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마쳤다. 이제는 정말 모든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 경영대 건물에서 수많은 강의를 듣고, 팀플을 하고, 시험도 많이 치렀는데, 더이상 살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들어오진 않겠구나'
군대의 전역을 앞두고서도 '마지막 부식작업'이라며 군생활의 막바지를 감상에 젖어서 보내기도 했었다. 역시 그런 순간들은 수없이 되풀이 된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일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걸 좋아한다. 우리들의 인생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의 대학생활들을 자주 돌아보고 있다.
모든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면서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의 느낌대로, 내가 좋은대로 살아가야겠다. 사람이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며, 그 순간이 좋다면 좋다고 말하고.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나의 생각들을 주저없이 말하며. 그래서 그동안의 많은 일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동네 목욕탕에 가서 따끈한 탕 속에 들어가서 나의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줬다.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 도서관에 가서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빌려왔다. 그래서 아까까지 폴 오스터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을 읽었다.
문득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떠올라, 청취 하려고 해보니 프로그램 이름이 '박혜진의 영화음악'으로 바뀌어서 너무 깜짝 놀랐다. 사정을 알고보니 파업 이후에 김세윤 작가가 진행을 했는데, 파업이 장기화되고 결국 프로그램이 두 달 가까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정상화 되었는데 이주연 아나운서는 출산휴가로 다시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이대로 다시 이주연의 영화음악을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2007년, 나의 대학 시절 초반 부터 늘 함께 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고, 군생활 중에도 언제나 힘을 준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학생 후반부터는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잘 챙겨듣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벽에 이주연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꼭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만큼 감성적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따뜻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가슴이 뜨거워진다. 고요한 새벽에 라디오에 귀를 맡기고 편하게 쉬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아까 도서관에서 국도 후배를 만났는데, 서로 오랜만에 본 거라 너무 반가워서 각자 할 일이 있었는데도 그것도 잊은 채 계속 이야기를 한 것처럼.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들으며, 영화를 보며 대학생활의 끝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모두 사람에 관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