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그것은 넘을 수 있는 벽이다.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학벌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항상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 끝까지 성실히 하도록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교수님께서도 기득권의 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기득권층이 끝까지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자주 보셨다고 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 하셨던 것 같다.
각자가 가야할 길은 다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며,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창조의 시작이다.
나의 열정과 도전은 자연스레 학벌이란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학벌이 아니라 당당히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일정기간 성실도의 표현인 학벌은 실력 앞에서 큰 위력이 없었다. 그것을 나는 많은 논문, 인턴 그리고 국제대회 및 국제 콘퍼런스 등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은 핑계를 대려 한다. 그 핑계를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하향조절하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정당화하곤 한다. 나는 과거에 성적이 나빴으니 이번에 또 안 될 것이다. 당연하지 뭐, 이런 식으로 원래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결론지어 버린다. 나는 이런 학교에 왔으니 당연히 이 정도밖에 안 될 거야 혹은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미리 자신의 능력에 선을 긋고 원대한 꿈을 재단하고 만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결실을 본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물을 주고 햇빛이 비치면 싹이 자라 나무가 된다. 나는 이러한 원리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하면 다 한 만큼의 결실을 보게 마련이다. 원대한 꿈이라는 씨앗을 뿌려 식지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면 싹이 나게 마련이고, 그 새싹은 물과 햇빛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달이 갑자기 지구로 다가와 충돌할 수는 없다.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은 열매라는 기적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꿈의 씨를 뿌리지도 않고 또한 열정과 도전이라는 물과 햇빛을 주지도 않고 열매를 바랄 수는 없다.
“희정아, 한자해라! 딱 한 잔만!”
“형, 저 술 끊었어요.”
“희정아, 그러지 말고 딱 한 잔만 해! 여기 신입생들로 많은데…”
“형 미안한데, 저 정말 술 끊었어요. 저 술 안마셔요.”
“희정아, 알았다. 그러면 술잔 받기만 해! 안 마셔도 좋아.”
“형, 죄송한데, 술잔도 안 받을래요.”
“야! 박희정, 여기 신입생들로 많은데, 술잔도 안 받으면 내가 뭐가 돼. 빨리 잔이라도 받아.”
“형, 미안해요. 저 술잔 안받을래요. 제가 내린 결단을 흔들고 싶지 않아서요.”
“야. 희정! 지금 여기 신입생이 10명 넘게 있는데, 내 얼굴도 있잖아. 그러지말고 잔만 받으라니까!”
“형, 미안해요. 저 안 받을래요.”
“그래, 이 새끼야! 너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나, 얼마나 오래 사나, 내가 두고 보겠어”
나는 스스로 나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싶었다. 선배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결단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서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고시원 내 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방은 내가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딱 맞닿을 정도의 크기다. 책상 하나에 의자 그리고 누울 자리. 1평도 안 되는 이 좁은 곳에서 문제가 있다면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공부할 때는 방바닥에 두고, 잘 때는 의자와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책상 위에는 행운목이 하나 있다. 나의 책상 앞에는 더덕더덕 여러 가지가 붙어있다. 포스트잇으로 메모해 둔 것들과 신문의 관심 있는 기사, 그리고 읽으면 힘이 나는 내용들로 책상 근처의 벽은 어질러져 있다.
“내가 걷는 길을 험하고 미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 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기운을 차리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길이 조금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냐.”
배고파 본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
나는 항상 목표를 높게 잡았다. 나를 더 훈련시키고, 계속해서 도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SKY학교의 학생들과 경쟁하다가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바꾸었다. 더욱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서였다. 그럴수록 나의 꿈과 목표는 계속 커졌으며,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무대로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꿈과 목표는 나 혼자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각별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것까지 서로 의견을 물어보곤 한다. 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에 합격한 날도 아론은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아론은 한국에 제자들도 많다. 또한 공부, 일, 음악, 인간관계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벽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는 친구이다.
“형은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누구보다 더 그것을 잘 알아! 형은 기본이 튼튼하고 깊이가 있어. 그것을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형! 나는 형이 꼭 성공할 거라는 것 역시 확실히 알아.!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론은 날 진지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주고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버드 출신의 박사가 나와 함께 꿈에 대해서 얘기하고 비전을 공유해 주었다는 것. 이것은 내 마음의 기준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어느샌가 마음속으로는 나도 하버드 박사가 되어 잇는 것이 아닌가. 나와 삼겹살을 먹고 동네를 걸어다니며 농담을 하던 그 친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따.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너의 전공지식만 충분하다면 미국이든 영국이든 혹 유럽의 어디에서건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봐! 중요한 것은 너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지! 너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충분해!”경제학과 인권의 접목.
그는 항상 나에게 “영어라는 언어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와 나는 많은 쟁점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그 때마다 항상 그는 나에게 이 말을 잊지 않았다. 문제는 ‘언어’가 아님을 늘 상기시켜주었다. 그의 말인즉, 커뮤니케이션만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어를 제 2외국어로 쓰는 나와 같은 사람이 영어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아주 명확하게 정리를 해 준 친구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의 전문 용어를 알고 그에 대한 관련지식을 이해한다면, 그래서 그것을 통해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된다는 것을 그는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언어에 노력을 들일 시간에 차라리 자신의 전공분야 공부에 더 매달릴 것을 나에게 주문했다.
이렇게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로스쿨뿐만 아니라 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는 정말 뛰어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혹시나 틀릴까봐 겁이 나서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인 이면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다니엘의 충고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세계로 나가는데 더 강력하고 유연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친구다.
성수형이 있었기에 세계로 가는 길을 조금 더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쉬지 않고 도전하는 형을 보며, 나 또한 꿈을 매일매일 조금씩 더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논문공모전, 찾아보면 많다.
“선배, 제 주제에 무슨 논문이에요? 학점 잘 받기도 바빠요.”
“선배, 알아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시도만 하면 의외로 쉬운 것이 논문공모전이다.
나 역시 한 때는 논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논문이란 단어만 보면 나는 본능적으로 펜을 꺼내 수첩에 메모한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살핀다.
대학생으로 4년을 보내는 동안 논문공모전에 입상한 8편의 논문과 참여했지만 탈락한 논문을 포함하여 약 15편 정도의 논물을 썼다. 매 학기 한두편 정도의 논문을 쓴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물었다. 어떻게 그 정보를 찾았냐고, 그리고 어떻게 논문을 쓰냐고.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매년 한 편의 논물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리고는 논문공모전이 있으면 항상 메모를 해두었다. 사실 논문 공모전은 수도 없이 많다. 요즘 거의 모든 기관에서 대학생 논문 공모전을 연다. 대학생들의 관심을 유발하여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자신이 진정으로 연구하고 싶거나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의 논문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논문공모전은 일거양득이다. 경력차원에서 도움이 되고 상금도 만만치 않다.
논문의 기본 형식을 한 번 익히기만 하면 된다. 도서관에 가서 1~2시간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크기는 어떻게 하고 글자체는 보통 어떻고, 주석은 어떻게 달고 등을 설명한 책이 있다. 그리고 논문 한 편을 샘플로 해서 일단 비슷하게 따라 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논문은 우선 가장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형식이다. 논문다운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인정받지 못한다. 일단 논문이 원하는 형식을 갖추고 나서 해당 분야의 연구 내용을 담아야 한다.
연구는 경험을 바탕으로 할수록 깊이가 있다.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것이 가장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책과 논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얻어 준비할 수 있다.
수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자를 보면 멀미가 나고 어지러웠다. 컴퓨터를 보면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계속 글을 쓰고 수정하고 해야 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너무 속이 좋지 않아 약국에 가서 컴퓨터의 글씨만 보면 멀미가 나고 심하게 토할 것 같다고 했더니 멀미약 비슷한 약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먹고 또 계속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듣고 빨리 기숙사로 돌아와서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내가 더 성장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글쓰기 공부는 읽기와는 또 다른 공부인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더 큰 재미와 매력을 느끼게 된다.
당시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를 원망하지 않는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꿋꿋이 한평생 땅과 함께 하신 부모님을 나는 존경한다. 오히려 그때를 통해 잃은 것보다는 배운 것이 많다. 나는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당시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린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편한 것을 찾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은 때면 나는 단단하고도 충직한 ‘아버지의 묵묵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 때가 있었기에 내 꿈은 더 단단해 졌는지도 모른다. 그 때가 있었기에 시련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잇는 법을 배웠는지 모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열심히 즐겁게 하자는 것이었다. 평생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식구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하니 이왕 할 것 좀 더 열심히 즐겁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깨를 털 때도 비록 힘들지만, 노래를 부르며 웃으며 일을 했다. 나는 밭에서 일하는 동안 나중에 전 세계를 누비며 당당히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한 달간 정말이고 목숨 걸고 영어 공부를 했다. 그동안 시험 방식에 맞지 않게 공부를 했기 때문인가 싶어서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듣기 시험을 위해서 매일 영어를 들으며 한 달을 보냈다. 어떤 날은 영어 공부만 10시간 가까이 한 적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달달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토익 스크립트를 큰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공부했다. 책을 살 만한 돈은 없었으므로 매일 두 개의 모의고사를 서점에 앉아서 풀었다. 아마도 이 때 내 영어 점수를 향상시켜주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절실함 이었던 것 같다. 연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는 영어에 매달렸다. 이 때 처음으로 영어로 꿈을 꾸기도 했으며, 영어의 환상을 보기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9개월 가까이 한글로 된 영화는 한 편도 안봤다. 텔레비전도 한글 프로그램은 절대 안 봤다. 무조건 영어가 나오는 채널만 봤고 자막이 한글이든 영어든 자막이 나오는 경우에는 종이로 자막을 가렸다. 크게 소리 내어 따라 읽고 싶을 때는 테이프로 자막을 가리고 들리는 대로 크게 소리내어 따라 말하기도 했다. 9개월 동안 말이다. 정말 눈물겨운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욕심이 생겼다. 이왕 하는 영어 공부, 단순히 토익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말하기도 마스터해야 했다. 영어 말하기를 위해서 스터디 그룹과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영어 말하기 모임을 찾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인카스라는 국제한국인입양봉사회다. 처음에 영어말하기 스터디를 위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 나중에는 결국 인권과 평화라는, 내 삶의 가치관을 흔드는 사건을 만들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나는 많은 해외입양인들의 친 가족 상봉 통역을 하면서 부족한 영어말하기 실력을 차곡차곡 향상시켜나갔다. 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영어를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했따. 그렇게 하면서 900점 초까지는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점수 받은 것, 만점을 받아보자. 900점 초반과 만점과는 또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900점 중반에서 900점 후반까지는 쉽지가 않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컨디션 관리와 감각유지도 아주 중요했다. 식사와 체력관리도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의 인간 관계, 감정 관리까지도 중요했다. 시험 한 달 전의 인간 관계, 감정 관리, 체력 관리, 컨디션 유지, 시험감각 관리가 있어야 했다. 토익 시험 기간 동안 최대의 집중력을 위해서 말이다. 잡생각이 조금이라도 나면 한 두 문제는 후딱 지나가게 된다. 그러면 900점 후반의 점수는 불가능하다. 2시간 내에 1,2초도 예외가 아닌 2시간 풀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990점 만점을 받지는 못했다. 980점을 받았지만 나는 만족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먼저 영어를 하는 목적을 뚜렷이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한다는 이유로 토익시험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해서 급하게 좋은 점수를 빨리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 토익은 좋은 시험이다. 좋은 학습법으로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영어공부에 상당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해외인턴이나 외국계 회사 혹은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을 할 경우 실제로 사용하는 서류나 이메일, 대화법 등을 미리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기본을 다지는 것과 흥미를 유발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인 단어와 숙어 및 표현은 암기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어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든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어 잡지를 본다든가 말이다. 자신의 관심분야라면 영어를 완전히 알지 못해도 대충 내용은 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는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더욱 재미있게 남보다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관심을 갖고
중급의 수준이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영어로 표현하며 영어로 기억하도록 노력해보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숫자 셀 때도 영어로 세어보고, 전화번호도 영어로 기억해보라. 그러면 영어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급의 단계에서는 습관이 상당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