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고
고통 받아야 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 -

제 일상이 너무나 평범해 단어로 뭔가 해볼 건 거의 없어요


저는 단어를 좋아해요. 새로 익힌 단어를 대화할 때 사용해보는 것도 좋고, 말을 채색해보는것도 좋아요. 제 일상이 너무나 평범해 단어로 뭔가 해볼 건 거의 없어요. 당신 말처럼 아내가 제 말솜씨를 인정해주면 정말 좋겠어요. 그렇지만 배우자에게 제대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배우자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건 좀 지나친 기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나요? 


더글라스 케네디, 파이브데이즈 p149

 “땅속에 묻히기 전까지 사람은 젊은 거야.”

우리들의 잔인한 청춘도 청춘이었음을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내앞의 오늘을 기억할겁니다.
당신들의 청춘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들의 잔인한 청춘도 청춘이었음을
우리들의 현실적인 우정도 우정이었음을
그리고 우리들의 기약없는 사랑도 사랑이었음을

누구도 대신 울어주지 않을 우리들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오늘도 길을 찾고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흥분한 어조로)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재단은 무슨….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

"우리 학교에 가면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돌멩이에 쓰여 있다. 원래 교명을 쓰려고 가져왔는데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깨진 돌에 교명 쓰는 게 안 좋아서 무슨 다른 말 한마디를 새겨볼까 하다가 그 말이 생각났다. 학생들한테 '이거 어떠냐?' 물었더니 반응이 괜찮더라. 비관론으로 오해하는 놈도 없고."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웃음)"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벽 뒤에 방 속에 숨겨진 일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to eyewitness great events; to watch the faces of the poor and the gestures of the proud; to see strange things — machines, armies, multitudes, shadows in the jungle and on the moon; to see man’s work — his paintings, towers and discoveries;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he women that men love and many children; to see and to take pleasure in seeing; to see and be amazed; to see and be instructed; Thus to see, and to be shown, is now the will and new expectancy of half of humankind. To see, and to show is the mission now undertaken by a new kind of publication… ”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대사건의 증인이 되고 가난한 자와 거만한 자의 거동을 관찰하자.기이한 물건들, 기계, 군대, 집단 정그로가 달에 걸린 그림자를 보자.수천 킬로미터 씩 떨어진 먼 곳의 일들, 벽 뒤에 방 속에 숨겨진 일들,위험해질 일들, 남성에 의해 사랑받는 여자들, 또 수많은 어린이들을 보자.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헨리루스 (1898-1967), 1936년 <라이프> 발간사 중에서

Loomis Dean


Loomis Dean





William Eugene Smith

William Eugene Smith




Alfred Eisenstaedt

Alfred Eisenstaedt






Larry Burrows

Larry Burrows




David Douglas Duncan, this is war

David Douglas Duncan 





다시 태어나면 공부하고 싶어. 공부를 못했거든

다큐3일 제주700번버스 - 돌고도는인생
인터뷰 중

80년 인생 되돌아보면 어떤거 같아요?
"지나간 일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바보짓 하고..우린 배우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뭐 농촌에서 농사하면서 그럭저럭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 사람들 하는거 보면 그렇게 바보짓 한 것이 없어. 바보야 완전히."

다시 태어나면 어떤 생활하고 싶으세요?
"다시 태어나면 공부하고 싶어.공부를 못했거든."

청춘이 어디로 갔는가 몰라.
청춘 내 청춘이 어디갔는가.
버스도 가버리면 안오잖아.
청춘도 가면 안오지.
세월이 빨라. 금방 금방이야.
너희도 금방 금방이야.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돈이 벌어지는가?이것이 행복이지 그런 마음으로 하는거지

있는 사람 한 입 더 벌려고 더 기를 쓰고 더 벌지만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 자기 잘 살려고 달리고.있는 사람 그 나름대로 달릴거야. 사람 인생 달리는거나 버스 달리는 거나 똑같은데 

하버드 새벽 4시 반

하버드 새벽 4시 반 

1. 한계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 일에 온 힘을 쏟아보았는가? 
2.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도전하는가? 
3.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밤새 공부하거나 일했는가? 
4. "너무 늦었다."라는 핑계로 포기한 일이 없는가? 
5. 언제나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는가? 
6.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가? 
7.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는가? 
8.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9.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꿈"을 가지고 있는가? 
10. 당장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를 잡을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제1장. 우리가 실패하는 유일한 이유는 ‘노력 부족’이다 
그들이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아니다 
천재들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 
누구도 자신의 한계에 가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의 무게 
게으름은 부지런히 당신을 갉아 먹는다 
지혜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최악의 바보는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다 

제2장. “난 할 수 있다”의 마법 
자신감이 만들지 못할 기적은 없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부족한 사람은 없다, 열등감만 있을 뿐 
자신감의 빈자리는 두려움이 채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성공의 지도는 어디에 있을까? 
파도를 만나보지 못한 배는 없다 
실패하라, 다만 두려워하지 마라 

제3장. 열정은 우리를 뛰게 한다 
열정 없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을까? 
운명도 거스르게 하는 것 
뛰어난 자가 아닌 열정을 가진 자 
열정이 습관화되면 삶이 신난다 
한 가지 일에 열정을 집중하라 
맹목적인 열정의 함정 

제4장. 행동하고, 또 행동하라 
너무 늦어서 못할 일이란 없다 
오늘과 내일, 언제 눈물을 흘릴 것인가? 
달리기 경주에서 토끼가 쉬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달콤한 습관, 미룸 
달리는 중에도 무기력한 사람은 없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제5장. 세상에서 가장 리스크 적은 생산, 배움 
지식은 가장 안전한 재산이다 
척박한 땅에도 배움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지만 배우지 못한 고통은 평생이다 
죽은 지식과 살아있는 지식 
세상에서 가장 큰 투자 
어설픈 배움은 아니 배운 것만 못하다 

제6장. 유연한 사고의 위대한 힘 
당신 안의 창의력을 찾아라
자기만의 공부를 하라 
상상력이 세상을 뒤집는다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아이디어의 보고다 
고정관념으로부터 걸어 나와라 
날개 없이 하늘을 나는 법 

제7장. 시간 관리의 달인이야말로 최고의 부자다 
모든 오늘은 소중한 삶이다 
시간을 도둑맞는 사람, 시간을 최대로 써먹는 사람 
시간을 버리면 시간도 나를 버린다 
신은 시간을 아끼는 사람을 맨 앞에 둔다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시간 도둑’을 조심하라 

제8장. 철저한 자기관리의 힘 
빌 게이츠의 자기통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남보다 나를 먼저 평가하라 
과거 비우기 연습 
먼저 사람 됨됨이를 갖추라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라 
가장 어렵고도 가장 쉬운, 감정 다스리기 
자신의 잘못과 진실로 대면하기 
나를 다스려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제9장. 꿈이 없는 청춘은 아프다 
자신의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라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포기하지 마라 
꿈과 망상은 다르다 
여러 우물을 파지 마라 
목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라 
실현 가능한 꿈을 꿔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제10장. 주어진 기회를 알아보는 눈 
기회를 놓친 하버드 
기회는 쟁취하는 것 
주어진 기회를 보는 눈 
기회는 망설일 시간을 주지 않는다 
기회와 망설임은 동시에 온다 
목표를 보라, 그리고 거기서 기회를 찾아라



198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때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말 속에는 정확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말 속에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 시작을 하는 대신에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기다림’이라고 포장한 게으름’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특정한 시기를 기다리며 “그때부터 시작해야지”라고 말하면서 그때가 되면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란 대체 언제란 말인가?

시간의 엄청난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시간을 올바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은 늘 잔혹하게도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우리가 기다려도 멈추지 않으며, 우리가 붙잡아도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285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모험을 두려워하며 행동하지 않는 것이 과감히 도전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지혜로운 생각과 꼼꼼한 계획, 강한 믿음으로 기회를 모색하고 판단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이 잡은 기회가 나중에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오리라 생각되면 과감히 시도하라. 보통 사람들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평범한 생각을 하고 대세에만 따른다면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밖에는 누릴 수는 없다. 독특한 견해와 평범함을 뛰어넘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모험심과 투자만 있다면 우리 곁을 스치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잠잠하게 고인 물은 시간이 흐르면 썩어버리지만 거센 파도와 물살이 휘몰아치는 바다는 세상을 뒤덮고,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계곡물은 언제나 맑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져야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모험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다채로워진다.

일상 속에 있는 기회들, 잠재적인 기회들까지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니까요.
누구나 기회를 만나게 되지만 제대로 잡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인생에서 과용해선 안 되는 세가지는 빵에 넣는 효모와 소금, 그리고 망설임이다. 효모를 너무 많이 넣으면 빵이 시큼해지고 소금을 많이 넣으면 요리가 씁쓸해지며 지나치게 망설이면 성공의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기회와 망설임은 동시에 온다.
세상의 모든 기회에는 망설임이 따른다. 하지만 이 망설임을 잘 극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 전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것' 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비슷하게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해서 쓰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걸까.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글과 정확히 같은 글이 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글을 다시 한 번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 내용에 대해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11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8478.html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5001.html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13년 4월 17일 봄날  http://seonil.blogspot.com/2013/10/blog-post_9417.html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헤쳐나가고 있는 인생의 상황이 모두 다름에도 '나'라는 사람은 나의 '글'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발견한다. 발견하는 모습 - 과거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생각에 성장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 - 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안도감과 비슷한데, 어떤 안도감이냐면, 내가 과거의 '나'의 모습을 가끔씩 되돌아 보고서, 때로는 '지금보다 과거의 가졌던 생각이 더 좋았구나' , '과거를 보고서 지금을 좀 더 반성해야지'라는 느낌들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과거에 순간순간 품었던 생각들은 어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족들, 친구들. 어떠한 삶을 살아내든 나를 믿고서 끝까지 응원하겠노라고 말해준다. 심지어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너는 옳은 선택을 할거니까'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위로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건 과거에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는 당연히 아닐뿐더러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말이다.
“우리의 현재 모습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과거에 서있던, 미래에 서있을, 그리고 지금 서있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건 과거의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모습이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살기 힘들어도,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최후까지 내던지지 말고

강상중, 마음의 힘

제3의 반란은 보다 심각합니다. 음습한 집단 괴롭힘이나 무차별적인 폭력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 위한 인터넷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나아가 예전의 국수주의를 방불케 하는 혐오 발언 등이 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패배자들 혹은 몰락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외주의나 사회의 '이물질'에 대한 공격에서 배출구를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황폐한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마음의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알마나 넓은 산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나는 것이니까요.

본래 생과 사는 둘다 똑같이 사람의 인생의 일부로서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욱체와 정신 속에서, 단지 목숨과 건강과 장수만을 볼것이 아니라 병과 늙음과 죽음도 동시에 눈 여겨 봐야 합니다. 병을 두려워해서야 건강해질 수 없고 죽음을 잊어버리고서는 삶의 기쁨이란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 하나하나의 목숨을 소중히 하고 혹은 이웃의 문제로서 생각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역사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태도가 널리 퍼질 때 비로소 지금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마음의 병이나, 마음의 고립, 그리고 고독사 닽은 현실 역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대와 마음을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대와 함께 있고, 또 시대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시대는 우리들의 마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고, 또 우리들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한스가 '인간에 관한 꿈과도 같은 시'를 영원토록 기억해 두려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평범하고 유약한 청년이 마음의 힘을 길러 인간의 본엄을, 희망을 울타리 사이로 엿보는 순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꿈과도 같은 시는 다음과 같은 청년 한스의 술회로 용솟음칩니다.
[ 사랑은 죽음에 맞선다.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죽음보다도 더 강한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선의를 가진 사상을 부여한다. 형식도 역시 사랑과 선의로부터만 생긴다. (...)인간은 선의와 사랑을 위해, 사고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 자, 눈을 뜨자 (..)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서 나는 꿈을 끝까지 다 꾸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이어받아 그 이야기를 전해 나가야 할 무언가를 여러분들 자신의 두 손으로 꽉 움켜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기 힘들어도,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최후까지 내던지지 말고 아슬아슬한 마지막 순간까지 버텨 내기를 바랍니다.나 같은 건 별 장점도 없는 평범한,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이니시에이션을 받으면서 결코 시대에 물들지 않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평범함 가운데 위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진지하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 속에서 고민하는 힘이 자라납니다.(..) 그러니 더더욱 진지하고도 절실하게 젊은이들이 마음의 힘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고, 사람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3 -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갖는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3 -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갖는다는 것

자신감.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을까. 선생님께서 '자신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조사해오라고 숙제를 냈었다. 하지만 난 그 숙제를 해오지 않은 상태로 일어 서서 자신감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얼버무렸다.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나는 자신감을 용기와 비슷한 정의로 설명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도 자신감과 용기는 비슷한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자신감을 가지는 문제는 곧 용기를 가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용기를 가지기 위해선 자신감이 필요하기도 하다.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어떠한 행동이나 시도를 하기 위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한 시도와 행동이 실패했더라도 나의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나라는 사람에 머물 것이라는 믿음. 나라는 사람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신을 믿는 것 뿐이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무얼 믿고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무얼 믿을 건 따로 없다. 그냥 자기 자신만을 믿을 뿐이다. 그게 바로 용기다. 믿을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자신 스스로를 믿는 것. 굳이 믿을 근거를 찾고 싶다면 사실 근거는 이미 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보면 된다. 우리는 잘 살아있다. 죽지 않고 잘 살아왔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며, 같이 웃고 울며 우리는 믿지 못할만큼 잘 살아왔다. 혹시 아쉬움이 남는 과거의 삶으로 비춰진다면 그건 용기가 조금 부족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하는데, 대체 우리는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늘 선택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귀결되는 문제이고, 선택은 언제나 늘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나간다. 여러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어떤 길을 택했을 때 우리의 인생이 더 재미있어질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마음이 가는 선택지를 과감하게 고르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은 평생 용기를 가져보지 못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용기를 계속 가지려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과감하게 선택하자.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생은 늘 오늘 여기서 시작하는 법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駒込、渋谷、新宿、銀座、丸の内、新橋、上野、目黒 를 돌았던 이번 여행
5일간의 짦은 여행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간도 있었을 만큼 그렇게 짧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 5일은 5년전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축약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았던 코마고메. 아... 코마고메..일이 끝나고 나서 혼자서 밤늦게 까지 즐기던 노래방, 노래방을 나와 배가 고프면 찾아가서 먹던 마츠야의 규동. 내가 일했던 카페가 있던 긴자거리... 긴자에서 일이 끝나면 혼자서 산책했던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그리고 시부야. 그리고 시부야. 시부야의 가츠동, 시부야의 신호등, 시부야의 콜드스톤, 시부야의 하치코. 이 모든 걸 다시 한번 천천히 경험한 여행이었다.

5년 전 나의 일본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었다. 코마고메에 살며, 긴자와 마루노우치를 걷고, 시부야를 신나게 즐겼다. 그 때 나의 나이는 스물두살이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스물일곱. 5년이나 흘렀다.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의 모습에 잠깐 슬펐다. 

언제나 천천히 흘러가는 거리. 한국에서의 5년이라면 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길 몇번이나 반복했을 시간이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방문한 코마고메는 거의 모든게 그대로였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던 규동가게 요시노야가 없어지고 피자가게가 생긴 것과 그 맞은편으로는 KFC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얘기는 어쩌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만 더 와닿는 말인가 보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변해가는 모습보다 내 주위가 훨씬 빨리 변해가서 그 차이를 좁힐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좀 슬픈 얘기다. 어쩌면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코마고메라는 마을이 너무 고마웠을 뿐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도 고마웠지만, 눈물이 날만큼 가장 고마웠던 건 역시 친구들이었다. 유헤이상, 스기야마상, 쿠사야나기상, 야마구치상, 마스미, 히메, 레이카, 모요카, 료코, 마루코, 아짱, 오구치, 케이짱, 오도리, 치히로, 유유,,, 이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5년전 그대로,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밤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모두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것만으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5년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결심은, 그들에게서 받은 행복은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5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아마 평생 내가 주위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해도 내가 그들에게서 1년 동안 받은 행복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그 문제를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 따위의 생각을 저버린지는 오래다. 그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두의 인생에는 함께 살아갈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외로움에 말라 죽을 수 있다.

방금 전 글에서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을 잠깐 했다. 춤을 추는 건 참 특별한 행위다. 인간은 즐거워서 춤을 추기도 하고, 슬퍼서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춤으로서 표현해낸다.

옆에 있는 인간이 함께 감정을 배출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걸 알면서도 난 왜 그러지 못했나 싶다)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일. 결국 그런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인생의 동반자들 아닌가. 가족이며, 친구며, 애인.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내가 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신나게 리듬에 맞춰서. 그래 신나고 즐겁게.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되어가는

가짜는 진짜가 되어가고
진짜는 가짜가 되어가는

증오는 사랑이 되어가고
사랑은 증오가 되어가는

절망은 희망이 되어가고
희망은 절망이 되어가는

나는 당신이 되어가고
당신은 내가 되어가는

죽음은 삶이 되어가고
삶은 죽음이 되어가는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되어가는

삶을 살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는 저녁

어쩌면 내 게임은 이걸로 끝인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취했을 때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게임의 결말을 이건가 보다. 

2013년 9월부터 살아왔던 나의 한가지 길이 마무리된다. 수많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마무리다.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난 그 많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얻은 것도 분명히 있을테지만 지금으로선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보인다. 

수많은 생각들. 아. 수많은 생각들.
길을 잃어버린건가. 
삶을 살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는 저녁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자기 연민에만은 빠지면 안된다. 자기 연민에 빠질 시간에 조금이라도 이 인생을 더 재밌게 만들 궁리를 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반드시 재미있게 가야 한다. 그럴려면 내 운을 믿어야 하지. 

적절한 타이밍이며, 적절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은 어쨌거나 우리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으며, 우리가 죽어야만 절망은 떠오른다. (죽음에 조차 절망은 뒤따르지 않을지도 모르고) 블로그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것도 인생의 일화가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지금 시점에서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 한가지는 매력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난 어떻게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
같이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조금 두렵다.

글은 일단 마무리 해야겠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2 - 실패한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2 - 실패한다는 것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실패'라고 하자.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랑에 금이가는 그런 것들. 우리는 실패를 하며 살아간다. 실패의 연속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될리 만무한 것이다. 이것은 실패가 없으면 인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린 태어나고, 우린 자라고, 우린 배우고, 우린 원하고 바란다. 그리고 그 끝에 실패가 있다. 우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하는 하루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가 원했던 인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경제학에서는 이 모든 걸 간단한 개념으로 정리해주었다. '자원의 희소성'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수는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실패다. '자원의 희소성'은 비단 재화와 서비스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무한한 자원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한정되어 있고, 우린 죽는다.

우린 죽는다. 우린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죽는다.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우린 모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우린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지만 죽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가지고 실패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낳음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밤하늘의 별들도 태어났다 사라지고, 우리 마음의 사랑과 미움도 커졌다 작아지고, 내가 있었다 없어진다.

죽어버려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어진다면 그 끝에는 어떤 의미가 남겨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후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까. 의미가 남겨진들 그건 또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의미가 남겨진 '죽음'만이 의미 있는 죽음이냐는 말이다.

애초에 의미는 없다. 시작부터 의미는 없었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시작과 멸망, 나와 당신의 탄생과 죽음은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의 존재와 그 시작과 끝에는 어떠한 의미는 없다. 때문에 '무언가의 끝'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의미 없다'.

우린 숱한 실패와 몇몇의 성공들이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그 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실패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다면 당연하다. 의미는 없었으니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실패의 연속인 우리의 삶도 그리고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의미 == null;

우리들의 실패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 실패를 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도 의지를 잃지도 말자.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매우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 실패하자. 계속 살아가자.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뭔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 됐다. 늘 의지를 가지고 시작되는 사유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리며, 몸은 눈을 뜨면 움직이고 눈을 감으면 단절된 세계로 다시 들어가버리는 그 이상의 그 이하도 아닌 패턴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건지,  멋진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싶은건지, 꿈? 꿈을 이루고 싶은건지, 아니면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조용히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건지. 명확한 구석이라곤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눈물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좋게 보자면 감성이 풍부해진거고, 안좋게 보자면 마음이 유약해진거다. 군대에 있을 때, 고민을 했던 것 한 가지가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질 않아서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재밌다.

예전에는 어떤 생각이 시작을 하게 되서 글을 쓰게 되면 최대한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야만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복잡한 상황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정리해낼만한 최소한의 마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마저도 잃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는 '버티는' 삶이란 걸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하게 공감되는 단어다. '버티다' 책을 좀 더 읽고서 어떻게하면 잘 버틸 수 있는지 배워야겠다. 책에서 그걸 알려줄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1 - 창작한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1 - 창작한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를 주제로 하는 첫 끄적임이다. 원래 시리즈 제목을 '인생의 행위에 대하여'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는 '인간'일수 밖에 없기도 하니 '인간의 행위'로 정했다. 그러고서 처음으로 떠올리는 인간의 행위는 '창작'이다.

사실 모든 게 창작이다. 창작이 아닌게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창작이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창작물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도 결국 창작의 연속이다. 창작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것은 '무'를 '유'로 치환함이다. 인간의 인생에서 '무(없음)'란 무엇인가. 그건 살지 않음 (살아가지 않은 시간들, 오지 않은 시간들)이고, 그 반대로 살아온 시간들은 모두 '유'가 된다. 즉, 살아가는 행위 자체만으로 무를 유로 바꾸는 창작이다.

인생의 시간 속을 흘러간다는 점에서 창작은 필연적이며 그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창작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린 태어남과 동시에 아주 커다란 흰 종이를 건네 받았고,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처음부터 그림은 잘 그릴 수 없기에, 부모의 양육과 사회의 교육을 받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정해진 룰에 맞춰 그림을 그려나가는 법을 배운다. 예술도 그렇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에도 모두 그 세계의 룰들이 존재한다.

우린 선택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룰을 따를지 말지, 따른다면 어느 정도 룰을 따를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말이다. 사실 이러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우열은 없다. 모든 창작 과정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형식에 잘 맞춰 쓰여진 글이나, 형식을 파괴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악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음악.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바라보는 한 인간의 삶이나,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를 가려낼 수는 없다.

창작은 애초에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다. '좋은 창작'과 '나쁜 창작'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삶과 나쁜 삶, 바람직한 삶과 바람직하지 않은 삶을 나눠서 구분하는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후에 의미없음에 대한 글을 썼을지라도)우리는 그저 의미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인생에 주체적으로 임하여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런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에서 만들어 내는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 나름대로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된다.

흔히 말하는 '의미 부여' 작업이다. 의미부여만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흰 종이에 물감을 의도해서 뿌리든, 물감이 엎지러져서 종이에 뿌려지든, 우리는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쓴 글, 내가 산 오늘 하루, 내가 살아온 세월에 우린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순간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창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창작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창작자 - 창작물 - 의미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에도 약간의 의미를 더해주면 그건 하나의 창작으로서 완성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창작품으로 완성되어지는 순간, 그건 이미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의 필요성을 뛰어넘는 세계에 도달한다. 무가 유로 변환되는 세계, 창작의 세계다.

창작한다는 것,
나는 이 에세이 한 편으로 내가 쓴 모든 글과, 앞으로 내가 쓸 모든 글들을 옹호하였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지님' 을 탈출할 수 없는 '깨질 수 없는' 창작이 되었다. (←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모든 창작은 빚짐이다

(남들에게는)보잘 것 없는 에세이겠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서있다가 문득 글을 시리즈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시리즈 제목을 정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다. 써보다가 글이 잘 써지면 끈기를 가지고 써보고, 그렇지 않고 '글을 이어나가는' 흥미를 찾지 못하면 조용히 접을 생각이다.

최근 내가 글을 잘 못쓰는 명백한 이유를 한 가지 찾았다. 책을 안읽는다. 문장의 흡수가 적으면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글을 많이 읽어야만 글도 써지고 싶은 법이다.모든 창작이 그러함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무는 유를 창조하지 못한다. 모든 창작은 빚짐이다. 그러니 빚지자. 주위의 모든 존재에 빚을 지자. 영화-음악-책-그림-사진-사람을 관통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빚을 지고서, 거기에 나만의 숨을 넣어 창작을 하자.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가 시끄럽다. 옆 테이블에는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들 여섯명이서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에 모여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 요새 계속 듣고 있는 노래 '희재(성시경)'를 듣기 시작했다.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

길고 긴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는 것. 그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이 어제나 그제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들도 있다.  오늘은 일어나서 집에서 일을 하다가 도저히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카페에 나와서 일을 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그 친구는 요새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일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가도, 설레다가도 하고 그런다. 그저 친구의 사랑이 아주 잘 풀리길 바랄뿐이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에는 재즈가 흘렀다. 

나는 요새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긴한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내가 살아왔던 날들 중에 단연 행복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친구와 나는 한 상에 만원하는 광어물회에 소주를 두 병 마셨다.오늘 친구와 술을 마신 것도 행복한 느낌때문에 마신 것이다. 술을 마셔서 조금 더 행복해지긴 했지만, 술자리를 접고나서 나는 다시 또다른 카페에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슬프다. 아까까진 엄청 행복했었는데 이상하다. 옆 테이블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 때문인가. 창밖으로 비에 젖어있는 거리 풍경 때문인가. 성시경의 노래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카페의 풍경이 뭔가 서글프다. 나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고 싶은거나 해야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페이퍼카메라로 찍어본 우리집

페이퍼카메라로 찍어본 집에서 보이는 풍경과 나의 방

정말 그림으로 그린것 같은 느낌이 난다.
















스스로 더 나은 예술작품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


비문화인 프로젝트를 구상하여 시작한지, 대학교 4학년때 였으니까 어언 3년째다. 당시 비문화인 프로젝트는 진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오고 싶었던 나의 해방구였을 것이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미술관을 가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걸어왔다.

그리고 비문화인 프로젝트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만드는 구상을 하게 된건 2014년의 1월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벌써 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지도 7개월이 넘은 것 같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던 당시의 흥분감을 기억한다. 김밥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고 3시간 동안 동료와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갔다.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눈 앞에 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생각을 그려가는 것만으로 정말 즐거웠던 것이다. 

내가 지금 빠져있는 곳
내가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계획해 나가는 사이 나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많은 아이디어를 접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은 나의 아이디어들과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절실함에 대한 동력을 잃어가는 시점이라고 본다. 나의 아이디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이미 많은 부분 구현되어 있는거라면 '사실상 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

예술가가 되자
예술가가 되자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모두 예술가라고 생각하고서 각자가 더 많은 창작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나의 비즈니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들을 예술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더 나은 예술작품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 그것이 내가 ‘비문화인 프로젝트’에서 그리는 세상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생활을 먼저 돌아보자. 나는 지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창작에 할애하고 있는지. 다시 시작해보기 위해서는 일단은 펜과 스케치북을 당장 들어야만 한다.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

가장 많이 하는 다짐 중 하나가 글을 열심히 쓰자는 다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펜과 키보드를 잡는 건 어렵다. 또 모든 일에서 그런 것처럼 무언가를 한번 안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또 한 번 하지 않는 건 점점 쉬워진다. 헬스, 공부, 사람 만나기 등등등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발력'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쉽다.(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는 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50%의 준비완료 상태라면, 나머지는 50%는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로 그 행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일단 밥통에 밥이 있으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줄어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도 한결 간단해진다. 밥상에 올릴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반 20분이 되면 동네에 두부장수가 지나가면서 종을 울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분은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맞닿아 있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우린 마음속으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을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