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필요한 것을 익히고 배우는 방법을 만드는 건 어떨까

책 - 네인생인데 한번뿐인데 이대로 괜찮아?

파격적인 인생에 필요한 조건 만들기

두려움 극복하기

게임의 규칙 변경하여 관습에 대항하기

당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허락이 필요없듯, 소규모 창업을 할 때도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배움 혹은 공부란 무엇일까?
당신의 첫 번째 목표가 진로 준비가 아니라 진짜 학업이라면 오히려 혼자서 해나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당신이 배움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만 큰 빚을 지거나 쓸데없이 바쁘게 지낼 생각이 아니라면, 스스로 필요한 것을 익히고 배우는 방법을 만드는 건 어떨까?
자발적 경험 및 경력 쌓기 대안 대학원 1년 프로그램
- 이코노미스트 구독 신청을 하고 매주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읽는다.
- 전 세계 국가 이름, 수도, 현 대통령이나 총리의 이름을 외운다.
- 세계일주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마일리지 제도를 이용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한다
- 유대교의 토라, 기독교의 성경, 이슬람의 코란, 불경까지 전 세계 주요 종교의 기본 경전을 읽는다. 교회, 모스크, 유대교 회당, 사찰을 찾아가 본다
- 외국어 학습 팟캐스트에 등록하고 1년 동안 일주일에 5회씩 20분짜리 강좌를 듣는다. 연습할 겸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외국어 학습 모임에 나가본다.
- 당신이 정한 한 해 동안 최소한 새로운 기술 세 가지를 습득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해당 기술에 능숙해지는 것이다.
- 최소한 30권의 비소설 분야의 책을 읽고 20권의 고전소설을 읽는다
- 체육관이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닌다.
- 간단한 발표나 연설을 편안하게 생각한다. 
- 블로그를 개설하고, 기본 포스팅 일정을 세우고, 1년 동안 그 원칙을 지킨다. 
- 글쓰기 공부를 한다.
- <한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를 읽는다.

넘치도록 사랑하라

넘치도록 사랑하라.
인생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

우리에게 시련과 역경이 찾아오는 데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나라와 이 세계가 커다란 난제들과 마주치는 데에도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모두를 하나로 엮는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함을 깨닫기 위해서, 다시 말해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다.
삶이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당신만 가혹한 삶의 주인공이 아니다. 당신 혼자만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떤 사건을 목도할 때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타인의 눈동자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삶 속에서 우리의 고통과 두려움, 걱정과 괴로움을 고스란히 목격하는 순간, 우리는 고립과 외로움의 벽을 넘어 공감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세상 그 누구도 홀로 떨어진 외딴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 또는 하지 못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것이다.
혼란과 괴로움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놀랍고도 아름다운 사실은, 우리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할수록 우리가 먼저 타인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시련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결국 그것이다. 시련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라고 다그친다. 내게 필요한 것, 내게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데에서 벗어나라고, 옆 사람과 무엇을 나눌 수 있지 생각해보라고. 타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사랑의 울타리를 더 크게 넓히라고 재촉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고 또 당신 자신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하라. 고통스러운 시련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가 당신 앞에 놓여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힘든 시련 속에 있더라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기대라. 걸어가도 좋고 뛰어가도 좋고 기차나 비행기나 버스를 타도 좋다. 지금 당장 당신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그 사람에게 가라.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사람이든, 직장동료든. 어쩌면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라. 그는 당신의 영혼을 볼 줄 아는 사람일 것이며, 당신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일 것이며,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고 당신을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당신과 관심사를 공유하며, 당신에게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주고, 당신이 직장을 구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일 것이다.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줄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 첫 번째 진단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의사를 찾고 있을 때 당신에게 훌륭한 의사를 소개해주는 사람, 당신이 알지 못하던 유용한 동종요법을 가르쳐주는 사람, 당신이 찾던 완벽한 가격과 품질의 서재용 의자가 생활정보 웹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막 나온 좋은 방을 당신에게 소개해주는 사람… 그들 모두가 당신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을 때 당신을 받아주는 사람, 당신이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정원에서 딴 과일을 당신에게 나눠주는 사람. 그들 모두가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사랑뿐이다.
결국 사랑만이 가장 중요하며 사랑만이 삶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말을 수없이 듣는다. 또 그 말이 틀리다고 고개를 내저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어떤가? 우리는 사랑을 나누기 위한 연인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만,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쏟는 일에는 도통 무관심하다. 왜 우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거나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와야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왜 우리는 타인을 돌아보는 일을 맨 마지막으로 미뤄둘까? 스포츠 관람을 하거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일, 이메일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확인하는 일이 왜 항상 더 중요한 걸까?
우리가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이 우리 영혼의 눈을 흐릿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물질적인 부가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고요함이 아니라 소음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아침 햇살이 아니라 인터넷과 전자 기기들이 영혼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것 같다. 하늘이 우리에게 지독하게 괴로운 시련을 내려주어야만 사랑의 힘에 눈뜨도록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사랑은 관계에서 나온다. 감정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사랑은 친밀하게 교류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강력한 에너지 장이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우리와 동물 사이에도 흐르고, 우리와 자연 사이에도 흐를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그런 순간은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다. 사랑이 피어 오르는 순간,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는 순간 말이다. 특히 시련이 찾아온 시기에는 그런 수많은 기적의 순간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있다. 단, 그것을 찾아낼 줄 아는 밝은 눈을 지녀야만 볼 수 있다.
갈구하고, 희망하고, 청하라. 어떤 의미에서 당신에게 시련이 닥친 이유는 당신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또 우리 인류에게 시련이 닥치는 이유 역시 인류 모두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베풀고 나누고 받고, 도움을 주고 서로 교류하고, 마음의 그릇을 넓히고 서로에게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시련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의 국경에 꿈은 없다. 박희정

나의 꿈에 국경은 없다. 박희정
학벌, 그것은 넘을 수 있는 벽이다.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학벌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항상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 끝까지 성실히 하도록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교수님께서도 기득권의 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기득권층이 끝까지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자주 보셨다고 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 하셨던 것 같다.

각자가 가야할 길은 다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며,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창조의 시작이다.
나의 열정과 도전은 자연스레 학벌이란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학벌이 아니라 당당히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일정기간 성실도의 표현인 학벌은 실력 앞에서 큰 위력이 없었다. 그것을 나는 많은 논문, 인턴 그리고 국제대회 및 국제 콘퍼런스 등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은 핑계를 대려 한다. 그 핑계를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하향조절하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정당화하곤 한다. 나는 과거에 성적이 나빴으니 이번에 또 안 될 것이다. 당연하지 뭐, 이런 식으로 원래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결론지어 버린다. 나는 이런 학교에 왔으니 당연히 이 정도밖에 안 될 거야 혹은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미리 자신의 능력에 선을 긋고 원대한 꿈을 재단하고 만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결실을 본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물을 주고 햇빛이 비치면 싹이 자라 나무가 된다. 나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하면 다 한 만큼의 결실을 보게 마련이다. 원대한 꿈이라는 씨앗을 뿌려 식지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면 싹이 나게 마련이고, 그 새싹은 물과 햇빛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달이 갑자기 지구로 다가와 충돌할 수는 없다.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은 열매라는 기적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꿈의 씨를 뿌리지도 않고 또한 열정과 도전이라는 물과 햇빛을 주지도 않고 열매를 바랄 수는 없다.


“희정아, 한자해라! 딱 한 잔만!”
“형, 저 술 끊었어요.”
“희정아, 그러지 말고 딱 한 잔만 해! 여기 신입생들로 많은데…”
“형 미안한데, 저 정말 술 끊었어요. 저 술 안마셔요.”
“희정아, 알았다. 그러면 술잔 받기만 해! 안 마셔도 좋아.”
“형, 죄송한데, 술잔도 안 받을래요.”
“야! 박희정, 여기 신입생들로 많은데, 술잔도 안 받으면 내가 뭐가 돼. 빨리 잔이라도 받아.”
“형, 미안해요. 저 술잔 안받을래요. 제가 내린 결단을 흔들고 싶지 않아서요.”
“야. 희정! 지금 여기 신입생이 10명 넘게 있는데, 내 얼굴도 있잖아. 그러지말고 잔만 받으라니까!”
“형, 미안해요. 저 안 받을래요.”
“그래, 이 새끼야! 너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얼마나 오래 사나, 내가 두고 보겠어”
나는 스스로 나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싶었다. 선배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결단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서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고시원 내 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방은 내가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딱 맞닿을 정도의 크기다. 책상 하나에 의자 그리고 누울 자리. 1평도 안 되는 이 좁은 곳에서 문제가 있다면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공부할 때는 방바닥에 두고, 잘 때는 의자와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책상 위에는 행운목이 하나 있다. 나의 책상 앞에는 더덕더덕 여러 가지가 붙어있다. 포스트잇으로 메모해 둔 것들과 신문의 관심 있는 기사, 그리고 읽으면 힘이 나는 내용들로 책상 근처의 벽은 어질러져 있다.

“내가 걷는 길을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 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길이 조금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냐.”

배고파 본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

나는 항상 목표를 높게 잡았다. 나를 더 훈련시키고, 계속해서 도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SKY학교의 학생들과 경쟁하다가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바꾸었다. 더욱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서였다. 그럴수록 나의 꿈과 목표는 계속 커졌으며,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무대로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꿈과 목표는 나 혼자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각별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까지 서로 의견을 물어보곤 한다. 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에 합격한 날도 아론은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아론은 한국에 제자들도 많다. 또한 공부, 일, 음악, 인간관계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벽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는 친구이다.
“형은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누구보다 더 그것을 잘 알아! 형은 기본이 튼튼하고 깊이가 있어. 그것을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형! 나는 형이 꼭 성공할 거라는 것 역시 확실히 알아.!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론은 날 진지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주고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버드 출신의 박사가 나와 함께 꿈에 대해서 얘기하고 비전을 공유해 주었다는 것. 이것은 내 마음의 기준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어느샌가 마음속으로는 나도 하버드 박사가 되어 잇는 것이 아닌가. 나와 삼겹살을 먹고 동네를 걸어다니며 농담을 하던 그 친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따.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너의 전공지식만 충분하다면 미국이든 영국이든 혹 유럽의 어디에서건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봐! 중요한 것은 너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지! 너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충분해!”경제학과 인권의 접목.

그는 항상 나에게 “영어라는 언어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와 나는 많은 쟁점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그 때마다 항상 그는 나에게 이 말을 잊지 않았다. 문제는 ‘언어’가 아님을 늘 상기시켜주었다. 그의 말인즉, 커뮤니케이션만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어를 제 2외국어로 쓰는 나와 같은 사람이 영어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아주 명확하게 정리를 해 준 친구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의 전문 용어를 알고 그에 대한 관련지식을 이해한다면, 그래서 그것을 통해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된다는 것을 그는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언어에 노력을 들일 시간에 차라리 자신의 전공분야 공부에 더 매달릴 것을 나에게 주문했다.
이렇게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로스쿨뿐만 아니라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는 정말 뛰어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혹시나 틀릴까봐 겁이 나서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인 이면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다니엘의 충고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세계로 나가는데 더 강력하고 유연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친구다.

성수형이 있었기에 세계로 가는 길을 조금 더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쉬지 않고 도전하는 형을 보며, 나 또한 꿈을 매일매일 조금씩 더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논문공모전, 찾아보면 많다.
“선배, 제 주제에 무슨 논문이에요? 학점 잘 받기도 바빠요.”
“선배, 알아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시도만 하면 의외로 쉬운 것이 논문공모전이다.
나 역시 한 때는 논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논문이란 단어만 보면 나는 본능적으로 펜을 꺼내 수첩에 메모한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살핀다.
대학생으로 4년을 보내는 동안 논문공모전에 입상한 8편의 논문과 참여했지만 탈락한 논문을 포함하여 약 15편 정도의 논물을 썼다. 매 학기 한두편 정도의 논문을 쓴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물었다. 어떻게 그 정보를 찾았냐고, 그리고 어떻게 논문을 쓰냐고.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매년 한 편의 논물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리고는 논문공모전이 있으면 항상 메모를 해두었다. 사실 논문 공모전은 수도 없이 많다. 요즘 거의 모든 기관에서 대학생 논문 공모전을 연다. 대학생들의 관심을 유발하여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자신이 진정으로 연구하고 싶거나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의 논문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논문공모전은 일거양득이다. 경력차원에서 도움이 되고 상금도 만만치 않다.
논문의 기본 형식을 한 번 익히기만 하면 된다. 도서관에 가서 1~2시간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크기는 어떻게 하고 글자체는 보통 어떻고, 주석은 어떻게 달고 등을 설명한 책이 있다. 그리고 논문 한 편을 샘플로 해서 일단 비슷하게 따라 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논문은 우선 가장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형식이다. 논문다운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인정받지 못한다. 일단 논문이 원하는 형식을 갖추고 나서 해당 분야의 연구 내용을 담아야 한다.
연구는 경험을 바탕으로 할수록 깊이가 있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것이 가장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책과 논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얻어 준비할 수 있다.

수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자를 보면 멀미가 나고 어지러웠다. 컴퓨터를 보면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계속 글을 쓰고 수정하고 해야 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너무 속이 좋지 않아 약국에 가서 컴퓨터의 글씨만 보면 멀미가 나고 심하게 토할 것 같다고 했더니 멀미약 비슷한 약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먹고 또 계속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듣고 빨리 기숙사로 돌아와서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내가 더 성장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글쓰기 공부는 읽기와는 또 다른 공부인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더 큰 재미와 매력을 느끼게 된다.

당시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를 원망하지 않는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꿋꿋이 한평생 땅과 함께 하신 부모님을 나는 존경한다. 오히려 그때를 통해 잃은 것보다는 배운 것이 많다. 나는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당시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린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편한 것을 찾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은 때면 나는 단단하고도 충직한 ‘아버지의 묵묵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 때가 있었기에 내 꿈은 더 단단해 졌는지도 모른다. 그 때가 있었기에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잇는 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열심히 즐겁게 하자는 것이었다. 평생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식구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하니 이왕 할 것 좀 더 열심히 즐겁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깨를 털 때도 비록 힘들지만, 노래를 부르며 웃으며 일을 했다. 나는 밭에서 일하는 동안 나중에 전 세계를 누비며 당당히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한 달간 정말이고 목숨 걸고 영어 공부를 했다. 그동안 시험 방식에 맞지 않게 공부를 했기 때문인가 싶어서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듣기 시험을 위해서 매일 영어를 들으며 한 달을 보냈다. 어떤 날은 영어 공부만 10시간 가까이 한 적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달달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토익 스크립트를 큰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공부했다. 책을 살 만한 돈은 없었으므로 매일 두 개의 모의고사를 서점에 앉아서 풀었다. 아마도 이 때 내 영어 점수를 향상시켜주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절실함 이었던 것 같다. 연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는 영어에 매달렸다. 이 때 처음으로 영어로 꿈을 꾸기도 했으며, 영어의 환상을 보기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9개월 가까이 한글로 된 영화는 한 편도 안봤다. 텔레비전도 한글 프로그램은 절대 안 봤다. 무조건 영어가 나오는 채널만 봤고 자막이 한글이든 영어든 자막이 나오는 경우에는 종이로 자막을 가렸다. 크게 소리 내어 따라 읽고 싶을 때는 테이프로 자막을 가리고 들리는 대로 크게 소리내어 따라 말하기도 했다. 9개월 동안 말이다. 정말 눈물겨운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욕심이 생겼다. 이왕 하는 영어 공부, 단순히 토익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말하기도 마스터해야 했다. 영어 말하기를 위해서 스터디 그룹과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영어 말하기 모임을 찾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인카스라는 국제한국인입양봉사회다. 처음에 영어말하기 스터디를 위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 나중에는 결국 인권과 평화라는, 내 삶의 가치관을 흔드는 사건을 만들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나는 많은 해외입양인들의 친 가족 상봉 통역을 하면서 부족한 영어말하기 실력을 차곡차곡 향상시켜나갔다. 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영어를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했따. 그렇게 하면서 900점 초까지는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점수 받은 것, 만점을 받아보자. 900점 초반과 만점과는 또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900점 중반에서 900점 후반까지는 쉽지가 않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컨디션 관리와 감각유지도 아주 중요했다. 식사와 체력관리도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의 인간 관계, 감정 관리까지도 중요했다. 시험 한 달 전의 인간 관계, 감정 관리, 체력 관리, 컨디션 유지, 시험감각 관리가 있어야 했다. 토익 시험 기간 동안 최대의 집중력을 위해서 말이다. 잡생각이 조금이라도 나면 한 두 문제는 후딱 지나가게 된다. 그러면 900점 후반의 점수는 불가능하다. 2시간 내에 1,2초도 예외가 아닌 2시간 풀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990점 만점을 받지는 못했다. 980점을 받았지만 나는 만족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먼저 영어를 하는 목적을 뚜렷이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한다는 이유로 토익시험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해서 급하게 좋은 점수를 빨리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 토익은 좋은 시험이다. 좋은 학습법으로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영어공부에 상당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해외인턴이나 외국계 회사 혹은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을 할 경우 실제로 사용하는 서류나 이메일, 대화법 등을 미리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기본을 다지는 것과 흥미를 유발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인 단어와 숙어 및 표현은 암기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어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든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어 잡지를 본다든가 말이다. 자신의 관심분야라면 영어를 완전히 알지 못해도 대충 내용은 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는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더욱 재미있게 남보다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관심을 갖고
중급의 수준이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영어로 표현하며 영어로 기억하도록 노력해보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숫자 셀 때도 영어로 세어보고, 전화번호도 영어로 기억해보라. 그러면 영어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급의 단계에서는 습관이 상당히 중요하다.

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Life is blooming

굿바이 게으름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각각의 단계에 따른 자신의 반응을 잘 살펴본 후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의 행동과정
1. 부정적지각: 상황의 부정적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지각함
2. 정신적 게으름: 선택을 미루거나 떠넘기는 식으로 회피함
3. 행위적 게으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시작을 미루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다가 막판에 서두름
4. 자기합리화: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나 자기비난을 시도하고 ‘다음’을 기약함

실천적인 사람들의 행동 과정
1. 긍정적 지각 능력
2. 목표 분할 능력
3. 미래지향적 사고 능력
4. 재시도 능력

게으름
1. 선택의 회피: 결정 미루기, 떠넘기기, 선택의 폭 조절하기
2. 시작의 지연: 해야 할 일이나 하기로 한 일의 시작을 자꾸 미룬다.
3. 약속 어기기: 고지서 납부일 넘기기, 약속시간 늦게 가기, 마감일 넘겨 과제 제출하기 등. 이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4. 딴짓 하기 (대체 행동): 눈앞에 닥친 중요한 문제를 애써 회피하고 나중에 해도 되는 사소한 문제를 잡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5. 꾸물거리기: 하기로 한 일이나 해야 할 일들을 그냥 대충대충 하는 것
6. 철퇴: 삶에 계획성도 없고 활동도 없다.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보지도 않는다.
7. 눈치보기
8. 서두름: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학교나 직장에 쫓기듯 뛰어가는 것과 비슷
9. 즉각적 만족 추구와 중독: 싫증을 견디기 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추구한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즉각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중독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외부 자극이 주는 쾌락은 그 유효기간이 짧다. 그것은 목 마를 때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과 유사해서, 이내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게으름과 여유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구분은 의외로 쉽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게으름은 선택을 피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유이고, 후회만을 남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모든 형태의 미룸은 기본적으로 ‘내일의 환상’을 갖고 있다. 그 미룸이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지금 미룬 것은 나중에 더 잘할 수 있기 대문에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으로 현실을 오도한다. 그러나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미래는 일어나지 않는다. –윌리엄 너스, 미룸의 심리학 에서

게으름뱅이들의 단골 레퍼토리
1) 게으름을 신중함으로 미화하는 경우, 완벽주의자나 자기회의가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변명에 익숙하다.
2) 눈앞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경우: ‘딱 오늘만!’이라고 외친다
3) 게으름을 효율성으로 미화하는 경우: 닥치면 하게 돼 있어. 난 오히려 막판에 실력이 나와. 조금씩 하느니 나중에 모았다가 한꺼번에 해야지

게으름을 철학으로 미화한다.: 게으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성, 혹은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태도 “인생 뭐있나? 즐기면서 사는거지.”

자기비난도 결국은 변명이다.
대부분의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합리화와 자기비난의 양극단을 오간다. 초기에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로 변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게으름이 심해질수록 자기비난의 강도가 세진다. 완벽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초기부터 자기비난이 심하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스스로 게으르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과, 게으름을 피우는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계속해서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게으름을 벗어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마저 똑같다.
자기비난은 자기성찰이나 자기반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게으름엔 이유가 있다.
1. 완벽주의 유형
사실 바람직한 ‘완벽’의 기준은 과정에서의 최선에 있다. 그러나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에게 완벽은 흠 잡을 데라고는 없는 완벽한 상태, 즉 무결점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은 최상의 선택, 최상의 노력, 최상의 결과를 한꺼번에 추구하기에 삶이 괴롭다.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실수 없는 깔끔한 성공’이다.

학습된 무력감 – 학습된 도전 의식
생의 초기에 긍정적인 성취경험을 여러 차례 경험한 사람. 도전적인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무대라는 믿음을 경험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실패의 위험성보다는 성공의 가능성을 먼저 본다. 그리고 설사 도전이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전략과 방법을 수정하여 재시도를 함으로써 성공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자산이 된다. 결국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처럼 긍정적인 경험이 또 다른 긍정적인 경험을 연쇄적으로 불러오기 때문이다.

리더란 긍정적 에너지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리더십의 핵심은 에너지, 즉 영향력의 전파에 있다.

내적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그 노력과 기다림이 반드시 기쁨의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기쁨을 얻으려면 우리는 일정한 어려움과 불확실함,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역경을 극복하고 삶을 전진시킨 사람이나 고통을 견뎌내고 마라톤을 완주해 본 사람은 안다. 진정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불편함이나 고통 같은 장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통 없는 기쁨을 얻으려고 한다. 즉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으름이란 곧 ‘즉각적 만족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독행위가 즉각적인 쾌락을 주긴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해진다. 결국 같은 정도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 더 깊은 중독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은 왜 결심을 하고 지키지 못할까
힘이 없기 때문이다. 변화하고 도전할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힘 없는 사람들은 결코 변화할 수 없다. 변화는 힘 있는 자들의 것이다.
모든 자연만물이 그런 것처럼 에너지가 없으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우리의 정신은 일종의 에너지다. 생각, 감정, 의지 등도 모두 에너지인 것이다.

게으름을 유발하는 가장 큰 부정적 에너지는 ‘두려움’과 ‘무능감’이다. 무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고 두렵기 때문에 더 무능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삶에서 에너지를 모으는 초점이란 다름 아닌 비전과 목표다. 마음을 담은 지향성을 갖췄을 때 단순히 흩어져 있는 에너지의 총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놀랄 만한 추가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반대로 자신의 재능과 강점에 기초한 생의 목적과 비전을 찾지 못할 경우, 그 에너지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주요 과제는 자기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방향성을 부여하라!
게으름이란 마음이 방향없이 어질러진 상태다. 우리의 삶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질서해지기 쉽다. 엔트로피 상태를 반엔트로피 상태로 바꾸려면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다. 게으름의 원인의 무엇이든지 간에 결론은 우리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삶의 에너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통합’해야 한다. 무질서한 정신에 지향성, 목표의식, 동기가 부여될 때 삶의 에너지는 통합된다. 그러므로 게으름 탈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갖추는 것이다. 대중을 쫓아가거나 획일적인 성공만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억지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순리를 쫓아가는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즉, ‘재능과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자기실현의 길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내적 동기를 우선적으로 지녀야 한다. 내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에너지 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외부적 보상이 높고 낮음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에너지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돈, 명예, 인정과 같은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그러한 외부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금세 에너지가 흩어지기 쉽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음의 평정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나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때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에 적합한 시간이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기질이란 그것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그것을 이길 수가 없다. (중략) 내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것은 우주 안의 가장 강력한 것과 동족이다. 내 안에서 그것은 다른 것들을 모두 이용하고, 내 삶은 그것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자기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 특성
1. 현실 중심적reality-oriented이다.
2. 문제해결 능력이 강하다. 어려움과 역경을 문제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
3. 수단과 목적을 구분한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남들과 함께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
5.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잘 받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더 의존한다.
6. 사회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순응적으로만 살지 않는다.
7. 민주적인 가치를 존중하며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한다.
8. 인간적이며 사회적 관심을 유지한다.
9. 넓고 피상적인 관계보다는 깊은 인간관계를 갖는다.
10. 공격적이지 않은 유머를 즐긴다.
11.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남을 가르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있는 그대로 둔다.
12.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좋아한다.
13.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다. 주위의 평범한 사물도 놀라움으로 바라볼 수 있다.
14. 창의적이다.
15. 절정경험을 추구하고 그 순간 초월적인 기쁨과 자유를 느낀다.

열정과 재능이 만났을 때, 즉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만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발휘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긍정적 성취와 도전 경험을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을 흥분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이 몰입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사람들은 당신의 어떤 면을 칭찬해 주었는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해낸 일은 무엇인지, 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웠던 일은 무엇인지 등, 과거의 경험을 철저하게 뒤적거려봐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이를 확인해보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인생 다막 시대를 준비하려면, 1막의 목표는 자신의 재능과 강점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꺼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셉 키아로치<정서지능> 자기실현의 척도 8가지
행복감, 낙관성, 자기응시, 독립성, 문제해결 능력, 사회적 책임감, 자기 주장, 정서 자각

칼릴 지브란 <예언자>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
삶이란 늘 구체성을 담보로 해야하고, 그 구체성의 중심은 일이다.
자기실현의 요체는 결국 일로 표현된다.

일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것은 딱 맞는 반쪽을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당신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것에 가깝다. 처음부터 딱 들어맞는 일이란 없다. 다만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결국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고의 삶이란 최상의 삶이 아니라 최적의 삶임을 상기하자.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가장 빛날까?

윌리엄 브리지스 <나와 회사>
최적의 일을 찾기 위한 10가지 질문
1.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3. 나는 어떤 성격의 인물인가?
4. 내가 가진 유형 및 무형의 자산은 무엇인가?
5. 나의 존재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어디인가?
6.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줄 수 있는가?
7. 나의 재능을 꽃 피우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8. 일의 어떤 점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9. 지금 일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고 있는가?
10. 만일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주어진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헤르만 헤세 <삶의 단계>
우리가 인생을 한 곳에 묶어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기력감이 우릴 덮쳐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황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의 순간마저도
우리에게 새로운 젊은 공간을 보내리라.
우리를 향한 삶의 부름은 결코 그침이 없으리라.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10가지 열쇠
1. 미래에 서서 오늘을 바라보라.
 그런 각성의 순간이 있기까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여러 사건과 마음의 흐름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어느 날 딸아이의 눈망울로 옮겨가 하나의 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자각의 순간은 외부 자극에 의해 찾아오는 것 같지만 실은 내면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삶을 깨우는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면, 외면하지 말고 그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부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면 사소한 번민이 씻겨나가듯, 자신의 삶을 미래의 시점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경우 문제가 더욱 또렷해지고 그만큼 해결책도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2. 게으름에 대한 책임과 폐해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라.

3. 내 안에 ‘큰 나’가 있음을 믿어라.

“살아가야 할 이유는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단기적인 목표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의식을 찾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몰입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몰입만이 뒤쳐진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으름과 그냥 치고 박고 싸우지 말라. 우리의 가슴을 덮고 있는 재를 뒤엎어서 남아 있는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야 가속도가 붙는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고, 영화를 만들려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삶에도 청사진이 필요하다. 삶의 청사진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생생한 미래상을 의미한다. 꿈이나 목적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가교인 셈이다. 진짜 비전은 두려움도 주지만 어떠한 어려움도 뚫고 이겨나갈 거라는 용기도 준다.

진정한 비전은 실천지향적인 희망이며, 우리에게 쉼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정신의 심장’이다.

멈춤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적 가치와 사명을 만나야 한다. 자기대면의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비전은 자신의 재능과 강점에 기초해야 한다. 재능과 강점을 잘 파악해야 원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맞출 수 있다.
시대의 흐름과 요청에 맞게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구체화시켜내야 한다.

이 여학생은 그떄 이후로 수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난 수학을 못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수학 성적은 바닥을 기었따. 하지만 지능검사를 해보자 그 학생의 수학 능력은 오히려 보통 이상으로 나왔다. 사실 그 학생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아이들 앞에 나와 문제를 푸는 상황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왜곡된 사고와 믿음을 키워 나간다.

삶을 선택하라.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 에너지는 많을수록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삶의 매순간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앞에서 게으름은 일종의 선택장애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사실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고 훈련이다. 안 하다보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된다. 선택을 남에게 맡기다보면 나중에는 정말 혼자서는 어떤 선택도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말은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능동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말에는 자신이 선택을 미루고 회피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일반적인 책임감이 아니라 역설적인 책임감이 요구된다. 즉,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어 선택을 피하지만 결국 선택하지 않아서 잃게 된 많은 인생의 경험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에는 능동적으로 포기하고 거절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했을 때만 선택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느낀다. 예를 들어 팀에서 분담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남들이 선택하고 남은 것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셈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난 양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피하려 한 적이 없는가? 당신이 만약 게으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서 떳떳하게 ‘없었다’라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야구의 수비수가 ‘마이 볼’이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수비를 펼치듯 우리 역시 삶에서 ‘마이 초이스’를 외쳐야 한다. ‘내가 이것을 하겠어’라고 능동적으로 말할 때 에너지가 솟아난다. 책임감이란 결국 에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태어나 부모가 되었을 때 느끼는 책임감이 우리로 하여금 자녀를 키울 힘을 주듯이 말이다.

삶의 효율성을 높여라.
가장 떳떳하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빨리 마무리짓는 것이다.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효율성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되면서 우리는 자연의 활용과 개발에만 신경을 썼을 뿐, 자연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또한 속도만을 추구할 뿐 멈춰서야 할 때 멈춰서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효율성 때문에 세상은 확대되었지만 우리는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눈앞의 성과만을 생각할 뿐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약해져 버렸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는 피폐해지고, 사회와 관계는 취약해지고,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게으름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노력은 시간관리이다. 그러나 시간관리가 안 되는 모습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성과 마음의 관리에 있다. 만일 게으름의 문제가 완벽주의, 불안감 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간관리와 같은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기 쉽다.

1. 삶의 가장 큰 효율성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이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생산적인 삶이란 애정에 기초할 때 가능하다. 당신 안의 가장 강력한 것을 숭배하고 사랑하라. 몰입이란 재능과 감정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2. 시간 이전에 ‘마음(에너지)’를 관리하라.
늘 기억하라.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사람을 변화시켜준다는 것을. 마음이 가는 중요한 일에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흐르게 하라.
3. 핵심강점을 강화하라.
자신에게 투자하라.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수익률이 높은 자산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백년 인생을 코 앞에 둔 오늘날, 자신의 핵심강점을 신장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장 효율성 높은 선택이다. 하루 중 최고의 알짜배기 시간을 자신의 핵심강점을 강화하는 데 투자하라. 그리고 이를 습관화하라.
4. 단순반복을 지양하라.
기술적 개선 없는 단순 반복 역시 에너지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노력은 기본이지만 그 생각 없는 노력이 똑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우직함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생각 없는 우직함은 우리를 몰입이 아닌 슬럼프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는 변화의 방식마저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운동을 하면 운동의 기술이 향상되는 법이고, 글을 쓴다면 글쓰기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법이다.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우리는 배우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무의미해진다. 우리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삶에 의미를 더해줄 수 있다.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을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에서 ‘선택당함’의 영역이 줄어들고 ‘선택함’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와 행위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듯이 빠름과 느림 중에 어느 한 가지 속도로만 살아갈 필요는 없다. 느림과 빠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는 삶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흙은 부드러워서 좋은 것이고 돌을 딱딱하기에 나쁜 것일 수 없듯이, 빠름과 느림도 좋고 나쁨의 관계가 아니다. 지금의 속도는 인류가 적응하기에는 힘든 속도이다.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떠밀려 허둥지둥 종종걸음을 치게 되어 있다.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 영역에서 스피드를 강요당하는 우리는 느림이라는 리듬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빠름을 배격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빠름이 아닌 조급함이며 느림이 아닌 게으름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 같이 행복을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목소리가 섞여 잇는 것 같다. 첫 번째 부류의 행복론자는 인간은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말대로라면, 인간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Human being의 상태로 돌아오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진다. 게으름 혹은 느림을 예찬하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부류의 행복론자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다. 성공처럼 행복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도달해야 할 가치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그들을 human-doing을 강조한다. 빠름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다. 묘하게도 너무 다른 두 목소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행복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 꼭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행복은 길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지 목표에 도달한 뒤 받는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 만일 목표라면 그곳에 도달하기 전의 삶은 불행으로 물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human-being과 human-doing의 이중적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삶을 ‘다른 존재가 되려는 과정의 연속’ 즉 becoming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우리는 씨앗인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삶이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공이란 꽃을 피우느냐 피우지 못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슨 꽃을 피우는지, 몇 개의 꽃송이를 터뜨리는지, 언제 꽃망울을 터뜨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꽃을 부정하거나 다른 꽃과 경쟁하는 꽃을 본 적이 있는가?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고, 한 해만 피는 것도 아니며, 멋진 꽃밭에서만 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라.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도, 진정한 행복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삶에서의 성공도 결국 하나라고 본다. 즉, 자기로서, 살아가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Life is blooming

‘너로서 살아가라’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관습적인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고 젊은이들에게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와 인생에서 가장 큰 동기는 일의 기쁨, 그 결과에서 얻는 기쁨, 그리고 지역에 이바지한 가치를 아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공부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고의 학습법이 아니라 최적의 학습법이다. 지문이 다 다르듯 유전자와 환경과 성격과 재능이 다 다르며, 사람마다 영향을 받는 측면과 정도도 다 다르다. 무엇보다 학습의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뇌 회로 역시 다 다르다. 또한 좋아하는 학습 대상과 모양, 형식, 배경, 관점, 취미, 수준 등의 수많은 변수가 다 다르다. 그러므로 68억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최고의 학습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68억 개의 최적의 학습법이 존재할 뿐이다.
공부는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책이 없던 인류에도 지혜자들은 다양한 도구와 경험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것이 바로 공부의 모습이다. 이제는 놀라운 문자의 발명, 시시각각 쏟아지는 책들, 수많은 시청각 자료 등을 통해 더욱 쉽고 편하고 효율적으로 지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었고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공부 역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녹아 들었다.

공부는 철저히 삶과 관계의 중심이다.
공부할수록 지식과 실력과 직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공부할수록 교만과 아집과 편견이 비워져서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삶의 가치들이 향상되어야 바람직한 공부다. 상처와 아픔은 저절로 치유되며 건강해진다. 공부할수록 이웃과 세상이 나와 하나 되는 관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공부의 본질이다.
자연이 진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따스함이 느껴지고 인간다움이 느껴진다.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인가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갖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꼭 비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고,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활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 공부할수록 낮춰지고 겸손해지는 현상은 당연한 것읻.
독일의 언어철학가 훔볼트는 “몯느 인간의 목표는 개인의 능력을 가장 고귀하고 조화롭게 발전시켜 모순이 없고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드높일 수 없다면 얼마나 가련한 인간이냐는 말이다. 공부는 고차원의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활동이다.
또 공부는 철저하게 삶과 관계 중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필연적이다. 내가 아닌 우리여야 하고, 내가 먼저가 아닌 당신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공부할수록 많은 소통과 관계의 맺음이 이루어진다.
공부는 자신을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무의미한 존재를 유의미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단계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세상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미처 몰랐던 내적 자아와 소명을 찾을 수 있다. 자기 몫을 감당해내는 모습을 겪으면서 변화를 완성해간다. 공부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채움과 비움을 통해 강하고 의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창조된 자신을 찾았다면 진짜 공부를 했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노력하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집단(발달이론 집단)
두 번째 부류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 즉 두뇌는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집단(실체이론집단)
전자는 학습을 통해 지능이 육성될 수 있다고 믿으며, 후자는 지능을 고정된 특성이라고 여긴다.

생각의 차이가 인생을 좌우한다. 유전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실패로 인해 평생 재기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차이를 결정하는 핵심은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결국 생각이 변화의 본질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공부가 안된다면 굶어라.

원래부터 타고난 머리는 없다.

천재와 둔재는 한끝 차이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키르케고르: 공부란 인간 고유의 삶의 양식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은 실존”이라고 말했고, 사라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통으로 언급한 그 실존이란 게 무엇일까? 덴마크 철학가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실존은 스스로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질은 자기 바깥으로 스스로 나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실존하는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며, 혼자서는 어떠한 의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는 관계적인 존재다. 인간의 삶 역시 인간과 자연, 세상과 자존자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재창조해가는 연속이다. 맨 처음 눈을 뜨면서 가족과 관계를 이루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부터 친구, 동료, 시민으로서 세상과 관계를 이루며, 생명의 존엄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와 관계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뛰어넘고 전진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공부인 것이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공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부의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공부란 것이 인간의 삶을 토대로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활동이 결합되어 좀더 다듬어지고 나아진 활동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참된 가치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 바깥으로 나가려는 존재인 동시에, 세상과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주고 받는 과정이며 이는 매우 중요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베풀고 도움받는 과정, 이해받고 용서받는 과정,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이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활동이 인간 본연의 삶의 양식이다. 이것이 서양 철학가들의 눈을 비려 바라본 공부의 첫 번째 정의다.

니체: 미완성의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
니체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이란 아직도 확정하지 못한 인간,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로서 실존한다.”인간은 미완성의 존재며 확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좀더 나은 자아로 완성해가고 확정해가야 한다.
자신을 완성시키고 확정해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무 의미도 , 목적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미완성인 인간에게 완성과 확정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해주는 활동이 바로 공부다.
인간의 다른 점을 하이데거는 “돌에게 세계란 없다. 식물과 동물도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를 건설한다.” 인간이 세계를 건설해가는 일련의 활동이 모두 공부라고 할 수 있다.


헤강 최한기: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어라
우리나 선조들 중에 가장 많은 저술은 남긴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 500권. 현존하는 책에선 최고. 남아 잇지는 않지만 천여 권을 저술했다고 알려진 선조가 있다. 신화적인 학자 혜강 최한기.
세대별 공부법
20대에는 분야를 가리지 말고 폭넓게 공부할 것을 주장
30대에는 취사선택을 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공부. 선택과 집중
40대에는 세계와 자신을 연결하는 공부. 모든 경험과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 후에 다시 세계화
50대 이후부터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보다 이미 공부한 분야의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


실존주의자 사르트르: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갖는다.

영국의 시인 본 :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드높일 수 없다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자신의 모든 힘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에 쏟아야 하며 다른 일에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 :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중략)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느님의 선물.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번스, 104살이 되는 2000년까지 스케줄을 계약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우리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침대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표입니다.”

154쪽
땅 위에 풀 한 포기도 다 목적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자기 몫을 다한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 68억 인구의 지문이 다 다르듯이 재능과 개성 역시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한 소명이 있다. 역할이 있다.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만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을 찾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를 통해 내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내가 해야 하는 몫, 주어진 몫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설사 우연히 소명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감당해낼 힘과 능력과 용기와 인격을 갖추기 않았기 때문에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빌리 선데이가 말했다.
“인간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 목적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다.”
목적이 없다면 실패하기 쉽다. 공부가 단순히 지식 축적으로만 끝난다면 허무할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자조론’의 저자 새무얼 스마일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와 목적을 위해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157쪽
우리는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입시 공부는 순간이다. 인생 공부가 평생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위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선정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그에게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전쟁이 끝난 후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결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살아야 할 이유였다고 한다. 우리가 삶에게 바라는 것과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우리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삶이 먼저 우리에게 진정 원하는 것이 날마다 용기 있게 물어봐야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되는 대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진리를 늘 갈구해야 한다. 때로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도 있다.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끝까지 놓아버린다.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감사와 경외의 조건이 된다. 현실은 수용소 죄수의 몸일지라도 그것을 초월한다. 
“만약 누군가가 아우슈비츠에서 바이에른 수용소로 향하던 길목에서 우리를 보았다면 우리의 표정이 삶의 자유와 희망을 포기한 사람의 그것이라곤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수송차량의 창문 빗살 틈으로 잘츠부르크 산맥 꼭대기에서 반짝이던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상황 덕분에 더욱 우리는 그날 자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도취되었고, 한동안 그 광경을 그리워했다.”

빈의 제3심리학파 요법인 로고테라피, 바로 이러한 의미에 중점을 둔 이론이다.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것으로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주요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며 ‘의미의 의지’를 강조하는 이론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어떠한 의미나 이유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들, 소위 정신질환이나 신경증세가 발생한다. 심리학에서도 의미를 인가의 존재양식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이 의미를 찾는 행위는 인간적인 존재로 가는 신호와도 같다.

인간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목적이 없어서 실패한다

공부도 경영이다
김영재 이정일 박일만 지음 2012년 4월 10일

세상은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국가 경쟁력에서 강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강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며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인간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목적이 없어서 실패한다. 윌리엄 A 빌리 선데이

우리의 목적은 서로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기를 배우기 위해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헤르만헤세

직업 목표
사랑 목표
재산 목표
봉사 목표
종교 가치

인생에서의 행복과 성공은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늑장을 부리거나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온다. – 존 러벅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그 새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가 되면 마땅히 스스로 공부에 힘써야 하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도연명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동기: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도구들을 갖추고 책 앞에 앉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고력: 인과관계 추론, 최대한 합리적인 해법 찾기 등에서 필요로 한다.
이해력: 자기 안에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지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통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바로 이해력이다.
집중력: 주어진 과업에 최대한 몰입하여 단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능력
기억력: 모든 학습의 기본은 집중해서 사고하고 이해한 내용을 요령 있게 잘 기억하는 것이다.
학습환경: 좋은 환경은 집중하기 쉽게 하며 집중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하여 학습 효과를 상승시킨다.
학습건강: 학습활동을 함에 있어 집중력을 유지하고 끈기를 가질 수 있도록 정신과 몸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 복습의 힘
수업시간 또는 학습한 시간 이후 즉시 복습을 하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시 복습을 하고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복습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시험 볼 때 다시 2~3회 복습하면 된다. 고승덕 변호사가 사법, 외부, 그리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비결로 말한 것은 책을 7번 이상 반복하여 본 것이라고 했다.

성공에는 아무런 속임수도 필요 없다. 나는 언제나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했을 뿐이다. 다만 보통 사람들 보다 약간 더 양심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다.

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여 그 목표했던 바를 이루게 된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 될 수 있다.


만약 아무것도 포기 못한다면,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구넬 지음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결점만을 확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점 때문에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해 버려요.
그런데 그들의 짐작이 맞습니다.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못난 사람으로 봅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매력입니다. 그 매력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마음에 따라 태도와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생각의 산물이었던 모습이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결국 자신의 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겁니다.

‘당시만 해도 앞으로 우리가 나눌 대화와 교감이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도 못했다.’

자신의 확신이 곧 현실을 만들어 내죠.


부모가 갓난아이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웃어도 모른 척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점차 자신이 주위 환경에 아무 영향을 못 준다고 느끼면서 자랍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나이에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단지 하나의 느낌, 감정이니까요.
타인과 무엇인가를 주고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 운명론자가 될 겁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고, 사물을 움직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합니다. 만약 직업과 관련해서 궁지에 처한 그를 친구가 보게 된다면 그의 수동적인 면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친구가 그에게 상황에 반응하고 통제하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접촉하라고 아무리 진심 어린 충고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친구는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게 되겠지요. 그의 태도가 단지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확신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할 테니까요. 자신은 세상에 아무 영향을 못 주고,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자기 확신’ 말이죠. 심지어 그는 자신이 그런 걸 믿는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그에게 현실이 된 겁니다.

환상이 깨질까 봐 두려운 거군요.
누구나 자신이 믿는 것에 애착을 갖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균형의 형태일 뿐이니까요. 누구나 자신의 믿음에 근거해서 일관성 있는 세상을 구축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놓고,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매달리지요.

자신이 믿는 것이 바로 현실이 된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각자 선별하는 정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에요. 선별 행위는 개인의 고유한 것으로, 무엇보다 그 사람의 믿음과 세상에 대한 믿음, 한마디로 삶의 비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이 현실을 걸러줍니다. 즉,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가려냅니다.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격식을 갖춘다면, 예를 들어 호의에 감사를 표하면서 거절을 한다면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상대가 특별히 예민한 성격이라면, 그건 어떤 면에서는 그의 문제이지 선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지에 반하는 무언가를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이.. 따라서 이중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이지요.

거짓말을 하는 건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그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켜서 자기 안에 쌓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을 말하세요. 훨씬 더 자유롭고 가벼워질 테니까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습니다. 두 그룹에 신문을 한 뭉치씩 주고 그 안에 실린 사진이 몇 개인지 제한 시간 내에 세어 보라는 과제를 주었지요. 그런데 신문을 몇 페이지 넘기면, ‘더 이상 셀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신문에는 마흔여섯장의 사진이 실려있습니다.’라는 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문구를 발견하고 더 이상 사진 개수를 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사진은 모두 마흔여섯 개입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끝까지 사진을 세어 본 건 맞지만, 왜 문구를 참고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문구라뇨? 무슨 문구요?’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창작품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 그러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반드시 그런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지지와 도움, 조언, 만남 등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살펴보세요. 아기가 단번에 성공할 거라고 믿나요? 다시 서 보고, 그러다 또 쿵하고 넘어지곤 하지요. 그렇게 쓰라린 실패를 겪지만, 즉시 다시 시도를 합니다. 또다시 일어서다가,, 또 넘어지지요! 아기는 평균 이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웁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애착을 갖고 있는 걸 포기해야만 하지요. 만약 아무것도 포기 못한다면,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선택을 못한다면, 원하는 삶 또한 포기해야 합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길을 가는 건 때로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등산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힘들게 올라갈수록 정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더 커진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올라가는 데 기울인 노력이 클수록 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되고, 그 행복한 느낌이 더 오래도록 기억되지요. 

출발이 삐걱거려도 일단 몸을 맡겨본다. 물살이 거칠어도 앞으로 나아간다

60초 혁명
제프 데이비슨 지음

미루기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중의 하나는, 미루는 버릇이 현재의 경험을 지배할 때 발생한다. 주말에 일을 하려고 마음먹고 일감을 집에 들고 오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동시에 주말에 일을 하려고 했지만 실제의 의식구조 속에서는 놀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미루는 사람들이 좌절에 대한 인내도가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너무 쉽게 포기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며, 자율과 승인에 대한 욕구가 높은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했다.
일을 뒤로 미룸으로써 자기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자존심이 깎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크나우스는 대학생의 90퍼센트가 일을 뒤로 미룬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학생들 가운데 약 25퍼센트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일을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장애가 되는 것은 인스턴트 메시징(실시간 메시지 전달, 메신저 같은 프로그램) 일 것이다. 이메일은 몇 분이 지난 뒤에야 수신함에 도착하지만, 메신저는 유령의 집에 있는 소름끼치는 귀신처럼 즉각적으로 전달한다. 많은 학생들이 메신저의 강한 중독성에 입을 모은다. 메신저는 다른 말을 채 하기도 전에 강한 중독성에 재빨리 화면에 등장한다.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느냐 또는 무슨 일을 따로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경이로운 정보화 시대에 의문이 생긴다. 주의지속시간, 집중력, 초점이 예전과 같을 것인 것? 수없이 많은 방향으로 이끌려가다가 다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능력은 쓸모없게 되는 것인 가? 물론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뒤로 미루는 성향이 강하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스턴트 메신저는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전달 매체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일을 뒤로 미루기 쉬운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길을 잃고 헤맬 만한 곳이 더없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면 이렇다.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바쁠 때는 생산적인 사회를 기대하지 말고 광란의 사회를 기대하라. – 제프 데이비슨”

Writer’s Block 깨기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일하는 공간을 깨끗이 정리한다
“재능은 역경 속에서 꽃을 피우고, 풍족한 환경에서는 잠을 잔다” – 호라티우스
아이디어의 윤곽을 그려라.
몇 분 동안만 글을 쓴다. 알람을 4분 맞춰놓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작은 생산적인 글쓰기를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이다.
일을 뒤로 미루는 몇 가지 이유
비난을 받고, 실패를 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틀리는 것이 두렵다
부지불식간에 문제를 일으킨다
낯선 사람과 마주하고, 입장을 밝히고, 결점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어려운 일을 맡아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거부당하고, 미움을 사고, 비판을 받는다.

출발이 삐걱거려도 일단 몸을 맡겨본다. 물살이 거칠어도 앞으로 나아간다. 멀미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배는 여전히 파도를 타고 전진할 것이다.
특히 중요한 일을 맡았을 대는 시간, 에너지, 책임감이 충만해야 과업을 진정으로 달성할 수 있다.

당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

37일 동안, 패티다이 지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야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피터 스트럽

앞으로 살아갈 날이 37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대답은 소중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더욱 절실하게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 스티브 잡스

자신의 삶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여섯 가지 실천방안
집중 Intensity, 관용 inclusion, 성실 integrity, 친밀 intimacy, 직관 intuition, 의도 intention

제 1부 충만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신성한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선명하게 인식한다. –조이스캐롤오츠

1. 기억을 위해 기록하라
각자의 추억은 모두 소중한 문학작품이다. – 올더스 헉슬리

자기 삶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작가이며 주인이 된다.  –샘킨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인간이라 할 수 있다. – 이삭 디네센

위대한 변화는 절대로 공식적인 승인 절차를 걸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2부 의식하는 삶을 살기 위한 6가지 실천 과제

인간은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주도하면서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선택한다. –윌리엄 제임스

3. 집중 intensity: 긍정하라

삶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나탈리골드버그

아무리 작은 풀 한포기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그 안에서 신비스럽고, 경이롭고,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인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헨리밀러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추자

음악이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춤추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안젤라모네

어른들이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를 헐뜯고, 비웃고, 따돌리고, 회피하고, 익명의 메모를 보내 경고하고, 심지어 마약 중독으로 의심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는 걸까? 엉덩이를 가리려고 웃옷을 잡아당기고, 일상에서 춤이 사라지는 순간 과연 언제인가? 이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본 나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행동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제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고, 동시에 타인이 하는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면 나도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마음껏 춤출 수 있다! 졸업 무도회에 다녀온 지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진실을 깨우쳤다.

다른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 등 비하하는 말이 나오려고 하면 즉시 멈춘다. 상대를 혹평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면 3초 동안 숨을 멈춘다. 그런 다음 그런 혹평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본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서 평가 받기 싫다면 나부터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차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

작은 포도 알을 가지고 다니자. 
존재는 하나의 경이로움에서 열린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노자

나의 부적, 행운의 물건은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늘 지니고, 친구처럼 대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들어보자. 감동을 주는 대상을 발견하는 심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런 심성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자.
슈퍼의 소량계산대 앞에서 22개나 되는 물건을 가지고 계산 중인 남자 뒤에 서 있을 때, 지갑에서 포도를 꺼내 내게 감동을 주는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혹시 특별한 날에만 쓰려고 할머니가 주신 멋진 식기를 찬장에 진열만 해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장 꺼내서 식사할 때마다 사용하자.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이다.)

빨간색 오픈카를 렌트하자.
독창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대범하게 행동하라. 현실에 안주하면서 진부함과 평범함을 지향하는 이들에 대항하여 목적과 창의적 비전을 제시하는 자가 되라. 세실비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미있게 살 권리가 있다. 신중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이 대단한 미덕으로 착각하는, 우리보다 상상력이 모자란 이들의 조소 따위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 조심하며 사는 안전주의자나 대담하게 사는 모험주의자나 죽을 확률은 똑같이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과연 어떤 차를 빌릴까? 빨간색 오픈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과처럼 밝은 연두색 폭스바겐 비틀 정도는 빌릴 참이다. 그저 생각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한 가지 이상의 일에 예술적 감수성을 발휘해보자. 예를 들어 카드를 보낼 일이 있으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으로 예쁘게 꾸미고 멋진 격언을 써서 보내자. 가족의 캐리커처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좋다. 접시에 음식이나 과일을 담을 때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미적 감각을 살려보자. 음식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생이 바로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렌지 깃발을 기념하자
잘못했을 때 나무라기보다는 잘했을 때 칭찬하는 편이 열 배 이상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칭찬보다 꾸중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유리 한 장에 돌을 얌전히 올려놓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앨런


칭찬하라. 그 말을 믿지 않을 테니비판하라. 그대를 싫어할 테니.무시하라. 그대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격려하라. 그대를 잊지 않을 테니.사랑하라. 그대를 사랑할 테니. 윌리엄 아더 워드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사방을 환하게 밝혀줄 초는 1년 365일 늘 챙겨두자. 촛불을 밝힐 일은 정말로 많다. 평범한 일상을 축하와 긍정적 태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고, 최소한 자신이 가진 것의 30퍼센트를 격려하고 축하하자. 슈퍼에 가서 생일 초 다섯 통을 산 다음, 신나게 사용해보자.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밝히자.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일은 기대치가 낮기에 축하하면 더 신난다. 늘 초를 가지고 다니자. 나는 여행할 때도 초를 가지고 다닌다. 언제 축하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이스카우트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았던가. 매사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핑크색 안경을 쓰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빛은 언젠가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나이스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허락 받을 필요가 없다. 허락은 받는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거부권을 남에게 내주는 것과 같다. –앨버트 죠프리

패트리샤 매드스은 그녀의 저서 <힘내라, 내 인생!>에서 날을 정해 온종일 모든 일에 ‘네!’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이런 제안에는 저자도 지적하듯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네’라고 대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대답을 권한다. “네, 주세요. 우리 아들이 체리를 좋아하니 집에 가지고 가겠어요.”
핑크색 안경을 써보자. 아니면 감히 핑크색 안경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친구에게 핑크색 안경을 선물하자. 어쩌면 그 안경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버스를 보면 ‘와’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나이를 먹을수록 장난기를 발휘하기 어렵다. 장난기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리처드 파인만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려고 가던 길을 멈추고, 풀 섶에 붙어있는 무당벌레를 보려고 몸을 숙인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어른 들과 다른 관심의 대상과 시간의 흐름이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세상을 더 많이 발견하는 아이일수록 어른의 강요에는 무조건 순종하지 않는다. 캐시 넛 브라운

우리는 스스로 위장하는 법을 배우고, 놀라움과 즐거움, 자신감과 자괴감 등을 감추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림 그리겠다고 나서지 마라. 너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사람들은 네 그림을 비판할 것이다. 노래 부르겠다고 나서지 마라. 노래 잘하는 사람 수두룩하고 너는 가수도 아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정도가 아니면 글 쓴다는 소리는 아예 하지 마라.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감탄하지 마라. 유치하고 철없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 뻔하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감탄마저도 자체할 때가 많다. 감탄하기를 꺼리거나 감탄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감탄하는 행위를 경솔한 태도나 철부지 행동으로 치부한다. 놀라서 감탄하면, 나약한 사람이 된다. 준비성이 없는 사람이 된다. 철없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놀라서도, 감탄해서도 안 된다. 절대로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진짜, 진짜, 진짜 커다란 버스’를 보았을 때 기분이 마구 들떠도, 절대로 그 상태를 남에게 노출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마구 흔들어도 안 되고,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하고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상태를 내비쳐도 안 된다.
테스의 그네를 밀어주면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이 네 살짜리 꼬마는 “더 세게! 더 세게!를 계속 외쳐댄다.) 만약 어른들이 테스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대한다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와!! 회의다!! 내용도 없이 길고, 완전 지루한 회의다!! 와우!! 주차딱지 한번 세다! 야호! 200페이지짜리 마케팅계획서 대단하다! 우후!! 보고서 마감일이 내일이다! 이히!! 벌써 집세 낼 때가 됐다!! 와와!! 무능한 상사는 진짜, 진짜, 커다란 소방차에서 실어서 내다 버리자!!”

나의 내면에 잠재한 감탄, 놀라움, 즐거움 등의 감정을 아이들처럼 소리 내어 밖으로 분출해보자. 버스나 소방차, 거리의 가로수나 해변의 조개껍데기, 그리고 내 인생 자체에 대해 늘 감탄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자.

깊이 생각하지 말고, 주걱, 거울, 양탄자, 컴퓨터 등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다섯 가지 사물을 고른다. 앞으로 그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 “와! 주걱이다” “와! 양탄자다!” 아주 신나게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4.관용 Inclusion: 관대하라

살아 있는 동안 관대함을 베푸는 것과 죽음의 문턱에서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넓은 마음과 아량에서 나오는 선행이지만 후자는 오만과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에 불과하다. –호라스만

남을 끌어안는 행동은 관대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많은 경우 관용은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당위성, 나의 신념, 나의 우월성을 꽉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나, 타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나, 상식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나의 정의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우리가 상식적이라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일반적인 것일 수 있다. 나 자신을 인간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상식적’이라는 범주에 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식 밖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내 범주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몰상식적,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간주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야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관대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제부터는 그 관대함을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을 맞대고 앉아보자
살다 보면 내 안에서 불타오르던 열정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사라진 열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다시 불타오른다. 우리는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주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오늘 밤부터 새로운 인생 모토를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지기’로 바꾸자. 제임스M배리경

거리를 두지 말고 온전히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내 의견은 배제하고, 오로지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며 곁에 있자. 일상의 번거로운 일들,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잠시 뒤로 미루자. 오로지 상대만을 위해 존재할 때 그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를 살펴보자.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자. 강하고 따뜻한 내 팔을 다른 이에게 빌려주자. 그들이 나의 팔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해주라.

도움을 주고 베푸는 행위에 집중해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도움의 손길을 거절당하면 그때의 심정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자. 그리고 그 기간에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혼자 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도 그 도움을 받자. 도와주려는 타인의 마음을 거스르지 말자. 그렇게 도움을 받았을 대의 느낌도 기록하자.

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인사하자
집 없고, 헐벗고, 굶주리는 것이 가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원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진정한 가난이다. 이런 가난은 가정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테레사수녀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 사람들을 모두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 한마디로 너무 편리하게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자신을 상대의 처지에 놓고 보면 조금 더 관심을 보이게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만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특권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내 속에서는 두려움과 안도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렁인다. 허리케인과 쓰나미의 피해를 본 당사자는 다행히도 내가 아니다. 그러니 사건의 중대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서 TV에서 늘 보도하는 별 것 아닌 사건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나는 내 마음을 통제한다. 콩고 사태에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굶주린 전 세계 어린이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시내에서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남자는?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성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인사 받을 권리, 그리고 테스 자신만큼 소중한 그의 자아를, 긴 설명이나 장황한 이론이 필요 없이 한 눈에 알아봤던 것이다.
노숙자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다. 단지, 집이 없을 뿐이다. 쉴라 맥케츠니

어린이든, 대학교수든, 노숙자든, 회사 경비원이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경험과 추억이 잇는 사람임을 마음에 새겨두자. 우리 인간은 아주 복잡미묘한 존재이며, 다양한 짜임새를 지닌 다층 구조의 존재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진리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관심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전 인류를 향한 것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그 누구도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왜냐면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토머스 브라운 경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새해가 왔으니 우리 모두 기쁘게 맞이하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상식이란 18세까지 체득한 편견의 총체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이해가 필요할 뿐이다. 퀴리 부인

5. 성실 Integrity 당당하게 말하라

자신에게 진정으로 정직해질 때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한다. 세자르 차베스

지금 하는 일이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하라.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윌리엄 제임스

정직한 선택은 자신이 믿는 진실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이며, 남과 내가 이해의 광장에서 기꺼이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직한 선택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되 ‘내가 옳다’는 아집에 빠지지 않으며, 주관을 유지하되 상대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며, ‘남들이 왜 나를 이해하려고 조금 더 노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남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침묵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자

자존심은 행동이 아니라, 관용이 지켜준다. – 조지 산타아나

체면은 중요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에는 상대로 하여금 상처를 받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곤란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기지를 발휘하거나, 감정적 반응을 자제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창의성, 이해, 인내가 요구되고 때로는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을 버는 방법도 포함된다.”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타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겸손하고 섬세하게 처신하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워커퍼시

매일 만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그의 수호천사가 되어보자. 한 사람을 고르기 어렵다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천사가 되어도 좋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차이가 쌓여서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큰 차이를 만든다. 마리안 라이트 에델만

진리는 없다. 단지 견해가 있을 뿐이다. –에디스 스트웰 부인

어떤 규칙들이 나를 얽매어도 나는 자유롭다. 참을 만하면 참을 것이고, 지나치다 싶으면 그 규칙을 깰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오로지 나 자신만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자유롭다. 로버트 A 하이라인

만약 모든 규칙을 지킨다면, 모든 재미를 잃는다. – 캐서린 햅번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칭찬을 받으려 할 때 우리는 정체하고 물에 빠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강물에 몸을 맡기자. 강과 함께 흘러가자. 강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강과 함께 움직이되 사람들에게서 ‘착해요, 똑똑해요, 예뻐요, 그래도 돼요.’ 따위의 말을 들으려고 배를 멈추지 말자.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찾지 말고, 쉬지 말고 움직이며, 보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배우기에 힘쓰며, 진실로 믿는 바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착하고, 아름답고, 똑똑하다. 남의 허락이 필요없다. 스스로 자신에게 허락하자.

마거릿 위틀리 <서로를 향하다>
“나는 스스로 존경하는 누군가가 되어 가는가?”

장보기 목록을 모아두자

가장 희미한 먹물 자국도 가장 선명한 기억보다 낫다. 중국속담

과거는 결코 죽은 것도, 지나간 것도 아니다. 윌리엄 포크너

어렸을 적 기억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영구히 각인되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 신시아 오직

우리는 기계 문자의 세상에서 이 고유한 징표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반역을 꿈꾸자. 삐딱하게 베레모를 쓰고 ‘와이파이 사용불가’라고 당당하게 써 붙인 카페에 앉아서 재생지에 콩 잉크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장보기 품목들을 적어보자.

언어에는 의미 이상의 것, 예를 들어 글씨의 형태가 있다. 글씨는 감성과 리듬, 그리고 그것을 쓴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형성된 필체는 평생 같은 틀로 계속 유지된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점 대신에 동그라미나 하트, 꽃잎을 그리는 등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몽당연필로 썼던 첫 글씨의 큰 뼈대는 계속 남아있다.

지난 시절의 필체에는 혹시 우리세대에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문자 통신은 필체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시들게 했고, 실용적인 사고 방식은 조상에게서 물려 받은 장식적인 서체를 사라지게 했다. 과거에 그토록 중요시 했던 필체에서 이제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인간에게서 필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사람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 열 통을 보내자.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자신과 무관한 부분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는 않는다. –헤르만 헤세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부터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도로시 톰슨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슬픔으로 고통받고, 처절하고, 참담하고, 쓰라리게 불행한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멋진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실패라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솔 벨로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오직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이 세상에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배탈이나 몸살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애, 때로 깊은 잠과 무의식에 빠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침대 밖으로 나와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놀라움도 기쁨도 맛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나는 인생을 방관하는 자세를 언제나 증오했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인가? 내가 무언가가 되려면 참여해야 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자신의 운명을 창조한다. 헨리밀러

매일 한 군데씩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가보자. 운동이 두려운 사람은 체육과도 좋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수영장도 좋다.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죽어가는 친구가 누워있는 병실에 찾아가자. 삶 속으로 뛰어들자. 쇼는 늘 계속되지 않는다. 지금 가지 않으면 놓친다.

나는 두려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적이든, 비이성적이든,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 앞에서 주저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길을 잃어버림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떤 배에 타고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학습의 과정은 왕도보다 훨씬 덜 정확하다. 휘고 굽은 등산로야말로 진정한 배움을 얻는 곳이다. 출발이 잘못되었으면, 돌아와서 새로 시작하자. 어떨 때는 길을 벗어나 12마일을 헤맨다. 길을 잃는 것이 배움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을 얻으려면, 먼저 배에서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곳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먼 곳은 그저 먼 곳일 뿐이다. 포보

오십 대에도 이십 대 시절과 똑같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인생에서 30년을 허비한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배를 만든 목적은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레이스 호퍼

매일, 자신을 새로운 주제와 결합해보자. 길을 잃고, 길을 잘못 들고, 항상 가는 길에서 벗어나고, 개와 함께 다른 길을 걸어보고, 평소에 읽지 않는 잡지를 읽어보고, 다른 부류의 사람과 교류하고, 이전 같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식당에서 식사도 해보자. 형식을 타파하자. 출퇴근할 때 오가는 길, 함께 점심 먹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보는 영화 등 모든 것을 바꿔보자. 지름길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을 택해보자. 배에서 내리자. 자 어떤 기분인가?

조급한 감정은 삶을 온전히 살면서 시간에 쫓겨 생긴 결과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의 결과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에릭 호퍼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둘 다 하지 않는 것이다. 푸블리우스 시루스

한 시간 동안,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보자. 커피를 마실 때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다. 이웃과 대화하면서 세탁물을 정리할 수 없다. 우편물을 가지러 가면서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없다. 식사 중에 책을 읽을 수 없다. 이처럼, 한번에 한 가지만 해보자.
메모장을 꺼내서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했던 경험을 3분 동안 기록해보자. 기분이 어땠는가? 어려웠는가? 쉬웠는가? 짜증스러웠는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잃는 것, 혹은 빠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 이미 기한이 지난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은 5분 동안 작성해보자.
그 중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죽을 일은 무엇인지, 5분 동안 써보자.

천천히 먹고 요리사에게 감사하자.

무엇이든 사랑으로 만든 것은 훌륭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에메릴 라가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삶에 집중하는 훈련으로 매일 한 끼 음식에 대한 진솔한 평가를 글로 써보자.
식생활을 새롭게 시작하자.
일상적이고 간단한 음식, 자기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더라도 요리사, 음식 예술가가 되어보자.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알고 있었고, 상대 역시 내가 그의 생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할 때 만약 내가 가의 생일을 마음으로만 축하할 뿐, 축하파티에 참석하기는커녕 카드 한 장 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보다 더 중요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여파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서 보이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상호 연관관계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르게 하는 척도이다. –토머스 제인

시간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변화를 가져올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앤디 워홀

하루에 적어도 10분을 할애하여 자신의 비전을 창조해보자. 건강이건, 일이건, 결혼이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자신만의 비전을 만들자. 그리고 깜빡이등을 켜자.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도록 자신의 비전을 말해주자.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원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나는 삶에서 무엇이 낯선가?
나는 이런 것들이 낯설다.
외줄타기와 접시닦기
파충류 손으로 잡기와 소리 내어 시 읽기
바위 타기와 요들송 부르기
옷 돌려 입기와 개구리를 해부하기
롤러코스터와 번지점프,
정치 연설과 머리 삭발하기
컨트리 곡 연주와 학위 받으려고 공부하기
히치하이크와 스쿠버다이빙
소설 쓰기와 아이 낳기
온 몸 제모하기와 골수 먹기
길 없는 곳 운전하기와 사업 벌이기
무기 휘두르기와 콘택트렌즈 끼기
노벨상 타기와 아프라카 여행하기
졸업무도회 가기와 파이 굽기
그리고 영화 찍기.
삶이 나에게 낯설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가 삶에 대해 이방인으로 남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방인>, 매릴린 메시엘

우리가 남들과 다를 권리를 잃는 것은 자유로울 특권을 잃는 것이다. 찰스 에반스 휴스

우리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위장하게 된다. 로슈푸코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나’가 아니라 꼿꼿이 서서 바람과 고요, 동요와 부동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어떤 바람이 내게 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람이 너무 희미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불어오기에 혹시 나 자신이 휘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날이 지나고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사자약전(死者略傳)을 쓸 것이다. 우리 모두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사자약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떠나고 나서 남들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사자약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자약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번호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남기고 떠날 것인가?
나는 번호보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사자약전은,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요약문이자, 생전에 그가 보여준 인간성에 대한 전문 같은 정의.
어떤 말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면서 관심을 보였던 것 중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일까? 내가 했던 어떤 모험이 내가 추구했던 정신을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맺은 어떤 관계가 나를 핵심적으로 규정하게 될까? 생전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보여주었던 재능이 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쓰려다가 다른 이야기를 쓰는 일기와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쓰기로 작정했던 이야기와 실제로 쓰고 있는 이야기를 비교하는 순간에 가장 겸손해진다. 제임스 M배리

우리가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토머스 캠벨

그 젊은 엄마가 죽고 나서 윈프리는 그녀의 가족을 쇼에 초대했다. 윈프리는 아이들이 엄마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여행 이야기를 하리라고 기대하면서 엄마에 대한 가장 좋은 추억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윈프리의 질문에 어린 여동생이 조용히 대답했다. “엄마가 시리얼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함께 했던 먹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우리의 죽음을 장의사조차 슬퍼할 만한 삶을 살자. 마크트웨인

바로 지금이 당신이 상상한 삶을 살기 시작한 순간이다. 헨리 제임스

출세나 성공 등 거창한 것들로만으로 우리 삶을 요약할 수는 없다. 아침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먹는 시리얼 한 그릇, 아버지가 얼굴에 발라준 면도 거품, 하느님이 주신 중장비 다루는 재능, 일상의 작은 모험과 사소한 사건들이 우리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는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며 뒤에 남겨둔 사람들이 우리의 부재를 안타까워할 만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분 동안 자신의 사자약전을 써보자.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 친구, 동료가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기를 바라는가?
나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일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까?
그것은 출세나 성공과 같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그들 곁에 있었는지, 그들을 어떻게 배려하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매일 매일 자신이 자신이 작성한 최상의 사자약전처럼 살아보자.

나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지 않겠다. 삶의 시간에 온전히 머무르며 내 삶이 나를 꽃피우게 하겠다. 내 존재의 의미에 걸고 모험하는 편을 택하겠다. 도나 마르코바

하루하루가 첫날이다.

직업을 바꾸려고 할 때 판단 기준
1. 재미를 찾는다.
2. 돈을 번다.
3. 미래에 대비한다.
4. 그 분야에 이바지한다.
5.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6. 여행한다.
7. 배운다.
8. 배운 것을 남에게 전달한다.
“어떤 직업이나 일이 이 아홉 가지 기준 가운데 넷이나 다섯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셋 이하라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돈을 벌면서 여행도 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전부라면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왜 그 일을 했지?’ 하는 후회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고, 무엇엔가 이바지한 것도 없으니 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느낌이 드는거죠.”

1. 기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할 때 기분이 가벼운가? 무거운가?
2. 재미: 내가 삶을 의식하고, 즐기고, 만끽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3. 배우고 배운 것을 전달하기: 내가 지적, 감정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4. 관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기존 관계들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잇는가?
5. 가족에 대한 헌신: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가족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가?
6. 분야에 대한 기여: 내 재능과 선택한 분야의 일반적인 지식에 도움이 되는가?
7. 의미: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8. 금전적 수입과 미래를 위한 준비: 내 노력, 시간, 에너지와 비교할 때 합당한 가치가 있으며 내가 경제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가?
9. 현실성: 필요한 것,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할 수 있는가?
10. 타인에 대하 배려: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나는 어던 일이 기준 가운데 적어도 다섯 가지, 될 수 있으면 여섯 가지 이상을 충족할 때만 그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나, 직업 또는 기회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에너지와 비전, 열정을 아껴서 다른 창조적인 일을 찾는 편이 낫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행동뿐이다. 삶은 말이 아니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행동을 믿어라. 앨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계속한다면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떨림과 생생한 기쁨, 좋은 인연과 창의적인 방향과 깊이, 그리고 넓이를 만들어 낼 일은 무엇일까? 우리를 더욱 온전한 존재로 만들고, 진실한 삶으로 인도하는 일은 무엇일까? 37일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할 수 없을까? 미국의 작가 애니 딜러드가 말했듯이 “우리가 하루하루를 사는 방식이 바로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계속 중요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래리 제임스

어쩌면 그것은 37일 동안 매일 서랍을 정리하는 일일 수도 있다. 37일 동안 매일 시를 한 수씩 짓는 것이 타성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매일 다섯 가지 채소를 먹거나 10분씩 글쓰기를 하거나 10분씩 걷거나 일주일에 한 번 친구에게 우편엽서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행에 옮겨보자. 37일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할 것을 정해서 마음을 다잡고 실행에 옮기자.
어쩌면 그것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될 수도 있다. 회피, 낭비, 흡연, 변명, 편견, 과식 같은 것들.

한 가지 아주 작은 일에 집중하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자. 오늘부터 시작하자. 다음 주 화요일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시작하자. 앞으로 나의 삶을 충분히 변화시키고, 의식화하고, 의미 잇는 것으로 바꾸어놓고 났을 때의 그 삶을 지금부터 살기로 하자. 그리고 매일 다시 시작하자.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쉬운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늘 스스로 실망하게 되는 걸까? 맥스 브리스톨이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1마일 달리기를 하면서 나를 앞질렀을 때 그의 체육복 등에 쓰여 있었던 글귀처럼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이든 참아낼 수 있다.”

하루하루가 첫날이고 선물이다.

삶은 동사다.

긍정하라.
관대하라.
당당하게 말하라.
더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느리게 살아라.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단 한번뿐인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인생을 걸고 모험에 나서자.당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는 데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조지 엘리엇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책 - 2030 세상을 바꾸는 과학기술

마하트마 간디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영국은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지구에 존재하는 자원의 절반을 소모했다. 인도 같은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행성들이 필요하겠는가?” “중국이 미국 수준의 삶을 열망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실제로 우리의 소비는 이미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기업이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수입보다 많은 자금을 지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지구의 자본을 먹어치우고 있다.

인류의 문명은 자연환경과 조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소비량은 하나뿐인 지구에 걸맞지 않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원인은 1달러를 벌면서 1.2달러를 지출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뿐인 지구에서 1.2개의 지구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위기를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과제는 지구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뿐인 지구에 항상 흔적을 남겨왔다. 그 사실을 대기의 조성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산소는 반응성이 높고, 탄소와 쉽게 결합한다. 지구의 식물들이 신선한 산소를 끊임없이 공급하지 않는다면, 대기 중의 산소는 장기적으로 남김없이 사라질 것이다. 대기는 지구의 생명에 의해서 유지되는 불안정한 혼합물인 것이다. 지구와 지구가 지탱하는 생명은 함께 진화해왔다. 엄청난 자연 재앙들이 발생했지만, 결국에는 항상 생명과 산소 생산이 주도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심각하게 걱정할 이유가 있다. 인류가 지구에 엄청난 충격을 점점 더 강하게 주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지구가 인류의 존속을 계속 허용할지에 대해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2억 년 전에 알려지지 않은 원인으로 엄청나게 많은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서 온도가 극적으로 올라갔을 때,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보다 덜 심각한 재앙만 일어나도,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류 문명은 끝이 날 것이다.

기술은 흔히 부분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와 개인의 의지가 기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복잡성 개념은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혁명들, 풀뿌리 운동들, 주어진 순간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로서의 사회는 개인들의 행동으로 정확히 환원할 수 없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판매급증은 신기술 덕분일 수도 있지만, 그저 마케팅의 결과일 때가 많다. 진정한 혁신 제품이 몇 년 동안 창고에 머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들의 복잡성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다. 복잡한 시스템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제한적이다. 많은 분야들에서는 핵심 매개변수들에 관한 기초 지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태양이 유발하는 특정 사건들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여러 병들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아직 미완성이다. 또한 우리는 2008년에 결국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이어진 핵심 매개변수들의 불길한 움직임을 탐지하는 데에 실패했다. 우리는 수학이 제공하는 새로운 알고리즘들을 이용하여 계산 속도를 대폭 높일 수 있다. 또한 복잡한 현상의 바탕에 깔린 힘들에 대한 이해를 증진함으로써 계산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저자들은 우리의 과학과 기술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구와 그 거주자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구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성공하려면, 아직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소용돌이 속으로 내려가다]
어부 형제 셋이 작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폭풍을 만난다. 바다는 사나운 바람에 세찬 해류를 일으키며 날뛰고, 배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끌려간다. 그런데 그 중심은 섬뜩하게 고요하다. 형제들 중 한 명은 극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침착함을 되찾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배보다 더 작고 원통을 닮은 물체들이 천천히 끌려 내려오는 것을 본다. 곧이어 그는 그 통 모양의 물체들이 사실은 상승하면서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재빨리 몸을 던져서 빈 물통 하나에 올라탄다. 난파된 고깃배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고, 물통은 꾸준히 상승하면서 소용돌이를 벗어나서 유일한 생존자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눈앞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정서적인 거리를 둔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렇게 거리를 둔 덕분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한 것이 그의 생존 비법이었다. 그의 행동은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그는 순전히 소용돌이에 매혹되었을 뿐이다. 얼핏 보면, 그는 과학적 호기심을 채우려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는 듯하다. 그의 생각은 문제에서 해답으로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한 앎을 경유한다. 소용돌이에서 살아나온 그 어부처럼 현실을 초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은 행동이다.

몇십 년 동안 인류의 처지를 향상시키고 미래의 전망을 더 밝히기 위해서 혁신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 목마름, 질병, 장애 등을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부족해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현재의 기술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은 탄탄한 경력을 쌓은 후에 헌신적인 동료들과 함께 오랫동안 열심히, 대개는 엄청나게 비싼 장비에 의존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 혁신은 지구력, 부지런한 시험, 무수한 과학자와 기술자의 영감을 필요로 한다. 신기술 개발은 복잡한 과정이다.

진보는 일종의 진화이며, 그 진화에서 순수 과학과 응용 기술은 서로를 복돋운다. 진보는 강한 비선형성을 띤 과정이어서 전체를 굽어보기가 어렵다.

경제학 모형에 떼거리 행동을 포함시키는 것이라고 장-필립 부쇼는 생각한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서 배워요. 이것은 아마 훌륭한 생존 전략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방은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죠. 모방은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현상을 유발할 수 있어요. 저는 박수치기와 같은 단순한 모방 상황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연주회의 청중은 다른 사람들의 박수치기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얼핏 생각하면, 박수가 천천히 잦아들다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타인들의 박수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박수는 갑자기 끝이 나죠. 박수를 치는 마지막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방은 갑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서로의 박수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청중의 박수는 차츰 잦아들 것입니다.”

하루를 그럭저럭 살다보니 고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또 한 주가 흘렀고, 비가 내리고 있는 일요일 저녁이다. 이번 주에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만난 형님과 함께 소주 한 잔을 하고 들어왔다.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동네에서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의에서 약 1년간 생활을 하면서 구의에서 한 번쯤은 술을 마셨을 법도 한데, 우리의 무대는 늘 건대였다. 그래, 건대에서는 참 많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좋아, 비가 내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곳에 적어보자. 모든 것은 그렇다. 어떤 것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게 어렵다. 시를 쓰기로 마음을 먹는게 어렵고,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게 어렵고,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는게 어려운 법이다.

2013년은 약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나의 2013년은 어땠는가. 이 이야기는 조금 더 2013년의 말미에 하고 싶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다. 그 때가 되면 할 애기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무도 적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걸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말이다.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런거라면 너무도 싫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만큼 변했는지, 얼만큼 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 주위는 많이 변했다. 다들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를 보자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느낌이지만, 큰 그림을 봤을 땐 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서 많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나로 인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 한 때 내 인생의 사명을 '창조'와 '기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를 창조할 수 있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굉장히 많은 걸 꿈꾼다. 과연 그런 꿈들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늘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하루를 그럭저럭 살다 보니 고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로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내 머릿속의 생각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이다. 멋지게 살아가자. 우리, 멋지게 살아가자. 내 소중한 삶, 내 가족들의 소중한 삶, 그대들 모두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

스마트폰 배경화면의 변천사 2011.11-2013.11

스마트폰 배경화면의 변천사 2011.11-2013.11

스마트폰을 구입한 2011년 9월 이후로 수없이 스마트폰의 배경화면을 바꿔왔다. 가끔 스크린캡쳐로 화면을 저장해 놨는데, 다시 돌아보면 내 취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서 신기하기도 하고 매우 즐겁다. (좀 더 많이 저장해 놓을 걸)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6월 말, 내가 써 온 글들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뒤로부터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결정한 방법은 이 곳, 구글 블로거이다.  9월 18일부터 블로그 이사를 시작해서 3주 동안 1,000여개에 가까운 글을 모두 옮겼다. 이것은 정말 큰 작업이었다.

# 글 위주로 옮겼다. 영화, 책 리뷰 / 사진 / 음악 등에 대한 관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2005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의 시간여행을 했다. 나는 정말 수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  내가 작성한 글은 모두 2,000여개가 넘었다. 글들을 나름 분류하기 위해서 모든 글에 각각 태그를 달았다. 내가 가장 많이 이야기 했던 부분은 인생의 느낌 (239) 나에게 하는 말 (209) 관계 (118) 청년의 다짐 (116) 그대에게 하는 말 (107) 그대가 말했다 (102) 그대는 감동 (74) 일본인연 (72) 책이 말하길 (72)...  이다. 많은 걸 느끼며 살아왔고, 그리고 내 자신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항상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그런 인생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그대와 나의 기분좋은 영화같은 인생을 주고 받으면서

# 앞으로도 열심히 쓰고 쓸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유지에 대한 고민

예전엔 블로그에 자주 들러 글을 쓰던 것이, 최근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게으름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엔 글 쓸 단서를 잡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데, 그건 게으름으로 모두 설명된다.

그 밖의 다른 변명을 더 대보자면

1. 트위터를 다시 하면서 
   - 순간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트위터에 잠깐씩 기록한다. 그러다보니 정말에 단순하며 생각의 확장에 이르지 못하는 문장들을 올리고 있다. 트위터에 별 내용이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저 느낌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어딘가에 적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음은 아니다. 군대에 들어가 훈련병이 되었을 때도 노트와 펜을 받자마자 훈련병의 일상을 기록했다. (일상을 어느정도 깊이로 기록하느냐는 물론 차이가 있다.) 지금은 트위터며, 구글플러스며, 페이스북이며, 내 PC의 파일들, 또는 클라우드 상의 파일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만 블로그에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 것. 어쩌면 공개할만한 기록이 없는 것. 비밀글은 많이 작성하고 있다.

2.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
  - 내 블로그는 '나'를 그려왔다. 2005년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9년이 채워져 간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내 블로그만 잘 읽어보면 나라는 사람을 100%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지인들의 관계도 모두 알 수 있다. 그만큼 내 블로그는 나와 이미 동일시되어 있다.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기록하는 나의 페르소나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블로그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 이를테면 영화, 음악, 책, 사진 등을 모아놓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대학생활의 모든 경험과 생각들, 나의 역사들이 고스란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이곳에 쌓아가고 있는 것이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사실 서로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도 좀 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

3. 네이버 블로그 유지해야 하나
  - 네이버의 서비스가 폐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최근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스레 폐쇄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용자의 대부분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 그만큼 국내시장에서는 네이버가 검색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네이버가 자사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네이버 블로그에 나는 9년간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큰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나는 네이버에 계속 내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모든 데이터를 백업해 놓기 위해 관련 서비스를 검색해봤더니, 그 방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고 너무도 불편하며 파일 포맷도 PDF만으로  제공하더라. 순간, 위기 의식을 느꼈다. 발을 쉽게 못 빼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1)정말 오랜시간을 걸려 자체적인 백업방법으로 백업을 할 것이냐 2)네이버 블로그를 그냥 끝까지 이용할 것이냐 3)네이버 블로그를 폐쇄할 것이냐 등이다. 1번은 그 동안 올린 데이터(글과 사진과 영상)가 너무 방대해서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이고, 2번은 솔직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이후로 모든 검색은 구글을 이용하고, SNS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기타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폐쇄적인 네이버는 그런 것들간의 동기화 혹은 호환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조금 더 네이버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광고액에 따라 우선적으로 광고를 노출시키는 네이버 검색이야 진작에 사용하기를 포기했고, 메인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신문 모양의 언론사 링크는 클릭할 동인이 없고, 그마저도 뉴스 기사를 읽으면 표현의 자유가 난무하는 댓글들에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잘 쓰고 있는 것도 있다. 네이버 사전과 지도! 특히 네이버사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네이버랜드에 내 역사를 쌓아가는 일을 재고하고 있는 중이다.

각각에 대한 결론
1. 트위터에 짧은 단상을 적더라도  그 생각을 확장하여 글을 쓰는 연습을 하자.
2. 세상에 의미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분야를 정하자.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글)
3. 당분간은 현상 유지를 하는 동시에 네이버를 탈출하여 둥지를 틀 수 있는 새로운 스페이스를 모색해보자.


종교 문맹 극복하기, 알리 아사니

종교 문맹 극복하기, 알리 아사니


종교 문맹의 공통 증상 하나는 종교라고 하면 흔히 제례, 의례, 종교 축제 같은 종교 행위만을 떠올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개인 공동체 국가의 행위를 전적으로 종교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무슬림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조리 종교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 보니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를 괴롭히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경제 후진성, 부당한 처우, 여성 비하 같은 다양한 해악의 주요 원인으로 이슬람을 꼽는 사람이 흔하다. 많은 무슬림이 보기에, 이런 해석은 기독교가 주요 종교인 미국의 범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기독교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 없다.

종교를 이해한 학생이라면 종교 해석은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 한 일임을 알게 된다. 신앙인이라면 특정한 종교 진리를 신성한 계시로 여길 수 있는데, 그들이 그 진리를 토대로 쌓아 올리는 의미들은 그들이 처한 세속의 환경과 현실에 크게 좌우되게 마련이다.

종교 문맹과 문화 문맹을 방치한 민족과 국가는 결국 그들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를, 다시 말해 그들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만다. 종교와 인종이 다른 집단 사이에서 상대 집단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아 충돌과 비극이 발생한 예는 역사에 무수히 많다. 특히 정치 충돌과 군사 충돌이 고조된 시기에는 국가 문화 종교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를 인식할 때 종교 문맹과 문화 문맹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충돌은 흔히 과장되고 상반된 이분법과 언어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테면 문명인과 야만인, 선과 악, '우리'와 '그들'등이다. 이 같은 이분법은 서양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의 차이를 논의하는 오늘날의 토론에서 특히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의 묘사는 많은 사람에게 먹힐지언정 여러 관저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서양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적대적이고 상반되는 용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옳지 않다. 종교 사상이나 개념에서 두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문화뿐 아니라 아브라함 전통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분법은 '타인'을 모욕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으로 그리는 탓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종교의 세 가지 접근법 : 신앙 접근법, 문서 접근법, 상황 접근법

종교의 표현과 해석을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비신학적 요소와 관련 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는 것은 상황 접근법의 핵심 원칙이다. 해석의 문맥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는 이 세 번째 접근법을 이용한다면, 같은 종교 전통도 그것을 묘사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상반도리 수 있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코란이나 성경 같은 종교 문서도 신자들이 그들만의 다양한 목적을 정당화할 요량으로 임의로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목적은 포용과 배제, 자유와 억압, 민주 정치와 신권 정치 등 서로 상반되기도 한다. 상황 접근법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비판적으로 고민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효과적인 틀이다. 이 연구법은 종교 연구란 일상에서 종교를 실천하고 해석하면서 종교의 영향을 받고 사는 인간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종교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비교종교학 교수를 지낸 고 Wilfred Cantwell Smith는 저서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서 우리는 흔히 종교를 각 종교 고유의 믿음과 실천 체계를 갖춘, 늘 동일하고 의미가 명확하고 조직화된 관념으로 인식한다며, 이런 인식은 유럽 계몽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종 민족 문화가 다른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무수한 해석을 내놓는 다양한 이야기다. 이슬람과 그것이 무슬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요한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어떤 이슬람인가? 누구의 이슬람인가? 어떤 상황에서의 이슬람인가? 무슬림 중에서도 특정 교파 (수니파, 시아파 등)에 한정된 이슬람만 아는 다수의 무슬림은 같은 무슬림이면서 자기와 다르게 신앙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볼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어떤 이는 이 다양성에 위협을 느껴, 진정한 이슬람은 하나뿐이라고, 자기가 믿는 이슬람 하나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다양성은 인정하되 모든 무슬림이 특정한 기본 믿음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의 다양성을 공동체의 힘과 신의 자비를 드러내는 표시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도 있다.

Cantwell Smith 교수는 이 변화를 구체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신앙, 경험, 종교 행위 같은 유동적 개념이 차음 '종교'로 추상화하고 일반화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가령 예수의 제자들이 이 점진적 과정으로 기독교인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를 유대인과 점점 차별화하기 시작했던 일을 떠올려보라. 이슬람도 이와 비슷해서,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자기들만의 차별화된 사회, 정치 공동체를 만들 필요성에서 구체화 과정을 이용했다. (Wensinck (1932), 2007) 이들의 정체성은 지도자 무함마드를 향한 충성심으로 결속한 초대형 부족에서, 자기들만의 종교 집단으로, 스스로를 '무슬림'이라 부르는 집단으로 바뀌어갔다.

무슬림 사회는 전 세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수많은 다른 요소와 연관 지어 해석하려고 고민 중이다. 민족주의, 현대성, 세계화, 산업화, 종교 간 그리고 내부 종교의 다원주의, 문화 간 그리고 문화 내부의 다원주의 등이 모두 고려 대상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런 고민을 할 때는 특정한 역사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여러 비무슬림 세력은 무슬림을 직간접적으로 거의 식민화했다. 그들은 식민화 계획의 일환으로, 무슬림 사회를 식민지로 재빨리 바꾸려 했다. 식민 시대가 지난 지금, 무슬림 사회는 다른 나라가 정한 이상과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진정한 이상과 기준에 따라 정체성을 발견하고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동 부류에서 진보 부류까지 다양한 신앙 해석과 해법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대중 매체가 보여주는 모습으로만 이슬람 전통을 해석하는 일반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이슬람을 '과격하다'거나 '극단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인을 '이슬람'이라는 획일화된 상상의 모습에 돌리지 말고 그런 해석이 나온 상황과 환경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오늘날의 이슬람 해석 가운데 상당수는 세계화와 민족주의 같은 힘이 무슬림 사회를 지나치게 왜곡한 결과가 분명하다. 칼 언스트는 종교를 설명할 때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결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항상 특정 장소와 연관되는 다양한 문화, 역사와 얽히게 마련이다. 종교에 관한 과장된 수사를 이해할 때는 반드시 상황을 고려해야 말하는 사람의 목적과 그 반대자를 파악할 수 있다."


운명이란게 번번이 내 의지를 조롱하고 희망을 비웃지만 아직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나인 : 아홉번의 시간 여행을 보고 느낀점 및 결말

결말에 대한 나의 생각

운명과 의지의 싸움
애초에 선우는 뇌종양을 가지고 죽을 운명이었다.선우는 죽으면서 "내가 곧 향이었다"며 말하고 향을 다 쓰는 순간 자신도 소멸된다.

결말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는 거 아닌가. 죽음만큼은 어떻게든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다. 마치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한 순간 죽음을 피하더라도 다시 찾아온다. 방화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살리려 과거로 되돌아가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우울증에 빠진 형을 살리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게 하지만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친구 영훈이가 오히려 향을 찾다가 죽는 편이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말이 참 가슴이 아팠다.)

운명은 정해져있다고 믿는 것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의지)이라고 믿는 것, 이게 참 재미있는 거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 결국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운명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고 말하는 불가항력적인 무언가의 일을 바꾸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지만, 그 조차 운명의 범위 내에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의지'를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차 운명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운명과 의지'에 관하여, 이 가장 멋진 대사가 드라마를 가장 크게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끝까지 해보겠어.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운명이란게 번번이 내 의지를 조롱하고 희망을 비웃지만 아직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자신을 포함한 우주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인냥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의지를 발현한다. 끝없이 운명과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과거에 갇혀 죽어버린 선우. 19화에서 모든게 해피엔딩으로 가는 것 같았지만, 선우가 죽으면서 그건 결국 불행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즉, 선우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고 그것을 바꾸려 하지만,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삶이 비극일지라도
선우가 죽으면서 영훈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몇 번의 생을 살아도 계속 친구로 있어줘서 고마웠다1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너무 뜨거웠다. 선우가 몇번이나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은 변하지 않고 모두 선우의 주위를 맴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어떻게든 만나는 것이다. 함께 운명의 수레바퀴에 타고 있다. 그 끝은 비극이었지만 비극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운명에 저항하며 살아온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었을 듯 싶다. (이런 생각으로 이끌어내지 않으면 결말의 팩트가 너무도 잔인한 비극이라서 그걸 받아들이기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삶에 대한 팩트와 판타지
우리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판타지다. 사회는 정의롭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판타지는 말그대로 허구이며, 세상은(운명은) 우리가 바라는 판타지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팩트다. 허나 또, 팩트만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 인간은 아니다.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으니 믿고 싶은 건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면 된다. 운명이 우리를 속이고 조롱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은 그걸 뛰어넘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선우를, 민영이와 형을 그리고 친구 영훈이를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정말 흥미진진하고 전해주는 메시지도 진한 훌륭한 드라마였다.

 그 운명을 선택해준 사람들에게 매번 내 생애마다 한결같이 내 가장 진실한 친구가 되어준 너에게 감사한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우리가 죽을 때는 세상이 울고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 화이트 엘크

— 긍정 봇 (@Be_positive_bot) 2013년 5월 13일

완전한 글을 쓰겠다며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지금 가능한 일을 하시오

"완전한 글을 쓰겠다며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지금 가능한 일을 하시오. 그러면 불완전한 그 일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것이니, 그 배움을 바탕으로 다음 일을 하시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며, 어느새 완성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오."

괴테

삶이 편안하면 방심하게 되고, 방심하면 안주하고 방탕해진다.

삶이 편안하면 방심하게 되고, 
방심하면 안주하고 방탕해진다.
편안한 삶에는 성장이 없다.
시련이나 위기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더욱 옹골찬 인간으로 빚어지게 한다.
도자기는 수천도 고온을 견디고 나서야 예쁜 그릇이 된다.
온실 속 화초보다 온갖 위험 속에 자란 야생초가
더 강인하고 생명력이 질기다.
-권근, ‘주옹설’에서

어느 것에도 모험을 걸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The person who risks nothing, does nothing, has nothing, is nothing, and becomes nothing. He may avoid suffering and sorrow, but he simply cannot learn and feel and change and grow and love and live.”
-Leo F. Buscaglia quotes

"어느 것에도 모험을 걸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는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겠지만 배우고, 느끼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삶을 살 수는 없다."

- 레오 버스카글리아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어둠은 결코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광명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미움은 결코 미움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몰아낼 수 있다.

 Martin Luther King, Jr.

우리는 성공을 구현한 완벽한 본보기가 돼야 한다.

우리는 성공을 구현한, 완벽한 본보기가 돼야 한다. 
성공이 다가오기 전에 자신이 성공을 내뿜어야 한다. 
태도의 관점에서 먼저 정신적으로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돼야 한다. 

- 얼 나이팅게일 Earl Nightingale

진정한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Mind Programming 발췌

나는 기쁨과 평화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하고 싶다. 하지만 자연의 성질을 매우 냉담하고 육식성이라 생각할 때는 그러한 상상을 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자연을 인격화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인간에게 눈을 돌린다. 인간의 끔찍한 행동과 비교하면 사자가 양을 죽이는 행위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평화와 균형, 조화를 찾는 진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적인 평온함을 얻고 이를 적절히 균형 잡힌 정신과 감성에 융합해 평화와 균형, 조화로 가득 찬 세상을 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 자동차나 수영장, 집 등의 물질적인 부와 육감을 만족시키는 것들 또는 관능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 같은 것들이 구현의 대상이다. 그 반면 영적으로 진지한 사람에게는 평화와 균형, 조화가 우선적인 구현의 대상이며, 그 다음이 건강과 개인적인 행복이다. 이것은 명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므로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남겨두자. 개개인은 저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욕구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과 주위 세계를 꺠달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마음은 점화장치와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꿈을 인식하거나 새로운 하루 일과로 곧바로 주의를 집중한다. 마음은 사고와 믿음, 야망, 목표 등의 내면세계를 즉시 전달한다. 이러한 즉각적인 의식의 흐름, 곧 혼잣말은 자신의 기분이나 태도, 선호도, 그 밖의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내면에 있는 초대형 쓰레기통의 내용물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간성을 정의하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인간성이란 자연에 근거를 두고 인격화하는 공통된 마음의 특성을 동반하는 역동적인 경험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목격한 후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짓고, 소름이 돋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며 인간성의 한 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예로 불이 난 집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부상을 입은 개를 보고 우리는 경탄과 경외심, 사랑을 느낀다. 인간성은 어떤 이야기 속에서 열거할 수 있는 감동 이상의 것이다. 인간성은 정서이며, 원시 욕구에서 비롯된 감정을 초월한다. 감동적인 이야기, 마음을 들뜨게 하는 창조력, 가슴 뛰는 모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솟구치는 열정, 내적 성찰로 이끄는 환희와 경외감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이다.
 
장대높이 뛰기 장면을 과학적 관점에서 수백번 유심히 보았다고 해서 내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대높이뛰기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보아야 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조종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조종을 막기 위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향상된 주거 환경과 그 밖에도 많은 것을 꿈꾸고,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거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쳐놓은 장벽에 부딪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절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최면이나 심리요법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서구 문화의 영향권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율성에 대해 좀 더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깨우고 자아를 실천하는 데 뇌의 우반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상상해보라. 이런 심상화는 뇌의 우반구를 활성화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내면의 잡음을 멈추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덧붙여서 우리 각자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믿을 때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세계의 평화를 약속하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다.
 
행복한 심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는 왜 이것을 원하는가? 내가 깨달은 거 이렇다. 우울한 심장이 면역계나 내분비계, 자율신경계를 최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믿겠는가? 이는 수명이 짧아지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인생은 어차피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야. 인간은 누구나 결국 죽는다고!”라는 말은 자기충족 예언일 뿐이며, 우울한 심장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TV앞에 앉은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과민한 암시 감응성이라는 의식 상태로 들어간다. 흔히 최면 상태라고 말하는 상태다.

생각 역시 심장의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슬프고, 악하고, 비열하고, 폭력적인 기억을 지니면, 즉 누군가에게 분노를 품으면 불규칙하고 일관성 없는 심장 패턴이 생긴다. 생각은 감정으로 표현된다. 그릇되고 원하지 않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부정적인 감정을 중화시키는 일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진짜 미소가 나올 때까지 가짜 미소를 띠어야 한다. 웃음은 뇌를 속여 천연 아편을 더 많이 생성하게 한다.
 
생각은 물질이다. TV프로그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광고는 보지 마라. 특히 병을 알리는 광고를 경계하라. 머릿속에 들어가는 내용을 감시하고 내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협하는 생각은 무조건 없애라.

문제는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세계정세에 항상 귀 기울이고 합리적인 투표자로서 선거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또한 세계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양심의 명령에 따라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면 견해와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해 회피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은 전두엽(감정제어와 공격적 행동을 제어하는 기관)으로,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나 공격성을 조절할 때 이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나 폭력적인 게임을 오래하면 이 부위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폭력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은 폭력적인 장면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반면, 폭력게임을 한 사람은 폭력에 둔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소산물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믿음’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우리가 겪은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본 일일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을 창조하게 된다.

증오, 분노, 불신, 부러움, 탐욕, 공포, 질투 등을 모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지원과 사랑만을 알고, 무시되고 방치되거나 불안전한 느낌을 모른 채 성장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인내와 끈기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학습 도구를 접하고, 탐구심과 독립심을 키우며, 끈기를 발휘해 성공했을 때 칭찬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아이는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실제로 성공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삶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준비부터 해야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마음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향상시키는 일을 해오면서, 변화를 꿈꾸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변명만 수없이 늘어놓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여러 가지 도구와 기술을 찾으며 분주할 날들을 보내지만 어떤 방법에도 효과를 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을 발견할 때마다 그 체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유를 찾기 바쁘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변화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저항을 낳는다. 저항은 변화를 피하려는 과정이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진정한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으며,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견뎌내겠다는 의지, 내려놓기, 비난과 자기책임에 관한 관점의 전환,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진실한 열망, 자신을 보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수정이 요구된다.

행동을 바꿔라. 그러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행동이 바뀐다. 변화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라. 그러면 변화가 강화된다. 변화의 중심을 자신에서 세상에 대한 봉사로 전환하라. 그런 후에 개인과 사회로부터 최대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박장대소는 마음을 속여 인생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걸 아는가? 그렇다. 웃으면 뇌의 화학작용이 바뀔 것이다. 단순히 표정만 바꿔도 거의 즉시 슬픈 기분이 누그러진다.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 전체를 꿈으로 보는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난 후 꿈속의 일을 가지고 정말로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우습게 느껴진다. 용서는 우리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세계 또는 물질세계를 초월한다. 모든 일이 그저 일어나지 않았으니 용서할 것도 없다.
 
스승님,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인생은 기적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인간의 의식 또한 기적입니다. 저는 모든 창조물에서 신을 봅니다. 꽃향기에서, 아이의 웃음에서, 연인의 다정함에서, 별들의 반짝임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세상을 볼 때 저는 그 불가사의함에 놀랍니다. 매일같이 펼쳐지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끼고 숭배합니다. 저는 만물이 선하며 매 순간 적절한 방법으로 각자의 선함을 표현한다는 걸 압니다. 제 형제들이 말하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는 걸 압니다. 오직 영원의 세계만이 진실이니까요. 저는 결핍, 제약, 어려운 상황 등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저 제가 본 광경을 세상에 주고 싶을 뿐입니다. 살아 있다는 축복에 가슴이 뜁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각자의 일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자아상과 기대, 전반적인 행복에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기억은 모든 경험을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 즉 깊은 마음의 연결 덕분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지속성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단편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 자신에 대한 기대, 세상을 보는 방식, 믿음, 거주지, 어제와 그저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기한다. 기억이 지워져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하루하루가 완전히 따로 놀 것이다. 기억은 연속성을 지시해서 우리 삶을 구성한다. 또한 기억은 실제 정보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마음은 모든 사건이 완벽하게 기록되는 빈 서판이 아니다. 실제로 기억할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억이 기대나 공포, 불안, 욕구 등에 의해 왜곡 된다는 증거다. 우리는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을 마음속에서 실제처럼 그리기도 하는데 이 마음 속 그리기는 사건 전에 일어나기도 하고, 사건 후에 일어나기도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대개 감정적으로 얽혀 있어 기억력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우리는 잊기 위해서 기억한다. 마음은 어느 단계에서 기억을 억제함으로써 행복을 지킨다. 마음은 회상하지 못하게 꽁꽁 싸매놓은 걸 기억해서, 잊힌 기억을 지키는 전략 체계를 발전시킨다. 이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억제된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형태는 바뀔지라도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멋진 광경은 사라진다. 모든 달콤한 말도 색을 바랜다. 하지만 낙담하지 마라. 그 원천은 영원하며, 성정하고, 가지를 치며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다. 왜 눈물을 흘리는가? 당신 안에 원천이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원천에서 솟아난다” – 잘랄 아드딘 아르 루미 (이슬람 신비주의자) –

남은 날이 50일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온다. 매일 솟는 찬란한 태양, 따뜻한 미소, 즐거운 웃음,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사랑이 아닌 순수하게 격려하는 사랑 등등. 또한 자동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미뤄놓았던 일을 다시 손에 잡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매번 시간이 없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미뤄왔지만 남은 인생이 50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이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50일이 정말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남은 날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로 배웠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더 많은 걸 배우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인생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지고 내 감사함은 점점 더해간다. 죽음보다 삶을 믿어야 한다. 분명 흥미로운 인생이 펼쳐지며, 작은 일상에도 감사가 넘쳐날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이렇게 아침에 정신 상태를 살짝 바꿔놓으면 머릿 속에 있던 ‘제기랄, 침대에서 일어나야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기대감으로 바뀌어 그날 하루를 감사하게 된다. 간단히 이 방식을 충실하게 실천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역경이 찾아왔을 때 아름다움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And so what?”
 일어난 일은 알어난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기만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경외심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온세상이 경이로웠다. 모든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것은 공경심이다. 공경심이 없다면 경외심을 가질 만한게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냉정하고 그릇된 자존심만 남는다. 이는 만물의 이치와 그 기원과 이용방법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어떤 것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믿기 쉽다. 전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사용하므로 우리는 전기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빅뱅에 대해 알기 때문에 우주의 창조를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이해하는 걸까?전기가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됐지만, 과학은 여전히 전기를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뭘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항상 초조해요. 지금까지는 그래요.” 그러면 우리의 말과 생각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생겨난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진실이 될 것이며, 당신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것이며, 당신이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이 자신을 바라보고 발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를 의식함으로써 지금까지 해오던 부정적 사고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다. 생기가 넘치고 내면이 충만하며, 선순환이 계속돼 연이어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행복과 충만감은 어디서 올까? 인생의 좌절을 맛본 사람이 충만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충족감이 행복을 주고, 자긍심을 높이며, 부와 명성, 평화, 균형감, 조화로 이끌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도모하고 시대에 맞는 성공 비결로 자신의 인생을 성장시킬 기회를 잡는다면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의 관계가 향상될 수 있으까?

 1. 진짜 ‘나’ 되기
 지금까지의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놀랍고 멋진 당신을 보아라.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하면서 잘못된 자기 개념을 주입받는다. 어린 시절 우리는 수용되고 싶은 욕구로 종종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곤 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며,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 건설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영광스럽게 구현할 권리를 타고났다. 삶의 풍요로움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다. 우리 모두가 기적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생각은 기대감을 반영한다. 우리는 무의식에 뿌려진 씨를 열매로 거둔다. 의심은 실패를 낳고, 두려움은 분노를 낳는다.

2. 생각은 물질이다.
생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대하는 것을 얻게 된다. 생각이 곧 사람이다. 우리는 경험한 모든 일에 대한 잠재적인 믿음을 실행한다. 자신에게 행복, 충만감, 성공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가? 존재의 모든 단계에서 모든 선은 항상 자신을 위해 나타난다는 것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 삶의 구심점은 사건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삶의 구심점이다. 자신의 생각과 욕구가 일치했을 때 꿈꾸던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3. 용서하고 내려놓기
모든 행동은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수준에서 결정을 내린다. 삶은 모든 측면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이란 감정을 만난다. 앞의 반응 행동과 달리, 이 때는 힘을 얻어 모든 자극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할 능력이 생긴다. 의식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억제라고 했다. 사실 남 탓을 하는 한 성장하고, 통제하며, 평화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경험하는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리 없다. 성장의 힘은 용서에 있다. 내려놓으면 자유로워 진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는다.

4. 나 자신을 사랑하라.

5. 수용하는 힘
 대개 우리는 자신이 저항하는 것을 얻게 된다. 또한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자신 안에 있는 요소를 반영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각자 무언가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인 양, 자신의 최고 모습인 양 대하라. 뿌린 대로 거둔다.

 6. 상호의존의 힘
 행복은 존재의 상태다. 행복은 영원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현재, 순간순간에 경험하는 것이다. 행복은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일의 책임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으로 빚은 불안 상태는 우리 내면 깊은 곳의 두려움을 부추긴다. 이 두려움은 매우 창조적인 힘이 있어 사람들에게 종종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상상하게끔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예상하거나 이미 일어났던 일을 한탄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7. 지금 당장 실천하라.
 꾸물대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라. 무언가를 바꾸려면 직접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바꿀 수 있고, 그러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배운 것을 실천하라. 놀라운 변화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