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Life is blooming

굿바이 게으름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각각의 단계에 따른 자신의 반응을 잘 살펴본 후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의 행동과정
1. 부정적지각: 상황의 부정적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지각함
2. 정신적 게으름: 선택을 미루거나 떠넘기는 식으로 회피함
3. 행위적 게으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시작을 미루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다가 막판에 서두름
4. 자기합리화: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나 자기비난을 시도하고 ‘다음’을 기약함

실천적인 사람들의 행동 과정
1. 긍정적 지각 능력
2. 목표 분할 능력
3. 미래지향적 사고 능력
4. 재시도 능력

게으름
1. 선택의 회피: 결정 미루기, 떠넘기기, 선택의 폭 조절하기
2. 시작의 지연: 해야 할 일이나 하기로 한 일의 시작을 자꾸 미룬다.
3. 약속 어기기: 고지서 납부일 넘기기, 약속시간 늦게 가기, 마감일 넘겨 과제 제출하기 등. 이 역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4. 딴짓 하기 (대체 행동): 눈앞에 닥친 중요한 문제를 애써 회피하고 나중에 해도 되는 사소한 문제를 잡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5. 꾸물거리기: 하기로 한 일이나 해야 할 일들을 그냥 대충대충 하는 것
6. 철퇴: 삶에 계획성도 없고 활동도 없다.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보지도 않는다.
7. 눈치보기
8. 서두름: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학교나 직장에 쫓기듯 뛰어가는 것과 비슷
9. 즉각적 만족 추구와 중독: 싫증을 견디기 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추구한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즉각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중독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외부 자극이 주는 쾌락은 그 유효기간이 짧다. 그것은 목 마를 때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과 유사해서, 이내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게으름과 여유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구분은 의외로 쉽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게으름은 선택을 피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유이고, 후회만을 남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모든 형태의 미룸은 기본적으로 ‘내일의 환상’을 갖고 있다. 그 미룸이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지금 미룬 것은 나중에 더 잘할 수 있기 대문에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으로 현실을 오도한다. 그러나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미래는 일어나지 않는다. –윌리엄 너스, 미룸의 심리학 에서

게으름뱅이들의 단골 레퍼토리
1) 게으름을 신중함으로 미화하는 경우, 완벽주의자나 자기회의가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변명에 익숙하다.
2) 눈앞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경우: ‘딱 오늘만!’이라고 외친다
3) 게으름을 효율성으로 미화하는 경우: 닥치면 하게 돼 있어. 난 오히려 막판에 실력이 나와. 조금씩 하느니 나중에 모았다가 한꺼번에 해야지

게으름을 철학으로 미화한다.: 게으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성, 혹은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태도 “인생 뭐있나? 즐기면서 사는거지.”

자기비난도 결국은 변명이다.
대부분의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합리화와 자기비난의 양극단을 오간다. 초기에는 대부분 자기합리화로 변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게으름이 심해질수록 자기비난의 강도가 세진다. 완벽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초기부터 자기비난이 심하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스스로 게으르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과, 게으름을 피우는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계속해서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게으름을 벗어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마저 똑같다.
자기비난은 자기성찰이나 자기반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게으름엔 이유가 있다.
1. 완벽주의 유형
사실 바람직한 ‘완벽’의 기준은 과정에서의 최선에 있다. 그러나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에게 완벽은 흠 잡을 데라고는 없는 완벽한 상태, 즉 무결점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은 최상의 선택, 최상의 노력, 최상의 결과를 한꺼번에 추구하기에 삶이 괴롭다.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실수 없는 깔끔한 성공’이다.

학습된 무력감 – 학습된 도전 의식
생의 초기에 긍정적인 성취경험을 여러 차례 경험한 사람. 도전적인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무대라는 믿음을 경험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실패의 위험성보다는 성공의 가능성을 먼저 본다. 그리고 설사 도전이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전략과 방법을 수정하여 재시도를 함으로써 성공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자산이 된다. 결국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처럼 긍정적인 경험이 또 다른 긍정적인 경험을 연쇄적으로 불러오기 때문이다.

리더란 긍정적 에너지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리더십의 핵심은 에너지, 즉 영향력의 전파에 있다.

내적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그 노력과 기다림이 반드시 기쁨의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기쁨을 얻으려면 우리는 일정한 어려움과 불확실함,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역경을 극복하고 삶을 전진시킨 사람이나 고통을 견뎌내고 마라톤을 완주해 본 사람은 안다. 진정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불편함이나 고통 같은 장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통 없는 기쁨을 얻으려고 한다. 즉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으름이란 곧 ‘즉각적 만족과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독행위가 즉각적인 쾌락을 주긴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해진다. 결국 같은 정도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 더 깊은 중독으로 빠져든다.

사람들은 왜 결심을 하고 지키지 못할까
힘이 없기 때문이다. 변화하고 도전할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힘 없는 사람들은 결코 변화할 수 없다. 변화는 힘 있는 자들의 것이다.
모든 자연만물이 그런 것처럼 에너지가 없으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우리의 정신은 일종의 에너지다. 생각, 감정, 의지 등도 모두 에너지인 것이다.

게으름을 유발하는 가장 큰 부정적 에너지는 ‘두려움’과 ‘무능감’이다. 무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고 두렵기 때문에 더 무능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삶에서 에너지를 모으는 초점이란 다름 아닌 비전과 목표다. 마음을 담은 지향성을 갖췄을 때 단순히 흩어져 있는 에너지의 총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놀랄 만한 추가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반대로 자신의 재능과 강점에 기초한 생의 목적과 비전을 찾지 못할 경우, 그 에너지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주요 과제는 자기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방향성을 부여하라!
게으름이란 마음이 방향없이 어질러진 상태다. 우리의 삶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질서해지기 쉽다. 엔트로피 상태를 반엔트로피 상태로 바꾸려면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다. 게으름의 원인의 무엇이든지 간에 결론은 우리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삶의 에너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통합’해야 한다. 무질서한 정신에 지향성, 목표의식, 동기가 부여될 때 삶의 에너지는 통합된다. 그러므로 게으름 탈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갖추는 것이다. 대중을 쫓아가거나 획일적인 성공만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억지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순리를 쫓아가는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즉, ‘재능과 강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자기실현의 길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내적 동기를 우선적으로 지녀야 한다. 내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에너지 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외부적 보상이 높고 낮음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에너지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돈, 명예, 인정과 같은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그러한 외부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금세 에너지가 흩어지기 쉽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음의 평정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나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때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에 적합한 시간이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기질이란 그것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그것을 이길 수가 없다. (중략) 내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것은 우주 안의 가장 강력한 것과 동족이다. 내 안에서 그것은 다른 것들을 모두 이용하고, 내 삶은 그것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자기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 특성
1. 현실 중심적reality-oriented이다.
2. 문제해결 능력이 강하다. 어려움과 역경을 문제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
3. 수단과 목적을 구분한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남들과 함께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
5.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잘 받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더 의존한다.
6. 사회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순응적으로만 살지 않는다.
7. 민주적인 가치를 존중하며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한다.
8. 인간적이며 사회적 관심을 유지한다.
9. 넓고 피상적인 관계보다는 깊은 인간관계를 갖는다.
10. 공격적이지 않은 유머를 즐긴다.
11.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남을 가르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있는 그대로 둔다.
12.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좋아한다.
13.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다. 주위의 평범한 사물도 놀라움으로 바라볼 수 있다.
14. 창의적이다.
15. 절정경험을 추구하고 그 순간 초월적인 기쁨과 자유를 느낀다.

열정과 재능이 만났을 때, 즉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만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발휘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긍정적 성취와 도전 경험을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을 흥분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이 몰입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사람들은 당신의 어떤 면을 칭찬해 주었는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해낸 일은 무엇인지, 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웠던 일은 무엇인지 등, 과거의 경험을 철저하게 뒤적거려봐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이를 확인해보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인생 다막 시대를 준비하려면, 1막의 목표는 자신의 재능과 강점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꺼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셉 키아로치<정서지능> 자기실현의 척도 8가지
행복감, 낙관성, 자기응시, 독립성, 문제해결 능력, 사회적 책임감, 자기 주장, 정서 자각

칼릴 지브란 <예언자>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
삶이란 늘 구체성을 담보로 해야하고, 그 구체성의 중심은 일이다.
자기실현의 요체는 결국 일로 표현된다.

일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것은 딱 맞는 반쪽을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당신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것에 가깝다. 처음부터 딱 들어맞는 일이란 없다. 다만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결국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고의 삶이란 최상의 삶이 아니라 최적의 삶임을 상기하자.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가장 빛날까?

윌리엄 브리지스 <나와 회사>
최적의 일을 찾기 위한 10가지 질문
1.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3. 나는 어떤 성격의 인물인가?
4. 내가 가진 유형 및 무형의 자산은 무엇인가?
5. 나의 존재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어디인가?
6.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줄 수 있는가?
7. 나의 재능을 꽃 피우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8. 일의 어떤 점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9. 지금 일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고 있는가?
10. 만일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주어진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헤르만 헤세 <삶의 단계>
우리가 인생을 한 곳에 묶어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기력감이 우릴 덮쳐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황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의 순간마저도
우리에게 새로운 젊은 공간을 보내리라.
우리를 향한 삶의 부름은 결코 그침이 없으리라.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10가지 열쇠
1. 미래에 서서 오늘을 바라보라.
 그런 각성의 순간이 있기까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여러 사건과 마음의 흐름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어느 날 딸아이의 눈망울로 옮겨가 하나의 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자각의 순간은 외부 자극에 의해 찾아오는 것 같지만 실은 내면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삶을 깨우는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면, 외면하지 말고 그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부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면 사소한 번민이 씻겨나가듯, 자신의 삶을 미래의 시점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경우 문제가 더욱 또렷해지고 그만큼 해결책도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2. 게으름에 대한 책임과 폐해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라.

3. 내 안에 ‘큰 나’가 있음을 믿어라.

“살아가야 할 이유는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해법은 단기적인 목표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의식을 찾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몰입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몰입만이 뒤쳐진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으름과 그냥 치고 박고 싸우지 말라. 우리의 가슴을 덮고 있는 재를 뒤엎어서 남아 있는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야 가속도가 붙는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고, 영화를 만들려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삶에도 청사진이 필요하다. 삶의 청사진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생생한 미래상을 의미한다. 꿈이나 목적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가교인 셈이다. 진짜 비전은 두려움도 주지만 어떠한 어려움도 뚫고 이겨나갈 거라는 용기도 준다.

진정한 비전은 실천지향적인 희망이며, 우리에게 쉼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정신의 심장’이다.

멈춤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적 가치와 사명을 만나야 한다. 자기대면의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비전은 자신의 재능과 강점에 기초해야 한다. 재능과 강점을 잘 파악해야 원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맞출 수 있다.
시대의 흐름과 요청에 맞게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구체화시켜내야 한다.

이 여학생은 그떄 이후로 수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난 수학을 못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당연히 수학 성적은 바닥을 기었따. 하지만 지능검사를 해보자 그 학생의 수학 능력은 오히려 보통 이상으로 나왔다. 사실 그 학생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아이들 앞에 나와 문제를 푸는 상황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왜곡된 사고와 믿음을 키워 나간다.

삶을 선택하라.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 에너지는 많을수록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삶의 매순간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앞에서 게으름은 일종의 선택장애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사실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고 훈련이다. 안 하다보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된다. 선택을 남에게 맡기다보면 나중에는 정말 혼자서는 어떤 선택도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말은 지금까지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능동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말에는 자신이 선택을 미루고 회피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려면 일반적인 책임감이 아니라 역설적인 책임감이 요구된다. 즉,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어 선택을 피하지만 결국 선택하지 않아서 잃게 된 많은 인생의 경험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에는 능동적으로 포기하고 거절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했을 때만 선택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느낀다. 예를 들어 팀에서 분담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남들이 선택하고 남은 것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셈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난 양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피하려 한 적이 없는가? 당신이 만약 게으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서 떳떳하게 ‘없었다’라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야구의 수비수가 ‘마이 볼’이라고 외치며 적극적으로 수비를 펼치듯 우리 역시 삶에서 ‘마이 초이스’를 외쳐야 한다. ‘내가 이것을 하겠어’라고 능동적으로 말할 때 에너지가 솟아난다. 책임감이란 결국 에너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태어나 부모가 되었을 때 느끼는 책임감이 우리로 하여금 자녀를 키울 힘을 주듯이 말이다.

삶의 효율성을 높여라.
가장 떳떳하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빨리 마무리짓는 것이다.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효율성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되면서 우리는 자연의 활용과 개발에만 신경을 썼을 뿐, 자연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또한 속도만을 추구할 뿐 멈춰서야 할 때 멈춰서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효율성 때문에 세상은 확대되었지만 우리는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눈앞의 성과만을 생각할 뿐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약해져 버렸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는 피폐해지고, 사회와 관계는 취약해지고,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게으름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노력은 시간관리이다. 그러나 시간관리가 안 되는 모습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성과 마음의 관리에 있다. 만일 게으름의 문제가 완벽주의, 불안감 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간관리와 같은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기 쉽다.

1. 삶의 가장 큰 효율성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이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생산적인 삶이란 애정에 기초할 때 가능하다. 당신 안의 가장 강력한 것을 숭배하고 사랑하라. 몰입이란 재능과 감정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2. 시간 이전에 ‘마음(에너지)’를 관리하라.
늘 기억하라.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사람을 변화시켜준다는 것을. 마음이 가는 중요한 일에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흐르게 하라.
3. 핵심강점을 강화하라.
자신에게 투자하라.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수익률이 높은 자산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백년 인생을 코 앞에 둔 오늘날, 자신의 핵심강점을 신장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장 효율성 높은 선택이다. 하루 중 최고의 알짜배기 시간을 자신의 핵심강점을 강화하는 데 투자하라. 그리고 이를 습관화하라.
4. 단순반복을 지양하라.
기술적 개선 없는 단순 반복 역시 에너지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노력은 기본이지만 그 생각 없는 노력이 똑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우직함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생각 없는 우직함은 우리를 몰입이 아닌 슬럼프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는 변화의 방식마저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운동을 하면 운동의 기술이 향상되는 법이고, 글을 쓴다면 글쓰기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법이다.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우리는 배우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무의미해진다. 우리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삶에 의미를 더해줄 수 있다.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을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에서 ‘선택당함’의 영역이 줄어들고 ‘선택함’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와 행위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듯이 빠름과 느림 중에 어느 한 가지 속도로만 살아갈 필요는 없다. 느림과 빠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는 삶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흙은 부드러워서 좋은 것이고 돌을 딱딱하기에 나쁜 것일 수 없듯이, 빠름과 느림도 좋고 나쁨의 관계가 아니다. 지금의 속도는 인류가 적응하기에는 힘든 속도이다.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에 떠밀려 허둥지둥 종종걸음을 치게 되어 있다.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 영역에서 스피드를 강요당하는 우리는 느림이라는 리듬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빠름을 배격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빠름이 아닌 조급함이며 느림이 아닌 게으름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 같이 행복을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목소리가 섞여 잇는 것 같다. 첫 번째 부류의 행복론자는 인간은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말대로라면, 인간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Human being의 상태로 돌아오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진다. 게으름 혹은 느림을 예찬하는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부류의 행복론자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다. 성공처럼 행복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도달해야 할 가치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그들을 human-doing을 강조한다. 빠름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다. 묘하게도 너무 다른 두 목소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행복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 꼭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행복은 길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지 목표에 도달한 뒤 받는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 만일 목표라면 그곳에 도달하기 전의 삶은 불행으로 물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human-being과 human-doing의 이중적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삶을 ‘다른 존재가 되려는 과정의 연속’ 즉 becoming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우리는 씨앗인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삶이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공이란 꽃을 피우느냐 피우지 못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슨 꽃을 피우는지, 몇 개의 꽃송이를 터뜨리는지, 언제 꽃망울을 터뜨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꽃을 부정하거나 다른 꽃과 경쟁하는 꽃을 본 적이 있는가?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고, 한 해만 피는 것도 아니며, 멋진 꽃밭에서만 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나아가라.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도, 진정한 행복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삶에서의 성공도 결국 하나라고 본다. 즉, 자기로서, 살아가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Life is blooming

‘너로서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