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Programming 발췌
나는 기쁨과 평화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하고 싶다. 하지만 자연의 성질을 매우 냉담하고 육식성이라 생각할 때는 그러한 상상을 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자연을 인격화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인간에게 눈을 돌린다. 인간의 끔찍한 행동과 비교하면 사자가 양을 죽이는 행위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평화와 균형, 조화를 찾는 진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적인 평온함을 얻고 이를 적절히 균형 잡힌 정신과 감성에 융합해 평화와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 자동차나 수영장, 집 등의 물질적인 부와 육감을 만족시키는 것들 또는 관능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 같은 것들이 구현의 대상이다. 그 반면 영적으로 진지한 사람에게는 평화와 균형, 조화가 우선적인 구현의 대상이며, 그 다음이 건강과 개인적인 행복이다. 이것은 명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므로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남겨두자. 개개인은 저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욕구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과 주위 세계를 꺠달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마음은 점화장치와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꿈을 인식하거나 새로운 하루 일과로 곧바로 주의를 집중한다. 마음은 사고와 믿음, 야망, 목표 등의 내면세계를 즉시 전달한다. 이러한 즉각적인 의식의 흐름, 곧 혼잣말은 자신의 기분이나 태도, 선호도, 그 밖의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내면에 있는 초대형 쓰레기통의 내용물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간성을 정의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인간성이란 자연에 근거를 두고 인격화하는 공통된 마음의 특성을 동반하는 역동적인 경험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목격한 후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짓고, 소름이 돋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며 인간성의 한 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예로 불이 난 집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부상을 입은 개를 보고 우리는 경탄과 경외심, 사랑을 느낀다. 인간성은 어떤 이야기 속에서 열거할 수 있는 감동 이상의 것이다. 인간성은 정서이며, 원시 욕구에서 비롯된 감정을 초월한다. 감동적인 이야기, 마음을 들뜨게 하는 창조력, 가슴 뛰는 모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솟구치는 열정, 내적 성찰로 이끄는 환희와 경외감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이다.
장대높이 뛰기 장면을 과학적 관점에서 수백번 유심히 보았다고 해서 내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대높이뛰기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보아야 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조종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조종을 막기 위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향상된 주거 환경과 그 밖에도 많은 것을 꿈꾸고,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거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쳐놓은 장벽에 부딪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절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최면이나 심리요법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서구 문화의 영향권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율성에 대해 좀 더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깨우고 자아를 실천하는 데 뇌의 우반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상상해보라. 이런 심상화는 뇌의 우반구를 활성화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내면의 잡음을 멈추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덧붙여서 우리 각자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믿을 때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세계의 평화를 약속하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다.
행복한 심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는 왜 이것을 원하는가? 내가 깨달은 거 이렇다. 우울한 심장이 면역계나 내분비계, 자율신경계를 최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믿겠는가? 이는 수명이 짧아지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인생은 어차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야. 인간은 누구나 결국 죽는다고!”라는 말은 자기충족 예언일 뿐이며, 우울한 심장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TV앞에 앉은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과민한 암시 감응성이라는 의식 상태로 들어간다. 흔히 최면 상태라고 말하는 상태다.
생각 역시 심장의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슬프고, 악하고, 비열하고, 폭력적인 기억을 지니면, 즉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으면 불규칙하고 일관성 없는 심장 패턴이 생긴다. 생각은 감정으로 표현된다. 그릇되고 원하지 않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부정적인 감정을 중화시키는 일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진짜 미소가 나올 때까지 가짜 미소를 띠어야 한다. 웃음은 뇌를 속여 천연 아편을 더 많이 생성하게 한다.
생각은 물질이다. TV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광고는 보지 마라. 특히 병을 알리는 광고를 경계하라. 머릿속에 들어가는 내용을 감시하고 내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협하는 생각은 무조건 없애라.
문제는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세계정세에 항상 귀 기울이고 합리적인 투표자로서 선거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또한 세계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양심의 명령에 따라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면 견해와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해 회피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은 전두엽(감정제어와 공격적 행동을 제어하는 기관)으로,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나 공격성을 조절할 때 이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나 폭력적인 게임을 오래하면 이 부위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폭력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은 폭력적인 장면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반면, 폭력게임을 한 사람은 폭력에 둔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소산물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믿음’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우리가 겪은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본 일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을 창조하게 된다.
증오, 분노, 불신, 부러움, 탐욕, 공포, 질투 등을 모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지원과 사랑만을 알고, 무시되고 방치되거나 불안전한 느낌을 모른 채 성장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인내와 끈기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학습 도구를 접하고, 탐구심과 독립심을 키우며, 끈기를 발휘해 성공했을 때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아이는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실제로 성공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삶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준비부터 해야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마음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향상시키는 일을 해오면서, 변화를 꿈꾸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변명만 수없이 늘어놓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여러 가지 도구와 기술을 찾으며 분주할 날들을 보내지만 어떤 방법에도 효과를 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을 발견할 때마다 그 체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유를 찾기 바쁘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변화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저항을 낳는다. 저항은 변화를 피하려는 과정이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진정한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견뎌내겠다는 의지, 내려놓기, 비난과 자기책임에 관한 관점의 전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진실한 열망, 자신을 보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수정이 요구된다.
행동을 바꿔라. 그러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행동이 바뀐다. 변화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라. 그러면 변화가 강화된다. 변화의 중심을 자신에서 세상에 대한 봉사로 전환하라. 그런 후에 개인과 사회로부터 최대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박장대소는 마음을 속여 인생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걸 아는가? 그렇다. 웃으면 뇌의 화학작용이 바뀔 것이다. 단순히 표정만 바꿔도 거의 즉시 슬픈 기분이 누그러진다.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 전체를 꿈으로 보는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난 후 꿈속의 일을 가지고 정말로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우습게 느껴진다. 용서는 우리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세계 또는 물질세계를 초월한다. 모든 일이 그저 일어나지 않았으니 용서할 것도 없다.
스승님,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인생은 기적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인간의 의식 또한 기적입니다. 저는 모든 창조물에서 신을 봅니다. 꽃향기에서, 아이의 웃음에서, 연인의 다정함에서, 별들의 반짝임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세상을 볼 때 저는 그 불가사의함에 놀랍니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끼고 숭배합니다. 저는 만물이 선하며 매 순간 적절한 방법으로 각자의 선함을 표현한다는 걸 압니다. 제 형제들이 말하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는 걸 압니다. 오직 영원의 세계만이 진실이니까요. 저는 결핍, 제약, 어려운 상황 등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저 제가 본 광경을 세상에 주고 싶을 뿐입니다. 살아 있다는 축복에 가슴이 뜁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각자의 일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자아상과 기대, 전반적인 행복에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기억은 모든 경험을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 즉 깊은 마음의 연결 덕분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속성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단편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 자신에 대한 기대, 세상을 보는 방식, 믿음, 거주지, 어제와 그저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기한다. 기억이 지워져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하루하루가 완전히 따로 놀 것이다. 기억은 연속성을 지시해서 우리 삶을 구성한다. 또한 기억은 실제 정보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마음은 모든 사건이 완벽하게 기록되는 빈 서판이 아니다. 실제로 기억할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억이 기대나 공포, 불안, 욕구 등에 의해 왜곡 된다는 증거다. 우리는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을 마음속에서 실제처럼 그리기도 하는데 이 마음 속 그리기는 사건 전에 일어나기도 하고, 사건 후에 일어나기도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대개 감정적으로 얽혀 있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우리는 잊기 위해서 기억한다. 마음은 어느 단계에서 기억을 억제함으로써 행복을 지킨다. 마음은 회상하지 못하게 꽁꽁 싸매놓은 걸 기억해서, 잊힌 기억을 지키는 전략 체계를 발전시킨다. 이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억제된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형태는 바뀔지라도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멋진 광경은 사라진다. 모든 달콤한 말도 색을 바랜다. 하지만 낙담하지 마라. 그 원천은 영원하며, 성정하고, 가지를 치며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다. 왜 눈물을 흘리는가? 당신 안에 원천이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원천에서 솟아난다” – 잘랄 아드딘 아르 루미 (이슬람 신비주의자) –
남은 날이 50일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온다. 매일 솟는 찬란한 태양, 따뜻한 미소, 즐거운 웃음,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사랑이 아닌 순수하게 격려하는 사랑 등등. 또한 자동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미뤄놓았던 일을 다시 손에 잡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매번 시간이 없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미뤄왔지만 남은 인생이 5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이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50일이 정말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남은 날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로 배웠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더 많은 걸 배우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인생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지고 내 감사함은 점점 더해간다. 죽음보다 삶을 믿어야 한다. 분명 흥미로운 인생이 펼쳐지며, 작은 일상에도 감사가 넘쳐날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이렇게 아침에 정신 상태를 살짝 바꿔놓으면 머릿 속에 있던 ‘제기랄, 침대에서 일어나야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기대감으로 바뀌어 그날 하루를 감사하게 된다. 간단히 이 방식을 충실하게 실천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역경이 찾아왔을 때 아름다움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And so what?”
일어난 일은 알어난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기만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경외심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온세상이 경이로웠다. 모든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것은 공경심이다. 공경심이 없다면 경외심을 가질 만한게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냉정하고 그릇된 자존심만 남는다. 이는 만물의 이치와 그 기원과 이용방법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어떤 것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믿기 쉽다. 전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사용하므로 우리는 전기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빅뱅에 대해 알기 때문에 우주의 창조를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이해하는 걸까?전기가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됐지만, 과학은 여전히 전기를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뭘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항상 초조해요. 지금까지는 그래요.” 그러면 우리의 말과 생각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생겨난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진실이 될 것이며, 당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것이며, 당신이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이 자신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를 의식함으로써 지금까지 해오던 부정적 사고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다. 생기가 넘치고 내면이 충만하며, 선순환이 계속돼 연이어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행복과 충만감은 어디서 올까? 인생의 좌절을 맛본 사람이 충만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충족감이 행복을 주고, 자긍심을 높이며, 부와 명성, 평화, 균형감, 조화로 이끌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도모하고 시대에 맞는 성공 비결로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킬 기회를 잡는다면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의 관계가 향상될 수 있으까?
1. 진짜 ‘나’ 되기
지금까지의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놀랍고 멋진 당신을 보아라.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하면서 잘못된 자기 개념을 주입받는다. 어린 시절 우리는 수용되고 싶은 욕구로 종종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곤 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며,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 건설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영광스럽게 구현할 권리를 타고났다. 삶의 풍요로움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다. 우리 모두가 기적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생각은 기대감을 반영한다. 우리는 무의식에 뿌려진 씨를 열매로 거둔다. 의심은 실패를 낳고, 두려움은 분노를 낳는다.
2. 생각은 물질이다.
생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대하는 것을 얻게 된다. 생각이 곧 사람이다. 우리는 경험한 모든 일에 대한 잠재적인 믿음을 실행한다. 자신에게 행복, 충만감, 성공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가? 존재의 모든 단계에서 모든 선은 항상 자신을 위해 나타난다는 것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 삶의 구심점은 사건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삶의 구심점이다. 자신의 생각과 욕구가 일치했을 때 꿈꾸던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3. 용서하고 내려놓기
모든 행동은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수준에서 결정을 내린다. 삶은 모든 측면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이란 감정을 만난다. 앞의 반응 행동과 달리, 이 때는 힘을 얻어 모든 자극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할 능력이 생긴다. 의식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억제라고 했다. 사실 남 탓을 하는 한 성장하고, 통제하며, 평화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경험하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 없다. 성장의 힘은 용서에 있다. 내려놓으면 자유로워 진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4. 나 자신을 사랑하라.
5. 수용하는 힘
대개 우리는 자신이 저항하는 것을 얻게 된다. 또한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자신 안에 있는 요소를 반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각자 무언가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인 양, 자신의 최고 모습인 양 대하라. 뿌린 대로 거둔다.
6. 상호의존의 힘
행복은 존재의 상태다. 행복은 영원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현재, 순간순간에 경험하는 것이다. 행복은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일의 책임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으로 빚은 불안 상태는 우리 내면 깊은 곳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이 두려움은 매우 창조적인 힘이 있어 사람들에게 종종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상상하게끔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예상하거나 이미 일어났던 일을 한탄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7. 지금 당장 실천하라.
꾸물대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라. 무언가를 바꾸려면 직접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바꿀 수 있고, 그러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배운 것을 실천하라. 놀라운 변화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