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2 - 실패한다는 것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실패'라고 하자.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랑에 금이가는 그런 것들. 우리는 실패를 하며 살아간다. 실패의 연속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될리 만무한 것이다. 이것은 실패가 없으면 인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린 태어나고, 우린 자라고, 우린 배우고, 우린 원하고 바란다. 그리고 그 끝에 실패가 있다. 우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하는 하루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가 원했던 인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경제학에서는 이 모든 걸 간단한 개념으로 정리해주었다. '자원의 희소성'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수는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실패다. '자원의 희소성'은 비단 재화와 서비스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무한한 자원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한정되어 있고, 우린 죽는다.
우린 죽는다. 우린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죽는다.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우린 모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우린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지만 죽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가지고 실패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낳음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밤하늘의 별들도 태어났다 사라지고, 우리 마음의 사랑과 미움도 커졌다 작아지고, 내가 있었다 없어진다.
죽어버려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어진다면 그 끝에는 어떤 의미가 남겨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후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까. 의미가 남겨진들 그건 또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의미가 남겨진 '죽음'만이 의미 있는 죽음이냐는 말이다.
애초에 의미는 없다. 시작부터 의미는 없었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시작과 멸망, 나와 당신의 탄생과 죽음은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의 존재와 그 시작과 끝에는 어떠한 의미는 없다. 때문에 '무언가의 끝'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의미 없다'.
우린 숱한 실패와 몇몇의 성공들이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그 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실패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다면 당연하다. 의미는 없었으니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실패의 연속인 우리의 삶도 그리고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의미 == null;
우리들의 실패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 실패를 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도 의지를 잃지도 말자.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 매우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 실패하자. 계속 살아가자.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뭔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 됐다. 늘 의지를 가지고 시작되는 사유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리며, 몸은 눈을 뜨면 움직이고 눈을 감으면 단절된 세계로 다시 들어가버리는 그 이상의 그 이하도 아닌 패턴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건지, 멋진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싶은건지, 꿈? 꿈을 이루고 싶은건지, 아니면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조용히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건지. 명확한 구석이라곤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눈물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좋게 보자면 감성이 풍부해진거고, 안좋게 보자면 마음이 유약해진거다. 군대에 있을 때, 고민을 했던 것 한 가지가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질 않아서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재밌다.
예전에는 어떤 생각이 시작을 하게 되서 글을 쓰게 되면 최대한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야만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복잡한 상황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정리해낼만한 최소한의 마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마저도 잃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는 '버티는' 삶이란 걸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하게 공감되는 단어다. '버티다' 책을 좀 더 읽고서 어떻게하면 잘 버틸 수 있는지 배워야겠다. 책에서 그걸 알려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건지, 멋진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싶은건지, 꿈? 꿈을 이루고 싶은건지, 아니면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조용히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고 싶은건지. 명확한 구석이라곤 어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눈물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울컥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좋게 보자면 감성이 풍부해진거고, 안좋게 보자면 마음이 유약해진거다. 군대에 있을 때, 고민을 했던 것 한 가지가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질 않아서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재밌다.
예전에는 어떤 생각이 시작을 하게 되서 글을 쓰게 되면 최대한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래야만 모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복잡한 상황을 긍정적인 문장으로 정리해낼만한 최소한의 마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마저도 잃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는 '버티는' 삶이란 걸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심하게 공감되는 단어다. '버티다' 책을 좀 더 읽고서 어떻게하면 잘 버틸 수 있는지 배워야겠다. 책에서 그걸 알려줄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1 - 창작한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1 - 창작한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를 주제로 하는 첫 끄적임이다. 원래 시리즈 제목을 '인생의 행위에 대하여'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는 '인간'일수 밖에 없기도 하니 '인간의 행위'로 정했다. 그러고서 처음으로 떠올리는 인간의 행위는 '창작'이다.
사실 모든 게 창작이다. 창작이 아닌게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창작이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창작물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도 결국 창작의 연속이다. 창작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것은 '무'를 '유'로 치환함이다. 인간의 인생에서 '무(없음)'란 무엇인가. 그건 살지 않음 (살아가지 않은 시간들, 오지 않은 시간들)이고, 그 반대로 살아온 시간들은 모두 '유'가 된다. 즉, 살아가는 행위 자체만으로 무를 유로 바꾸는 창작이다.
인생의 시간 속을 흘러간다는 점에서 창작은 필연적이며 그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창작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린 태어남과 동시에 아주 커다란 흰 종이를 건네 받았고,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처음부터 그림은 잘 그릴 수 없기에, 부모의 양육과 사회의 교육을 받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정해진 룰에 맞춰 그림을 그려나가는 법을 배운다. 예술도 그렇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에도 모두 그 세계의 룰들이 존재한다.
우린 선택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룰을 따를지 말지, 따른다면 어느 정도 룰을 따를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말이다. 사실 이러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우열은 없다. 모든 창작 과정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형식에 잘 맞춰 쓰여진 글이나, 형식을 파괴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악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음악.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바라보는 한 인간의 삶이나,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를 가려낼 수는 없다.
창작은 애초에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다. '좋은 창작'과 '나쁜 창작'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삶과 나쁜 삶, 바람직한 삶과 바람직하지 않은 삶을 나눠서 구분하는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후에 의미없음에 대한 글을 썼을지라도)우리는 그저 의미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인생에 주체적으로 임하여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런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에서 만들어 내는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 나름대로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된다.
흔히 말하는 '의미 부여' 작업이다. 의미부여만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흰 종이에 물감을 의도해서 뿌리든, 물감이 엎지러져서 종이에 뿌려지든, 우리는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쓴 글, 내가 산 오늘 하루, 내가 살아온 세월에 우린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순간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창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창작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창작자 - 창작물 - 의미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에도 약간의 의미를 더해주면 그건 하나의 창작으로서 완성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창작품으로 완성되어지는 순간, 그건 이미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의 필요성을 뛰어넘는 세계에 도달한다. 무가 유로 변환되는 세계, 창작의 세계다.
창작한다는 것,
나는 이 에세이 한 편으로 내가 쓴 모든 글과, 앞으로 내가 쓸 모든 글들을 옹호하였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지님' 을 탈출할 수 없는 '깨질 수 없는' 창작이 되었다. (←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를 주제로 하는 첫 끄적임이다. 원래 시리즈 제목을 '인생의 행위에 대하여'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는 '인간'일수 밖에 없기도 하니 '인간의 행위'로 정했다. 그러고서 처음으로 떠올리는 인간의 행위는 '창작'이다.
사실 모든 게 창작이다. 창작이 아닌게 없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창작이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창작물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도 결국 창작의 연속이다. 창작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것은 '무'를 '유'로 치환함이다. 인간의 인생에서 '무(없음)'란 무엇인가. 그건 살지 않음 (살아가지 않은 시간들, 오지 않은 시간들)이고, 그 반대로 살아온 시간들은 모두 '유'가 된다. 즉, 살아가는 행위 자체만으로 무를 유로 바꾸는 창작이다.
인생의 시간 속을 흘러간다는 점에서 창작은 필연적이며 그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창작하느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린 태어남과 동시에 아주 커다란 흰 종이를 건네 받았고,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간다. 처음부터 그림은 잘 그릴 수 없기에, 부모의 양육과 사회의 교육을 받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정해진 룰에 맞춰 그림을 그려나가는 법을 배운다. 예술도 그렇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에도 모두 그 세계의 룰들이 존재한다.
우린 선택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룰을 따를지 말지, 따른다면 어느 정도 룰을 따를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말이다. 사실 이러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우열은 없다. 모든 창작 과정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형식에 잘 맞춰 쓰여진 글이나, 형식을 파괴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악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음악.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바라보는 한 인간의 삶이나,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를 가려낼 수는 없다.
창작은 애초에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다. '좋은 창작'과 '나쁜 창작'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삶과 나쁜 삶, 바람직한 삶과 바람직하지 않은 삶을 나눠서 구분하는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창작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후에 의미없음에 대한 글을 썼을지라도)우리는 그저 의미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인생에 주체적으로 임하여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런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에서 만들어 내는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 나름대로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된다.
흔히 말하는 '의미 부여' 작업이다. 의미부여만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흰 종이에 물감을 의도해서 뿌리든, 물감이 엎지러져서 종이에 뿌려지든, 우리는 두 가지 상황에서 모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쓴 글, 내가 산 오늘 하루, 내가 살아온 세월에 우린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순간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창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창작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는 창작자 - 창작물 - 의미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에도 약간의 의미를 더해주면 그건 하나의 창작으로서 완성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창작품으로 완성되어지는 순간, 그건 이미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의 필요성을 뛰어넘는 세계에 도달한다. 무가 유로 변환되는 세계, 창작의 세계다.
창작한다는 것,
나는 이 에세이 한 편으로 내가 쓴 모든 글과, 앞으로 내가 쓸 모든 글들을 옹호하였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지님' 을 탈출할 수 없는 '깨질 수 없는' 창작이 되었다. (←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모든 창작은 빚짐이다
(남들에게는)보잘 것 없는 에세이겠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서있다가 문득 글을 시리즈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시리즈 제목을 정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다. 써보다가 글이 잘 써지면 끈기를 가지고 써보고, 그렇지 않고 '글을 이어나가는' 흥미를 찾지 못하면 조용히 접을 생각이다.
최근 내가 글을 잘 못쓰는 명백한 이유를 한 가지 찾았다. 책을 안읽는다. 문장의 흡수가 적으면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글을 많이 읽어야만 글도 써지고 싶은 법이다.모든 창작이 그러함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무는 유를 창조하지 못한다. 모든 창작은 빚짐이다. 그러니 빚지자. 주위의 모든 존재에 빚을 지자. 영화-음악-책-그림-사진-사람을 관통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빚을 지고서, 거기에 나만의 숨을 넣어 창작을 하자.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가 시끄럽다. 옆 테이블에는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들 여섯명이서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에 모여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 요새 계속 듣고 있는 노래 '희재(성시경)'를 듣기 시작했다.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
길고 긴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는 것. 그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이 어제나 그제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들도 있다. 오늘은 일어나서 집에서 일을 하다가 도저히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카페에 나와서 일을 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그 친구는 요새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일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가도, 설레다가도 하고 그런다. 그저 친구의 사랑이 아주 잘 풀리길 바랄뿐이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카페에는 재즈가 흘렀다.
나는 요새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긴한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내가 살아왔던 날들 중에 단연 행복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친구와 나는 한 상에 만원하는 광어물회에 소주를 두 병 마셨다.오늘 친구와 술을 마신 것도 행복한 느낌때문에 마신 것이다. 술을 마셔서 조금 더 행복해지긴 했지만, 술자리를 접고나서 나는 다시 또다른 카페에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슬프다. 아까까진 엄청 행복했었는데 이상하다. 옆 테이블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 때문인가. 창밖으로 비에 젖어있는 거리 풍경 때문인가. 성시경의 노래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카페의 풍경이 뭔가 서글프다. 나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고 싶은거나 해야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인생, 이 단어를 놓고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글을 많이 써봤지만 대개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오늘은 '인생'을 던져보았다. 사실 인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만한 자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내가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사랑이든 연애든 모험이든 그건 모두 인생 이야기로 엮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루를 살아감의 연속이다. 하루라고 하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잠을 자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봤을 때 밤이라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거고 그건 즉 하루를 가장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터다. 우리의 노년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다가올 노년의 시간일 것이다.
같은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만큼 지난 삶을 바라보기에 훌륭한 때가 없다.
생각이 났다. 나는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고 싶었나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들에 특정한 제목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의 하루들은 독특하고 유별나고 늘 다르다. 누구든지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살지 않고, 혹은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아간다면, '오늘의 지구'에는 70억 꾸러미의 생각들이 있었고, 내일은 또 다시 70억의 생각들이 우리의 별에 쌓인다.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역사 수십만년에 걸쳐, 지구에 땅을 붙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고 우리의 별은 그걸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 내 하루에는 '사랑'이 왔다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새는 '사랑' 제일 많이 왔다간다. 친구와 만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물여섯살의 나이가 되니까 사실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는 없다.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사랑이고, 어디선가 읽은 사랑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익숙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내 사랑'이 되면 그것은 완전히 또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그리고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걸까. 또 좋아하게 돼서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텐데 우린 왜 아플까. 의미없는 물음이긴 하지만, 우린 이미 의미를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혹시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는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이기 때문이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사랑 이야기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키워지고, 스승의 사랑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의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왔다. 사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대학시절에 내가 썼던 에세이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결론을 '사랑'으로 내렸던 생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헌신해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스스로 더 나은 예술작품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
비문화인 프로젝트를 구상하여 시작한지, 대학교 4학년때 였으니까 어언 3년째다. 당시 비문화인 프로젝트는 진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오고 싶었던 나의 해방구였을 것이다.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미술관을 가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걸어왔다.
그리고 비문화인 프로젝트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만드는 구상을 하게 된건 2014년의 1월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벌써 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지도 7개월이 넘은 것 같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던 당시의 흥분감을 기억한다. 김밥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고 3시간 동안 동료와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갔다.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눈 앞에 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생각을 그려가는 것만으로 정말 즐거웠던 것이다.
내가 지금 빠져있는 곳
내가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계획해 나가는 사이 나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많은 아이디어를 접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은 나의 아이디어들과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절실함에 대한 동력을 잃어가는 시점이라고 본다. 나의 아이디어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이미 많은 부분 구현되어 있는거라면 '사실상 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
예술가가 되자
예술가가 되자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모두 예술가라고 생각하고서 각자가 더 많은 창작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나의 비즈니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들을 예술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더 나은 예술작품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 그것이 내가 ‘비문화인 프로젝트’에서 그리는 세상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생활을 먼저 돌아보자. 나는 지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창작에 할애하고 있는지. 다시 시작해보기 위해서는 일단은 펜과 스케치북을 당장 들어야만 한다.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시간은 새벽 5시 17분을 지났다. 두시간 전에 누워서 잠들려는 노력을 하다가 거듭 실패를 하고, 결국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문득 파헬벨의 캐논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을 재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번 들을 때마다 아름답고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지금에서야 '소중한' 한 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나는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프고 아팠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왜 아플까. 정말 아픈건지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고 싶었나 보다.
지나간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너무나도 큰 미안함과 인생에 짐을 안게 해준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랑을 스스로 져버린 것은 나였고, 그런 사랑의 끝에 나 스스로 평생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사랑하지 않음 때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문득 문득 그 아픈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자주 찾아와서 나의 가슴을 저며왔다. 생각했다. 내가 준 상처는 그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밤마다 가슴을 움켜쥐었고 쉽사리 그 아픔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
언제나 시간만이 도움을 주었다. 한 번씩 강렬한 아픔이 지나가면 이내 아픔은 또 무뎌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 올 아픔이 숨어있는 반복이었다.
나는 매우 소중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에는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저 계속 아파했다. 도대체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너무 아팠다. 사랑에서 아프다는 건 그리워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워지면 그리워질수록, 아파지고 아파졌으니까. 옛사랑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내버려두었다.
감사하게도 아픔은 일주일도 채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거기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해준다는 말에는 너무 많은 모습들이 생략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지옥을 다녀오기도 하고, 우주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에 지쳐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제자리도 돌아와 다시 일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든지 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나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니)
아픔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고마움'을 닮아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이 우리 세상에서는 몇가지 '관계'의 이름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겨 아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아픔'이 오가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고마움'이 힘겹게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마움
별다른 고마움이 아니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난 것. 만났었다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 너는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었고 지금은 이처럼 나의 글로서 살아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것만이 절대 아니다. 나의 세상에 들러준 모든 존재들의 향연이다. 그런 고마움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에 대한 얘기
사람이 사람을 향해 가지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은 '보고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사과를 하든, 과거를 추억하든, 일단 보고 싶었다. '보고싶다'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고 존재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고있든, 저 세상에 살고 있든 난 보고싶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함'을 오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너는 나의 보고싶은 사람이 되었다. 보고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이내 아픔으로 그려진다. 즉, 아프다는 것은 보고싶다는 것이고, 보고싶다는 것은 너와 내가 그렸던 순수함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고마움.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이 밝아왔다. 너는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까. 나는 또 언제 너 때문에 아파할까. 혹시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더 성숙해져서 그게 아픔보다는 고마움으로 널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주가 소중한 한 주였다고 생각되는 이유들을 쓰고 싶었다. 결국 그 이유들을 충분히 잘 쓰진 못했지만 이 글 마저도 나에겐 소중하다. 지난 한 주가 소중했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 글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재밌다기보다는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본 것 중에 제일 신기하다. 살아가는게 제일 신기하다.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
가장 많이 하는 다짐 중 하나가 글을 열심히 쓰자는 다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펜과 키보드를 잡는 건 어렵다. 또 모든 일에서 그런 것처럼 무언가를 한번 안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또 한 번 하지 않는 건 점점 쉬워진다. 헬스, 공부, 사람 만나기 등등등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발력'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쉽다.(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는 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50%의 준비완료 상태라면, 나머지는 50%는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로 그 행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일단 밥통에 밥이 있으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줄어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도 한결 간단해진다. 밥상에 올릴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반 20분이 되면 동네에 두부장수가 지나가면서 종을 울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분은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맞닿아 있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우린 마음속으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을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발력'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도 사실은 쉽다.(가장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는 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50%의 준비완료 상태라면, 나머지는 50%는 책을 펼치는 것, 펜을 잡는 것,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바로 그 행위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었다. 일단 밥통에 밥이 있으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줄어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도 한결 간단해진다. 밥상에 올릴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하게라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8시반 20분이 되면 동네에 두부장수가 지나가면서 종을 울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분은 이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맞닿아 있다. 내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우린 마음속으로만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을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Infra 학습 일지
6/24
6/26
- AWS에서 Load balancer 셋업
- WAR파일 운영서버에 디플로이
- 운영 DB 만들기
- 운영 서버 구성도 업데이트
6/27
- MongoDB 셋업 (cluster) , Data Migration
- External Load Balancer 인증서 설치
- Wordpress DB 이동
- 운영 Web 서버 설정 / Wordpress 이동
- Domain 변경 -> ELB를 바라보도록
6/30
- Database Backup / Restore
- Mongo DB Backup / Restore
- S3 정비 (계통마다 구분)
- Auto Scaling setup
- AWS(Amazon Web Service) 를 활용한 서버 구성
- Amazon EC2 instance 설치
- 서버 구성도 그리기
6/25
- 웹서버(NGINX) 설치 on Linux Ubuntu
- WAS(Web application server) TOMCAT 설치 on Linux Ubuntu
- 리눅스 명령어
- ftp와 ssh client를 이용하여 WAR파일 디플로이
6/26
- AWS에서 Load balancer 셋업
- WAR파일 운영서버에 디플로이
- 운영 DB 만들기
- 운영 서버 구성도 업데이트
6/27
- MongoDB 셋업 (cluster) , Data Migration
- External Load Balancer 인증서 설치
- Wordpress DB 이동
- 운영 Web 서버 설정 / Wordpress 이동
- Domain 변경 -> ELB를 바라보도록
6/30
- Database Backup / Restore
- Mongo DB Backup / Restore
- SSH 터널링
7/1
- SVN 구분7/1
- S3 정비 (계통마다 구분)
- Auto Scaling setup
우린 인생을 살아내고 살아낸만큼 정리하길 반복한다
어느 시점에서인가, 나는(우리는) 지금까지의 정리안된 사진들이며 글들을 정리해야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고나면 실제로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잘 정돈되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내고, 살아낸만큼 정리하고, 또 살아내고, 또 정리하기를 반복한다.
그건 마치 방을 어지럽히고, 청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청소를 하고 나면 방을 다시 어지럽혀도 되는 기분인 것처럼, 정리를 하고 나면 늘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요즘 그 정리하는 일이 적어진 것 같긴 하다. '새로 시작함'에 있어서 정리보다 좋은 것 없다는 줄을 알면서도 늘 '정리의 시작'은 어렵다. 확실한 것은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청소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리하자. 정리하자.
그건 마치 방을 어지럽히고, 청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청소를 하고 나면 방을 다시 어지럽혀도 되는 기분인 것처럼, 정리를 하고 나면 늘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다.
요즘 그 정리하는 일이 적어진 것 같긴 하다. '새로 시작함'에 있어서 정리보다 좋은 것 없다는 줄을 알면서도 늘 '정리의 시작'은 어렵다. 확실한 것은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청소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리하자. 정리하자.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는 길
약 한달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나는 고향을 참으로 좋아한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그냥 마음이 편하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살이를 한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군대와 일본을 빼더라도 6년이다. 그런 긴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도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떠올리는 그런 것'처럼 되었다.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굳이 내가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많을 수도 있다. 어딜가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 부모님과 더불어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갈 것이고, 서울에 살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누구가 그렇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 때는 나도 나만의 포부가 있었다. 나는 아직 그 포부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고향을 떠나온 그 시점 이후로 줄곧 방황의 연속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 온 나날들이다. (계속 살아도 그 고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금의환향을 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갈 길을 찾았다는 것을 부모님꼐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있다. 길을 돌고 돌아, 또 돌고 돌을지언정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을 갖게 되는 때가 결국은 오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는 길이 좀처럼 마음이 편치않고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기 전까지는)그것을 꼭 보고 싶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며칠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서다. 내가 하고 싶은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매우 많다. 그런 느낌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은, 그런 느낌은 내 생애에 다시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일을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바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몇 살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정확히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는 묘사할 수는 없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만 말한다. 물론 꼭 그럴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차근차근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간다.
김광석의 노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김광석이 죽기 전까지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김광석이 죽던 해에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음악을 알게 되고, 대학교 때는 더 자주 듣다가, 군대에 가서는 그의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군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의 50%는 그의 음악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만약 그의 음악이 없었으면 나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지금까지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을 알았을까.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길
미디어가 넘쳐나고 어디서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힘을 받을 곳은 넘쳐난다. 영화와 음악, 책,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글, 누군가의 말 등처럼 자극제가 과잉된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은 좋기도 하면서 안좋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책과 음악이 끊이지 않고 생산될수록 어떤 특정 기억이 그 사람의 뇌리에서 잊혀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랜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힘을 가졌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걸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일까. 우리는 너무 많이 꾸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고 더욱 포장해서 더 잘보이려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서로를 더욱 멀리하는 건 아닐까.
순수하게 살아가야지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거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할 말은 없다. 순수해 보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는 것뿐이다. 아무리 (역사 이래로 줄곧) 세상이 안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다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지 싶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나 하나가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 것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위에 두었을 때, 인생은 한 번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게 힘들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 과정이 재밌는 여정이 된다. 그래서 내 작은 생명하나가, 인류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위에 두었을 때, 인생은 한 번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재미있게 사는게 힘들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결국 그 과정이 재밌는 여정이 된다. 그래서 내 작은 생명하나가, 인류에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2013년 영화 결산
날짜
|
장소
|
평점
|
국가
|
||
1
|
Life Of Pi
|
롯데시네마 건대
|
8
|
미국
|
|
2
|
Cloud
Atlas
|
롯데시네마 건대
|
10
|
독일
|
|
3
|
2013. 1. 16
|
Matrix
|
10
|
미국
|
|
4
|
Silver
Linings Playbook
|
미국
|
|||
5
|
2013. 1. 17
|
Friends With Benefits
|
7
|
미국
|
|
6
|
2013.
1. 24
|
Matrix
Reloaded
|
9
|
미국
|
|
7
|
2013. 1. 25
|
Matrix Revolution
|
10
|
미국
|
|
8
|
2013.
1. 24
|
In Time
|
8
|
미국
|
|
9
|
2013. 1. 25
|
후회하지않아
|
6
|
한국
|
|
10
|
2013.
1. 25
|
Shelter
|
9
|
미국
|
|
11
|
2013. 1. 26
|
The Parent Trap
|
8
|
미국
|
|
12
|
2013.
1. 27
|
Flight
|
9
|
미국
|
|
13
|
7번방의 선물
|
롯데시네마 건대
|
9
|
한국
|
|
14
|
베를린
|
롯데시네마 건대
|
7
|
한국
|
|
15
|
2013. 3. 15
|
파파로티
|
롯데시네마 건대
|
6
|
한국
|
16
|
2013.
3. 23
|
Pitch
Perfect
|
롯데시네마 건대
|
6
|
미국
|
17
|
2013. 3. 30
|
Django Unchained
|
롯데시네마 건대
|
9
|
미국
|
18
|
2013.
3. 28
|
Warm
Bodies
|
롯데시네마 건대
|
8
|
미국
|
19
|
2013. 4. 6
|
천공의성 라퓨타
|
일본
|
||
20
|
2013.
4. 6
|
바람의계곡의 나우시카
|
일본
|
||
21
|
2013. 4. 7
|
돼지의 왕
|
한국
|
||
22
|
2013.
4. 11
|
Oblivion
|
롯데시네마 건대
|
9
|
미국
|
23
|
2013. 4. 20
|
Beautiful Creatures
|
롯데시네마 건대
|
6
|
미국
|
24
|
2013.
4. 21
|
G.I.Joe
: The Rise Of Cobra
|
미국
|
||
25
|
2013. 4. 27
|
우리의 교환일기
|
전주영화제
|
9
|
일본
|
26
|
2013.
4. 28
|
묻지마 사랑
|
전주영화제
|
9
|
일본
|
27
|
2013. 5. 2
|
Iron Man 2
|
롯데시네마 건대
|
8
|
미국
|
28
|
2013.
5. 5
|
Iron
Man 3
|
롯데시네마 건대
|
10
|
미국
|
29
|
2013. 5. 6
|
V For Vendetta
|
9
|
미국
|
|
30
|
2013.
5. 23
|
Bodyguard
|
6
|
미국
|
|
31
|
2013. 5. 24
|
Invention Of Lying
|
9
|
미국
|
|
32
|
사이드웨이
|
7
|
미국
|
||
33
|
2013. 6. 2
|
Startrek Into Darkness
|
CGV 왕십리
|
9
|
미국
|
34
|
밤과 낮
|
7
|
한국
|
||
35
|
Shame
|
6
|
미국
|
||
36
|
Man Of
Steel
|
롯데시네마 건대
|
10
|
미국
|
|
37
|
World War Z
|
CGV 송파
|
9
|
미국
|
|
38
|
10Items
Or Less
|
9
|
미국
|
||
39
|
2013. 7. 10
|
Pacific Rim
|
CGV 왕십리
|
6
|
미국
|
40
|
2013.
7. 26
|
Hawaii
|
CGV 부천
|
9
|
아르헨티나
|
41
|
Rudy
|
7
|
미국
|
||
42
|
2013.
8. 4
|
The Man
From Earth
|
7
|
미국
|
|
43
|
Red2
|
롯데시네마 건대
|
7
|
미국
|
|
44
|
2013.
8. 4
|
설국열차
|
CGV왕십리
|
10
|
한국
|
45
|
2013. 8. 17
|
더 테러 라이브
|
롯데시네마 건대
|
6
|
한국
|
46
|
바람이 분다
|
롯데시네마 건대
|
9
|
일본
|
|
47
|
언어의 정원
|
ku 시네마테크
|
10
|
일본
|
|
48
|
13층
|
7
|
미국
|
||
49
|
2013. 10. 19
|
Gravity
|
CGV왕십리
|
9
|
미국
|
50
|
우리선희
|
ku 시네마테크
|
7
|
한국
|
|
51
|
2013. 11. 3
|
Thor : The Dark World
|
롯데시네마 건대
|
9
|
미국
|
52
|
2013.
11. 9
|
Disconnect
|
8
|
미국
|
|
53
|
Pirates Of Sillicon Valley
|
7
|
미국
|
||
54
|
Playing
For Keeps
|
7
|
미국
|
||
55
|
Hunger Game:판엠의 불꽅
|
7
|
미국
|
||
56
|
Hunger
Game:Catching Fire
|
롯데시네마 건대
|
8
|
미국
|
|
57
|
더파이브
|
롯데시네마 건대
|
7
|
한국
|
|
58
|
Now You
See M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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