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일 년 만에 다시 모인 Ainsoph아인소프 멤버들과 서울 나들이
2012년 2월 4일 (토)

바쁘게 진행했던 공모전을 끝내고 난 뒤, 조금 게으르게 지내다 싶었던 요즘이다. 어제 일본의 친구가 서울을 찾아왔다. 내가 긴자 카페 아인소프에서 일을 했을 적에 매니저로 계셨던 쿠사야나기상草柳さん이다. 업무 관계로 한국에 온 건데 하루 시간이 나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한국인 멤버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날 함께 한 멤버는 쿠사야나기상, 보라무, 유진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네 명

오전 10시에 보람이와 먼저 만나서 명동에서 쿠사야나기상에게 줄 선물로 예쁜 모자를 샀다. 타이가군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여름모자였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난 건 12시 롯데호텔에서였다. 1년 만에 만나는 거라서 정말 반갑고 기뻤다. 사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어떻게 하면 쿠사야나기상을 기쁘게 해드릴지 계속 고민했었다. 어디를 모시고 가면 좋을지, 무슨 구경을 시켜드리면 좋을지. 하지만 결국은 쿠사야나기상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쿠사야나기상이 가보고 싶은 곳을 들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이 날 우리의 이동경로는 이러했다.

명동 롯데호텔 - 시청 광장 - 덕수궁 - 광화문 광장 - 인사동 - 인사동에서 점식식사로 찜닭
- 명동에서 쇼핑(Forever21, Zara, Mango, H&M 등등)  - 신사동 가로수길 -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 이태원 - 저녁으로 고기먹고 - 바 Bungalow에서 칵테일 마시고 - 호텔로 이동해서 다시 맥주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

같이 아인소프에서 일했을 때 이야기, 일본 대지진 이야기, 연애 이야기, 직업 이야기까지 아침 10시에 만나서 다음날 아침 7시에 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원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것들이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함께 한 네 명은 지금까지 계속 같이 지내온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맛이없는 식당을 들어갔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면 더 맛있는 것이고, 시시한 구경거리도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이태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이태원에서 2달 정도 일해본 적도 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그곳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번에 갔을 때처럼 이태원이 그토록 즐겁게 느껴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 넷은 이 곳은 뉴욕의 중심가라면서 분위기를 냈다. 같은 이태원에 머물더라도 그냥 외국인이 좀 많은 평범한 서울의 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수많은 만남이 이뤄지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하루의 만남이라 아쉽긴 했지만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멋진 하루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람의 만남에 대해 생각한다.
쿠사야나기상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그냥 카페에서 일하는 사이로만 남았더라면 이렇게 양국을 오가며 만나는 일도 없을거야. 사실 선일군하고도 내가 가까워진 계기는 선일군이 카페 일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 그때서야 좀 더 선일군이 진지한 사람이란 걸 알게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가까워진거지. 아마 그때 선일군이 나에게 그런 고민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자리에서 다시 선일군을 만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말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서 다가가려고 한다면 관계의 진전은 급속도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넷이 만나는 것은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장소는 도쿄로 정하였다. 우리들이 도쿄를 찾아가서 쿠사야나기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인연은 바다를 넘어서 길고 길게 이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