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1일
새학기가 시작한지는 어느덧 일주일, 3월은 어느덧 3분의 1이 지나갔다. 꽃샘 추위라는 건 도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풀리면서 그 동안 얼어있던 몸과 마음에 봄의 기운이 파릇파릇 새싹처럼 돋아나는 것 같더니 꽃샘 추위 때문에 돋아나던 새싹도 금새 다시 꼬리를 내리고 옴싹 달라붙어있다. 아니나 다를까 2주간 즐겁게 외국인 친구들과 쌩쌩 놀러다녔는데, 지금은 기숙사에서 외출하기가 힘이 들 정도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 이 놈의 감기 때문에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 반찬이 나와도 맛이 있는 줄 모르겠고 원래 먹으려고 펐던 밥의 반절밖에 못 먹고 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주말이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하늘이 좋은 날이었다. 오후엔 학교 앞으로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무려 7년 만의 재회다. 그동안 연락을 종종 하고 지냈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중학교 하물며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 친구의 느낌'은 언제나 여전히 그 사람에게 남아있다. 오늘 만난 그 친구도 고등학교 때 착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을 오랜만에 만날수록 그 사람이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기대를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약간은 서운한 느낌도 있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고마움도 있고 그렇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이과였고, 나는 문과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고등학교 시절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나 나나 기숙사에서 지냈고, 사실은 조금 공부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특별반에 있었기 때문에 공통의 관심사를 화제 삼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둘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것에 그렇게 재미를 느끼진 못했던 학생들이었다. 서로 재미를 느끼진 못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에 대해 만족을 느끼는 학생이진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올해 6월에 전역을 앞두고 있는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데 덕분에 즐거운 군대 얘기도 많이 들었다. 군대 얘기는 그냥 언제들어도 재미나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을 못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군대 얘기가 재미난 이유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군대 말고도 더 있을까.(물론 더 있을 수도 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은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잘도 빚어낸다.) 나도 내가 해군에서 복무한 2년 간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면 몇날며칠이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원에 있는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친구는 동서울터미널로 갔고 나는 오후에 남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하고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란 책에 심취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좀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우연하게도 지금은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같은 학번의 형을 만난다. 금융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인데 그 형에게서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들었다. 회사 생활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나의 진로와 미래에 관련된 얘기이기도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결정한다. 일요일에 학교 도서관의 같은 열람실에서 우연히 형을 만나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엄청난 우연과 필여의 힘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감기에 걸려 허약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도서관에 온 '우주적 행위의 결과물'은 수많은 반대 작용을 모두 극복해야만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를 기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는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오늘 도서관에서 마주한 그 형이 하는 얘기도 결국은 인생의 '본질'에 대한 얘기였다고 본다. 실존으로서의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관한 문제말이다.
일단은 일주일을 마감하고 일주일을 시작하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심야영화 한 편을 예매해놓았다. 부디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아픈 몸이 다시 활기를 얻어 봄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