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력과 그 노력 뒤에 숨은 인내를 사랑하는 것

만족 - 당신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바꿀 수 있는 방법, 맥샤인 슈넬

14쪽> 우리는 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내면에는 어둠에서 탈출하여 밝은 빛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창조력이 있으며, 그 힘 덕분에 인류가 정체와 혼돈으로 침몰하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면서 진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11쪽> 내가 생각하는 신이란 우주를 만드는 순수하고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고, 우리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며 정신적 성장을 이끄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생명력입니다.

25쪽> 역경은 추리소설과 같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때문에 이야기의 끝을 빨리 확인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뒷부분을 먼저 읽으면 책을 읽는 재미는 사라지고 만다.  고통스러운 길을 모두 지나온 후에야 - 슬픔, 분노, 두려움, 혼란을 겪은 후 재기와 새로운 변화의 전 과정을 거친 후 - 자신이 어떻게 그 길을 걸어왔는지 알게 된다.

32쪽> 행운은 준비된 상황에서 기회를 만났을 때 찾아온다.

33쪽> 희생자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생존자는 영감을 얻는다.

54쪽> 위기의 나날이 끝나면 우리는 더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 된다. 우리의 생활을 뒤흔드는 모든 충격은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 즉 새로운 사고 방식과 새로운 감정, 새로운 존재 방식을 창조할 기회를 주고, 인간관계, 건강, 재정, 경력, 가족, 정신적 발전 등과 같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풍부한 보상을 베푼다.

 60쪽> 의탁이란 자신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우주를 움직이는 무한한 에너지에 결과를 완전히 맡기는 것.  그러나 결코 자기 자신의 힘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도록 자신의 참 본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 앞에 해겨르이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61쪽> 우리의 물리적 세계는 정신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이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다. 지금 이 상황에 스며있는 모든 부정적 요소 - 두려움, 회의, 불안, 분노, 원한, 슬픔 - 를 제거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무한한 힘을 가진 긍정적에너지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인간이 자연의 장대함 앞에 서서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자신이 신성의 일부임을 인식하여 신의 무한한 창조력에 귀의할 때 그의 의탁은 손실이 아니고 의탁이다."

 64쪽> 에고Ego가 차지하는 공간이 크면 클수록 영혼의 숨구멍은 작아진다. 자신의 틈 속에만 갇혀서 문제를 보면 마치 확대경으로 보는 것처럼 더욱 심각하게 보인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수록 자기 속에 존재하는 어떤 훌륭한 것을 보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인생의 어떤 일들은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 버겁기 때문에 우주의 무한한 힘에 비해 우리의 힘이 대단히 미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침에 태양을 뜨게 할 수도 없고, 저녁에 지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우리보다 더 큰 존재에게 떠맡기는 순간 우리에게는 엄청난 해방감이 찾아온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자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의탁하는 그 힘은 신 또는 외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위대한 힘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규명하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힘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실체라고 볼 수도 있다.

66쪽> 고통의 칼날이 가장 예리하게 느껴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이 일로 인해 더 나아질 것이며 이 경험에서 이익을 찾고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할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 한다. 의탁 행위는 자신의 영혼 (삶의 목표가 존재하는 자리)
 과의 접촉을 유지시키고 개인의 창조성을 우주의 무한한 창조력에 연결시켜준다. 스스로를 무한한 에너지의 흐름과 주파수를 맞출 때 내가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67쪽> 우리의 동기는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마음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게 된다.  "이기적인 집착" -> 타인에 대한 관심

69쪽>. 체념은 자신의 힘을 포기하는 것.

73쪽>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친구, 공동체 등 내 삶의 기초를 이루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련은 두려움, 분노, 슬픔, 절망과 같은 에너지들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준다.  우리는 종종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실망과 좌절, 초조함을 자극하는 끝없는 기다림, 내면의 진실을 감춰야 하는 거짓말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비열한 충동을 자극하는 작고 일상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반사적인 충동에 굴복하는가 아니면 더 큰 에너지의 흐름에 의탁하고 따뜻함과 용기로써 반응하는가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그것은 물론 타인들의 타락한 행동을 무조건 용서하고, 눈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다른이들이 그들의 비열한 충동에 굴복하지 않도록 도와야하며, 이를 위해 때로는 거칠게 나가거나 한계를 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때도 우리는 적대감과 복수심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단 한가지 이유로 이 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자기중심적 존재에서 영혼 중심적 존재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울고 떼쓰는 유아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한다.

104쪽> 다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면 외로움이 밀려들 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문화나 종교적 신념이 위로가 될수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누군가가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어두운 길을 함께 걸어가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118쪽> 우리는 삶이 주는 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잠시 빌린 것뿐이다. 그것은 세계의 기본이며 본질 중 하나이다.   동시성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미지의 힘을 받아들일 때, 이 동시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변환을 위해 이제는 내 것이 아닌 과거의 어떤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버렸을 때 우주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심리학자 칼융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게 의미있는 외적사건이 내적사건과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인데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기어를 바꾸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 그 사람의 준비상태와 일치하는 외부적 사건이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일어난다.   적절한 순간에 진정으로 꼭 필요한 사람과 조우하는 것.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33쪽> 우리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 자신을 모든 기회에 열어 놓으면 어떤 엉뚱하고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 마음을 여는 것이 열쇠다.  

137쪽> 막막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할 때에 우리는 당장 해결책을 찾고 싶어진다. 우주가 즉시 기적적인 사건을 일으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기적을 불러오는 것은 우리의 열린 마음이 즉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준비된 마음이다. 동시성이 기적적인 것은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창조성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갑작스런 위험에 대처하고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잡아내는 일종의 생존 매커니즘이다. 엔트로피 : 우리가 최소한의 힘으로 위기를 버티게 한다. 이것은 창조성보다 더 근원적이고 강력한 힘인데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소중한 것을 상실한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안전지대에서 숨어서 기다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세포 하나하나에 프로그램된 이 두 힘의 대립과 갈등을 경험한다. 창조성은 우리를 앞으로 밀고 엔트로피는 제자리로 끌어당긴다. 엔트로피가 승리하면 우리의 삶은 상실 그 자체에 발목이 붙잡히게 되고 정체되어 끊임없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새로운 사고 방식과 행동방식을 발견하는 일이 사라지면 인류의 진화는 종말을 고하고 문명은 혼돈으로 떨어질 것이다.

164쪽> 사실 어떤 사람도 결정을 내릴 때 완전한 확신을 하지 못한다. 오감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지하는 우리로서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존재하는 무한한 정보의 원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과 잡지를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람들에게 충고를 구하지만 그러한 조사로는 물리적 한계와 이성적 사고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정신세계에 접속하여 완전한 지혜를 얻는 지름길은 우리의 통찰과 직관에 있다. 그것은 '나는 이것을 해야한다. 내 행동은 나에게 옳다. 그것은 내 자아상뿐만이 아니라, 내 영혼과 일치한다.'등을 판단하는 내면의 감각이다. 의심은 창조성의 적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자료수집과 모색을 멈추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단번에 뛰어들어야 한다. 자신의 전능함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자신보다 더 큰 존재,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한 지성에 의탁할 때 우리는 놀라운 성취를 얻게 된다.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돌진하는 것 - 믿는 것이 보는 것' 이라는 원칙 - 은 의심이나 불안감 없이 우리의 창조성을 가동시킨다. 꿈을 추구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장과 변환의 문제이며, 자아의 안팎에 존재하는 더 높은 힘과 결합하고, 모두에게 가치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편협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타인에게 베푸는 입장에 서면 자연스럽게 창조의 긍정적 에너지에 합류하게 되고, 동시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에고의 방해가 사라지면 그 에너지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 때 우리는 적절한 장소와 적절한 시간을 알게 되고, 성장을 도와줄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게 된다. 결국 우리는 가장 진실한 자아와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으로 큰 걸음을 성큼 내딛게 된다.

172쪽>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직업이나 경력에서든 좋은 친구를 찾거나 행복한 가정 생활을 꾸리는 등 새로운 추구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성공과 업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절망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법칙이라는 것을 너무 자주 망각 한다.  실수와 실패의 상실이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고, 내면의 힘을 키워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삶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고, 그 목표를 추구할 지혜와 용기도 획득할 수 없다. 가장 큰 불행은 내가 한 때 그랬듯이 어느 정도 노력만 한다면 단번에 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진화라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몽땅 생략할 수 있다는 과신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나의 정신적 성장을 돕는 친구로 인정해야 할 뿐만이아니라, 일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이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이고, 자신의 테마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다. 고통과 투쟁은 창조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므로, 삶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과제를 던질 때마다 그로부터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불행과의 싸움을 변환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상실 속에서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목적의식을 가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택을 향해 나아가고 사려깊은 사람들과 어울려 여행한다면 우리는 어떤 비극도 헤쳐갈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노력과 그 노력 뒤에 숨은 인내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면의 진정한 힘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삶이라는 여정의 진정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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