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7일에 서있는 내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글


2010년 12월 17일 일기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이 시간 이후로 집어치우도록 한다. 남들은 공부 외에도 운동도 잘하고, 남달리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는데ㅡ 난 그 동안 바보처럼 공부만 해온걸까.와 같은 생각들.

내가 살아온 22년의 시간은 절대 헛되게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 밖에 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내가 투자하고 노력을 해온 것들이다.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노력해 온 순간들은 여전히 내 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것을 헛되게 보내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고귀한 시간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시간에 대한 후회들은,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여러개의 표면으로 되어있다고 한다면,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중학교, 고등학교의 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학창시절 공부를 했던 것들이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부속체로서 맹목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주위의 기대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력했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순간 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맹목적인 경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나로서는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순간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나를 부정하려 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기로 한다.

히로가 열심히 야구공을 던지면서 노력을 하는 것과 히데오가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면서 노력을 하는 것과, 그리고 세이지군이 열심히 바이올린을 만들고 시즈쿠가 밤 늦게도록 글을 써내려갔던 그런 노력들과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노력은 일맥상통한다. 어느 하나 고귀하지 않은 노력은 없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을 만나기도 하고, 운이 좋게 더 빨리 성공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충분히 부러워 해도 된다. 하지만 부러워하는 대신, 나 또한 내가 살아온 삶의 시간들에 대해 부끄러워하면 안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내가 노력을 했을 때는 나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에 노력을 했던 것이고, 그런 노력을 부끄러워 하는 것은 내 꿈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힘들게 수험공부를 해왔고 노력을 해왔다. 사람은 서로가 너무도 달라서 그 결과물에는 차이를 보일지 언정, 노력을 하는 순간의 고귀함은 세상의 모든 고귀함과 가치를 동일시 한다. 나 자신을 믿고서 지금까지 노력해온 나 자신과, 또한 지금도 과거의 시간 속에서 노력하고 있을 나를 비롯해 다른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순간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2010년 12월 17일의 시간 속에 서있는 나 자신의 모습은, 과거의 자신들에게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미래의 나 자신에겐 더욱 밝은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위치, 곧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다. 현재라는 시간은 나라는 사람이 꿈꾸어 온 이상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만으로도 매우 부족한 시간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2010년 12월 17일에 서있는 내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글이자 오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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