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여행, 닛코日光여행기

닛코日光여행기
2010년 11월 8일 ~ 9일

닛코 1박2일 여정
첫째날 일정
집(駒込) 05:50 - 키타센쥬(北千住) 06:30 - 토부닛코센 - 닛코역日光駅 08:30
아케치다이라明智平10:40 - 츄젠지코中禅寺湖 - 츄젠지코 유람선11:40 - 게곤노타키華厳の滝 - 점심식사1:40 -  류즈노타키竜頭の滝 - 센조가하라戦場ヶ原 - 오다시로가하라小田代ヶ原 4:30 - 토부닛코역 숙소 6:10 - 저녁식사 - 취침 10시
둘째날 일정
토부닛코역 - 닛코산나이日光山内 - 신쿄神橋 - 토쇼구東照宮 - 후타라산진자二荒山神社 - 린노지輪王寺 - 키리후리고원霧降高原 - 기누가와온센鬼怒川温泉 - 키누가와라인쿠다리鬼怒川ライン下り - 온천욕 - 귀가. 도쿄도착 21:45


"Nikko is Nippon." 닛코가 일본이다.
닛코의 홍보 문구다. 닛코를 보지 않고는 일본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1월 8일,9일 이틀에 걸쳐 다녀온 닛코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어디를 다녀와서 여행후기를 간단히 올리는 것에 그치곤 했는데, 이번에 다녀온 닛코만큼은 진지하게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 실력이 부족해서 보고 듣고 느낀바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행에서 받은 감동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길 밖에 없다. 내가 닛코나 가까운 도쿄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 가고 싶을 때마다 가서 닛코를 즐길 수 있겠지만 언제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것도 모두 같은 이치다. 인간의 기억은 미약하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닛코를 기록으로 남길 차례다.


출발
  불과 사흘 전에 멀리 나가노까지 신칸센을 타고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닛코를 간 이유는 한 달 전부터 닛코여행 일정을 세워두고 호텔과 교통편까지 모두 예약을 마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가노 여행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었다. 짧은 기간에 두 군데로 여행을 가게 되면 오랜 시간의 간격을 두고 가는 것보다 여행의 설렘을 품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여행의 전날 밤은 역시 '내일이면 닛코에서 밤을 맞이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만 했다. 무엇보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가는 1박 2일의 여행이라는 점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전날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여행 채비를 못해 놓았기 때문에 출발하는 날 아침 4시 반에 일어나서 그제서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 출발하려고 하다보니 아직 숙소의 위치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는 컴퓨터를 켜서 급하게 숙소의 주소를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했다. 항상 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언제나 완벽하지 않은 법이다.
  도쿄에서 닛코를 가기 위해서는 아사쿠사역浅草駅이나 키타센쥬北千住역에서 출발한다. JR(일본철도)과 토부東武 중 한가지 철도를 선택해서 가는 방법이 있지만 토부를 이용하는 쪽이 좋다. 아사쿠사역에 있는 토부외국인여행센터에서 (외국인만 살 수 있는 ) 올닛코패스ALL NIKKO PASS라는 티켓을 구매하면 도쿄-닛코 왕복 전철과 닛코 내에서의 버스를 나흘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일정으로 닛코에 가면 모르겠지만 이틀 이상의 일정으로 닛코에 가는 것이라면 반드시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가이드북에서도 봤고, 나도 이번여행에서 그 닛코패스를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코마고메(집)에서 키타센쥬까지는 약 10분 남짓이 걸렸다. 하루에 몇번이고 전철을 이용하는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면 복잡한 역내의 환승은 매우 쉬운 일이 된다. 키타센쥬역에 간 것은 이번이 세번째였지만 매일 다니는 역 처럼 쉽게 토부센東武線 환승을 했다. 토부센 플랫홈에 서서 내가 타고 갈 열차를 기다리는데 '여행 전날의 설렘'이 절정에 다다른다. 사흘 전 나가노에 갈 때도 신칸센을 기다리던 때가 가장 긴장됐다. 교통수단의 발달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도 잠깐 갖게 된다.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모두 인간이 더 멀리 여행을 갈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인간의 여행의 역사는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해 온걸지도.

닛코에 오기 전에 가이드북을 보면서 어디어디를 가봐야겠다는 대략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 어떻게 움직여야 겠다는 코스는 생각해 놓지 않고 있었다. 닛코역 앞의 버스정류장의 여러 행선지를 보고나서야 어디를 먼저 갈지 정했다.

가장 먼저 가기로 정한 곳은 츄젠지코中禅寺湖라고 불리는 산위의 호수이다. 2만여년 난타이산男体山이 분화하면서 생긴 호수. 대학교 2학년 때 동유럽 여행 때 갔었던 오스트리아의 잘츠캄머굿 볼프강 호수가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버스는 이로하자카도로(국도120호도로, 일본 로맨틱가도의 일부다.48개의 굴곡이 있고 게임에 등장한 유명한 도로. 위키피디아)를 타고서 산위로 계속 올라갔다. 버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닛코의 모습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기대보다 좋은 날씨와 기대보다 좋은 풍경들이었다.

츄젠지코에 도착하기 한 정거장이 남았을 때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멋져서 이 곳은 절대 안보고 갈 수 없겠다라고 생각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어차피 이른 아침 서둘러서 닛코에 왔기 때문에 시간도 충분했다. 내가 내린곳은 아케치다이라明智平라는 전망대였는데 알고보니 이 전망대는 닛코의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꽤 높은 고도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아랫쪽보다 확실히 기온이 낮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케치다이라 로프웨이라는 케이블카를 타고서 전망대에 올라가면  더 높은 곳에서  닛코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망대까지 올라가지 않았떤게 아쉽지만,
그때는 올라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멋진 풍경을 감상했기 때문에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다.

츄젠지코에 가기 위해 츄젠지코행 버스를 타고 가는 목적지에 가는 도중 아케치다이라의 풍경에 넋을 잃고 버스에 바로 내렸던 것이다. 덕분에 원래 목적지였던 츄젠지코에 가는 것이 한시간이 늦춰졌다. 하지만 그 한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버스에서 갑자기 내릴 때 버스 안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내리는거지' 라는 시선을 느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도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 사람들은 당일치기로 짧게 여행 온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곳을 여행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면 원래 보기로 한 것 외에는 눈에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루 일정보다는 1박2일의 일정이, 1박2일의 일정보다는 그 이상의 일정을 가진 사람이 여행지를 더욱 더 깊게 음미하는 것은 분명하다.(이번 닛코여행은 1박 2일 일정이 본인에게는 정말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2주 후에 갈 교토의 1박 2일의 일정은 분명 촉박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넘어갈 풍경들이 많을 것이다.) 
  여행만큼은 정말 여유를 가지고서 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아케치다이라 전망대에서 다음에 올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3 츄젠지코 호수中禅寺湖 

아케치다이라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서 츄젠지코에 도착하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츄젠지코 호수로 가는 길과 케곤노타키로 가는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츄젠지코中禅寺湖를 먼저 가기로 했다. 왜 먼저 가기로 했던 것일까. A와 B 중 어딘가를 먼저 가기로 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대개 감에 따라 결정한다. '이 곳을 먼저 가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감으로. 하지만 분명히 그런 '감'이라는 것도 머릿 속에서 매우 복잡한 사고를 거친 뒤 나오는 것일 것이다. 본능에 따라 길을 가다보면 반드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다. 여행지에서는 그런 감이 정말 중요하다.

높은 지대라서 이미 단풍 시기가 끝나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졌지만 간혹 예쁜 단풍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닛코여행을 다녀와서 이렇게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유는 여행을 갔던 그 순간의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사진을 많이 찍어왔으면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을 추억해낼 수 있겠지만 덧붙여 글을 덧붙이고 있는 것은 하나의 스토리로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기라는 것은 글자만으로 적을 수 있긴해도 작가가 아닌 이상 상상력을 불어넣을 만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을 중심으로 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역시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휴일이 아닌 평일로 여행일정을 잡은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호수에선 조용히 걸으면서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
분명 휴일이었다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일본은 오리배가 참 많다. 도쿄만 해도 오리배를 탈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을 보고 일본인들은 오리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배를 츄젠지코에서까지 본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유람선은 여러가지 코스가 있는데 가장 긴 코스는 약 60여분으로 츄젠지코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이 날 탔던 코스가 그 코스 였는데 올닛코패스All Nikko Pass가 있어서 10% 할인된 1,350엔에 구입할 수 있었다.
 
티켓이 다소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유람선을 탈지 말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유람선을 타면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민을 해결해 준게 동유럽 여행 때의 추억이었다. 볼프강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을 때도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이었다. 그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때를 떠올리자 티켓을 안 살 수가 없었다.

츄젠지코를 순환하는 유람선을 타고서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일단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선택했다. 맑은 가을 날의 호수를 감상하는데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노래 목록을 쭉 살펴본 뒤, 처음에는 조금 신나는 노래를 들어서 마음을 가볍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앨범이 맘마미아 OST였다. 훌륭한 선곡이었다. 맘마미아의 곡들이 한곡 한곡 흘러나올 때마다  하늘 위의 구름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 했다. 역시 배를 타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모습과 배를 타고 들어가서 안쪽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3년 전의 볼프강 호수의 모습을 선명하게 머릿 속에 떠올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호수의 모습이 서로 닮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때 만큼이나 행복해지다고 있다는 것도. 
 
  유람선을 타면서 행복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기분이 좋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대자연의 품에 들어오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아름다운 하늘과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있긴 있어도, 어쩌면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아마 나의 일상이 매일 같이 이런 대자연을 접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도쿄 같은 도시가 아닌 닛코 같은 자연으로 왔다면, 배를 타면서 느꼈을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배를 타면서 이번 여행의 목적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닛코에 온 것일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도쿄가 아닌 다른 곳도 여행을 해보자라는 간단한 생각에서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이다. 특별히 일상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재충전의 의미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저번에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 올 때는 확실히 재충전을 하고 오자라는 생각을 해서 갔지만 추석이라는 상황이 겹치는 바람에 버스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등 더욱 힘들기만 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특별한 의미' 없이 대충 계획을 세워서 온 이 곳에서 뜻밖에 넘치는 행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곳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호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람선이 있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애초에 배를 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배를 타면서 내가 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60여분 동안 자리에 한시도 가많히 앉아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각도를 달리하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동시에 음악도 계속 바꾸어 주었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차분해지기도 했다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을 타기도 했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풍경과 잘 어울렸다. 그 순간은 오직 음악과 풍경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배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해군으로 2년을 지내면서 배를 못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급병이었기 때문에 배를 탈 기회가 전혀 없었다. 아마 그 때 배를 탔더라면 지금처럼 좋아했을까. 딱히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언제나 상황이 다른 법이기 때문에.
 
  배가 움직이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은 마치 60분 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60분이라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배에서 내리면서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아.. 정말 좋았어!!' 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아주 잘 차려진 맛있는 점심을 딱 배가 불러올 정도로 맛있게 먹은 것처럼 말이다. 


#4 게곤노타키華厳の滝, 류즈노타키竜頭の滝

유람선을 타고서 츄젠지코를 한바퀴 유람하고 내린 뒤 다음으로 간 곳은 케곤노타키華厳の滝다. 츄젠지코까지 왔으면 안보고 가면 아까울 정도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츄젠지코로 걸어왔던 길 반대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게곤노타키(화엄폭포, 타키 = 폭포)는 일본의 3대 폭포라고 한다. 3대 폭포라고 하면 왠지 꼭 가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5대 폭포나 7대 폭포라고 했다면 '아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갈텐데, 얼마나 대단한 폭포이길래 3대 폭포라고 불리우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일본의 3대 폭포 : 那智の滝 / 華厳の滝 / 袋田の滝 )
 
  낙차가 자그마치 97미터라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폭포 중 가장 큰 폭포였다. (여러군데를 돌아다니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츄젠지코의 그 잔잔하던 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거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분수도 그 다름대로 감동을 주고, 이 처럼 높은 곳에서 거침없이 떨어지는 모습도 감동을 준다.
  역시 휴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던게 좋았다. 나보다 닛코를 2주전 다녀온 형한테 들은 얘기로는 게곤노타키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반면 나는 가장 좋은 자리서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폭포를 감상하였다.

여유있게 게곤폭포를 감상하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오쿠닛코奥日光방면으로 들어가는 버스의 시간을 알아둔 다음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닛코에서는 유바가 유명하다고 해서 유바라멘을 먹었다. 역시나 여행을 와서 먹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 다음에 가게 될 곳이나 앞으로 보게 될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무척이나 컸다. 이틀의 일정 가운데 고작 첫째날의 반나절을 지냈을 뿐인데 여행을 너무도 즐겁게 즐기고 있다는 걸 스스로 실감했다. (유바 - 위키피디아)
 
  밥을 먹고서 유모토온천행의 버스에 올랐다. 닛코와 닛코국립공원내의 각 여러 명소들의 버스 정류장은 알기 쉽게 번호로 표기하고 있다. 덕분에 버스에 이동하면서도 어디에서 내려야할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유모토온천행 버스를 타고서 다음으로 가기로 정한 곳은 센조가하라戦場ヶ原였지만, 버스에서 다음 정류장은 류즈노타키竜頭の滝라는 안내방송을 듣고서 게곤노타키를 본 김에 류즈노타키마저 보고가기로 결심하고는 류즈노타키에서 갑자기 내렸다.
 
  류즈노타키(위키피디아) 용머리폭포라는 이름을 가진 이 폭포는 이름그대로 폭포의 모양이 용머리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낙차가 60미터에 폭이 10미터지만 그 길이가 무려 210미터라고 한다. 참고로 게곤노타키는 일본의 3대 폭포이지만, 류즈노타키는 닛코의 3대 폭포다. 게곤노타키는 멀리서 밖에 못 보지만 류즈노타키는 바로 폭포 옆을 따라서 걸으면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좋다. 게곤노타키 같은 웅장함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류즈노타키 쪽이 마음에 들었다.

#5 센조가하라 戦場ヶ原

류즈노타키(용머리 폭포)는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라 센조가하라戦場ヶ原에 가는 길에 류즈노타키 표지판을 보고서는 갑작스레 들린 것이다. 류즈노타키를 둘러보고서 다시 버스에 올라 본래 목적지인 센조가하라로 향했다. 류즈노타키에서도 그랬고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쭉 그랬지만 모두 시간이 훌륭하게 맞아 떨어졌다.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이 곳에서는 몇 분간 구경하고 돌아오자 라는 식이었다. 둘러보는 시간도 대체로 예상대로 맞아 떨어지기 했다.
 
센조가하라는 닛코에 오기 전에 닛코에 다녀온 형으로부터 처음 들은 곳이다. 자기는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갔다고 말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 실려있는 센조가하라의 작은 사진을 보여줬다. 아주 작은 사진이었지만 단번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버스는 산을 굽이 굽이 올라갔고 더욱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깊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 곳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관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처음 본 종류의 풍경이었다. 가을이 지나간 습원의 모습이었다. 센조가하라는 해발 1,400미터의 높은 지대에 펼쳐져 있는 약 4.4평방킬로미터 습원지대로서 2005년 람사르협약(국제습지보호협약 - 전세계 158개국 약 1,700여 곳에 이르는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습지를 지정, 한국에는 11곳이 있음.)에 등록되었다. (센조가하라 - 야후재팬)
 
멀리 보이는 난타이산 푸르스름한 색을 제외하고는 모든게 가을 색이었다. 여름에는 싱싱하게 초록 물결로 뒤덮였을 넓은 습원이 가을과 겨울을 맞아 겸허히 옷을 갈아있은 모습이었다. 가을이라고 하면 늘 빨강 노랑의 화려한 단풍을 찾아다니지만, 눈 앞에 있는 곳이 진정한 가을의 색채라고 생각했다. 
속에서는 마구 기쁨이 솟구쳤다. 정말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천천히 걷다가 뛰어보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센조가하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기쁨에 몸부림 쳤다. 츄젠지코와 그 주변만 해도 사람이 꽤 있었는데 여기선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닛코에 와서 이 좋은 풍경을 안보고 가는건가' 라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봐 온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야. 하지만 분명 세계에는 이곳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도 수두룩하겠지. 가까운 동남아의 해변이나 중국의 광활한 내륙, 중동해의 바다, 아프리카의 초원 등등등. 나중에 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곳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이 곳이 살아오면서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감탄할게 분명해. 그러고보면 벌써 1년전이라 약간은 흐릿하지만 제주도 한라산의 정상에 올라갔을 때도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워서 기뻐하기도 했었지. 내가 너무 감탄하는 것에 헤픈건 아닌가. 정말 지구상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극도로 아름다운 그 어딘가의 장소를 위해서 감탄을 조금은 아껴둬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이고 과거에 봤던 풍경들도 미래에 보게 될 풍경들도 지금 눈 앞의 풍경보다도 중요하진 않아. 그래서 감탄을 아낀다는 생각같은 건 하지 말고 눈 앞의 풍경을 즐기자. 나중에 정말 아프리카의 사바나초원에 갔게 된다면 그 때는 또 한번 감탄하고 기뻐하면 되는 거고, 달에 갔을 때는 그 때 다시 한번 감탄하며 눈물 흘리면 되는거지 뭐.'
이러한 생각의 결론에 이르자 더 기뻐지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센조가하라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다. 이런 길을 따라 계속 걷고 걸었다.고지대의 습지라서 이미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겨울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산책을 하는 데는 무척 좋은 날씨였다.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가 마주치면 너무 반가워서 서로 곤니치와 라고 인사했다. 걸으면서 몇번이고 되새겼다. 이번 여행을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이렇게 멋진 곳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표지판을 보고서 오다시로가하라小田代が原를 찾아가기로 했다. 오다시로가하라로 가는 길은 습지라기 보다는 이러한 숲길이어서 나무로 만든 산책로가 없다. 도쿄에서 살다보니 거의 흙을 밟을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거의 없다고 할까. 도쿄에서 많이 널려있는 공원을 가도 잘 조성되어있는 자갈길을 걸은게 전부인 것 같다.오랜만에 밟는 흙길이었다. 이미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걷기에 매우 좋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산 속을 걷고 있었다. 여러가지 잡생각을 많이 했다. 일부러 생각을 많이 하고 싶어서 생각의 주제를 뽑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생각이 사라지기도 했고, 완전히 다른 주제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이 발달 시켜온 도시 문명을 좋아하는 나도 어쩔수 없이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시의 빌딩 숲을 걷는 것과 자연의 숲 속을 걷는 건 너무나도 다른 극과극의 체험이란걸 몸소 깨닫는다.

길을 계속 걸어가다  '센조가하라 전망대' 라고 씌여진 곳으로 들어갔다. 전망대라고 할 정도로 멋진 경치가 보였다. 하지만 내가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에 딱 맞춰 하늘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윽고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갑자기 흐려져 버린 것이다.
구름은 해를 가린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해가 다시 나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20여분 동안을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는 나오질 않았다. 결국 멋진 풍경을 본 것에 만족하고 오다시로가하라 쪽으로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센조가하라 전망대에서 약 30분 정도 걸어서 오다시로가하라에 도착했다. 꽤나 긴 거리였다.
오다시로가하라에 도착했을 때는 있는 힘껏 감탄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아 온 풍경을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오다시로가하라는 센조가하라의 뒤 쪽에 자리잡고 있는 약 44헥타르 면적의 습지로서 이 역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오다시로가하라는 습지에서 초원으로 변해가고 있는 희귀한 경관의 습지라고 한다.
(오다시로가하라 위키피디아)
그러고보니 센조가하라와 오다시로가하라는 확실히 달랐다. 일단은 오다시로가하라에서는 물을 많이 볼 수 없었고 때문에 나무 다리로 된 산책로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자라나고 있는 식물들도 많이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오다시로가하라는 센조가하라보다 면적이 좁지만 더욱 인상깊은 풍경이었다.

오다시로가하라의 전망대에서도 제발 구름이 떠나주길 바라면서 계속 기다려봤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오다시로가하라의 인터넷에서 여름의 풍경 사진을 봤을 때 여름에 꼭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일본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분명한 건 일본에 오는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아사쿠사의 스카이트리와 닛코의 여름의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오다시로가하라에서도 풍경을 충분히 만끽한 뒤 다시 센조가하라의 유모토 온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센조가하라 전망대와 오다시로가하라 전망대에서 햇빛에 반사된 모습을 못 본 것을 아쉬워하면서 걸어가고 있던 도중,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보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움직일 생각을 안하던 구름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벌써 센조가하라 입구로부터 걸어서 들어온지 약 1시간 반정도. 꽤나 먼 길을 걸어왔다.
걸어오는 길의 중간에서 꼭 보고 싶었던, 햇빛에 반사된 센조가하라 전망대의 풍경을 보지 못한 걸 아쉬워 하고 있다. 
이미 전망대로부터도 멀리까지 걸어왔다.
'다시 돌아가서 못보고 지나쳤던 풍경을 볼 것인가'  '못 본 풍경은 포기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곳 센조가하라를 빠져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미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그리고 돌아간다고 해도 하늘에 구름이 많이 떠있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다시 구름이 해를 가릴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면서 그 길의 똑같은 풍경을 두번이나 감상한다는 것은 이틀간의 일정에서,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이기도 하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고 가던 길로 계속 가다보면 아까 보다 더 멋진 풍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도 없었다. 갈래길에 들어선 것이다.  정말 그 순간만은 머리가 복잡해져서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까지 떠올랐다. '그 시에서 시인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
 
머릿 속에서는 계속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면서, 결국은 되돌아가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게 현명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 판단을 거슬러 발걸음을 돌렸다. 발걸음을 돌린 순간부터 스스로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서둘러서 걸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센조가하라를 빠져 나갈 수 있을테니까 괜찮아. 똑같은 풍경을 두번 감상하면 머릿 속에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테니까 더 좋을테고.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구름이 다시 하늘을 메우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생각만 도무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구름이 다시 해를 가리기 전에 도착해야만 한다.!! 는 생각으로 센조가하라의 숲 속을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빨리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걸어온 길을 (본인 생각으로는) 초스피드로 뛰어서 돌아갔다. 가방은 무거웠고, 땀은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세겹으로 껴있고 있던 옷은 어느새 한겹만 남았다. 정말 먼길을 걸어온 것인지 아무리 뛰어도 전망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뛰어서 돌아간 것일까. 그냥 센조가하라의 풍경을, 햇빛을 반사하는 풍경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윽고 센조가하라 전망대에 헉헉 거리면서 도착했고,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신에게 감사했다.  해가 구름을 완전 벗어난 건 아니었지만, 구름 틈 사이로 센조가하라를 비추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오래 뛰어서 제대로 감상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일단은 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돌아온 보람이 있었다. 처음 전망대에 왔을 때 봤던 풍경과는 달랐다. 태양의 직사광선을 반사해서 비춰지는 풍경뿐이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왜 눈에 눈물이 고인건지는 정확히 모른다. 조금 다른 빛의 차이를 보기 위해 이성적 판단을 거스르고 돌아온 게 바보같고 한심하게 여겨져서 그랬는지 정말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감동받아서 그랬는지.

보고 싶어했던 경치를 마음껏 감상했다. 감상하면 감상할수록 하늘은 점점 더 맑아져 갔다. (되돌아왔기 때문에 그래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힘차게 내달려 되돌오고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해왔던 선택들과는 너무 다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하자고? 말도 안돼. 지금까지 해온게 너무 아깝잖아.'
'아까 그 길로 갔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됐다, 그냥 이 길로 만족하지 뭐.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지금의 길을 포기하는 건 너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
대개 이런 가치관에 근거를 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처음의 선택을 존중하고 (본능을 믿으며) 그것을 계속 밀고 나가는게 제일 후회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분명 되돌아오지 않고 그 길로 쭉 갔더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고 또 감탄도 하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발걸음을 돌렸고, 되돌아오고 나서, 되돌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은 인생의 매 순간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어느 순간 그 선택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기운다고 해야될까,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익숙해진다고 해야될까, 그러는 것 같다. 그렇게 한쪽으로의 선택에 익숙해지다가 선택하지 않을 쪽을 택했을 경우의 즐거움을 하나둘씩 잃어가고 결국 전체적으로 자신 스스로가 인생의 즐거움을 반감시켜 가는 것이다.
 
센조가하라는 이번 이틀간의 닛코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가장 꼭 다시 가고 싶은 장소, 즉 가장 좋았던 장소이다. 이번에 본 건 늦가을의 센조가하라지만 기회가 된다면 사계절 시시각각의 모습을 감상하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츄젠지코, 게곤노타키 등에 비해 센조가하라가 너무 초라하게 소개되어 있는가이드북(일본의 가이드북도)이 유감스럽다.

원래는 약 두시간 코스로 알려진 코스를 걸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일도 생기고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걷는 바람에 거의 세시간 반동안을 센조가하라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처음엔 유모토온센 방향으로 나올 생각이어있지만 5시를 넘겨서는 해가 지고 깜깜해져서 가까운 출구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걸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도 가지지 않았던 센조가하라에서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센조가하라를 걸으면서 정말 행복을 만끽했다. 이런 건 어디에 감사를 드려야 할까. 한 달 전부터 여행 일정을 잡은 이 날짜가 우연히 날씨도 너무 좋은데다가 인적도 드물어서 산책하기에 최고라는 것을 어디에 감사드려야 할까.
 
  이렇게 해서 닛코의 이틀 일정 중 하루 일정이 끝났다. 센조가하라의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곧장 닛코역 근처의 숙소로 돌아왔다. 많이 걸어다니느라 피곤했던지 버스에 올라탄 뒤 바로 곯아떨여져서 눈을 떠보니 닛코역에 도착해이었다. 숙소는 닛코역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닛코역 바로 앞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서 4인실의 방에는 유럽인 남자가 한명 머물고 있었다. 서로 피곤했던건지 별 다른 대화없이 밤을 맞이하였다. 그 친구가 자기가 차를 끓였는데 마시겠냐고 물어봐서 괜찮다고 대답한게 전부였다. 솔직히 많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 일부러 서둘러서 침대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닛코에서 맞이하는 밤은 신기하게도 닛코의 냄새가 났다.


#6 여행 둘째날 - 닛코 산나이 日光三内

 닛코에서의 두번째 날을 맞이하였다. 전날 밤 자기 전에 혹시라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면 닛코의 새벽거리를 산책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일어난 시각이 7시라서 산책할 여유는 없었다. 좀 빨리 게스트하우스를 나서서 바로 닛코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떻게 움직일지 대략적인 생각을 해놓고서 세부적인 움직임을 정하기 위해 닛코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도움이 필요했다.
  둘째날의 대략적인 일정은 이러했다. 오전 - 닛코산나이日光山内(니샤이치지二社一寺)견학 / 오후- 기누가와온센 방면 이동, 온천 입욕, 귀가
 
  닛코를 하루 일정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은 닛코산나이를 반드시 구경할 것이다. 닛코산나이는 닛코의 니샤이치지二社一寺, 토쇼구와 후타라산진자 그리고 린노지 일대를 가리킨다. 1999년 닛코산나이 일대 전부가 '日光の社寺닛코의신사와절' 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매우 넓은 지역이라서 시간을 많이 걸릴 것을 예상하고 오전 내내 이 곳을 둘러 볼 생각으로 일정을 잡았지만, 반나절 만으로 모두 둘러보는 것은 무리였다. 가이드북을 보면서 천천히 보면서 이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 앞에 위대한 건축물이 있어도 그게 어떤 위대함을 가지고있는 건축물인지를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니샤이치지 가운데 가장 먼저 구경한 것은 토쇼구다.  토쇼구는 에도 막부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로 닛코토쇼구는 전국에 있는 토쇼구들 가운데 총본사적인 곳으로,닛코토쇼구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다. (창건 1617년)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섰기 때문에 한적한 토쇼구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단체 관광객들 중 가장 많았던 부류는 중국인들이었다. 한국인들 단체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있다면 가이드분들의 설명을 엿들으면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챙겨간 가이드북을 열심히 보면서 스스로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산자루(세원숭이), 네무리네코(잠자는 고양이)와 함께 토쇼구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상상의 코끼리(想像の象)의 조각이 있다.
코끼리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조각가가 상상으로 조각한거라고 해서 상상의 코끼리 라고 부른다.

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을 와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일본의 역사의 위인들은 많이 모르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만은 조금 특별히 알고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만화에 푹 빠져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권수로는 10권이 넘는 만화여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에 대해 매우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 만화를 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존경심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무덤을 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내려고 했다. 여기저기서 들었던 그의 말들과 일화들을 생각해냈다. 한국인인 내가 이 인물에 대해 느끼는 바가 일본인들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만약 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아닌, 동시대의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을 찾아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들에겐 임진왜란을 일으킨 적의 수장이지만, 그 역시 일본인들에겐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한 국가의 사람으로서 역사의 인물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를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까. 우리가 영웅으로 칭송하는 안중근 의사도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정치인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이 아닌가. 역사가 아닌 현재를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잊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의 일본인들은 옛날 우리의 조상들을 힘들게 했던 일본인들의 후손이 아닌가. 역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지난 날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본보기 삼아 더 나은 인류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것이지 역사의 사건들의 원한과 감정을 지금까지 품어서 서로를 시기하고 증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안중근 의사도 그 시기에 그런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고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행동했을 것이다.

토쇼구를 둘러보고 나서 느낀건 한국 문화재에 대한 얕은 지식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면서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국 문화재에 가서 이렇게 열심히 그 대상을 알려고 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에서도 그 위대한 문화재를 한번씩 훑고 지나간게 전부다. 물론 그때는 어려서 많이 생각도 많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도 뛰어난 문화재가 많이 있고 그런 문화재들은 모두 가슴에서부터 느껴야만 한다. 문화재를 찾아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러 문화재에 관련된 인물과 배경 지식을 사전에 알아두면 더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경주도 가봐야겠다. 토쇼구를 천천히 둘러보았던 것처럼 경주를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6 여행 둘째날 - 닛코 산나이 日光三内 (2) 후타라산 진자, 린노지

토쇼구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아직 후타라산 진자와 린노지, 린노지 다이유인을 더 돌아봐야 되는데, 토쇼구를 너무 열심히 둘러본 탓에 벌써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확실히 닛코산나이는 반나절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토쇼구를 자세히 둘러본 것에 만족하고 나머지 후타라산 진자와 린노지는 편하게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니샤이치지 공통입장권(1,000엔)을 샀더라면 들어갈 수 있었을테지만, 토쇼구의 입장권(혼샤,오쿠샤 입장 포함)을 사는 바람에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되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토쇼구의 건축물 양식과 비슷하다는 가이드북의 안내를 보고 위안을 삼았다. 린노지 다이유인 입구의 단풍이 무척 예뻤다.

 쇼요엔, 닛코산나이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이다. 처음엔 입장료 300엔을 또 받길래 그냥 지나려고 했지만 이것이 닛코산나이의 마지막 코스라고 생각하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오니 역시 입장료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갔던 이 때가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때였다. 전날 갔던 츄젠지코와 센조가하라는 고지대라서 이미 가을이 모두 끝나고 단풍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 닛코산나이 지역은 이 시기가 단풍이 절정인 것이다. 쇼요엔의 단풍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한참동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사는 집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역시 돈을 지불하고 들어고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은 문화재나 정원 등 어디를 가도 대부분 입장료를 받는다. 들어가기 전에는 입장료를 내는게 정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들어가고 보면 돈을 내고 들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아직까지 만족스럽지 못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도 역시 좋은 날씨의 덕분도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였으면 오늘 처럼 이렇게 예쁜 정원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7 키리후리고원霧降高原

코산나이 일대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닛코역으로 돌아왔다. 기누가와온센에 가서 그 일대를 둘러보고 온천욕을 즐길 생각이었지만, 조금 시간이 이르기도 했고, 이대로 닛코지역을 떠나는게 아쉬워서 어디 한 곳을 더 다녀올 생각으로(어차피 닛코지역의 버스를 마음껏 탈 수 있는 티켓이 있으니까) 다시 가이드북을 펴서 가볼만 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결정한 곳은 키리후리코겐霧降高原이었다. 버스정류장의 버스 시간표를 보니 앞으로 약 30분이 남아서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빵으로 요기를 했다. 그리고 키리후리고원에 가서 먹을 생각으로 유부초밥을 샀다.

  닛코역에서 약 40분 동안 버스를 타고서 도착한 키리후리코겐. 이름 그대로 그냥 높은 지역이었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마켓에서 유부초밥을 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을 뿐더러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유부초밥은 일본에 와서 내가 가장 흔하게 먹는 간식이다. 눈 앞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유부초밥을 하나씩 하나씩 집어먹었다.
설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나도 가이드북에 나와있으니까 버스를 타고 일부러 찾아온건데. 어쩌면 이 곳보다 더 깊게 들어가면 목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 곳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목장까지 가고 싶었는데 목장에 가는 버스는 많지 않아서 시간 관계상 들어가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산 한가운데 올라와서 혼자서 유부초밥을 간식으로 먹고 있는 상황이 참 웃겼다. 눈 앞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만나는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다.  

키리후리코겐은 특별한게 없긴 했어도 아직도 그 산 위에서 느꼈던 바람의 시원함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시원한 기억을 간직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다. 약 20분 동안 하늘과 산맥의 병풍 같은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닛코역으로 돌아왔다. (버스에 타면 항상 졸았다.)
 
이젠 닛코지역을 떠나갈 시간이었다. 츄젠지코의 유람선, 케곤노타키, 류즈노타키, 센조가하라, 닛코산나이, 키리후리코겐 등등 어느 곳 하나 별로인 곳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특별한 행복감과 특별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서 닛코를 떠나갈 때는 왠지 모르게 정말 아쉬웠다. 역시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가진채 기차를 타고서 기누가와온센으로 향했다.

 닛코에서 기차를 타고 기누가와온센으로 이동해 왔다. 이 곳에서는 특별한 일정을 정하지 않았다. 기누가와 주변을 천천히 단풍을 구경하면서 걷다가 때가 되면 온천에 들어가서 귀가를 할 생각이었다. 
  닛코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의 동네였다. 닛코보다 더욱 사람도 없었고, 더 조용했다. (신기하게도 이번 여행동안은 계속 사람을 많이 볼 수 없었다.)
 
  가을 풍경이 정말 좋았다. 기누가와 뒤 쪽으로 펼쳐진 산은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적한 관광지의 풍경이 좋아서 특별한 목적지 없이 지도를 보면서 계속 걸어다녔다. 원래는 온천욕을 즐기기로 생각해 두고 있었던 온천이 있었지만 그쪽으로 향하는 도중에 오늘이 정기휴일이라는 가이드북의 안내를 보고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온천을 찾아보기로 했다.

鬼怒川ライン下り 기누가와라인쿠다리
기누가와온센역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라인쿠다리. 나보다 일주일 전에 닛코에 다녀온 친구가 이걸 탔었다고 했었다. 2,500엔의 비싼 가격때문에 탈까 말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한끝에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500엔의 라인쿠다리 티켓이 평일 마지막 편차 15:45발은 반액이었다!! 
처음에 2,500엔을 내고 티켓을 샀는데 팜플렛에 적혀진 '평일 마지막은 반액'이라는 문구를 직원에게 보여주면서 1250엔 아니냐고 물어보니 죄송하다고하며 티켓을 다시 끊어주셨다. 2,500엔이라는 비싼 가격에 겁을 먹고 아예 타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뜻밖의 정보를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게다가 평일 마지막 반액이라는 것은 티켓판매소 안에 어디에도 쓰여지지 않고 팜플렛에만 아주 작게 쓰여있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번여행은 풀려도 뭔가 잘 풀린다. 뭔가 다 시의적절하게 즐거운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좀 비싼 가격이라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는데 큰 결심을 하고 타기로 결정을 내린것을 시작으로, 내가 기누가와온센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정확히 라인쿠다리에 도착한 시간이 마지막 출발편만 남은 시각이었던 것 하고 (그보다 일찍 도착했다면 제값을 주고 탔을 것이다), 또 그 마지막 출발편은 반액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까지 말이다. 또 직원이 하는 말이 다른 때는 사람이 매우 붐벼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거나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탈 수 있는데 오늘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여유롭다는 말을 들었다.  여행에서는 정말 운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 전체적으로 봐도 운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운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장마철엔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물이 엄청 불어나고 위험해서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겨울철에도 12월 부터는 추워서 손님이 없기 때문에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11월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

약 50여분 동안 라인쿠다리를 타고서 강 하류까지 내려오니 벌써 해가지기 시작했다. 정말 기분좋은 경험이었다. 무료셔틀버스를 제공해줬기 때문에 강 하류에서 버스를 타고 기누가와온센역까지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벌써 시간은 5시를 지나고 있었다. 기누가와온센까지 왔는데 꼭 온천욕을 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역 앞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여기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온천이 어디죠? 입욕만 할 수 있는 온천은 어디어디가 있죠?" 등을 문의해서 적절한 온천을 찾아냈다.
 
  그렇게 해서 찾아들어간 곳이 역으로부터 10분거리에 떨어져있는 파크호텔이다. 800엔에 입욕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가는 온천이었다. 조금 더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천천히 좋은 온천을 골랐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쉽다. 하지만 이 곳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노천탕을 즐길 수 있었다. 밖으로 보였던 기누가와의 경치는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좋아 다음엔 온천여행이다!'

여행의 끝
  기차를 타고 닛코를 떠나 도쿄로 돌아오는게 많이 서운했다. 정말 너무도 즐거운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준비가 충분했다고도 할 수 있고, 부족하기도 했다. 한 달 전부터 숙소를 잡아 놓기는 했지만, 중간에 그 숙소가 닛코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숙소라는 것을 알아채고 10여일 전에 새 숙소로 급변경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서 닛코 가이드북을 조금씩 읽어나갔던 것 밖에는 특별히 없었다. 그러했던 걸 보면 스스로도 이번 여행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있었다. 닛코라는 지역에 대한 기대보다는 도쿄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1박 2일 여행'을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첫날 부터 좋은 날씨와 전혀 기대 이상의 풍경들을 만나게 되면서 점점 닛코라는 지역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 11월 8일 아침 아침 닛포리역에서 야마노테센에서 죠반센으로 환승할 때 정신 없이 뛰어서 딱 정확한 시간에 닛코행 기차를 탄것을 시작으로, 여행을 마친 11월 9일 저녁 10시까지. 어느 한 순간도 좋지 않았던 적이 없다. 여행이라는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알려준 여행이었다. 일본에 와서 1박 2일로 본격적으로 여행을 한 것은 처음인데 좀 더 빨리 1박 2일의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좀 더 여러 곳을 다녔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처럼의 비유지만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또 인생과 같다.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뜻밖의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길 중 한가지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버렸던 선택을 아쉬워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고, 뛰어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 다시 출발하기도 하는 것처럼 인생과 여행은 모든 것이 일치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인생과 여행의 비유가 하나의 멋드러진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일치한 다는걸 매 순간 깨달았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비유를 몸으로 이해한 것이다.  
지금 일본에 있는 이 시간도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1년치 여정이자 여행이다. 앞으로 살아갈 긴 여행을 생각하면 매우 짧은 여정에 불과하지만 내가 이 여행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남은 여정이 모두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 여행에서 주인공도 나 자신 혼자뿐이다. 여행에서 내가 어디 어디를 가고 싶은지 정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의 여정길도 모두 내가 정할 수 있다. 일단은 여행의 끝이지만 끝과 동시엔 또 하나의 여행의 시작이다. 끝없는 여행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 인생의 여행이다. 살아가면서 꼭 다시 한번은, 기회가 된다면 여러번이라도 다시 찾아오고 싶은 여행지다. 
 
 
닛코 1박2일 여정
첫째날 일정
집(駒込) 05:50 - 키타센쥬(北千住) 06:30 - 토부닛코센 - 닛코역日光駅 08:30
아케치다이라明智平10:40 - 츄젠지코中禅寺湖 - 츄젠지코 유람선11:40 - 게곤노타키華厳の滝 - 점심식사1:40 -  류즈노타키竜頭の滝 - 센조가하라戦場ヶ原 - 오다시로가하라小田代ヶ原 4:30 - 토부닛코역 숙소 6:10 - 저녁식사 - 취침 10시
둘째날 일정
토부닛코역 - 닛코산나이日光山内 - 신쿄神橋 - 토쇼구東照宮 - 후타라산진자二荒山神社 - 린노지輪王寺 - 키리후리고원霧降高原 - 기누가와온센鬼怒川温泉 - 키누가와라인쿠다리鬼怒川ライン下り - 온천욕 - 귀가. 도쿄도착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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