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구넬 지음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결점만을 확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점 때문에 상대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해 버려요.
그런데 그들의 짐작이 맞습니다.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못난 사람으로 봅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매력입니다. 그 매력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마음에 따라 태도와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생각의 산물이었던 모습이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결국 자신의 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겁니다.
‘당시만 해도 앞으로 우리가 나눌 대화와 교감이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도 못했다.’
자신의 확신이 곧 현실을 만들어 내죠.
부모가 갓난아이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웃어도 모른 척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점차 자신이 주위 환경에 아무 영향을 못 준다고 느끼면서 자랍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나이에는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단지 하나의 느낌, 감정이니까요.
타인과 무엇인가를 주고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 운명론자가 될 겁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고, 사물을 움직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합니다. 만약 직업과 관련해서 궁지에 처한 그를 친구가 보게 된다면 그의 수동적인 면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친구가 그에게 상황에 반응하고 통제하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접촉하라고 아무리 진심 어린 충고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친구는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게 되겠지요. 그의 태도가 단지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확신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할 테니까요. 자신은 세상에 아무 영향을 못 주고,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자기 확신’ 말이죠. 심지어 그는 자신이 그런 걸 믿는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그에게 현실이 된 겁니다.
환상이 깨질까 봐 두려운 거군요.
누구나 자신이 믿는 것에 애착을 갖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균형의 형태일 뿐이니까요. 누구나 자신의 믿음에 근거해서 일관성 있는 세상을 구축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놓고,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매달리지요.
자신이 믿는 것이 바로 현실이 된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각자 선별하는 정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에요. 선별 행위는 개인의 고유한 것으로, 무엇보다 그 사람의 믿음과 세상에 대한 믿음, 한마디로 삶의 비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이 현실을 걸러줍니다. 즉,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가려냅니다.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격식을 갖춘다면, 예를 들어 호의에 감사를 표하면서 거절을 한다면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상대가 특별히 예민한 성격이라면, 그건 어떤 면에서는 그의 문제이지 선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의지에 반하는 무언가를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이.. 따라서 이중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이지요.
거짓말을 하는 건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그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켜서 자기 안에 쌓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을 말하세요. 훨씬 더 자유롭고 가벼워질 테니까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습니다. 두 그룹에 신문을 한 뭉치씩 주고 그 안에 실린 사진이 몇 개인지 제한 시간 내에 세어 보라는 과제를 주었지요. 그런데 신문을 몇 페이지 넘기면, ‘더 이상 셀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신문에는 마흔여섯장의 사진이 실려있습니다.’라는 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문구를 발견하고 더 이상 사진 개수를 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사진은 모두 마흔여섯 개입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끝까지 사진을 세어 본 건 맞지만, 왜 문구를 참고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문구라뇨? 무슨 문구요?’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창작품입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 모두 그러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반드시 그런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지지와 도움, 조언, 만남 등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살펴보세요. 아기가 단번에 성공할 거라고 믿나요? 다시 서 보고, 그러다 또 쿵하고 넘어지곤 하지요. 그렇게 쓰라린 실패를 겪지만, 즉시 다시 시도를 합니다. 또다시 일어서다가,, 또 넘어지지요! 아기는 평균 이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웁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애착을 갖고 있는 걸 포기해야만 하지요. 만약 아무것도 포기 못한다면,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선택을 못한다면, 원하는 삶 또한 포기해야 합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길을 가는 건 때로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등산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힘들게 올라갈수록 정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더 커진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올라가는 데 기울인 노력이 클수록 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되고, 그 행복한 느낌이 더 오래도록 기억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