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관습적인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고 젊은이들에게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와 인생에서 가장 큰 동기는 일의 기쁨, 그 결과에서 얻는 기쁨, 그리고 지역에 이바지한 가치를 아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공부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고의 학습법이 아니라 최적의 학습법이다. 지문이 다 다르듯 유전자와 환경과 성격과 재능이 다 다르며, 사람마다 영향을 받는 측면과 정도도 다 다르다. 무엇보다 학습의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뇌 회로 역시 다 다르다. 또한 좋아하는 학습 대상과 모양, 형식, 배경, 관점, 취미, 수준 등의 수많은 변수가 다 다르다. 그러므로 68억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최고의 학습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68억 개의 최적의 학습법이 존재할 뿐이다.
공부는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책이 없던 인류에도 지혜자들은 다양한 도구와 경험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것이 바로 공부의 모습이다. 이제는 놀라운 문자의 발명, 시시각각 쏟아지는 책들, 수많은 시청각 자료 등을 통해 더욱 쉽고 편하고 효율적으로 지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었고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공부 역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녹아 들었다.

공부는 철저히 삶과 관계의 중심이다.
공부할수록 지식과 실력과 직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공부할수록 교만과 아집과 편견이 비워져서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삶의 가치들이 향상되어야 바람직한 공부다. 상처와 아픔은 저절로 치유되며 건강해진다. 공부할수록 이웃과 세상이 나와 하나 되는 관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공부의 본질이다.
자연이 진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따스함이 느껴지고 인간다움이 느껴진다.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인가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갖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꼭 비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고,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활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 공부할수록 낮춰지고 겸손해지는 현상은 당연한 것읻.
독일의 언어철학가 훔볼트는 “몯느 인간의 목표는 개인의 능력을 가장 고귀하고 조화롭게 발전시켜 모순이 없고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드높일 수 없다면 얼마나 가련한 인간이냐는 말이다. 공부는 고차원의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활동이다.
또 공부는 철저하게 삶과 관계 중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필연적이다. 내가 아닌 우리여야 하고, 내가 먼저가 아닌 당신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공부할수록 많은 소통과 관계의 맺음이 이루어진다.
공부는 자신을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무의미한 존재를 유의미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단계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세상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미처 몰랐던 내적 자아와 소명을 찾을 수 있다. 자기 몫을 감당해내는 모습을 겪으면서 변화를 완성해간다. 공부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채움과 비움을 통해 강하고 의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창조된 자신을 찾았다면 진짜 공부를 했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이 노력하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집단(발달이론 집단)
두 번째 부류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 즉 두뇌는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집단(실체이론집단)
전자는 학습을 통해 지능이 육성될 수 있다고 믿으며, 후자는 지능을 고정된 특성이라고 여긴다.

생각의 차이가 인생을 좌우한다. 유전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실패로 인해 평생 재기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차이를 결정하는 핵심은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결국 생각이 변화의 본질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공부가 안된다면 굶어라.

원래부터 타고난 머리는 없다.

천재와 둔재는 한끝 차이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키르케고르: 공부란 인간 고유의 삶의 양식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은 실존”이라고 말했고, 사라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통으로 언급한 그 실존이란 게 무엇일까? 덴마크 철학가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실존은 스스로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질은 자기 바깥으로 스스로 나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실존하는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며, 혼자서는 어떠한 의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는 관계적인 존재다. 인간의 삶 역시 인간과 자연, 세상과 자존자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재창조해가는 연속이다. 맨 처음 눈을 뜨면서 가족과 관계를 이루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부터 친구, 동료, 시민으로서 세상과 관계를 이루며, 생명의 존엄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와 관계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뛰어넘고 전진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공부인 것이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공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부의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공부란 것이 인간의 삶을 토대로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활동이 결합되어 좀더 다듬어지고 나아진 활동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참된 가치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 바깥으로 나가려는 존재인 동시에, 세상과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주고 받는 과정이며 이는 매우 중요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베풀고 도움받는 과정, 이해받고 용서받는 과정,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이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활동이 인간 본연의 삶의 양식이다. 이것이 서양 철학가들의 눈을 비려 바라본 공부의 첫 번째 정의다.

니체: 미완성의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
니체는 인간에 대해서 “인간이란 아직도 확정하지 못한 인간,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로서 실존한다.”인간은 미완성의 존재며 확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좀더 나은 자아로 완성해가고 확정해가야 한다.
자신을 완성시키고 확정해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무 의미도 , 목적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미완성인 인간에게 완성과 확정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해주는 활동이 바로 공부다.
인간의 다른 점을 하이데거는 “돌에게 세계란 없다. 식물과 동물도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를 건설한다.” 인간이 세계를 건설해가는 일련의 활동이 모두 공부라고 할 수 있다.


헤강 최한기: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어라
우리나 선조들 중에 가장 많은 저술은 남긴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 500권. 현존하는 책에선 최고. 남아 잇지는 않지만 천여 권을 저술했다고 알려진 선조가 있다. 신화적인 학자 혜강 최한기.
세대별 공부법
20대에는 분야를 가리지 말고 폭넓게 공부할 것을 주장
30대에는 취사선택을 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공부. 선택과 집중
40대에는 세계와 자신을 연결하는 공부. 모든 경험과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 후에 다시 세계화
50대 이후부터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보다 이미 공부한 분야의 내용들을 정리하는 것


실존주의자 사르트르: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갖는다.

영국의 시인 본 :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드높일 수 없다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자신의 모든 힘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에 쏟아야 하며 다른 일에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 :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중략)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느님의 선물.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번스, 104살이 되는 2000년까지 스케줄을 계약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우리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침대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표입니다.”

154쪽
땅 위에 풀 한 포기도 다 목적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자기 몫을 다한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 68억 인구의 지문이 다 다르듯이 재능과 개성 역시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유한 소명이 있다. 역할이 있다.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만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을 찾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를 통해 내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내가 해야 하는 몫, 주어진 몫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설사 우연히 소명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감당해낼 힘과 능력과 용기와 인격을 갖추기 않았기 때문에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빌리 선데이가 말했다.
“인간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 목적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다.”
목적이 없다면 실패하기 쉽다. 공부가 단순히 지식 축적으로만 끝난다면 허무할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자조론’의 저자 새무얼 스마일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와 목적을 위해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157쪽
우리는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입시 공부는 순간이다. 인생 공부가 평생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위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선정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그에게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전쟁이 끝난 후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결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살아야 할 이유였다고 한다. 우리가 삶에게 바라는 것과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우리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삶이 먼저 우리에게 진정 원하는 것이 날마다 용기 있게 물어봐야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되는 대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진리를 늘 갈구해야 한다. 때로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도 있다.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끝까지 놓아버린다.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감사와 경외의 조건이 된다. 현실은 수용소 죄수의 몸일지라도 그것을 초월한다. 
“만약 누군가가 아우슈비츠에서 바이에른 수용소로 향하던 길목에서 우리를 보았다면 우리의 표정이 삶의 자유와 희망을 포기한 사람의 그것이라곤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수송차량의 창문 빗살 틈으로 잘츠부르크 산맥 꼭대기에서 반짝이던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상황 덕분에 더욱 우리는 그날 자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도취되었고, 한동안 그 광경을 그리워했다.”

빈의 제3심리학파 요법인 로고테라피, 바로 이러한 의미에 중점을 둔 이론이다.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것으로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주요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며 ‘의미의 의지’를 강조하는 이론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어떠한 의미나 이유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들, 소위 정신질환이나 신경증세가 발생한다. 심리학에서도 의미를 인가의 존재양식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이 의미를 찾는 행위는 인간적인 존재로 가는 신호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