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사무실에 졸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별다른 어려운 과정 없이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졸업 신청서를 작성하고 나서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 제출하기만 되는 것이었다. 내 졸업신청서를 받아든 직원 분이 취득학점확인원을 인쇄하시더니 몇 가지를 체크하는 듯 보였다.
"네 모두 확인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라..수고하셨다는 말이 뭔가 가슴을 벅차게 했다. 졸업신청서를 만들어온 것에 대해 수고했다고 말해 준 것이 분명했지만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그 동안 대학생활 하느라 수고했다는 말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졸업신청이 그렇게 간단히 끝나고 나니까 이젠 약 세 달 앞으로 다가온 졸업이라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
'나는 지금까지 대학생이었구나. 이제 졸업을 하면 나는 대학생이 아니구나.' 얼마 크지도 않은 학과 사무실에서 걸어나오면서 별 생각을 다했다. 심지어 아직은 졸업을 하려면 꽤 시간도 남았는데 말이다. 이젠 이 블로그에서 '대학생활이야기' 카테코리에 올려오던 시시한 일상 이야기들은 새로운 방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최근에 나의 자신감은 저 밑바닥에 붙어있다. 여기저기 가고 싶은 회사를 탐색해보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서 이력서를 써야 하는데, 자격증, 경력, 수상 경험 란의 비워져 있는 칸의 크기는 내 마음의 공허함을 앞지른다. 4년 간의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남에게 보일만한 이렇다 할 이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정말 진지하게 내가 대학생활 동안 해 온 것은 무엇일까. 많은 강의를 듣고, 많은 팀플과 발표를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대학생활에 쌓아온 자산과 그것들이 사회에 활용되어질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그런데 나의 대학생활을 너무 즐거웠다.
그 때문에 아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벅찼던 것 같다.
1,2학년 때는 일 년에 200편이 넘는 영화를 보면서 수많은 삶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4년 동안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책은 400권을 넘어갔고, 그 안에 담긴 지식, 지혜들과 소통을 해보고, 팀플을 하면서 정말 좋은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맛 보고, 발표를 하면서 청중과 교감을 하는 짜릿함을 느끼고,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도서관에서 밤을 새면서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서 나눠주는 간식을 받아 먹고, 내가 관심 가지고 해보고 싶어했던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그 분야에 더 한발짝 나아가 보기도 하고, 콜드스톤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에 대한 나의 철학을 만들어 보고, 정신분석, 심리학, 인간관계론 강의를 수강하면서 자신에 대한 탐구를 해보고, 유럽 탐방 15일, 일본 워킹홀리데이 10개월, 삿포로대학 단기교류 등 해외에 나가보면서 내 시선을 세계로 넓히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각자의 취향과 서로 가지고 있는 다른 세계를 공유하고, 내 컴퓨터의 기억장치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레포트 자료, 발표 자료와 지나온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수만장의 사진들, 싸이월드,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올려져있는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대한 일기들과 여러 발자취들, 그리고, 국제도우미를 하면서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일본 등 모든 대륙에 걸쳐 300명에 가까운 전세계 친구들을 사귀었고..4년의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은 대학생이 아니면 해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시간은 흘러왔고 나는 돌아온 시간을 바라본다. 내가 지나온 대학생활을 정리해보는 것들도 좋을 것 같다. 잃은 것들과 얻은 것들의 사이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서있어야 할까
2012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