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길을 열다

<리더십과 동양고전 >에세이

상생의 길을 열다
우린 모두 하나로서 함께 살아간다

김선일

경영학과에서는 팀프로젝트를 자주 수행한다. 예전엔 팀프로젝트를 하면 능력 있는 조원들 속에서 묻어가곤 했지만 어느덧 나도 고학년이 되고서 조장을 맡게 되는 일이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리더십을 발휘해서 팀을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팀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조원들 모두가 좋은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고, 그 성과라는 것은 좋은 학점이다. 같은 팀이 되었으므로 팀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한 사람이 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나오도록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영학과에서 수많은 팀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언제나 100%의 시너지를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다. 팀원 개개인의 능력은 모두 제각각 이었고, 팀프로젝트에 대한 관여도 또한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는 반드시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반면, 누군가는 굳이 좋은 학점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팀원들간에는 보이지는 않는 벽이 만들어지고 결국 소수의 사람이 팀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구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대개 팀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팀원 모두가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같은 점수를 공유하게 된다. 만약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을 때, 과정에 있어서 불공평함은 있었지만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었으므로 이것은 상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오는 과정에서 편법과 반칙이 있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지상주의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작용해왔다.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편법과 반칙이 용인되다 보니 그로 인해 균등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정당한 몫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럼 과연 우린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까.

상생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상생의 길이란 함께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밟고 지나감에 따라 우리의 발자취가 그려지는 곳이며, 그것은 우리가 걸어 온 과거이자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미래이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것이다.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발걸음은 빠르고 누구의 발걸음은 느리기 때문이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은 뛰어난 반면, 다른 한 사람의 능력은 뒤쳐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을 가진 아이가 있는 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있는 것과 같다. 대기업은 좋은 물건을 개발해서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부족한 물적, 인적 자원으로 인해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조직은 다르기 때문에 함께 걸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정말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모두가 내일을 향해 걸어갈 때 항상 같은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한다기 보다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항상 잘 따라갔다. 초등학교 2학년, 구구단을 외울 때도 나는 반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잘 외웠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구구단을 쉽게 외우지 못해서 쩔쩔맸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구구단을 외웠던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구구단을 왜 외우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반의 담임선생님께서는 반에서 구구단을 잘 외우는 친구들과 외우지 못하는 친구들로 나눠 서로 짝을 만들어주셨다. 잘 외우는 친구들이 한 사람씩 맡아서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때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이 친구들을 알려줄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이 들었다. 나도 특별한 요령 없이 반복을 통해 외우기만 한 것뿐이었으므로 그걸 내 짝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정말 난감했다. 실제로 나는 가르치는 걸 무척 어려워했고 결국 내 짝이 내 생각대로 쉽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자 난 어린 나이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때 정말 내 짝에게 구구단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와 내 짝은 힘을 합쳐 열심히 외웠다. 결국 내 짝은 구구단을 모두 외우게 되었고,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의 우리들은 그렇게 상생의 길을 걸었다.

상생의 길을 걷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위해서 보폭을 좁히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그 친구가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거나 등을 밀어주는 방법이다. 보폭을 좁혀서 걷는 것은 발걸음이 느린 친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고,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린 세상을 더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간다. 따뜻한 세상이란 사랑이 있는 세상이다. 서양에서는 예수가 사랑을 말했고, 동양에서는 공자가 ‘인仁’으로서 사랑을 말했다.

공자는 인仁이란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원칙이고 구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공손함, 관용, 신뢰, 영민, 은혜, 존경, 충성 등의 덕목을 실천하는 것으써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 인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인으로써 정치를 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라는 맹자의 인정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유학에서는 상생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으로서 수신을 강조한다.

인생은 무대와도 같다. 사람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많은 관계들을 형성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지 않으면 관계들이 삐거덕거릴 것이다. 특히 천인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자연의 관계, 혹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 심신의 관계라고 할 수 잇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 간의 관계 등을 잘 맺어야 한다. 수신을 통해 이 세가지 관계가 바르게 서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자왈 VS 예수가라사대)

유교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갈고 닦는 것(修身養性)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지도자와 기업가도 사회와 기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서로 더불어 잘살 수 있을 때에만 사회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점이다.

나아가 서로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공자는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을 말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러한 황금률은 유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중요한 교리로서 존재한다.

스스로 즐겁고 기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불교)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당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마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독교)

위의 교리들은 우리가 상생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진리로서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수시로 잊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곧잘 드러난다. 아직까지도 우리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너무 쉽게 던져버리지만 쓰레기를 줍는 것은 어려워한다. 자신이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을 경쟁에서 밀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존중 받기 원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창작물의 권리는 너무도 쉽게 무시해버린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황금률 깨트리기 행동은 늘 미묘하게 작용한다. 어려운 역할은 조심이 피해가서 자신은 좀 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길 원한다. 그렇게 모두가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서 공동 결과물의 좋은 성과를 원하다 보니 기대보다 낮은 결과를 접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쉽게 깨어지고 있고, 결과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이야기 하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라고 하였다. 인간관계에서의 황금률이라는 것은 상호간에 지켜졌을 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상대방이 그러한 나의 모습을 알아주지 못해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모습이다. 팀프로젝트에서 남이 맡기 꺼려하는 것을 솔선수범으로 맡아서 하려 한다면, 모두가 자신이 그런 모습을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더 나은 미래와 화합을 위해서 즐겁게 일을 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상생의 길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은 남아있다. 길이라는 것은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남자와 여자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1%와 99%의 갈등, 사회 양극화, 등 소통 부재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이 시기야말로 상생의 길을 열어나갈 때다. 또 상생의 길을 앞장서서 열어나갈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은 즐거워하면 백성들 또한 윗사람의 즐거워함을 함께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들 또한 그 윗사람의 근심을 함께 걱정한다. 천하가 다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가 다같이 근심하는 것을 함께 걱정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할 사람이란 없다. (맹자, 양혜왕하)

우린 또한 우리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상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스스로에게 공정의 잣대를 먼저 갖다 대고, 주위의 약자를 위해 손을 내밀어 주고, 타인을 존중하고, 자연을 소중히 하면서 우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진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가정, 학교, 국가, 전세계, 모든 자연과 우주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의 길을 걸어나갈 때 우린 더욱 따뜻해진다. 강과 바다가 둘이 아니고, 산과 들이 둘이 아니듯, 인간과 세계가 둘이 아니며 너와 나도 둘이 아니다. 우린 모두 하나로서 함께 살아간다.

「공자왈 VS 예수 가라사대」 차이더구이 지음, 知와사랑

2012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