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4일 토시마구립 중앙도서관 / 이나다군의 꿈
오늘은 코마고메 도서관이 아니라 토시마구 중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 코마고메도서관은 걸어서 3분이면 가지만, 중앙도서관은 자전거로 20분 정도 가야했다. 하지만 중앙도서관이 좀 더 크고 열람좌석도 많다는 소리를 들어서 가보고 싶었다.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 확실히 도서관은 크기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동네도서관과는 차원이 다른 장서수와 깨끗한 시설에 입이 쩍 벌어졌다. 일본의 도서관 문화는 정말 부럽다. 내가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 문을 10시에 열기 때문에 10분정도 기다려야만 했다.
도서관에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한국어 서적을 보고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들 중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어 서적이 그렇게 빛날 수가 없었다. 총 10권 대출에 대출기간도 15일로 길기 때문에 한국책이 보고 싶으면 이곳에 와서 책을 빌리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6시까지 계속 일본어 회화책만 봤다. 일본어 공부를 계속해서 하지 않으면 정말 발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요새 자꾸든다. 끝까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죽도록 노력해야지.
이나다군 이야기. 어젯밤 늦게까지 이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그냥 일본의 보통 젊은이지만 얘기하면 할수록 정말 멋진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는 얘기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의 생활과 일본의 생활에 대한 비교다. 그러다가 어제는 이나다군에게 별 생각없이 이런 걸 물어봤다.
나 - 이나다군은 하고 싶은게 있어? 음..그러니까 장래희망이나 꿈같은.
그러자 이나다군이 앞에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책을 꺼내더니 보여주면서
이나다 - 혹시 들어봤어? 그린 투어리즘' 이라고
책 제목이 '슬로우라이프,슬로우푸드 그리고 그린투어리즘' 이었다.
나 - 슬로우라이프와 슬로우푸드는 많이 들어본 개념인데 그린 투어리즘 같은 건 처음 들어봐
그러자 이나다군이 그린투어리즘이란 것에 쭉 설명을 해줬다.
이나다 - . 예전에 친구가 나한테 책을 한권 빌려줬는데 그걸 읽은 후로 이런 생각을 하게됐어.
그러면서 그 친구가 빌려줬다는 책도 보여준다. '행복,, 뭐더라?'
이나다 - 지금 세계가 물질은 정말 풍요로운데도 정작 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계속 바빠지기만 하고 결코 행복해지기 쉽지 않잖아.
나 - 아 그래서 그 책을 읽은 다음에 이나다 너 스스로가 찾은 해답이 슬로우라이프 같은 방향이었던거야?
이나다 - 말하자면 그렇지.
나 - 너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하지만 일단 먹고 살아가기 위해선 직장이 필요하잖아.
이나다 - 응 물론. 그래서 그런 쪽(그린 투어리즘)과 관련된 회사에 들어가서 그런 일에 종사하고 싶어.
나 -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와 같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이나다 - 응. 최근들어서 계속해서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
나 - 쉽지 않은 길이 아닐까?
이나다 - 응 많이 어려울걸야.
나 - 그 길이 어렵더라도 괜찮아?
이나다 - 응 괜찮아.
나 -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같은 걸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거야?
이나다 - 확실히 그래.
나 - 나도 그런 생각을 예전에 많이 했었거든. 더 행복해지고 모두가 잘살수 있는 삶의 패러다임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지금도 계속 생각중이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깐 나도 그냥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지금은 그냥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행복한거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버리는 거야.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이나다 - 글쎄 이기적인 건 아니지 않을까.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냥 난 좀 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나 -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 멋지다, 이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이나다 -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 -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쉽지 않지.
이나다 - 응, 세상은 워낙 넓으니까
나 - 하지만 결국 '세상'이란건 내가 속한 '세상'을 말하는 거니까. 그 세상을 바꾸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닐거야.
이나다 - 그런가. 잘 모르겠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생각들이 말 뿐 일수도 있는거고.
나 - 아냐, 이나다. 말뿐이라도 괜찮아. 말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는 흔하지도 않고 흔하지 않아서 더 멋지니까.
이나다 - 감동받았어. 이치가 '말뿐이라도 괜찮아' 라는 말을 해줘서.
나 - 너가 생각하는대로 세상이 바꿔지길 기대하고 있을께.
이나다 - 응 기다려
대화 내용을 애써 생각해가면서 적은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대화였다. 진지한 얘기 같으면서도 웃으면서 농담처럼 얘기가 오갔다. 이나다군의 저런 생각에 꽤나 감탄을 받았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어려울 것이란 걸 알면서도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쉬운게 아니니까. 쉽지 않으니까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유헤이상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려운건 재미있는거야. 쉬운건 재미없지.' 그러고 보니 이나다군도 그걸 알고 있는건가. 그 진리를.
나 - 이나다, 어려운 건 재미있는 거지. 그렇지?
이나다 - 그런가? 어려운 게 재미있는걸까?
나 - 응. 어려운게 재미있어. 재미있게 사는건 중요하지?
이나다 - 그렇지.
나 -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젊음이지만, 현재를 재미있게 살지 않으면 안돼.
이나다 - 나도 정말 동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 - 맞어. 지금이 재미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나다군과 그렇게 밤 늦은 시각까지 저런 대화를 하면서 누워있으니까 왠지 우리 둘이 영화 식스티나인의 주인공이 된것 같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가 인생의 재미에 대해 논하고 누워있다니
고등학교 때 영화 <식스티나인>을 보고 블로그에도 두 주인공의 대화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ksi8084/40021671184 정말 재밌다 재밌어.
일본에 와서 말이 잘 안통하고, 그것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재밌다. 어려운 건 재미있는 거니까. 모든게 쉽게 술술 풀리면 재미없다.
그러니까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죽지 말고 잘 해내야겠지, 이치군?
(이나다군은 나에게 이치군이라고 부른다. 내 이름 중에 한 일一자가 있는데 그게 일본어로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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