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비 / 쿠리하라상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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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8일 (수) 태풍
반가운 비다. 8월 한 달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더니만 오늘은 여름의 끝을 알리려는 듯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에서는 가을의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계절의 시작과 끝은 비로서 알게 되니까.
비도 오고 해서 하루 종일 집에 있을까 생각했지만 모처럼만의 휴일이기도 해서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주쿠에 영화를 보러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아니다. Mr.children의 스페셜 영상 같은 것이다. Mr.children : Split the different
Mr.Children과 일본의 여름을 줄곧 함께 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안에서는 항상 미스터칠드런을 들었고, 가끔 혼자서 노래방에 가서 미스터칠드런만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Mr.children과 함께 했던 여름도 지금 내리는 비로서 끝나버리는 건가.
가을이 되면 Spitz를 더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가을엔 Spitz가 어울린다. 하늘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데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은 Cafe Veloce 카페 벨로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녁 9시 4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집에서 1시에 나왔다. 앞으로 7시간은 더 기다려야만 한다. 7시간 후에 시작하는 영화를 위해 하는 일 없이 기다리는 건 처음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처럼 카페에 앉아서 창밖의 비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주위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영화를 보러 들어갈 생각이다.
일본은 카페 문화가 매우 발달되어 있어 어디를 가건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쉴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의 나처럼 시간을 때우는 듯 앉아있는 사람도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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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쿠리하라상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쿠리하라상과는 정말 마음이 잘 맞기도 하고, 삶에 대한 생각의 접근 방식이 비슷하다. 나이는 나보다 3살 많은 형이지만 정말 편한 친구같은 느낌이다.
나 : 쿠리하라상, 저도 벌써 일본에 온지 5개월이 되가네요. 5개월 동안 일본에서 생활해보니 정말 제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아요. 그래서 지금 너무도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보니 요새 들어 한국에 돌아가서의 일들이 걱정이 된답니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 대학에 다녀야 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길을 걸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경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고요. 어쩌면 그런 생활에 지쳐서 일본에서 있었던 시간들이 너무도 그리워지면 어떻게 하죠? 지금 현재는 너무도 재미있지만 지금의 시간보다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미래의 일들이 걱정하고 있다니.. 너무도 바보 같은 소리지만 지금의 제 심정이 그런걸요.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야마구치 상을 보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해요. 낮에는 일이긴 해도 자기가 좋아 하는 요리를 하고, 저녁에는 밴드연습을 하면서 한달에 한 두번 정도는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말이죠.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데 회사에 들어가 샐러리맨이 되면 그렇게 사는게 어렵게 되니까,,,
栗原 : 지금의 시간이 즐거우면 그걸로 된거야, 이치. 이치군이라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분명 지금처럼 즐겁게 살수 있을거라고 믿어. 한국에 돌아가서 일본이 그리워져서 일본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냐고? 그땐 다시 오면 되는거야. 그리고 이치군은 예전에 나에게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었잖아. 지금 이치군이 일본에 있으면서 지금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생활이 본인과 어울린다고 생각하겠지만, 혹시 또 모르지, 미국에 가면 지금보다도 더 즐거운 삶을 살지도.
나 : 일본에 다시 오고 싶다고 해서 다시 온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걸요. 대학교 졸업도 해야하고, 취직도 해야하고.. 그 모든걸 포기하고 제가 일본에 오고 싶어서 일본에 왔는데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요.
栗原 :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 하니까. 실제로 실패는 두려운게 맞기도 하고. 나도 실패를 두려워해서 마음에 들었던 여자애에게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한걸. 하지만 실패가 두렵기는 해도, 실패를 두려워해서 무언가를 하지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더 가슴 아프고 아쉬운 일인 걸. 혹시 그 여자애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말이라도 건네볼 걸 그랬나? 라는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지.
나 : 저도 일본에 오기 전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부족한 일본어 실력 때문에 사람들과 말도 안통하고, 일자리도 못구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이 정말 컸어요.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요. 그런 이유들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일본에 가는 것을 반대했었거든요. 하지만 용기를 내서 일본에 왔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있는 걸 보면.. 역시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한가 봐요. 지금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즐거운 삶도 찾아오지 않겠죠?
栗原 : 정확히 맞는 말이야. 인생에서 용기를 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실패는 두려운 것이니까, 실패를 두려워해도 돼. 하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실제로 실패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실패에서 분명 배우는 것도 있고, 우리들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니까.
그러니까 이치군, 지금이 즐거운 만큼 지금의 시간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지금껏 용기를 내서 결정했던 순간들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간다면, 반드시 즐겁게 살 수 있을거야/
실패는 두려운 것이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도전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즐거움이 달라지는 사실을 어젯 밤 쿠리하라상과의 대화에서 몸소 깨달았다.
2010년 9월 8일 신주쿠의 카페 벨로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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