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다르고 그걸 그려 나가기 위한 방법도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와 너는 둘이 아니지 않은가. 저마다 다른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서 더 멋진 세상을 만들어가지 않겠는가.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 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꿈의 대화' 중)

  정말 좋아하는 형,동생과 함께  맥주 한 잔, 건대 부어치킨 2012년 2월 15일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이음에 관한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시작해야되는지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글을 이렇게 써내려가기 시작한 다음 이 글이 끝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 글이 끝맺음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글이 써내려가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글쓰기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일단은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삶의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되는 '이어져 있음'에 관한 것이다. 어제 그러니까 2월 14일 저녁을 기숙사의 친구와 함께 먹으면서 하나의 대화 주제를 가지게 된다. 수강신청 기간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라서 모두가 시간표를 만드느라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원래 2학점이었던 '글쓰기'과목이 이번 학기부터는 3학점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져나갔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관찰되어지는 자그만한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실에서 그 친구는 학교 행정 당국의 부족한 공지, 학생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는 처사, 학생회 역할의 필요성 등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나는 그에 대해서 친구에게 반론아닌 반론같은 성격의 질문을 해가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초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3시간 반동안 이어졌고 그러면서 대화의 주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대학은 무엇이고 대학생은 누구인가, 즉 우리들은 누구인가로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현상)과 대상을 받아들일 때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과 사상에 입각하여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것은 곧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힘의 근원이 된다.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진보해 나간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더 건강한 사회다. 다양성을 해치려는 세력마저 또 다른 다양성으로 인정을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다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모두가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면 개개인의 존재 방식은 자꾸 억압받게 되어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을 표출하게 된다.

즉, 모든 객관적 현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받아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어제 대화의 핵심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소에 그러한 생각을 쉽게 망각하고 살아간다.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거지?' '어떻게 그 사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등등 우리들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주파수의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다양함' 또한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세력이 '다양한 다양성'보다 더 크다면 정말 '다양성'이 억압받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가 못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제 친구에게 '나'라는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객관적 사실을 접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지금까지 쭉 내가 살아온 날들에 이야기가 되었다. 친구에게 계속 말하면서 처음에 말할 의도가 없었던 나의 과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않았더라면 전혀 연관성을 가질 수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았을  개인적 역사가  같은 하나의 생각 아래 묶이고 있었다. 이야기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작년 대학생활까지 이어져와서 '환경분석론 수업의 교훈','불교철학 교수님의 가르침','인적자원개발론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즐거움'으로 계속되었다.

길고 긴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방에 올라갔고 나는 다시 한번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 시간대에서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같은 뿌리를 두고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 뿌리라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고 그건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동일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애기를 적어보자.

개인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와 고민들은 사실 애초에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내가 요새 가장 문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마지막 대학생활을 앞두고 다가오는 취업 준비를 비롯한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민을 안고있다. 난관을 잘 헤쳐나가는 내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1년 동안 나의 모든 미래가 결정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나는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최신 뉴스기사들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 때 우연하게도 나의 병영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모든 병영일기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찾아 읽는 일이 많다.) 나의 군생활 일기 중에서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은 상병과 병장 때의 부분이었는데, 어제는 희한하게도 좀 더 오래 전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삶은 늘 언제나 이런식으로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재생된다.)

그리고 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 당시에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사실들에 대해 지금에서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09년 4월 27일 http://seonil.egloos.com/9967345
  "책 한자를 더 읽고,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면의소리는 곧 나의 글로써 표현이 된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도록 하자. 글은 어떻게든 써지는 건가보다. 인생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인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로 내 인생을 꽉 꽉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게 만든다. 그저 그런 사이의 사람이 부탁했으면 정중히 거절했을 일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탁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더라도 모두 들어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계속해서 사랑하고 볼일이다. 참 골치아픈 인류애다. 사람을 사랑한다니.. 그래서 다들 보고싶다. 당신들과 함께 숨쉬는게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타인의 인정과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걸 잊지말자. 

09년 4월 26일 http://seonil.egloos.com/9967342
"깨어있다는 생각. 눈이 깨어있고, 귀가 깨어있고, 그리고 내 정신이 깨어있고. 늘 깨어있자. 세상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자. 살아있음을 느끼자."

09년 4월 23일 http://seonil.egloos.com/9967340
가장 최악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나. 한겨레 신문과 씨네21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는 느낌이다. 그저 나하나만 잘 살자고 살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 내 깊숙이 진보라는게 자리잡았던걸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은 진보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러는 걸까.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이건 인간애다. 다 같이 잘 살아보자에서 출발하는 그런... 
나란 사람 철저히 중간에 서려는 것 같다. 무섭고 잔인한 지성인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모든걸 희생하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야. 나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내 마음가는 대로 날 완성해가며, 세상의 모든 존재형태(방식)을 한없이 존중한다. 기형도로서의 삶도 멋지고, 할리데이비슨족들의 삶도 멋있고, 운동선수의 삶도 멋있고,. 그래 된장녀와 된장남의 존재 방식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다름의 인정이다. 완전한 인정이다. 세상에 절대기준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인정은 어디까지나 신념이 존재하는 인간에 한해서다. 자신의 행동과 말과 존재방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만한 신념. 굳이 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알고 있어야 된다. 
사랑한다. 내 삶과 내 존재를 사랑한다. 그리고 살면 살아갈수록 명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멋지게 만들어 갈 것이다.

09년 4월 11일 http://seonil.egloos.com/9936322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글쓰기의 위력을 실감한다. 내가 쓴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당분간은 일기를 온라인에 옮기는데 좀 더 치중하자. 그걸 통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있다. 너무도 재미있다. 내가 썼던 글을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나란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나란 사람은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지금은 매우 기쁘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감이 충전된다. 부드럽게 나가자. 
  그때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나란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처럼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자. 그 범위는 상상력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글쓰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쩌면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을 바꿀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기표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기표는 기의를 모두 표현해낼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의 생각들(기의)이고,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최대한 모두 끄집어내어서 나에게 허락된 능력을 사용해 표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함정에 빠지지 말도록 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씨연습이 아니라 글연습이니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의 핵심은 속뜻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부터 잊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
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09년 1월 19일 휴가를 나가서 (3년 전의 내가 쓴 글)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꿈을 꾸는 듯한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일어났다. 전날 밤 인터넷으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종로의 서울극장에 예매를 해놓았다. 형 집에서 9시정도에 빠져나왔다. 날씨가 꽤 따뜻했다. 종로까지는 지하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생각했다.일단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노량진에 거의 도착해서 며칠전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대비강의를 듣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고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가장 즐거운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나의 베스트프렌드! 너무 기뻤다. 거의 2년만에 처음 본것이니. 그 동안엔 그 친구의 연락처가 바뀌어서 연락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밝았고 의욕도 넘쳐보였다. 우린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핫초코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초스피드로 나누었다. 그친구나 나나 말이 엄청빠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된 이후로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 정신이 없을정도로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약 한시간 동안 온갖 주제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시간이 1분 처럼 느껴졌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둘 모두는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더 성장한 모습에 서로 감탄을 했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등학교 그 때의 모습, 여전히 변하지 않고 너로 남아줘서 고마워!' 대화 속에 오갔던 친구와 나의 고민들이 모두 잘 해결되길 바랄뿐이다.

영화 시작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급히 극장으로 갔다. 역시 오랜만에 가보는 종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고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어제 책을 사기 위해 학교 앞 서점을 갔지만 결국 고르지 못했다. 어떤 책을 사야 가장 돈이 아깝지 않고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의 완벽주의나 시간적 효율에 대한 강박증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비카인드 리와인드 영화는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 주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영화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정확히 그것은 아니지만 내가 포착한 것은 그것이다. DVD의 날카로운 화질과 고감도의 음질을 비디오테이프는 절대 따라갈 수 없지만 그런 DVD조차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채워지지 못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든 옛것에 대한 따뜻함이든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든. 세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헛 될수도 있다. 그 영화를 보고서 종로거리로 빠져나왔는데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겨울인데도. 바로 가방안에 있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가 보고 있는 영상에 배경음악이 흘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완벽한 해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해답에서 좀 비껴나와 인생을 즐기는 태도. 수많은 영화에서 보고 깨달았던 내용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That's why I love movie.

 그래서 난 서점으로 갔다. (그래서 난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어제처럼 완벽한 책(완벽한 비디오)만을 찾으려 하지 않을거란 다짐을 했다. 쭉 훑어봤다. 마음이 이끌리는 분야(장르)쪽으로 갔다. 읽고 싶은 책(보고 싶은 비디오)을 집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카운터에가서 책 값을 (비디오 대여료) 계산했다. 서점(비디오 대여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어젠 1시간 넘게 서점에 있었는데도 책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고를 수 있었다. 신중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을 골랐고 그 책에서 인생의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가지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어찌되었든 한 권의 책은 세상을 담고 있고 말이다. 나중에 내가 직업의 선택에서도 이런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완벽한 직장, 연봉도 높고 복리후생도 좋고 일은 어렵지 않고 명예도 가져다주는 직장. 그런 직장을 찾아헤매다가 난 서점에서 처럼 방황만 하다가 서점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선 눈높이를 낮추라고들 말하지만 눈높이를 낮추어선 안된다. 그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꿈을 낮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높이를 낮추다기 보다는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깨야한다는 것이 더 맞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고해서 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고해서 신이내린직장이라 불리는 몇몇 직장들이라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나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좋은작품을 읽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을 많이주는 기업이라고 해서 나와 맞지않으면 그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선택에 관한 문제)의 답은 나 자신으로 통한다. '완벽'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는대로 즐겁게 가야한다. 영화 한편이 나의 생각을 이렇게 확장시켜줬다.
오랜만에 도심을 걸었다. 종로-청계천- 을지로-시청-남대문시장-서울역까지. 예전에도 한가로운 날이면 자주걸었던 코스다. 길을 걷다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이 보인다.종로와 을지로의 높이 솟은 회사의 빌딩들과 세련된 회사원과 청계천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과 들과 남대문시장의 언 손을 녹이는 상인들과 서울역의 노숙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아우르는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편견없이 모든 세상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2009년 1월 19일 군생활 일기, 휴가를 나와서
 http://seonil.egloos.com/9901021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군복무 시절 좋아했던 음악들

군복무 시절 좋아했던 음악들

대충 얼렁뚱땅 중학교 때부터 군생활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내 군생활 중의 음악에 대해 말하라고 했을 때 가수 김광석을 빼고 말할 순 없다. 훈련소 시절, 밤 늦은 시각 연병장에서 고된 얼차렷을 받고나서 입대 후 첫 배급 받은 건빵을 눈물을 흘리며 먹고 있을 때, 어느 소대장님이 색소폰으로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해주었는데, 이건 건빵을 먹는 건지 눈물을 먹는 건지  콧물을 먹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고, 목은 콱콱 막히고, 숨은 가빠지는데..그래도 별사탕은 어찌나 맛있던지...그 설탕덩어리 별사탕이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지던 그날 밤..아...

원래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긴 했었는데 군시절에 정말 많이 듣곤 했다. 군대 후임과 함께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기 위해 휴가를 나갔을 때도 3박 4일 내내 김광석의 노래만 줄곧 들었다. 원래 군대에 전자기기를 반입해선 안됐지만 일본어 공부를 하기 위해 들고 왔던 사전에 음악을 넣어서 몰래 몰래 듣곤했다.

내가 어느 정도 짬이 됐을 때, 신병이 우리 내무실에 들어왔을 때는 '이등병의 편지'를 들려주면서 군생활 힘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는데.. 아마 그 후임은 자기를 놀리는 거라면서 엄청 싫어했으려나 ..

나의 중학생 시절 쥬크박스

나의 중학생 시절 쥬크박스

오래 전에 뮤즈캐스트라는 음악 사이트가 있었는데 중학교 때 제일 많이 이용했던 사이트였을 것이다. 그 안의 '쥬크박스'를 한 12년 만에 살펴보니 이런 노래가 담겨 있더라. Britney Spears, Christina Aguilera, N Sync, Backstreet boys, Westlife를 아마 제일 좋아했었다. 그리고 Aqua도 좋아했었다.

중학교 때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하교하곤 했었다. 그게 2000년 이었으니까 12년전이네 벌써. 중학교 때부터 한국 가요를 안듣고 외국 노래를 즐겨들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롤링페이퍼를 보면 친구가 '한국 가요 좀 들어라!' 라고 글을 써주기도 했었다.

팝 아이돌 음악들이 조금씩 질린 뒤에는 Mariah carey, Whitney Houston,  Michael Jackson 등의 노래를 많이 들었었지. 기회가 되면 집에 있는 음악CD들을 좀 더 뒤져서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좀 더 알아내야 겠다.

나는 무슨 음악을 좋아했었을까

나는 무슨 음악을 좋아했었을까

어떤 음악을 처음 딱 들었을 때 이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서야 가사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노래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멜로디다. 느낌이 팍팍 전해지는 음악들이 있는 것이다.(다들 그렇겠지)

나는 또 항상 최신곡들을 들으려고 노력을 한다.  가요차트도 열심히 챙겨듣기도 하고, 빌보드차트의 큰 흐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다.

하지만 얼마전 한 친구가 자기는 10년 동안 좋아한 곡들을 모아왔다는 말을 내게 했다. 나는 MP3안의 음악들을 주기적으로 갱신했기 때문에 예전의 노래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내가 예전엔 주로 무슨 음악들을 많이 들었었는지 희미하게 기억은 해도 그 곡들이 정확히 어떤 곡들이었는지 모른다. 힘든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에 힘을 준 음악도 있을 것이고, 군생활 때 힘을 준 음악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름 사진은 열심히 모아왔지만 음악은 그렇게 모아오질 않은게 아쉽기만 하다.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워크맨을 산 이후로 등하교 할 때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그때는 '소리바다'를 이용해서 엄청난 양의 MP3를 모으기도 했었는데. 하하하하하. 소리바다도 멀고먼 역사 속 유물이 되었구나.

그 때 그 시절 즐겨듣던 음악들을 다 기억해내서 다시 '지금 시간'으로 불러낼 순 없어도 예전에 인터넷 음악 사이트들에서 '내 앨범'에 담았던 곡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조금이나마 찾아낼 수 있었다. (뮤즈캐스트, 쥬크온, 뮤크박스, 등등등 지금은 통폐합된 음악사이트들이 참 많았었는데.. 그것도 모두 무료였는데!!)

참 이럴 때마다 인터넷은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주지 않는가. 그럼 지금부터 내가 예전에 무슨 곡들을 즐겨듣고 좋아했는지 예전의 '쥬크박스'들을 살펴봐야지

특별한 하루가 모여 특별한 일주일이 되고, 특별한 일주일들이 모여 특별한 해가 되는거구나

2012년 2월 13일 국제도우미 작업

국제도우미 동생과 함께 오후 1시부터 만나서 오후 내내 작업을 했다. 일을 하는 것이지만 정말 즐겁구나. 일하다가 먹는 짜장면은 꿀맛이구나.

하루하루의 기록들을 더 열심히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렇게 소소한 일상들도 기록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번 해는 특별한 한 해니까. 마지막 대학생활이니까!

한 해 한 해가 특별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2010년은 일본에서 살았던 해, 2011년은 3년만에 대학에 복학했던 해, 2012년은 마지막 학생의 해. 한 해를 특별한 해로 생각하려는 것처럼 하루를 특별한 하루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겠구나. 특별한 하루가 모여 특별한 일주일이 되고, 특별한 일주일들이 모여 특별한 해가 되는거구나.

내 인생이 지구에 더해짐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인생

중학교 때 휘트니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이란 노래를 처음 듣게 된 이후로 그녀의 노래에 빠져 지냈던 날들이 있었다. 그녀가 죽고나서야 그녀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가 멋지게 재기해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녀는 떠나갔기 때문에 그녀와는 더 이상 지구의 공기를 함께 나눠마시진 못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우리 귓가에 영원토록 맴돌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 가치가 손상되거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있다면 나의 인생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처럼 내 인생이 지구에 더해짐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2012년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 눈을 감다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Becaus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happening to me 
I've found the greatest love of all in side of me
The greatest love of all is easy to achieve 
Learning to love yourself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나는 오래전에 다른 사람의 그늘 안에서 머무르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내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믿는 그대로 살아갈 겁니다
그들이 내게서 모든 걸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내 존엄성은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난 내 안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을 이루기는 쉽습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The Greatest Love Of All 중에서

결국 우리는 인생의 끝에 가서 '더 나은 죽음'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것

2012년 2월 12일
카페 BRCD (Bread is ready coffee is done)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생각들

경선이형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음악이 좋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이 날 나는 나의 '병영일기'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 주제가 나와서 나는 내가 정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군생활 일기'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 때 일기를 읽으면 그 때 생각들을 하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게 이야기의 핵심

이 날 꺼내 본 일기는 내가 군생활 말년에 썼던 글 중 하나였다.

우린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남은 시간을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 현재의 시간은 남은 시간에 대한 희생양에 지나지 않는가. 현재를 위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갈 순 없는걸까.

다시 읽어도 공감이 가는 글이다. '미래를 위한 현재'와 '현재를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문제
우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잖은가. 그럼 내일이 되면 더 나은 모레를 위해 내일을 살아갈 것이고.

쭉 그래왔다. 중학교 때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 때는 더 나은 회사 혹은 더 나은 직업을 위해 열심히 그 때 그 시절을 살아왔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승진을 위해 열심히 살 것이고, 더 나은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지. 우린 그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명목으로 우리의 오늘을 열심히 바치겠지.

그렇다면  생의 최종 목적지는 죽음일테고, 결국 우리는 인생의 끝에 가서 '더 나은 죽음'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것을 만족하려나. 더 나은 죽음? 더 나은 장례식? 죽음 후의 나의 피붙이들이 받게 될 재산?

'현재를 위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걸 아닐까.

마음이 복잡할 때는 영화를 한 편 봐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2012년 2월 12일 20120212 (좋은 날짜네)

한가롭게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한가롭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건 잘 알지만 요새 마음이 복잡하다. 꿈도 많이 뒤숭숭하고 말이다. 어제 같은 경우는 특별한 꿈을 꾸지는 않았는데,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며칠 연속 말이 안나올 정도로 이상한 이야기들이 꿈 속에 펼쳐졌다. 흥미롭고 스펙타클한 로봇들이 등장해서 우주 전쟁을 벌이는 꿈도 꾼 반면 너무너무나 슬퍼서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칼로 찢겨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꿈도 있었다. 그 꿈에서 잠깐 깼는데 내가 실제로 헉헉헉헉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을 정도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영화를 한 편 봐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내 나름대로는 '웬만한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본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정말 보고 싶은 영화인데 구하기가 어려운 좋은 영화들만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본다라는 신조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뭔가 재밌고 웃긴 영화가 필요한 날이다.

요새 한 친구 덕분에 고등학교 때 자주 들었던 Red hot chili peppers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그 멜로디와 보컬의 멋진 목소리에만 심취했었는데 이번엔 가사의 의미까지 찾아가면서 노래를 이해하면서 들으려고 하고 있다. 아주 애절하게 다가온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복잡한 마음 상태로 그대로 있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걸까. 일단은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고 그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보기로 하자구나.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합시다~!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고, 노동자도 기업에서 일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2011년 가을학기 수강 후기
노사관계론(Labor Relationship) – 권기욱 교수님

(벌써 지난 학기가 마무리 된지도 1개월도 훌쩍 넘었는데 조금 늦게라도 지난 학기에
수강했던 강의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강후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수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권기욱 교수님 때문이었다. 그 교수님께 2011년 봄학기에 '조직설계론'이란 과목을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관련 과목에 대한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4학년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사관계론'이라는 과목명만을 들었을 때는 매우 지루한 수업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나로 하여금 저번 학기에 가장 많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는 수업이기도 했다. 매 시간 마다 토론 주제가 주어졌고 학생들은 회사와 노조의 입장에 서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수업시간 마다 꼭 노사이슈에 대해 다뤘으니 우리가 토론했던 기업만 해도 20여개 가까이 될 것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은행 파업사태, MBC, 한진중공업, KT, 금호고속 등 작년 한 해 많은 노사이슈가 있었다.)

노사관계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측의 입장에서 서서 의견을 말하려 했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이 의견을 들으면 쉽게 수긍이 가기도 했다. 우리 조가 '한진중공업'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시간의 매번 토론은 확실하게 옳은 답과 결론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끝났다. 그저 계속 무엇이 더 옳은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해야만 했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물으셨다. 나중에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가서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거냐고. 교수님께서는 무엇이 더 자기에게 이로울지 혹은 무엇이 옳을지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이 강의의 좋았던 점은 교수님께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지지 않고 최대한 균형된 시각을 유지하게끔 해주셨던 부분이다. 수업 시간엔 두 번의 특강이 있었는데 한 번은 삼성인재개발원의 전무님이 오셔서 노사관계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고, 다른 한 번은 민주노총의 대표 한 분께서 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셨다.

(조직설계론 때와 똑같이) 이 강의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팀 활동은 매우 유익했다. 한 기업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면서 노사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었고, 노사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우리 조가 준비했던 팀 이슈 발표 주제는 <한진중공업>이었고,
한 학기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주제는 <한국 노사단체교섭의 문제점과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제출한 프로젝트 결과물은 20점 만점에서 19.8점을 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힘들었던 프로젝트였는데 함께 고생해 준 우리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노사관계론 강의를 들은 덕분에 사회의 노사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 보면서, 노사문제가 어떻게 잘 해결되고, 나아가서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서 좋았다. 노동자 없이는 기업도 없고, 노동자도 기업에서 일을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앞으로도 사회의 노사문제에 대해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꺼두지 말고 함께 고민해보는 청년이 되도록 하자.

한 학기 동안 훌륭한 강의를 해주신 권기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누구도 남을 대신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남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다

2012년 2월 9일

시크릿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해가 2007년인데 출간되고 나서 약 5년이 지난 후에 읽은 것이다. 그동안 시크릿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많았는데도 신기하게 읽어 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번 친구로부터 꼭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시크릿을 읽어보라고 권해 준 친구가 몇 명 있었다. 2007년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대학교 선배, 2009년 군대의 선임, 2010년 워킹홀리데이에서 만난 친구, 2012년 삿포로 여행을 함께 간 친구.

그러고보니 모두 내가 특별한 것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이 시크릿을 읽어보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시크릿을 모두 읽게 되었다. 어떠한 내용인지는 너무도 익히 들어와서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대로 되는 세상과, 우리 모두가 우주이며 내가 곧 우주라는 생각,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생각. 기쁨, 사랑, 자유, 행복, 웃음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도 그렇고. 모든 우주가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도 언제나 생각하는 것들이다.

저번 달 일본여행에 갔을 때도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걸 보기도 했고. 내가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계속 겪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시크릿이란 책을 읽은 것도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필요했던 책이며 이 또한 우주가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이해하고서, 나는 앞으로의 삶을 창조해간다.

경험한 모든 일, 지나간 모든 순간은 바로 '지금'을 위한 준비였다. 지금 당신이 아는 지식으로 오늘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이제 당신은 자신이 운명을 만드는 창조자임을 알았다. 그러면 이제 얼마나 더 많이 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을까?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현재에 몰입할 것인가? 어느 누구도 남을 대신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남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다.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리사 니콜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일 년 만에 다시 모인 Ainsoph아인소프 멤버들과 서울 나들이
2012년 2월 4일 (토)

바쁘게 진행했던 공모전을 끝내고 난 뒤, 조금 게으르게 지내다 싶었던 요즘이다. 어제 일본의 친구가 서울을 찾아왔다. 내가 긴자 카페 아인소프에서 일을 했을 적에 매니저로 계셨던 쿠사야나기상草柳さん이다. 업무 관계로 한국에 온 건데 하루 시간이 나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한국인 멤버들과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날 함께 한 멤버는 쿠사야나기상, 보라무, 유진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네 명

오전 10시에 보람이와 먼저 만나서 명동에서 쿠사야나기상에게 줄 선물로 예쁜 모자를 샀다. 타이가군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여름모자였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난 건 12시 롯데호텔에서였다. 1년 만에 만나는 거라서 정말 반갑고 기뻤다. 사실 쿠사야나기상을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어떻게 하면 쿠사야나기상을 기쁘게 해드릴지 계속 고민했었다. 어디를 모시고 가면 좋을지, 무슨 구경을 시켜드리면 좋을지. 하지만 결국은 쿠사야나기상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쿠사야나기상이 가보고 싶은 곳을 들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이 날 우리의 이동경로는 이러했다.

명동 롯데호텔 - 시청 광장 - 덕수궁 - 광화문 광장 - 인사동 - 인사동에서 점식식사로 찜닭
- 명동에서 쇼핑(Forever21, Zara, Mango, H&M 등등)  - 신사동 가로수길 -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 이태원 - 저녁으로 고기먹고 - 바 Bungalow에서 칵테일 마시고 - 호텔로 이동해서 다시 맥주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

같이 아인소프에서 일했을 때 이야기, 일본 대지진 이야기, 연애 이야기, 직업 이야기까지 아침 10시에 만나서 다음날 아침 7시에 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원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것들이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함께 한 네 명은 지금까지 계속 같이 지내온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맛이없는 식당을 들어갔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다면 더 맛있는 것이고, 시시한 구경거리도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이태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이태원에서 2달 정도 일해본 적도 있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그곳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번에 갔을 때처럼 이태원이 그토록 즐겁게 느껴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 넷은 이 곳은 뉴욕의 중심가라면서 분위기를 냈다. 같은 이태원에 머물더라도 그냥 외국인이 좀 많은 평범한 서울의 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수많은 만남이 이뤄지는 화려하고 로맨틱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하루의 만남이라 아쉽긴 했지만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멋진 하루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람의 만남에 대해 생각한다.
쿠사야나기상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가 그냥 카페에서 일하는 사이로만 남았더라면 이렇게 양국을 오가며 만나는 일도 없을거야. 사실 선일군하고도 내가 가까워진 계기는 선일군이 카페 일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어. 그때서야 좀 더 선일군이 진지한 사람이란 걸 알게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가까워진거지. 아마 그때 선일군이 나에게 그런 고민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자리에서 다시 선일군을 만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말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서 다가가려고 한다면 관계의 진전은 급속도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모든 소중한 관계는 그러한 길을 거쳤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넷이 만나는 것은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장소는 도쿄로 정하였다. 우리들이 도쿄를 찾아가서 쿠사야나기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인연은 바다를 넘어서 길고 길게 이어져간다.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나도 흘러가면 된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찾아보았다.
언제나 난 예전 나의 모습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2011년 3월 28일 쓴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것,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가볍게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결국은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나의 마음들을 너무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나도 흘러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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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또 바라본다. 2013년 9월 30일

누가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기를 마치며
2012년 1월 12일 ~ 21일

여행은 열흘로 매우 짧았지만 여행기를 쓰다 보니 40개가 넘는 긴 글이 되었다.
그만큼 남기고 싶은 사진도, 적어두고 싶은 생각들이 많았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1월 21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행에 대한 소감을 글로 남겼다.
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지난 지금 여행에 대한 소감을 쓰는 것보다는 그 때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 내 생각을 더 잘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 많은 기회비용을 들어간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작은 결심을 했었다.

2012년 1월 11일의 일기
막상 출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일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일본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전해 받고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잠시나마 잊고 살았던 '소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이번 일본여행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싶다.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면서까지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을 제대로 재충전해서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올 해는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일본에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쾅쿵쾅 설렌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살아온 길이 있다. 그 길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의미한다.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본 여행에서, 사실 '일본'이라는 것은 그 또한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1년 동안 살았던 나라의 이름이 '일본'일 뿐이다.  내가 관계를 맺은 건, 나라는 개인과 바다 건너 어떤 개인들과 관계였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사실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 이냐가 아니었다. 그 상대방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서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온전한 진심으로 대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내가 일본에서 일년을 살면서 느낀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그러니 이번 여행도 일본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이번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는 동기를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내가 목표로 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것들을 모두 이루고 왔다고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4학년으로서 1년을 잘 버텨낼 용기와 동기도 얻었고, 그럼에도 내가 잊고 살아가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페이스북에 올린 생각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여행기를 마친다.

昨日韓国に着きました。2012年の一月を日本で過ごすことができて本当に嬉しかったです。やっぱり日本はいい国だなーとまた思いました。たまに自分が向かっていく道を失うこともあるんですけど、今回皆と久しぶりに会って私も皆さんのようにがんばって生きて行かなきゃとおもいました。忙しいところ会ってくれた皆さんに本当にありがたいです。
この世界って広いからしばらく会えないかも知らないけど、私たちの心は海を越えてつながってるから、だれがどこにいても同じ世界を生きていることを感じられ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次会う日まで皆元気にいてください。


저는 어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2012년의 1월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답니다. 역시 일본은 좋은 나라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가끔 제 스스로가 향해 가고 있는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만, 이번에 모두와 오랜만에 만나서 저도 여러분처럼 열심히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바쁜 와중에 만나주신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넓기 때문에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은 바다를 넘어서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누가 어느 곳에 있어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만나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그리고 그 모든걸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

도쿄 마지막 날
2012년 1월 20일 도쿄에서 둘째 날

시부야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11시였다. 바로 그 날 오후 2시에 JSP(Japanese summer program) 때 만난 친구 앙리와 리카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딱 2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바로 다시 이케부쿠로역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했더라면 JSP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텐데, 늦게서야 연락이 된 앙리와 리카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선샤인 시티를 돌아다니며, 이케부쿠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프리쿠라를 찍으며 재밌게 놀았다. 저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집, 와코에서 먹었다.

앙리와 리카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절친.
다음달엔 둘이서 3주 동안 유럽여행을 간다고 한다.

한국에 꼭 다시 놀러오세요, 앙리와 리카~!

스티커사진을 두번이나 찍었다.

맛있는 와코, 돈까스가 정말 맛있다. 양배추와 밥은 무한 제공도 좋다. ㅋㅋ

오후 시간을 셋이서 함께 보내고 저녁엔 다시 친구와 만나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한 4시까지 같이 있었는데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봐 아예 잠자는 걸 포기했다.

도쿄에서의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천천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도쿄에 머무른 삼일동안 모두 합쳐 10시간 정도 잤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잠만 잤다. 조금 여유롭게 약속을 잡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열흘 간의 홋카이도와 도쿄'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눈이 많이 내렸던 오타루,  야경이 아름다웠던 삿포로, 1년 만에 찾은 도쿄, 그리고 그 모든걸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정말 행복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가 모이고 모여 멋진 영화가 된다

다함께 맞이한 도쿄의 첫눈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맛있는 야키토리, 시원한 생맥주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시부야에서 밤을 지샌 우리들이 가게를 나선 건 아침 6시 정도였다. 그날 밤,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료코는 출근이 8시였고, 류타군은 10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먼저 가야했던 둘을 배웅해주기 위해 도겐자카도리를 내려와 센타가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 마침 프리쿠라(스티커사진) 샵을 지나가다가 내가 모두에게 프리쿠라를 찍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해서든 모두와 즐겁게 밤을 지샜던 그 날을 조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나보다.

참! 이날 밤 류타군과 모자를 교환했다. 내가 류타군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을 때 류타군도 나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며 자신이 쓰고있는 중절모를 주었고 나도 나의 헌팅캡을 류타군에게 주었다.

그리고 영화 같은 일은 지금부터!

한 10분동안 프리쿠라를 찍고 나오니, 아까까지만해도 비였던 것이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과 비와 섞여서 내리고 있었는데 비가 많아지기도 하고, 조금 기다리면 눈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도쿄에서 처음 맞이하는 눈이기도 했다! 일주일간 홋카이도에서 눈 속에서 파묻혀 지내다보니 눈은 이제 질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도쿄에서 맞이하는 눈은 또 달랐다. 10개월간 일본에 머물 때도 도쿄에서 눈을 본 적이 없었다.  (2010년 2월 7일에 한국에 돌아왔었는데, 바로 다음날 도쿄에 폭설이 내렸다.)

게다가 이날 아침에 내린 눈은 올 겨울에 도쿄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이라고 했다. 나에겐 도쿄의 첫 눈이었고, 친구들에겐 올 겨울 첫 눈이었다.  마스미는 눈을 맞으며 계속 행복하다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건 기적キセキ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의 기적이다.

료코와 류타군은 출근을 위해서 빨리 전차를 타야했지만, 우리들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쳐다보았다. 아마 20분 넘게 쳐다본 것 같다. 한국에서 눈이 내릴 때도 그렇게 오랫동안 눈을 보기 위해 위를 쳐다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맞이하는 첫눈은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비기도 했고, 눈이기도 했고, 진눈깨비이기도 했다.
눈을 감상하는 일이 그렇게 신났던 적은 처음이다.

그 날 아침 첫눈을 즐겁게 감상하고, 류타군과 료코는 먼저 들어갔다. 둘 덕분에 정말 즐거운 밤이었다.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남은 우리 네명은 아쉬움을 달래기위해 가라오케에 갔다. 우리들이 자주갔던 歌広場(우타히로바)에 가서 두시간을 부르고 나오니 아침 해가 완전히 밝아 있었다. 어느새 눈은 완전히 그치고 비만 내리고 있었다.

시부야의 명물! 충견 하치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1년 전 그때처럼

시부야는 서울의 신촌 혹은 홍대 같은 곳이어서 늘 젊은이들로 붐비고 시끄러운 동네다. 시끄러운 동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시부야가 정말 좋다. 가장 많은 추억이 담겨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은 만남의 메카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라서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약속은 '하치코 동삼 앞'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동상이 되어서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 하치코처럼,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헤어진 장소는 시부야渋谷역이었다. 우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화이팅을 했다.

시부야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진행 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혹은 연락이 뜸해지다가 서먹해지기도 하는 세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해야하는 이유는 어떤 관계라도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가 모이고 모여 멋진 영화가 된다. 길고 길었던 행복한 하루가 끝이 났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부야에서 밤을 지새며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바는 자정이 넘어가면서 점점 신나는 클럽으로 바뀌어갔다. 같이 있던 친구들끼리 계속 여기있을지 다른 데로 장소를 옮길지 얘기를 하다가 몇몇 친구가 배가 고파하는 것 같아서 야키토리焼き鳥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당연히 우리가 가기로 한 장소는 2010년 망년회 장소였던 키조크(귀족)토리貴族다. 모든 종류의 술과 안주가 280엔으로 저렴하면서 맛있는 야키토리가게다.  맨날 친구들을 따라서 가기만 했는데 친구들이 알아서 맛있는 야키토리로 잘 시켜주기 때문에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같이 가기로 한 멤버는 료코りょうこ,레이카れいか,마스미ますみ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일 출근도 있고해서 일찍이 헤어졌다. 우리는 아침까지 술을 마실 생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밤을 새도 시간이 부족한 우리다. 주문은 입맛이 까다로운 레이카가 맡았다. 역시 레이카는 맛있는 메뉴들로 샤샤삭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있은 뒤 레이카에게 문자가 왔는데,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아키라군과 류타군이 오다니!!!!! 아키라는 아까도 계속 가게에서 일을 했고, 내일도 분명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해야할텐데,,그리고 아까 마크시티에서 류타군(류짱)을 만났을 때도 내일 출근이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못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나서 류타군이 왔다! 아.. 류짱..
류짱에 대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이 친구와는 정말 정말 영원토록 우정을 쌓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류짱에 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도 몇 번 한 적이 있다. (미도리스시 류타군의 선물) 나는 콜드스톤에서 일을 했고, 류타군은 우리 매장 옆옆옆에서 미도리스시라는 스시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 결코 같은 일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보니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며 지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날에 류타군의 가게에 갔다가 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진수성찬을 대접받았고, 심지어 내가 귀국하는 날 꽃꽂이 교실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배웅을 와주기까지 했다.

류타군 : "저스틴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가게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선물이야. 내가 주는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
나 : 이..... 이렇게 큰 걸 받아도 돼?
류타군 : 응. 점장님에게도 저스틴이 온다고 3일 전부터 말하고서 허락받고 만든거야. 돈은 안내도 되니까 많이 먹어. 하하
나 : 고마워, 류짱 ! 맛있게 먹을게. 
류타군 :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다시 놀러오도록 해.
나 : 응. 일본에 올 때 반드시 미도리스시에 들를게.
류타군의 그 말을 듣고서 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흘러갔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사이인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찾아헤매고 갈망하는 '진심'.
순간 내가 작아졌다. 내가 류타군에 대해 아는 건 스물세살로 나와 동갑이라는 것과, 이 일을 시작한지는 약 5년 정도 됐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형과 함께  스시 다이닝바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것. 류타군도 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친구와 인사만 하는 것 외에도 가끔 짧은 대화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이 시점은 이미 한국에 돌아갈 날을 9일 남겨둔 시점이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의 인간관계를 쌓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미도리스시의 류타군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 나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류타군의 고향은 작년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이다. 류타군의 부모님이 사시던 집도 피해 영향권에 들어가서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도쿄에 와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을 시간을 보냈을텐데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콜드스톤과 미도리스시에서의 서로의 일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던 중 류타군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일을 하다보면 사장님이나 윗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혼나는 일이 많아. 그럴 때마다 자기의 기분을 숨겨가면서까지 손님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훨씬 쉬워져. '만약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오늘 특별한 날을 맞이한건 아닐까? 혹시 딸아이의 생일이라서 우리 가게에 찾아와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소문을 듣고 먼 지방에서 찾아와 준 손님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손님을 기쁨으로 맞이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직원들간의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서 특별한 날을 맞이한 손님에게 그러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드러낸다면 손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손님에겐 최고의 날일 수 있잖아."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하는 생각이라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접객에 대한 마인드가 충실하다니..사실 그건 단순히 접객에 대한 마인드로만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다. 류타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그 모든게 류타군의 행동에 베어있었다. 내일도 일찍 출근을 하는데도 1년 만에 일본에 찾아온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준 류타군이 아닌가. 과연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날 오갔던 대화를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류타군은 나중에 자기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다.(아키라군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미도리스시에서 앞으로 5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5년을 일했다.) 자기의 가게를 가지게 되면 자기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가지는게 필수라고 했다. 스시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도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손의 감각을 익히고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류타군은 꽃꽂이와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손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면서 갖춰야 할 자질이 세가지 자질이 꽃꽂이, 서예, 다도라고 한다. 바쁜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꽃꽂이 교실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정말 멋진 청년아닌가. 사실 스시가게에서 하는 일과 꽃꽂이, 서예, 다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텐데.늘 영어 잘하는 방법, 학점 잘 받는 방법, 스펙 쌓는 방법 등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갈고 닦기위해 천천히 돌아가려고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한 번 경험한 것은 잊혀지지않는다는 말만 할 뿐이었는데, 류타는 긴 시간동안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본받아야할 모습이었다.

류타군 밑에는 조수가 한 명 밑에 있는데, 아까 그 조수와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나: 아까 그 친구를 봤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보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 멋있기도 하고.
류타군: 정말? 저스틴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기쁘다. 사실 내 밑에서 일하면서 내가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쳤었는데 초반에는 윗사람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었어. 그럴때마다 역시 내가 혼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친 후배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 그런데 최근에 저스틴처럼 그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어. 진짜 그럴때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너무 기뻐. 이제 좀 한 숨 놓인다고 할까.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것이라고 해봤자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러기 때문에 류타군과 내가 느껴왔던게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사회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류타군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후배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해 줄 줄 아는 선배가 되고 싶다. 혹여 내가 그런 걸 느끼긴 할 수 있을까.

위에 적은 이야기말고도 류타군과는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린 약속했다. 언젠가 꼭 둘이서 후지산 등산을 하자고! 나는 2010년 여름에 등산에 도전했다가 약 200미터를 남겨두고 실패했고, 류타군은 작년 2011년 여름 등정에 성공했다. 게다가 씨도 정말 좋았다. 언젠가 반드시 류타군과 후지산을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친구는 아키라군이다. 아키라군과는 콜드스톤에서 일했을 적에도 수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아키라군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 중 한명이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작년 7월 시부야에서 오픈을 했고 지금 계속 입소문이 퍼지면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키라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책을 쓰고 있는 중이야. 나는 이 가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돼. 내 꿈을 위해서 말이지. 이 가게가 성공하게 되어 안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거야.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시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많잖아. 그 많은 책 중에는 잘 팔리는 책도 읽고 안 팔리는 책도 있고 말이지. 나는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야 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들로 흔한 내용의 책을 쓴다면 누가 사서 보겠어. 저스틴도 저스틴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려고 해. 또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금하고 있는 가게를 성공시켜야 하는거지."

인생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흔히 살아가는 인생 스토리가 아니라, 나 자신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 만감이 교차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밖에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과연.

제 딴에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남들하는 자격증, 공모전, 영어, 학점 등을 (혹시 뒤쳐지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에)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도 진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혹은 우리들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문제라며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향해 비판을 해댄다. 결국 남들과 똑같게 사려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선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25이고, 한창 사회에 나갈 준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나이이다 보니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도 주로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는 보통 '어떤 선배는 어느 기업에 어떻게 해서 들어갔다더라, 영어가 중요하다더라, 봉사활동 점수가 중요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경영학과 학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얘기이면서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시부야에서 밤을 새며 얘기했던 그날 밤은 달랐다. 마스미, 료코, 레이카, 아키라, 류타. 그 소수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하리라는 것은 만무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미용사를 꿈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마스미, 뮤지컬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잠시 그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료코, 마사지사를 하고 싶어하고, 새로 태어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30분동안 조카 사진을 보여준 레이카, 자신의 BAR를 성공시킨 뒤 세계일주를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아키라, 서예, 다도, 꽃꽂이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최고의 실력으로 자신의 스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류타군 그리고 그들의 각자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어 계속 듣고만 있었던 나.

우리 모두의 앞날은 불확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며 기쁨을 나누었다. 시부야에서의 밤을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에게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다. 모두와 이렇게 만날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갔어야 하는데 작은 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키라와 류타군에겐 스카이트리의 기념품을 주었고, 료코에는 한복입은 곰인형 키홀더를, 레이카에게는 고양이 캐릭터의 펜을 주었다.

그리고 마스미에겐 내가 오타루의 오르골 공방에서 만들었던 오르골을 주었다.
 감바레 ガンバレ! (힘내!)

나: 마스미, 이거 내가 오타루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이야. 처음엔 나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모양을 만든건데,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걸 마스미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괜찮다면 받아줘. 오르골을 돌리면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이 나오는데 한번 들어볼래?

마스미가 오르골을 귀에 가까이 대고 몇 초간 들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였다.

마스미: 이 음악은... 설마.. 아까...

나: 응 맞아! 아까 우리 같이 로프트로 선물 사러 갔을 때 나온 음악이잖아. 나도 그 때 그 음악이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어. 마스미에게 이 오르골을 주기로 마음먹고서 챙겨왔는데, 딱 그 음악이 나오는거야. 그래서 슬쩍 아까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말하면서 마스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 마음에 들어?
오르골에 적혀진 말은 마스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힘내 마스미. ガンバレ, ますみ!

그 음악은 キセキ(기적)이었다.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이번 도쿄 여행 자체가 나에겐 기적의 연속이었다. 1년만의 내 생일에 도쿄타워를 오른것 부터가. 오타루에서 오르골을 만들기 시작할 때 '기적'이란 곡을 고르게 되고, 시부야의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같이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오르골이 마스미에게 전해지기까지의 호흡 한숨 한숨이 기적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나 자신 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인생 스토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애 최고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 한 번의 깜짝파티 バスデーパーティ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오랜만에 만난 덕분에 한창을 떠들던 중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키친 쪽에서 마스미와 레이카가 불을 밝힌 케익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콜드스톤 손님들에게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다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I don't know but I've been told. Someone is getting old.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Justin~ 
Happy Birthday to you

아.. 난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두와 이렇게 1년 만에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이 준비한 케익은 콜드스톤 아이스크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Midnight Delight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익. 케익을 받아들고 불을 끄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케익을 한동안이나 들고 있었는데, 마스미가 준비한 10개도 넘은 폭죽을 계속 터뜨리는 것이다. 터뜨릴때마다 계속 깜짝 놀랐다. 정말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생각만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작년 딱 이맘때도 콜드스톤 근무날이었는데, 그때도 콜드스톤 친구들이 서프라이즈 축하 파티를 해줘서 정말 기뻤다. 그 때의 이야기도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2011년 1월 콜드스톤에서 생일 축하파티
그때의 일기를 되돌아보니 이런 말을 적었구나.
"축하해 준 모든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난 정말 그들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었나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그랬을까. 혹시 안그랬다면 이제는 정말 그래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한 사람의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는 것의 의미는 사실 정말 큰 것 같다. 결국 그 존재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떤 존재를 위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을까. 간단하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보내는 것만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많지 않을까.

생일 케익을 받아들고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각자의 잔을 들고 건배 제의를 하면서 한마디를 했다.

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じつは韓国に帰ってからは自分の生活や勉強などが忙しくなり皆さんからもらった幸せを忘れてしまう事もあったです。でも今回日本にまた来て皆さんをまたお会いできて本当によかったと思います。皆さんを見て、やっぱりこの世界を生きていく事はすばらしいことだなぁと。僕は韓国にいて、皆さんは日本にいるのだとしても、大事なことはこの世界を一緒に生きていくことです。僕も今がんばって生きている皆さんのように韓国に帰ってがんばって生き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乾杯!!!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작년 한국에 돌아가고나서 자신의 생활이나 공부 등이 바빠지다보니 여러분 모두로부터 받은 행복을 가끔씩 잊고살았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일본에 다시 와서 모두를 만나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모두를 보고서, 역시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고, 여러분은 일본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건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열심히 살아가는 여러분처럼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아 갈 생각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건배!

미사미사가 내 카메라를 들고 생일 축하파티했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던 덕분에 그 순간이 기록되었다. 작년 한 해도 그랬고, 앞으로도 숱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 순간의 기록들을 꺼내보면서 '모두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모두에게 했던 약속을 되새기면서 언제나 힘을 내도록 해야겠다.

사람의 행복은 결코 그 무언가로 잴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도 행복하고, 일본에 있어도 행복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 다르며 관계가 다르듯이 그 행복감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세상을 함께 존재해 나가는 아주 작은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정말 모두 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 날 또한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 이렇게 멋지고 희소가치가 있는 수식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난 까다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생애 최고의 날로 기억된다면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애 최고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큰 시험에서 합격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는 순간들도 생애 최고의 행복을 맛 볼 수 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 널리 퍼지는 방법이다. 나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날들을 생애 최고의 날들로 만들어주고 싶다. 할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내어주고서라도 말이다.

2012년 1월 19일 도쿄 시부야의 밤, 우린 그렇게 다시 모여 서로에 대한 우정을 나누고 느끼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재회 파티 再会パーティ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아키라군의 가게  EN-SOF TOKYO 들어갔더니 미리 와있던 친구들이 파티 장식을 해놓았다. 나와의 재회를 축하하는 파티라고 했다. 수공예 전문 마스미가  파티에 쓰이는 장식품들을 손수 모두 만들어왔다. 정말 예뻤다. 마스미는 내가 귀국할 때도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어와서 감동시켰다.

진짜 행복했다.

곧 있으면 사람들이 더 올 것이라고 했다.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대되었다.
일단 모인 사람들끼리 재회를 축하하며 가볍게 건배를 하였다. 나는 물론 맛있는 생맥주를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맥주 같았다.

간빠이!!! 이예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함께 쏟아내느라 무척 신났다. 나뿐만 아니라 서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나에겐 모두와 함께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ㅎㅎ

세키마이상せきまい
시부야점에서 정말 오래 일한 분이다. 내가 신입일 때 여러가지를 잘 알려주셨다. 그리고 세키마이상 덕분에 내가 시부야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시부야로 면접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은 분이 세키마이상이기 때문이다. 세키마이상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콜드스톤과 연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키마이상은 올 7월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콜드스톤을 그만 둘 것 같다고 하셨다. 결혼 축하드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미사미사みさみさ
정말 존경하는 친구 미사미사! 미사미사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의 블로그에도 몇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다. 이제 스무살이 되었을 뿐인데 생각하는 것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좀 더 넓게 생각한다. 미사미사의 꿈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난 이 친구의 삶을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작년에 6개월동안 아프리카 케냐에 봉사활동도 무사히 다녀왔다. 이번에 미사미사가 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아프리카의 청년들한테 몇번씩이나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한다. 하하하. 국경을 초월하는 인기다. 앞으로의 힘든 여정이 많아서 지치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힘내서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레이카 れーにゃん! 
레이카와는 항상 진지한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밤 늦도록 아침이 될 때까지 술도 몇번 마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서로이 세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레이카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일본어 학습에 도움도 된다! 지금은 열심히 콜드스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레이카가 이날 내게 장문의 편지를 건네줬다. 그 편지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진솔한 레이카의 이야기들이 감동적이었다. 새로운 스태프가 들어오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게 오래걸려서 고민을 하곤 한다. 하하

마루코まるこ!
바쁜 유치원선생님 마루코! 마루코랑 치로는 작년 여름에 한국에 놀러왔었다. 그 때 좀 더 잘 대접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마루코는 정말 좋은 유치원 선생님일 것 같다. 마루코에게 나중에 내 자식을 낳게 되면 마루코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생일선물로 맛있는 생크림 케익까지 받았다. 진짜 맛있었다.

유우유우ゆうゆう
조금 느즈막하게 참석해 준 유유! 현재 콜드스톤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다. 원래 츠타야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얼마전에 신주쿠역의 루미네 에스트(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에서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유는 늘 트위터에 화장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코스메틱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다. 항상 화장품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유유가 원하는대로 된 것이다.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료코 りょうちゃん
료코는 콜드스톤에서는 정말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특히 나에게 있어선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내가 잘못하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곤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콜드스톤의 분위기 특성상 다른사람에게 충고를 해주기 어려운데, 료코는 나에게 그 역할을 잘 해주었다. 료코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있다. 예전에도 료코가 했던 연극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분간 연극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현재는 콜드스톤을 그만 둔 상태는 아닌데 다른 회사에 사원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료코에게 배우가 되길 원했는데, 계속하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생겼다고 했다. 최고의 파티플래너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걸로 즐겁고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주었다. 나로서는 언젠가 료코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걸 간절히 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변하는 법이니 나 또한 어떤 분야에서 그 일을 즐기고 있는 료코를 본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키라 きらさん
키라상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다. 얘기할 때는 늘 웃으면서 얘기하고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 가끔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따라가는데 힘들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정말 친한 형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다. 가끔 내게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메 ひめ
디즈니랜드의 댄서가 되는 걸 꿈꾸고 있는 세키아야카. 콜드스톤에서 일할 때 정말 절친이었다. 히메의 접객은 그야말로 최고다. 콜드스톤에서도 인정하여 몇번씩이나 서비스 관련한 상을 받은 적도 있고, 마크시티(콜드스톤이 있는 시부야의 쇼핑몰)의 접객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어떤 손님이든 히메의 서비스를 받는다면 정말 기분좋아질 것이다. 그런 히메에게는 디즈니랜드가 정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콜드스톤말고도 BAR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데 그쪽 아르바이트도 정말 재미있나 보다. 히메를 처음 만났을 때는 히메의 말이 너무 빨라서 알아듣는게 정말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만난 이 날도 히메의 말을 다 알아들은게 신기했다 ㅎㅎ

모두 돌아가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받아서 정말이지 감사했다. 돌아와서 보니 아쉽게도 마스미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나 뿐만이 아니라 일본 친구들 서로간에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고 했다.  유유는 나처럼 아키라군의 가게에 처음와보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고, 누구는 시험기간이라 정말 바쁠텐데 이렇게 만나러 와 준게 정말 너무도 고마웠다.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행복하고 행복했다. 마치 1년 전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는 중간에 사람들에게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은데. 다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있겠지? 하하 물론 나는 예외지만. 진짜 10년 뒤에도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이렇게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키라군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응원한다

아키라군의 가게 방문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어떻게 해서든 내가 도쿄에 와야했던 이유는 아키라군이 오픈한 자신의 BAR에 가기위해서였다. 이것은 기나긴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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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6일 http://ksi8084.blog.me/40109945178
 하루하루를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부를 통해서라기 보단 여러가지 모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카페에서, 콜드스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멋진 사람들 뿐이다.
하기와라 아키라萩原光라고 하는, 콜드스톤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동료가 있다. 나이는 스물다섯살이고 어제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저스틴은 하고 싶은게 있어?]
[하고 싶은거? 꿈?]
[응]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갈수록 멀어져가는것 같아. 아키라는 꿈이 뭐야?]
[나의 꿈은.. 나의 가게를 갖는거야. 뮤직바 같은.]
[정말? 언제쯤 계획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 여름 정도가 될 것 같아]
[내년 여름? 이런, 나는 내년 2월에 한국에 돌아가니까 못 가겠군. 좀 더 노력해서 빨리 오픈하면 안돼? 나도 꼭 가보고 싶어.]
[하하 알았어. 저스틴을 위해서라도 노력할게. 내년에 저스틴이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슬퍼지는걸.]
 일본에 온 이후로 일본 사람들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나의 꿈'에 대해 꽤나 여러번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가끔씩 생각을 해 볼 기회를 많이 갖는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이 곳에 있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메일이 왔다. (2011/05/28의 일기) 
ジャスティン、元気してるかな??
저스틴, 잘 지내?
じゅりぴょんだよ(*^◯^*)
쥬리야! (아키라군!)
日本は震災の傷もだんだん晴れてきて、東京はもう前と同じ生活が戻ってきたよ!
일본은 지진으로 타격도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서 도쿄는 벌써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왔어.
だからまた夢を見ることも出来るようになった!!
그래서 다시 꿈을 꾸는 것도 할 수 있게 됐어!

ジャスティン、ついにお店Openが決まったよ!!!
저스틴,  드디어 나의 가게의 오픈이 정해졌어!
場所はなんと渋谷!!
장소는 물론 시부야!
7/1からSTARTするんだぁ☆
7월 1일부터 스타트!
だからね、COLDSTONEはもうやめるんだ!
그래서 콜드스톤은 이제 그만두게 됐어.
30日月曜日が最後の勤務!
30일 월요일이 마지막 출근!
さみしいけど、渋谷にいるから、みんなすぐ会えるからそんなにさみしくないよ(^_-)-☆
서운하지만 가게가 시부야에 있어서 모두 금방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아쉽진않아.
ジャスティンも日本に来たら是非ウチのお店来てもらいたいなぁ☆
저스틴도 일본에 오면 꼭 우리가게에 와줘!
いよいよ じゅりーの冒険が始まるよ!!!
마침내, 쥬리의 모험이 시작된다고!!
お店成功させて、世界一周するんだ!!
성공시켜서 세계일주를 할거야!
ジャスティン、応援していてね♪
저스틴도 응원해줘
親愛なるジャスティンへ、친애하는 저스틴에게
じゅりー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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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기와라 아키라군이 만든 가게에 가는 것이다! 나보다 두살 많은 아키라군의 그러한 꿈을 들었을 때는 단순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아키라군은 힘차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듯 하다!

도겐자카에 위치한 아키라군의 가게에 가는 길에 가슴이 정말 설렜다. 나에게 이런 멋진 친구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6시 부터 11시까지는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그 이후부터는 클럽 분위기로 바뀐다.

세키마이는 오는 7월 결혼한다고 한다!!

아키라군의 가게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인테리어와 음악이 무척 마음에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도쿄Feel, 시부야Feel 이었다. 가게 안은 많이 어두워서 사진을 찍기 힘들었다. 가게에는 아키라군의 정성어린 손길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꿈 실현에 한 발 더 나아간 아키라 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더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키라군은 이 가게를 정말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부야 하면 바로 En-sof Tokyo 가 떠오르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키라군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응원한다!

이런 기적과 같은 우연을 계속 만들어주는 신께 감사드리고 싶었다

 1년 만에 돌아간 시부야 콜드스톤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1년 만에 찾아가는 내 마음 속 영원한 일터, 콜드스톤 시부야점. 아까 긴자를 찾아갔을 때도 내가 알고 지내던 스태프들이 모두 만나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부야 매장에 찾아가니 일하고 있던 3명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하루토상, 세키마이상, 치히로짱!!! 새로운 스태프가 많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새로운 스태프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 내가 아는 사람들 뿐이었다. 이런 기적과 같은 우연을 계속 만들어주는 신께 감사드리고 싶었다.

그 때 레이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레이카: 오랜만에 시부야에 왔는데 아이스크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혹시 모를까 해서 저스틴 유니폼도 가져왔어
나: 뭐?! 진심이야? 난 그만둔지 오래됐는데 들어가서 일해도 돼/
레이카: 뭐 어때 ㅎㅎ 이시켄상(점장)님도 안계신데
나: 정말????!!!
레이카: 마스미, 저스틴, 잇짱 모두 함께 들어가자~

그렇게 해서 너무 감격스럽게도 1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매장으로 출발 ! !  1년 만에 출근을 하고 조례도 하였다. 하루토상이 조례를 해주셨다.
하루토상: 오카에리나사이(おかえりなさい, 잘 다녀오셨어요?),저스틴 
아..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멀리 떠나있었던 곳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루토상이 2012년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등등 여려가지 인터뷰 식의 질문을 해주었다. 하하하하. 정말이지 하하하 기뻤다

마스미와 레이카! 쉬프트가 들어있는 날이 아닌데도 나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들의 유니폼도 챙겨왔다 ㅠㅠ
1년 만에 시부야 매장의 스톤 앞에서는 감격스러움이란

마침 도쿄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와서 신나게 노래 부르며 춤추면서 일을 했다. 물론 1년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가사를 거의 다 까먹었지만 어쨌든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다. 일과 놀이는 일치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해본다.

마스미, 레이카, 치히로, 아키라가 내가 만들어 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며 계속 부탁했다 냐하하하하

그리고!!!!!!!!!! 아키라를 다시 만났다!
잠깐 쉬고나서 매장에 오니 아키라군이 매장에 와있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동경하는 친구, 아키라군을!!  아키라군은 나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주었다. 재회를 축하하는 꽃이었다. 아키라군은 일을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나를 만나기 위해 시부야 매장까지 일찍 찾아와주었다.  아키라군에 대해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바다를 넘어서는 우정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부야에서의 재회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이제부터 시부야에 갔던 일을 쓰려고 한다. 아,,, 가슴이 설렌다. 과연 형편없는 글솜씨로 '내 생애 최고의 멋진 날'을 옮겨적을 수 있을까. 시부야 콜드스톤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곳이다. 도쿄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콜드스톤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면, 전환점의 기둥이 된 것이 콜드스톤 시부야점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 날 오후 3시 마스미ますみ를 만나고부터 그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이어진 '재회再会'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시부야에서의 재회

마스미를 만나기로 한 것은 오후 3시였다. 긴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뒤 긴자센을 타고 종점인 시부야까지 가려고 했지만, 조금 더 걸어서 유라쿠쵸역까지 걸어갔다. 유라쿠초역은 내가 매일 출퇴근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유라쿠초역 앞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부야에 도착한 시각은 약 2시 40분. 이제 20분 뒤면 마스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처음엔 두근두근 거렸지만 3시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마스미는 콜드스톤에서 함께 즐겁게 일했던 친구로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말 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거의 90%가 사람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자신 주위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건 정말 흥미로운 주제다. 

마스미를 만나면 뭘 하며 놀지에 대한 온갖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덧 3시가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 때 역의 출구 쪽에서 걸어나오는 마스미를 발견하고. 폴짝 폴짝 뛰며 마스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마스미에게 뛰어갔다. 아... 1년 만에 만났던 그 순간의 감동이란...재회의 기쁨이 이렇게 크고 감격스러운 것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元気?겡끼? 잘지냈어? 라는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잘 지내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 없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둘의 얼굴에는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바다를 넘어서는 우정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마스미하고만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마스미의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마스미가 곧 있으면 레이카도 온다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정말 기뻤다! 레이카가 온다니! 나, 마스미, 레이카 셋이는 셋이서 망년회를 했을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다들 바쁘게 지내는 친구들이라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급하게 레이카에게 자그만한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마스미에게 괜찮으면 같이 레이카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시부야의 로프트 였다.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며 1층에서 5층까지 쭉 둘러보았다.
마침 5층에 갔는데 입구의 스피커에서 Greeeen의 キシキ (기적)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 어! 이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キセキ
마스미: 그래? 맞어. 좋은 노래야 ♬
레이카에게 줄 선물로 귀여운 고양이가 달린 펜을 골랐다. 레이카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 다.

시부야의 하치코 동상 앞에서 우리 셋은 다시 만났다. 레이카와 마스미도 오랜만에 만난 듯 했다. 그렇게 2010년 망년회 멤버가 모두 모였다. (우리들만의 망년회) 사람의 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잇짱(이츠키)라고 하는 시부야점의 새로운 스태프인데 내가 나가고 나서 바로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내 얘기를 하니까 어떤 사람인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다. 잇짱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있는 멋진 친구였다.

시부야의 광장에 모인 4명이 갈 곳은 어디일까? 바로 콜드스톤 아니겠는가?
자 콜드스톤으로 출발!

도쿄 긴자에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페가 있다니

2012년 1월 19일 도쿄에서 둘째 날

스카이트리를 원없이 보고 난 후, 아사쿠사역으로 걸어가서 긴자센을 탄다음 긴자로 왔다.
도쿄에서 생활할 때 일을 했던 카페 아인소프 사람들도 만나고 점심도 먹기 위해서였다.
내가 찾아간 이 날은 정말 운이 좋았다! 정말이다.

카페에 찾아가기 전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꽤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내가 가는 날에 혹시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딱! 카페에 가니까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다. 보통 키친 1명, 홀 2명이 일을 하는데 키친에 야마구치상이 있었고, 홀에서는 나카무라상과 와타나베상이 들어가 있었다. 나카무라상에게 혹시 시라이상(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오너)도 계시냐고 물으시니까 4층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하나에상도 왔다. 하나에상은 오늘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 일이 있어서 잠깐 들른 것이라고 하셨다. 우와... 결국 내가 아인소프 카페에서 알고 있는 모든 스태프들을 다 만난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운이 좋아야 이런 만남이 가능할까. 덕분에 내가 일했었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기적이라고 볼 수 밖에.

키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야마구치상에게 오늘의 추천메뉴가 무엇인지 묻자 파스타라고 하셨다.じゃ、それでお願いします。(그럼 그걸로 부탁할게요) 라고 말하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야마구치상이 자기가 사주겠다고 하셨다. 昨日誕生日だったしね(어제 생일이었잖아) 라고 말씀하시면서 축하한다는 말도 건네주었다.

야마구치상이 만들어 준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야마구치상과 함께 긴자에서 일할 때도 야마구치상은 스가모의 파스타가게에서 일일을 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밴드 활동도 하고 있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그래서 난 야마구치상의 팬이다. 한동안 밴드 활동을 쉬었는데, 다음 달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꼭 한국에도 공연을 하러 갈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셨다.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잠시 친구들에게 줄 엽서를 적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라이상白井さん과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시라이상이 어느샌가 4층에서 내려오셔서 나를 위해 만든 작은 케익을 들고 서 계신 것이다. 케익에는 작은 불꽃놀이 장식이 예쁘게 빛을 냈다. 모두가 "키무상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주었다. 아..정말 너무도 감동이었다. 이렇게 생일 축하를 받게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혼자 보내서 조금 외로웠던 어제 생일의 기분까지도 모두 행복함으로 바뀌었다.

멋진 일이다. 도쿄 긴자에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페가 있다니. 정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아인소프 사람들에게 홋카이도에서 사온 작은 선물과 한국의 과자를 선물로 건네드렸다.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서 미안했다.

사람들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근황이라던지 그 동안의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카페에 없는 카와다상도, 이나다군도, 쿠리하라상도 보고 싶다.

시라이상에게 짧은 엽서를 건네고 카페를 나섰다.

시라이상에게,
시라이상에게는 지금까지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도쿄에서 사는 동안 정말 여러가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시라이상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하는 분입니다. 
저도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쿄에 오면 들를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올 한해도 좋은 한 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광활환 우주에서 인간 삶의 가벼움과 하나의 우주로서의 무거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스카이트리 D-124
2012년 1월 18일 도쿄에서 둘째 날

도쿄에서 사흘 있으면서 숙소를 잡은 곳은 미나미센쥬南千十와 아사쿠사浅草의 중간지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하루 숙박이 1,500엔으로 매우 저렴한 곳을 찾아냈다. 사흘 중 이틀 밤은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짐만 보관해 놓을만한 저렴한 곳을 골랐다. 또한 위치는 스카이트리와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도쿄에 살 때 여러 곳을 모두 가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가보고 싶은 장소는 없지만 유일하게 스카이트리만은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운이 좋게도 내가 묵은 숙소에서도 스카이트리가 보였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 감이 왔기 때문에 전날 밤에 스카이트리를 들를 계획을 세웠다. 예상대로 스카이트리까지는 3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스카이트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다. 높은 건물에 대한 갈망이고 인간에 대한 경외심 정도이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좀 더 멀리까지 세상을 볼 수 있고,  그러한 건물들을 지은 인간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존경하게 된다.

현재 스카이트리는 높이 634미터로 최종 높이까지 모두 완공된 상태다. 다만 내부공사와 외관시설 공사가 남아있다. 오픈은 2012년 5월 22일로, 내가 갔던 날은 124일이 남아있었다. 하루 빨리 전망대에 올라가보고 싶다. 다만 입장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될수만 있다면 저 건물의 전망대에 오르게 될 날에는 내게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생겨서 부담없이 올라가고 싶은 소망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자. (나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스카이트리!)

스카이트리를 약 한시간 정도 맴돌면서 사진을 찍고 고개가 아파질때까지 오려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굉장히 인상 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上を向いて がんばろう 日本! (위를 향해서 힘내자 일본!)

분명 작년 대지진 참사가 있고 난 후에 만들어놓은 문구일 것이다. 저 짧은 문구 한마디로 분명히 힘들었던 순간에 힘을 얻게되는 일본인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아마 가슴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겠지.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친구 아키라군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번 대지진으로 인해서 일본인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 절대로 지진이 일어나서 좋았다라는 식의 말은 아니지만, 그 지진으로 인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본 젊은이들이 정말 많아. 내 주위에도 가볍게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했어."

시련을 겪은 만큼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와 그 국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어떤 시련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은 비참해지고, 그 비참해지는 타인의 삶을 보고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련이라고 한다면 다같이 미리 준비하고, 그것이 닥쳤을 때는 함께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군대에 있을 때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가, 삶을 가볍게 살아내야 하는건지, 무겁게 살아내야 하는 건지에 관한 것이었다. 가볍게 살아내자니 진지함이 부족해져버리는 인생에서는 그 삶의 참맛을 못느끼겠고, 무겁게 살아내자니 가볍게 세상을 날아다니듯이 즐기는 존재들이 너무도 부러워보였다. 생각해보면 삶은 가볍게 살아내고 무겁게 살아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어느 순간엔 가벼워질 때도 있고, 어느 순간엔 무거워질 때도 있다. 결코 우리의 능력으로 삶의 이치를 조절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뜻 밖의 시련이 존재하기도 하며, 오락실의 인형뽑기 기계에서 5초만에 500원이 날라가기도 하는 가벼움이 존재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사람은 언제나 때와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점이다. 나의 변화는 곧 우주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곧 지역 사회의 삶이고, 그게 곧 나라의 삶이고, 전 세계의 삶이고 우주의 삶이다. 우리는 광활환 우주에서 인간 삶의 가벼움과 하나의 우주로서의 무거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1년 만의 도쿄 - 혼자여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1년 만의 도쿄
2012년 1월 18일 홋카이도에서 마지막 날, 도쿄에서 첫째 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비행기가 12시로 남들보다 조금 빨랐기 때문에 모두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혼자서 전차를 타고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까지 갔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홋카이도의 눈을 감상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올 그 날까지 삿포로와 안녕~ 할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꼭 여름에 찾아오고 싶다. 홋카이도의 여름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참, 전날 밤에 깜짝 파티가 있었다. 전날 썰매를 타고 오후엔 온천을 즐긴 탓인지 합숙소에 오니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잠이 들었다. 그런데 주위가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서 스무명이 넘는 애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무섭기도 했고 깜짝놀랬다. 내가 맞는건 아닌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때 갑자기 촛불이 밝혀진 케익을 들고 오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아.. 정말 감동이었다. 모두 0시가 되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피곤하다고 먼저 잠들어버렸으니. 밤 늦게까지 잠도 안자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일본에서 맞는 생일의 시작이 정말 멋졌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서 도쿄에 와서는 외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약 2시 반였는데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매우 고민했다. 일단은 짐이 너무 무거우니 숙소에 짐을 가져다 놓아야 할지, 아니면 긴자의 카페에 들러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지, 아니면 시부야에 가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줄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벌써 저녁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향한 곳은 결국 도쿄타워였다! 20kg 가까이 나가는 짐을 들고 도쿄타워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이런걸 이끌림이라고 한다) 왜 도쿄타워에 가지 않았으면 안됐을까를 얘기하자면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쿄타워는 생일에 가면 입장료가 무료이고 케익도 공짜로 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도쿄타워를 향했다. 도쿄타워는 나에게 있어 도쿄를 낭만적인 곳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다.

그런 도쿄타워를 나는 작년(2011년) 생일에 올랐었다. 그러니 정말 딱 1년 만에 도쿄타워에 온 것이다. 아...이건 아무래도 생각해도 너무 멋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당분간 일본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우연히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를 얻어 오게 되고,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다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도쿄에 들러 도쿄타워에 왔는데 그게 정확히 내 생일이면서 1년째 되는 날이라니. 이렇게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주는 카미사마에게 감사해야한다.

 무거운 짐을 도쿄타워까지 들고가는 것은 무척 고생스러웠다. 그럼에도 가슴을 두근두근 떨렸다. 하나의 장소를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건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나에게 도쿄타워 같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동경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건물말이다. 무겁게 끌고온 짐을 도쿄타워에 올라가기 전에 대형락커에 넣고 몸을 가볍게 했다.  생일이라고 말하니 입장권과 케익 교환권을 주었다. 그 때부터 직원들이 나를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작년에는 친구와 함께와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혼자여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홋카이도 여행 (2) 가깝고도 먼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러브레터가 기다리는 오타루小樽

드디어 오타루小樽에 오게 되었다. 오타루는 정말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영화 러브레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봤던 러브레터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중학교 때 봤던 영화의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오타루는 저번 홋카이도 여행 때 꼭 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들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삿포로에서 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달리니 오타루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간에 영화 러브레터의 음악 (A winter story) 를 스마트폰에 다운받았다. 계속 그 음악을 들으면서 오타루를 걸어다닐 생각이었다.

오타루는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갔을 때 엄청난 눈이 내렸는데 새하얀 눈이 정말 아련하게 아름다웠다. 오타루에서는 약 한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모두가 무리지어 다니려고 해서 난 혼자만 조용히 걷고 싶어 따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오타루를 천천히 감상했다.

1주일간 있었던 홋카이도 일정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뽑으라고 한다면 오타루다. 러브레터의 음악을 들으며 눈이 가득 쌓인 마을 걷는 기분은 정말 영화같았다.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눈이 아름답게 보일까. 만약 내 나이의 대학생이라면 어떨까. 25년 동안 겨울만 되면 이러한 풍경을 매일 보고 자랐을텐데 어떤 느낌을 가질까.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이 아름다워보이는 건 이곳에 여행을 온 우리들의 눈만 그런 것이 아닐까. 눈을 보는 눈에 따라 그 풍경의 아름다움이 달라진다.

오타루가 오후 일정에 들어있어서 야경까지 볼 수 있어서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오르골 공방에서 오르골 만들기 체험을 하고서 약간 남은 저녁 식사 시간 때까지 약 5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한번 음악을 들으며 러브레터의 마을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오타루의 밤의 풍경은 조용해서 눈이 내리는 소리만 들렸다.

친구들과 오르골당에서 수많은 오르골을 구경하기도 하고, 유리공방에 가서 직접 유리를 만드는 장인들의 모습도 감상했다.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마을이다. 눈, 유리, 오르골. 뭔가 매우 약하고 깨지기 쉬운 이미지와 마을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러기 때문에 좀 더 조심조심 다뤄야 할 것 같은 이미지.

오르골 공방에서 오르골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몇가지 노래 중에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은 GreeeeN의 キセキ(기적)이었다. 이 오르골 음악과 관련해서는 나름대로의 기적이 있었다.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나중에 적어야겠다.

수많은 작고 아기자기한 오르골이 많았던 이 곳에서는 오르골이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꼭 오르골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송별회
2012년 1월 17일 여섯째 날

 이윽고 송별회라는 시간이 찾아왔다. 홋카이도의 명물을 만드는 공장 견학, 일본의 가정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홈스테이, 여러가지 체험 활동 등으로 알차게 차있었던 일주일 덕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주일은 정말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이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춥고 긴 겨울일 수 있지만 여행을 온 우리들에게는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평생 볼 눈을 이번 일주일 동안 다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들뜬 기분으로 지냈고, 눈 위를 뛰어다니는 모든 풍경은 하나의 영화가 되는 걸 느꼈다.

 이번 프로그램이 교류프로그램이었던 만큼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 간의 교류도 정말 활발했다. 젊은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만 같이 모아놓으면 쉽게 친구가 되지 않은가. 밤 늦게까지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어서 늦게까지 잠을 못자는 밤도 며칠 있었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 추억으로 생각했다. 확실한건 사람은 언제나 놀면서 친해지는 법이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술이 그 역할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그 유대는 깊어진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뉴프론티어가 그랬고, 일본 콜드스톤에서도 그랬다.

 모두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실감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게 가장 즐겁기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분명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야 할 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건 사회 시스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해당된다. 좀 더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 재미있는 사이가 되는 법을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송별회를 하면서 헤어짐 때문에 아쉽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 또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달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만남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난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시켜 나간다. 다음 만남이 주게 될 크나큰 즐거움을 기대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맞이한다.

 누구는 이미 취직을 했고, 나를 비롯한 누군가는 이제부터 취직활동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아직 대학생활의 자유를 좀 더 만끽할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던 이번 교류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입기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교류 프로그램의 가장 큰 의의는 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준비해 갔던 한국 문화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은 너무도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서로가 하는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어느샌가 새로운 책을 읽는 것처럼 생각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런 점들이 당장 각자의 삶에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혹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한 번 대했던 누군가의 삶은 우리의 마음 속에 늘 남아있어서 삶의 길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각 학교의 관계자 선생님과, 일주일동안 계속 함께하면서 즐거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준 일본 친구들, 그리고 재미있는 추억을 함께 쌓아준 한국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홋카이도 여행 (1)

열흘 간의 홋카이도와 도쿄 (1) 출발
2012년 1월 12일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후로 당분간 일본에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 학교의 국제처에서 협정을 맺은 일본 학교와 교류 프로그램을 참가하는 것이었다. 국제도우미로 일했던 덕분에 그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교류의 시작은 삿포로학원대학에서 10월에 우리 학교를 먼저 방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 14명과 상대 학교 14명이 서로 파트너를 맺어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작년 10월에 헤어질 때 모두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그러면서도 두달 뒤에 다시 만나는 걸 기약하면서 헤어졌었다.

이제는 우리가 삿포로에 찾아갈 차례였다. 사실 학기 중에는 너무도 바빠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할 틈도 없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조금씩 일본에 간다는 걸 실감했고 여행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1년 만에 가는 일본이기 때문에 내가 생활했던 도쿄에도 반드시 들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1주일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도쿄에 머무를 계획도 세우기 시작했다. 도쿄에 있는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11시 정도에 도착했다. 내가 삿포로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이 공항으로 오는 동안에 신치토세 공항을 돌아보면서 오랜만에 일본 땅을 밝은 것을 실감하였다. 공항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 때 게산을 해주는 점원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 곳이 일본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삿포로로 더욱 가까이 갈수록 더욱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길 양 옆으로는 1~2미터 정도 되는 눈담을 만들어놓았다. 내 생애 이렇게 많은 눈을 본 건 처음이었다. 기온이 낮았기 때문에 눈이 녹질 않는 것이다. 한 번 오면 계속 계속 쌓이는 것이다. 보통 걸어다니는 인도도 제설이 되어있지 않고 얼음처럼 딱딱한 눈으로 덮혀있었다.

홋카이도는 약 1년 전 쯤에 친구와 함께 온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렇게 많은 눈이 오지는 않고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하는 때였다. 눈을 보고서는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살면 얼마나 겨울이 즐거울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정말 설국雪國이다.

눈이 쌓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이 주는 순수함이라는 이미지가 좋다. 한국에서 눈이 이정도로 쌓인다면 도로 교통에 있어 꽤 위험한 수준일텐데 여기에서는 의외로 자동차들이 빨리 달리는 것 같았다. 눈길위에서 이렇게 빨리 달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 일본의 차들, 그리고 차와 함께 달리는 일본의 전차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무엇보다 일본의 생활 풍경이 몹시 그리웠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소박한 느낌의 집들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환영회
환영회 장소는 기린비루엔(キリンビール園) 일본식 양고기 요리인 징기스칸과 기린맥주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타베호다이(食べ放題)와 노미호다이(飲み放題) 얼마나 그리웠던가! 양고기 요리는 일본에서 살았을 때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다만 먹고 난 후 양고기 냄새가 오래도록 옷에 남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옷을 덮어서 보관하는 특별한 옷걸이도 준비가 되어있긴 했다.)

두달 만에 만나게  된 우리들은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었다 취직이 결정된 친구들도 있고, 이성친구가 생긴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가 흥미를 갖는 대화 주제에 관해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기를 주문했고, 맥주도 계속 리필하였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일본의 생맥주였다. 

일본의 생맥주는 맛있다? 나는 맥주의 맛 차이는 잘 모르겠다. 맛의 차이를 조금 느낄수는 있지만 그 맛의 차이가 맛있다고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맥주를 마시는 것은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를 마시는 것이고,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시기 때문에 맥주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일본의 생맥주는 한국의 생맥주에 비해서 톡 쏘는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마실 수 있는 것이 좋다.

#삿포로 맥주 공장 견학

교류 프로그램 둘째날의 아침이 밝았다. 둘째날의 첫 일정은 삿포로 맥주 공장을 견학하는 것이었다. 맥주 공장 견학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한국에서 하이트맥주 공장을 두 번 견학 간 적이 있다. 역시 한국의 맥주 공장 견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이드해주셨던 분이 조금 더 친절했던 것 같긴하다. 

둘째날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삿포로 맥주 공장 견학 - 아이누 민족 박물관 - 쇼와신잔 - 노보리베쓰 온천에서 숙박

다음으로 간 곳은 #아이누 민족 박물관이다. 

아이누 민족(일본어: アイヌ民族あいぬみんぞく아이누민조쿠[*], [ʔainu])은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 혼슈의 도호쿠 지방에 정착해 살던 소수 민족이다. '아이누'는 신성한 존재인 ‘카무이’와 대비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홋카이도 지방의 아이누어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어로는 '에미시', '에조(蝦夷)'로 불리는데, 이는 사할린 아이누의 '인간'을 뜻하는 '엔츄' 또는 '엔주'의원형으로 여겨진다.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ウタリ: 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일부 아이누 사람들도 있다.일부는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열도, 아무르, 캄차카 반도(5만 명 정도)등지에 살고 있다. 일본 민족과는 다른 북방 몽골리안의 한 민족이다. 개별적인 부족 국가 형태를 지녔으며 아이누족 언어, 즉 아이누어를 가지고 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아이누 민족 박물관에선 실제 아이누족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통 춤과  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 쪽 담당 선생님께서는 공연을 한 사람 모두가 아이누족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평범한 일본 사람들처럼 생겨서 실제 아이누민족일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서도 읽어보니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실제로 아이누족인가 하는 것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으며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종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 아이누족의 인구는 약 20만명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공식 인정은 약 2만 5천명)

#쇼와신잔은 1943~1945년에 밀밭이었던 이 곳이 융기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황가스를 방출하고 있다. 
쇼와신잔을 찾아간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작년 겨울에 친구랑 왔을 때도 이곳에 찾아왔었다. 쇼와신잔에 도착한 시간이 네 시반 정도 됐는데도 정말 어두워져 있었다. 일주일동안 홋카이도의 겨울 밤은 길고 길다는 것을 제대로 알았다.

#노보리베쓰온천 登別温泉
첫 날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간 곳은 노보리베쓰 온천에 있는 호텔이다. 노보리베쓰 온천도 옛날에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온천욕만 즐기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일본식 호텔에서 묵으면서 유카타도 입어보고 온천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호텔의 온천에서 기분좋게 온천욕을 즐기고서 푹 잔 다음날 아침, 후배와 함께 둘이서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서 출발시각이 10시였는데 그 전까지 지고쿠다니(지옥계곡)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노보리베쓰까지 왔는데 온천욕만 즐긴다음 지고쿠다니를 안가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왔을 때도 지고쿠다니는 정말 인상깊은 곳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지고쿠다니는 걸어서 10분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명소인데 왜 일정에 넣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2010년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눈이 많이 쌓여서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사실 이름이 지옥계곡이지 하얀 눈과 수증기가 어울어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절대 지옥이 아니었다. 작년에 왔을 때는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었다.

셋째날 일정 : 미츠이아울렛 - 삿포로돔 - 홈스테이 가정으로 출발

미츠이아울렛에 대한 소개 
미쓰이 아울렛 파크가 홋카이도에 첫 상륙. 해외 럭셔리 브래드를 시작으로, 레디스 ・맨즈・키즈 패션부터 스포츠&아웃 도어, 패션 잡화, 생활 잡화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의 인기 브랜드 128점포 중에 일본 첫 9점포를 포함 58점포가 홋카이도 첫 출점. 또 약 650석의 대형 푸드 코드나 명산품이나 그 고장의 농산물을 풍부하게 모두 갖춘 『홋카이도 로고 팜 빌리지』등 그 고장 분들부터 관광객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축일에는 아이들도 즐길수 있는 이벤트도 개최. 삿포로 중심부에서 차로 약30분, 도오자동차도「기타히로시마 인터체인지」에서 약300m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동차로도 지하철 후쿠즈미역에서도 버스편도 충실해서, 가볍게 외출할 수 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축일에만 삿포로역앞(도큐 뒤쪽)승차장에서 미쓰이 아울렛 파크 가는 직행편도 운행.

미츠이아울렛에서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아울렛은 쇼핑을 하는 곳인데 나는 이번에 일본에 쇼핑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산 물건은 전혀 없었다. 이런 쇼핑 시간을 공식 일정으로 넣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인 우리가 돈을 많이 쓰는게 좋긴 할 것이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것은 콜드스톤 홋카이도 점포의 하나인 키타히로시마점을 방문한 것이었다! 홋카이도에는 두개의 매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년 만에 먹는 일본의 콜드스톤 아이스크림!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구나. 매장의 스태프들에게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니 노래도 두 곡이나 불러줬다.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을 때 이제는 노래 안부른다면 딱 잘라 거절하던 한국의 매장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삿포로돔 札幌ドーム 

삿포로 돔(일본어: 札幌ドームさっぽろドーム, Sapporo Dome)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시에 있는 돔구장이다. 축구장 겸용으로 쓰이고 있는 이 구장은 1998년에 착공하여 2001년 6월 3일에 개장, 현재 J리그 축구팀인 콘사도레 삿포로는 개장당시부터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 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가 도쿄 돔에 홈구장으로 있다가 2004년에 삿포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현재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어 홈페이지도 있다.
http://www.sapporo-dome.co.jp/foreign/index-kr.html

삿포로돔의 이해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블로거의 글 (삿포로돔의 상황)
http://yagoo.tistory.com/7707
http://yagoo.tistory.com/7708

관심 가는 정보
고정 객석수: 41,484석, 최대 수용인수: 53,796명
총 공비 422억엔 (약 5,000억원!!)

총공사비 422억엔은 삿포로시가 전액 부담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일하게 일본에서 흑자를 내고 있다고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회수할 공사비가 없기 때문이다. 즉 삿포로 돔은 시민들의 세금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사카의 교세라돔 같은 경우엔 연간 15억엔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도 굉장한 비용 때문에 돔구장의 건설에 대한 찬반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삿포로돔의 전망대에서 약 30분을 보냈는데 내부가 정말 더웠다. 난방시설보다는 유리안으로 강하게 들어오는 햇볕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매우 평화로워보였다. 눈이 쌓인 잠잠한 마을. 

홈스테이 첫째날
토요일과 일요일은 자기 파트너의 집에 가서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었다. 나의 파트너는 콘노 타카 군이다. 한국에서부터 이미 파트너는 정해져 있었다. 타카 집에 가서 정말 맛있는 저녁도 대접받고 밤 늦게까지 놀면서 매우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다. 
고마워 타카~!

삿포로 시내에서 자유일정
2012년 1월 15일 넷째 날
넷째 날은 삿포로 시내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는 일정이었다. 전날 늦은 새벽까지 타카, 다이스케, 타쿠야와 함께 신나게 놀고서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삿포로에 나와 먼저 나와있던 일행들과 합류했다. 삿포로의 번화가인 스스키노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테레비타워에 올라가 삿포로 풍경을 감상하고 저녁엔 모두 모여 노미카이飲み会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라오케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삿포로 테레비탑
어디를 가건 전망대를 가는 걸 정말 좋아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그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도쿄타워를 비롯해 도쿄에 있는 수많은 빌딩들의 전망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로이코이비토白い恋人 공장 견학
2012년 1월 16일 다섯째 날

공장을 견학하는 것이 이번 교류 프로그램에 있어서 가장 좋은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 올 경우 어느 지역의 공장을 방문하는 것은 왠만해선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견학코스도 잘 마련되어 있고 가이드 분의 안내에 따라 재미있는 사실들을 들으면서 이동하는 것은 단체 관광의 좋은 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단체관광은 정말 안좋아한다. 여행은 혼자 혹은 소수가 좋다. 단체 여행은 생각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간다)

홋카이도의 가장 유명한 명물과자는 바로 시로이코이비토(白い恋人)이다. 이번에 방문한 곳이 바로 시로이코이비토라는 명물 과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말만 공장이지 정말 공장답지 않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마치 과자 궁전이었다. 그리고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장난감들도 모아놓아서 장난감 박물관같기도 했다. 

과연 좋은 팀(팀플레이)은 무엇일까

2011년 가을학기 수강 후기
인적자원개발론(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 – 어재영 교수님

이번 학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어재영 교수님의 인적자원개발론 수업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토론이 일정 부분 차지하는 대학 강의는 많이 들어왔지만, 수업의 전 일정이 토론과 발표로 이루어지는 강의는 처음이었다. 모든 강의가 토론과 발표로 이루어지다 보니 함께했던 조원들과 정말 깊은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적자원개발(HRD)은 기업의 인사관리의 한 분야로서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 구성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이나 학습을 지원하는 활동 및 시스템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조직의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을 배우는 학문이다. 강의에서는 사람을 학습시키고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접근하였다.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사람은 어떻게 학습되는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교수님들 중에서 이처럼 강의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으로부터 논의에 접근하는 분은 많이 안 계신다. (사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그래왔다. 어떻게 곱셈을 하고 나눗셈을 하는지를 배우지만 그걸 왜 배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제외된다.) 그렇게 강의의 근본적인 부분을 놓치게 되면 우리들은 어느새 교과서를 달달 외우거나 계산기를 신나게 두드리고만 있는 것이다. HRD가 인사관리의 한 분야인 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과목이지만 사실 모든 경영학의 학문을 사람과는 떼어놓을 수 없다. 경영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HRD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들어온 경영학 수업들에서 근본적인 물음을 놓치고서 경영학 수업을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다.

경영학의 Human Resource 분야는 사람에 대한 근본 전제 2가지에서 출발한다.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전제는 사실 매우 보편 타당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그 점을 쉽게 잊곤 하기 때문에 수많은 갈등을 빚는다. 각자의 다른 가치관, 다른 성격, 다른 태도,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간극들을 잘 조절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잘 조화시켜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HRD강의에서 우리가 했던 2회의 팀 프로젝트는 그러한 점을 몸소 깨닫고 어떻게 조직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었다.

 HRD강의의 핵심은 팀플레이였다. 팀플레이는 곧 협업이다. 어떻게 하면 그룹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나는 보통 팀플레이를 하면 그룹의 리더가 되어 각자의 역량을 확인한 다음 팀의 성과를 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한다. 사실 그렇게 하다 보면 역량이 뛰어난 어느 개인에게로 일의 분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역량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분량의 일을 요구한다면 팀의 성과는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국제도우미 활동을 하면서도 직면했던 문제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반기 프로젝트에서 우리 팀(5조)은 교수평가에서 최우수 평가(1등)을 받았다. 즉 우리의 팀플레이(협업)가 잘 이루어졌다는 걸 교수님께서도 인정해주신 것이고, 사실 그 부분을 가장 잘 느낀 것은 바로 우리 팀 멤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정말 즐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등록금 100% 활용하기’라는 주제의 프로젝트에 ‘즐거움’을 컨셉으로 잡아 강의실 플래시몹 뮤지컬을 기획하였으며, 수십 번의 연습과 한차례의 실패 끝에 좋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등록금 100% 활용하기 = 대학생활을 즐겁게 하기 = 우리가 지금하고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면서 우린 스스로 우리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던 것이었다.

과연 좋은 팀(팀플레이)은 무엇일까?
2011년 봄학기와 가을학기 각각 한차례씩 대학생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팀 활동을 겪었다. 1학기는 조직설계론 수업이 그러했고, 2학기에는 바로 HRD 수업이 그러했다. 먼저 조직설계론 수업의 팀플을 생각하면 모두가 매우 적극적으로 자기의 역량을 인식하고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 특정 부분에 관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서로가 고생했다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건 정말 상상 이상의 좋은 효과를 만들어내었다. 발표자료 디자인을 맡은 나도 조원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최대한 세심한 부분까지 수정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번 HRD 팀플을 생각해보면 팀원들 모두의 역할의 조화가 잘 이뤄졌다는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업에 가서도 이러한 팀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정말 이상적인 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조장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조원, 그 아이디어에 비판적인 사고로 평가해주는 조원, 그 아이디어를 가공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조원, 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조원, 팀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조원 등. 대학생 팀플에서 유행하고 있는 ‘무임승차 조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말 완벽에 가까운 팀플레이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좋은 성과가 나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팀 활동 덕분에 어떻게 하면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팀 활동을 하면서 남겼던 기록들에도 ‘즐거웠던 협업’의 순간이 녹아있다

맞아요. Human Resource Development의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르겠네요.

제대로 Human Resource Development 하는 중이야!! 

훈훈하고 가족같은 우리 5조 ㅋㅋㅋ 
우리 5조 가족관계도 만들어서 공유하고싶어요 ㅋㅋㅋ 

드디어 대망의 발표가 끝났네요. 다른 조도 너무 잘해서 프로세스와 컨텐츠를 다 기분좋게 봤습니다.  정말로 하반기 동안 어떤 팀플보다도 열심히 하고 많이 모였네요.~ 사무적인게 아니라 정말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어느 새 보니 정말 여덟 사람의 한걸음의 목표가 실천되었네요!  제 개인적인 목표 - 친밀감형성을 통한 성과창출이 정말로 실현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잘될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정말로 성과물도 뛰어나고 과정에 있어서도 여러 관점에서 보게 되고 열정적인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제 시련을 통하여 이제는 우리 팀이아닌 우리 가족처럼 보이더라구. 대학생활 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같아 

다시 HRD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가?’ 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이번 수업을 수강하는 동안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사람의 행동 변화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고 사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과 부대끼며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참신한 수업 방식으로 대학 강의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알려준 교수님과 한 학기 동안 함께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여러모로 나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내게 해준 상반기 8조와 하반기 5조의 팀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사실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 이냐가 아니었다

2011년 1월 11일

학교의 '교류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면 내가 당분간 일본에 가는 것을 힘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국제도우미를 맡게 되면서 좀 더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류프로그램들을 폭넓게 알게 되고 덕분에 1주 단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 1년 만에 다시 일본 땅을 밟게 된다.

가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어서 가는 것도 불투명해질 뻔하고, 지금 이 시기에 과연 일본에 가는 것이 옳은가라고 스스로 고민도 많이 했지만, 막상 출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일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일본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전해 받고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잠시나마 잊고살았던 '소중한 삶의 방식'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이번 일본여행을 통해서 주위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면서까지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을 제대로 재충전해서 올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올 해는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일본에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쾅쿵쾅 설렌다.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살아온 길이 있다. 그 길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의미한다.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본 여행에서, 사실 '일본'이라는 것은 그 또한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1년 동안 살았던 나라의 이름이 '일본'일 뿐이다. 내가 맺은 관계는, 나라는 개인과 바다 건너 어떤 개인들과 관계였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사실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 이냐가 아니었다. 그 상대방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서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온전한 진심으로 대하는게 중요했다. 그게 내가 일본에서 일년을 살면서 느낀 것이고, 그러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번 여행도 일본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이번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는 동기를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람은 늘 변화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그럼에도 그대로고 늘 제자리다.

2012년 1월 9일

2010년 3월 해군 군복을 벗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2년간의 모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눈시울을 붉힐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매우 담담했다.전역식 현장에 울려퍼지던 찐한 애국가의 가사가 아련하게 나의 심금을 울렸을 뿐이다. 군생활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은 딱 두번인데, 한 번은 내 몸이 너무 아픈데도 선임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으로 축구를 했던 날이고, 또 한 번은 생활반장 임기를 마치고서 후임에게 생활반장 뱃지를 넘기던 밤이었다.

2010년 2월 2일 D-48
어제 생활반장(내무반장)을 내려놓았다. 매우 감동적인 교대식이었다. 306호의 귀염둥이 뽀로로가 생활반장의 교대식의 사회를 보았다. (정말 재밌는 친구들이다.) 생활반장을 마치는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부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울컥 한 것이다. 날 성장하게 해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너희들 덕분에 깨닫게 된 것이 정말 너무도 많아. 나도 내가 생활반장을 맡기 전까지는 이렇게 까지 너희들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 힘든 일이 있기도 했고,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 부족한 생활반장을 따라줘서 정말 너무 고마웠어. 너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너희들에게 배우게 된것도 정말 많고, 나 스스로도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
중고등학교 시절 반장과 군대의 내무반장이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까. 나눠야 되는 짐이 더 많다는 것 아닐까. 어느 한 사람 이탈자 없이 무거운 짐을 같이 나눠들어야 하는 것. 3개월 동안 짧은 시간동안에 좋은 후임들을 이끌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 집에 가는 그날까지 즐겁게 지내고 싶다. 지금 이순간은,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는 다른 군인들이 부럽지 않다.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멋진 작업애를 가졌으니까.

누구나 하는 생활반장이었고, 으레 있는 교대식이었는데도 왜 그렇게 격한 감정이 몰아쳤던 걸까. 제작년 이맘 때쯤이면 난 군대에 있었고, 거기서 난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2년 이란 시간동안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몰라보게 바뀌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먼저 바뀐 것이지만, 사실 그 보다 더 크게 바뀐 것은 나를 둘러싼 대상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바뀐 것이다. 참으로 2년이란 시간이 한 사람을 바꾸기엔 충분하고도 충분한 시간이란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날의 일기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나의 일정한 사고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가끔 그 감정이 고조되어 평상치 접하지 못하는 어휘들로 표현이 되기는 하지만 결국 나라는 모습은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어느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이번에 학교의 교류프로그램으로서 일본에 열흘을 다녀오는 것도 그렇다. 부모님은 일본이 대지진으로 위험할 것이라고 가지말라고 극구 반대하고 계시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고서라도 반드시 다녀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날의 일기장에도, 부모님에게 걱정만 끼쳐드리는 나는 너무도 불효자란 말만 되풀이해서 적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불효자의 모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나의 모습이다.

사람은 성장하고, 늘 더 나아지고, 늘 변화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그럼에도 늘 제자리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의 모습임에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걱정을 하고 누군가는 걱정을 끼치고,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는 대의를 말하고 누군가는 대의를 욕하고,,

늘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못 얻은 채

당신은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못 얻은 채 시들어 버리고 인정받지 못했는지 아는가? 그런 사람은 사실 한 명도 없다.

-재능 연구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케빈 래선드, 새뮤얼 웨일런

<우리 안의 천재성>(데이비드 셍크 지음)

2012년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

2012년도 계획
2012년 1월 1일

휴학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이번 해는 나의 마지막 대학생활을 보내는 해이다.아.. 내가 벌써 4학년이 된다니... 아.. 시간 정말 빠르다.. 2006년  처음 서울로 대학을 와서 모든 지하철 역사마다 꽉꽉 차있는 사람들, 거리의 높은 빌딩들을 신기하게 쳐다봤었는데 이젠 더 이상 '서울'이란 도시가 보여주는 그 어떤 모습에도 나의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 이번 한 해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앞으로 어느 곳에서 생활을 이어나갈지 정해질 수 있는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이란 곳에 계속 머물지, 고향으로 내려가게 될지, 아님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될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게 될지..사람이 어느 곳에서 사는가 하는 것은 '삶의 모습'을 좌우하는 아주 커다란 것이다.

새해가 되면 늘 꺼내보는 시가 있다. 2학년 때 수강했던 <교육과 인간>이란 교양강의에서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시다.

 첫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1월 1일의 나는 어떤 첫 마음을 가지고서 2012년을 시작하는가. 2012년은 내가 평생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될 수도 있는 해다. 평균수명의 길어진 시대에 한 사람이 평생 단 하나의 직업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려워서 두세가지 직업을 가지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의 첫 번째 직업이 무엇이 되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나는 직업을 선택하며 2012년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직업을 선택한다라...정말 그처럼 어려운 일도 있을까...아직 내가 무슨 일을 해본 것도 아닌데 만약에 내가 선택한 직업이 그게 나에게 안맞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면..내가 선택한 직업이 나에게 맞는다고 해도 문제다. 나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나의 만족감이란 부분이 일정정도 채워지는 상황에서 생기는 마음이며 내가 그만한 만족에서 그칠경우 다른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더 큰 만족감을 평생 놓치게 된다..

이주연 아나운서가 자신의 사회 초년생일 때를 회상하면서, 정말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자기한테 맞는 일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만족한다라고 했는데,,  사실 그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닐까..

어쩌면 어떤 사람에게 맞는 직업, 맞지 않는 직업 같은 것은 정해져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은 그 또한 마음먹기에 달린 일 아니겠는가. 공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운이 좋게)공부라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공부를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과 공부는 맞지 않다며 생각해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즉,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결국은 그 또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어떠한 일을 하든 간에, 맡든 간에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 아닐까. 개인에겐 일의 즐거움이 중요한 것이고, 그러한 즐거움이 성과로 이어진다면 회사에게도 좋은 일이다. 

오늘 저녁에 같은 과의 형과 식사를 하고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가 배우는 학문에 대한 얘기를 조금 했었다. 삼성과 애플의 마케팅에 대한 얘기부터 카페 문화의 거품에 대한 얘기까지. 그리고 우리가 한 학기 동안 배웠던 내용들이 무엇인지. 내가 4년 동안 배운 학문이 경영학이라면 나는 그 학문을 실생활에 적절하게 응용하여 실제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행동, 운영관리, 국제경영, 마케팅, 재무관리, 인적자원관리, 인적자원개발 등등 내가 각 학문에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데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그건 차치하더라도 경영학에 대한 학문적 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는 있을까.

내가 올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러한 의문들까지도 폭넓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대학에서 배운 학문들을 어떻게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을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가치를 창출해내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을지까지 

그래서 2012년의 나의 계획은 이렇다.
영어, 일본어, 한자(가능하다면 한문도) 열심히 공부하기
정기적으로 봉사활동하기
운전면허 따기
악기 하나 배우기 (YB와의 밴드프로젝트 달성하기!)
공모전 4개 이상 도전하기!
졸업 논문 쓰기
전세계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기 (하루에 두사람에게 안부 메일 보내기!)
4년동안의 대학 생활 정리하기 (4년간 내가 배운 과목을 정리하기)
국제도우미 활동 열심히 하기 (여름방학 International Summer Program, Japan Summer Program 멋지게 준비하기)
영화 일주일에 두 편 보기!
책 일주일에 세 권 읽기!
헌혈하기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배우기

대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맞게 온전히 '대학생으로서' 지낸 1년

2011년 12월 31일 2011년 마지막날

크게 쓸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짜에 글을 남기고 싶어서 남겨본다.

2011년 365일이 모두 다 지나갔다. 작년 이 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도쿄 시부야의 콜드스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서 주위의 가게들로부터 많은 음식을 받아서 맥주를 마시며 축하파티를 했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시부야 한복판으로 나가서 길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해피 뉴이어"를 외치면서 새해를 기분좋게 맞이 했었다.

나의 2010년 마무리와 2011년의 시작은 시부야에서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깨닫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본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이 그리웠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2011년의 초반에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다. 일본에 있는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확인하면서,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서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만큼'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이 다시 내게 찾아올까를 고민하며 우울한 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물론 그러한 걱정은 수많은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보니 어느새 조금씩 잊혀져갔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년에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욱 생각나는 저녁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운 2010년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땠을까. 올해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해였을까. 

아까 이번 학기에 알게 된 형과 식사를 마치고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남은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특별한 약속이 없었기에 난 그저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형에겐 오늘이 20대의 마지막 날이었다.원래 연말에 자기가 20대를 어떻게 보내왔었는지 쭈욱 연대기 같은 걸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대 마지막 날이라..나도 나중에 내가 마지막 20대를 보내는 날에 나의 20대를 정리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20대의 마지막날에 올 한해 2011년을 어떻게 회상을 하게 될까. 

2006년 대학교 1학년, 서울 생활의 시작과 설렘, 서울의 정말 많은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영화동호회 활동, 건금연 등등 
2007년 대학교 2학년, 콜드스톤 아르바이트, 1년 가까이 했던 아르바이트
2008년과 2009년 해군 복무
2010년 일본 워킹홀리데이
2011년, 3년 휴학 후 다시 복학하는 첫 해, 그리고 3학년

2011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이켜보기 위해 지난 날의 기록들을 꺼내어보자.

1월과 2월은 정말 힘겨운 시간이면서도 나에겐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너무 귀중한 시간들이었다.일본에서 사귀었던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들로부터 송별회에 초대되고,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일들이 무척 힘겨웠다. 

いちなら何をやっても、大丈夫だと思うし、心配はしてないけど今回日本で得た経験が必ず力になると思う. ☆なんでもやってやろう!次に会える時が本当に楽しみだ (쿠리하라상이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 이치라면 뭘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얻은 경험이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뭐든지 해버려! 다음 만날 때가 정말 기대된다.

그렇게 힘겹게 이별을 하고 돌아와서 난 대학 복학을 준비하고, 복학하고나서는 다시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2011년 봄학기엔 처음으로 고시원에서 생활을 해보았다. 고시원이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생활해보니 의외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고시원 생활도 나름대로 재밌게 해나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고시원은 많이 청결하지 못해 안 좋은 냄새가 많이 났었다. 고시원에서 살기는 했지만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새벽 3시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8시에 수업시작에 맞춰 나오거나, 아침 4시에 도서관에 오기도 했었다. 딱히 할 일은 없더라도 도서관에서 있는게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도 고시원과 도서관이 걸어서 5분거리로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 고시원보다 더 좋은 면학 환경이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마음이 좀 더 복잡해진 것 같다.1,2학년 때는 오히려 진로를 확실히 정해놓고 그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었는데,3년의 휴학기간 동안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져 버린 느낌이다.2년의 군생활이 1년의 일본 생활이 나를 많이 변화시켜 놓은 것 같다.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건 다들 좋은거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좋은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학생식당을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는 1시간 동안 계속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살지'에 대한 얘기만 나누었다.'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긴긴 꿈을 꾸다가 이제서야 잠에서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아무 근심 걱정없이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일본에서 1년을 보내다보니 현실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던 걸까.
복학 첫 날의 마음 2011년 3월 2일

나의 2011년 1학기 3,4,5,6월은 정말 많은 도전과 실패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본격적으로 덮쳐오기 시작하면서 남들처럼 뭔가를 하나 더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대외활동에 도전하였지만 1차, 혹은 최종 면접에서 주르륵 미끌어져 내려갔다. 그때는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역시 세상에 나보다 뛰어나고 유능한 대학생들은 정말 많구나라는 걸 실감하였다. 많이 지치는 시간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1학기 때 들었던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교양과목 때문이었다. 

 <僞學日益 僞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나날이 보태는 것이고,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나날이 덜어내는 것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것이 유가이고, 후자를 강조하는 것이 도가의 사상이다.

뭔가를 배운 다는 것, 즉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매듭을 묶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계속 묶어가기만 한다면 공간이 좁아지고 나중에는 풀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묶였던 매듭을 한 번 푸는 순간 매우 넓은 공간이 생긴다.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묶으면서 풀 줄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이란 묶고 풂, 들고 내려놓음의 연속이다.

여자와 남자의 경계를 허물면 ‘사람’이 되고,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면 ‘생물’이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순간,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는 어느 정도 아름다워 질 것”

이 수업으로 인해 나의 가치관의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고, 그와 같은 맥락인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의미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노력도 해보는 시간들이었다. 1학기는 3년만에 복학한 생활이었던 만큼 대학생활에 더욱 적응하려고 애를 썼고 덕분에 대학 생활 중에 가장 좋은 학점을 받은 학기가 되었다. 특히 조직설계론과 환경분석론 강의는 다시 한번 대학생활의 배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업이었다.

모든 시도가 떨어지고 나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것은 우리학교의 국제도우미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국제도우미에 합격하였고, 국제도우미는 그 이후의 나의 학생 생활을 아주 크게 바꿔놓았다. 국제도우미는 학교의 국제교류처에서 일하며 국제 학생들과의 교류를 돕는 일을 하는 일이다.  전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약 60여명의 학생들과 그리고 일본에서 온 40여명의 학생들과 나는 잊지못할 여름방학을 보냈다.

60명 모두에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를 친절하고 좋은 나라로 기억하고 그들 모두가 평생 잊지 못할 젊은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러 와준다면 좋겠다고,,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름방학이 되었으면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즐거움과 한국 사람이 주는 감동을 받았으면 했다.
-국제도우미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목표, 2011년 7월 26일

우리는 한 달 동안에 정말 놀라운 일을 이뤄냈다. 우리는 봉사활동과 같은 특별한 목표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음에도엄청 친해지고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저 우리는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그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에 무척이나 흥미를 가졌다. 정말 We Are The World 그 자체였다.

한국의 대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학생들과 소통을 하는게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를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Summer Program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많은 친구들이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꼭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고들 말하였다. 내가 한 일은 정말 적지만 나의 목표를 조금이나마 달성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그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렇게 2학기가 되었고 2학기는 나에게 또다른 의미에서 도전의 한학기였다. 내가 비록 경영학과이기는 하지만 경영학 말고도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들이 많이 있으니, 다른 전공 수업도 들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불교, 심리학, 정치학 등의 수업에 참여하였다. 내가 정말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대학생이란 시간이 최고이니, 이 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학점이 기대보다 낮게 나와서 실망도 조금 하였지만  내가 그 수업을 참여해서 얻은 것은 경영학 전공 수업에서 얻은 것들 그 이상의 것들이었다. 그것에 만족하였고, 다음 학기에도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들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2학기의 하이라이트는 인적자원개발(HRD) 강의였을 것이다. 3년간의 대학 수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 매시간 토론을 하면서 토론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수업 방식이었다.기말 프로젝트로 '등록금 활용하기'를 주제로 하여 학생들을 동기부여 시키는 과제가 부여됐는데 우리 조는 강의시간 플래시몹 뮤지컬을 하여 교수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들과 정말 소중한 인연을 쌓은 것이었다. 나의 3학년 후반을 즐겁게 마무리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의 2011년 한해는 어땠을까.
1학년, 2학년 때보다 대학생으로서 온전하게 대학생활의 묘미를 즐긴 한 해였다. 시험기간엔 밤새서 공부를 하고, 프로젝트의 리더를 도맡아서 하고, 대학생활에 영원히 남을 멋진 추억도 만들고,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줄 교양강의를 만나고, 멋지 대학 동료들을 만나고,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다해보기되 하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영화를 많이 보러다니지도 않고,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의 1,2학년 때와는 달리 특별한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 없는 한 해로 기억될 수 있지만  이번 해에는 대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맞게 온전히 '대학생으로서' 지낸 1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이젠 나도 4학년생이 되는구나. 걱정도 있고 희망도 있지만 일단은 그런 건 접어두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201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음악은, 일본에 있을 적 쿠리하라상이 나에게 불러주었던 'ゆず 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 적당할 것 같다. 

"오늘은 어제의 슬픔도 미래의 불안도 전부 그만두고
꿈을 꾸며 아침까지 웃자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처럼
눈물이 날 정도로 아침까지 웃자.....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처받은 마음도 하늘에 날려버리고
잠시 발밑을 봐보자.
깨닫지 못했지만 분명 그곳에는
잊어서는 안 될 마음들이 분명 있으니까.
변해가는 삶 속에 잃는 것도 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살아있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알것 같으면
아침까지 웃도록 해요" ゆず(유즈)의 友達の唄 (친구의 노래) 가사 중

다양성의 가치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연말에 그 해 본 영화와 읽은 도서들을 정리해 온 것이 벌써 6년째다. 기록해놓지 않으면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해에 어떤 영화들을 봤었는지 쭉 훑어 내려가다 보면 영화의 장면들도 빠르게 지나간다. 한 번 보고 묻어두기엔 좋은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정리를 해서 가끔 기억을 꺼내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나에게 그 해에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책을 읽었는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숫자가 내가 접한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을 접한다는 것은 한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뜻하는데, 그러한 만남에서 다양성이란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접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늘 멀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은 편견에 사로 잡히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정치가 대표적이다.) 영화와 책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당연히 그 선택의 다양성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한 달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편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한 달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화를 선택할 때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모처럼만에 보는 영화이기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재미있어야 하고 자신의 취향과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꼼꼼하게 영화평들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에 반해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를 보는 사람에겐 전자의 경우보다 영화 선택의 기준이 까다롭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접하면서 뜻밖의 보물 같은 영화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듯이 영화와 책이란 것도 그렇다.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고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인연을 놓치듯이 소중한 영화를 놓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좋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나도 물론 취향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영화음악을 극히 좋아하고, 액션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나만의 취향에 빠져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돌아볼 일이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모르는 가요가 어찌나 많던지…

2011년 영화 결산

2011년에 본 영화들을 결산해 보고 싶어도 그 동안 정리해놓은 게 없어서 불가능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왜 올해는 자주 보지 않았던 걸까.
매일 같이 동호회 사람들과 극장에 다니면서 영화를 보던 때도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래도 정리해보니 서른 편 정도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많이 아쉬운 영화도 있는 반면 힘들 때 힘이 돼준 좋은 영화들도 많이 있다.
이번 해에 본 영화 중 베스트를 뽑는다면 <세 얼간이> , <Away we go>, <머니볼> 일 것 같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리얼스틸>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올해 본 영화의 대부분은 역시 영미권 영화이다. 그 외 일본영화 5편, 한국영화 3편을 보았다. 일본영화 5편 중 3편은 대학교 강의시간에 본 영화인데 신기하게도 3편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였다. 한국영화를 3편밖에 보지 못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근래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로맨스와 코미디는 한 편도 없고 모두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뤘던 <아이들> <도가니> <고지전> 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외화보다는 한국 영화를 챙겨보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 영화를 더 챙겨봐야겠다는 마음이 있다. 한국 영화를 싫어해서 안 본 것은 아니고 단순히 취향의 문제이다. 나는 영화관에서의 영화관람이 주는 감흥이 극대화되길 원하고 대개 그런 영화들은 할리우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꼭 보자! 라는 계획을 세워서 좀 더 다양한 영화를 통해 세상을 넓게 바라보도록 해야겠다.

1 라푼젤 미국
2 아이들 한국
3 걸리버 여행기 미국
4 블랙스완 미국
5 킹스스피치 미국
6 아이엠넘버포 미국
7 고백 일본
8 소스코드 미국
9 캐리비안의 해적4: 낯선조류 미국
10 세 얼간이 인도
11 악인 일본
12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미국
13 쿵푸팬더2 미국
14 127시간 미국
15 이키루 일본
16 어웨이위고 미국
17 엘리자베스타운 미국
18 라쇼몽 일본
19 7인의 사무라이 일본
20 리플리 미국
21 머니볼 미국
22 미션임파서블4 미국
23 도가니 한국
24 트랜스포머3 미국
25 해리포터:죽음의 성물 미국
26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미국
27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미국
28 하트비트 캐나다
29 영매 (강의시간) 한국
30 겅호 (강의시간) 미국
31 콜롬비아나 미국
32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미국
33 리얼스틸 미국
34 고지전 한국
35
퍼펙트게임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