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선셋파크 >를 읽었으니 쓰는 글
소설이건 영화건 처음 접하면 그 작품을 받아들이는 동안 '이 사람과 함께 여정을 해야겠다'라고 받아들여지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여정동안 나와 그 인물의 짝사랑이 시작되는것이다. 그 인물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나는 작가의 글을 통해 그인물을 지켜보며 나만의 짝사랑을 키워 나간다. 흥미롭게도 이번 소설에서는 그런 인물이 한 둘이 아니었다. 주인공 마일스는 물론, 필라, 빙, 앨런, 앨리스, 마일스의 아버지 모리스, 엄마 메리-리까지 모두 내가 아끼고 끌어안고 싶어 마다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뉴욕 선셋파크 근처의 비어있는 집을 무단점유 하여 살아가는 네 명의 젊은이를 비춘다. 그들 모두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마냥 자유롭게 살아간다. 때로는 본인의 의지대로, 때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들과 함께 바람에 맞춰 흔들리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드 프렌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뮤지컬 렌트 때문이었는지 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꿔 왔다. 도쿄의 게스트하우스 시절은 내가 바라오던 모습이 가장 가깝게 이뤄졌던 시기다.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가족처럼 마음이 잘 맞았으며, 다들 제 각기 인생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안고 있었다.
주인공 마일스 혼자만의 얘기만 존재했더라면, 그가 선셋파크의 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선셋파크라는 하나의 소설은 완성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와, 그리고 제 3자의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하나의 소설과 영화가 되어간다. 완성되어진 그 작품은 희극이기도 하면서 비극이기도 하고, 늘 그 중간을 오가는 느낌을 줄 것이다.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고, 뜨거운 햇살을 쬐고, 너를 안고, 너와 키스하고, 우린 웃고, 우린 울며 살아가야지. 살아가야지.
"이 모든 사실의 요점은 삶에서 상처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어 보아야만 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를 안는 기쁨, 다시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는 기쁨, 다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기쁨, 다시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의 손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의 벗은 몸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의 벗은 몸을 만지는 기쁨, 다시 그녀의 벗은 몸에 키스하는 기쁨, 다시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가 머리 빗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가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와 함께 샤워를 하는 기쁨, 다시 책을 놓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 다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가 안젤라에게 퍼붓는 욕설을 듣는 기쁨, 다시 그녀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 주는 기쁨, 다시 그녀의 트림 소리를 듣는 기쁨, 다시 그녀가 이 닦는 모습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의 옷을 벗기는 기쁨,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는 기쁨, 다시 그녀의 목을 보는 기쁨, 다시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걷는 기쁨, 다시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기쁨, 다시 그녀의 가슴을 핥는 기쁨, 다시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기쁨, 다시 그녀 옆에서 잠을 깨는 기쁨, 다시 그녀와 함께 수학 문제를 토론하는 기쁨, 다시 그녀에게 옷을 사주는 기쁨, 다시 그녀의 몸을 닦아 주고 그녀가 자기 몸을 닦아 주는 기쁨, 다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쁨, 다시 그녀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기쁨, 다시 그녀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기쁨, 다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기쁨, 다시 그녀의 열렬한 검은 눈빛을 받으며 살아가는 기쁨, 그러고 난 뒤 지금부터 석 달 이상, 4월까지는 다시 그녀와 함께 있을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 그녀가 1월 3일 오후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 "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더 나은 사람,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좀 공허하기도 하지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4년 동안 대학에 가서 전 과정을 이수했다고 증명해 주는 학위증을 받는 식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더 나아졌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더 강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계속 밀고 나갔어요. 한참 지나니까 목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노력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사이. 또 와인 한 모금을 마신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투쟁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저 자신을 놓쳐 버리고 만 거죠. 계속 죽 해나갔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더는 모르게 되었어요."
"그는 아버지를 실망시켰고, 필라를 실망시켰고, 모든 사람을 실망시켰다.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물들, 무너지고 불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 사라져 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150609 농촌일기 - 모내기 작업 끝
드디어 모내기 작업이 끝이 났다. 1,000개 넘는 못판을 만들고, 그걸 나르고, 논에 넣었다가, 다시 들어주고 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꾸준히 하던 운동도 모내기 작업 시기에는 팔과 손이 아파서 할 수가 없었다.
연일 비가 오지 않아서 매일 매일 뜨거운 나날이었다. 뜨거운 날씨 덕분에 쉬면서 먹는 샛거리는 더 맛있었다. 이제는 비가 잘 내리며 뜨거운 여름을 지나는 동안 벼가 잘 자라주길 바라야 한다.
2015 무주산골영화제 - 여유로운 동네의 여유로운 사람들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일주일 전에 이런 영화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어떻게든 농사일이 바쁜 와중에도 꼭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다녀오게 되었다. 구천동 이외의 무주를 가본 건 처음이었다.
전주에서는 버스로 1시간 40분이 걸린 꽤나 먼거리였다. 지난밤에 잠을 충분히 못자서 버스에서는 거의 계속 졸았다. 졸다가 눈을 뜨면 창밖으로 시시각각 꿈보다도 더 꿈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이번에 관람한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트라이브>
<우드잡>
<한여름의 판타지아>
<지미스홀>
한 영화도 빠짐없이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좋은 영화들이었다. 난 이미 전주를 떠나 무주로 와있었지만, 영화를 볼때마다 여행을 떠나고픈 충동이 일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우크라이나로, 일본으로, 아일랜드로.
산으로 둘러싸이고 중간에 작은 천이 흐르는 무주는 멋진 곳이었다. 영화를 보고나오면 자동차와 빌딩만 보이는 도시의 영화관들과는 달리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이 보였다. 영화의 여윤이 좀 더 길게 가는 것 같았다.
여유로운 동네에 여유로운 사람들이 여유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 모였던.
초여름의 짧은 추억이었지만 이번에 감상했던 영화들이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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