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됨의 긴장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네. 자넨 이것이 되고 싶지만, 다른 것을 해야만 하지 이런 것이 자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넨 너무나 잘 알아. 또 어떤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네. 그걸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야.상반됨의 긴장은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과 비슷해.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살지.
어느 쪽이 이기나요?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나 없이도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는 사실에 난 그만 경악해버렸다.
교수님은 내가 ‘인간답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다. 젊음의 자기 소외감과 나를 둘러싼 사회와의 연계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말한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사랑을 받아 들이라구. 우리 모두는 ‘난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 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레빈이란 현명한 사람이 제대로 지적했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말야.
침묵과 인간관계
왜 우리는 침묵에 당황스러워하는 걸까? 소음에서 우리는 어떤 편안함을 느끼는가? 나는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 때론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곤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불편하다. 특히 학교 친구들 앞에서는 더욱. 나는 강의에 침묵이 필요하다면 몇 시간이고 말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다.
감정자극 강좌
이 학생은 눈을 감았어요. 그게 여러분과 다른 점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대, 느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믿게 만들려면, 여러분 역시 그들을 믿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둠 속에 있을 때 조차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뒤로 넘어지고 있을 때에도.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 있는 삶
네 번째 화요일
죽게 되리란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자기가 죽는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지.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텐데.
자기는 안 죽을 거라며 자신을 속이지요.
죽으리란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수 있네. 그게 더 나아.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죽을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다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 라고 묻지.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지.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되지.
모든 것을 다 벗기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이네.
자네보다 내가 창 밖을 더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나무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아차린 다네. 그것은 시간이 창틀을 지나치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지. 내 시간이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처음으로 자연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에 마음이 끌린다네.
다섯 번째 화요일 – 가족
가족이 없다면 사람들이 딛고 설 바탕이, 안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과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겠지.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듯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 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 봐주고 있으리라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 가족 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준 순 없어. 돈도 명예도.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해.
비록 치러야 할 고통스런 대가가 있긴 하지만 그 무엇을 준대도 그런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네.
고통스러운 대가는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
감정 – 여섯 번째 이야기
어떤 감정이든 결코 그것에 초연할 수는 없어. 예를 하나 들어봄세.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고 보세.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감정이든, 지금의 나처럼 치명적인 병으로 인한 두려움과 고통이든 어쨌든 느낀다고 하세. 우리가 감정을 자제하면 – 즉 그 감정들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하지 못하면 – 겁내느라 정신이 없어지고 마네. 고통이 겁나고 슬픔이 겁나지. 또 사랑에 뒤따르는 약해지는 마음이 겁나네.
하지만 이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 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 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 이라고 말이야.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가. 어떤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쓸쓸하지만, 울어선 안 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혹은 상대에게 사랑이 솟아남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관계가 변할까 봐 두려워서 입을 꼭 다물어 버린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두려움이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두면, 그것을 늘 입는 셔츠처럼 입어버리면, 그러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좋아. 이건 그냥 두려움이야. 요놈이 날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둘 필요는 없어. 요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자구.”
외로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껴라. 그러면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좋아. 그건 내가 쓸쓸함을 느끼는 한 순간일 뿐이었어. 난 쓸쓸함을 느끼는 게 두렵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옆으로 밀어놓고, 이 세상에 있는 또 다른 감정을 맛봐야겠어. 다른 것들도 경험해봐야지.”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 아나?
평온하게 죽고 싶네. 평화롭게. 방금처럼 그렇게는 아냐. 벗어나기가 힘을 발휘하는 때는 바로 이때야. 방금처럼 기침을 해대다가 죽는다면, 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그럴 때 ‘지금 이순간 나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있지.
공포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곳에 이르고, 놓여나고 싶네. 이해가 되나?
타인을 착취 하는 삶.
부가 결코 행복이나 만족감까지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이것은 모리 선생님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교훈이 되었다.
나이 드는 두려움 – 일곱 번째 화요일
세상사람들은 젊음을 강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들어보게. 젊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 난 잘아. 그러니 젊다는 게 대단히 멋지다고는 말하지 말게. 젊은이들은 갈등과 고민과 부족한 느낌에 늘 시달리고, 인생이 비참하다며 나를 찾아오곤 하네. 너무 괴로워서 자살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런 비참함을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둔하기까지 하지. 인생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데 누가 매일 살아가고 싶겠나? 이 향수를 사면 아름다워진다거나 이 청바지를 모르는데 누가 매일 살아가고 싶겠나? 이 향수를 사면 아름다워진다거나 이 청바지를 사면 섹시해진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조작해대는데 바보 같이 그걸 믿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어디 있어.
미치, 난 나이 드는 것을 껴안는다네. 아주 간단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22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22살만큼 무지할 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어.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젊은 사람은 모두 알아야 해. 늘 나이 먹는 것에 맞서 싸우면, 언제나 불행해. 어쨌거나 결국 나이는 먹고 마는 것이니까.
미치, 늙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질투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그 속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중요하지. 지금 자네는 30대를 살고 있지. 나도 30대를 살아봤어. 그리고 지금 나는 78살이 되는 때를 맞이했네.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 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왔으니까, 그때가 어떤지 알지. 어린 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 게 즐거워. 또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네.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돈 – 여덟 번째 화요일
사는 동안 어디를 가든 새 것을 움켜쥐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네. 새차를 사려고 아둥바둥하고, 부동산을 새로 구입하려고 애를 쓰고, 최근에 나온 장난감을 움켜쥐고선 그들은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요? 내가 뭘 샀는지 알아요?’ 라고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서 그 대용품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저들은 물질을 껴안으면서 일종의 포옹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될 리가 있나.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가 같은 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데.
돈이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네. 그리고 권력도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지. 분명히 말할 수 있네. 이렇게 앉아서 죽어갈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네. 아무리 돈과 권력이 많아도, 이렇게 죽어갈 때 필요한 감정을 거기서 얻을 수는 없네.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 자네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준다네.
시간을 내주고 관심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그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네. 이 부근에 노인 회관이 있는데, 노인 수십 명이 매일 그곳에 나온다네. 기술이 있는 젊은 사람이 노인 회관에 와서 가르쳐주면 대환영이지. 자네가 컴퓨터에 대해 잘 안다고 하자. 그럼 거기 가서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게. 대단히 좋아할 거야. 그리고 무척 고마워할 거야.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그렇게 할 만한 곳은 많네. 대단한 재능 따위 없어도 괜찮아. 병원과 보호소에는 말동무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들이 많네. 외로운 노인과 카드 놀이를 하면, 새로이 자기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왜냐면 누군가 자기를 필요로 하니까 말야.
의미 있는 삶을 찾는 것에 대해 애기한 것 기억하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자신을 바쳐라.
거기엔 돈 따위가 끼여들 틈이 없다네.
대학 졸업 후, 그가 못마땅해 하는 것들 – 자동차와 같은 더 큰 장난감, 더 좋은 집 따위 – 을 추구하며 살았던 일을 선생님한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유명한 부자 운동 선수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그들에 비하면 내 욕망은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내 탐욕은 별 것 아니라고 확신하며 살았던 내가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은 연막에 불과했다.
미치, 만일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고 애쓰는 중이라면 관두게. 어쨌든 그들은 자네를 멸시 할 거야. 그리고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 한다면 그것도 관두게. 그들은 자네를 질투하기만 할 테니까.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열린 마음만이 자네를 모든 사람 사이에서 동등하게 해줄 걸세.
내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내 고통과 아픔만으로 충분한 이 마당에. 물론 내 고통만으로도 충분하지. 하지만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야말로 내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 자동차나 집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해. 내가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때, 그들이 슬픈 감정을 느낀 후에 내 말을 듣고 미소 지을 때, 그럴 때의 느낌은 건강할 때의 느낌과 거의 비슷하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해.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사랑의 지속 – 아홉 번째 화요일
나는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것은 함께 있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 나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태어난다.
마하트마 간디
문화 – 열한 번째 화요일
어떤 사회든 나름대로 문제는 있지. 달아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보자. 어디 살든지 우리 인간의 최고 단점은 근시안이라는 점이야. 우리는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보지 못해. 우리의 잠재력을 보고, 우리를 넓힐 수 있는 데까지 쭉쭉 넓혀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지. 한데 이제 난 내것을 갖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면 결국 몇몇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고, 그러면 가난한 자들이 들고 일어나네. 그럼 가진 자는 자신의 것을 훔쳐가지 못하게 군대를 써서 그것을 막게 되지.
우리는 우리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네. 백인과 흑인,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 남자와 여자.. 다 똑같은데.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인류 대가족에 합류하고 싶을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인류 대가족을 서로 돌보고 싶어질 거야.
내 말을 믿어. 죽어가고 있을 때는 사람은 모두 다 같다는 게 참말임을 알게 되네. 우리 모두 똑같이 시작하지, 출생으로. 그리고 똑같이 끝나네, 죽음으로.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거야? 인류 대가족에 관심을 가지게.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작은 공동체를 세우란 말야.
우리가 아기로서 삶을 시작할 때, 누군가가 우릴 돌봐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 그렇지? 그리고 나처럼 아파서 삶이 끝날 무렵에도, 누군가가 돌봐줘야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어. 그렇지?
하지만 여기에 비밀이 있네. 아이 때와 죽어갈 때 외에도, 즉 그 중간 시기에도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2등이면 어때?
용서 – 열두 번째 화요일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우리 자신도 용서해야 해.
여러 가지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네.
자신을 용서하게.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냐.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
상반됨의 긴장, 기억나지? 항상 일은 다른 방향으로 벌어지잖나.
차츰 줄어드는 시간이 아쉽긴 하지만, 이런 시간이 주는 일을 바로 잡을 기회가 귀하게 여겨진다네.
완벽한 하루 – 열세 번째 화요일
우리 모두 찾는 게 바로 그거잖아. 죽어간다는 생각과 화해하는 것.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일.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은 태어나고 죽는 거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스위트롤 빵과 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하러 가겠어. 그런 다음 찾아온 친구들과 맛 좋은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그리고 이 때 한 번에 한 둘씩만 찾아오면 좋겠군. 그래야 그들의 가족과 중요 관심사에 대해 온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또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그런 다음 산책을 나가겠어.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가서 여러 가지 나무도 보고 새도 구경하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연에 파묻히겠네. 저녁에는 모두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네. 아니 오리 고기를 먹을까. 난 오리 고기를 무척 좋아하거든. 그런 다음 나머지 저녁 시간 동안 춤을 추고 싶네. 거기 있는 멋진 춤 파트너들과 지칠 때까지 춤을 춰야지. 그런 다음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
인간관계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네. 양쪽 모두가 공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넘치는 사랑으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라네. 두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각자의 삶이 어떤지. 사업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협상을 벌이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협상을 하네. 어쩌면 자네가 거기에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몰라.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네. 자기 상황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바로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지.
아버지는 우리를 지나가셨네
나무의 새 잎새마다 노래하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마다 봄이 춤춘다고 믿었네. –E.E.컴밍스
(장례식에서 모리 선생님들의 아들 롭이 읽은 시
더 마음을 열라고. 광고로 인해 만들어진 헛된 가치에 유혹되지 말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양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일 따윈 없다는 것.
과거에만 가까웠던 사이가 아니라 현재에도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네가 허락하는 만큼 내 삶에서 너를 껴안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