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새벽 4시 반

하버드 새벽 4시 반 

1. 한계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 일에 온 힘을 쏟아보았는가? 
2.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도전하는가? 
3.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밤새 공부하거나 일했는가? 
4. "너무 늦었다."라는 핑계로 포기한 일이 없는가? 
5. 언제나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는가? 
6.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가? 
7.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는가? 
8.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9.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꿈"을 가지고 있는가? 
10. 당장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를 잡을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제1장. 우리가 실패하는 유일한 이유는 ‘노력 부족’이다 
그들이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아니다 
천재들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 
누구도 자신의 한계에 가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의 무게 
게으름은 부지런히 당신을 갉아 먹는다 
지혜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최악의 바보는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다 

제2장. “난 할 수 있다”의 마법 
자신감이 만들지 못할 기적은 없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부족한 사람은 없다, 열등감만 있을 뿐 
자신감의 빈자리는 두려움이 채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성공의 지도는 어디에 있을까? 
파도를 만나보지 못한 배는 없다 
실패하라, 다만 두려워하지 마라 

제3장. 열정은 우리를 뛰게 한다 
열정 없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을까? 
운명도 거스르게 하는 것 
뛰어난 자가 아닌 열정을 가진 자 
열정이 습관화되면 삶이 신난다 
한 가지 일에 열정을 집중하라 
맹목적인 열정의 함정 

제4장. 행동하고, 또 행동하라 
너무 늦어서 못할 일이란 없다 
오늘과 내일, 언제 눈물을 흘릴 것인가? 
달리기 경주에서 토끼가 쉬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달콤한 습관, 미룸 
달리는 중에도 무기력한 사람은 없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제5장. 세상에서 가장 리스크 적은 생산, 배움 
지식은 가장 안전한 재산이다 
척박한 땅에도 배움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배움의 고통은 잠시지만 배우지 못한 고통은 평생이다 
죽은 지식과 살아있는 지식 
세상에서 가장 큰 투자 
어설픈 배움은 아니 배운 것만 못하다 

제6장. 유연한 사고의 위대한 힘 
당신 안의 창의력을 찾아라
자기만의 공부를 하라 
상상력이 세상을 뒤집는다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아이디어의 보고다 
고정관념으로부터 걸어 나와라 
날개 없이 하늘을 나는 법 

제7장. 시간 관리의 달인이야말로 최고의 부자다 
모든 오늘은 소중한 삶이다 
시간을 도둑맞는 사람, 시간을 최대로 써먹는 사람 
시간을 버리면 시간도 나를 버린다 
신은 시간을 아끼는 사람을 맨 앞에 둔다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시간 도둑’을 조심하라 

제8장. 철저한 자기관리의 힘 
빌 게이츠의 자기통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남보다 나를 먼저 평가하라 
과거 비우기 연습 
먼저 사람 됨됨이를 갖추라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라 
가장 어렵고도 가장 쉬운, 감정 다스리기 
자신의 잘못과 진실로 대면하기 
나를 다스려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제9장. 꿈이 없는 청춘은 아프다 
자신의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라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포기하지 마라 
꿈과 망상은 다르다 
여러 우물을 파지 마라 
목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라 
실현 가능한 꿈을 꿔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제10장. 주어진 기회를 알아보는 눈 
기회를 놓친 하버드 
기회는 쟁취하는 것 
주어진 기회를 보는 눈 
기회는 망설일 시간을 주지 않는다 
기회와 망설임은 동시에 온다 
목표를 보라, 그리고 거기서 기회를 찾아라



198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때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말 속에는 정확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말 속에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 시작을 하는 대신에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기다림’이라고 포장한 게으름’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특정한 시기를 기다리며 “그때부터 시작해야지”라고 말하면서 그때가 되면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란 대체 언제란 말인가?

시간의 엄청난 의미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시간을 올바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은 늘 잔혹하게도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우리가 기다려도 멈추지 않으며, 우리가 붙잡아도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285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모험을 두려워하며 행동하지 않는 것이 과감히 도전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지혜로운 생각과 꼼꼼한 계획, 강한 믿음으로 기회를 모색하고 판단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이 잡은 기회가 나중에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오리라 생각되면 과감히 시도하라. 보통 사람들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평범한 생각을 하고 대세에만 따른다면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밖에는 누릴 수는 없다. 독특한 견해와 평범함을 뛰어넘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모험심과 투자만 있다면 우리 곁을 스치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잠잠하게 고인 물은 시간이 흐르면 썩어버리지만 거센 파도와 물살이 휘몰아치는 바다는 세상을 뒤덮고,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계곡물은 언제나 맑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져야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모험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다채로워진다.

일상 속에 있는 기회들, 잠재적인 기회들까지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니까요.
누구나 기회를 만나게 되지만 제대로 잡지 못하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인생에서 과용해선 안 되는 세가지는 빵에 넣는 효모와 소금, 그리고 망설임이다. 효모를 너무 많이 넣으면 빵이 시큼해지고 소금을 많이 넣으면 요리가 씁쓸해지며 지나치게 망설이면 성공의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기회와 망설임은 동시에 온다.
세상의 모든 기회에는 망설임이 따른다. 하지만 이 망설임을 잘 극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 전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것' 이라고들 많이 말한다. 비슷하게 같은 내용의 글을 반복해서 쓰기 시작하면 술에 취한 걸까.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가 몇 년 전에 썼던 글과 정확히 같은 글이 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글을 다시 한 번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 내용에 대해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11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8478.html 기뻤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알수있는데 그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내 글들이 예전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 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와도 같다. 이번처럼 예전에 썼던 글들에서 지금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 2월 15일 http://seonil.blogspot.com/2013/09/blog-post_5001.html몇 개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난 '삶의 이어져 있음' (이 글의 주제)을 느끼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 갈수록 그러한 글들이 나의 지금 모습에 반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아래의 일기가 3년 전 딱 이 맘 때 내가 쓴 글이다.난 어젯밤 이 글을 읽고서 내 스스로 갇혀있던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이것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우주다.  

2013년 4월 17일 봄날  http://seonil.blogspot.com/2013/10/blog-post_9417.html
하나의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글을 통해 공유되게 된다. 말그대로 시공간을 아우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과거의 너와 미래의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너는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며 공존한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련다. 이글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됐든, 타자가 됐든 결국엔 어느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은 생각만을 담지 않을 수가 없다.
2년 전, 4년 전 이맘때의 글에서도 '연결'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니, 얼마나 재밌나.지금으로부터 2년 후의 4월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까.

위의 글들, 그러니까 6년전, 3년전, 2년 전의 글들은 사실 내용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서 2015년 4월 난 또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왜 같은 얘기를 누차하려고 하는 걸까. 상황이 다르다. 2009년, 2012년, 2013년 각각 내가 둘러쌓여져 있던 환경과 사오항이 모두 달랐다. 2015년 지금도 매우 다르다. 2009년은 해군 상병 때였고, 2012년은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던 대학교 4학년 이었고, 2013년은 갓 졸업을 하고서 코트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새로운 도전'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헤쳐나가고 있는 인생의 상황이 모두 다름에도 '나'라는 사람은 나의 '글'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발견한다. 발견하는 모습 - 과거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생각에 성장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 - 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안도감과 비슷한데, 어떤 안도감이냐면, 내가 과거의 '나'의 모습을 가끔씩 되돌아 보고서, 때로는 '지금보다 과거의 가졌던 생각이 더 좋았구나' , '과거를 보고서 지금을 좀 더 반성해야지'라는 느낌들에서 오는 안도감이다. 과거에 순간순간 품었던 생각들은 어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족들, 친구들. 어떠한 삶을 살아내든 나를 믿고서 끝까지 응원하겠노라고 말해준다. 심지어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너는 옳은 선택을 할거니까'라고 말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위로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건 과거에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는 당연히 아닐뿐더러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지 않기 위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는 (모든게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 속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 하나도 헛되이 쓰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노력 또한 미래에는 더욱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이 가는대로, 나를 둘러싼 우주가 미소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시절 가장 좋아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말이다.
“우리의 현재 모습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과거에 서있던, 미래에 서있을, 그리고 지금 서있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삶이다.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건 과거의 나에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모습이다.

나는 글을 쓰며,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우주'가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은 우주일 수도 있고, 상상도 못하리만큼 큰 우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난 살아가며 내 우주를 만들어간다. 내 '우주'안의 수없이 많이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생각들을 헤집으며 살아가다보면, 지금 이 순간 품었던 생각을 한 동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로 들어올 걸 알고 있다. (이미 수차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다음은 몇 년 후일지, 그 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바다. 지금 쓴 글을 까맣게 잊어버릴 10년 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 멀진 않을 거지만) 몇 년 후의 '나'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우주가 펼쳐져 있을까. 이번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상중 교수의 '마음의 힘'이라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어떤 계기로 다시 이곳을 들어오겠지.

2015년 4월 30일, 이 글의 마무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에 꽂혀있는 책, 군시절에 읽었던<마지막 강의>의 맨 마지막장에 썼던 후기로 마무리 해야겠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나도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것이다. 내가 확신힌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다. 2008년 8월 21일"

살기 힘들어도,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최후까지 내던지지 말고

강상중, 마음의 힘

제3의 반란은 보다 심각합니다. 음습한 집단 괴롭힘이나 무차별적인 폭력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 위한 인터넷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나아가 예전의 국수주의를 방불케 하는 혐오 발언 등이 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패배자들 혹은 몰락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외주의나 사회의 '이물질'에 대한 공격에서 배출구를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황폐한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마음의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알마나 넓은 산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나는 것이니까요.

본래 생과 사는 둘다 똑같이 사람의 인생의 일부로서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욱체와 정신 속에서, 단지 목숨과 건강과 장수만을 볼것이 아니라 병과 늙음과 죽음도 동시에 눈 여겨 봐야 합니다. 병을 두려워해서야 건강해질 수 없고 죽음을 잊어버리고서는 삶의 기쁨이란 없습니다.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 하나하나의 목숨을 소중히 하고 혹은 이웃의 문제로서 생각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역사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태도가 널리 퍼질 때 비로소 지금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마음의 병이나, 마음의 고립, 그리고 고독사 닽은 현실 역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대와 마음을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대와 함께 있고, 또 시대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시대는 우리들의 마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고, 또 우리들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한스가 '인간에 관한 꿈과도 같은 시'를 영원토록 기억해 두려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평범하고 유약한 청년이 마음의 힘을 길러 인간의 본엄을, 희망을 울타리 사이로 엿보는 순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꿈과도 같은 시는 다음과 같은 청년 한스의 술회로 용솟음칩니다.
[ 사랑은 죽음에 맞선다.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죽음보다도 더 강한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선의를 가진 사상을 부여한다. 형식도 역시 사랑과 선의로부터만 생긴다. (...)인간은 선의와 사랑을 위해, 사고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 자, 눈을 뜨자 (..)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서 나는 꿈을 끝까지 다 꾸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이어받아 그 이야기를 전해 나가야 할 무언가를 여러분들 자신의 두 손으로 꽉 움켜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기 힘들어도,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최후까지 내던지지 말고 아슬아슬한 마지막 순간까지 버텨 내기를 바랍니다.나 같은 건 별 장점도 없는 평범한,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이니시에이션을 받으면서 결코 시대에 물들지 않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평범함 가운데 위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진지하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 속에서 고민하는 힘이 자라납니다.(..) 그러니 더더욱 진지하고도 절실하게 젊은이들이 마음의 힘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고, 사람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3 -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갖는다는 것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3 -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갖는다는 것

자신감.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을까. 선생님께서 '자신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조사해오라고 숙제를 냈었다. 하지만 난 그 숙제를 해오지 않은 상태로 일어 서서 자신감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얼버무렸다.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나는 자신감을 용기와 비슷한 정의로 설명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도 자신감과 용기는 비슷한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자신감을 가지는 문제는 곧 용기를 가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용기를 가지기 위해선 자신감이 필요하기도 하다.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어떠한 행동이나 시도를 하기 위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한 시도와 행동이 실패했더라도 나의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나라는 사람에 머물 것이라는 믿음. 나라는 사람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신을 믿는 것 뿐이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무얼 믿고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무얼 믿을 건 따로 없다. 그냥 자기 자신만을 믿을 뿐이다. 그게 바로 용기다. 믿을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자신 스스로를 믿는 것. 굳이 믿을 근거를 찾고 싶다면 사실 근거는 이미 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보면 된다. 우리는 잘 살아있다. 죽지 않고 잘 살아왔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며, 같이 웃고 울며 우리는 믿지 못할만큼 잘 살아왔다. 혹시 아쉬움이 남는 과거의 삶으로 비춰진다면 그건 용기가 조금 부족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하는데, 대체 우리는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늘 선택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귀결되는 문제이고, 선택은 언제나 늘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나간다. 여러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어떤 길을 택했을 때 우리의 인생이 더 재미있어질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마음이 가는 선택지를 과감하게 고르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은 평생 용기를 가져보지 못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용기를 계속 가지려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과감하게 선택하자.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생은 늘 오늘 여기서 시작하는 법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駒込、渋谷、新宿、銀座、丸の内、新橋、上野、目黒 를 돌았던 이번 여행
5일간의 짦은 여행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간도 있었을 만큼 그렇게 짧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 5일은 5년전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축약판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았던 코마고메. 아... 코마고메..일이 끝나고 나서 혼자서 밤늦게 까지 즐기던 노래방, 노래방을 나와 배가 고프면 찾아가서 먹던 마츠야의 규동. 내가 일했던 카페가 있던 긴자거리... 긴자에서 일이 끝나면 혼자서 산책했던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그리고 시부야. 그리고 시부야. 시부야의 가츠동, 시부야의 신호등, 시부야의 콜드스톤, 시부야의 하치코. 이 모든 걸 다시 한번 천천히 경험한 여행이었다.

5년 전 나의 일본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었다. 코마고메에 살며, 긴자와 마루노우치를 걷고, 시부야를 신나게 즐겼다. 그 때 나의 나이는 스물두살이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스물일곱. 5년이나 흘렀다.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의 모습에 잠깐 슬펐다. 

언제나 천천히 흘러가는 거리. 한국에서의 5년이라면 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길 몇번이나 반복했을 시간이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방문한 코마고메는 거의 모든게 그대로였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던 규동가게 요시노야가 없어지고 피자가게가 생긴 것과 그 맞은편으로는 KFC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웠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얘기는 어쩌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만 더 와닿는 말인가 보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변해가는 모습보다 내 주위가 훨씬 빨리 변해가서 그 차이를 좁힐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좀 슬픈 얘기다. 어쩌면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코마고메라는 마을이 너무 고마웠을 뿐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 것도 고마웠지만, 눈물이 날만큼 가장 고마웠던 건 역시 친구들이었다. 유헤이상, 스기야마상, 쿠사야나기상, 야마구치상, 마스미, 히메, 레이카, 모요카, 료코, 마루코, 아짱, 오구치, 케이짱, 오도리, 치히로, 유유,,, 이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5년전 그대로,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매일 밤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모두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것만으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5년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했던 결심은, 그들에게서 받은 행복은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5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아마 평생 내가 주위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해도 내가 그들에게서 1년 동안 받은 행복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내 주위의 사람이 더 행복해질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그 문제를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