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욕구에 의해 표현된 인간의 성적 욕망(성적행위)은 정당화 될수 있을까

내가 현재 수강하고 있는 과목 中 가장 재미있어 하는 과목은 [영화 예술과 육체]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실제] 란 과목이다. 두 학문은 날 무한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오늘 영화 예술과 육체 시간엔 인간의 예술적(탐미적) 욕망과 성적 욕망에 대한 토론과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1학기 때 정신분석학 강의를 들었을 때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무척 흥미롭게 생각했었다.

- 수업을 듣고나서 이러한 생각을 해봤다-

'의식은 기표이고, 무의식은 기의 라고 한다면 기의는 기표에 의해 표현이 때문에, 기표로는 기의를 완전히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다가 인간의 무의식이란 것을 발견했을까. 무의식적으로 보여진 행동이며 말이며, 그런것들을 인식한 수단 또한 의식이다. 결국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발견된 것인데, 과연 어떻게 의식은 무의식을 의식할수 있는것인가. 무의식이란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존재한다고 의식하기 때문에 존재하는것은 아닐까.'

그리고 예술적 욕구에 의해 표현된 인간의 성적 욕망(성적행위)은 정당화 될수 있을까.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우리들이 넘어서는 안되는 일들을 금기라는 틀로 규정을 지어서 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한 금기들은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수는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다수는 옳다. 그러한 금기들은 깬다면 사회 체제는 유지 될수 없으며 질서는 붕괴되고 만다. 형부와 처제의 사랑 그리고 성관계. 금기는 시대적 상황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고 한다. 그렇다.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문화 양식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 미래 혹은 또 다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문화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들을 최소한 지켜줘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는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말이 있다. 한 시대의 상황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을 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마저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사회는 그러한 것들은 이슈화 한다. 신문에 기사화 하거나, 인터넷에 논쟁이 되는 것들도,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의 우리 스스로의 대응 방안이다. 즉, 한강의 몽고반점에서 예술이란 명목의 형부와 처제의 성관계는 사회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뿐이다. 사회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 그 하나뿐이다. 반드시 정당화 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정당화 한다는 것은 다수가 정한 기준에 합당해진 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정당화의 문제'가 논의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꼭 정당화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기준으로) 정당한게 (다수에게는) 옳은 것이긴 하지만, 소수들의 그러한 (정당화)작업은 그들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이 같은 논리는 동성애의 문제에도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당한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것 부터가 소수들은 다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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