림을 봤을 땐 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서 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나로 인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 한 때 내 인생의 사명을 '창조'와 '기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를 창조할 수 있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굉장히 많은 걸 꿈꾼다. 과연 그런 꿈들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늘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하루를 그럭저럭 살다 보니 고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로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내 머릿속의 생각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이다. 멋지게 살아가자. 우리, 멋지게 살아가자. 내 소중한 삶, 내 가족들의 소중한 삶, 그대들 모두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
좋아, 비가 내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곳에 적어보자. 모든 것은 그렇다. 어떤 것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게 어렵다. 시를 쓰기로 마음을 먹는게 어렵고,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게 어렵고,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는게 어려운 법이다.
2013년은 약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나의 2013년은 어땠는가. 이 이야기는 조금 더 2013년의 말미에 하고 싶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다. 그 때가 되면 할 애기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무도 적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걸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말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런거라면 너무도 싫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만큼 변했는지, 얼만큼 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주위는 많이 변했다. 다들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를 보자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느낌이지만, 큰 그림을 봤을 땐 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서 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나로 인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 한 때 내 인생의 사명을 '창조'와 '기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를 창조할 수 있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굉장히 많은 걸 꿈꾼다. 과연 그런 꿈들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늘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하루를 그럭저럭 살다 보니 고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로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내 머릿속의 생각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이다. 멋지게 살아가자. 우리, 멋지게 살아가자. 내 소중한 삶, 내 가족들의 소중한 삶, 그대들 모두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6월 말, 내가 써 온 글들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뒤로부터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결정한 방법은 이 곳, 구글 블로거이다. 9월 18일부터 블로그 이사를 시작해서 3주 동안 1,000여개에 가까운 글을 모두 옮겼다. 이것은 정말 큰 작업이었다.
# 글 위주로 옮겼다. 영화, 책 리뷰 / 사진 / 음악 등에 대한 관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2005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의 시간여행을 했다. 나는 정말 수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 내가 작성한 글은 모두 2,000여개가 넘었다. 글들을 나름 분류하기 위해서 모든 글에 각각 태그를 달았다. 내가 가장 많이 이야기 했던 부분은 인생의 느낌 (239) 나에게 하는 말 (209) 관계 (118) 청년의 다짐 (116) 그대에게 하는 말 (107) 그대가 말했다 (102) 그대는 감동 (74) 일본인연 (72) 책이 말하길 (72)... 이다. 많은 걸 느끼며 살아왔고, 그리고 내 자신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항상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그런 인생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 앞으로도 열심히 쓰고 쓸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유지에 대한 고민
예전엔 블로그에 자주 들러 글을 쓰던 것이, 최근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게으름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엔 글 쓸 단서를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데, 그건 게으름으로 모두 설명된다.
그 밖의 다른 변명을 더 대보자면
1. 트위터를 다시 하면서
-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트위터에 잠깐씩 기록한다. 그러다보니 정말에 단순하며 생각의 확장에 이르지 못하는 문장들을 올리고 있다. 트위터에 별 내용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저 느낌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어딘가에 적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음은 아니다. 군대에 들어가 훈련병이 되었을 때도 노트와 펜을 받자마자 훈련병의 일상을 기록했다. (일상을 어느정도 깊이로 기록하느냐는 물론 차이가 있다.) 지금은 트위터며, 구글플러스며, 페이스북이며, 내 PC의 파일들, 또는 클라우드 상의 파일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만 블로그에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 것. 어쩌면 공개할만한 기록이 없는 것. 비밀글은 많이 작성하고 있다.
2.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
- 내 블로그는 '나'를 그려왔다. 2005년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9년이 채워져 간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내 블로그만 잘 읽어보면 나라는 사람을 100%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지인들의 관계도 모두 알 수 있다. 그만큼 내 블로그는 나와 이미 동일시되어 있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기록하는 나의 페르소나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블로그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 이를테면 영화, 음악, 책, 사진 등을 모아놓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대학생활의 모든 경험과 생각들, 나의 역사들이 고스란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이곳에 쌓아가고 있는 것이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실 서로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도 좀 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
3. 네이버 블로그 유지해야 하나
- 네이버의 서비스가 폐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스레 폐쇄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 그만큼 국내시장에서는 네이버가 검색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네이버가 자사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네이버 블로그에 나는 9년간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큰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나는 네이버에 계속 내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모든 데이터를 백업해 놓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검색해봤더니, 그 방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고 너무도 불편하며 파일 포맷도 PDF만으로 제공하더라. 순간, 위기 의식을 느꼈다. 발을 쉽게 못 빼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1)정말 오랜시간을 걸려 자체적인 백업방법으로 백업을 할 것이냐 2)네이버 블로그를 그냥 끝까지 이용할 것이냐 3)네이버 블로그를 폐쇄할 것이냐 등이다. 1번은 그 동안 올린 데이터(글과 사진과 영상)가 너무 방대해서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고, 2번은 솔직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이후로 모든 검색은 구글을 이용하고, SNS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기타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폐쇄적인 네이버는 그런 것들간의 동기화 혹은 호환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조금 더 네이버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광고액에 따라 우선적으로 광고를 노출시키는 네이버 검색이야 진작에 사용하기를 포기했고, 메인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신문 모양의 언론사 링크는 클릭할 동인이 없고, 그마저도 뉴스 기사를 읽으면 표현의 자유가 난무하는 댓글들에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잘 쓰고 있는 것도 있다. 네이버 사전과 지도! 특히 네이버사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네이버랜드에 내 역사를 쌓아가는 일을 재고하고 있는 중이다.
각각에 대한 결론
1. 트위터에 짧은 단상을 적더라도 그 생각을 확장하여 글을 쓰는 연습을 하자.
2. 세상에 의미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분야를 정하자.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글)
3. 당분간은 현상 유지를 하는 동시에 네이버를 탈출하여 둥지를 틀 수 있는 새로운 스페이스를 모색해보자.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게으름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엔 글 쓸 단서를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데, 그건 게으름으로 모두 설명된다.
그 밖의 다른 변명을 더 대보자면
1. 트위터를 다시 하면서
-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트위터에 잠깐씩 기록한다. 그러다보니 정말에 단순하며 생각의 확장에 이르지 못하는 문장들을 올리고 있다. 트위터에 별 내용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저 느낌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어딘가에 적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음은 아니다. 군대에 들어가 훈련병이 되었을 때도 노트와 펜을 받자마자 훈련병의 일상을 기록했다. (일상을 어느정도 깊이로 기록하느냐는 물론 차이가 있다.) 지금은 트위터며, 구글플러스며, 페이스북이며, 내 PC의 파일들, 또는 클라우드 상의 파일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만 블로그에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 것. 어쩌면 공개할만한 기록이 없는 것. 비밀글은 많이 작성하고 있다.
2.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
- 내 블로그는 '나'를 그려왔다. 2005년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9년이 채워져 간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내 블로그만 잘 읽어보면 나라는 사람을 100%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지인들의 관계도 모두 알 수 있다. 그만큼 내 블로그는 나와 이미 동일시되어 있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기록하는 나의 페르소나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블로그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 이를테면 영화, 음악, 책, 사진 등을 모아놓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대학생활의 모든 경험과 생각들, 나의 역사들이 고스란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이곳에 쌓아가고 있는 것이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실 서로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도 좀 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
3. 네이버 블로그 유지해야 하나
- 네이버의 서비스가 폐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스레 폐쇄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 그만큼 국내시장에서는 네이버가 검색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네이버가 자사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네이버 블로그에 나는 9년간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큰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나는 네이버에 계속 내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모든 데이터를 백업해 놓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검색해봤더니, 그 방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고 너무도 불편하며 파일 포맷도 PDF만으로 제공하더라. 순간, 위기 의식을 느꼈다. 발을 쉽게 못 빼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1)정말 오랜시간을 걸려 자체적인 백업방법으로 백업을 할 것이냐 2)네이버 블로그를 그냥 끝까지 이용할 것이냐 3)네이버 블로그를 폐쇄할 것이냐 등이다. 1번은 그 동안 올린 데이터(글과 사진과 영상)가 너무 방대해서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고, 2번은 솔직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이후로 모든 검색은 구글을 이용하고, SNS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기타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폐쇄적인 네이버는 그런 것들간의 동기화 혹은 호환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조금 더 네이버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광고액에 따라 우선적으로 광고를 노출시키는 네이버 검색이야 진작에 사용하기를 포기했고, 메인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신문 모양의 언론사 링크는 클릭할 동인이 없고, 그마저도 뉴스 기사를 읽으면 표현의 자유가 난무하는 댓글들에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잘 쓰고 있는 것도 있다. 네이버 사전과 지도! 특히 네이버사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네이버랜드에 내 역사를 쌓아가는 일을 재고하고 있는 중이다.
각각에 대한 결론
1. 트위터에 짧은 단상을 적더라도 그 생각을 확장하여 글을 쓰는 연습을 하자.
2. 세상에 의미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분야를 정하자.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글)
3. 당분간은 현상 유지를 하는 동시에 네이버를 탈출하여 둥지를 틀 수 있는 새로운 스페이스를 모색해보자.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회사의 동료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봄이 왔다는건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찬바람이 여간 멈추질 않아서 여유로이 산책을
하기보다는 빨리 따뜻한 사무실에 들어가고 싶은 날씨였다. 그런데 진짜 봄이 온거 같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도 더 이상 바람이 차지 않다.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인턴생활을 한지도 곧 세달이 채워져 간다. 많은 걸 배우며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아주 좋은 경험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좋은 날씨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 같다. 곧 짧은 봄이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테지만 이 짧은 봄은 우리들에게 많은 걸 의미한다.
나에게는/
하고 싶은게 부쩍이나 많아지는 봄이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배우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등 마음 속에 위시리스트가 빈틈없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 실현가능성을 따져본다면 제한된 시간과 비용과 혹은 마음의 용기 때문에 위시리스트를 얼마나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대단히 미지수지만 위시리스트가 있는 것 자체에 마음이 놓이는 요즘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오블리비언 Oblivion'에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 더해서 우리가 바라는 것 또한 곧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놓는 게 쿨하지 않고,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때론 부끄럽게 보여지는 요즘 세상이지만,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더
쿨하지 않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이건
또 내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쓴 '믿음'에 관한 글과도 연결된다. '믿는 사람에겐 존재한다'는 것.
내 블로그에서 내 글들은 끊임없이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언젠가 본 영화, 언젠가 읽은
책, 언젠가 만난 사람, 언젠가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들은
쉴새없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이 글이 맞닿아 있는 내 삶의 접점을 말해보자면,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봄을 산책한 일 - 우린
무슨 얘기들을 나눴지 - 이런 날씨 좋은 날 소풍 가고 싶다
- 그러게, 정말 봄이 왔네. 좋다 - 작년에는 일본, 독일,중국
친구들과 어린이대공원을 벚꽃놀이를 갔었지 - 중학교
때 재밌게 봤던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벚꽃이 생각나네 - 그 애니메이션의 음악도 좋았는데 - 벚꽃이 아름다웠던 애니메이션은 '초속 5cm'라는 애니도 있었지 - 애니라,, 친구 중엔 그림을 잘 그리는 애가 있는데 - 그 친구는 뭐하며
지내나'
글이 지니는 가치에 대하여
애초에 인간은 소리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 언어를 만든다. 단순한 글자에서 단어로, 문장으로 그리고 글로 발전하게 됨과 동시에 우리 인간은 과거로의 연결통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봄꽃 산책으로 가볍게 시작한 문장이, 또 이렇게 하나의 짧은 글이 되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내 머릿 속에 스친)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으로 연결지어 이 연결을 마무리해보자.
삶은 결과를 위한 끊임없는 추구가 아니라 조각을 이어 만든 퀼트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서로 한땀한땀 꿰매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사랑과 번영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엮어나가는 관계들이 아름답고 끝없는 패턴을 이루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과 지금 아는 것들은 , 당신이 직접 혹은 책과 음악, 이메일, 문화 등을 통하여 당신의 삶 속에서 상호작용한 사람과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산물이다. 풍요가 풍요를 불러들이고 있을 때 누가 많이 받고 누가 많이 주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다. 오늘부터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사람과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인간관계를 넓혀나가겠다고 결심하라. 어떻게 삶을 살고 싶은가? 당신의 퀼트에 어떠너 사람을 엮어나가고 싶은가? 아마도 일이나 회사나 멋진 신기술 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몫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Never eat alone> 키이스 페라지 , 탈 라즈 지음 |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옮겼을 때도 4월의 봄이었다. 2년 전의 봄. 이렇게 올해의 봄과 2년 전의 봄은 또 연결되는구나.
그리고 또 그로부터 2년 전의 봄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2009년 4월 11일 '병영일기' 중 http://seonil.egloos.com/9936322 |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2013년 4월 17일
봄날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남과 비교하지 말자.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
작가
모기 겐이치로
출판
이아소
발매
2009.02.20
리뷰보기
인간의 뇌는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뇌 속에서 ‘대가’를 상징하는 물질이 방출되면 강화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대가를 받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던 행동을 재현해서 그 기쁨을 반복하고자 한다. 그 결과 그 행동이 숙련된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도파민’이라는 물질이다.
인생의 경험이 전부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바로 학습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뇌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1) 도파민에 의한 강화학습으로 뇌를 강화한다.
2) 타임프레셔로 뇌의 지속력을 단련시킨다.
3) 집중력을 기른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 뒤에 오는 기쁨은 크고 학습능력은 더욱 강화된다. 이것이 뇌의 메커니즘이다. 중요한 것은 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나를 원한다면 공부하라. 넓은 의미에서의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뇌의 시냅스 연결이 바뀌는 것’ =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해 봤자 뇌는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내면 뇌는 큰 기쁨을 느낀다.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의 첫 번째 비법은 강화학습이라는 ‘기쁨의 회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실력을 100퍼센트라고 한다면, 120퍼센트나 130퍼센트 정도로 ‘자신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뇌는 항상 고통스러운 자극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정도가 더 강하고 고통스러운 자극으로 허들을 높여가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제한 시간을 두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면 뇌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집중력이다. 인간의 의욕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타임 프레셔를 준다고 해도 애당초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 타임 프레셔를 의식해서 공부하는 것은 ‘이 이상은 무리’라는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행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상당히 부담도가 높은 행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임프레셔를 즐기려는 마음이다.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남과 비교하지 말자.
운동으로도 뇌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일정한 부담을 견디는 ‘근성’, 즉 서툴거나 자신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내성’을 기르게 된다. 정신적인 강도는 하루 아침에 연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스포츠는 여기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압박감’을 의식하면서 공부해왔다. 그 덕분에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졌고, 공부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치면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이 기쁨은 반드시 습관이 된다.
시작은 무엇이든 좋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것부터 시작해보자. 처음에는 게임만 하다가 어느새 컴퓨터의 구조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흥미의 대상이 점점 넓어져 간다.
일단 회로를 작동시키자.
집중력이 비롯되는 세가지 요소
1. 속도: 작업의 스피드를 극한까지 올리는 것
2. 분량: 무조건 압도적인 작업량을 해치울 것
3. 몰입감: 주변의 잡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열중할 것
문제집을 푸는 경우 한 문제 한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보다 ‘다음! 다음!’ 하고 재빠르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단 이때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집중력을 지속시키려면 어떤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삶 곳곳에서 생동감 넘치는 흥분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발견에 즐거워할 수 있는 것"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획만 세우다가 결국 공부에는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마음 먹은 즉시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집중한다. 이 순간 집중법이야 말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짧은 시간에도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뇌를 단련시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침은 귀중한 업무시간이다. 일어나서 세 시간 동안이 하루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올바른 공부법이란 실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 실수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밝혀낸 다음 개선하는 것이다.
인간의 실패와 성공의 우여곡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즉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뇌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 만약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있다면, 인간은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도전을 통한 학습은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설자 도전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거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학습이 효과적으로 진척되지 않는다.
우유성偶有性 이란 ‘안전한 것 = 예상할 수 있는 것’ 과 ‘도전적인 것 = 새로운 것’이 적절히 섞여있는 불확실한 상태를 말한다.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것과 안전한 것을 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모기 겐이치로
출판
이아소
발매
2009.02.20
리뷰보기
인간의 뇌는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뇌 속에서 ‘대가’를 상징하는 물질이 방출되면 강화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대가를 받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던 행동을 재현해서 그 기쁨을 반복하고자 한다. 그 결과 그 행동이 숙련된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도파민’이라는 물질이다.
인생의 경험이 전부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바로 학습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뇌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1) 도파민에 의한 강화학습으로 뇌를 강화한다.
2) 타임프레셔로 뇌의 지속력을 단련시킨다.
3) 집중력을 기른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 뒤에 오는 기쁨은 크고 학습능력은 더욱 강화된다. 이것이 뇌의 메커니즘이다. 중요한 것은 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나를 원한다면 공부하라. 넓은 의미에서의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뇌의 시냅스 연결이 바뀌는 것’ =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해 봤자 뇌는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내면 뇌는 큰 기쁨을 느낀다.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의 첫 번째 비법은 강화학습이라는 ‘기쁨의 회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실력을 100퍼센트라고 한다면, 120퍼센트나 130퍼센트 정도로 ‘자신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뇌는 항상 고통스러운 자극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정도가 더 강하고 고통스러운 자극으로 허들을 높여가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제한 시간을 두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면 뇌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집중력이다. 인간의 의욕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타임 프레셔를 준다고 해도 애당초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 타임 프레셔를 의식해서 공부하는 것은 ‘이 이상은 무리’라는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행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상당히 부담도가 높은 행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임프레셔를 즐기려는 마음이다.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남과 비교하지 말자.
운동으로도 뇌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일정한 부담을 견디는 ‘근성’, 즉 서툴거나 자신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내성’을 기르게 된다. 정신적인 강도는 하루 아침에 연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스포츠는 여기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압박감’을 의식하면서 공부해왔다. 그 덕분에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졌고, 공부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치면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이 기쁨은 반드시 습관이 된다.
시작은 무엇이든 좋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것부터 시작해보자. 처음에는 게임만 하다가 어느새 컴퓨터의 구조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흥미의 대상이 점점 넓어져 간다.
일단 회로를 작동시키자.
집중력이 비롯되는 세가지 요소
1. 속도: 작업의 스피드를 극한까지 올리는 것
2. 분량: 무조건 압도적인 작업량을 해치울 것
3. 몰입감: 주변의 잡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열중할 것
문제집을 푸는 경우 한 문제 한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보다 ‘다음! 다음!’ 하고 재빠르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단 이때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집중력을 지속시키려면 어떤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삶 곳곳에서 생동감 넘치는 흥분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발견에 즐거워할 수 있는 것"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획만 세우다가 결국 공부에는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마음 먹은 즉시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집중한다. 이 순간 집중법이야 말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짧은 시간에도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뇌를 단련시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침은 귀중한 업무시간이다. 일어나서 세 시간 동안이 하루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올바른 공부법이란 실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 실수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밝혀낸 다음 개선하는 것이다.
인간의 실패와 성공의 우여곡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즉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뇌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 만약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있다면, 인간은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도전을 통한 학습은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설자 도전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거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학습이 효과적으로 진척되지 않는다.
우유성偶有性 이란 ‘안전한 것 = 예상할 수 있는 것’ 과 ‘도전적인 것 = 새로운 것’이 적절히 섞여있는 불확실한 상태를 말한다.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것과 안전한 것을 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라이프 오브 파이
2013년 1월 4일 / 건대 롯데시네마 / 현주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영화화 되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을 만나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화물선이 좌초되면서 구조정을 타고 227간 바다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면서, 인간과 동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파이)가 나랑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하고 싶다)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 3개의 종교를 믿고 있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종교를 3개나 가지고 있는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왜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만을 믿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품는다.
나 또한 종교에 대해서 사고가 유연하다.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무신론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교의 신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존중한다.
작품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화자(파이)가 말하듯이, 이야기 (또는 신)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일본 선박 회사의 관계자들 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요구하고,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와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물어보는 질문에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택한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이: So which story do you prefer?
작가: The one with the tiger. That's the better story.
파이: Thank you. And so it goes with God.
작가: [smiles] It's an amazing story.
그 이유는 참 간단하다. That's the better story. It's an amazing story. 더 좋은 스토리고, 놀라운 스토리다. 세상에는 기적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운명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랑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에겐 존재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은?
믿는다. 기적도 믿고, 운명도 믿고, 사랑도 믿고, 외계 생명체도 믿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사람의 위대함도 믿는다. 이유는 똑같다.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그걸 믿으면서 살아가는게 더 재밌고 놀라운 삶이 될테니까.
2013년 1월 4일 / 건대 롯데시네마 / 현주
중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영화화 되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을 만나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화물선이 좌초되면서 구조정을 타고 227간 바다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면서, 인간과 동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파이)가 나랑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하고 싶다)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 3개의 종교를 믿고 있는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종교를 3개나 가지고 있는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왜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 만을 믿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품는다.
나 또한 종교에 대해서 사고가 유연하다.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는 무신론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교의 신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존중한다.
작품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화자(파이)가 말하듯이, 이야기 (또는 신)을 믿고 안믿고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서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일본 선박 회사의 관계자들 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요구하고,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와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물어보는 질문에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택한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이: So which story do you prefer?
작가: The one with the tiger. That's the better story.
파이: Thank you. And so it goes with God.
작가: [smiles] It's an amazing story.
그 이유는 참 간단하다. That's the better story. It's an amazing story. 더 좋은 스토리고, 놀라운 스토리다. 세상에는 기적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운명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랑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에겐 존재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은?
믿는다. 기적도 믿고, 운명도 믿고, 사랑도 믿고, 외계 생명체도 믿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사람의 위대함도 믿는다. 이유는 똑같다. 그걸 믿는 편이 더 재밌고, 더 놀라우니까. 그걸 믿으면서 살아가는게 더 재밌고 놀라운 삶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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