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밤을 지새며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