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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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는,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고 어딘가 있을 진짜 나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게 아닐까요? '자기답게' 살고 싶다, 자신에게 충실한 인생을 살고 싶다, '베스트 원'이 아니라도 좋으니 온리 원이고 싶다, 이런 절실한 바람은 우리의 '자기실현' 욕구의 발현 입니다.
그때의 '진짜'란 영어로는 'authenticity'인데, 본래적인 자기다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자기다움이나 진짜는 어떤 형태로든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테일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존재하는지는 자기 자신의 표현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기"(자아의 원천) 떄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는 '표현적인 자기'에 의해 자기다움이나 진짜로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젊은이들이 패션에 신경질적인일 만큼 집착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합니다.
얼마 전까지, 예컨대 거품경제 무렵이나 아니면 고도성장기 같은 때에는 꿈이나 목표라고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거나 출세한다거나 하는 좀 더 단순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좀 더 소중한 것'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진정한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가(자기다움)를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일이라는 말이지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답게 사는 것이 훨씬 멋지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베스트 원'보다 '온리원'의 생활 태도인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진짜 찾기는 복잡한 심사에 빠져들게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자신이나 자기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다움을 추구하지 않는 자는 틀렸다거나 자기다운 삶의 태도로 사는 사람이 옳다고 하는 다소 단순한 단정이 횡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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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자살에 실패한 사람 등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대의 병리로 취급하지 않고, 자기실현에 실패한 평범한 사람의 무리로 보지 않고,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라며 잘라 버리지도 않고,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자기다움의 탐구로 내모는 현실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