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끝이다. 죽음 뒤의 일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삶과 죽음의 철학 3월 16일 강의록

일본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나에게도 올 수 있고 우리 가족에게도 올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실제로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죽으면 끝이다. 죽음 뒤의 일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인류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 인류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것만 보더라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주로 죽은 가족들을 앞에 두고 통곡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지만
일본은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눈물만 머금는 절제된 모습들이 주로 나온다.

기회가 된다면 부모님께 한 번 물어보도록 하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묻어드릴까요, 화장해 드릴까요.”
아마 그런 걸 물어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며 말도 못 꺼내게 할 것이다.
그건 역시 죽음을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 때문.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만약 여러분은 부모님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이 강의의 최종적 목표는 그러한 때 대처하는 걸 배우는 것이다.

지난 시간 <영매>를 보고 어땠는가.
무(巫)라는 것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1980년대 한국에는 우리 뿌리 찾기 운동이 활발했다. 그 때 가장 유행했던 노래가 바로 신토불이다. 위인들의 동상을 세우는 열풍이 불어 전국 곳곳에 동상이 들어서기도 했던 시기다.
또한 대학에서는 ‘동양철학’ 이라는 강의가 정말 인기가 있어서 개설만 하면 수강생이 300명이 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사상’은 무엇일까.
우리의 전통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유, 불, 도 이다.
하지만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고, 불교는 그 유래가 인도다. 순수한 우리 것은 없는 것이다.
중국은 도교가 있고, 일본에는 신도가 있다. 그럼 우리의 종교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무巫’ 가 있다. 무속신앙이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원래 그쪽 사람들은 ‘무속’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무’또한 하나의 종교이기 때문에 성의 영역이지만,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시대부터 ‘속’자를 붙여서, 신앙을 ‘속’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학교 주위를 돌면서 점집, 점카페들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아라.
한국에서 점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5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구 100명당 한 명이 점술인 인 것이다.
국회의원 장관의 부인치고 점집 안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신경정신과가 발달하지 않는 이유도 무와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이 정신과의사들에게 상담 받을 이야기들을 점쟁이에게 전부 털어놓아 버리는 것이다.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아서 좋고, 게다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알려주기까지 하지 않는가.

조선시대에 국가적으로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무는 자리를 잃어갔고 무당도 사라져 갔다.
마을 곳곳마다 있던 장승배기도 모두 뽑아내 버렸다.
유교 문화는 한국에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를 강하게 자리잡게 했다. 유교는 남성중심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장가 못 간 남자는 무덤도 안 사준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영매>에 나왔던 최점례 자매의 춤은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무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춤사위와 노래라는 예술로 보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우리 인간은 정말 평등할까. 모두가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을 진실일까.
확실하게 평등한 한가지는 “인간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태어난 순간은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은 철저하게 느낀다.
또한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죽는 것은 의지가 작용할 수 있다.
죽음은 성자의 마지막 단계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대상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줄 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까지 진화해 올 수 있었다.

‘신화와 죽음’에 관한 강의 이어짐.

추천 도서
<죽음의 탄생>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