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가을 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 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이덕규, 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