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를 읽고서

 

2009.4.13

기형도를 읽었다. 너무 어렵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문학의 세계이며 정신세계다. 순간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은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우리 시대 청춘의 문장들. 난 정말 그들과 같은 청춘일까? 고뇌하지 않는 청춘도 청춘일까? 내가 너무 기표에 목을 매고 있는건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를 접함으로써 난 세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걸까. 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와 관련된 것들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분명 이 세계를 정화시킬것인가. 도대체 무슨 무슨 고민을 안고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고민 따위 하지 않고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난 어떤 존재일까. 너무도 가볍게 작은 존재인것은 분명한데, 내가 이 땅위를 밟고서서 살아감으로써 지니는 의의는 무엇일까. 모두 덧없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나가야 하는가. 너는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한 순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인가.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인데, 이해할 수 없는 몇 개의 기형도가 날 이리도 복잡하게 만든다. 그에 대한 이해, 과연 기형도를 이해하는 것이 내 청춘을 이해하는 것일까. 난 왜 기형도를 읽었을까. 난 왜 기형도를 읽는가. 청춘이라고 다 같은 청춘일까. 누구는 또 다른 청춘일 수 있다. 나의 청춘은 무엇인가. 청춘은 고뇌하면서 살아야 되는걸까. 청춘의 고민은 내 삶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까. 너도 나중엔 똑같이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똑같이 돈 벌어오는 아빠가 되는거잖아. (돈 벌어오는 행위를 비하할 생각은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은 숭고한 행위니까) 순전히 미디어에 의해서 재포장되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 아닌가. 세상은 원래 '없는 고통'을 창조해내고 있다. 고통이 아닐수도 있는 사실과 현상들을 고통으로 비추고 있다. 우린 너무 처절하게 학습당하면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게 정말 고통이 아닐수도 있는데 마치 고통인냥 받아들이게 되고 그게 정말 즐거움이 아닌데 마치 즐거움인냥 받아들인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은 너무도 중요하다. 모든 고통도 모든 즐거움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린 우린 우리 자신을 찾아내야만 한다. 타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삶 위에서 삶을 살아가면 안된다. 세상엔 나만의 세상만이 존재하는데 마치 우린 타인의 세상이 우리 자신의 세상인냥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프다'란 단어도 결국 만들어진 세상 아닌가. 고통을 즐길수 있는 것이라면 통각에 가해지는 자극들이 '즐겁다'란 단어로 만들어졌다면, 아픔이 즐거움이 될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 '귀신은 무섭다'라는 사실도 '공산주의는 나쁘다'라는 사실도 '돈을 훔치는 것은 나쁘다'라는 사실도 '돈은 좋다'는 것도... 결국 모두 쌓여지고 쌓여져서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우린 학습되었다. 세상에 학습되었는데 우린 학습할 사실들을 모두 인정하고서 맞춰 살아가야 되는 것일까. 우린 어떻게 학습 되었을까. 잘 학습된 것인가. 기형도가 원인이다. 도대체 당신은 왜 이렇게 복잡한 생을 살아갔소. 우리의 삶은 정녕 당신의 시처럼 복잡하단 말이오. 왜 단순히 남들처럼 생을 즐기다가지 못한 것이오. 그럼 당신 눈에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단 말이오. 난 고뇌하는 청춘을 고뇌했던 청춘들의 세계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을 알면 알수록 '깊이'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왜 남들처럼 단순하게 살지 못했던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정녕 그대들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소. 그대는 세상의 방정식을 수정하는게 더 중요했던 것이오. 그럼 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들처럼 깊은 생각도 없고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뭐가 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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