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단순하다 복잡하다 따질 수 없는 인생인데도 말이지

후배와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2012.10.7

너 요새 왜 이렇게 외로워하냐

오빠만 하겠어?
요새 마음이 너무 만신창이야
시험기간이라 마음 놓고 힘들지 못하니 그런 것도 힘들고.

그래 오빠로 위로 삼아. 나만 하겠니.

그냥 다 힘들다. 오빠도 힘내.

힘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취업해!

취업이 정답이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러지.

취업준비를 안하고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정말 취업을 원하지 않아?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지.

취업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꿈들이 있잖아. 그걸 실현하고 싶은데 취업을 하면 그 꿈을 다가갈 수 없어.

이해해 무슨 말인지.
난 벌써 그런 생각이 들어.

기업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어려워.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잖아.


그래서 취업을 덜컥하기가 쉽지 않아.

그러니까 취업을 선택하는게 꿈을 접는 걸로 생각되는 거지.
일단 회사에 취업하면, 이래저래 회사 굴레에 들어가는 거니까
자기 꿈을 잃게 될 것 같거든

, 그게 싫다는 건 아닌데
솔직히 누구보다 잘 일할 자신도 있고.

맞아. 취업을 못하진 않아 오빠가.
오빠는 어디를 가도 최고일걸.
그래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간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세상을 위해 뭔가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며 살고 싶거든.
마케팅을 하고 물건을 몇 개 파는 게 아니라.

국제기구에 들어가야겠네.
나도 오빠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나라면 덜컥 겁부터 나서.
여기저기 대기업 넣어보고 바보같이 살 것 같아

그러기엔 내 자신감과 인격이 턱없이 부족하지, 국제기구 같은 건.
물론 회사에 들어가서도 지역사회를 위해서라든지 좋을 일을 할 수도 있어.

회사에서의 CSR은 뭐 사실 그렇진 않지.
국제기구 들어가기 힘들지. 그 분야 경력이 몇 년 있고 Ph.D.가 기본 소양이었던 듯

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더 좋아

그래

그래서 계속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오빠 마음은 이해되고 좋은데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봤어?

노력 안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계속 찾으려고 하고 있어.

스스로를 찾고 있다는 거네.

특별한 재능이나 지능을 타고 난 것도 아니니까.
요새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
국제도우미도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인정받았던 일들이 뭐였는지 회상하는 중이야.
인정받을 만큼 내가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열심히 했던 거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행복했으니까.

그 좋아하는 일이 뭘까?

흔한 문서작업부터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일이나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마음을 여는 일이나
사소한 것들까지 다 생각해보고 있어.

난 오빠가 일 적인 측면에서 유능하다고 느꼈어. 하지만 국제도우미 일을 놓고 봤을 때 국제도우미 하는 일 그 자체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서 즐거운 방학을 보내는 거였단 것도 전제해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어떻게 보면 누가해도 즐거웠을 수도 있는 거지. 물론 오빠는 그 누구보다 너무 잘했고

국제도우미를 하면서 계속 행복하다고 느꼈거든.
근데 내가 하는 걱정은 국도가 끝난 이후로 국도를 하던 때만큼 행복해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거야. '그 때는 그렇게 행복했는데..' 라며 계속 비교가 될 수 있겠지.
그게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더 심하게 다가올지도.

국제도우미 일은 대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국제도우미 일은 사회에서는 절대 못하지.
그건 대학생의 특권 같은 거지.

응 그렇지.
근데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똑 같은 일로 고민을 했거든.
한국에 돌아가면 일본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근데 그때 일본친구가 말해준 게 한국에 가서 일본에서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일본으로 돌아오라는 말이었어. 근데 국제도우미를 하다 보니까 결국 일본에서의 시간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런 국제도우미가 끝나버리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없는 거지.
그래서 드는 생각은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계속 찾아야 하는 것 같아.
일본의 시간과 국제도우미의 공통분모는 전세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였거든.
한국사람들과만 있을 때보다 외국인들과 있을 때 많은 걸 느끼기도 하고, 우리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그 쪽에서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생각해보려고.
지금 현재는 내 주위사람들 때문에 스스로가 초조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일찍 취업을 하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더 길게 보려고.

나는 직장을 잡는다는 걸 어쩌면 나의 행복 중 뭐가 되었든 포기해야 할게 있다고 생각하거든.
대학생 때 난 많은 혜택을 얻었지. 자유로움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근데 오빠 말대로 그 대학생활에서 느낀 행복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가면 좋겠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학시절과 사회는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해.
똑같이 경쟁도 있고, 여유도 있고.
행복이 목표는 아니지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인 듯해.

오빠가 지금 다른 사람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못 들어가도 후회만 없다면 힘들더라도 더 가치 있겠다. 하지만 말했듯이 평정심을 갖는게 제일 어렵겠지.

. 친구들이 모두 같은 처지니까.
대기업에 못 들어가도 후회는 하면 안되지. 내가 노력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서 살면 진짜 후회할 것 같아.

그래도 다 들어가고 싶어하는 데고, 지금 노력하면 갈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안들리가 없잖아.

응 들지.
그냥 내 직관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 대기업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물론 핑계이거나 보상심리 일수도 있어.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경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또 경쟁이 너무 치열한 사회를 바꾸고 싶다고 늘 말해왔는데 내가 그런 경쟁에 앞장서면 내 신념과 가치관을 모두 위배하게 돼버리는 거니까 스스로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고.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내가 들은 교양수업에 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는데,
자기는 항상 젊었을 때 기성세대들을 보면서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늘 생각했대.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가 그렇게 비판했던 기성세대의 모습을 따라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자기를 되돌아 보신대.

그런 것 같아.
오빠 스스로 그렇게 되기 싫어할 거고.

나도 지금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 반납하며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모습이 되어져 있다면 그 실망이 엄청 클 것 같아.
남들이 걸어가지 않는 길이라서 더 많은 생각도 들고 백퍼센트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과 나를 위해서 조금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야.

내가 사회에 나가면서 포기해야겠다는 게 그런 야근이나 힘들고 많은 업무지.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힘들어도 좋을 것 같아.
그게 경쟁하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

물론 그렇지. 그게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밤을 새며 일을 해도 즐거울 수 있겠지.

현대 기업이나 다른 기업사회에서는 오빠에게 그런 매력을 주는 건 없는 것 같아?

물론 많은 매력이 있지.
높은 연봉과 주위 사람들인 인정.
그런데 그런 것들 보다는 나는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으니까.
순수한 목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더 좋아.

그건 이미 기업이 아니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일수도 있고 기업이 아닐 수도 있고.

?

요새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거든.
사는 이유라든지, 살아가야 할 이유라든지, 공부하는 이유라든지,
그 이유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난 타인에게로 많이 향해있거든.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결국 내 주위 사람이 행복해지거든
마찬가지로 내가 행복하면 주위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원리야.

그럼 복지 관련의 일을 하는 곳이 관심이 가지 않아?

복지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곳에서 기획하고 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 같아 좋아 보였는데.

. 확실히 그런 사람들과 한 배를 타고 가고 싶긴 해.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경쟁적인 기업집단과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방 같은 걸 맡는다면 외국친구들과 교류해서 뭔가 시너지를 내고.

. 길은 많겠지. 근데 그 길이 참 단순하고도 복잡해서.

남을 향하다니오빠 성인군자네.

무슨 성인군자냐. 나 정도면 타락했지.

난 나밖에 모르는데
난 내 측근이면 무조건 돕겠지만 그냥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남을 돕는 게 나를 돕는 거고, 나를 돕는 게 남을 돕는 거야.
너와 나의 경계는 없어. 세상은 모든 게 돌고 도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도 우리 가족이 먼저인 것처럼.

세상사람 모두가 오빠처럼 생각하면 대기업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기업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결국 균형이 맞는 거겠지.
절대로 그 사람들이 나보다 불쌍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야. 대기업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할 수도 있는 거고.
인생은 자로 잴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잖아. ㅎㅎ

내 주변에도 오빠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오빠가 있어. 그 오빠하는 노래하고 시를 짓는 정치인이 되고 싶대.

멋지네 시 짓는 정치인.

여튼 그러게..

이 모든 게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지 뭐.

그냥 짐을 내려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걷는 거고.

복잡한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말들이 가끔 더 문제를 악화시켜서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애초에 단순하다 복잡하다 따질 수 없는 인생인데도 말이지.

그것도 그렇네.

너가 배우고 있는 언어 철학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언어의 테두리에 우리의 사고가 갇히는 우는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