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생즉사 필사즉생
필생즉사 필사즉생 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살고자하면 죽을것이요, 반드시 죽고자하면 살것이다.
해군 기초교에서 반드시 외워야 했던 '해군의 다짐'이라는 것이 있다.
해군의 다짐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하나. 명령에 죽고사는 해군이 되자.
둘. 책임을 완수하는 해군이 되자.
셋. 전기를 갈고닦는 해군이 되자.
넷. 전우애로 뭉쳐진 해군이 되자.
다섯. 싸우면 이기는 해군이 되자. 이상
해군 복무를 마친지도 2년이 넘었다.
기초교에서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목청이 찢어져라 해군의 다짐을 외우면서
밖에 나가서도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더 이상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도 아니고,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새벽 하늘을 향해 울려 퍼졌던 해군의 다짐 속에 담겨져 있던 뜨거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기초군사학교에서 나의 '개인 수양록'에 적었던 글들을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2009년 3월 12일 입소 10일째
만약 내가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서도 5시에 일어나고 11시에 취침하는 생활을 유지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걸 이뤄내는 삶을 가지겠지.
2006년에 신림고시촌에서의 생활이 떠오른다.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가기 위해서 새벽 3시반, 4시에 일어나서 집을 나서곤 했는데.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부지런했다. 2007년엔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조금 많이 게을러졌지만.
꼭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걸 모두 이루고 말테다.
2009년 3월 13일 입소 11일째
내가 정말 해군에 오고 싶어서 온것일까. 나는 해군에 왜 온것인가.
바다가 좋아서 왔고, 배를 타고 싶어서 왔다.
해군에 지원해서 온 이상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이 또한 나의 신념이다.
어느 한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항상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믿음. 좋은 결과가 따르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는 믿음. 나에게 반드시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2008년 3월 19일 입소17일째
#옛날에 나를 무인도에 혼자 내려놓으면 나는 자신있게 나 혼자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절대 그럴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맛 보아온 음식들, 지금까지 만나온 나의 사람들, 절대 그들과 떨어질 수 없다. 너무 보고 싶다. 그들과 함께 숨쉴 수 있는게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내 주위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 까지 모두 소중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좀 더 잘하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선배들에게도. 정말 다 사랑한다.
2008년 3월 27일
통합평가를 실시했다. 그 동안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잘해보자라는 생가으로 최선을 다해서 평가에 임했다. 대대장님이 오셔서 인원점검을 했다. 순간 4주전 입교식이 떠올랐다. 그 때는 이 연병장에서 전투복을 입고 서있었는데... 시간이 모두 흐르고 평가를 받고 있구나..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 대대장님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4주간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듯 정말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병! 김! 선! 일!" 그렇게 난 해군이 되었다.
2008년 3월 28일. 기초교 수료
이윽고, 한달이 모두 지났다. 3월 3일 추운 날씨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군인이 되기 위해 들어왔고,
한달이 지나서 이병 계급장을 가슴에 달고 말았다. 정말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20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 한적도 없고, 이렇게 육체적 고통을 겪은 적도 없다.
군대가 편해졌다고들 하지만 군대는 군대다.
하루하루를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밝게 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기쁘다. 큰 일을 해낸 것 같기도 해서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정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만큼 늘 긴장을 하고
본연의 임무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서 나의 지위 신분에 맞게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모두 추억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