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동료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봄이 왔다는건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찬바람이 여간 멈추질 않아서 여유로이 산책을
하기보다는 빨리 따뜻한 사무실에 들어가고 싶은 날씨였다. 그런데 진짜 봄이 온거 같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도 더 이상 바람이 차지 않다.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인턴생활을 한지도 곧 세달이 채워져 간다. 많은 걸 배우며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아주 좋은 경험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좋은 날씨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 같다. 곧 짧은 봄이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테지만 이 짧은 봄은 우리들에게 많은 걸 의미한다.
나에게는/
하고 싶은게 부쩍이나 많아지는 봄이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배우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등 마음 속에 위시리스트가 빈틈없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 실현가능성을 따져본다면 제한된 시간과 비용과 혹은 마음의 용기 때문에 위시리스트를 얼마나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대단히 미지수지만 위시리스트가 있는 것 자체에 마음이 놓이는 요즘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오블리비언 Oblivion'에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 더해서 우리가 바라는 것 또한 곧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놓는 게 쿨하지 않고,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때론 부끄럽게 보여지는 요즘 세상이지만,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더
쿨하지 않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이건
또 내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쓴 '믿음'에 관한 글과도 연결된다. '믿는 사람에겐 존재한다'는 것.
내 블로그에서 내 글들은 끊임없이 '연결'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언젠가 본 영화, 언젠가 읽은
책, 언젠가 만난 사람, 언젠가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들은
쉴새없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예를 들어 이 글이 맞닿아 있는 내 삶의 접점을 말해보자면,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봄을 산책한 일 - 우린
무슨 얘기들을 나눴지 - 이런 날씨 좋은 날 소풍 가고 싶다
- 그러게, 정말 봄이 왔네. 좋다 - 작년에는 일본, 독일,중국
친구들과 어린이대공원을 벚꽃놀이를 갔었지 - 중학교
때 재밌게 봤던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벚꽃이 생각나네 - 그 애니메이션의 음악도 좋았는데 - 벚꽃이 아름다웠던 애니메이션은 '초속 5cm'라는 애니도 있었지 - 애니라,, 친구 중엔 그림을 잘 그리는 애가 있는데 - 그 친구는 뭐하며
지내나'
글이 지니는 가치에 대하여
애초에 인간은 소리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 언어를 만든다. 단순한 글자에서 단어로, 문장으로 그리고 글로 발전하게 됨과 동시에 우리 인간은 과거로의 연결통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봄꽃 산책으로 가볍게 시작한 문장이, 또 이렇게 하나의 짧은 글이 되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내 머릿 속에 스친) 예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으로 연결지어 이 연결을 마무리해보자.
삶은 결과를 위한 끊임없는 추구가 아니라 조각을 이어 만든 퀼트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각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서로 한땀한땀 꿰매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사랑과 번영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엮어나가는 관계들이 아름답고 끝없는 패턴을 이루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과 지금 아는 것들은 , 당신이 직접 혹은 책과 음악, 이메일, 문화 등을 통하여 당신의 삶 속에서 상호작용한 사람과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산물이다. 풍요가 풍요를 불러들이고 있을 때 누가 많이 받고 누가 많이 주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다. 오늘부터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사람과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인간관계를 넓혀나가겠다고 결심하라. 어떻게 삶을 살고 싶은가? 당신의 퀼트에 어떠너 사람을 엮어나가고 싶은가? 아마도 일이나 회사나 멋진 신기술 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몫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Never eat alone> 키이스 페라지 , 탈 라즈 지음 |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옮겼을 때도 4월의 봄이었다. 2년 전의 봄. 이렇게 올해의 봄과 2년 전의 봄은 또 연결되는구나.
그리고 또 그로부터 2년 전의 봄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2009년 4월 11일 '병영일기' 중 http://seonil.egloos.com/9936322 |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2013년 4월 17일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