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달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나는 고향을 참으로 좋아한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그냥 마음이 편하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살이를 한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군대와 일본을 빼더라도 6년이다. 그런 긴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도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떠올리는 그런 것'처럼 되었다.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굳이 내가 서울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많을 수도 있다. 어딜가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 부모님과 더불어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갈 것이고, 서울에 살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누구가 그렇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 때는 나도 나만의 포부가 있었다. 나는 아직 그 포부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고향을 떠나온 그 시점 이후로 줄곧 방황의 연속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해 온 나날들이다. (계속 살아도 그 고민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금의환향을 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갈 길을 찾았다는 것을 부모님꼐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있다. 길을 돌고 돌아, 또 돌고 돌을지언정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을 갖게 되는 때가 결국은 오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는 길이 좀처럼 마음이 편치않고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죽기 전까지는)그것을 꼭 보고 싶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며칠 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해서다. 내가 하고 싶은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매우 많다. 그런 느낌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한 것은, 그런 느낌은 내 생애에 다시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일을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 바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몇 살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정확히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는 묘사할 수는 없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만 말한다. 물론 꼭 그럴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 혼자만 행복해서는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차근차근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나갈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간다.
김광석의 노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김광석이 죽기 전까지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김광석이 죽던 해에 초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음악을 알게 되고, 대학교 때는 더 자주 듣다가, 군대에 가서는 그의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군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의 50%는 그의 음악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만약 그의 음악이 없었으면 나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지금까지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을 알았을까.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길
미디어가 넘쳐나고 어디서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힘을 받을 곳은 넘쳐난다. 영화와 음악, 책,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글, 누군가의 말 등처럼 자극제가 과잉된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은 좋기도 하면서 안좋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책과 음악이 끊이지 않고 생산될수록 어떤 특정 기억이 그 사람의 뇌리에서 잊혀질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랜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힘을 가졌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걸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일까. 우리는 너무 많이 꾸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고 더욱 포장해서 더 잘보이려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서로를 더욱 멀리하는 건 아닐까.
순수하게 살아가야지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거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할 말은 없다. 순수해 보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서,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는 것뿐이다. 아무리 (역사 이래로 줄곧) 세상이 안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다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순수성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지 싶다.