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매] 감상 후기와 내가 경험한 죽음에 대하여

<삶과 죽음의 철학> 에세이

영화 [영매] 감상 후기와 내가 경험한 죽음에 대하여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릴 때는 겁이 많은 소년이어서 밤 길을 혼자 걷는 것이 정말 두렵긴 했지만, 그건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를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강도 같은 무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태어나서 살면서 한 번이라도 귀신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 존재를 믿을 테지만 본 적이 없으니 믿을 수 없다. 내가 본 적이 없으니까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하지만 내게 보이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들이 나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영화 [영매]를 볼 때는 상당 부분에서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주위에는 삶에 원한이 남아있거나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승을 떠도는데 영매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산 사람들과 연결을 시켜준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주위의 귀신이 영매의 몸 안으로 들어왔던 것일까? 아니면 영매는 산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귀신이 들어온 것처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거기에 올바른 답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사후 세계의 존재의 유무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이 모여서 누구는 천국에 가고 누구는 못 간다면서 천국에 대해 재미있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한 영매 또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에 대해 언급을 했던 것을 보면, 그 분들에게 사후 세계는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 얘기는 이 곳에서의 삶이 끝나고 죽고나면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매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조상이 죽고 나서 일정기간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살다가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주위를 떠도는 영혼들이 화를 내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들을 달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서 화해를 시켜주기 위한 영매가 필요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영매가 존재하는 것이다. 영매라는 존재가 있음으로써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을 더 가깝게 느꼈다. 영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켜 산 자가 남은 생애를 무사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일이다. 어쩌면 영매는 산 자와 죽은 자와의 화해도 가능한데, 우리네 인생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왜 서로 싸우고 화해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가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서로 산 자로서 대면할 때 서로에게 잘해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산 자로서 서로에게 잘해줘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수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3월 11일, 그 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하면서 오늘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고 과연 누가 생각했을까? 그 날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알았을까? 결국 예견되지 않은 죽음의 그림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덮고 말았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진이 발생하기 한 달 전에 일본의 도쿄에서 살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4월까지 일본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학교 복학을 위해 일정을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만약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 머물렀다면, 돌아오기 전 마지막 여행으로 동북지방을 갔다고 한다면, 그 때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밀려왔다고 한다면 지금 이렇게 도서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동북지방으로 기차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었다.) 나는 죽음을 피한 사람 중 한 사람이지만, 그 날 죽음의 그림자를 나보다 더 아슬아슬하게 피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 아침, 친구들과의 동창모임을 하기 위해 도쿄로 향한 덕에 지진을 피한 사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지금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들을 피해 온 사람들이다. 사실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쉬울 정도로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까이 있다. 죽는 것은 죽으면 끝이지만 사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다. 그들은 죽었고 우리들은 이번에도 남겨졌다. 남겨진 우리들은, 살아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산 자는 죽은 자에게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위로를 하며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죽은 자를 위로하며 살아가다가 죽고 나면 산 자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죽은 뒤 산 자들로부터 위로를 받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가족을 만들고, 친구를 만들고, 친구의 친구를 만들면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3월11일 지진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영화 [영매]에 따르면 그 날 죽은 수많은 영혼들은 이승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생애 못다한 말이 있거나,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떠도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무슨 말이 들릴까. 영매를 통해 간절히 들어보고 싶다.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말들 중에서 이런 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살아남은 당신들께서 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그래서 난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 행복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2011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